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6화
206화. 길드전 (2)
러시아의 수도인 모스크바.
세계에서는 4번째로 큰 도시이자, 유럽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도시인 이곳은.
“자자! 줄들 서세요!”
“경기장은 이쪽인가요?”
“야! 거기 새치기하지 마! 패버리기 전에!”
“그 콩만 한 주먹으로? 쳐봐 이 새끼야!”
길드전을 관람하기 위한 관람객들과 현지인들.
“블린 맛보고 가세요! 러시아에서 가장 인기 많은 간식입니다!”
“샤우르마 팝니다!”
“갓 구워 낸 피로시키 드셔보세요! 내부에 들어가는 소는 취향껏 고르시면 됩니다!”
음식, 잡화를 포함한 온갖 상인들이 몰려들어.
올림픽 이후, 모처럼 수많은 사람으로 북적였다.
그리고.
이 모든 광경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모스크바 최대의 마천루 밀집 지역.
국제 비즈니스 센터의 원 타워 최상층에선.
“흐음…….”
해당 층에 걸맞은 위치의 사내.
“흑룡녀. 이것까진 좀 너무한 부탁이지 않나 싶소만.”
세계 연맹의 러시아 대표인 세르게이는 다소 불편한 얼굴로 미간을 찌푸렸다.
무리도 아니었다.
“당신의 말대로 한국 대표로 성삼이 아닌, 심드라실 길드를 참가시키지 않았소? 내 생색내는 것은 아니나, 분명 쉽지 않은 일이었음을 말해두겠소.”
시커먼 어둠을 연상시키듯.
시리도록 새까만 머리칼과 눈동자를 지닌 흑룡녀라는 여성의 부탁 때문이었다.
그녀 역시 세르게이의 불만을 잘 알고 있는지.
“물론이죠.”
찬찬히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성삼은 명실상부 한국 최대 규모의 길드. 그들이 아닌, 심드라실 길드를 초청하는 데 많은 힘을 쓰셨다는 건 잘 안답니다?”
검성의 길드라고도 불리는 심드라실 길드.
검성과 성녀, 밤사냥꾼 등.
한국의 핫한 멤버과 더불어, 성장 버프로 그 유명세가 하늘을 찌르게 되었으나.
근본적으로 길드라는 단체를 이루기엔 턱없이 부족한 구성원임을 그녀도 모르지 않았다.
그렇기에 심드라실 길드를 한국의 대표로 참가시키기 위해선.
“연맹의 대표들을 설득시키기 위해, 내 얼마나 많은 것을 투자했는지 아시오?”
“아무렴요.”
그 목적성이나 타당성부터 로비까지.
정말 많은 것을 투자해야 한다는 것 또한 잘 알고 있었다.
“제 부탁 때문에. 그토록 싫어하는 미국의 대표에게도 친히 고개를 숙이셨음을 저도 모르지 않아요.”
다 안다는 듯 웃음을 흘리는 흑룡녀.
그에 세르게이의 인상은 한층 더 일그러졌다.
“그걸 아는데도 이런 부탁을 또 한다니. 말과 행동이 영 다르지 않소?”
“어머. 세르게이 대표님. 너무 섭섭해하지 마셔요. 우린 그간의 정이 있잖아요?”
붉은색에 고급스러운 문양이 새겨진 치파오.
그 밑단 사이로 새하얀 허벅지를 슬쩍 드러낸 흑룡녀는 고혹적인 미소를 띠며.
세르게이를 향해 한 걸음 다가갔다.
그에 세르게이의 얼굴이 삽시간 헤벌쭉 풀렸으나 그뿐.
“지난 심드라실의 성장 버프 건에서. 우리 위 대표님을 배신하셨잖아요? 이 정도 요구는 할 수 있다고 보는데요?”
“그, 그건!”
이어지는 흑룡녀의 말에 금세 사색으로 물들었다.
하나.
뒤편에 앉아 있는 무리를 힐끔한 그는 입술을 질끈 깨물며 소리쳤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지 않소? 그때 동의하지 않았다면. 나까지 위험했을 텐데!”
“그걸 질책하는 게 아니에요.”
그러나 흑룡녀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자기 자신은 모두가 소중하죠. 단지 배신은 배신이니, 우리가 다시 화합하기 위한 정성을 보여달라는 거죠.”
되려 능글맞은 웃음으로 대꾸할 따름이었다.
그에.
