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7화
207화. 길드전 (3)
음산한 숲속.
저벅.
그 속으로 50여 명의 무리가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으으…… 거미줄이 사방 천지잖아?”
“하필 밤그늘 거미 맵이 걸려선!”
“그깟 거미가 뭐가 무섭다고 그러냐?”
“징그럽잖아! 새꺄!”
온갖 인상을 찌푸리며, 짜증을 표하는 이들.
그에.
“다들 주둥이 다물어라!”
선두를 걸어나가던 근육질의 남성이 거친 노성을 토한다.
각진 턱으로 짙은 수염이 이어진 그는 한심한 눈으로 제 무리를 쏘아봤다.
“밤그늘 거미가 아무리 다이아도 기피하는 놈들이라곤 하나, 우린 러시아 최고의 길드. 차르의 유망주들이다.”
쿵.
쥐고 있던 거대한 철퇴로 바닥을 내려찍은 그는 당장 누구 하나 죽일 듯.
“세계가 지켜보는 앞이다. 계속 나약한 소리로 짖어대면, 이 니콜라이가 친히 머리통을 박살 내 주마.”
서슬 퍼런 눈으로 50여 명의 무리를 쏘아봤다.
전봇대 같은 철퇴의 손잡이를 만지작거리는 니콜라이.
그에 불만을 토하던 길드원들은 전부 합죽이 되었고.
“어휴! 이 X신들. 길드 망신은 다시켜요.”
“니콜라이. 네 손을 더럽힐 필요도 없어. 나한테 말만 해.”
“맞아! 내가 겁쟁이들은 싹 처리해 줄 테니까!”
상대적으로 실력이 뛰어난 이들은 니콜라이의 말에 동조하며 고함을 쳐댔다.
그런 길드원들을 슥 훑던 니콜라이의 시선이 최후방에 도달했고.
서슬 퍼렇던 그의 눈은 순식간에 독기가 빠져나갔다.
이유야 간단했다.
‘잘 들어라. 니콜라이.’
이번 길드전이 시작하기 전.
세계 연맹의 러시아 대표인 세르게이를 포함해.
‘플래티넘부에서 제일 약한 멤버 하나를 빼고, 세르게이 님께서 직접 뽑으신 인원이 들어갈 거다.’
그를 호위하던 차르 길드 최고의 랭커인 그의 형이 한 경고가 떠올랐으니까.
‘어떤 의문도, 불만도 표하지 마라. 특히 그분의 심기는 결코 거슬러선 안 돼!’
남자 중의 남자.
터프한 것으론 어디 가도 빠지지 않는 자신의 형이 그토록 겁에 질린 모습이라니?
‘대체 뭐 하는 자이길래. 형이 그렇게나 두려워하는 건지…….’
생전 처음 보는 형의 모습에 호기심이 치솟긴 했으나 그뿐.
‘뭔진 몰라도. 형이 헛소리나 할 사람은 아니니까.’
차르의 대표 랭커이자,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랭커인 형.
그가 그렇게 두려워하며, 경고해 줄 정도면 보통 존재는 아니리라.
“……그럼 다들 진형을 재정비해라. 바로 출발할 테니.”
최후방의 로브인을 힐끔한 니콜라이는 몸을 돌려, 다시 길드원들을 이끌었고.
그렇게 얼마간.
이 음습하고 거미줄이 가득한 숲을 헤치던 니콜라이의 움직임이 멈췄다.
꾸욱.
큼직한 철퇴를 쥔 그의 손가락에 힘이 들어갔고.
러시아 최고 길드의 유망주들답게.
스릉.
화르륵.
뒤따르던 길드원들은 별다른 신호가 없는데도.
무기를 빼어 들거나, 마법을 캐스팅했다.
“…….”
“…….”
음산하고 어두운 숲속으로 무거운 침묵이 감돈다.
하나 50여 명의 인원 중 누구도 쉽사리 입을 떼지 않았다.
이유야 간단했다.
일반인들의 귀엔 벌레 우는 소리 하나 들리지 않았지만.
사사사삭.
