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27화
227화. 다이아 랭크 데뷔전 (1)
온갖 보석을 갈아서 뿌린 듯한 빛.
무척이나 황홀하지만.
이율배반적이게도 경건함과 거룩함이 느껴지는 빛이 사방으로 쏟아진다.
그것을 배경으로.
[세계수 심드라실이 천계와 연결되었습니다.]
[당신을 향한 천족들의 호의가 깊어집니다.]
[성력을 20 획득합니다.]
[성력을 보유하고 있지 않습니다.]
[연성력으로 치환되어, 연성력이 10 증가합니다.]
주르륵 떠오르는 메시지.
이어.
[히든 퀘스트 ‘차원과 차원을 잇는 나무’가 갱신됩니다.]
히든 퀘스트의 갱신까지 확인한 시문은.
“저곳에 내려주세요.”
“알겠습니다.”
따스한 빛의 세례 속에서도 유난히 시린 은청색의 빛무리를 타고.
구름을 꿰뚫은 거대한 나무.
심드라실이 있는 곳으로 하강했다.
그에.
“어? 아빠다!”
-뀨우우!
지상에 있던 어여쁜 아이와 알록달록한 외형의 용족이 해맑게 달려온다.
“아빠!”
“아구! 우리 시연이. 잘 놀고 있었어?”
시문은 즉시 품속으로 날아드는 아이를 받아내고.
-뀨우우우! 뀨우!
“그래. 뀨웅아. 너도 잘 놀고 있었지?”
그 사이로 머리를 비집으며 파고드는 뀨웅이 역시 안아주었다.
두 아이들의 뒤로.
“시문 님!”
늘씬한 체구의 여성이 다가온다.
하이엘프 에르넨이었다.
“이,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당황스러움을 숨기지 못하는 에르넨.
무리도 아니었다.
“갑자기 천계의 빛이 쏟아지더니, 어찌 대천사까지 이곳에…….”
갑작스러운 천계의 빛.
동시에.
펄럭.
휘황찬란하면서도 절제 있는 은청색의 날개.
그것도 대천사임을 상징하는 8장의 날개가 눈앞에서 펄럭이고 있지 않은가?
에르넨의 시선이 닿자.
“하이엘프라. 모두 사라진 줄로만 알았는데. 아직 존재하고 있었군요.”
은청색의 천사 가브리엘은 날개를 접고.
에르넨의 앞에 섰다.
그러곤.
“만나 뵙게 되어 기쁘군요. 천계의 대천사, 가브리엘이라고 합니다.”
정중한 인사를 건네는 가브리엘.
그에 잠시 눈을 끔뻑이던 에르넨 역시.
“아, 천계의 대천사를 뵙게 되어 영광이에요. 하이엘프 에르넨이라고 합니다.”
미소로 화답했다.
그렇게 두 존재가 인사를 나누자.
“미안해요. 에르넨. 많이 놀랐죠? 천계에 들리게 됐는데. 어쩌다 보니 이렇게 됐어요.”
시문은 한껏 쓰다듬어준 시연이와 뀨웅이를 보내고 에르넨에게 다가갔다.
이제 여유를 되찾은 것인지.
“시문 님께서 미안하실 건 전혀 없어요. 단지 너무 갑작스러워서, 좀 놀랐을 뿐이랍니다.”
특유의 싱그러운 미소를 걸치는 에르넨.
이내.
“한데.”
그녀는 서서히 옅어지고 있는 하늘의 빛을 힐끔하며 물었고.
“천계와의 연결은 아까 이루어진 것 같은데…… 대천사께서 친히 이곳에 강림하신 이유가 있을까요?”
“아. 그게 말이죠.”
시문이 답하려던 순간.
“저의 축복을 내려드리기 위해섭니다.”
가브리엘이 먼저 답했다.
“축복이요?”
“예. 본래 시문 님께선 세계수와 천계의 연결만을 원하셨습니다만. 세계수라는 말을 듣는 순간, 제가 도움을 드릴 수 있을 것 같더군요.”
“아아.”
작은 탄성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이는 에르넨.
“하긴. 가브리엘 님께선 대천사분들 중 천계의 물을 관장하셨죠?”
“맞습니다.”
에르넨의 말에 가브리엘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거기다 시문 님 덕분에 아버지의 가르침도 깨달은 터라서요.”
“어머나. 그런 일이 있었나요?”
두 눈이 동그라지는 에르넨.
이내.
“시문 님께서 대단하신 줄은 알았지만, 설마 대천사께 그런 도움까지 드릴 수 있는지는 몰랐네요.”
