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한 천재 플레이어의 신화급 무기창조-194화 (194/349)

제194화

194화.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4)

“흐흠~.”

나지막한 흥얼거림.

그리 듣기 좋지는 않았지만.

흥얼거리는 이의 기분이 상당히 좋다는 것이 여실히 느껴졌다.

잠시 후.

“위 대표님. 도착했습니다.”

정장에 선글라스를 낀 남성이 차 문을 열었고.

“알겠네.”

고개를 끄덕인 위안훙은 곧바로 차에서 내렸다.

‘이곳이 한국 각성자 협회인가?’

고개를 쭉 들어야 보이는 높은 건물.

주변 조경도 그렇고.

현 협회장의 성격을 나타내듯.

협회의 건물은 전체적으로 깔끔하고 절제되다 못해, 차갑게 베일 정도의 분위기였다.

하나.

“흠. 우리보단 작군.”

코웃음을 친 위안훙은 수행원들의 안내에 따라 협회의 건물로 들어섰다.

띵.

한참을 올라가던 엘리베이터의 문이 드디어 열린다.

그러는 와중에도.

톡톡톡.

위안홍의 손가락은 쉬지 않고 주머니 속을 두드렸다.

차에서의 흥얼거림이 몸으로 나오는 것이다.

“어서 오십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앞에서 대기 중이던 2미터의 사내가 고개를 숙여온다.

“하하! 최 비서님 아니십니까? 여전히 골렘이라는 별칭에 걸맞은 풍채이십니다.”

“과찬이십니다.”

위안훙은 쾌활하게 웃으며, 최창욱과 악수를 나누었고.

“그럼 안으로 드시지요.”

최창욱은 곧바로 문을 열었다.

“감사합니다.”

감사를 표한 위안훙은 경쾌한 발걸음으로 협회장실에 들어섰다.

시문을 비롯해 김시혁과 박진욱, 이유정 등이 앉아 있는 것을 뻔히 보고도.

“아아! 김무열 협회장님. 정말 오래간만입니다. 협회장 취임 이후론 처음이지요?”

오직 김무열만을 향해 인사를 건네는 위안훙.

물론 협회장이라는 위치만을 놓고 봤을 때.

협회장과 먼저 인사를 나누는 것은 이상할 것이 전혀 없었다.

오히려 예법이나 절차를 따져보자면 이쪽이 맞는다고 볼 수도 있었고.

위안훙 역시 이를 잘 알았기에.

‘후후. 이 정도면 기선제압으로 충분하겠지.’

그는 은근한 미소로 시문 일행을 흘기곤.

김무열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하나.

오랜만에 봐서일까?

“위안훙. 네가 나와 악수를 나눌 주제던가?”

철목왕의 성격을 전혀 예상치 못한 위안훙은 잠시 눈을 끔뻑였고.

“예? 아…… 하하! 안 본 사이에 농이 많이 느셨군요.”

간신히 미소를 짜낸 그는 자연스럽게 말을 이었으나 그뿐.

“농?”

김무열은 눈매를 꿈틀하며 불편한 기색을 내비쳤다.

평소였다면 얼른 물러났겠지만.

“에이, 왜 그러십니까. 전 세계 연맹의 대표잖습니까?”

시문의 기를 미리 죽여놓으려는 의도로 시작한 인사였기에.

“당연히 한 나라의 협회장과…….”

결국 잊었던 선을 넘어버렸고.

“하. F급의 버러지 새끼가 감히!”

철목왕의 눈에선 대번에 불똥이 튀었다.

눈만이 아니었다.

꾸드득.

협회장 곳곳에 자리한 분재들.

그 분재의 가지들이 순식간에 자라나며, 위안훙에게 날아드는 것이다.

“무슨!”

“위 대표님!”

뒤따라 입장했던 수행원들이 서둘러 위안훙의 앞을 가로막는다.

세계 연맹의 수행원답게.

그들 역시 각성자인 것인지.

우웅.

각자의 기운으로 보호막을 치거나 분재를 쳐냈으나 그뿐.

아직도 현역으로 활동 중인 1세대의 랭커를 이겨낼 순 없었고.

“크헉!”

“윽!”

결국 방어가 뚫리며 팔과 다리 등에 얕지 않은 부상을 입었다.

수행원 중 하나가 김무열을 쏘아보았다.

“이게 무슨 짓입니까! 이분은 세계 연맹의 대표입니다! 어찌…….”

