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3화
203화. 정령과 용족 (2)
갑작스레 우르르 쏟아지는 온갖 신계와 성좌들의 시선.
이상할 것도 없었다.
예견도 없이 새로운 용종이 탄생하지 않았나?
하나.
[성좌 제우스의 시선에 올림푸스의 성좌들이 물러납니다.]
[성좌 오딘의 시선에 아스가르드의 성좌들이…….]
[성좌 천마의 시선에 선계의…….]
[성좌 ?의 시선에 엔네아드…….]
시문을 주시하던 다섯 성좌들.
그리고 어딘가에서 침을 꿀떡이고 있을 물음표의 성좌까지.
상위 서열 중에서도 신왕급의 성좌들이 가로막자, 쏟아지던 시선들은 자연스레 물러났다.
물론 그렇다고 모든 성좌들의 시선이 떨어져 나간 것은 아니었다.
[성좌 ???가 ‘누구인가? 누가 멋대로 새로운 용종을 탄생시킨 게냐!’ 성을 토합니다.]
[성좌 ??가 ‘어느 미친놈이 또 용족을 밀어줘? 얼마 받았어? 어?!’ 눈을 부라립니다.]
[성좌 ????가 ‘세계수 주변이면 정령왕들인가? 망할 것들! 한동안 코빼기도 보이지 않더니 용족과 손을 잡아?!’ 분개합니다.]
이름도 제대로 표기되지 않는 성좌들.
용족에게 짙은 악감정이라도 품고 있는 것인지.
정체 모를 성좌들은 하나같이 분통을 터뜨렸다.
그에.
[성좌 제우스가 ‘어리석은 생각 말아라. 이번 용종 창조는 정령왕들이 한 짓이 아니다.’ 고개를 저으며 성좌들의 시선을 가로막습니다.]
[성좌 천마가 ‘허허. 자네들의 예상과는 다르니, 물러들 나게나.’ 제우스의 옆에 섭니다.]
[성좌 오딘과 바알 역시 ‘오히려 용족에게 독이 되는 상황이라고!’ ‘으음.’ 긍정을 표합니다.]
시문의 손수 성좌들이 나서, 상황을 알렸고.
하나같이 상위 서열 중에서도 신왕으로 군림하는 성좌들인 만큼.
[성좌 ??가 ‘당신들께서 그리 말씀하신다면야…….’ 고개를 끄덕입니다.]
[성좌 ?????가 ‘망할 용족들에게 독이 된다면 상관없겠지요. 실례했습니다.’ 자리를 떠납니다.]
분통을 터뜨리던 성좌들은 눈에 띌 정도로 줄어들었다.
물론.
[성좌 ??가 ‘그 말을 우리가 어떻게 믿는단 말이오?’ 불신을 토합니다.]
[성좌 ????가 ‘맞아요. 당신들이 아무리 높은 존재라곤 하나, 맹세를 한 것도 아니잖아요?’ 고개를 끄덕입니다.]
[성좌 ???가 ‘그대들의 말이 맞는다면. 이렇게 숨길 필요도 없지 않습니까?’ 의문을 표합니다.]
몇몇의 성좌들은 여전히 불신과 불만을 표했으나 거기까지.
[성좌 검은 염소가 ‘그냥 가라. 한 번 말했다.’ 나지막한 목소리로 으르렁거립니다.]
성좌 검은 염소가 나서가 삽시간 일단락되어 버렸다.
더는 타 성좌들의 메시지가 떠오르지 않자.
[성좌 검은 염소가 ‘아이고! 우리 아가. 설마설마했지만, 정말로 저질러버릴 줄이야.’ 감탄 어린 탄식을 흘립니다.]
[성좌 천마가 ‘그러게 말일세. 설마 벌써 창조의 영역에 발을 들일 줄이야. 그것도 생명 창조를.’ 헛웃음을 머금습니다.]
[성좌 오딘이 ‘근데 이거 괜찮아? 보아하니 에키드나, 그 망할 할망구가 하려던 일 같은데.’ 슬쩍 미간을 찌푸립니다.]
[성좌 제우스가 ‘그러니 더 좋은 거지. 새로운 용종이 저 아이의 손에 탄생했으니. 진정한 신으로서의 자격도 증명한 것 아니겠나?’ 흐뭇하게 웃습니다.]
[성좌 바알이 ‘으음…… 음!’ 무척이나 만족스럽게 동의를 표합니다.]
시문의 성좌들은 저마다의 만족을 표하며 이야기를 나누었고.
