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한 천재 플레이어의 신화급 무기창조-196화 (196/349)

제196화

196화. 회수 (2)

적막한 공기.

그에 걸맞은 침묵이 무겁게 내려앉는다.

협회장실에 있는 누구도 반응하지 않았으나.

올리비아는 부동의 자세로 여전히 허리를 숙이고 있을 따름이었다.

그나마.

“…….”

입구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김시혁의 입이 쩍 벌어지는 것이.

이 적막 속의 유일한 변화라면 변화였다.

이상할 것도 없었다.

‘윈터 퀸이 저렇게 허리 숙여 사과를 하다니…….’

윈터 퀸.

올리비아 덴슨이란 사람은 그 저명한 영입 능력 말고도.

다른 방면으로 익히 알고 있는 김시혁이었다.

‘냉철함과 도도함의 대명사 아니었나?’

다이아 최상위의 마법계로 어찌 보면 숙부 김무열과 결이 비슷한 여성.

한데 그런 위명에 어울리지 않게.

그다지 친하지도 않은 자신에게 형을 만나게 해달라고 부탁까지 한 이유가.

고작 저렇게 허리 숙여 사과하기 위해서였다니?

‘이건 좀 많이 놀라운데?’

헛웃음이 절로 흘러나오는 상황이었지만.

김시혁은 애써 튀어나오는 반응을 억제할 뿐이었다.

그리고 이는.

‘설마 이렇게까지 할 줄이야…….’

시문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잠시 그녀를 바라보던 시문은 짧은 한숨을 내쉬곤 답했다.

“올리비아. 이러지 말아요.”

“그럴 수는 없습니다.”

대번에 튀어나오는 부정.

그녀는 여전히 자세를 유지한 채.

“비록 비즈니스 관계이긴 해도, 진실하게 저희를 대해주셨음을 잘 압니다.”

무미건조한.

그러나 아주 미세한 떨림이 담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저 역시 그러한 마음으로 시문 님을 대했습니다만…….”

성장 버프의 글로벌 공공자원 안건이 통과하기 전날.

그간 비즈니스 관계였던 서로가 조금이나마.

마음을 내비치며 이야기를 나눴다.

“결국 이는 저의 말일 뿐, 실상의 행실은 전혀 다르지 않았습니까?”

바로 성장 버프의 안건이 통과되기 ‘전날’에 말이다.

“제 개인적인 소견으론.”

이는 어찌 보면 대놓고 적대하는 이들보다.

“안건을 발의했던 중국 측보다, 저희 측의 행동이 더 몰상식한 행위였다고 생각합니다.”

더 악랄한 행동이기도 했다.

선의를 져버리다 못해, 배반해버린 것이니까.

올리비아는 여전히 숙인 허리를 펴지 않았고.

되려 무릎마저 바닥으로 향했다.

시문은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무슨 말씀인지는 잘 알겠지만, 올리비아가 이러실 필요는 없습니다.”

내려가는 그녀의 두 어깨를 붙잡았다.

그는 천천히 그녀의 몸을 일으켰고.

처음에는 저항하듯.

잠시 주춤거리던 그녀는 서서히 시문의 리드에 따라 몸을 일으켰다.

한동안 허리를 숙이고 있어서일까?

아니면 지금 그녀가 느끼는 감정 때문일까?

“…….”

여전히 사무적인 올리비아의 표정 뒤로, 꽤 붉어진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이를 본 김시혁의 벌어진 입으로 두 손이 추가된 것은 물론.

“올리비아. 일단 앉아서 이야기해요.”

시문의 얼굴 역시 조금 굳었다.

하나 그런 시문의 제의에도.

“시문 님. 불편하게 여기실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올리비아는 꿋꿋이 사과를 이어갔다.

“이는 아주 합당한 처사로 전…….”

“올리비아. 제가 정확하게 짚어드릴게요.”

시문은 그런 그녀의 사과를 끊어내며, 뚜렷한 눈으로 그녀를 응시했다.

“당신은 이렇게까지 고개 숙일 필요가 없어요.”

“시문 님. 아시지 않습니까? 전 당신을 배신한 겁니다.”

“당신이 아니라, 아메리칸 드림이겠죠.”

곧바로 올리비아의 말을 정정해버리는 시문.

그에 올리비아는 입술을 달싹였으나 그뿐.

저명한 영업부의 부장답지 않게.