“개소리! 정성은 이미 심드라실 길드를 참가시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보였소!”
세르게이는 한층 더 언성을 높이며 따지고 들었다.
무리도 아니었다.
아무리 세계 연맹의 대표라 해도, 결국 러시아 최고 길드를 뒷배로 앉은 자리.
한데 전 세계의 최고 길드들이 참가하는 이벤트 아레나를.
“이 이상의 개입은 내 자리가 위험할 수 있는 행동이란 말이오!”
일개의 개인이 계속 개입하기란 무척이나 위험한 행동이었으니까.
그렇게 흥분으로 들끓던 세르게이의 입꼬리가.
“그리고 말이오.”
갑자기 비죽 올라간다.
“그때의 안건을 제시한 건 위 대표이지 않소? 그럼 이는 곧 대륙성의 뜻이라는 말인데…….”
순식간의 그의 얼굴 전체로 퍼져나가는 비소.
“애당초 그쪽의 실수로 벌어진 일을, 내가 이리 도와주는 것만으로 고마워해야 할 일 아니오? 그쪽에서 정성을 논할 입장이 아닐 텐데?”
세르게이의 비웃음에 새까만 여성.
“하아…….”
흑룡녀는 깊은 한숨을 쉬며 앞머리를 슥 쓸어올렸다.
“그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긴 하죠. 정말 멍청한 짓거리였으니까.”
그녀의 모습에.
“흠흠! 하지만.”
침을 꿀꺽 삼킨 세르게이는 대놓고.
“그간 우리와 그쪽의 관계도 있으니. 내가 모험을 걸 만한 대가를 치러준다면야…… 생각해 볼 수도 있소만.”
흑룡녀의 전신을 훑으며 묘한 어조로 읊조렸고.
그 시선에 담긴 음욕을 읽어 낸 흑룡녀는.
“참나, 어쩜 이놈의 매력은 종족을 가리지 않는다니까.”
피식 웃음을 흘리며 팔짱을 꼈다.
어찌 보면 제 흉부를 더 과시하려는 모습으로 보일 수도 있었으나.
그녀를 아는 이들이라면.
묘한 살기로 팔꿈치 끝을 톡톡 두드리는 그녀의 손가락을 보곤 극도로 긴장하리라.
그러나 그녀가 어떤 행동을 취하기도 전에.
“하! 기가 차는군.”
흑룡녀의 뒤편에 서 있던 로브인.
목소리로 보아, 여성으로 짐작되는 로브인은 짧은 코웃음을 내쉬었다.
그에 세르게이가 어떤 불쾌감을 토할 틈도 없이.
“으아아악!”
흑룡녀를 훑던 세르게이의 육신이 허공을 날아.
쿠웅!
뒤편의 벽으로 처박혔다.
“…….”
“…….”
짧은 침묵이 고급스러운 방안을 맴돈다.
이내.
“저년이!”
“대륙성! 너희가 드디어 미쳤구나!”
“감히 러시아의 대표를!”
세르게이의 뒤편에 서 있던 무리.
러시아 최고 길드인 차르의 길드원들은 저마다 무기를 빼어 들며, 짙은 살기를 뿜어냈다.
하나같이 다이아 최상급.
혹은 랭커라도 되는 것일까?
화아아아!
그들의 내뿜는 살기는 순식간에 공간을 점하며 방안 전체로 뻗어나갔고.
그 여파로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방 안의 일부가 일렁거리기까지 했다.
일반인이라면 숨도 제대로 못 쉴 살기였건만.
“정말이지.”
흑룡녀는 태연하게 고개를 저으며, 이 사태의 원인인 로브인을 돌아봤고.
“무슨 일이 일어나든. 나서지 마시라니까요.”
“아무리 데피나, 너의 부탁이라도 이건 참을 수가 없더구나.”
로브의 여성 역시 살기의 영향을 받지 않는 것일까?
“최상위 종족도 아니고. 고작 인간 수컷 따위에게 네가, 저런 추잡스러운 번식 구애를 받아야 한다니.”
로브의 여성은 차르의 길드원들에겐 눈길도 주지 않고.
흑룡녀를 바라볼 뿐이었다.
“어머, 방금 세르게이 님의 그건 번식 구애가 아니랍니다?”
“번식 구애가 아니면 뭐란 말이냐?”
“으음. 뭐랄까. 그저 1차원적인 성욕이랄까요?”
“그게 그 말 아니더냐?”