“저 역시 직접 겪고도, 놀라운 경험이었습니다.”
“호호! 시문 님이 여러모로 놀라운 부분이 있긴 하시죠. 예전에 제가 용제에게 당한 적이 있는데…….”
김시문이란 인간을 주제로.
“그런 일이 있었습니까? 놀랍군요. 그런 식의 악질적인 타락은 라파엘도 정화하지 못할 텐데.”
“거기다 이렇듯, 새로운 세계수까지 만드셨죠.”
“저도 처음 이야길 들었을 때 무척이나 놀랐습니다. 이제 세계수는 아스가르드의 위그드라실말곤 더 존재하지 않는…….”
두 여성은 순식간에 대화의 삼매경으로 빠져들었다.
졸지에 대화의 주체가 된 시문은.
“음…….”
괜스레 뻘쭘해져, 뒷머리만 긁적일 따름이었다.
그도 잠시.
[데뷔전까지 남은 시간 2시간 59분.]
지금의 상황을 구원해 줄 알림창이 눈앞으로 떠올랐고.
“그…… 가브리엘? 저 곧 데뷔전이 시작되어서요.”
시문은 얼른 입을 열었다.
“이런! 죄송합니다. 하이엘프와 세계수를 다시 만나게 될 줄은 몰라서, 좀 들떴나 봅니다.”
“괜찮아요. 이제 천계와 연결되었으니, 종종 놀러 오면 되죠.”
“예? 그래도 되는 겁니까?”
놀란 눈으로 물어오는 가브리엘.
시문은 아무렇지도 않게 고개를 끄덕였다.
“안 될 거 뭐 있어요? 차원도 서로 연결됐겠다, 방문하는 데 인과가 드는 것도 아니잖아요?”
“그건 그렇습니다만…… 이곳은 엄연한 시문 님의 영역이지 않습니까? 전 시문 님의 배후성도 아닌데…….”
성좌에겐 영역의 개념이 꽤 중요한 것일까?
가브리엘은 무척이나 조심스럽게 영역을 거론하며 시문의 눈치를 살폈다.
하나 시문은 성좌가 아닌 플레이어.
“어차피 제 요구는 천계의 연결까지만이었잖아요. 세계수에 축복을 내려주었으니, 방문 자격은 그걸로 퉁치면 되죠.”
가볍게 어깨를 으쓱한 시문은 동의를 구하듯.
에르넨을 향해 시선을 돌렸고.
“좋네요. 정령들이 있다곤 해도, 나름 적적하거든요.”
그녀 역시 긍정적인 미소로 답했다.
제의가 마음에 들었던 것일까.
“그렇게까지 말씀하신다면. 사양하지 않겠습니다.”
무표정하던 눈가와 입가가 살짝 휜 가브리엘은.
펄럭.
“그럼. 바로 축복을 내리겠습니다.”
8장의 날개를 펄럭이며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이어.
우웅.
맑고 시린 이명과 함께 그녀의 손끝에서 터져 나오는 은청색의 빛.
곧 물방울의 형태로 조형된 그것들은 봄비처럼, 거대한 심드라실의 전신을 적셨고.
심드라실이 은청색의 빛으로 환하게 빛났다.
이어.
[세계수 심드라실에 대천사 가브리엘의 축복이 깃듭니다.]
[세계수의 샘물의 생산량이 2배로 증가합니다.]
[낮은 확률로 ‘세계수의 청색 잎사귀’가 자라납니다.]
가브리엘의 축복으로 인한 메시지들이 주르륵 떠오른다.
내용을 확인한 시문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세계수의 샘물이 2배로 늘어난다고?’
세계수의 샘물.
현재 시문의 생산품 중 가장 높은 값어치에 팔려나가는 스탯 증강제의 핵심 재료.
다들 없어서 아우성치는 스펙 상승의 1등 공신 아이템인데.
그 생산량을 2배나 올려주다니?
‘천계의 물을 관장한다더니. 그것과 연관이 있나 보군.’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던 시문은 마지막 메시지창을 바라봤다.
‘근데 청색 잎사귀는 뭐지?’
세계수의 청색 잎사귀.
전생의 경험이 있는 시문으로서도, 무척이나 생소한 이름이었다.
그때.
“이게 벌써 자랄 줄은 몰랐는데…….”
헛웃음을 머금은 에르넨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고개를 들자.
“과연 대천사의 축복은 대단하네요!”
가지도 아닌 몸통 부분에서.