“…….”

목이 꽉 막힌 것처럼 쉽사리 말을 이어가지 못했고.

“제가 아는 올리비아 덴슨이라면. 길드 내부에서 이 안건을 통과시키자는 이야기가 나왔을 때, 분명 반대했을 겁니다. 아닌가요?”

시문은 차분한 어조로 물었다.

또다시 입술을 달싹이는 올리비아.

다행히도.

“……맞습니다.”

이번에는 목소리가 나와주었다.

“그리고 그 안건을 통과시키자고 했던 건, 지금 아래층에서 손을 비비고 있을 부길마 콜린, 혹은 길드 마스터 데릭이겠죠.”

“그, 그걸 어떻게……!”

두 눈이 휘둥그레지는 올리비아.

시문은 작게 한숨을 흘렸다.

“그러니 하는 말입니다. 절 배반한 건 아메리칸 드림이지, 올리비아가 아니니까.”

아메리칸 드림의 내부 사정을 직접 보진 않았으나.

어떤 상황이었는지는 뻔히 보였다.

‘콜린도 그렇지만, 데릭 그놈의 성격은 질리도록 겪었으니까.’

전생의 지구에서.

미국의 슈퍼 히어로라 불리는 데릭이 어떤 부류의 인간인지.

질리도록 겪지 않았던가?

‘괜히 길마 자리가 앤드류에게 넘어간 게 아니지.’

하나 이러한 확신을 조금 다르게 받아들였는지.

“시문 님…….”

올리비아의 목소리가 슬쩍 흐려졌다.

이내.

“생각보다, 정적인 면이 있으시군요.”

잠시 숨을 고른 그녀는 조금의 장난기 어린 얼굴로 말했고.

“생각보다? 이거, 아까 했던 말을 취소하고 싶어지는데요?”

시문 역시 위트 섞인 미소로 화답했다.

그에.

“후후. 농담이었습니다.”

귀한 웃음과 농담을 흘린 올리비아는 미지근해진 차를 한 모금 들이켰다.

본디 차보단 커피를 즐기는 그녀였거늘.

어째서인지 이 미지근한 찻물에 그간의 속앓이가 확 풀려버리는 느낌이었다.

올리비아는 잠시 숨을 고르곤 말했다.

“말씀은 감사합니다만, 그렇다고 저희가 당신을 배신했음을 변하지 않습니다.”

“그렇죠. 이렇게 말이야 하고 있지만, 저 꽤 상처받았거든요.”

밝아진 분위기를 흐리기 싫은 것일까.

시문은 다소 과장된 모습을 보였다.

“그러니 가져오신 사과의 선물이 제 마음에 들길 바라야 할 거예요.”

그런 시문의 배려에 잠시 미소 지은 올리비아는 고개를 저었다.

“안 그래도 그 때문에 실례를 무릅쓰고,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어느새 진중한 얼굴이 된 그녀는 가져왔던 서류를 테이블에 놓았다.

“이건?”

“아래층. 그러니까 VIP 응접실에서 부길마께서 공식적인 사과의 선물을 드렸지만, 전 그걸로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녀의 말에 시문은 서류를 힐끔했다.

익숙한 단어들이 보였고.

시문은 어렵지 않게.

“이건 제가 유정이 사건 때 약속했던 조건들이군요.”

“맞습니다. 그때의 계약서죠.”

이유정의 빌런 지정 안건 때 약속한 보상임을 눈치챘다.

“시문 님께선 저희에게 최대 3개월. 개선된 성장 버프의 대여비를 면제해 준다고 하셨죠.”

그녀는 서류 들어, 해당 조항을 친히 가리켰고.

“그것도 이번에 추가로 가입 티오를 배정한 10명의 몫까지 전부 다 말입니다.”

이내 보란 듯이.

“하지만.”

찌지직!

두 조각으로 찢어버렸다.

“전부 없던 일로 하겠습니다.”

의외의 행동이었던 것일까?

시문의 한쪽 눈썹은 슬쩍 올라갔고.

“그뿐만 아닙니다.”

올리비아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사망 페널티 무효화가 포함된 이번 버프를 얼마에 파실지는 모르겠지만.”

또 다른 서류를 꺼내 테이블 위로 올리는 그녀.

그녀는 어디선가 꺼낸 볼펜으로.

“무조건 그 2배에 해당하는 대여비를 약속해 주셨던 3개월 동안 역으로 지급하겠습니다.”