플래티넘 끝을 바라보는 유망주들의 귀에는 들려오는 것이다.
빠르고 많은.
그리고 날카로운 소리들이 말이다.
이내.
끼아악!
날카로운 울음과 함께 날아드는 무언가.
현 차르 길드의 유망주 중 최고답게.
“어딜!”
콰직.
니콜라이는 어둠 속에서 날아드는 무언가를 묵직한 철퇴로 가볍게 쳐냈다.
비명도 없이 바닥을 나뒹구는 무언가.
진득한 체액까지 흘리는 그것을 찡그린 눈으로 내려다본 니콜라이는.
“밤그늘 거미…….”
혐오감이 담긴 목소리로 읊조렸고.
그것을 시작으로.
“밤그늘 거미다!”
“놈들이 온다!”
“제기랄! 어떤 X신이 거미줄을 건든 거야!!”
고요했던 숲속은 순식간에 전투의 고성으로 들끓었다.
츄아악.
“아악!”
“모, 몸이……!”
어두운 숲속에서 쏟아지는 독액과 거미줄.
그리고 기다란 8개의 다리를 활짝 펼친 채.
끼리릭.
끼아아악.
녹니를 세우며 사방에서 덤벼드는 시커먼 줄무늬의 거대 거미들까지.
상황은 그야말로 난장판이었으나 잠시일 뿐.
“정신 차려라! 머저리들아!!”
쿠우웅!
철퇴를 내려찍으며.
“당장 원형진을 이뤄라! 탱커들은 외곽으로! 보조계들은 힐 말고 보호막과 해독 위주로 움직여! 마법계와 궁수들은 사방에다 불을 질러라!”
강력한 충격파로 위기의 길드원들을 구해낸 니콜라이의 명령에.
“방패부터 들어! 안 되면 몸으로라도 막는다!”
“배, 배리어!”
“큐어!”
“불길이여! 보이는 모든 것들을…….”
외곽의 탱커들을 중심으로 순식간에 대형을 이루는 차르의 유망주들.
과연 러시아 최고 길드라는 명성은 허위가 아니었는지.
진형을 이룬 그들은 빠르게 피해를 수복하고.
“놈들이 보인다!”
“불붙은 놈들부터 처리해!”
“아까의 복수다! 이 자식들아!”
“뒈졋!”
역으로 공격에 나서며 전세를 뒤집었다.
* * *
[과연 차르 길드 최고의 유망주 니콜라이입니다! 침착한 오더와 터프한 무력으로 길드원을 위험에서 지켜냈어요!]
[그뿐만 아니죠.]
마이클의 함성에 조나단은 진중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김시문의 마수 지배로 맵에 존재하는 모든 밤그늘 거미를 다 끌고 왔는데. 그걸 역으로 쓸어버리고 있습니다. 벌써 수가 반으로 줄었어요!]
[그러고 보니 그렇군요! 200여 마리가 넘던 밤그늘 거미들은 어느새 100마리 밑으로 줄어들고 있습니다!]
조나단과 마이클의 말대로.
진형을 갖춘 차르 길드의 기세는 실로 무시무시했다.
다이아들조차 기피하는 밤그늘 거미를 비등하다 못해, 역으로 죽여나가고 있다니?
플래티넘치고 상당한 수준이라 볼 수 있었다.
[더군다나 기습을 당하고 시작한 전투 아닙니까? 한데 사상자는 단 셋밖에 나오지 않았죠.]
[과연! 러시아 최고의 길드라 칭할 만합니다!]
연신 감탄을 표하는 조나단과 마이클.
그리고 이를 시청중인 시청자들까지.
차르 길드의 활약은 보는 이들 모두가 감탄했고.
“역시 차르 길드라 이건가.”
이는 현장에서 직관 중인 시문 역시 다르지 않았다.
‘러시아는 유럽과 함께 미국과 중국. 단 두 나라가 남기 전까지 버틴 몇 안 되는 나라 중 하나였지.’
그 저력은 당연하게도.
러시아 최고 길드인 차르 길드에 근간했다.
