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9화
219화. 핏빛 심연 (2)
잠시간의 침묵.
그리고 그것을 깨뜨린 것은.
“대체 무슨 개소리를 하는 거야!!”
4미터에 달하는 근육질의 여성이었다.
“반갑다니! 왕이라니! 이봐 공주. 당신 저 인간이랑 아는 사이였어?”
경악으로 물들었던 그녀의 얼굴은 점차 분노로 일그러졌다.
“그래…… 그런 거였어! 그래서 쉬라네도 바로 치료하지 않고, 그딴 소리를…….”
치이이.
거인족 중에서도 특별하다는 각성 거인.
요툰 특유의 증기가 바닷속임에도, 그녀의 전신에서 스멀스멀 흘러나왔다.
하지만.
-한데 이리 대놓고 인사를 나누어도 되겠소? 왕께선 방송을 하시던 것으로 기억하거늘.
“아, 그건 걱정하지 않아도 돼요. 효과음을 제외한 모든 송출을 잠시 꺼뒀거든요.”
-자체 검열이라? 하긴, 방송 시스템이 뛰어난 건 아레나의 몇 안 되는 장점이니.
그런 거인족 여성에겐 관심조차 없는지.
시문과 아샤즈는 서로만을 바라보며.
-하지만 조금 경솔하지 않나 싶소. 이곳엔 저기 저 쉬라네나, 요툰 느니드도 있지 않소?
“하하! 승급전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이렇게 은밀히 움직이는데. 방송을 켜뒀을 리 없잖아요?”
-……방금까지 본녀의 입으로 영민하다 인정해놓고. 헛소리를 내뱉었군. 과연 왕이시오.
저들끼리 이야기를 나눌 따름이었다.
그에.
“이 망할 것들이 진짜!”
눈을 뒤집는 요툰 느니드.
치이이익!
그녀의 전신에선 허연 증기가 매연처럼 뿜어졌고.
“둘 다 형체도 남기지 않고 으깨주마!”
쿠그그그그.
순식간에 전신이 자라났다.
근 10미터에 달하는 크기.
하나 요툰의 거인화에도.
“음.”
-후후.
시문과 아샤즈는 일말의 동요도 하지 않았다.
특히.
“잉그마르보다 작네.”
시문은 건물 같은 크기의 느니드를 되려 내려다보았다.
이상할 것도 없었다.
‘정령왕의 요람에서 만났던 히든 보스, 잉그마르가 저 요툰보다 더 컸던 거 같은데.’
수석 연구원 잉그마르.
거대한 체구에 어울리지 않는 하얀 가운까지 입었던 그는 대충 봐도 12미터가 넘는 크기였는데.
‘대충 10미터쯤 되려나?’
눈앞의 요툰 느니드는 그보다 작은 10미터이지 않은가?
‘본디 거인족은 남녀 관계없이 본신의 크기만으로 힘의 고하가 나뉘니까…….’
본신의 크기가 곧 힘의 척도가 되는 거인족의 특성을 고려해 보면.
저 느니드라는 요툰은.
‘잉그마르보다 약하겠군.’
시문이 상대했던 히든 보스 잉그마르보다 약하다는 말밖에 되지 않는다.
피식 웃음을 흘리는 시문.
그의 비웃음에 성이 날 법도 하건만.
“네놈. 방금 뭐라고 지껄인 것이냐!”
느니드의 관심을 더 끄는 것이 있었다.
“잉그마르? 잉그마르라고?”
바로 시문이 말한 잉그마르라는 이름 때문이었다.
이내.
“서, 설마!”
두 눈이 휘둥그레지는 느니드.
“정령왕의 요람에서 이루어졌던 실험을 망친 게…… 네놈이었나?!”
요툰이라서일까?
정령계에서의 연구를 잘도 알고 있는 느니드.
딱히 숨길 일도 아닐뿐더러.
오히려 요툰인 그녀가 자신을 몰랐다는 게 더 놀라운 시문은.
“뭐야. 나인 거 몰랐어?”
자연스레 나가 공주 아샤즈를 향해 의문 어린 시선을 보냈고.
