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7화
197화. 회수 (3)
“하찮은 인간 주제에!”
“감히 누구 앞에서 그딴 망발을 지껄이느냐!”
데피나의 뒤를 따르던 4미터의 덩치 둘이 거센 화를 토한다.
그에.
“하찮아? 망발?”
서늘한 인상의 중년인.
종리추의 날렵한 눈썹이 꿈틀거렸다.
이어.
그 눈썹만큼이나.
촤아악!
날카로운 무언가가 일직선으로 허공을 갈랐고.
서걱.
두툼한 팔 두 개가 허공을 날았다.
“크아악!”
“캬악!”
뒤늦게 비명을 지르는 두 덩치.
하나 그런 두 부하가 고통에 울부짖는 것은 안중에도 없는지.
“과연. 그분께서 눈여겨볼 만한 인간이네요?”
데피나의 새빨간 입술을 즐거움으로 휘어갔다.
“아직 정규 아레나도 아닌데, 드라커다일 둘의 팔을 한순간에 절단하다니.”
그녀는 무척이나 감탄한 얼굴로 최상급 용족인 드라커다일의 팔을 절단한 사내.
종리추를 바라봤다.
그런 데피나의 여유가 마음에 들지 않은 것인지.
“내가 말했을 텐데, 데피나.”
눈매를 꿈틀한 종리추의 팔이 아까처럼 쏘아졌다.
우웅!
그의 손에 붙들린 창끝에서 강렬한 이명이 울린다.
강기.
강철조차 무처럼 썰어버리는 그 강대한 오러가 궤적을 그리며 나아갔으나 그뿐.
애당초 공격할 생각은 없었던 걸까?
웅.
살벌한 기세로 쏘아지던 창은 정확히 데피나의 미간 앞에서 뚝 움직임을 멈췄다.
공격하던 기세를 따져보면 가히 놀라운 절제의 창술이었다.
“그따위로 내려보는 듯한 말투는 주의하라고 말이다.”
종리추는 서늘한 목소리로 데피나를 노려봤다.
최상급 용족의 비늘도 갈라버리는 강기가 눈앞에 아른거림에도.
“후후. 그랬었죠.”
마치 종리추의 공격이 닿지 않을 거라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처럼.
“미안해요. 불쾌했다면 사과드리죠. 제겐 익숙지 않은 일이라서.”
아무렇지도 않게 어깨를 으쓱하며 사과를 건네는 데피나.
“쯧, 건방진 년.”
그에 짧게 혀를 찬 종리추는 창을 거두었다.
“으으…….”
“큭!”
팔이 절단된 고통이 상당한 것일까?
아니면 인간에게 당했다는 것이 부끄러운 걸까?
두 드라커다일은 잘린 팔을 부여잡은 채, 작은 신음을 흘렸고.
“너흰 그만 가서 치료나 받으렴.”
데피나는 그런 드라커다일을 힐끔하곤, 종리추를 향해 다가갔다.
“일찍이 말했을 텐데? 보는 눈이 많으니, 네가 직접 찾아오는 짓은 삼가라고 말이다.”
살기가 묻어나는 종리추의 으르렁거림.
그러나.
“후후. 창왕 종리추의 방을 염탐할 만큼 간 큰 놈은, 지금까지 보지 못해서 말이죠.”
데피나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고.
오히려 한발 나아가.
“이번 일의 소식은 들었어요. 아주 거하게 깨졌다죠?”
안 그래도 민감한 이번 일을 꺼내며, 종리추의 책상에 엉덩이를 걸쳤다.
“듣기론 성장 버프를 견제하려다, 오히려 연맹의 대표까지 잃고. 게워내게 생겼다던데.”
“하! 기가 차는군.”
답하는 종리추의 눈매가 사나워진다.
“네년이 내게 이번 일을 거론할 자격이나 있나?”
“호호. 우리 사이에 거론 정도는 할 수 있지 않나요?”
“웃기는 소리.”
종리추는 사나워진 눈 그대로 옆에 한껏 눈치를 보고 있는 종완지를 힐끔했고.
“아, 아하하! 난 급히 처리할 일이 있어서. 이야기들 나누시게나.”
애써 웃음을 터뜨린 그는 얼른 방을 나섰다.
다소 못마땅한 얼굴로 종완지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종리추는.
“당장 일전의 최우석 박사건만 봐도 그렇지.”
종완지가 방을 나서자마자 입을 열었다.