“한 마디만 더.”

날카로운 칼날처럼.

수행원의 말을 잘라 내는 김무열.

그는 서슬 퍼런 눈초리로 수행원을 쏘아보았고.

“딱 한 마디만 더 내뱉어라. 그 자리에서 5등분을 내 줄 테니.”

어느새 주변을 빈틈없이 포위한 분재 가지들은 독오른 뱀마냥.

꾸득.

꾸드득.

그 끝을 위협적으로 움직여대었다.

당연하게도.

“…….”

수행원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위안훙은 이마를 타고 흐르는 식은땀을 닦지도 못한 채.

“그…… 협회장님? 자, 잠시 진정하시는 게…….”

슬쩍 떨리는 두 손을 들고 김무열을 만류했다.

그에.

“입 하나로 그 자리에 앉은 놈이 감히.”

서슬 퍼런 시선이 위안훙을 향한다.

“연맹의 대표직에 몇 년 앉았다고, 나와 맞먹으려 드나? 위안홍, 안 본 사이에 정신이 나갔나 보구나.”

“협회장님. 잠시 오해가…….”

위안훙은 어떻게든 철목왕의 분노를 진정시키려 했으나.

“너만이 아니지. 대표직에 앉은 대부분의 놈들이 그렇지.”

한번 작동한 그의 분노는 쉽사리 꺼지지 않았다.

“뒷배 덕에 그 자리에 앉은 것들이, 국제기구의 대표라고 떠받들어주니 죄다 간이 배 밖으로 나왔어.”

차가운 비소.

“옛날 같았으면 이대로 죽여버려도, 누구 하나 찾는 이 없는 버러지 새끼들이었는데 말이다.”

그러나 당장이라도 찢어발길 듯한 그 눈초리에 결국 위안훙 역시 말문이 막혔다.

막힐 수밖에 없다고 해야겠지.

‘위, 위험하다.’

철목왕 김무열.

그는 지금 제대로 스위치가 켜졌으니까 말이다.

그리고.

김무열의 성정은 자신이 모시는 분과 크게 다를 바가 없었기에.

‘연맹의 대표고 뭐고 없어! 자칫하다간 진짜로 죽는다!’

위안훙은 지금 생사의 기로에 섰다는 것을 확신했다.

저 칼날 같은 사내는 제 권위를 위해.

가족까지 등지지 않았던가?

‘다, 당장이라도 머리라도 박아야 하는데…….’

대표직에 오른 뒤, 멈춰버린 실버대의 스펙 때문일까?

철목왕의 가공할 만한 살기에.

덜덜.

위안훙의 몸은 제대로 작동하지도 못했다.

그때.

“협회장님. 이만 용서해 주시죠.”

구원의 목소리가 귓속으로 파고들었다.

목소리만큼이나 뚜렷한 이목구비의 미남자.

시문이었다.

“오랜만에 뵈니 반가워서 그렇지. 위 대표님도 딱히 나쁜 뜻이 있어 보이지는 않았잖아요.”

그러나 위안훙의 긴장은 풀리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검성도 아니고 하필 저놈이 입을 열어!’

유명하다곤 해도 결국 플래티넘.

철목왕과 동격인 랭커 김시혁이나 이유정이 아니지 않은가?

괜히 불난 집에 부채질이나 하는 꼴이었다.

라고.

위안훙은 생각했다.

“쯧. 종리추의 얼굴을 봐서, 이번 한 번은 참아주지.”

혀를 찬 김무열은 분재 가지들을 거두며, 그의 숨통을 터주기 전까진 말이다.

‘이게 무슨…….’

위안훙은 휘둥그레진 눈으로 시문과 김무열을 힐끔거렸다.

‘그 철목왕이 고작 플래티넘 유망주의 말을 들어준다고?’

김무열을 잘 아는 위안훙으로서는 믿을 수 없는 상황.

하나 시문이 김무열의 폭정에서 꺼내준 것은 사실이기에.

“가, 감사합니다!”

김무열을 향해 고개를 조아린 위안훙은 냉큼 마련된 자리에 앉아.

“크흠! 그럼 길게 따질 것 없이, 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최대한 빨리 일을 끝내고, 이곳을 떠날 준비를 했다.

넥타이 끈을 슬쩍 푼 위안훙은 말했다.

“심드라실 길드로 보냈던 공문은 잘 도착했으리라 생각합니다.”