-아아. 그 일에 관해선, 우리가 거인족에게 제대로 알리지 않았다오.
그의 의문을 읽은 아샤즈는 대수롭지 않게 어깨를 으쓱했다.
-2용제가 최대한 함구를 요구하기도 했고. 굳이 저 덩치만 큰 머저리들에게 사건의 진상을 알려 줄 이유는 없지 않소?
그 말인즉슨.
“이렇게 손을 잡았어도, 동맹 관계는 아니라는 거군요?”
함께 그 엄청난 연구를 진행했다 해도.
서로 친하긴커녕, 동맹의 관계에도 속하지 않는다는 뜻.
그를 증명하듯.
-호호! 왕께서도 참, 농도 일품이시오. 저리 무지한 이들과 동맹이라니?
아샤즈는 처음 보는 웃음을 터뜨리며.
-그저 목표를 위해 손을 맞대었을 뿐이거늘.
전신에서 부글부글 거품이 솟을 만큼, 파르르 떨고 있는 느니드를 흘길 뿐이었다.
당연하게도.
“이 빌어처먹을 용족놈들이!!”
분노를 터뜨린 느니드는 집채만 한 주먹을 치켜들었다.
이어.
“역시 너희 종들은 상종도 해선 안 될 잡것들이다!”
노성과 함께 내리찍히는 주먹.
주먹과 팔의 곳곳에선.
치이이.
물속임에도 허연 증기가 쉬지 않고 뿜어져 나왔다.
요툰의 고유 이능을 발현할 때 나타나는 현상이었다.
하지만.
-후후.
요툰의 거대한 일격이 날아듦에도.
미약한 웃음을 흘리는 아샤즈.
그녀는 바다뱀처럼 유연한 움직임으로 그 거대한 주먹을 손쉽게 피해 냈다.
하나 그뿐.
“이 쥐새끼 같은 년이!”
연이어 쏟아지는 느니드의 공격에도.
아샤즈는 어떤 반격도 없이 유유히 회피했다.
당연히 독이 잔뜩 오른 느니드는.
“이익! 공주라는 자가 사절인 날 이렇게 조롱해?! 도망치지 말고 싸워라!”
경화와 연화의 이능을 번갈아 써가며, 변화무쌍한 공격을 쏟아내었으나.
그녀의 움직임을 전부 읽어내는 것인지.
아샤즈는 오딘의 눈이라도 지닌 것처럼.
쏟아지는 모든 공격을 여유롭게 피해 나갈 뿐이었고.
‘뭐지?’
이 광경을 보던 시문은 고개를 갸웃했다.
‘왜 피하기만 하는 거야? 아샤즈라면 느니드쯤은 쉽게 처리할 수 있을 텐데?’
나가 공주 아샤즈.
비록 그녀를 처음 대면했던 게 골드 데뷔전으로 좀 예전 일이긴 하나.
당시 아샤즈는 사안이 통하지 않을 정도의 강력한 나가였다.
그리고 이 평가는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제 사안이야 통하지만, 순수 전투력으론 나도 장담할 수 없는 존재인데.’
애당초 전생에도.
팔 8개의 나가는 하이랭커와 맞먹었으니 말이다.
한데 그런 아샤즈가 일말의 반격도 없이 저리 피하기만 하고 있다니?
‘농락하는 걸 즐기는 성격은 아닐 테고…….’
눈매가 슬쩍 가늘어지는 시문.
이내.
“아.”
시문은 작은 탄식을 내뱉었다.
‘그렇군. 누군가를 죽이지 못하는 상황이구나?’
그 이유는 당연하게도.
‘제대로 힘을 쓰거나, 플레이어를 죽이면 갤럭시 아레나에 제재를 받는 모양이군.’
아까 처리했던 10여 마리의 나가들도 최상급 용족답게 강력하긴 했지만.
다이아 승급전을 압도할 만큼 강력한 수준은 아니지 않았나?
고로 갤럭시 아레나가 펼친 ‘격의 결계’를 아슬아슬하게 통과할 수준으로 난입한 것일 터.
“그럼 내가 처리해야겠네.”
결정을 내린 시문은 곧바로 바닥을 박찼다.
