제232화
232화. 의외의 거래 (3)
“헤헤! 아빠!”
“뀨우~.”
헤실거리며 품속으로 파고드는 시연이와 뀨웅이.
두 아이의 부드러운 촉감과 따뜻한 온기를 보자면 얼굴이 절로 녹아내려야 했지만.
“어, 어?”
시문은 두 아이를 제대로 앉아주지도 못한 채.
연신 당황 어린 얼굴로 눈을 깜빡였다.
이유는 간단했다.
[30킬을 달성하였습니다.]
[입장 가능 공격자 수가 2배로 증가합니다.]
[50킬을 달성하였습니다.]
[입장 가능 공격자 수가 2배로 증가합니다.]
[80킬을…….]
귀환만을 기다렸다는 듯.
눈앞으로 쏟아지는 메시지의 양은 그야말로 상당했으니까.
더군다나.
‘뭐야? 언제 이렇게 킬을 많이 한 거지?’
벌써 80킬을 넘어버린 건, 시문으로서도 놀라울 수밖에 없었다.
구간마다 2배씩이니, 80킬이면 입장 가능한 문만 16개 아니던가?
‘벨리알과의 시간을 꽤 보내긴 했다만…… 그렇게 오래 있었던 것도 아닌데?’
그렇다고 80킬이 이루어질 정도로 시간을 보낸 것도 아니었는데.
‘입장한 뱀파이어들이 그렇게 많았나?’
고개를 갸웃한 시문은 폭음과 비명이 흘러나오는 전투지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그곳엔.
화르륵.
“끼아아악!”
“뜨, 뜨거워!!”
우아하고 고풍스러웠던 외형이 흉하게 타버린 채.
비명을 내지르며 스러지는 뱀파이어들과.
“꺄하핫! 발작하는 것 좀 봐!”
“어이. 밤의 귀족 나으리? 그렇게 비명을 질러대면 영 품위가 없잖아!”
“오호호! 이렇게 흉하게 타버려서야, 레이디라고도 못 부르겠네?”
깔깔거리며 전투를 방자한 학살과 고문을 펼치고 있는 타락 천사들이 보였다.
‘과연 타락 천사야. 상대가 뱀파이어인데도 저렇게 압도적이라니.’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는 시문.
뱀파이어가 아레나 상위권에 속하는 종족인 것과.
저들이 다이아 승급전을 치르는 플레이어임을 고려해 보면.
자신이 소환한 타락 천사들은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수준의 소환물이라 볼 수 있었다.
당연히 던전 공방전의 특수성으로 인해.
“크하핫! 이거 평소보다 힘이 넘치는데?”
“맷집도 그래. 나 방금 혈마법을 정통으로 맞았는데. 봐봐! 생채기만 났잖아.”
기존보다 훨씬 강해진 상태인 것도 따져야 했지만 말이다.
하나 이런 버프를 고려하더라도.
‘과거 7마제의 병사들이었다는데. 기존의 타락 천사들보다 강하긴 하네.’
벨리알의 선물로 받은 저들은 일반적인 타락 천사와 근본부터 다르지 않은가?
거기다.
‘분명 내 악기 스탯이 높아질수록, 저 타락 천사들도 강해진다고 그랬었지?’
벨리알이 어떻게 7마제의 병사들을 얻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저 타락 천사들이 소환자의 악기에 따라, 그 수준이 달라진다고 했었다.
고로 소환수 중에서도 귀하다는 성장형 소환수라는 뜻.
‘급만 놓고 보면 시연이나 뀨웅이와 비슷하겠어.’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
‘잠깐. 그럼…….’
시문의 시선이 자연스레 아래로 스륵 내려간다.
“우움…….”
“뀨우. 뀨.”
품속에서 모찌 같은 뺨을 비비는 시연이와 뀨웅이.
‘저 80킬을 이 둘에서 했다는 거야?’
도저히 믿기지 않는 생각이었지만.
당장 눈앞을 가득 채우던 킬 수와 16개로 늘어나 버린 문이 그걸 증명하지 않는가?
시문이 멍하니 내려다보자.
“아빠?”
“뀨우?”
시연이와 뀨웅이가 고개를 갸웃한다.
잠시 침묵을 유지하던 시문은.
“시연아. 뀨웅아. 혹시 아빠가 없는 동안 침입자들을 처리한 게 너희야?”
조용히 물었고.
