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2화
212화. 이득 (1)
무례를 넘은 니콜라이의 난입에.
“니콜라이. 일단 진정하고 앉아서 이야기 좀 나누시죠.”
시문은 찬찬히 말을 이으며, 니콜라이를 진정시키려 했으나.
“개소리 마라!!”
그런 시문의 정성에도.
니콜라이의 성은 가라앉질 않았다.
“내 형과 길드원들의 죽음은 필시 네놈과 관련이 있을 터!”
되려.
“사건의 진상을 불 때까지. 네놈의 뼈를 하나하나 저며주마!”
우웅.
철퇴에 오러까지 두르는 니콜라이.
그에.
“니, 니콜라이!”
“당신 미쳤습니까?!”
“시문 님은 이번 암살과 아무런…….”
바실리와 주최 측이 서둘러 그를 막아서려 했으나 그뿐.
애당초 각성자도 아닌 그들이, 현 러시아의 최고 유망주인 니콜라이를 가로막을 순 없는 노릇이었다.
하지만 이 방엔 그런 니콜라이를 막아 내다 못해.
때려잡을 수 있는 인물이 무려 넷이나 존재했고.
그중.
“감히…….”
가장 무시무시한 인물이 걸음을 내디뎠다.
말 그대로 눈 깜짝할 사이.
“어디서 오라버니께 살기를!”
살기등등한 니콜라이의 앞으로 나타난 이유정.
철벽의 성녀라는 칭호에 걸맞지 않게.
쐐애액.
그녀의 주먹은 엄청난 속도로 니콜라이의 복부를 향해 파고들었고.
우드득!
섬뜩한 파골음과 함께.
콰아앙!
니콜라이의 거구는 그대로 한쪽 벽면에 처박혔다.
* * *
“…….”
“…….”
침묵이 감도는 대기실.
그 속에서.
“후.”
유일하게 침묵을 깨고 있는 여성.
이유정은 백색의 빛이 발하는 손을 들고,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무리도 아니었다.
“굳이 제가 치료해야 하나요? 러시아에도 충분히 고랭크의 힐러나 치료시설이 있을 텐데요?”
이유정이 한 방에 날려 버렸던 러시아 최고의 유망주.
니콜라이 이바노프를 그녀의 힘으로 치료하고 있었으니까.
그에.
“그, 그것이…… 아무래도 성녀께 받는 치료만 할 수는 없는지라…….”
곁에 있던 바실리는 이유정의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레 답했다.
사실 이번 길드전의 주최 측 대표라는 입장만 놓고 보자면.
바실리가 이 정도로 이유정의 눈치를 볼 필요는 없었으나.
‘저 니콜라이를 단 한 방에…….’
단 일격.
아무리 플래티넘과 랭커의 차이가 하늘과 땅이라지만.
러시아 최고의 유망주를 단 일격에 작살내 버린 이유정의 주먹은 사회적인 위치를 떠나.
본능적으로 겁을 집어먹게 만드는 무언가가 있었으니까.
그런 바실리의 충격을.
“유정아.”
뚜렷한 미성이 일깨운다.
“그러지 말고 제대로 치료 좀 해 줘.”
잠자코 있던 시문이 입을 연 것이다.
“니콜라이 씨가 흥분하긴 했어도, 네 대응도 과한 감이 있잖아.”
“하지만 오라버니…….”
약간 촉촉하고 풀이 죽은 눈으로 시문을 바라보는 이유정.
하나 그것이 진실된 감정이 아니라는 것쯤은.
어린 시절부터 알고 지낸 시문은 잘 알고 있었기에.
“날 걱정해 준 거 정말 고맙고 잘 아는데. 지금은 니콜라이 씨의 완치부터 생각하자. 응?”
받아 주는 대신.
타이르는 방향을 택했다.
반대로 그런 시문의 마음 역시 잘 아는 이유정이었기에.
“……네.”
고개를 끄덕이곤 손에 성력을 더했다.
물론 얼굴이 조금 뾰로통해지는 건 어쩔 수 없었지만 말이다.
그런 시문의 곁으로.
“하여간에. 넌 애가 착해 빠져서 문제야.”
뾰족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네 뼈를 부수니 마니 개소리하던 앤데. 유정이가 예절 주입 잘 시켜줬구만, 뭔 치료까지 해줘?”
고말숙이었다.
팔짱을 낀 그녀는 현 상황이 퍽이나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인지.