“오호호! 개념이 좀 달라요. 많은 이들이 단순 번식을 위해서만 성욕을 불태우지 않으니까요.”
고음으로 웃음을 터뜨린 데피나.
그녀의 말에 로브의 여성은 바닥으로 쓰러져, 경련 중인 세르게이를 바라보며 짜증스레 샐쭉였다.
“이해가 가지 않는군. 번식할 것도 아닌데. 왜 성욕에 감정을 낭비한단 말이냐?”
“그건…… 하아. 이런 말은 실례겠지만, 왜 에트라 님이 에이션트가 될 때까지 짝이 없는지 알 거 같네요.”
“흥. 그깟 짝 따위. 애당초 우리의 태생으로 짝을 찾는 것 자체가, 본인의 나약함을 증명하는 것이다.”
코웃음을 치는 로브의 여성.
에트라의 근엄한 목소리에 데피나는 뭐라 입술을 움직였으나 그뿐.
‘저러니 만 년이 넘도록 드래곤은커녕, 수컷 용족 한 번을 못 만나지.’
상대가 에이션트 드래곤임을 상기한 그녀는 간신히 목구멍까지 올라온 말을 집어삼켰다.
그리고 자신들의 살기 속에서도.
“저, 저것들이!”
“감히 우릴 무시해!!”
태연하게 말을 주고받는 두 여성의 행태에 분노한 차르의 길드원들은.
“망할 계집들!”
“사지를 찢어주마!”
우웅.
각자의 무기에 다이아의 상징인 강맹한 오러.
강기를 두르며 곧장 달려들었다.
정확히는.
“벌레 새끼들이 감히.”
달려들려고 했다.
자신들의 살기와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강대한.
쿠그그그그그!
무형의 무언가가 그들을 짓누르기 전까지 말이다.
쿵.
털썩!
덤벼들던 차르의 길드원들이 일제히 바닥으로 무릎을 처박는다.
그들은 감히 비명조차 내지르지 못한 채.
“잠자코 있어 주었더니, 네깟 쓰레기들이 뭐라도 된 줄 아나 보구나.”
이 무시무시한 기세의 여파로 로브가 벗겨진 여성.
파충류의 그것처럼 길게 찢어진 그녀의 눈을 그저 바라만 보았다.
그에.
“꺼, 꺼어억!”
차르의 길드원들 뒤편에서 자지러지는 숨소리가 들려온다.
바닥을 나뒹굴던 세르게이였다.
흰 거품마저 보글보글 올라오는 그의 모습에.
“에트라 님? 피어 좀 거두어 주시죠. 저러다 죽어요.”
흑룡녀, 데피나는 녹색의 머리칼을 흩날리는 에트라를 힐끔했고.
“쯧.”
에트라는 짧게 혀를 차며.
“이깟 벌레들이 뭐라고. 이 몸이 이리도 신경을 써야 하는 것인지…….”
방 안을 짓누르던 피어를 거두었다.
그러자.
“커, 커헉!”
“끄으으!”
숨통이 트인 것인지.
무릎을 꿇었던 차르의 길드원들이 거친 신음을 토하며 바닥을 나뒹군다.
그들 사이를 유유히 걸어 나가는 데피나.
그녀는 숨이 멎을 듯 헐떡이는 세르게이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리커버리.”
우웅.
그녀의 손에서 옅은 녹색의 빛이 발한다.
그러자.
“허, 허억! 헉!”
급속도로 상태가 호전되는 세르게이.
이내.
“이, 이게……!”
몸을 일으킨 세르게이는 덜덜 떨리는 눈으로 데피나를 바라봤다.
그녀는 고혹적인 미소로 물었다.
“목숨을 구해드렸으니. 제 부탁에 걸맞은 성의를 보였다고 생각하는데…… 그렇죠?”
“무, 무, 물론입니다!!”
세르게이는 목뼈가 부서질 정도로 고개를 끄덕여댔다.
데피나의 붉은 입가가 만족스럽게 올라간다.
“후후. 그럼 차르의 플래티넘부 참가인원으로…….”
그녀는 몹시도 불만스러운 얼굴의 에트라를 힐끔하곤.
“우리 유망주님을 꼭 참석시켜 주셔야 해요? 아, 저분의 실력에 대해선 걱정 마시고.”
한쪽 눈을 찡긋했다.
* * *
[아! 발텐베르크가 경기를 압살합니다! 정말 강력하군요!]