[성좌 ?가 ‘정말이지…… 감질이 나 미치겠군요. (빨리 나도 불러줘! 빨리!!)’ 애간장을 태웁니다.]
계속 관심을 보이던 물음표의 성좌 역시 안달을 내었다.
그러나 놀랍게도.
수많은 성좌와 신계들을 들썩이게 한 원인인 시문은 정작.
‘포근하다…….’
이러한 사태를 전혀 몰랐다.
정확히는 조금도 인식하지 못한다고 해야겠지.
이상할 것도 없었다.
샤르릉.
자연 특유의 청명한 이명과 알록달록한 기운에 폭 안긴 채.
[필멸자 최초로 생명체를 탄생시켰습니다.]
[당신이 이룬 신화적인 업적에 갤럭시 아레나는 찬사를 보냅니다.]
[업적 포인트로는 감히 환산할 수 없는 업적입니다.]
[‘이게…… 아닌데…….’ 갤럭시 아레나가 다급히 회의에 들어갑니다.]
눈앞으로 주르륵 떠오르는 메시지들을 맞이하고 있었으니까.
마지막 메시지까지 확인한 시문은 나른한 눈꺼풀을 끔뻑였다.
‘업적 포인트로는 환산할 수 없는 업적이라?’
이게 그렇게 대단한 일인 것일까?
‘생명체 탄생이라기보단, 그냥 살리기 위해 노력했을 뿐인 건데…….’
갤럭시 아레나의 유난에 고개를 갸웃했으나 그뿐.
이게 아닌데 라는 저 묘한 반응이 신경 쓰이긴 했지만.
‘뭐, 보상이야 어련히 알아서 주겠지.’
업적 보상에 신경을 끈 시문은 옆에 떠오르는 또 다른 메시지들을 확인했다.
[신화적인 연성을 이루었습니다.]
[칭호 ‘연금술의 선구자’의 옵션이 성장합니다.]
[연성력을 20 획득합니다.]
[신화적인 연성에 당신의 진리가 반응합니다.]
[아르스 마그나(Ars Magna) 융합(融合)에 쓰이는 업적 포인트가 3,000점으로 줄어듭니다.]
“이건!”
메시지를 확인한 시문의 나른한 눈꺼풀이 확 떠진다.
하나같이 달가운 보상이었으나.
특히나 시문의 시선을 잡아끈 건.
“아르스 마그나의 비용이 줄어든다고?!”
맨 마지막에 떠오른 아르스 마그나 관련 내용이었다.
연금술의 진리이자, 시문이 깨달았던 아르스 마그나 융합.
신화적인 무구조차 융합할 수 있는 그 진리는, 본디 등가교환으로 업적 포인트 5,000점을 요구했거늘.
‘3,000점으로 줄어들다니!’
무려 절반에 가까운 수치로 줄어들지 않았나?
물론 그럼에도 소모성 연성에 업적 포인트 3,000점은 비싼 값이긴 했으나.
‘대박이다!’
5,000점이었던 이전에 비하면 체감이 상당하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시문은 무척이나 흡족스러운 미소로 칭호창을 열어, 칭호 ‘연금술의 선구자’를 확인했다.
[연금술의 선구자] - 성장형
연금술의 신화적인 산물을 모두 연성한 연금술사에게 주어지는 칭호.
-연성 관련에 제법 큰 보너스를 받는다.
-연성에 소모되는 연성력이 45% 감소한다.
-연성의 위력이 35% 증가한다.
‘호오.’
대번에 눈에 이채가 어리는 시문.
‘아르스 마그나를 깨달았을 때처럼. 전체적으로 크게 성장했군.’
연성 관련에 조금 큰 보너스를 주던 첫 번째 옵션은 ‘제법 큰’으로 성장되었고.
연성의 소모 값과 위력은 각각 10%씩 증가해, 45%와 35%의 수치를 달성했다.
‘이런 성장들이 모여, 지금처럼 뀨웅이를 살릴 수 있었던 거겠지.’
늘 연금술을 달고 사는 시문이 가장 크게 느끼는 부분 중 하나가 바로 이 연성 관련 옵션들 아니던가?
알게 모르게.
지속적으로 연금술 능력을 상향시켜주었던 칭호 ‘연금술의 선구자’는 그야말로 효자 스펙이었다.
‘역시. 괜히 성장형 칭호가 아닌 거지.’
시혁이나 말숙이도 그렇고.
전생의 하이랭커들이 그렇게 입을 대던 성장형 칭호.
과연 성장 중반기에 접어들자, 대기만성형의 스펙다운 저력을 보여 주었다.