“나 같으면 당장 저 대갈통을 박살 내놨을 거다.”
그녀는 은은한 마기가 어린.
아마도 패황쇄로 추정되는 그것을 꾹 쥔 주먹을 흔들었다.
그에.
“유, 유일한 가족과 동료분들을 한순간에 잃었잖습니까? 많이 힘드셔서 그런 걸 겁니다!”
불안한 얼굴의 바실리는 얼른 니콜라이를 변호했고.
“그래. 행동이 거칠어서 그랬지. 진심도 아니었을 거야.”
시문 역시 한마디 보태주었다.
실제로.
“정말로 진심이었다면, 말도 없이 철퇴부터 휘둘렀을 테니까.”
말보다 행동이 먼저인 니콜라이의 성격상.
시문을 진심으로 해하고 싶었다면, 곧장 저 거대한 철퇴부터 휘둘렀을 터.
“시, 시문 님의 말이 맞습니다!”
바실리 역시 목이 부러지듯.
열렬히 호응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해 못 할 것도 없었다.
‘이반 님이 죽어 버린 마당에, 니콜라이 님까지 잃을 순 없어!’
러시아 최고 플레이어의 사망.
더불어 차르 길드의 상위 플레이어들과 유망주들이 대거 죽어버린 만큼.
현 러시아의 입장에선 니콜라이와 같은 차기 인재들이 중요하다 못해, 구명줄인 수준이었으니까.
“그래. 그러니까 말숙아. 마기 거둬라.”
그 속을 잘 아는 시문은 고개를 까딱이며 고말숙의 주먹을 물리곤.
“으윽!”
신음을 흘리는 니콜라이를 바라봤다.
‘사실 원래대로라면. 유정이와 말숙이의 말대로 이렇게 치료까진 해주지 않았을 테지만…….’
아까 떠올랐던 계획.
‘차르 길드가 대륙성에게 등을 돌리게 하기 위해선, 이 정도 투자쯤은 해서 나쁠 게 없지.’
중국과 러시아를 갈라놓기 위해서라면.
이 정도 자비쯤은 얼마든지 베풀 수 있는 시문이었다.
이윽고.
“여, 여긴…….”
니콜라이의 눈이 뜨인다.
이유정의 일격이 강력했는지.
“크윽!”
몸을 일으키던 니콜라이는 신음을 내뱉으며, 제 복부를 감싸 안았다.
“장기파열이나 골절은 모두 회복됐어요. 단 그로 인한 후유증은 꽤 오래갈 테니, 2주 정도 무리한 움직임은 삼가세요.”
보고서를 읽는 듯한 목소리.
무미건조하게 답한 이유정은 그에 상응하는 태도로 몸을 일으켰고.
“니, 니콜라이 님!”
바실리는 얼른 니콜라이를 향해 다가갔다.
정확히는 다가가려 했다.
“바실리 씨? 잠시 니콜라이 씨와 할 이야기가 있는데. 괜찮으시다면 자리 좀 비켜주시겠어요?”
시문이 그의 어깨를 붙잡기 전까진 말이다.
잠시 눈을 끔뻑이는 바실리.
시문의 뒤편에서 싸늘하게 서 있는 이유정과 고말숙.
그리고 난감한 얼굴의 박진욱까지 확인한 그는.
“알겠습니다.”
별 대꾸 없이 고개를 끄덕이곤, 대기실을 나섰고.
“그럼 시문 님. 전 미리 주최 측을 만나 길드전을 마무리해두겠습니다.”
“오라버니. 저도 성력을 회복할 겸, 휴게실에 가 있을게요.”
박진욱과 이유정 역시 몸을 일으켰다.
뻥 뚫린 입구로 향하던 둘은 여전히 시문의 뒤편에 서 있는 고말숙을 힐끔했고.
“난 있다 갈게. 이 근돼새끼가 또 나대면 바로 예절 주입해야 하니까.”
고말숙은 껄렁하게 어깨를 으쓱였다.
“하!”
그에 니콜라이가 헛웃음을 흘렸으나 그뿐.
박진욱과 이유정이 나가자.
“자, 그럼 니콜라이 씨.”
따악.
손가락을 튕겨 박살 난 문을 복구한 시문은.
“그렇게 궁금해하는 이번 일에 대해, 이야기 좀 나눠보자고요.”