[당연하죠. 전투계의 레오니 볼프와 마법계의 파우스트 발텐베르크! 두 최고 유망주의 조합부터가 완벽하지 않습니까?]
[그렇네요! 전투계와 마법계의 조합은 근본 중 근본이니까요!]
열띤 목소리로 길드전을 중계 중인 마이클과 조나단.
그런 화면을 보던 청아한 미녀.
“오라버니. 정말 괜찮으시겠어요?”
이유정은 다소 불안한 눈으로 시문을 돌아봤다.
무리도 아니었다.
현재 진행 중인 길드전 플래티넘부의 경기는.
“단 두 명으로 길드전 승리는 많이 힘드실 텐데…….”
단둘이서 해낼 수 있을 만큼, 쉬운 아레나가 아니었으니까.
하나.
“유정아. 너 시문 님 못 믿냐?”
곁에 있던 밤사냥꾼.
박진욱은 별걱정을 다한다는 얼굴로 물었고.
“선배님. 그런 뜻이 아닌 거 아시잖아요.”
이유정은 곧바로 고개를 저었다.
“길드전은 플래티넘 데뷔전이나 국가대항전과는 차원이 다른 거 아시면서 그러세요?”
국대를 뽑는 국가대항전조차도 길드전에 비하면 한 수 아래로 친다.
당연했다.
“하긴, 같은 길드 소속들끼리 붙는 건데. 팀워크 수준부터 남다르긴 하지. 합격진도 더러 나올 테고.”
플래티넘 데뷔전이나 국가대항전이나.
같은 길드가 아닌, 서로 다른 길드의 플레이어들이 뽑히는 경우가 잦았고.
당연히 개개인의 스펙을 떠나, 기본적인 팀워크가 많이 부족했다.
실제로 국가대항전 같은 경우엔 국대 선발 이후.
합숙까지 이어나가지 않던가?
고개를 끄덕이던 박진욱은 이유정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그래도 시문 님 아니냐. 막말로 나도 승리를 장담할 수가 없는 분인데. 설마 패배하실까?”
“패배 따위야 상관없어요. 문제는 통각이죠. 길드전은 소정규처럼 통각을 100% 느끼잖아요.”
일반적인 아레나들과 달리.
길드전은 목숨을 건 소정규처럼 현실 그대로의 통각을 자랑했고.
덕분에.
“그 후유증을 겪는 사람들도 더러 나오는 마당에, 혹여나 두 사람이 그런 일이라도 겪었다간!”
그로 인한 후유증.
심하겐 쇼크사하는 이들도 가끔 나오긴 했다.
다양하고 전략적인 전투가 펼쳐지는 만큼, 겪는 고통의 수준도 다양했으니까 말이다.
그런 최악의 경우를 상상해서일까?
우직!
이유정이 쥐고 있던 리모컨이 압축기에 들어간 듯, 단숨에 바스러진다.
그에 박진욱은 움찔하며 시선을 슬쩍 돌렸고.
“유정아, 너무 걱정하지 마.”
시문은 부드럽게 웃으며, 걱정에 찬 동생을 달래주었다.
“난 상대가 어떤 길드든 이길 자신이 있어. 그리고 너도 알잖아. 길드전은 최소 1승은 거둬야 의미가 있는 거.”
거기다.
‘길드전 보상은 절대 놓칠 수 없지.’
길드전의 보상.
길드 관련 옵션들을 공짜로 성장시켜주는 그것은, 단순히 길드의 이름을 드높이려 참가하려는 이들과 다르게.
‘업적 포인트 세이브가 얼만데.’
시문에겐 아주 철저한 업적 포인트 세이브로 다가왔다.
고로 무조건 보상권에 들어가는 최소 1승은 반드시 거두어야 하는 것이다.
이유정은 불안감이 가시지 않은 얼굴로 답했다.
“그건 저도 알지만…….”
“결정적으로. 플래티넘인 우리가 1승 따내는 게 여러모로 승률이 높아. 그래서 이번에 시혁이도 데려오지 않은 거잖아.”
시문의 다독임에.
“……그렇죠.”
이유정은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한국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두 랭커인 김시혁과 이유정.
심지어 랭커에 오름에도 여전히 상승세를 유지하는 만큼.
두 사람의 수준은 세계 탑급이었고, 밤사냥꾼 박진욱 역시 다이아 최상위권의 네임드였으나 그뿐.
