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3화
193화.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3)
요 근래 들어.
“흐흐흥!”
올리비아 덴슨의 기분은 오늘 최고조에 달했다.
이유는 다름이 아니었다.
‘이걸로 가입 리스트도 대충 정해졌고~.’
심드라실 길드의 성장 버프.
정확히는 김시문이 지닌 성장 버프의 옵션 때문이었다.
흥얼거리는 올리비아의 귓가로.
“아주 신이 나셨네.”
다소 질린 듯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올리비아는 그곳으로 눈길도 주지 않은 채.
척.
중지를 들어 올렸고.
“얼씨구? 진짜 기분 좋나 보네?”
그 중지의 대상인 금발의 남성.
올리버 덴슨은 한쪽 눈썹을 슬쩍 들어 올렸다.
이내.
“하긴, 경험치 증가 50%에 스탯 성장률 110%만 해도 놀라울 지경인데.”
그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설마 매주 1회 사망 페널티 무효화 옵션이 추가될지는 꿈에도 몰랐지.”
“올리버, 여긴 직장입니다.”
“아아, 뭐든 간에.”
올리버는 설렁설렁 손을 흔들며, 소파에 턱 하니 몸을 늘어뜨렸고.
평소라면 당장 목덜미에 정강이를 꽂아 넣었을 올리비아지만.
“이건 누나도 몰랐던 거 아냐?”
지금의 컨디션은 상당히 좋았기에.
“그야 그렇죠.”
올리비아는 너그럽게 동생의 무례를 넘어가 주었다.
“거기다 3개월 동안 대여비 무료, 추가 가입 티오까지 10명으로 전 세계에서 최고로 많이 배정받았습니다.”
“키햐~ 저 인원 전부가 3개월간 대여비 무료면, 대체 얼마를 아낀 거야?”
감탄을 토하는 올리버.
그런 동생의 리액션이 상당히 흡족한 것인지.
각진 안경 속.
올리비아의 차갑던 눈매가 조금이지만 곡선을 그리고 있었다.
하지만.
띠리리.
“누나, 전화 왔어.”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긴 직장입니다. 올리버 팀장.”
그런 기분이 바닥으로 처박히는 건.
“마커스, 어쩐 일…… 지금 뭐라고 하셨죠?”
정말이지 순식간이었다.
-그게…… 후, 말씀드린 그대롭니다.
“심드라실 길드의 성장 버프를 세계 공공자원으로 지정하겠다?”
하!
지금 내가 뭘 들은 거지?
그러한 얼굴로 이마를 턱 하니 부여잡는 올리비아.
두 눈과 입이 한계까지 벌어진 그녀의 모습은 좀처럼 보기 힘든 모습이었고.
이를 아는 올리버는 가만히 입을 닫고 눈치를 살폈다.
이어.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십니까?!”
급작스레 언성이 높아지는 올리비아.
“대체 어떤 머저리가 그딴 안건을!”
높아진 그녀의 목소리는 갑자기 뚝 끊어졌고.
한껏 떠졌던 그녀의 눈동자엔 불안감이 깃들었다.
“잠깐, 설마 이 말도 안 되는 안건이 통과된 건 아니겠죠?”
제발 아니어야 한다.
속으론 그렇게 수십 번도 넘게 외쳤으나.
사실 감정을 배제하고 철저히 이성적인 관점에서 보면 그녀도 알고 있었다.
애당초 마커스가 저런 뉘앙스로 먼저 전화를 걸어온 시점부터.
-안타깝게도…… 그렇게 되었습니다.
이미 일은 벌어졌다는 뜻이었으니까.
콰앙!
사무실 중앙.
아레나 부산물로 제작된 고급스러운 테이블이 단박에 터져 나간다.
마법계임에도.
“대체. 당신은. 뭘. 하고 있었던 거죠?”
다이아 최상위권에 달하는 올리비아의 주먹은 그만한 파괴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 정도 안건은 충분히 막으실 수 있는 위치 아니던가요? 이리도 무능하실 줄은 상상도 못 했습니다.”