이채가 어린 눈으로 니콜라이를 바라봤다.
* * *
“……가보도록 하지.”
굵직한 목소리.
그에 걸맞은 근육질의 체격을 지닌 니콜라이가 입구로 향한다.
그는 한때 자신이 부쉈던 문을 보고 잠시 멈칫하더니.
퉁.
거칠게 문을 열고 밖으로 나섰다.
그런 그의 뒷모습을 보던 고말숙은 입을 열었다.
“야.”
“왜.”
“저 근돼새끼가 믿을까?”
그녀는 대기실의 문이 닫히고 나서야.
“길드전이 끝나자마자, 무작정 찾아와서 철퇴 들고 설치던 새낀데?”
시문을 향해 시선을 돌렸고.
시문은 피식 웃으며 답했다.
“저래 보여도 생각이 깊은 사람이야.”
“X랄. 누가 보면 오래 알고 지낸 사인 줄 알겠어.”
“뭐…… 틀린 말은 아닐 수도?”
“헛소리 말고. 저 근돼새끼가 진짜 믿겠어?”
“음, 이쯤 되면 말숙이 네가 들어도 믿기지 않아서 걱정하는 거 같은데?”
“그거야…….”
정곡을 찌른 것일까.
잠시 입술을 달싹이던 그녀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있잖아. 난 너 X나 믿거든?”
“의외의 대답이네.”
“이게 진짜! 후…… 어쨌든, 아무리 들어도 네 말은 좀 에바잖아.”
대륙성과 차르 길드의 관계.
더 깊이는 중국과 러시아의 관계를 모르는 이들은 없었다.
애당초 갤럭시 아레나가 지구에 등장하기 전부터.
중국과 러시아는 우호적인 관계가 아니었던가?
한데.
“대륙성이 용족과 붙어먹고 러시아의 상위 플레이어를 암살하다니? 그게 말이 되는 소리냐?”
“너에게만 조금 수정해주자면. 대륙성이 아니라, 용족이 독단으로 벌인 일이야.”
쾅.
“X! 그게 그거지!”
테이블을 내리치며 벌떡 일어나는 고말숙.
이내 깊은 한숨을 내쉰 그녀는 앞머리를 슥 쓸어올렸다.
“여하튼. 말도 안 되는 개소리긴 한데…… 하아. 네가 하는 소리니까 일단 믿을게.”
“궁금해서 묻는 건데. 넌 내 뭘 보고 그렇게 믿는 거냐?”
“그건!”
고말숙이 말이 잠시 끊어진다.
시문을 바라보는 그녀의 눈동자는 답지 않게 떨림을 내비쳤으나 그뿐.
“……그런 게 있어.”
고말숙은 슬쩍 눈을 내리깔며 답하곤.
“여하튼 저 근돼새끼도 꺼졌으니, 나도 가보련다. 러시아 길거리 음식 지린다던데. 유정이랑 좀 조지고 다녀야겠어.”
설렁설렁 손을 흔들곤 방을 나섰다.
그런 고말숙을 말없이 바라보던 시문은.
“왜 저래?”
너무 낯선 그녀의 모습에 고개를 갸웃하더니.
‘뭐, 일단 이걸로 앞으로 차르 길드와 대륙성은 멀어질 테고…….’
시야 한쪽에 치워놓은 메시지창을 향했다.
“그래서, 보상은 정했습니까?”
혼자 남아 있는데도.
누군가와 대화하는 양, 태연히 말을 꺼내는 시문.
그의 앞으로.
[보상이 결정되었습니다.]
길드전 이후로 내내 침묵하던 갤럭시 아레나가 입을 열었다.
시문은 어디 꺼내 보라는 듯.
팔짱을 끼며 고개를 까딱였고.
[해당 길드전에서 일어난 일은 저희의 입장에서도 매우 유감스러운 일입니다.]
[참가자들과 피해자들에게 진심 어린 사과와 위로의 말씀을 건넵니다.]
[보상으로 주어지는 길드 보너스의 효력을 2배로 지급할 예정입니다.]
[또한 위로의 의미로 SSS급…….]
주르륵 떠오르는 메시지가 다 쓰이기도 전에.
“아아, 잠깐.”
짜증스럽게 손을 내저었다.
그도 그럴 것이.
“어째 사과는 바로 했다지만, 보상은 좀 아니지 않나요?”
가장 먼저 사과를 건네는 기본 상식은 지켜주었지만.