서류의 상단부에 위치된 조항을 죽 그었다.

시문은 그녀가 그은 조항을 힐끔했다.

그녀의 말대로 정말로 어떤 금액대건 간에.

‘3개월간 무조건 2배의 대여비로 지급’하겠다는 조항이 적혀 있었다.

“대여비가 얼마가 될지는 지금 저도 모르는데. 너무 센 조건 아니에요?”

“보여 주신 선의에 배반한 것치고는, 그리 비싼 값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거기다…….”

말끝을 슬쩍 흐리는 올리비아.

이내.

“엄연한 길드 공금이지. 제 돈이 아니거든요. 그러니 마음껏 털어가 주시면 됩니다.”

장난스러운 미소를 머금었고.

시문 역시 피식 웃음을 흘렸다.

“무서운 분이시네요. 올리비아.”

“필요악을 자처하는 거죠. 길드가 오래된 만큼, 가끔 따끔한 매가 필요한 법이거든요.”

“그러니까. 저보고 그들을 혼내달라?”

“시문 님이 받으셨던 스트레스도 함께 푸는 것이니, 일석이조 아니겠습니까?”

“올리비아가 받았던 스트레스도 함께 풀고 말이죠?”

“일종의 교육법이라고 말씀드리겠습니다. 길드 꼭대기엔 꼭 피를 봐야 말을 알아처먹는 머저리가 앉아 있어서요.”

그게 길드 마스터 데릭을 지칭한다는 걸 모를 리가 없었기에.

“하하!”

시문은 시원한 웃음을 터뜨렸다.

이내.

“좋습니다. 이렇게 대놓고 털어먹으라는데. 제대로 털어먹어드려야죠.”

눈을 찡긋한 시문은 곧바로 서류에 사인을 했다.

그에.

“실례지만, 대외적인 길드 마스터는 검성이 아니신지요? 사인은 검성께서 하시는 것이…….”

올리비아는 잠시 시문을 제지하며 물었고.

시문은 피픽 웃으며.

“그렇긴 한데. 말 그대로 대외적이기만 해서요.”

입구에 멀뚱히 서 있는 동생 녀석을 힐끔했다.

올리비아의 눈동자가 살짝 커진다.

“그 말은…… 설마 지금까지 심드라실의 성장 버프 계약서는 모두…….”

“네. 제 사인이 들어간 것으로 발부됩니다. 전부 다요.”

그렇게 답한 시문은 보란 듯이 사인란에 사인을 했고.

“하…… 그 와중에 길드의 실무까지 보시는 거군요. 저희 길드를 이끄는 어느 머저리랑 다르게 말이죠. 정말 대단하십니다.”

그것이 익숙한 형태의 사인임을 확인한 올리비아는 헛웃음을 흘렸다.

그때.

“크흠!”

입구에 서 있던 김시혁이 잠시 불편한 듯 헛기침을 했으나 그뿐.

시문은 신경도 쓰지 않은 채.

“그럼 아메리칸 드림과 그…… 머저리라는 분은, 제가 제대로 혼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부디 꼭 그렇게 해 주시길 부탁드리겠습니다.”

올리비아와 악수를 나누었다.

그리고 다음 날.

“예, 영입부 부장 올리비아입니다.”

-올리!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 한 명당 1조라니?! 그것도 한 달마다!!

아주 흡족한 전화를 받을 수 있었다.

* * *

무려 수백 개의 서류가 쌓여 있는 책상.

그리고 그 책상의 주인인 험상궂은 인상의 사내는.

“허허…….”

영혼이 나간 얼굴로 헛웃음을 흘렸다.

무리도 아니었다.

단 2시간 만에 끝나버린 성장 버프 대여.

한 달에 한화로 약 5천억이라는 고무적인 가격의 계약서가.

작금 그의 책상을 채우고 있는 수백 개의 서류였으니까.

그런 그의 귓가로.

“고생 많으셨어요.”

뚜렷한 미성이 흘러든다.

옆 책상에서 서류를 정리하고 있는 시문이었다.

“고생이랄 게 있겠습니까? 전 시문 님이 시키는 대로 대여해줬을 뿐인데요.”

“대리인으로 나서주신 거잖아요. 그 자체로도 이미 힘든 일이라는 거, 잘 압니다.”

시문의 칭찬이 멋쩍은지.