“웅…… 자꾸 들어와서, 우리가 처리해쪄요.”
뀨, 뀨우우.
잠깐 머뭇거리던 시연이와 뀨웅이는 조심스레 말을 이었다.
꼭 잘못한 아이들이 부모님께 혼날 때의 모습과 다름없는 모습.
“아니. 아빠는 너희를 혼내려고 그러는 게 아니야.”
시문은 부드럽게 웃으며, 두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냥 킬이 너무 많아서 놀랐을 뿐이야. 너희의 무력이 이만한지는 몰랐으니까. 근데…….”
차분히 아이들을 달래던 시문의 말이 점차 흐려졌다.
이유는 다름이 아니었다.
‘둘 중 누가 이렇게나 킬을 한 거지?’
무려 80킬이다.
둘이서 사이좋게 반반 나눴을 리는 없고.
분명 누군가가 압도적인 전투력을 뽐냈을 터.
‘시연이가 골렘이나 연금술을 어느 정도 할 수는 있지만…….’
여긴 무려 다이아 랭크로 승급하는 이들의 전장.
고로 뽀얀 시연이를 향하던 시문의 시선이 자연스레 그 옆.
‘아무래도 역시 뀨웅이겠지.’
둥글둥글한 뀨웅이로 움직인다.
‘마법 무효화도 그렇고. 뀨웅이의 근본은 드래곤이니까.’
아마 마법계들이 유독 많이 등장해서, 뀨웅이의 무력화에 힘없이 당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이내.
“어후!”
고개를 휙휙 젓는 시문.
‘누가 뭘 하든 어떠냐. 결국 내 아이들이 해낸 일인데.’
성별의 한계로 인해 내 배 속에서 자라난 생명이 아닌,
연금술로 탄생한 아이들이었으나.
결국 자신이 탄생시킨 생명체란 사실은 변함이 없다.
고로 내 자식이나 마찬가지인데.
‘내 아이들이 잘나면 나야 좋지!’
이딴 고민이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와락!
갑자기 두 아이를 확 끌어안는 시문.
그에.
“에?”
“뀨?”
한껏 긴장하던 시연이와 뀨웅이가 화들짝 놀란다.
시문은 그런 두 아이를 조심스레.
“아구! 요 귀염둥이 내 새끼들! 잘했어요! 아빠 대신 힘써 줘서 고마워!”
그러나 힘껏 끌어안아 주었고.
잠시 눈을 끔뻑이던 두 아이는 서로를 힐끔하더니.
“헤헤! 아빠!!”
“뀨우우우!”
기분 좋은 웃음을 흘리며, 시문의 품속으로 더욱 파고들었다.
그렇게.
“꺄하핫! 태워라!”
“뱀파이어는 화형이 제맛이지!”
“꺄아아악!”
흡혈귀들이 단체로 타죽는 전장에서 셋이 부둥켜안으며 뒹굴거린 지 얼마 지났을까?
터덩텅!
80킬로 인해 생성된 16개의 문이 줄지어 열린다.
이어.
“80킬이면 많이 지쳤을 거다!”
“여길 먹고 단숨에 1등으로 치고 나가자!”
“우승은 우리 놀 종족의 것이다!”
우르르 던전 안으로 입장하는 서로 다른 종족의 플레이어들.
하지만 기세등등하게 등장했던 것과 달리.
“던전핵을 최우선으로…….”
“서둘러 움직…….”
들어선 이들의 말끝이 흐려진다.
이유는 간단했다.
펄럭.
“저 새끼들은 또 뭐야?”
“퉤! 더 왔어?”
어느 골목에 깡패마냥.
껄렁하게 불타는 날개를 펄럭이는 십여의 타락 천사들을 확인했으니까.
특히나.
“안 그래도 강해져서 잔뜩 꼴렸는데. 즐길 장난감이 많아졌네?”
“어머~ 근데 하나같이 흉측하게 생겼다.”
“그러게. 죄다 살가죽을 벗겨서 태워버리고 싶을 정도야!”
타락 천사에 대한 악명을 조금이라도 들어본 종족이라면.
치를 떨 수밖에 없었다.
그를 증명하듯.
“저, 저 그냥 나갈게요!”
입장한 이들 중 하이에나의 머리를 가진 인간형 종족.
놀의 리더가 다급히 몸을 돌리려 했으나 그뿐.
터억.