‘일단 플래티넘이 다이아급 마수를 상대로 사상자가 3명 밖에 없는 것도 그렇지만…….’
특히나 시문의 이목을 끄는 것은 탄탄한 원형진이 아닌.
“뒈져라! 망할 것들아!”
쿠웅!
원형진 밖에서 매섭게 철퇴를 휘두르며, 종횡무진하는 근육질의 남자.
니콜라이였다.
‘니콜라이 이바노프. 과연 후에 하이랭커가 될 인재답군.’
니콜라이 이바노프.
형 이반 이바노프와 함께 러시아를 지켰던 두 하이랭커 중 하나.
전생에선 러시아의 멸망과 함께, 형 이반 이바노프를 잃고 대륙성으로 망명했으나.
난민을 철저히 차별하는 대륙성에게 상당한 대접을 받은 실력자였다.
그리고 그 떡잎답게.
“크하하! 전부 으깨주마!”
니콜라이는 거대한 철퇴를 사방팔방으로 휘두르며.
다이아급 마수들을 박살 내고 있었다.
그때.
“야. 이대로 두고만 볼 거냐?”
시문의 곁으로 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고말숙이었다.
“네 거미들 다 죽어 나가잖아.”
전투를 보고 꽤 흥분한 것인지.
고말숙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조금 높아져 있었고.
OPG를 낀 그녀의 두손 역시 움켰다 펴지길 반복했다.
시문은 고개를 저었다.
“당연히 아니지. 저건 어디까지나 선발대. 그러니까 상대의 전력을 파악하는 용도에 불과해.”
“이왕이면 차르 길드가 지닌 조커 카드도 좀 털어보고 말이지?”
“맞아.”
고말숙은 새빨간 기운.
천살성의 그것이 희미하게 어린 눈으로 시문을 바라봤다.
“그래서 어떠냐? 이쯤 되면 다 본 거 같냐?”
“그런 거 같기는 한데…….”
긍정을 표하면서도 말끝을 흐리는 시문.
이유는 다름이 아니었다.
‘진욱 씨가 준 자료 이외에 전생의 기억에 기반해봐도, 지금 차르 길드의 전력은 딱 예상한 범주 내이긴 하지만…….’
분명 본인이 예상한 범주 내이건만.
뭔가 묘한 느낌이 들었다.
마안 때문에 활성화 되어 있는 왼쪽 눈.
오딘의 눈을 쿡쿡 쑤시는 느낌이었다.
심지어 사안까지 활성화시켰음에도.
‘왜 수상한 점이 전혀 보이질 않는 거지?’
50여 명의 차르 길드원들에게선 어떤 이상도 찾지 못했다.
그럼에도 섣불리 말숙이를 투입시키지 않는 것은 다름이 아니었다.
‘괜히 성삼이 아닌 우리를 한국 대표로 초청한 게 아닐 텐데?’
최근 들어 아무리 핫해졌다 한들.
규모로나 명성으로나.
심드라실 길드가 아레나 초기 때부터 창설된 성삼 길드에 비할 바는 아니었고.
시문 역시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한국의 대표로 심드라실 길드가 뽑힌 이유는 무엇이겠나?
심지어 길드전에 참가 가능한 길드원은 5명밖에 되지 않는데 말이다.
‘대륙성이나 용족이 우릴 한국 대표로 참가시키려고 어떻게든 수를 썼다는 건데…….’
단판으로 이루어지는 플래티넘부.
그리고 심드라실 길드가 러시아의 차르 길드와 맞붙는 대진표로 볼 때.
분명 이번 길드전에서 어떤 수작을 부려올 것이라 예상하고 있던 시문이었다.
중국과 러시아만큼이나.
대륙성과 차르 길드의 관계는 깊었으니까 말이다.
그때.
“음?”
차르 길드원들을 훑던 시문의 눈.
정확히는 오딘의 눈에 웬 로브인이 들어왔다.
‘로브인?’
모두가 길드 마크가 찍힌 방어구를 걸치고 있는 가운데.
뜬금없이 고급스러운 로브만을 뒤집어쓰고 있는 존재.