보상 부분이 영 허접한 것이다.
“길드전은 그쪽의 관리하에 이루어지는 이벤트성 아레나고. 정규 아레나가 시작되어도, 목숨은 잃지 않는 아레나 아닙니까?”
시문이 그것을 어떻게 알았는지에 대한 대답 대신.
[플레이어 김시문 님의 말씀이 맞습니다.]
갤럭시 아레나는 긍정을 표해왔다.
“전 제 목숨을 위협받았고, 사망자까지 수십이나 나온 상황입니다.”
시문은 헛웃음을 머금으며 메시지를 노려봤다.
“한데 보상이 고작 그겁니까? 보상을 위한 대책 회의를 한다면서요? 대체 무슨 회의를 한 겁니까?”
저돌적인 시문.
그러나 저돌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기에.
[김시문 님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저희의 불찰입니다. 죄송합니다.]
갤럭시 아레나는 고개를 숙일 따름이었고.
“됐고. 전혀 감을 못 잡으시는 거 같으니, 제가 직접 가이드라인을 정해드리죠.”
시문은 단호히 말했다.
“이번 길드전으로 얻은 길드 보너스를 3배로 올려주시고, 이번 일로 제가 소모한 아이템을 제대로 보상해주세요.”
[소모한 아이템이 무엇인지요?]
시문은 대답 대신.
메시지를 향해 오른손을 내밀었다.
[그건……!]
그의 오른손을 확인한 갤럭시 아레나는 잠식 경악을 내비치더니.
[죄송하지만, 해당 아이템은 저희 갤럭시 아레나에 등록되지 않은 아이템입니다.]
“그건 저도 잘 압니다.”
경계의 방직공이 건넸던 신물.
아레나가 아닌, 최우석 박사를 끌고 와 달라는 그의 개인적인 의뢰의 보상으로 받았던 만큼.
신물의 정보창은 존재하지 않았었다.
고로.
[잘 아시겠지만, 아레나 외적으로 얻은 물건에 대해선 저희가 해드릴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갤럭시 아레나와는 완전히 무관한 아이템.
하지만.
“저도 잘 압니다. 그러니까 말씀드린 거잖아요.”
시문은 입꼬리를 슬쩍 끌어올리며.
“전 그걸 돌려 달라한 적이 없어요. 단지 ‘제대로 보상’해 달라고 했을 뿐.”
또박또박.
특히나 ‘제대로 보상’해 달라는 부분을 강조해서 말할 뿐이었다.
이제야 시문이 뭘 말하는지 깨달은 것일까?
[……아시겠지만, 김시문 님이 말씀하신 그 아이템은 신물입니다.]
“저도 잘 압니다.”
[그것도 일회성으로 만들어진 소모성 신물입니다.]
“그것도 잘 압니다. 그래서요?”
태연하게 되묻는 시문.
“갤럭시 아레나 측의 실수로 그 소모성 신물을 사용했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잖아요?”
[하지만 이건…….]
“억지라고 말하지 마세요. 그건 그쪽이 부리는 거니까.”
이번에도 갤럭시 아레나의 메시지를 잘라 버리는 시문.
그는 드물게 정색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전 당신들 때문에 목숨을 잃을 뻔했습니다. 이미 목숨을 잃은 이들도 수십이고요. 아직도 사태 파악이 안 됩니까?”
[…….]
“거기다 이번 ‘길드전 내에서 일어난 일’은 최대한 함구해달라는 당신들의 부탁을 잘 들어주었죠. 그런데 이런 식으로 나오는 건 좀 아니지 않습니까?”
니콜라이에게도 ‘대륙성이 그의 형을 암살했을 거’라는 식으로 말을 남겼을 뿐.
‘길드전 내에서 벌어진 일에 대해선’ 입도 뻥끗하지 않은 시문이었다.
[…….]
시문의 따짐에 입을 다무는 갤럭시 아레나.
하나 그것이 단순한 침묵이 아닌, 해당 요구에 대한 내부적 조율임을 알고 있었기에.
시문은 별다른 재촉 없이 갤럭시 아레나의 침묵을 허락해 주었고.
[플레이어 김시문 님의 요구를 받아들이겠습니다.]
갤럭시 아레나는 곧 답을 들고 찾아왔다.
[해당 신물의 주인인 경계의 방직공과 같은 격의…….]