-후후. 과연.
그 모습에 만족스러운 미소를 띤 아샤즈는 유유히 날아다니기만 하던 움직임을 멈추었고.
“그래! 네년은 힘을 쓸 수 없는 상황이었지!”
살기 어린 조소를 머금은 느니드는 주먹을 높이 치켜들었다.
“그럼 얌전히 좀 뒈져라!”
그녀의 주먹이 내리찍히는 순간.
우웅.
강맹한 이명과 함께.
콰직.
경화의 이능이 가득 담겨 있던 느니드의 주먹이 찢겨나갔다.
주먹뿐만이 아니었다.
콰드드득!
손목과 팔뚝, 그리고 어깨까지.
내리찍던 오른팔 전체가 완전히 뜯겨 소멸해버렸고.
“아아악!”
그 강렬한 고통에 비명을 내지른 느니드는.
“네, 네놈! 아까 그만한 기술을 써놓고, 어찌 또 이런 힘을!”
경악 어린 눈초리로 자신의 오른팔을 소멸시킨 존재를 바라봤다.
하나 시문은 대답도 해주지 않은 채.
우웅.
또다시 묵색의 강맹한 마기를 주먹에 두를 뿐이었다.
그때.
-잠깐. 왕이시여.
황홀한 이명이 시문의 패황쇄를 붙잡았다.
-지금 느니드를 죽여선 아니 되오. 봉인을 풀려면 반신의 피가 필수적이니.
“반신의 피?”
그에 시문은 잠시 고개를 갸웃하더니.
“아아. 요툰의 피 말이군요.”
-그렇소. 거기다 느니드는 사망방지권을 들고 있을 터. 이렇게 죽이면 그대의 정보만 거인족에게 넘어갈 뿐이오.
이미 용족 사이에선 우주대스타나 다름없는 상황이다.
고로 거인족에게도 알려진다 한들, 그리 무서울 게 없는 시문이었으나.
‘굳이 애써서 적을 늘릴 필요는 없지.’
딱히 득 될 것도 없는 일이었기에.
“알겠어요.”
시문은 고개를 끄덕이곤 곧장 패황쇄를 내질렀다.
물론 처음 목표하던 심장이 아닌.
콰드득.
느니드의 거대한 복부를 비롯한 하반신 전체였고.
요툰답게 소멸된 오른팔을 빠르게 수복하던 느니드는.
“끄아아아아아!!”
신체 반절의 소멸에 또다시 비명을 내질렀다.
-그리고 여유가 된다면, 쉬라네도 살려주었으면 하오.
“그러죠.”
왜인지는 묻지도 않는 시문.
그만큼 아샤즈를 믿고 있다는 증거였기에.
-후후. 고맙소.
아샤즈는 미소를 머금으며, 유난히도 붉은 기운이 많이 흘러나오는 곳을 향했다.
사아아.
아스클레피오스의 지팡이로 죽어가는 쉬라네를 되살린 시문.
물론.
“이, 이 무슨 해괴한 짓이냐! 내 팔들은 왜 치료하지 않는 거야!”
소멸한 그녀의 팔 4개는 회복시켜주지 않았고.
요툰답게.
콰드득.
“꺄아아악!”
지독한 재생력으로 어느새 전신을 수복해나가던 느니드의 반신에 시문이 또다시 패황쇄를 선사해주었다.
그렇게 쉬라네와 느니드를 챙긴 시문이 도착하자.
-느니드는 여기. 쉬라네는 저 뒤편에 고정시켜 주시오.
아샤즈는 이 시뻘건 기운이 흘러나오는 원인.
정체 모를 문양이 인각된 둥근 석판 위를 가리켰고.
따악.
주변의 바닥을 연성한 시문은.
“아악!”
“커헉!”
날카로운 꼬챙이들로 쉬라네와 느니드를 석판 위에 고정시켰다.
물론.
콰직.
“끄아악! 이 악마보다 더한 새끼야!!”
금세 육체를 수복 중인 느니드의 반신을 다시 다듬어주는 걸 잊지 않았다.
그 꼼꼼함이 마음에 들었는지.