어느새 제 어깨를 붙잡은 창백한 손에 그대로 굳어버렸다.
타오르는 날개 때문일까?
치이익.
타락 천사의 손이 닿은 어깨에선 노릿한 냄새와 함께 허연 연기가 올라왔지만.
제 어깨가 타들어 가는 고통에도.
놀의 리더는 비명을 지를 수 없었다.
정확히는 지를 수 없다고 해야겠지.
“들어올 땐 마음대로지만…….”
그의 귓가로 속삭여지는.
“나갈 땐 아니란다?”
타락 천사의 속삭임 때문에 말이다.
* * *
세계적인 아레나 채널인 WTC의 중계 스튜디오.
그곳엔 지금.
[정말 믿을 수 없는 광경입니다! 중지되었던 방송이 갑자기 시작되더니, 학살이 펼쳐지고 있어요!]
캐스터 마이클이 목을 놓아 열띤 중계를 펼치고 있었다.
마이클만이 아니었다.
[갑작스레 나타난 소환수 십여 명이 참가자들을 쓸어버리다니요?!]
[화염 채찍. 아니! 흑염 채찍에 속수무책으로 쓸려나가는 타 차원의 플레이어들!]
해설인 조나단마저 나름 차분했었던 평소의 그것을 벗어던지고.
마이클과 같이 뜨거운 중계를 이어가고 있었다.
무리도 아니었다.
[하나하나가 플레이어들과 맞먹는 수준입니다. 소환수라곤 믿을 수가 없는 위력이에요!]
[저들이 타락 천사라고 기겁하는 이유가 있는 것 같습니다! 정말 엄청난데요?!]
갑작스러운 화면 송출의 중단.
그리고 다시 켜졌을 때 나타난 10여 명의 타락 천사들은 소환수임에도 불구하고.
플레이어와 맞먹는 수준을 위력을 보여주고 있었으니까.
“끄아악!”
“안 돼! 물러나지 마라!”
“크하핫! 힘이 넘쳐 나!”
“과거로 돌아간 기분이야!”
타락 천사들에 의해 차례대로 쓸려나가는 플레이어들.
그 압도적인 무력에.
[타락 천사들의 멘트를 보아, 뭔가 특별한 버프가 작용하고 있는 거 같기도 합니다!]
[당연히 그렇겠지요. 하지만 버프만이 아닙니다. 저 흑염을 다루는 솜씨를 보십쇼! 어지간한 화속성 플레이어와 맞먹지 않습니까? 거기다 기본 전투 능력도 상당해 보여요!]
[듣고 보니 그렇군요. 채찍부터 투사체, 폭발까지! 거기다 근접전도 전투계에 비해 전혀 밀리지 않아요!]
중계를 이어가던 마이클과 조나단은 기함을 표했다.
중계진만이 아니었다.
-와…… X발! 내 소환물들이랑 ㅈㄴ 비교되네 ㅋㅋ.
-ㄹㅇ 나 다이아 소환계인데. 내 소환물 다 합쳐도 저 타락 천사 한 명을 못 이길 듯.
-에바 ㄴㄴ. 그건 네가 다이아 소환계가 아니어서겠지.
-ㅇㅈ. 타락 천사들이 개쎈 건 맞는데. 다이아급 소환물 다 비비면 하나는 잡음.
이는 시문의 데뷔전을 시청 중인 시청자들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래도 개쎈 건 팩트지. 플레이어랑 맞먹는데.
-맞아. 저기가 무슨 일반 아레나도 아니고. 다이아 랭크 데뷔전이잖아?
-그건 버프가 있어서임. 조나단도 그렇고, 타락 천사들이 지들 입으로 말했잖아?
-버프 있어도 저 정도 소환물이면 강한 거지. 왜케 이 악물고 부정적임?
-ㄹㅇㅋㅋ 이 형 이레귤러인 거 하루 이틀인가.
-갑자기 소환물에 이 악물고 억까 하는 거 보니까, 소환계들 뿔 많이 난 듯.
-ㅋㅋㅋㅋㅋ 맞네. 소환계들 열등감 폭발한 거였구나?
타락 천사를 주제로 긍정과 부정으로 점철되는 채팅창.
반면.
=타락 천사라니……!
=저들이 소환이 가능한 존재였나?
=그럴 리가. ??? 랭크의 플레이어가 소환 의식을 치러도, 코를 치켜들며 거절하는 이들인데.