‘거기다 연성력도 20이나 추가로 얻었으니. 아까 정령계 연결 보상으로 얻은 10까지 합치면…… 기본 연성력은 299인가.’
여기에 왕들의 픽.
그리고 정령왕의 요람 클리어로 남아있는 잔여 스탯 5까지 더하면.
총 연성력은 309.
귀속 스탯은 각각 154에 달한다.
심지어 정령력 스탯의 추가로 154의 스탯이 무려 4개.
“아…… 취한다.”
달콤한 꿀술에 절여져 버릴 만큼.
달달함이 전신으로 뻗어나가는 기분에 시문은 몸을 슬쩍 떨었다.
그때.
[회의가 끝났습니다.]
갤럭시 아레나가 회의의 끝을 알려왔다.
[보상이 결정되었습니다.]
[차원 NO. 274의 플레이어 김시문에 한해서, 업적 상점에 스탯이 판매됩니다.]
[업적 상점에 ‘랜덤 스탯 +1’과 ‘힘 스탯 +1’ 항목이 추가됩니다.]
[추후 업적 공적치가 쌓일수록, 판매되는 스탯 항목이 달라집니다.]
내용을 확인한 시문의 눈은 휘둥그레졌다.
‘스탯 판매를 열어준다고? 난 아직 업적 공적치가 부족할 텐데?’
전생에서 시혁이와 말숙이가 언급했던 하이랭커의 비밀 중 하나인 스탯 구매.
수많은 업적을 달성해.
보이지 않는 업적 공적치를 쌓아야만 풀린다던 스탯 구매를 지금 열어준 것이다.
그것도.
‘아직 정규 아레나는 들어가지도 않았는데. 벌써 이걸 줘?’
정식으로 정규 아레나가 시작되지 않은 시점에서 말이다.
‘페어리 드래곤의 탄생이 그렇게 대단한 일인가? 아무리 그래도 스탯을 벌써 열어주는 건…….’
이는 아무리 생각해도 놀라운 보상이었고.
갤럭시 아레나 역시 이를 아는 것인지.
[갤럭시 아레나의 탄생 이래, 처음으로 주어지는 혜택입니다.]
[차원 NO. 274는 정규 아레나가 시작되지 않은 차원입니다.]
[당사자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해당 혜택은 비밀로 해주실 것을 권고드립니다.]
비밀로 해달라는 메시지를 보내왔다.
물론 이는 말 그대로 권고인 만큼, 강제되는 부분은 전혀 없었지만.
‘이런 혜택을 이리저리 떠들어서 좋을 건 없지.’
아무래도 시기 질투로 여러 귀찮은 일들이 벌어질 수도 있지 않은가?
갤럭시 아레나 역시 그것을 염두한 권고일 것이기에.
“그러죠.”
시문은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차원 NO. 274 최초로 업적 상점에 스탯 판매 항목을 추가하였습니다.]
[보상으로 업적 포인트 10,000점을 획득합니다.]
스탯 판매의 최초 보상까지 얻자.
샤르르르.
청명한 이명이 잦아들며, 점차 한눈에도 다 들어오지 않는 거목이 서서히 시야를 채웠다.
그리고 가장 먼저.
“아빠!”
“은인!”
연성진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을 시연이와 에르넨이 눈에 들어온다.
당장 걱정하고 있던 두 사람을 맞이해야 했지만.
시문은 그러지 않았다.
정확히는 그럴 수 없었다고 해야겠지.
왜냐하면.
우웅.
알록달록했던 아까의 연성 빛을 모두 응축해둔 것마냥.
연성진의 중앙에서 형형색색의 알 하나가 진한 이명을 토하고 있었으니까.
이내.
쩌적.
매끈한 표면에 조금씩 금이 가기 시작했고.
알이 다 깨지기도 전에.
퍼석!
알록달록한 비늘의 발이 알을 뚫고 튀어나왔다.
그것을 신호로.
파사삭.
파삭!
순식간에 떨어져 나가는 껍데기.
그 안에서 등장한 3미터에 달하는 존재.
뀨웅?
페어리 드래곤은 고개를 갸웃하며, 송아지와 같은 큼직한 눈을 끔뻑였고.
그 초롱초롱한 안구에 2미터의 백금색 미남자.
시문이 담기자.
뀨우우우~!
3미터라는 덩치에 맞지 않게, 맑고 앙증맞은 울음을 토한 녀석은.
펄럭.
어느새 뒤편으로 무지개를 담은 나비 날개 같은 것을 펄럭이며.