무엇보다.
‘저렇게 튀는 사람을 왜 지금까지 알아차리지 못한 거지?’
오딘의 눈을 활성화한 시문이다.
‘진욱 씨의 은신 정도가 아니고서야, 내 감각을 속일 순 없을 텐데?’
다이아 최상위급의 은신이 아니고서야.
지금의 감각을 속일 순 없는 노릇.
그렇다는 건.
‘저 로브인이 최소 다이아 최상위, 혹은 그 이상의 존재라는 말인데…….’
어떻게 그만한 강자가 플래티넘부 길드전에 참가할 수 있는 걸까?
에 대한 의문은 쉽게 예측할 수 있었다.
‘초기 차르 길드를 기습할 때도 그렇고. 저 로브인은 아무런 대응도 하지 않았지.’
그 말은 즉.
‘본격적으로 힘을 쓰면 무조건 걸릴 수밖에 없는 상황인가 보군.’
상황이 빠르게 파악되자.
“이거 재밌게 돌아가는데?”
시문의 입꼬리가 슬쩍 올라갔다.
그에.
“왜? 드디어 나설 마음이 들었냐?”
고말숙은 환한 얼굴로 물어왔고.
시문은 찬찬히 고개를 끄덕였다.
“계속 지켜는 봐야겠지만, 어지간해선 못 움직일 테니. 이쪽에서 먼저 움직이는 게 맞겠어.”
“에? 갑자기 뭔 소리야?”
갑작스런 시문의 말에 눈을 끔뻑이는 고말숙.
그에 시문은 대답 대신.
“가. 대신 니콜라이부터 처리해야 한다?”
전장으로 턱짓하며 나서는 것을 허락했고.
“캬핫! 걱정 말라고. X발! 니콜라인지 뭔지 넌 뒤졌다.”
고말숙은 광소를 터뜨리곤, 총알같이 전장으로 달려들었다.
그러자.
“미, 미스 X발이다!”
“으으! 저 미친년을 또 만나게 되다니!”
“망할! 아직 거미들 다 처리도 못 했는데!”
“어디?! 어디야?!”
고말숙의 악명을 잘 아는지.
차르 길드의 유망주들은 질겁을 하며, 고말숙에게 화력을 돌렸으나.
“미스 X발은 내가 맡겠다! 암살계들만 빠져서 김시문을 수색해라! 놈이 마법을 쓰기 전에 막아야 한다!”
고말숙을 가로막는 니콜라이의 명령에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다.
저벅.
190이 가볍게 넘는 근육질의 체격이 고말숙의 앞을 가로막는다.
“미스 X발. 명성은 익히 들었다.”
니콜라이는 철퇴를 움켜쥔 채.
다소 근엄해진 얼굴로 껄렁거리는 고말숙을 노려봤다.
“이번 플래티넘 데뷔전에서 우승을 했다지? 대단한 기록이다만, 결국 갓 플래티넘에 오른 애송이일 뿐. 이 니콜라이의…….”
“X발. 덩치는 산만 한 게 혀가 왜 이렇게 길어?”
단칼에 니콜라이의 말을 잘라내는 고말숙.
그에 니콜라이가 성을 토하기도 전에.
“걍 뒈져 새끼야.”
천마신공(天魔神功).
격(擊) 무쌍참(無雙斬).
천마신공 5성의 초식.
무쌍참을 냅다 박아 버리는 고말숙.
슈아아악!
초승달 형태의 묵색 마기가 순식간에 허공을 가르며 날아든다.
하나.
“과연 소문대로 미친년이구나!”
러시아 최고의 유망주라는 타이틀은 허명이 아닌 것일까?
“말살의 일격!”
흡사 강기를 연상시킬 만큼.
우웅!
강맹한 오러를 휘감은 니콜라이의 철퇴가 무쌍패를 맞이했고.
까가가가각.
날카로운 마찰음과 함께.
퍼석.
고말숙의 무쌍패를 파쇄해버리는 니콜라이.
물론 충격이 없었던 것은 아닌지.
“윽.”