[성좌 바알이 ‘으음!’ 근엄한 얼굴로 당신을 인정합니다.]
[성좌 검은 염소와 천마가 열렬히 박수를 칩니다.]
마와 관련된 성좌들이 무척이나 만족스러움을 표해왔다.
-으음. 본래라면 제물이 더 있어야 했지만…….
아쉬운 듯.
탄식을 흘리는 아샤즈.
시문은 탄식의 원인이 무엇인지 대번에 알아차렸다.
“제물이 부족한 거군요?”
-그렇소.
석판 위에 고정된 느니드와 쉬라네.
가장 거대한 석판에 고정된 느니드를 제외하고.
적당한 크기의 석판에 고정된 쉬라네 주변으론, 비슷한 크기의 석판 10여 개 정도가 더 깔려있었다.
-총 12개의 제물이 필요한 봉인이라서 말이오.
그녀의 말에 시문은 자신이 쓰러뜨렸던 10여 마리의 나가를 떠올렸다.
“그럼 함께 왔던 그 나가들은…….”
-역시 눈치가 빠르시오. 그렇소. 그들 모두 제물로 선택된 이들이지.
“그런…….”
시문의 미간이 슬쩍 좁혀지자.
-명확히 하자면 간택받은 것이라오. 여왕을 위한 충성이라는 명목으로.
아샤즈는 쓴웃음을 머금었다.
-사실 말이 간택이지. 버림받은 것이나 다름없소. 왕께서 그들을 처리해봐서 알겠지만, 팔 4개의 나가치곤 약하지 않았소?
“확실히. 그렇긴 했죠.”
시문은 찬찬히 고개를 끄덕였다.
‘합격진으로 내 드래고노이드를 막아내긴 했어도 한 번뿐. 연타엔 급속히 밀렸으니까.’
합격진을 이룬 인원수도 그렇지만.
팔 4개의 나가라면 통상적으로 다이아 상위권으로 분류되기 마련인데.
시문이 상대했던 10여 마리의 나가들은 모두 다이아 초중위권의 수준 아니던가?
이는 나가 중 가장 약하다는 팔 2개의 급들과 별 다를 바가 없었다.
하지만 시문의 미간은 풀리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그래도 의지만큼은 빠지질 않던데요.”
가장 강력했던 나가인 쉬라네는 상황이 불리해지자, 뒤도 보지 않고 달아나지 않았던가?
저 10여 마리의 나가를 자신에게 던져주면서까지 말이다.
그에 비해.
10여 마리의 나가는 한 치의 물러섬도 없이 시문과 맞섰다.
당연히 이기지 못할 싸움이라는 걸 알면서도 말이다.
심지어.
뀨웅이의 갑작스러운 등장으로 사용하지는 않았으나.
활성화되었던 사안에는 그 나가들의 감정이 고스란히 느껴졌었다.
‘그 나가들. 자신들이 버려졌다는 걸 알고 있었어.’
여왕에게도, 그리고 쉬라네에게도.
자신들은 버려졌다는 것을 말이다.
그런데도.
‘목숨을 뒤로하고 오로지 충성심으로 덤벼들었지.’
10여 마리의 나가들은 제 목숨을 불사르며, 쉬라네가 남긴 공격 명령을 따랐었다.
그런 시문의 기색을 읽었는지.
-그들은 플레이어조차 되지 못한 이들이니. 여왕에겐 그저 불량품에 불과하다오.
씁쓸했던 아샤즈의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그녀는 백성조차도 값어치를 매기지. 왕녀로서 그저 부끄러울 따름이구려.
그녀의 잘못이 아닐 텐데.
사안이 아니더라도 묻어나오는 그녀의 자책 어린 미소에.
“아샤즈.”
시문은 안타까운 얼굴로 아샤즈를 바라봤다.
이내.
-이 또한 지난날을 막지 못한 우리의 업인 게지.
고개를 저으며, 이유 모를 회안을 털어낸 그녀는 고정된 두 제물을 바라봤다.
-여하튼. 반신의 피만이 아닌, 그 자체를 통째로 바친다 해도. 제물의 수가 부족하다오.
“그럼 다른 플레이어들을 잡아 와야겠군요.”