“너나 시혁이, 그리고 진욱 씨를 무시하는 건 아니지만. 아무리 세 사람이 강해도, 본 길드전에서 이기는 건 무리야.”
단 세 사람으로 본 길드전에서의 승리는 무리였다.
일단 길드원의 인원수부터 밀리는 것도 있지만.
“성장 버프 대여 인원을 제외하면. 우리 측 랭커 인원은 단 둘뿐이니까.”
가장 중요한 전력인 랭커의 숫자부터 밀리지 않는가?
아무리 랭커 간의 격차가 있다 한들, 결국 랭커는 랭커.
1대1이면 모르겠으나.
1대 다의 전투에선 무조건적으로 불리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나랑 말숙이가 승리를 챙기는 게 현실적이야.”
차라리 랭커같은 괴물들이 없는.
그리고 현 플래티넘권을 초월한 시문이 있는 플래티넘부가 훨씬 승리를 따내기 좋았다.
“그래. 이놈이랑 나 믿고. 넌 그냥 편하게 항복 때리고 쉬어.”
옆에 가만있던 고말숙까지 말을 보태자.
“응, 믿을게. 두 사람 다.”
이유정은 그제야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때마침.
“곧 심드라실의 플래티넘부 경기 시작입니다! 선수들은 준비해주십시오!”
관계자가 길드전의 시작을 알려왔다.
* * *
휘이이이.
서늘한 바람이 분다.
[길드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종목은 ‘디펜스’이고, 지역은 ‘밤그늘거미 둥지’입니다.]
[제한 시간 동안 목표 지역을 방어하거나, 모든 적을 처치하십시오.]
[제한 시간 29:59]
앞으로 주르륵 떠오르는 메시지.
“밤그늘거미 둥지라…….”
그를 본 시문은 작게 읊조리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나무, 바위와 같은 거대한 물체들을 제외하곤.
모두가 회백색의 거미줄이 칭칭 감겨 있는 광경.
심지어.
“X발. 더럽게 어둡네.”
시간까지 밤인 터라.
그늘거미 둥지는 그 이름 그대로 어둑한 지형을 자랑했다.
투덜대는 고말숙을 보며 피식 웃은 시문은 막아야 할 지역을 확인했다.
“우리가 막아야 하는 곳이 저기구나.”
멀지 않은 곳에 자리한 둥근 윤곽선.
땅굴, 혹은 구멍으로 보이는 그곳은 성인 남성 두엇 정도가 드나들 수 있을 정도의 크기였다.
고말숙 역시 그곳을 확인하곤 물었다.
“그래서. 이제 어쩔 거야?”
“뭐? 전략?”
“당연하지. 밤그늘 거미는 나도 들어본 적 있는 새끼들이라고.”
거미를 싫어하는 것인지.
아니면 들었다는 그 소문 때문인 것인지.
“저거 다이아들도 거르는 미친 몬스터들이라메? 거미줄은 강기 아니면 쉽게 잘리지도 않고, 독도 아주 지X맞다고.”
답지 않게 몸을 파르르 떨며, 짙은 혐오감을 표출하는 고말숙.
그에.
‘맞아. 말숙이는 거미나 곤충 같은 부류를 싫어했었지.’
전생의 기억이 떠오른 시문은 피식 웃음을 흘렸다.
‘인섹터가 등장하는 아웃브레이크는 근처에도 가지 않았으니까.’
걸걸한 성격과 다른 의외의 모습.
갑자기 시문이 실실 웃자, 고말숙의 매력적인 눈매가 한층 더 치켜올라갔다.
“갑자기 왜 쪼개?”
그에.
“아무것도 아니야.”
얼른 고개를 저은 시문은.
저벅.
목표 지역으로 걸음을 옮기며 답했다.
이내.
“근데 말숙아. 그렇게 질색하는 걸 보니, 이건 모르는구나?”
“뭐가?”
“밤그늘 거미의 근본이…….”
시문은 거미줄이 사방에 늘어진 숲을 바라봤다.
“마수라는 거.”
동시에.
키이잉.
날카로운 이명이 그의 왼쪽 눈에서 흘러나온다.
정확히는 오딘의 눈에 합쳐진 레메게톤.
즉, 마안이라고 해야겠지.
이어.
키리릭!
키긱!
철판을 긁는 듯한 날카로운 울음소리와 함께.
“미, 미친!”
수십.
수백여 개의 붉은 안광이 어둑한 숲속을 비추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