단도직입적인 비난이 튀어나온다.
평소의 올리비아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행동이었지만.
마커스는 그에 대한 반박 대신.
-당신의 마음은 충분히 이해합니다만, 이는 길마께서 직접 허가하신 일입니다.
또 한 번 그녀를 경악하게 할 답을 내뱉었고.
“……데릭이요?”
올리비아의 목소리는 순식간에 가라앉았다.
-예, 워낙 사안이 큰 터라 길드로 직접 연락을 했었는데, 길마께서 안건을 통과시키라더군요.
“…….”
얼어붙은 듯.
그 자리에서 침묵하는 올리비아.
이내.
“알겠습니다. 방금의 무례는 사과드리죠.”
-아닙니다. 왠지 알려드려야 할 것 같아서요.
“배려 감사드립니다. 그럼 먼저 끊겠습니다.”
평소의 모습을 되찾은 그녀는 연락을 끊자마자.
휙!
곧바로 휴대폰을 집어던졌다.
다행히도 그녀의 행동을 예상하고 있던 올리버는.
“누나 미쳤어? 데이터 백업도 안 해놨잖아! 연락처 다 날아가면 어쩌려고!”
얼른 수많은 데이터가 담긴 부장님의 핸드폰을 지켜 냈다.
하나 그것은 안중에도 없는지.
달칵.
어느새 제 자리로 간 올리비아는 길드 마스터에게 다이렉트로 연결되는 전화기를 들었다.
이어.
-아아! 마커스, 이 못된 친구 같으니.
남성미가 물씬 풍기는 중후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부디, 제가 납득할 만한 의도여야 할 겁니다.”
올리비아는 서릿발처럼 차가운 목소리로 응수했고.
-별도의 상의 없이 결정한 건 미안하게 생각해. 올리비아.
데릭은 사과가 담긴 목소리로 답했다.
“전 사과 따위가 아니라. 납득할 만한 의도를 물었습니다.”
-어음…… 그게 말이지…….
곤란함이 한껏 묻어나는 목소리.
그에 올리비아는 전화기의 상단부를 신경질적으로 내려쳤고.
파앗.
그 위로 볼을 긁적이는 남성의 홀로그램이 떠올랐다.
그쪽 역시 이쪽의 모습이 보이는 것인지.
-아아! 올리, 제발 나 좀 용서해 줘.
각진 턱의 남성은 미국 최고의 사나이라는 이미지와 맞지 않게.
양손을 모아 애원했으나.
“입 닥치고 이유나 말하라고.”
올리비아는 차갑게 일갈했다.
그에 입맛을 다신 데릭은 수염을 슬쩍 쓸고는 입을 열었다.
-너무 컸잖아.
“그게 다야?”
-그게 다라니? 경험치 증가량이나 스탯 성장률은 그렇다 치지만, 사망 페널티는 선을 넘었잖아.
세계 최강 길드의 마스터답게.
-우리만 그렇게 생각하겠나? 다들 똑같은 생각을 한 거야. 그러니 안건이 통과된 거지.
어느새 무척이나 진중한 얼굴로 말하는 데릭.
-너도 알잖아. 올리. 세계 연맹의 안건은 과반수가 넘지 않으면 통과될 수 없다는 거.
고로.
절반 이상의 대표들이 이번 안건에 동의했다는 뜻이었고.
-찬성이 90% 이상이었어. 우리 쪽 표심을 제외하더라도, 통과될 확률이 높은 안건이었다고.
실제로 90% 이상의 대표들이 이번 안건에 찬성을 했었다.
그러나.
“…….”
올리비아는 무표정하게 눈앞의 사내를 응시할 뿐이었고.
-하아, 올리. 일에 대한 너의 프라이드는 잘 알아.
데릭은 작게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경쟁자는 누를 수 있을 때 눌러둬야 해. 한두 번 있었던 일도 아니잖아?
이제 와서 왜 그러는데?
이해가 가지 않는 얼굴로 물어 오는 데릭.