“이거 말이죠?”

테이블에 놓인 서류를 슥 미는 시문.

“맞습니다. 혹여나 이해되지 않는 조항이 있던지요?”

“조항은 아주 깔끔하더군요. 공문 자체가 문제라서 그렇지.”

“그…….”

답하려던 위안훙의 미간에 주름이 진다.

이유는 다름이 아니었다.

“한데. 심드라실의 길드 마스터는 검성이 아니신지요?”

지금껏 위안훙이 보고 말했던 대상은 검성 김시혁이었건만.

정작 답하는 것은 김시문이었으니까.

한데도 그 과정이 너무나 자연스러워, 위안훙도 이제야 눈치를 챈 것이다.

‘그러고 보니 자리의 위치도 이상한데?’

연맹의 대표인 자신과 맞은편에 앉은 시문.

길마인 검성은 그의 오른편으로.

부길마인 밤사냥꾼은 그 왼편으로 위치하고 있었다.

누가 봐도 시문이 심드라실의 대표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이다.

그 의문을 알아차렸는지.

“아아. 이번 일은 전적으로 맡겨서요. 저와는 아무 상관 없습니다.”

김시혁은 설렁설렁 손을 저었고.

위안훙의 눈이 점차 해괴해졌다.

하나.

“그럼 어서 이야기 나누시죠. 어차피 곧 가 보셔야 할 텐데.”

이어지는 시문의 재촉에 위안훙은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언제 저 잔혹한 철목왕의 마음이 변할지 모르는 일이었으니까.

“흠흠! 그럼 되돌아가서, 공문 자체의 문제라는 건 무슨 말씀인지요?”

목을 가다듬고 능글맞은 미소를 짓는 위안훙.

뻔히 알면서도 묻는 그 얼굴이 퍽이나 거슬릴 텐데.

또한 그것을 노리고 지은 미소인데도.

“말 그대로입니다. 공문이 ‘잘못된 것’ 같아서요.”

시문은 조금의 흐트러짐도 없이, 같은 미소로 마주 답했다.

“제가 아는 세계 연맹은. 이런 어리석은 짓을 할 기구가 아니거든요.”

그에.

“어리석은 짓? 지금 하시는 말씀이 어떤 위험을 담고 있는진 아십니까?”

위안훙의 눈매가 사나워진다.

저 어리석다는 표현은.

해당 안건을 발의한 자신을 향한 것이나 다름없었으니까 말이다.

“이는 세계 연맹의 결정을 헐뜯는 언행입니다. 이토록 방자하게 굴어서는!”

하지만 그런 위안훙의 말은 안중에도 없는지.

“으음. 슬슬 시간이 됐을 텐데…….”

시문은 핸드폰을 만지며 중얼거렸고.

“이!”

대놓고 보이는 무례에 위안훙이 폭발하려던 순간.

띠리리.

그의 품속에서 벨소리가 울렸다.

위안훙은 신경질적으로 핸드폰을 꺼내 끄려 했지만.

‘연맹이잖아?’

연맹의 연락처임을 확인한 그는.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마음에도 없는 실례를 구하며 연락을 받았고.

“그게 무슨 개소리야!”

대번에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갑자기 안건이 철회되다니?!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자신이 지금 이곳에 있는 이유가 무엇인데.

안건 철회라니?

순간.

‘잠깐. 설마……?’

한 가지 의문이 차올랐다.

무리도 아니었다.

‘얼마 전, 이유정 때도 이랬었잖아?’

이전에도 이러한 경험이 있었으니까.

‘그때도 전날에 모두 동의해놓고. 안건이 통과하는 당일 날, 갑자기 말이 달라졌었어!’

이유정의 빌런 지정 때도 안건이 통과되기 직전에 철회되었으니.

사실상 지금의 상황과 다를 바가 없었다.

이어.

‘어차피 곧 가 보셔야 할 텐데.’

아까 들었던 시문의 말이 위안훙의 머릿속을 스친다.

자연스레 위안훙의 시선은 시문을 향했고.

그 이유 모를 묘한 미소를 보고 나서야.

“아…….”

작금의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깨달았다.

“그…… 아니, 내가 직접 가겠다.”

위안훙은 입술을 질끈 깨물며, 연락을 끊고는.

“아무래도 미팅은 다음에 다시 잡아야 할 것 같습니다.”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렇겠네요.”