근육질의 몸과 함께, 철퇴에 어린 강맹한 오러가 휘청거렸으나.
이는 잠시일 뿐.
“과연 이름을 떨칠 만한 기술이구나. 미스 X발.”
금세 제 페이스를 회복한 그는 감탄스러운 얼굴로 고말숙을 바라봤고.
“하! 다이아쯤 되야 막을 줄 알았는데. 플래가 이걸 막았어?”
“난 차르 길드 최고의 유망주다. 이미 다이아와의 결투에서도 여러 번 승리도 거둔 몸이란 말이지.”
“하긴. 그렇겠네.”
기술이 막혔음에도 고말숙은 짜증이 아닌, 흥미로 두 눈을 반짝였다.
“그럼 오랜만에…….”
이내.
스으으으.
전신에 시뻘건 기운이 스멀스멀 흘러나오는 고말숙.
“전력으로 들이박아도 되겠어.”
그 말을 끝으로.
파앙!
고말숙이 내디딘 걸음에선 파공음이 터져 나왔다.
* * *
콰아앙.
강렬한 폭음이 터져 나온다.
그 근원지.
‘역시 니콜라이. 대단하네.’
니콜라이와 고말숙의 전투를 본 시문은 작게 감탄을 흘렸다.
‘지금의 말숙이와 동수를 이루다니.’
자신의 케어를 집중적으로 받은 고말숙.
당연히 전생보다 배는 빠른 성장을 겪은 그녀이건만.
러시아 최고 유망주답게.
니콜라이는 한치의 밀림도 없이, 그런 고말숙과 동수를 이루고 있었다.
물론.
‘오러를 죄다 털어내는 걸 보아, 뒤로 갈수록 말숙이에게 밀리겠지만.’
결과적으론 말숙이가 승리하겠지만 말이다.
그런 시문의 귓가로.
“거의 다 처리했어!”
“이쪽도!”
“방심하지 말고 궁수들도 탐색을 도와! 서둘러 김시문을 찾아야 한다!”
차르 길드 유망주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으음. 밤그늘 거미를 거의 다 처리했네.”
그쪽을 돌아본 시문은 찬찬히 고개를 끄덕이며.
“그럼 다시 리필해줘야겠지.”
왼쪽 팔목에 장착된 파라켈수스의 실린더를 매만졌다.
‘이번엔 두 배로 말이야.’
실린더 끝으로 맺히는 복잡한 문양의 검은 연성진.
저장 가능한 연성진이 4개로 늘어난 덕분에.
지이잉.
쏘아진 4개의 검은 연성진들은 순식간에 원형진을 이룬 차르 길드의 사방을 점했고.
끼기긱!
“미, 미친!”
“아니 또 나와?!”
“말도 안 돼! 저게 다 몇 마리야?!”
각각 100마리씩.
총 400마리에 달하는 밤그늘 거미들을 쏟아내는 검은 연성진들.
물론 200마리의 밤그늘 거미들을 고작 사망자 3명으로 처리했다곤 하나.
“나 이제 마나가 절반밖에 없는데!”
“나도 마찬가지야!”
“내 성력도 얼마 안 남았다고!”
다이아급 마수들과 격전을 치른 만큼.
아무리 차르 길드의 유망주들이라 한들, 온전한 컨디션이 아니었다.
한데 그 두 배인 400마리라니?
그러나 그들의 악몽은 이제 시작이었다.
휘릭.
시문의 인벤토리에서 던져지는 백은의 금속 덩어리들.
이어.
따악.
시문이 손가락을 튕기자, 백은의 금속들은 슬라임처럼 꿈틀거리더니.
그그극.
“가라.”
약 50구의 미스릴 골렘이 되어, 원형진을 이룬 차르 길드를 향해 진격했다.
“미스릴 골렘!”
“뭐?! 골렘이 여길 왜 와!”
“김시문이다! 김시문이 주변에 있는 거야!”
심지어.
그그극.
바닥에 연성진을 그리더니.
후두두둑!
파파팍!
일대의 바위나 바닥 등을 연성하여, 원거리 공격까지 감행하는 미스릴 골렘들.