그러나 올리비아의 얼굴은 여전히 그대로였고.
-올리, 네가 김시문의 영입에 역대급으로 정성을 쏟고 있다는 건 잘 알지만…….
데릭은 다시 한번 사과를 표하려 했으나 그뿐.
“넌 내가, 단순히 내 영역을 침범했다는 이유만으로 이러는 거 같아?”
잠자코 있던 올리비아가 침묵을 깨고 데릭의 말을 끊어냈다.
“물론 그 이유가 없는 건 아니야. 하지만 이렇게 일을 벌일 거였으면, 더 철저했어야지.”
-이미 세계 연맹에서 안건이 통과되었어. 상대가 성삼도 아니고, 뭘 더 철저해야 한다는 건데?
“그건!”
뭐라 답하려 했으나.
차마 말을 잇지 못하는 올리비아.
이유는 다름이 아니었다.
‘김시문이라면 뭔가 있을 거 같으니까 하는 소리지!’
뭔가 있을 것 같다.
라는 그녀가 가장 싫어하는 답이.
그녀의 입에서 나오려는 탓이었다.
“후.”
잠시 숨을 고른 올리비아는 앞머리를 거칠게 쓸어올렸다.
“결정적으로 이건, 우리의 신념에도 반하는 행동이야. 심드라실은 동맹으로 대해야 할 길드라고.”
-검성에 성녀, 밤사냥꾼까지. 나름 탐나는 전력이긴 해도, 저 성장 버프에 비할 바는 아니야.
단호히 고개를 젓는 데릭.
그에 올리비아의 눈매가 한층 치켜 올라갔다.
“데릭, 너 그거 알아? 길드 초창기 때와 굉장히 많이 달라진 거?”
-올리. 나이로나 위치로나, 변해야 정상이야. 마냥 철없던 애송이 때처럼 행동할 순 없다고.
“내 말은 그런 뜻이 아니야.”
-그럼 대체 뭔데?
“그거야!”
또 한 번 막히는 올리비아의 말문.
이내.
올리비아는 작은 실소를 머금었다.
‘그래. 슈퍼 히어로니, 세상의 평화니. 다 어린 날의 개소리였던 거지.’
외적인 영향이든 내적인 영향이든.
사람은 누구나 변한다.
그리고 지금.
‘나도 결국 이렇게 변했는데. 누구더러 뭐라 하는 건지.’
그 시절의 신념을 당당히 내뱉지 못하는 자신 역시 마찬가지였다.
숨을 고른 올리비아는 말했다.
“좋아, 이미 벌어진 일이고. 나름 일리도 있으니 네 결정을 따르겠어.”
-역시 이해해 줄 줄 알았어. 올리.
“하지만.”
데릭의 말을 끊은 올리비아는 다분히 사무적인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
“이 안건이 불발되는 아주 사소한 변수라도 생긴다면. 그때부턴 철저히 내 의견에 따라.”
-예스 마이 퀸.
큰 산을 넘은 것마냥.
대번에 고개를 끄덕이는 데릭.
-그럼 올리? 이 일은 이걸로…….
그는 안도의 미소를 걸치며 말을 이으려 했으나 그뿐.
타앙.
전화기를 내려찍듯.
통화를 끊어버리자, 미국 최강의 사나이는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하아…….”
그녀는 깊은 한숨을 쉰 채.
또각.
통짜 유리로 된 창밖으로 몸을 돌렸다.
저 멀리 우뚝 솟은 건물.
현 대한민국에서 가장 비싸다는 건물이 보인다.
어째서일까?
‘웃기죠? 버프를 돈 받고 대여해 주는 놈이, 세상 위하는 척 말을 하고.’
저 호화스러운 건물이 씁쓸하게만 느껴졌다.
* * *
또르륵.
퐁.
액체 특유의 맑은 소리가 줄지어 이어진다.
그리고 그 맑은 소리의 원인.
포포퐁.
제법 큰 플라스크 속에선 맑은 녹색의 액체가 쉬지 않고 끓어올랐고.