아주 자연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는 시문.

그에 혹시나 하던 생각이 점차 확신으로 향하는 위안훙이었지만.

우선은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을 처리하는 것이 먼저였기에.

“그럼. 이만 가 보겠습니다.”

예를 표하며 곧장 협회장실을 나서는 위안훙.

그의 등 뒤로.

“위 대표님?”

뚜렷한 미성이 들려온다.

“부디, 다시 뵐 수 있기를 바랄게요.”

영문 모를 시문의 말을 마중 삼아.

위안훙은 협회장실을 나섰다.

* * *

잇따른 해외 이동으로 힘들 법도 하건만.

위안훙은 거침없는 걸음걸이로 복도를 누볐다.

“단 한 나라도 빠짐없이 철회에 찬성했다고?”

그의 뒤를 급히 쫓는 어리숙한 여비서는 커다란 안경을 고쳐 쓰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 이, 이번 안건 철회에 대표분들 모두가 동의했다고 합니다.”

“하!”

헛웃음을 터뜨리는 위안훙.

그도 그럴 것이.

‘안건 철회는 과반수 이상의 동의가 필요한데. 단 한 나라도 빠짐없이 철회에 찬성해?’

찬성이 100%라니?

지난 수년간.

그가 중국의 대표직에 있으면서도 경험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김시문…… 대체 무슨 짓을 한 거냐!’

뚜렷한 이목구비의 미남.

남자가 봐도 감탄할 그 외모가 유독 지X맞게 느껴졌다.

“거기다 독일과 미국 쪽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습니다.”

“그게 무슨 말이지?”

위안훙은 눈매를 꿈틀하며, 열심히 뒤를 따라오는 여비서를 돌아봤고.

그녀는 자꾸 흘러내리는 안경을 고쳐 쓰며, 소심한 목소리로 답했다.

“아까 세르게이 님께 잠시 듣기론, 독일과 미국측에서 대표님의 사퇴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고…….”

“뭐?!”

국제기구인 세계 연맹의 복도임에도.

거침없이 올라가는 위안훙의 목소리.

‘이것들이…… 제 놈들도 전부 찬성해놓고! 갑자기 발을 빼다 못해, 나까지 팽하려 들어?!’

위안훙은 두 주먹을 꽉 쥐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미국이야 늘 마찰이 있어 왔기에 예상했다지만.

“독일도 거들었단 말이지?”

“그, 그렇다고 합니다!”

유럽의 맹주 중 하나인 독일은 아니지 않은가?

물론.

‘애당초 유럽이 미국이랑 나름 가깝게 지내기는 했지만…….’

이렇게 먼저 나서서 이야기를 꺼낸다는 것은 미국과 관련 없이.

온전히 자신의 뜻으로 움직였다는 말이 된다.

무엇보다.

‘밀러. 그 계집은 이런 일에 먼저 나설 만한 위인이 아닌데?’

그가 아는 한.

독일의 대표 밀러는 회의실 앞줄에 앉는 위치와 달리.

결코 먼저 나서는 인물이 아니었다.

실제로 그녀가 취임한 후.

제 입으로 꺼낸 안건은 두 손에 뽑을 정도로 적지 않던가?

그럼 이는 밀러의 뜻이 아니라.

‘설마 발텐베르크가 움직였단 말인가?’

그녀를 후원하고 대표직에 앉힌 세력.

발텐베르크의 입김이 닿았다는 말이 된다.

“망할……!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또다시 성을 토하는 위안훙.

이내 숨을 고른 그는 거칠게 앞머리를 쓸어올렸다.

뭐가 어쨌든 간에.

‘이대로는 위험해.’

심드라실 길드를 홀라당 삼키려다, 되려 뱉어내게 된 상황이다.

헌데 안건 철회를 물론.

‘여기서 사퇴까지 당하게 되면…….’

가진 바를 모두 잃는 것은 물론.

대륙성 자체가 엄청난 피해를 보게 될 것은 자명한 사실이었고.

당연하게도.

‘종리추 님께서 날 절대 용서치 않으실 거다!’

무자비한 자신의 주군은 결코 이 일을 그냥 넘어가지 않을 터였다.

‘그렇게는 안 돼!’

어느새 회의실에 도착한 위안훙은.

탕!

거칠게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그에게로.

200개가 넘는 시선이 꽂힌다.