박진욱은 머리를 긁적이더니.

“크흠! 그, 그럼 다음 스탯 증강제 생산 땐 저부터…….”

은근한 목소리로 물었다.

“꼭 먼저 챙겨드릴게요. 하지만 아시죠? 영약은.”

“중복 복용할수록 그 효력이 떨어진다는 것 말이죠?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럼 다음엔 진욱 씨를 가장 먼저 챙겨드리겠습니다.”

“크하핫! 역시 시문 님! 아주 시원하십니다!”

시문의 약속이 만족스러웠는지.

호탕하게 웃음을 터뜨리는 박진욱.

이내.

“참! 그나저나 시문 님, 이거 진짭니까?”

그는 따로 분류해놓은 계약서 십여 장을 흔들었다.

“한 달에 1조라니요? 아메리칸 드림에서 정말 이 조건을 받아들일까요?”

“허락 안 하면, 자기들이 어쩌겠어요?”

“……예?”

예상치도 못했던 대답인지.

박진욱은 잠시 멍하니 눈을 끔뻑였고.

“걱정 마세요. 아메리칸 드림은 그 조건을 받을 수밖에 없으니까.”

시문은 영문 모를 미소만 머금을 뿐이었다.

“거기다, 그런 조건조차 못 받은 곳도 있잖아요?”

그 말이 끝나기도 무섭게.

“형.”

문이 벌컥 열리며, 김시혁이 난입했다.

“형을 꼭 만나게 해달라는 길드가 있는데…….”

녀석은 무척이나 마땅치 않은 얼굴이었고.

“아아, 올 때 됐지. 응접실로 안내해.”

시문은 기다렸다는 듯.

“얼른 처리하고 소정규 뛰어야지.”

자리에서 일어났다.

* * *

“하하! 실제로 뵈는 건 처음이지요? 스탯 증강제의 제작자를 직접 만나 뵙게 되어 참으로 영광입니다!”

살에 반쯤 파묻힌 눈.

후덕한 인상의 중년인이 벌떡 일어나 인사를 건넨다.

그 뒤론.

“오랜만에 뵙습니다. 시문 님.”

훤칠한 미남.

서위룡이 다소 어두운 얼굴로 절도 있게 포권을 해왔다.

슬쩍 고개를 까딱임으로 인사를 받은 시문이 곧바로 자리를 향한다.

그에 후덕한 중년인.

“허허! 이거 저희 대륙성이 제대로 밉보였나 봅니다.”

대륙성의 부 길드 마스터.

종완지는 눈매를 꿈틀거렸다.

어디로 보나 아랫사람의 인사를 받는 듯한 태도였으니까.

하지만.

지금 불리한 쪽은 대륙성이었기에.

“그 마음은 충분히 이해하지요. 아무렴요!”

여전히 후덕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기분 나쁜 티를 저리 대놓고 내다니. 역시 애송이는 애송인 게지.’

속으론 비웃음을 삼키면서 말이다.

그는 노련한 상인처럼.

“어제 따로 협회에서 공식적인 사과를 건네드리긴 했으나, 이거 영 마음이 쓰여서 말이지요.”

제법 두툼한 손을 슥슥 비빈 그는.

“해서 개인적인 성의를 따로 준비해왔습니다.”

인벤토리에서 작은 병 하나를 꺼냈다.

검붉은 액체가 일렁이는 포션.

“저희 측에서 개발한 특수 영약, DS입니다. 일전에 한 번 드려서 효능은 알고 계시겠지요?”

드래곤 세럼을 테이블 위로 올렸다.

“어쩐지 복용하시지 않은 것 같아서 다시 알려드리지만, 특성을 향상시켜 주는 아주 귀한 영약입지요.”

“푸핫!”

졸지에 웃음을 터뜨리는 시문.

그에 종완지는 미소를 유지한 채, 슬쩍 고개를 갸웃했고.

“아! 실례했습니다. 예상치 못한 걸 주셔서 좀 놀래서요. 내용은 일전에 서위룡 씨에게 받아서 잘 알고 있습니다.”

시문은 진한 미소로 화답했다.

“흐하핫! 마음에 드신 것으로 보여 다행입니다.”

그의 후덕한 미소가 한결 짙어진다.

하나.

“그럼 성의도 보였겠다, 우리 심도 깊은 대화를…….”

“여기서 더 주실 건 없으시죠?”