-오, 오빠! 온다! 반응이 온다고!
플라스크 속 현자의 돌은 흥분이 가득 담긴 눈알을 마구 흔들렸다.
이어.
퐁!
마지막 거대한 방울이 터짐과 동시에.
[지구에서 최초로 ‘스탯 증강제’를 제작하셨습니다.]
[보상으로 잔여 스탯 5를 획득합니다.]
[업적 ‘스탯의 주도자’를 달성하셨습니다]
[업적 포인트 5,000점을 획득합니다.]
메시지들이 주륵 눈앞으로 떠올랐다.
선택 분배가 가능한 잔여 스탯 5.
업적 포인트 5천 점이라는 어마어마한 보상.
그러나 시문의 눈엔 전혀 들어오지 않았다.
-오빠! 빠, 빨리 확인 좀!
“그래.”
숨이 넘어가려는 현자의 돌.
보상 메시지들을 치워버린 시문은 곧바로 완성된 포션의 정보를 확인했다.
[스탯 증강제]
등급 : X
-복용 시 주력 스탯이 영구적 10 상승.
-첫 복용 시 주력 스탯이 영구적 5 상승.
-첫 복용 시 모든 스탯이 영구적 5 상승.
유일한 재료로 만들어진 증강제.
고수준의 연금술로 효능을 한층 더 높였다.
“초대바…….”
시문이 뭐라 외치기도 전에.
-꺄아아아아앙!!
눈을 까뒤집으며 자지러지는 현자의 돌.
-이런 걸 연성하다니이잉!!
그리도 기쁜 것인지.
바닥을 데굴데굴 구르는 녀석에 시문은 피식 웃음을 흘리곤 스탯 증강제를 챙겼다.
‘완전 초대박이군. 한 번만 섭취해도 주력 스탯 15에 올 스탯까지 5이라니.’
자신의 연성력처럼.
주력 스탯이 얼마나 희귀한 스탯이냐에 따라.
또 보유한 스탯의 수가 얼마나 많냐에 따라, 엄청난 효율을 내보이는 스탯 증강제.
‘거기다 세계수의 샘물이 허용하는 한, 계속 이걸 만들어 낼 수 있단 말이지.’
물론 샘물의 양 자체는 그리 많지 않았으나.
이만한 효과의 영약을 꾸준히 뽑아낼 수 있다는 것부터가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그때.
똑똑.
연구실의 문이 두드린다.
“들어오세요.”
시문의 허락에 열리는 문.
밤사냥꾼 박진욱이었다.
“저…… 시문 님. 빨리 와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그는 무척이나 어두운 얼굴로 시문을 불렀다.
* * *
펜트하우스의 넓은 거실.
자리한 이들은 하나같이 주변을 뒤흔드는 인물들이건만.
“…….”
“…….”
정작 거실에 내려앉은 것은 무거운 침묵이었다.
그리고.
“그러니까.”
시문은 아주 미세한 실소를 머금은 채.
“우리 길드의 성장 버프를 글로벌 공공자원으로 지정하겠다?”
팔락.
방금 다 읽은 서류를 중앙 테이블로 툭 던졌다.
“그것도 공문으로 일방적인 통보를 해서?”
그런 시문의 귓가로.
“쉽게 볼 일이 아니다. 내용을 보면 알겠지만, 찬성표가 무려 91%에 육박하지.”
서늘하고 절제된 목소리가 들려온다.
협회장 김무열이었다.
“아무리 일방적인 통보라 해도, 연맹의 결정이다. 이걸 무시할 순 없어.”
“그거야 협회장인 숙부의 입장이겠죠.”
“너!”
대번에 눈을 부라리는 김무열.
“네놈도 알 텐데? 그리 여유로운 척해 봐야, 연맹의 결정을 거부할 순 없다는 것을.”
“손해를 보긴 하겠지만, 거부하지 못할 건 없습니다. 단지 협회장인 숙부가 곤란해질 뿐이죠.”