아르스 마그나로 일대의 플레이어들을 전부 쓸어버리긴 했으나.
결국 시문의 킬은 500킬.
1,000명이나 참여한 승급전이니, 발 빠르게 움직인다면 10여 명쯤이야 금방 확보할 수 있을 터였다.
하나.
-아니. 왕께서 그런 수고를 하실 필요는 없소. 하시어도 안 되고.
아샤즈는 대번에 고개를 저었고.
잠시 의문 어린 눈이던 시문은 곧 고개를 끄덕였다.
“아. 이건 다른 이들에게 들켜서는 안 될 비밀인가 보군요?”
-그렇소. 아레나 식으론 히든 피스라고 하지.
긍정을 표하는 아샤즈.
-핏빛 심연 너머에 있는 것은 아즈쉬타를 누비는 우리 나가들 중에서도, 오로지 왕족에게만 내려오는 비밀이오.
아샤즈는 느니드를 넘어.
고정되어 있는 쉬라네의 위로 움직였다.
-하니 남에게 알릴 것도 없이, 우리끼리 봉인을 해결해야 하오. 사망 방지권도 보호해주지 못하는 제물 의식이기도 하니 말이오.
저울 위 사막에서 소환되었던 암무트처럼.
‘필사 판정을 지닌 모양이군.’
시문은 고개를 까딱이며 물었다.
“따로 방법이 있어요?”
-물론이오.
8개의 팔을 활짝 펼치는 아샤즈.
그녀는 아주 태평한 얼굴로.
-본녀는 나가의 왕족으로 제법 값비싸지. 왕께서 친히 본녀의 팔들을 잘라, 저위로 놓아주시구려.
제 팔들의 절단을 요구했고.
시문은 깜짝 놀라는 대신.
“으음. 봉인의 제물과 더불어, 나가 여왕의 의심을 지울 명분을 만들겠다?”
침착한 얼굴로 아샤즈의 속내를 읊었고.
-후후. 이리도 영민하시니. 함께 일하기가 참으로 좋구려.
아샤즈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뭐, 좋아요.”
시문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며, 얼마 전 말숙이가 길드전에서 사용했던 무쌍참을 떠올렸다.
그에 맞춰 마기를 운용하자.
우웅.
시문의 손날로 날카로운 마기가 어렸다.
‘5성이 아니라 완벽하지는 않지만, 깔끔하게 절단하는 덴 문제가 없겠지.’
절단의 고통도 덜할 테고 말이다.
그를 증명하듯.
[성좌 천마가 ‘허허! 거참!’ 놀라운 웃음을 흘립니다.]
성좌 천마의 반응이 떠오른다.
그러곤.
“갑니다.”
-오시오.
8개의 팔을 활짝 펼친 아샤즈를 순식간에 스치는 시문.
이어.
서걱.
동강 나는 8개의 팔과 함께 먹물처럼 번져 나가는 아샤즈의 피.
하나 아예 고통을 느끼지 않는 것인지.
-그럼 잘린 팔들을 모두 올려 주시오.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제 팔들을 바라봤고.
잠시 치료라도 해줘야 하나 고민했던 시문은 픽 웃으며, 그녀의 팔들을 각각의 석판 위로 올려놓았다.
그러자.
쿠그그그그그!
이름값대로.
핏빛이 흘러나오는 심연이 거세게 요동친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던 정면이 문이었는지.
스으으으.
핏빛의 기운이 틈 사이로 흘러나오며, 새빨간 문의 테두리를 드러내었고.
-왕께서 남다르시다는 건 알지만, 부디 조심하시오.
그를 본 아샤즈는 엄중한 경고를 보내왔다.
-저 너머에 봉인된 것은 필멸자가 가히 감당하기 힘든 마기를 내포하고 있으니.
하지만 그녀의 경고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성좌 바알이 ‘음?!’ 벌떡 일어납니다.]
[성좌 천마가 ‘아니! 이게 여기 있었소?’ 경악을 토합니다.]
성좌들의 반응도 그렇지만.
그녀의 경고는.
키이이잉!
‘저, 저건!!’
시문에게 전혀 해당되지 않았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