말을 잘라가며 물어오는 시문에.

“예? 아. 하하! 그것이…….”

후덕한 미소엔 처음으로 난처함이 서렸다.

“DS는 저희 대륙성 내에서도 무척이나 귀한 영약인지라…… 물론! 원하신다면 한 병 더 보내드릴 수는 있습니다.”

“그러니까. 지금은 더 줄 것이 없다?”

“DS를 이렇게나 마음에 들어 하실지는 몰랐군요. 내 당장 본성에 연락하여…….”

핸드폰을 꺼내려는 종완지.

“그럼 됐습니다.”

그를 만류한 시문은 한쪽 방향으로 턱짓했고.

시문의 턱짓을 따라, 시선을 돌린 종완지는 잠시 눈을 끔뻑였다.

이유는 간단했다.

“뭘 말씀하고 싶으신 건지. 죄송하게도 잘 모르겠습니다만.”

호화스러운 문짝밖에 보이는 게 없는 것이다.

그때까지도 그의 후덕한 미소는 유지되고 있었으나.

“더 주실 것도 없는 분에게 문을 가리키면. 그게 무슨 뜻이겠습니까?”

이어지는 시문의 말에 곧바로 굳어버렸다.

‘줄 거 다 줬으면 꺼져라.’ 라는 소리임을 모를 리 없었으니까.

물론 굳은 것은 살집에 반쯤 파묻힌 두 눈일 뿐.

그의 두툼한 입가는 여전히 후덕한 미소를 머금고 있었고.

“이건…… 예상 못 한 전개인데 말이지요.”

“그래요? 앞으로 긴장 많이 하셔야겠는데요? 예상 못 한 일이 많이 생기실 테니.”

시문 역시 싱긋 웃으며 화답해주었다.

“…….”

잠시간의 침묵이 이어진다.

시문을 탐색하듯.

웃는 낯으로 가만히 바라보던 종완지는 결국.

“좋습니다.”

자연스럽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심기를 불편하게 하려고 온 것이 아니니, 이만 물러나겠습니다. 서위룡 형제님?”

“예, 부길마님.”

“부디 저를 대신해, 이야기 잘 나누고 와주시길 바랍니다.”

그는 서위룡의 어깨를 정겹게 두드려주곤.

응접실을 나섰고.

그 문이 닫히자마자.

“진심으로 사과드리겠습니다. 시문 님.”

서위룡은 곧장 자리에서 일어나 허리를 푹 숙였다.

어째 어제와 똑같은 상황에 헛웃음을 흘린 시문은.

“일단 앉으세요.”

어제와 똑같이 서위룡의 어깨를 잡고 일으켰다.

“어쩔 수 없었다는 거 압니다. 중국 측 연맹 대표, 위안훙은 종리추 쪽 사람이니까요.”

“하지만 안건이 통과되는 동안, 어떤 도움도 드리지 못했잖습니까?”

훤칠한 그의 인상에 어두운 그늘이 진다.

“저희는 시문 님께 상당한 후원을 받고 있는데…… 정말 면목이 없습니다.”

지난 만남 이후.

시문은 암시장을 통해, 다방면으로 그와 온건파를 후원해 주었는데.

정작 시문이 힘들 땐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했으니.

서위룡으로선 얼굴을 들 수 없는 것이다.

그 마음을 잘 아는 시문은.

“그야 그렇지요.”

의외로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을 표했다.

그에 서위룡의 얼굴이 한층 더 어두워진다.

“하지만 이젠 달라지지 않겠어요?”

“예?”

이어지는 시문의 말에 눈을 끔뻑이는 서위룡.

시문은 입구 쪽을 힐끔하며 말했다.

“지금 연맹의 중국 대표 자리는 공석이잖아요.”

“그렇습니다. 안 그래도 그 때문에 대륙성 내에서 이야기가…… 아!”

서위룡이 작은 탄식을 내지른다.

그는 아까와 달리, 반짝이는 눈으로 시문을 바라봤고.

“그 공석을 저희 쪽 사람으로 채우라는 거군요?”

“맞아요.”

시문은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아마 전 대표가 불명예스럽게 사퇴한 만큼, 현재 대륙성 내에 종리추의 여론은 그리 좋지 않을 테죠.”

“정확히 꿰뚫고 계시군요. 덕분에 저희 온건파가 제법 목소리를 내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러니까요.”