“잘하면 김시문 그놈까지 낚을 수 있다고, 호언장담을 하던 게 너 아니었나? 해서 그 일은 전적으로 네게 일임했지. 그런데 결과는?”
“어머나, 그 이야길 꺼낼 줄은 몰랐는데요?”
“그뿐만이 아니지.”
데피나의 너스레에도.
종리추의 얼굴에 깃든 사나움은 가시지 않았다.
“너희의 그 잘난 용제들이 소정규를 앞당겼다고 했었지. 김시문 그놈을 아레나에서 처리하겠다고 말이야.”
“그랬었죠.”
쾅.
“그랬는데 그 결과가 이것이란 말이냐!”
종리추는 거칠게 책상을 내리찍었다.
어지간히도 화가 나는 것인지.
“아무런 소득도 없이! 함께 매칭되었던 두 용족은 죽어 버리지 않았었나? 그것도 사망 페널티로 인한 진짜 죽음으로 말이다!”
그의 언성은 점차 높아졌고.
“놈의 정보도 얻지 못하고 이게 뭐냔 말이다! 소정규를 멋대로 앞당겼으면, 그에 대한 대처는 제대로 했었어야지!”
기어이 살기를 내뿜으며, 여유로운 그녀의 멱살까지 잡아챘다.
“너희의 멍청한 짓거리 덕분에, 난 면사권이 풀리기까지 아레나를 멈춰야 하고! 사망 방지권이 생긴 심드라실 길드의 티오까지 잃는 피해를 입었다! 대체 이걸 어찌할 셈이냐!”
당장이라도 씹어먹을 듯.
강렬한 살기를 내뿜는 종리추.
“화가 많이 나신 것 같으니. 우선 해명부터 하고 찾아온 이유를 말씀드리죠.”
데피나는 제 멱살을 잡은 그의 손을 부드럽게 쓸며.
여전히 여유로운 얼굴로 답했다.
“최우석 박사의 이송 건은…… 솔직히 할 말이 없어요. 인정하죠. 명백한 저희 측의 실수예요.”
조합까지 고려한 최상급 용족 3명을.
거기다 대륙성 측의 인원까지 더해진 전력을.
“설마 그 많은 병력이 플래티넘 하나에 전멸할 줄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거든요.”
랭커도 아닌 플래티넘의 플레이어가 깔끔하게 전멸시킬 줄은 몰랐다.
순순한 잘못이 인정 때문이었을까.
“……그건 나도 놀랍긴 했지.”
종리추는 찬찬히 고개를 끄덕였다.
“김시혁이나 이유정이면 모를까. 날고 긴다 해도 고작 유망주인 놈이 그걸 전멸시킬 줄은…….”
“물론 한국 협회의 도움이 있었을 가능성이 더 높다고 봐요. 협회 측의 병력이 실미도로 움직였다는 보고도 있었잖아요?”
데피나의 말에 종리추의 눈썹이 꿈틀한다.
“김무열이, 이 내게서 등을 돌렸다?”
“이상할 것도 없죠. 당신은 그전에 김시문의 암살을 2번이나 실패했잖아요? 특히 데스페라도 건은 김무열의 허락도 받지 않았고.”
“그건…… 그렇지.”
폭탄마 모가담의 제자인 제이스 클라크.
그의 암살행은 한국 협회장인 김무열의 허락도 구하지 않고.
종리추의 독자적인 의뢰로 이루어진 일이었다.
당연히 나름의 협력 관계였던 김무열의 입장에선 기분이 나쁠 수밖에 없으리라.
세계 최고의 빌런 조직이 허락도 없이, 제 영역을 침범했으니 말이다.
“실제로 김무열은 그때의 일을 내게 따졌었으니까.”
“거기다 실험체를 투입했던 두 번째 암살까지 실패하면서, 김무열과의 사이가 멀어지기 시작했잖아요?”
이어지는 데피나의 말에.
“……지금 날 탓하는 것이냐?”
종리추의 인상이 확 찌푸려진다.
“후후. 그런 의도가 아니에요.”
데피나는 여유롭게 웃으며, 일그러진 그의 뺨을 슬쩍 쓸었다.
“그저 이런 요소들로 인해, 철목왕이 최우석 박사 건을 손썼을 수도 있다는 거죠.”
“일리 있는 말이다만, 이미 지나간 일이다. 지금의 소정규 건과는 관련이 없어.”