“하!”
변함없는 시문의 의견에 김무열은 코웃음을 쳤다.
시문은 한결 날카로워지는 숙부를 향해 손을 저었다.
“아아, 오해하진 마세요. 그냥 상황이 그렇다는 겁니다.”
“그래서? 연맹의 결정을 거부하고. 네 뜻대로 하겠다?”
김무열의 물음에.
“뭐, 그것도 하나의 방법이긴 하죠.”
시문은 대수롭지 않게 고개를 끄덕였다.
“다 쌩까고 제멋대로 버프 대여 체제를 유지하겠다고 하면, 자기들이 어쩌겠어요?”
설령 보이콧을 한다 한들.
그러지 않은 세력이 가입 인원수를 쓸어가면.
다른 세력들은 손해를 볼 수밖에 없는 구조다.
즉, 자신이 거부해 버리면.
세계 연맹 입장에선 별다른 해결 방안이 없다는 말이다.
김무열은 슬쩍 고개를 저었다.
“네가 이렇게 생각이 짧은 놈인 줄은 몰랐군.”
“말이 그렇다는 거죠 숙부. 실제로 최근의 UN도 그렇잖아요.”
시문은 어깨를 으쓱였다.
“과거 1차, 2차 세계대전에 크게 기여를 한 건 사실이지만, 지금에 와서 누가 UN말을 듣습니까? 다 자기 이익부터 챙기지.”
“UN과 세계 각성자 연맹은 다르다. 그들이 가지는 각성자 사회의 영향력을 모르느냐?”
“알죠. 아마 이걸 무시했다간, 숙부는 물론이고, 한국에 온갖 제재들이 들어오겠죠.”
대표적으로 아이템의 수입, 수출 같은 거요.
그렇게 읊조린 시문에 급속도로 굳어 가는 김무열.
그 모습에 비소를 흘릴 만도 하건만.
“형. 나야 형의 뜻을 따르겠지만, 거부하기엔 너무 위험한 거 아냐?”
동생 김시혁은 숙부를 두드리는 대신.
다소 우려 섞인 얼굴로 물어왔다.
김시혁뿐만 아니었다.
“맞아요, 오라버니. 연맹의 결정에 강제력은 없지만…… 실상은 다르잖아요.”
“아마 정치권이나 여론도 시문 님을 쳐내는 쪽으로 움직일 겁니다.”
여기 모인 모든 이들이 아는 것이다.
지금 이게 얼마나 큰 사안인 것인지.
“너무 걱정 마. 방금 말했잖아? 그냥 말이 그렇다는 거라고.”
시문은 피식 웃으며 답했다.
“여론이든 비난이든 내 알 바는 아니지만, 애당초 마이웨이로 거절할 마음은 없었어. 결정적으로.”
그렇게 말하는 시문의 시선이 맞은편에 앉아 있는 김무열을 향한다.
“숙부의 입지를 흔들 마음도 없고. 숙부는 계속 협회장 자리에 있어 줘야 하거든.”
그에.
“이미 연맹 측에서 표결이 난 안건이다. 무슨 수라도 있다는 말이냐?”
표정이 약간 풀린 김무열이 물어왔고.
“연맹에서 표결 난 안건이라고, 죄다 실행되진 않잖아요.”
“이건 결이 다른 문제다. 듣기론 중국이 안건을 꺼내긴 했다만, 91%의 표결이면 전 국가들이 허락한 거나 다름없지.”
“그렇죠. 우리가 성삼 같은 길드도 아니고. 따지고 보면 신생 길드에 불과하니까요.”
그러니 이렇게들 뜯어먹으려고 발버둥이실 테고.
그렇게 흥얼거린 시문은 테이블 위에 던져놓았던 서류를 톡톡 두드렸다.
“한데 만약 찬성을 표했던 이들이 하루아침에 뜻을 바꾼다면요?”
“길드 가입 인원수로 회유라도 하겠다는 말이면, 미리 오산이라고 말해두지.”