=위의 말에 동감한다. 마계에서도 인정받는 미친놈들 아닌가?
=한데 그런 이들을 저리 멀쩡히 소환하지 않았나?
타 차원의 채팅창은 지구의 채팅창과 다르게.
타락 천사의 소환에 대한 불신과 놀라움을 표할 뿐이었다.
물론 데뷔전의 상황이 일방적으로만 굴러가진 않았다.
“모두 뭉쳐라!”
“이봐! 일단 동맹을 맺자고!”
“우리끼리 싸울 때가 아니야!”
눈치 빠른 몇몇 종족들은 서로 규합해, 공동전선을 이루어 타락 천사들에게 대항했고.
“아악! 내 팔!”
“커, 커헉! 내가 이깟 버러지들에게…….”
“크윽! 망할 새끼들!”
던전을 종횡무진하던 타락 천사들은 크고 작은 부상을 입거나.
심하겐 역소환도 더러 되었으나 거기까지.
천마신공(天魔神功).
파(波) 천마옥(天魔玉).
쿠아아아앙!
천마옥을 위시로한 시문의 광역 공격이 곁들어지자.
“미, 미친! 무슨 위력이!”
“끄아아악!”
“내 다리가…….”
규합한 종족들의 전선은 그야말로 순식간에 무너졌고.
“역시 주인님이시다!”
“크하핫! 주인님을 따르라!”
“개자식들! 감히 내 팔에 칼을 꽂았겠다?”
주춤거렸던 타락 천사들이 다시 가세해, 전황은 학살의 장으로 다시 돌아왔다.
[아아! 이제야 균형을 이루나 했더니! 최종 보스가 있었습니다! 김시문이 있었어요!]
[타락 천사들이 너무 압도적인 나머지 까맣게 잊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마지막 플레이어가 쓰러집니다!]
[어느새 100킬로 32개가 된 문에서 더 이상 플레이어가 입장하지 않고 있어요!]
[지구 최초의 정규 데뷔전이 이렇게 끝이 납니다!]
지구 최초로 진행되었던 타 차원과의 데뷔전은 끝을 향했다.
* * *
[지구 최초! 타 차원과의 데뷔전?]
[압도적인 활약으로 데뷔전을 찍어누른 김시문!]
[세계 연맹, ‘아레나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영웅’ 김시문에게 축하 메시지]
[다양한 종족들과 새로운 종목들, 떠오르는 소정규 방송의 중요성!]
[소정규 거부했던 플레이어들, ‘후회스럽다’ 울상]
각종 포털 사이트와 뉴스에 도배되는 김시문의 사진과 기사들.
그것들이 쏟아지던 화면으로.
쾅!
허연 물체가 틀어박힌다.
화면에서 나오는 빛 말곤 그 어떤 조명도 없던 터라, 방안은 대번에 어두워졌고.
“이놈도 김시문, 저놈도 김시문…… X발! 아주 언급을 못 해 안달이 났네!”
울분에 찬 여성의 목소리가 그런 방안을 울렸다.
이내.
텅.
거칠게 열리는 문.
“쯧.”
문을 박차고 들어선 남성은 짧게 혀를 차곤.
딸깍.
문 옆에 있는 스위치를 켰다.
순식간에 밝아지는 방안.
하지만.
“어후!”
차라리 어두웠던 때가 나았던 것일까?
불을 켠 동양계의 남성은 한숨을 푹 내쉬며 입을 열었다.
“무슨 냄샌가 했더니. 야, 방 좀 치우고 살아라. 여기가 무슨 납골당이냐?”
“닥쳐.”
곧바로 날아드는 여성의 짜증 어린 답.
그럼에도 남성은 팔짱을 낀 채.
“TV는 또 왜 부순 건데? 그거 아레나산 재료가 들어간 거라고.”
문에 기대어, 값비싼 아레나산 TV 정중앙에 처박힌 뼈 무더기를 턱짓할 뿐이었다.
그러나 돌아오는 것은 아까와 달리.
“닥치랬지!”
위협까지 더해진 한 흑인 여성의 대답이었다.
하나 그것은 조금도 신경 쓰지 않는 것일까?
“말리나. 전부터 말하지만 여긴 네 실험실이 아니야. 제발 시체 좀 늘어놓지 마. 썩은 내가 바깥까지 진동하잖아.”