거기다 누군가의 뒷담을 실컷 하다 갑자기 끊어진 것처럼.

“…….”

“…….”

기분 나쁜 적막감이 위안훙의 두 어깨를 짓눌렀다.

그것을 눈치챈 위안훙은.

‘개자식들!’

뚜벅.

이를 꽉 준 채.

형형한 눈빛으로 회의실의 맨 앞줄에 있는 자신의 자리로 향했다.

이동하는 도중.

러시아 대표 세르게이를 포함한, 친한 몇몇 대표들의 불안한 눈빛을 보내왔으나 그뿐.

‘찬성이 100%면 저놈들도 안건 철회에 찬성을 했다는 거겠지.’

결국 자신을 배반한 이들이다.

위안훙은 그들에게 시선도 주지 않고.

턱.

제 자리에 도착해 입을 열었다.

“단도직입적으로 묻겠습니다. 안건이 철회된 이유가 무엇입니까?”

여전히 이어지는 침묵.

그에.

탕!

제 책상을 거칠게 내려치는 위안훙.

그는 번들거리는 눈으로 좌중을 훑으며.

“제가! 방금! 묻지 않았습니까?”

씹어먹을 듯 말을 이었다.

평소대로라면.

강대국의 대표가 놓는 으름장답게, 상당한 영향력을 보였을 텐데.

“…….”

“…….”

돌아오는 시선들은 이전과 너무나 달랐다.

어딘가 묘하게 무시당하는 듯한.

그래.

꼭 왕따를 당하는 듯한 눈빛.

그러한 눈빛이 무려 200개가 넘어갔고.

위안훙의 맞은편.

“음.”

가장 가까이 앉아 있던 흑인 남성인 마커스가 이 기분 나쁜 침묵을 깨뜨렸다.

하나.

“위 대표는 이번에도 아는 게 없으신가 보군요.”

이어지는 그의 말은 아까의 그 엿 같았던 침묵과 다를 바가 없었다.

“위 대표. 이미 철회된 안건입니다. 따져봐야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말을 잇는 마커스.

그에 위안훙의 눈매는 한결 더 사나워졌다.

“당연히 의미가 있지요! 모두가 동의를 했고! 이 안건이 통과되어, 제가 직접 한국까지 가지 않았습니까!”

“아아. 그것이 불만입니까? 걱정 마십쇼. 안 그래도 긴 휴가를 드릴까, 논의 중이었거든요.”

능청스럽게 어깨를 으쓱이는 마커스.

그에.

“이 망할 깜둥이 새끼가!”

결국 위안훙은 분노를 터뜨렸다.

“그 안건은 당신이 가장 먼저 동의했잖아! 이제 와서 무슨 개소리야악!!”

“워우! 위 대표. 흥분하신 거 같은데. 진정…….”

“진정은 누구 마음대로 진정이야?!”

한번 둑이 터져서일까?

“너희도 마찬가지다! 이 박쥐 같은 새끼들아!”

위안훙의 입은 거침이 없었고.

“성장 버프를 나눠 먹자 할 땐 두말없이 찬성하던 놈들이 이제 와서 뭐? 철회?”

그 불똥은 회의실 전체로 번졌다.

“안건이 장난이냐? 너희들 꼴릴 땐 뒤도 안 보고 투표해 놓고, 이제 와서 무슨 개소리를 해?! 네놈들이 그러고도 한 나라의 대표냐고!!”

당장 누구 하나를 물어 죽일 듯.

삿대질까지 해가며 열변을 토하는 위안훙.

그러나 그의 거침없는 언사에 기분 나빠하는 이들은 없었다.

오히려.

“한 나라의 대표라? 마침 말씀 잘하셨습니다. 위 대표.”

잘 되었다는 눈빛들이 그를 향해 쏟아졌고.

“한 나라의 대표라는 이가, 이런 국제적인 자리에서 인종차별도 모자라 폭언을 쏟아내다뇨?”

미국의 대표인 마커스는 진한 미소를 지으며.

“저 마커스는 현 중국의 대표인 위안훙이 대표직에서 사퇴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만…….”

자신의 자리에 놓은 버튼을 눌렀다.

“다들 어떠신지요?”

삑.

마커스의 머리 위로 초록 불이 들어온다.

그에 화답하듯.

삐비빅.

회의장에 있던 모든 대표의 머리 위로 초록 불들이 켜졌고.

눈치를 보던 러시아 대표.