보석처럼 반짝이는 청색의 잎사귀를 채취하는 에르넨의 모습이 보였다.
“성체가 되려면 아직 한참인데. 벌써 청색 잎사귀를 피워내다니!”
그녀는 신줏단지 모시듯.
채집한 잎사귀를 두 손으로 받들곤 시문에게 내밀었다.
“시문 님? 한번 확인해 보세요. 무척 귀한 것이랍니다.”
청색 잎사귀를 건네받은 시문은 곧장 정보창을 확인했다.
그러곤.
“이건!”
부릅떠지는 시문의 두 눈.
[세계수의 청색 잎사귀]
등급 : X
오로지 세계수의 본체에서만 자라나는 잎사귀.
사용법에 따라, 특정 기운을 완전히 제거할 수 있다.
시문은 놀란 눈을 깜빡이며.
‘특정 기운을 완전히 제거할 수 있다고?’
명시된 효능을 재차 확인했고.
“후후. 다행히 일찍 피었다고 해서, 효능이 줄어들거나 하진 않았나 보네요.”
그를 본 에르넨은 부드러운 미소를 머금었다.
“저희 엘프에겐 대대로 만병통치약 중 하나로 취급되는 물건이랍니다? 그 어떤 독이나 저주, 설령 성좌의 것이라도 말끔히 지워버리니까요.”
“확실히…… 만병통치약으로 취급될 만하네요.”
‘특정 기운을 완전히 제거’한다는 옵션.
회복이라는 형태로 쓰여서 그렇지.
사실상 한 기운에 한해, 완전 면역 효과를 발휘하는 것이나 마찬가지 아니던가?
‘단순히 독이나 저주에만 국한될 게 아니라, 잘하면 스탯의 삭제도 가능하겠어.’
물론 힘민체와 같은 기본 스탯은 안 되겠지만.
‘마기나 성력, 정령력과 같은 스탯은 전부 기운이니까.’
그리고 이는.
‘제조만 잘하면…… 플레이어나 천족, 마족과 같은 이들에겐 최악의 독으로 작용하겠지.’
물론 잎사귀 한 장으론 약도 겨우 만들 수준이나.
조건이 맞아 무기화가 제대로만 이루어진다면.
그야말로 끔찍한 위력을 자아낼 수도 있었다.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
“잠깐.”
시문의 눈이 일순 날카로워진다.
‘그럼 DS로 인해, 대륙성과 용족에게 조종당하는 이들도 풀어낼 수 있다는 말이잖아?’
DS가 비록 용제의 기운으로 만들어진 아레나 외적인 영약이라곤 하나.
결국 그 근본은 용력이라는 기운에 근간하지 않는가?
처음 에르넨을 만났을 때처럼.
용력이 육체까지 침식해, 존재의 일부가 되는 수준이 아니고서야.
DS에 의한 내부의 침투쯤은 충분히 처리할 수 있을 터였다.
시문은 즉시 에르넨을 향해 물었다.
“에르넨. 이 청색 잎사귀, 얼마나 더 얻을 수 있을까요?”
“아쉽게도, 지금 들고 계신 그게 끝이랍니다.”
“이거…… 한 장이요?”
김이 푹 빠지는 시문.
그에 에르넨은 난처한 미소로 답했다.
“청색 잎사귀는 본디 성체의 세계수에서만 자라거든요. 사실 영체조차 완벽하지 않은 심드라실이 이걸 피워 낸 것만 해도, 충분히 기적에 가깝답니다.”
“아…….”
“그리고 언제 또 청색 잎사귀가 자라날지는 저도 잘 모르겠네요. 앞서 말씀드렸지만, 지금 이것조차 기적에 가까워서요.”
“그렇군요.”
한숨으로 아쉬움을 달래는 시문.
‘하긴, 아까 시스템도 그랬었지. 낮은 확률로 자라난다고.’
에르넨의 말마따나 성체의 세계수에서나 자라는 잎사귀다.
아직 씨앗 조각도 다 연상하지 못한 심드라실에겐, 청색 잎사귀를 피워 낸 것만으로도 기적이었다.
거기다 낮은 확률이긴 해도.
‘가브리엘의 축복을 받은 이상, 언젠가는 또 자라날 테니까.’
앞으로 계속 자라날 예정 아니던가?
세계수가 성장하면 그 확률도 높아질 테니.
앞으로의 성장을 도모하며, 여유를 가지고 기다리는 수밖에.
아쉬움을 정리한 시문은 미소를 머금었다.