“바로 그것 때문에. 귀하신 창왕 님의 말씀을 어기고 제가 직접 이 자리에 온 거예요.”
싱긋 웃은 데피나는 걸터앉았던 책상에서 내려왔다.
“우선 저울 위 사막에서 두 용족이 죽었던 건, 우리 측에서도 사고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사고?”
데피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허공으로 손을 저었다.
그러자.
파앗.
허공에 뿌려진 마력이 특정한 형체를 이루었다.
그를 본 종리추는 슬쩍 미간을 찌푸렸다.
“이건 암무트 아닌가?”
“맞아요. 두아트에 기거하는 괴수이자, 아레나 필사의 요소 중 하나죠.”
“필사의 요소?”
“당신은 모르겠지만, 사망 방지권이 있어도 무조건 죽음을 면할 수 있는 게 아니에요.”
데피나의 손가락이 움직이자.
암무트의 환영이 주먹을 들어 올렸다, 내려찍는 시늉을 했다.
“몇몇 맵에는 사망 방지권, 그러니까 면사권이 무의미한 요소들이 존재해요.”
“차원 두아트에선 암무트가 그런 존재라는 것이냐?”
“그렇죠. 실제로 암무트는 망자의 소멸을 담당하는 여신. 그녀에게 죽어버리면 면사권 따위 무용지물이거든요.”
고로 용족의 입장에서도.
저번 저울 위 사막의 일은 돌발 사고나 마찬가지였다.
“대충 보이는군. 그 두 용족은 김시문이 죄악 10중첩을 쌓은 뒤, 암무트에게 죽임을 당하게 할 계획이었던 거로군?”
“아마도 그랬겠죠. 뭐, 지금은 그것도 물어보지 못하게 되었지만.”
말의 내용과 달리.
데피나는 크게 아쉬운 기색 없이 손을 설렁설렁 흔들어, 암무트의 환영을 지워냈다.
이내.
“어쨌거나. 오늘 찾아온 것도 이것 때문이에요.”
데피나는 고혹적인 미소를 지으며, 종리추를 향해 작은 조각을 내밀었다.
다각형의 형태를 지닌 조각.
어찌 보면 파충류의 비늘 조각으로도 보였다.
“이건!”
그것을 확인한 종리추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좀처럼 보기 힘든 그의 반응에.
“저희 용족이 쓰이는 면사권이에요.”
데피나는 흡족한 미소를 띠었다.
“주기적으로 보급해드리죠. 이거라면 심드라실 길드 건으로 받은 피해는 어느 정도 수복이 될 거예요.”
“성장 버프는 여전히 뼈아프지만, 사망 방지는 확실히 쓸 만하겠군.”
일단 소정규에서의 사망을 방지해 주는 물건이니.
당장 제 휘하의 소정규 인원이 이탈하는 일은 막아 줄 수 있으리라.
“다만, 아시죠? 저희 용족의 물건은 아직…….”
“지구에 풀려선 안 된다는 것 말이지. 입단속은 알아서 시킬 테니 신경 꺼라.”
“후후. 까칠하시긴.”
데피나는 흡족한 미소를 유지한 채.
“그럼 앞으로 소정규의 정보도 종종 전해드릴 테니, 화 푸시는 거예요?”
그에게 다가가 속삭였다.
“덤으로 실험체도 더 조달해주시면 좋고.”
“흥. 네 일만 똑바로 하면 얼굴 붉힐 일도 없다. 실험체는 정부에 일러두도록 하지.”
종리추는 차갑게.
그러나 묘하게 흡족한 얼굴로 용족의 면사권을 손에 쥐었다.
* * *
따악.
둥글게 연성된 간이 저장고 안으로.
우르르르.
쏟아지는 아이템들.
옆으론 그런 간이 저장고가 무려 2개나 더 자리하고 있었고.
“후아! 이걸로 마지막이네.”
모처럼 땀까지 흘린 시문은 이마를 슥 훔치며, 흡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런 시문의 곁으로.
그그극!
백은색의 골렘들 역시 이마를 슥 훔치는 시늉을 했고.
“헤헤! 다 해따!”
그들의 대장처럼 앞에 턱하니 자리한 시연 역시 해맑은 웃음으로 이마를 훔쳤다.
그런 이들 옆으로.
-3대 광물을 포함한 온갖 금속에, S급 재료, 제작 관련 아티팩트들까지!
어느새 다가온 플라스크 속 현자의 돌.