동양계의 남자는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방안에 널브러진 시체나 뼛조각들을 보며, 코를 틀어막을 뿐이었다.
그에.
“X발! 좀 닥치라니까!”
앙칼까지 더해져 쏘아지는 말리나의 목소리.
이번엔 말로 끝나는 게 아니었는지.
쐐애액!
TV에 박혀 있는 뼈 무더기와 일대의 시체 조각들이 남성을 향해 쏘아졌다.
“하여간에.”
그럼에도 여전히 팔짱을 낀 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남성.
이내.
까드득.
당장이라도 찢어발길 듯.
동양계 남성을 향해 쏘아지던 뼈와 시체 조각들은 빈 깡통처럼 허무하게 일그러졌다.
“말리나. 네가 뭔가 착각하고 있나 본데…….”
말끝을 흐리는 동양계의 남성.
아까와 전혀 다를 바 없는 여유로운 태도였으나.
“너랑 나랑 같은 기수긴 해도, 계급은 전혀 다르다?”
방 안의 분위기는 180도 달라졌다.
쿠우웅!
방 전체를 가득 채우는 무형의 아지랑이.
“끄흑!”
그것에 짓눌린 말리나는 어느새 무릎을 꿇고 힘겹게 숨을 헐떡였고.
그녀의 머리 위로.
“난 조직의 핵심 멤버지만, 넌 핵심 멤버의 ‘동생’에 불과해. 이게 얼마나 큰 차이인지는, 지금도 몸소 느끼고 있지?”
평범하지만 날이 서린 목소리가 흘러들었다.
말리나는 무겁게 짓누르는 아지랑이를 간신히 저항한 채.
“끄으…….”
힘겹게 고개를 끄덕였고.
“그래. 넌 다른 애들과 다르게, 주제 파악 하나는 잘했지. 그러니 지금까지 살아 있는 거고.”
남성은 만족스러운 미소와 함께.
스륵.
무형의 아지랑이를 거둬들였다.
“꺼헉!”
오랫동안 호흡이 단절된 사람처럼.
몸을 웅크린 채 힘겹게 호흡하는 말리나.
남성은 말리나가 호흡을 가다듬을 때까지 가만히 기다렸다.
아직도 상태가 여의치 않은지.
“개새끼…… 여긴 왜 온 거야?”
제 목을 쥔 말리나는 문에 기댄 남성을 노려보았다.
그녀의 앙칼이 제법 마음에 든 것일까?
“왜겠어? 오랜만에 친구랑 이야기나 나누려고 왔지.”
남성은 어깨를 으쓱할 뿐.
그녀의 욕설에도 아까와 같은 응징은 가하지 않았고.
“친구는 지X! 개소리할 거면 당장 꺼져!”
“까칠하기는.”
피식 웃은 남성은 문이 열린 바깥을 턱짓했다.
“나와. 네 오빠, 자칭 데스 로드이신 말리크가 친히 널 부르시니까.”
“오빠가?”
남성의 말에 잠시 고개를 갸웃하는 말리나.
이내.
“설마…… 벌써 의식 준비가 끝난 거야?”
그녀는 다소 놀란 눈으로 물었고.
“그런가 봐. 누가 도와줘서 예상보다 일찍 되었다나 뭐라나.”
남자는 어깨를 으쓱하며 중얼거렸다.
“여하튼. 죽음의 형제단을 포함해, 조직의 네크로맨서들을 전부 소집 중이라고 하니까. 바로 가봐. 난 분명 전해줬다?”
그 말을 끝으로 방을 나서는 남성.
그러나 말리나의 시선은 더 이상 그를 향해 있지 않았다.
이유야 간단했다.
“그 의식이 드디어…… 그럼 나도 이제 성좌에게 제대로 된 후원을…….”
데스페라도의 핵심 멤버이자, 데스 로드라 불리는 자신의 오빠 말리크.
그가 준비하는 의식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으니까.
또한 그로 인해서.
‘그럼 김시문…… 그 개자식에게도……!’
무엇이 가능하게 되는지도 잘 알고 있었으니까.
벌떡 자리에서 일어난 말리나는.
콰강!
뻥 뚫린 TV를 거대한 뼈 주먹으로 형체도 없이 박살 내곤.
“산 채로 언데드로 만든 다음…… 영혼까지 갈가리 찢어버리겠어!”
독기가 가득 찬 얼굴로 방을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