세르게이를 비롯한 위안훙과 친한 대표들 역시.

삑.

슬그머니 초록 불을 띄웠다.

결과는 안건 철회 때와 같은 만장일치였다.

* * *

고급스러운 방문이 닫히고.

털썩.

동양계의 중년 남성, 위안훙은 바닥으로 털썩 주저앉았다.

초점 없는 그의 눈동자는 정처 없이 허공을 떠돌았다.

그때.

띠리리.

벨소리가 울려온다.

그의 품이 아닌.

“대, 대표님. 전화가…….”

어느새 따라 들어온 어리숙한 여비서의 것이었다.

멍한 위안훙의 눈동자는 그녀가 내민 핸드폰 화면을 확인하곤.

“아.”

순식간에 초점을 되찾았다.

“이, 이리 내!”

그는 얼른 여비서의 핸드폰을 낚아채곤.

덜덜.

사시나무처럼 떨리는 손으로 전화를 받았다.

그의 귓속으로.

-보고는 들었다.

무저갱을 연상시키는 낮은 목소리가 파고들었다.

방금까지만 해도 혼이 반쯤 나간 위안훙이었거늘.

전화 너머의 목소리는 그런 그의 정신을 대번에 되찾아주었다.

“조, 종리추 님을 뵙습니다!”

여비서를 제외하곤 아무도 없을진대.

전화를 받은 채, 직각으로 허리를 숙이는 위안훙.

하나 그 충직한 행동에도.

-심드라실의 성장 버프를 견제하라고 했더니, 결과가 고작 이것이냐?

전화 너머의 목소리는 좀처럼 밝아지질 않았다.

“죄, 죄송합니다! 소인이 미흡하여 이런!”

-방금 대표 자격까지 박탈당했다지?

“그, 그것이!”

-날 너무 실망시키는구나. 위안훙.

그걸 종리추가 어떻게 벌써 알았는지는 머리에 들어오지도 않는 위안훙.

-F등급의 실버인 널 그 자리에 앉힌 것은, 그나마 쓸 만한 머리 때문이었거늘.

“죄, 죄송합니다! 한 번만, 한 번만 기회를 주신다면 제가 어떻게든 복구를!”

그는 그저 손이 발이 되도록 싹싹 빌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조차 듣기 싫은 것일까?

-되었다. 이 일의 수습은 다른 이가 할 테니. 넌 바로 귀국하도록.

일방적인 말과 함께 전화는 끊어졌다.

툭.

위안훙의 손에서 핸드폰이 떨어진다.

아무런 질책 없이 귀국을 명령했음에도.

위안훙은 죽음을 앞둔 사람같이.

“으으…….”

온몸을 덜덜 떨어댔다.

이유는 다름 아니었다.

‘주, 죽는다! 가면 반드시 죽을 거야!’

임무의 실패 후.

대륙성으로 귀환했던 이들 중 살아남은 이는 단 하나도 없었으니까.

아마 이대로 돌아가면 앞선 이들처럼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질 터.

‘도망쳐야 해!’

대륙성의 추적을 얼마나 피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어쩌면 F급 특성의 실버 랭크에게 인력을 쓰지 않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위안훙은 얼른 여행용 가방을 꺼내.

방안의 옷가지들과 물건들을 쌌다.

‘일단 몇 년간의 로비로 받은 자금이 있으니. 그걸로 최대한 버텨 보는 거야!’

돈세탁도 확실히 된 자금이라, 전산으로 걸릴 위험도 낮을 터.

터만 잘 잡고 몇 년 잠수만 타주면.

대륙성에서도 더는 찾지 않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렇게 마음먹은 위안훙이 가방을 들고 몸을 돌리는 순간.

스릉.

차가운 금속이 땀이 줄줄 흐르는 그의 목에 닿았다.

“위 대표님은 정말 충직한 분이시네요. 맹주의 명령에 이렇게 재빨리 움직이시고.”

익숙한 목소리.

그곳으로 고개를 돌리자.

“그럼 본국으로 가실까요?”

어리숙했던 여비서가 어느새 혈향이 가득한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툭.

그의 여행용 가방이 바닥을 두드린다.

여비서의 가녀린 손에 질질 끌려 나가는 위안훙.

어째서일까?

끌려가는 그의 머릿속엔 문득.

‘부디. 다시 뵐 수 있기를 바랄게요.’

시문이 했던 작별 인사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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