핏발선 눈으로 정돈된 간이 저장고를 바라보곤.
-헤으으응!! 진귀한 재료템의 삼 분할로 가버려어엇!!!
부르르 몸을 떨더니, 아래로 뚝 떨어졌다.
그에.
“잡았다!”
아래 대기하고 있던 시연이가 귀신같이 팔을 뻗어, 맛이 가버린 언니를 잡아냈으나.
“시연아. 지지야. 버려.”
“웅! 아빠!”
진중한 얼굴로 얼른 고개를 젓는 시문에.
시연이는 일말의 미련도 없이, 경련하는 언니를 바닥으로 버렸다.
데구르르르.
바닥을 나뒹구는 플라스크.
하나 그 속의 큼직한 눈깔은 여전히 까뒤집힌 상태였고.
“쯧.”
시문은 맛이 가버린 현자의 돌에 고개를 절레 젓곤.
쌓여 있는 아이템들로 시선을 돌렸다.
‘사과의 선물이라고 좋은 것들만 가져올 거라 예상은 했다만, 설마 전부 S급 이상일 줄이야.’
심지어 미스릴과 오리하르콘, 아다만티움 등.
재료 템 중에서도 등급만 높은 잡템이 아닌, 아주 귀하디 귀한 녀석들로만 가득 채워져 있다.
시문은 그중 세 번째 창고.
제작 관련 아티팩트들이 모인 곳을 바라보곤.
‘그래도 제작 관련 아티팩트는 나한테 크게 도움이 되진 않지만.’
뒤에 질서정연하게 서 있는 미스릴 골렘들을 힐끔했다.
‘골렘들이 장착하면 효과는 상당하겠지.’
비록 제작 골렘이 아닌, 일반 연성 골렘이긴 해도.
골렘 역시 소환수인 만큼, 독자적인 아이템을 쥐여주면 그 성능은 더욱 발전하기 마련이다.
‘거기다 스탯 증강제로 연성력이 20이나 늘어서 그런지…….’
이전 아레나인 ‘저울 위 사막’에서 25레벨업이라는 폭렙업을 한 이후.
249에 달했던 연성력은 또다시 20이나 상승하여, 269에 해당하는 수치가 되었다.
여기다 왕들의 픽 +5까지 더하면 총 연성력은 무려 274.
덕분에.
‘이젠 골렘을 활용해 연금술을 사용할 수도 있을 것 같고 말이야.’
단순 아레나 질병 치료제의 제작 작업만이 아닌.
치료제의 초안에 들어가는 연금술도 전부 골렘을 이용해, 제작이 가능한 느낌이었다.
이는 달리 말해서.
‘전투에도 활용할 수 있겠지.’
전투에서 골렘이 연금술을 활용할 수 있다는 말이 된다.
‘바로 확인해 봐야겠어.’
마침 하이엘프 에르넨에게 받은 연계 퀘스트도 있지 않은가?
“꺄하하! 반짝이다! 반짝반짝!”
시문은 광물을 모아둔 곳에서 뒹굴며, 신나게 노는 시연을 잠시 흐뭇하게 바라보고는.
곧바로 아레나에 접속했다.
[갤럭시 아레나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특수 아레나 ‘정령왕의 요람’으로 입장합니다.]
[입장 아이템 ‘정령계의 열쇠 조각’이 소모됩니다.]
주르륵 올라가는 알림창.
그와 함께.
-오! 왔다!
-5252! 기다렸다고!
-형! 심드라실 길드 난리 났던데. 대체 뭐가 어케 된 거?
-나도 뉴스 봄. 연맹부터 최정상 길드들 다 찾아왔던데.
-시문 님! 아시는 거 있으면 알려 주세요~.
-이 형이 뭘 알겠냐고. 일개 길드원인데 ㅋㅋㅋ
-ㄹㅇ 검성 방송가서 물어봐라.
대기하던 시청자들의 채팅 역시 우르르 쏟아졌다.
동시에.
파아앗.
무주 공간이었던 대기실은 빠르게 아레나 맵으로 변화했고.
“안녕하세요. 여러분. 반갑…….”
시청자들의 인사를 받으려던 시문의 얼굴이 삽시간 굳었다.
이유는 다름이 아니었다.
전생에도 보았던 알록달록한 정령계.
그곳엔.
구그그그.
‘저게…… 왜 여기에 있는 거지?!’
있어선 안 될 것이 존재하고 있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