“어어? 뀨, 뀨웅아! 잠깐!”
쿠웅.
시문의 품으로 머리를 들이박았다.
* * *
쓰러진 시문의 품으로.
뀨우! 뀨우우~.
연신 맑고 앙증맞은 울음을 토하며, 머리를 비벼오는 뀨웅이.
아마 드래고노이드인 육신이 아니었다면.
어디 한군데 다쳐도 이상할 것이 없는 돌진이었지만.
“요 녀석. 위험할 뻔했잖아.”
뀨! 뀨웅!
병아리처럼 삐약이는 뀨웅이의 모습에 시문은 부드럽게 웃으며.
“그래그래. 나도 네가 건강해져서 기뻐.”
녀석의 알록달록한 머리를 쓸어주었다.
기분이 좋은 것일까?
쫑긋.
자유분방한 정령력을 담아내려던 설계답게.
카멜레온의 꼬리.
혹은 산양의 뿔처럼 동글동글 말린 두 뿔이 쫑긋거린다.
그때.
화아아.
“음?”
녀석의 머리를 쓸어주던 시문의 손끝에서 갑자기 용력이 활성화되었고.
우우웅.
가까이에 있던 동글동글한 두 뿔로 스며들었다.
이어.
[최초의 결속이 되지 않은 용종, 페어리 드래곤이 결속을 요청합니다.]
[받아들이시겠습니까? (예 / 아니오)]
뜬금없이 각인이라는 메시지창이 떠올랐다.
‘최초의 결속? 그게 뭐야?’
전생에서도 들어 본 적 없던 상황.
그러나 시문의 고민은 오래가지 않았다.
‘뭔진 몰라도 하는 게 좋겠지.’
일단 결속이란 뜻만 놓고 봐도.
해서 나쁠 것은 없어 보이니 말이다.
시문이 ‘예’를 선택하자.
챠르릉.
뀨웅이의 두 뿔에서 쏘아진 무지갯빛 광선이 시문의 가슴 정중앙.
현자의 돌로 스며들었다.
‘이건……!’
검은 염소에게서 호문쿨루스의 지식을 얻었을 때처럼.
“아!”
뀨웅이라는 한 객체를 넘어.
자신이 탄생시킨 페어리 드래곤의 모든 지식이나 요소들이 영혼에 아로새겨진다.
더 정확히는.
김시문이라는 열쇠고리에, 페어리 드래곤이라는 열쇠가 하나 추가되는 느낌이랄까?
그렇게.
뀨웅이가 완전히 내 영혼과 결속되었다는 느낌이 든 순간.
[특성 성흔이 용종의 결속에 반응합니다.]
갑작스레 특성 성흔이 반응해왔고.
[성흔이 활성화되기에 너무나 미약한 수준입니다.]
[성흔이 아쉬움을 토로하며, 다시 잠에 빠져듭니다.]
[여파로 불완전한 칭호 ‘?신’을 획득합니다.]
메시지들이 주륵 떠올랐다.
그에.
‘갑자기 성흔이 왜? 칭호는 또 뭐고?’
시문이 상황을 파악할 틈도 없이.
[새로운 용종을 결속시켰습니다.]
[페어리 드래곤에 속하는 모든 용종은 오로지 당신에게만 복종할 것입니다.]
페어리 드래곤과의 결속이 끝이 났고.
이를 알리듯.
뀨우우우우~!
뀨웅이가 아름다운 날개를 활짝 펼치며, 기분 좋은 울음을 토했다.
그리하여.
“세상에…… 정령력을 지닌 용족이라니……!”
“헤헤! 뀨웅아!”
시문은 자신만의 첫 번째 용족을 얻게 되었다.
* * *
-이건 말도 안 돼!!
분명 통신구라는 매개체를 거친 노성이건만.
-어찌 필멸자 따위가 그 업적을 완성한단 말이더냐!!
통신구 너머에서 들려오는 노성은 강맹하다 못해 살벌했다.
실제로도.
쩌저적.
매개체인 통신구는 물론.
통신구가 놓인 주변의 마법진들에 금이 갔고.
-나의 연구이거…… 납득할 수 없…… 이는 불가능한……!
통신구 너머로 영향을 끼치던 노성은 노이즈가 섞인 듯.
불안정하게 떨리고 끊어지길 반복했다.
그에.
서둘러 망가진 마법진과 통신구 복구하는 새까만 여성.
데피나는 난감한 얼굴로.
“부디 고정하시지요. 대모님.”
통신구 위에 떠 오른 녹회색의 눈을 바라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