“어허. 이거 왜 이러시나?”
또다시 갤럭시 아레나의 말을 가로막는 시문.
“절 위로한다면서요. 합당하기만 하면 그건 위로 보상이 아니지 않나요?”
그는 짐짓 섭섭한 얼굴로 허공을 힐끗했고.
“더 주셔야죠. 격도 높이고, 개수도 늘리고.”
그에 호응하듯.
[성좌 검은 염소와 천마, 바알이 갤럭시 아레나를 향해 살기 어린 시선을 보냅니다.]
[성좌 오딘과 제우스, 라가 날카로운 눈초리로 갤럭시 아레나를 쏘아봅니다.]
시문의 다섯 성좌.
아니, 여섯 성좌가 눈에 불을 켰고.
[……김시문 님의 의견을 최대한 수용하겠으나, 저희 측에서 해드릴 수 있는 건 격의 상한뿐입니다.]
[성좌 검은 염소가 ‘이 새끼들이 진짜?’ 눈을 부릅뜹니다.]
[저, 정말입니다! 경계의 방직공이 건넨 소모성 신물은 최상급 중에서도 최상급. 저희로선 더 드리고 싶어도 불가능한 부분입니다.]
한층 더 성을 내는 검은 염소에 당혹을 표하는 갤럭시 아레나.
최상급 소모성 신물이 어떤 가치를 지니고 있는지는 시문 역시 잘 알았기에.
“좋습니다. 대신.”
안 되는 걸 갈구는 대신.
“어느 성좌의 신물이 될지 제가 선택할 수 있게 해주시죠. 그럼 제 성좌분들도 납득하실 겁니다.”
더 효율적인 방안을 내놓았고.
[물론입니다.]
갤럭시 아레나는 얼른 시문이 내민 손을 붙잡았다.
[보상 지급은 길드전의 보상 지급 때 일괄 처리됩니다. 어떤 성좌분의 신물로 하실지 정해주시기 바랍니다.]
갤럭시 아레나의 요구에.
“그건 보류해서 지급 부탁드립니다.”
싱긋 웃으며 답하는 시문.
의외의 대답이었던 것일까?
[……예?]
평소와 다르게.
갤럭시 아레나는 당황스러움이 물씬 묻어나는 메시지를 보냈고.
“말 그대롭니다. 격 높은 소모성 신물을 지급하시되, 누구의 신물이 될지는 보류해달라는 말입니다. 일종의 개봉 전의 랜덤 박스처럼 말이죠.”
시문은 다시 한번 요구 사항을 되짚어주었다.
[그게 무슨…….]
“불가능합니까?”
[불가능한 것은 아닙니다만.]
확답을 내놓는 갤럭시 아레나.
그에.
“그럼 그렇게 부탁드립니다.”
만족스럽게 고개를 까딱인 시문은.
[당신을 향한 여섯 성좌의 시선에 짙은 의문이 깃듭니다.]
눈앞으로 떠오르는 성좌들의 반응을 보곤.
“이런 게 새롭고 재밌잖아요? 필요할 때 맞춰서 쓸 수도 있고.”
장난꾸러기 같은 미소를 머금었다.
물론.
‘이러면 누가 됐던 최상급 신물을 조건 없이 얻을 수 있을 테니…… 성좌들이 내게 더 신경 쓰고 집중하겠지.’
나름 계산이 깔린 속내는 몰래 숨기고 말이다.
아니나 다를까.
[당신을 바라보는 여섯 성좌의 시선에 욕망이 깃듭니다.]
[여섯 성좌가 입맛을 다시며, 서로를 노려봅니다.]
상위 서열의 여섯 성좌는 아직 보상을 받지도 않았는데도.
서로 간의 눈치 싸움을 시작하고 있었다.
이어.
[그럼 이번 길드전에 대해 다시 한번 진심 어린 사과와 위로를 보내며, 저희는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작별을 고하는 갤럭시 아레나의 메시지가 떠오른다.
그러나.
“잠깐만요. 어디 가세요?”
[예?]
시문은 작별을 고하는 갤럭시 아레나의 발목을 붙잡곤 싱긋 웃으며 말했다.
“보상에 대한 이야기는 끝났으니, 이번 일의 원인인 에이션트 드래곤 대해서 정리해야죠?”
[…….]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건만.
갤럭시 아레나는 엿됐다는 느낌이 그득한 침묵을 풍겨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