전 세계에서 이어진 사과 행렬 덕에.

성장 버프 대여를 무려 인당 5천억이란 값비싼 가격으로 대여해 준 시문이지만.

유일하게 그 비싼 대여조차 받지 못한 나라가 바로 중국.

즉 대륙성이었다.

‘그러니 부길마인 종완지가 이렇게 직접 대면을 요청한 거겠지.’

아무리 세계 2강 길드라 해도 결국 지금일 뿐.

세계수의 성장 버프로 성장할 차후 세계의 유망주들을 보노라면.

언젠가는 따라잡힐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라이벌인 아메리칸 드림과의 차이는 더욱 벌어질 테고 말이다.

“제가 서위룡 씨께 아주 비싼 조건으로, 미국의 절반인 5명 정도의 가입 티오를 내드리겠습니다.”

이어지는 시문의 말에.

그의 의중을 눈치챈 서위룡은 답했다.

“그럼 그런 조건과 상황을 만든 위안훙과 종리추에 대한 불만은 높아지겠군요?”

“맞아요. 당연히 종리추는 여론과 영향력을 잃고, 또 온건파는 그만큼 부상하겠죠.”

“그럼 공석인 연맹 대표 자리에 저희 측 사람을 앉히기도 쉬워질 테고요?”

“덤으로 그의 영향력에도 타격이 가겠죠. 길드의 미래에 악영햑을 끼쳤으니까요.”

“과연! 대단한 계책이십니다!”

서위룡은 이채 어린 눈으로 연신 감탄을 터뜨렸다.

시문은 차분한 어조로 놀라는 서위룡을 바라봤다.

“아마 이 일이 성공적으로 진행된다면, 앞으로 온건파는 본격적으로 종리추를 견제할 수 있을 겁니다.”

“물론입니다! 지금도 놈들의 영약 제조에 최대한 제동을 걸고 있습니다만, 보다 제대로 종리추를 견제할 수 있겠군요!”

종리추를 권력과 위신을 깎아내리고.

동시에 온건파가 제대로 일어설 지지와 명분을 얻게 된다.

그의 힘을 약화시킴과 동시에, 상대편 적을 강화시키는.

그야말로 일석이조의 효과였다.

거기다.

‘그렇다고 대뜸 제 성질대로 온건파를 숙청할 수도 없는 노릇일 테니.’

본디 저렇게 거대하고 강한 단체는 내부 분열이 가장 치명적이다.

이를 잘 아는 종리추가 섣불리 제 살 깎아 먹기를 할 리는 없을 터.

실제로.

‘전생에서도 온건파의 숙청은 정규 아레나 이후에 일어났으니까.’

서위룡에 의해 밝혀진 대규모 숙청 사건은 정규 아레나 이후에나 일어나지 않았나?

‘결국 이번 일의 대가로 연맹의 대표 자리는 온건파에 양보할 수밖에 없겠지.’

아니면 정말 제 살을 가르더라도.

‘성질대로 칼부림 한번 춰보든가.’

대신 그 대가로 앞으로 세계 2강 길드라는 타이틀은 버려야겠지만 말이다.

시문의 입꼬리가 절로 올라갔다.

‘정치는 이렇게 하는 거다. 종리추.’

괜히 성장 버프로 방해 공작을 펼치다가, 역으로 제 보따리의 물건까지 잃게 된 종리추.

시문은 승리를 만끽하는 미소 그대로 서위룡을 바라봤고.

“그럼 서위룡 씨. 앞으로는 제대로 된 파트너로서의 모습을 기대할게요.”

“물론입니다! 이만큼 판을 깔아주셨는데. 저 서위룡, 제대로 답해 보이겠습니다!”

서위룡은 절도 있는 포권으로 화답했다.

* * *

쾅!

고급스러운 대리석 바닥이 거세게 터져나간다.

그 위로.

“방금 뭐라고 했소. 숙부.”

등골이 오싹할 정도로 낮은 목소리가 뒤따랐고.

“며, 면목이 없구나.”

후덕한 풍채의 중년인.

종완지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

하나 그런 그를.

“후후. 인간들이란. 어쩜 같은 핏줄끼리도 이리 살벌한지.”

불쾌할 정도로 끈적한 목소리가 구원해 주었고.

제 숙부를 향하던 분노는 곧장.

“여긴 왜 기어 나온 것이냐. 데피나.”

목소리의 주인을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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