이는 400마리의 밤그늘 거미를 조우한 차르 길드의 유망주들에겐 재앙이나 다름없었다.
“세상에!”
“이것들 마법까지 쓰잖아!”
“무슨 골렘이 마법을 써? 미친 거 아니냐?!”
“니, 니콜라이 님!!”
호기롭던 아까의 기세는 어디로 갔는지.
순식간에 절망으로 물드는 차르 길드의 유망주들.
그러나 정작 시문의 시선은 그들이 아닌.
‘이래도 안 움직일래?’
최후방에 소리소문없이 자리한 로브인을 향했다.
자신의 감각을 속일 만큼 고도의 은신 능력을 지녔음에도.
“하. 지독하네.”
여전히 꼼짝도 하지 않는 로브인에 시문은 헛웃음을 머금었다.
‘아까부터 내 쪽에 시선이 고정된 걸 보면. 날 노리는 게 확실하긴 한데 말이지.’
오딘의 눈에도 잡히지 않는 실력자다.
그에 관련 정보도 없는 만큼.
최대한 저쪽에서 먼저 움직이게 하는 편이 좋았다.
고로.
‘저쪽에서 움직일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어야겠지.’
저 길드원들이 전멸해 버리면 자동으로 길드전은 탈락.
고로 자신에게 손쓸 기회가 날아가 버릴 터였다.
시문은 한층 깊어진 눈으로 무려 450여 마리의 소환수들에게.
“히, 힐러! 나 힐 좀!”
“보호막이 깨진다! 여기 좀 봐줘!”
“침착해라! 길드에서 받았던 방어 아티팩트와 스크롤을 전부 털어라!”
“마법계와 궁수들은 공격용 아티팩트와 스크롤을 전부 사용해라!”
“니콜라이가 지원올 때까지 최대한 버텨야 한다!”
점차 대항해 나가는 차르 길드의 유망주들을 바라봤다.
과연 러시아 최고 길드답게.
화르르륵!
쩌저적.
최소 A급 이상의 아티팩트로 스크롤을 쏟아부어 저항하는 유망주들.
물론 저래봐야.
‘내가 직접 나서면 금방 무너지겠지만…….’
그렇게 되면 저 의문의 로브인이 어떤 수작을 부려올지 모를 일이었다.
딱히 두려운 것은 아니었으나.
‘여긴 나 말고 말숙이도 있으니. 신중하게 움직이는 편이 좋겠지.’
그렇다면.
‘마침 전에 성좌와 했던 약속도 있으니까. 이참에 방향 좀 새롭게 가보지 뭐.’
씩 웃으며 손가락을 튕기는 시문.
그의 앞으로.
[요구치에 맞는 연성을 이루기에는 연성력이 부족합니다.]
[현자의 돌이 부족한 등가교환을 성립시키기 위해, 업적 포인트 500점을 요구합니다.]
[받아들이시겠습니까? (예 / 아니오)]
익숙한 메시지창이 떠올랐고.
‘500점? 기억이랑 다르게 소모성인가 보네.’
어깨를 으쓱한 시문은 예를 택했다.
그러자.
우웅.
치환된 업적 포인트의 기운이 시문의 손끝으로 모여든다.
이어.
따악.
시문이 손가락을 튕기자.
여명의 그것처럼 눈부신 백금의 햇빛과 함께.
쿠우웅!
그의 뒤편으로 거대한 무언가가 내리꽂혔고.
[성좌 이시스가 갑작스런 엔네아드의 방첨탑 등장에 관심을 보입니다.]
[성좌 네프티스가 갑작스런 엔네아드의 방첨탑…….]
[성좌 세트가 갑작스런…….]
엔네아드의 성좌들의 반응이 주르륵 떠올랐다.
물론.
[성좌 라가 ‘드디어 제 차례군요! (징하게도 오래 기다렸다고! 나도 일등석으로 간드앗!!)’ 환호성을 내지릅니다.]
드디어 물음표의 이름을 벗어던진 방첨탑의 주인도 함께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