“그래도 좋네요. 이런 귀한 걸 벌써부터 얻게 되어서.”
“후후. 그렇죠?”
그런 시문에게.
“그런데. 아예 방법이 없는 건 또 아니랍니다?”
은근한 목소리로 속삭이는 에르넨.
“그게 무슨 말이에요?”
“청색 잎사귀는 가브리엘 님의 축복으로 자라났잖아요.”
“아.”
짐작 가는 것이 있는 걸까.
시문은 작은 탄성을 흘렸다.
“가브리엘이 이곳에 자주 드나들면, 청색 잎사귀가 자랄 확률이 높아질지도 모른다?”
“네. 대천사는 상위서열의 성좌, 비록 이곳엔 분신으로 방문해야겠지만. 그 분신의 존재감만으로도 심드라실에 조금은 영향을 미칠 거예요.”
“일리 있는 말이네요.”
검은 염소나 바알, 천마에게 눌려서 그렇지.
애당초 가브리엘은 상위서열의 성좌 아니던가?
분신이라 해도, 그 존재감은 상당할 터였다.
마침.
펄럭.
“축복은 다 내렸습니다. 아마 별다른 조치가 없는 한, 영구히 지속될 겁니다.”
은청색의 날개를 펄럭이며, 가브리엘이 땅으로 내려온다.
그녀를 가만히 바라보던 시문은.
“가브리엘.”
“말씀하시죠.”
“앞으로 내 집이다~ 하고. 최대한 자주 놀러 오세요.”
“예?”
두 팔 벌려 그녀를 환영했다.
* * *
[러시아 길드전의 충격으로 가려진 이슈!]
[이젠 타 차원으로? 김시문, 외계와 연결되다!]
[약 반년 만에 다이아에 도달한 세계 최강의 초신성, 이젠 우주도?]
[지구 최초로 타 종족들과 승급전을 치른 김시문, 그 결과는?]
[외계에서도 러브콜이? 김시문 타 차원으로 이주설!]
각종 포털 사이트부터, 각국의 뉴스 프로그램까지.
세계의 이목은 지난 러시아 길드전에서 펼쳐진 충격에서 벗어나.
“야. 너 김시문 승급전 봤냐?”
“나 그날 러시아 측 해명문 본다고 못 봤어.”
“외계인이 진짜 있긴 있더라. 난 다 NPC인 줄 알았는데.”
“미친. 그럼 우리가 썰었던 애들이 다 외계인이라고?”
“그건 모르지. 전문가들 말론 타 차원도 각성자, 비각성자 나뉘는 거 같다던데?”
“어휴! 그놈의 각성 수저! 서러워서 살겠나!”
최근 시문이 치렀던 다이아 승급전을 향해, 포커스가 맞춰지고 있었다.
당연히 세계의 이러한 관심은.
[여러분. 이렇게 반가운 소식으로 만나 뵙게 되어 정말 영광입니다!]
세계 최고의 아레나 채널 TWC로 쏟아졌다.
이유야 간단했다.
[이번 김시문의 데뷔전 중계 소식을 접하고 심장이 벌렁거리더군요. 조나단은 어땠나요?]
[하핫! 저도 마찬가지죠! 어제 연락을 받고 한숨도 못 잤다니까요!]
김시문의 데뷔전.
그것의 중계를 위한 방송이 송출되고 있었으니까.
[소정규다 뭐다 해서, 지구의 데뷔전처럼 중계가 불가능할 거라 생각했는데 말이죠.]
[갤럭시 아레나 측에서 연락이 왔다더군요. 전 아직도 궁금한 게, 대체 어떤 방식으로 지구에 연락을 하냐는 겁니다.]
[하하! 그걸 따지려면 개인 방송 매체인 아레니아의 시스템부터 알아내야 하지 않을까요?]
[이런! 아레니아도 있었군요? 이거 갤럭시 아레나의 비밀은 영영 못 풀지 싶네요!]
마이클과 조나단은 연신 너스레를 떨어대며, 데뷔전 중계의 오프닝을 이어갔다.
이내.
[어어! 화면이 바뀝니다! 데뷔전이 시작하려는 모양인데요?]
[다양한 종족들도 줄줄이 소환되는 광경입니다.]
데뷔전에 참가할 각 종족의 플레이어들과.
[저기! 저쪽에 김시문 선수도 소환되는군요!]
[캬! 이렇게 보니, 확실히 우주로 뻗어나갔다는 기분이 확 드는데요!]
이번 데뷔전의 유일한 지구 측 참가자.
시문의 모습이 화면 위로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