“당연히 아니죠. 공공자원으로 지정되면 비싼 돈 낼 필요도 없는데. 그걸로 회유가 되겠어요?”
“그럼 대체 뭐가 있다는 말이냐?”
답답한 것일까?
인상을 찡그리며 물어 오는 김무열에.
“원래도 방법이 있긴 했었는데. 방금 막 더 깔끔한 방법이 생겨서요. 그걸 활용해야죠.”
시문은 씩 웃으며 핸드폰을 꺼냈다.
톡톡.
핸드폰 화면을 두드리는 시문은.
“참! 숙부. 이렇게 공문이 내려왔으면, 절차상 연맹 측의 인사도 방문하지 않나요?”
잠시 손가락을 멈추며 물었고.
“그렇다. 안건을 직접 발의했던 중국 측의 대표, 위안훙이 내일 방문하기로 했지. 너도 협회로 출석해야 한다.”
김무열은 고개를 끄덕이며 답해주었다.
“그것참 잘됐네요.”
대번에 튀어나오는 시문의 답에.
“네놈. 대체 무슨 생각인 거지? 뭘 어쩔 셈이냐?”
김무열은 답지 않게 혼란스러운 얼굴로 캐물었고.
“어쩌긴요. 날 고립시켜서 뜯어먹으려 했으니, 똑같이 고립시켜서 뜯어먹어 줘야죠.”
시문은 답과 함께 핸드폰을 귓가에 가져다 대었다.
-어머~ 시문 님. 안 그래도 연락을 드리려고 했었는데…… 연맹이 한발 빨랐나 보네요?
휴대폰 너머에서 야릇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린의 말에 시문의 입가가 씩 올라갔다.
“원래 이런 일엔 누구보다 빠른 게 국제기구 아니겠습니까?”
-오호홋! 역시 시문 님, 아주 직설적이시네요. 그래서, 어떤 재밌는 일을 구상 중이실까요?
“호오? 왠지 말하면 그냥 들어줄 느낌입니다?”
-저희 VVIP이시잖아요? 이정도야 서비스로 해드릴 수 있죠.
“세계 연맹에 따로 개인적인 원한이 있는 건 아니고요?”
-눈치도 빠르셔라~. 원래 그런 남잔 싫어했는데. 요즘 들어 자꾸 좋아지네요~.
나긋나긋하게 답하는 린.
그러나 협조적으로 나와주는 그녀에 시문은 인벤토리를 열곤.
찰랑.
맑은 녹색의 액체가 담긴 포션을 꺼냈다.
“곧 밤사냥꾼을 통해, 물건 하나를 보내 드릴 겁니다.”
별다른 지시가 없었는데도.
저벅.
옆에 앉아 있던 박진욱이 대번에 그 포션을 받았다.
그리곤.
“허, 허억!”
얼굴이 새하얗게 질리다 못해, 얼어버리는 박진욱.
그에 다른 이들이 의문 어린 눈으로 바라봤으나 그뿐.
“이걸 샘플링해서 소정규의 정보를 사간 손님들께 보내 주셨으면 합니다.”
이어지는 시문의 통화에 다시 시선이 꽂혔다.
-생각보다 간단하네요? 그거면 될까요?
“메시지도 하나 첨부해주세요. 심드라실 길드의 이름으로.”
-알겠어요. 말씀해 주세요.
린의 말에 시문은 휴대폰을 좀 더 입가로 가져다 대었다.
“동양엔 과유불급, 소탐대실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의 얼굴은 유려하다 못해, 권위적으로 승화했다.
흡사 오래된 정계의 노괴나 낼 수 있을 듯한.
영문 모를 위엄이 한껏 묻어나는 얼굴.
“부디 늦지 않게 현명한 판단 바랍니다, 라고요.”
평소와 사뭇 다른 시문의 모습에.
“…….”
“…….”
주변 이들은 잠시 숨을 죽였다.
그리고 다음 날.
“한국은 오랜만이군.”
말끔한 정장 차림의 중년 남성.
위안훙이 한국에 입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