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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천재 플레이어의 신화급 무기창조-171화 (171/349)

제171화

171화. 일타쌍피 (4)

대한민국 각성자 협회의 최상단.

협회장실은 서늘하다 못해, 살벌한 분위기가 공기를 짓누르고 있었다.

이러한 분위기에 감히 들어올 생각조차 못 하고.

“비, 비서장님…… 차, 차를…….”

“내가 드리겠다. 가보도록.”

입구에서 벌벌 떨던 비서의 쟁반을 건네받은 최창욱은 협회장실의 문을 닫았다.

고요한 침묵.

뚜벅.

그러나 일반인이라면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할 무거운 분위기를 뚫고.

딸칵.

최창욱은 이 무시무시한 분위기의 두 원인 앞으로 찻잔을 내려놓았다.

최상급의 엘븐티를 블렌딩한 차.

그 싱그럽고 맑은 향기가 최창욱의 긴장된 몸을 풀어준다.

최창욱은 티 나지 않게.

차의 향기를 한껏 들이켜곤, 조심스레 물러났다.

“…….”

“…….”

살기만 뿜지 않을 뿐이지.

미중년과 미남자는 이미 사람 몇을 도살했을 시선으로 서로를 노려봤다.

최창욱은 저도 모르게 읊조렸다.

“닮았군.”

그 말에.

스윽.

서로를 노려보던 두 남자의 시선이 자연스레 최창욱을 향한다.

나름 다이아 최상위권.

잘하면 랭커까지 노려볼 수준의 플레이어이건만.

“아. 그, 그것이!”

두 남자의 살기는 그런 최창욱으로서도 쉽사리 버틸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최창욱은 찰나의 기지를 발휘해.

“기, 기세! 두 분 다 마법계셔서 그런지, 워낙 기세가 비슷하시다는 말입니다!”

짜낼 수 있는 최대의 변명을 뱉어냈다.

훌륭한 대처였을까?

슥.

두 남자의 시선이 다시 서로를 향했다.

골렘처럼 굳건한 얼굴과 달리.

‘일 날 뻔했군.’

최창욱은 놀란 가슴을 가까스로 쓸어내리며, 서로를 노려보는 김시문과 김무열을 힐끔했다.

‘서로 기분이야 더럽겠지만…… 정말 닮기는 닮았어.’

물론 자세히 따지고 들면 성립되지 않는 말이었다.

냉철의 대명사인 김무열과.

유하다 못해 뺀질거린다고 볼 수 있는 김시문은 극과 극의 성격이지 않은가?

하지만 뭐랄까.

말로는 형용하기 힘든 부분에서 묘하게 닮음을 느꼈다.

예컨대.

‘분위기. 그래. 분위기가 닮았어.’

이내 이를 악물고.

저도 모르게 터져 나오려는 실소를 참아내는 최창욱.

‘내가 생각해도 참 개소리 같군.’

하지만.

‘두 사람 다 화를 내는 방식은 확실히 어딘가 유사해.’

오랜 세월 김무열을 모시고.

김시문을 나름 어릴 때부터 봐왔던 입장에서 느끼는 일종의 감각이었다.

‘김시혁이었으면 앞뒤 안 재고 강기부터 갈겨버렸을 텐데.’

당장 최근만 하더라도.

시문의 펜트하우스에서 강기를 뽑아 들지 않았나?

어디 그뿐이던가.

아마 시문은 모르겠지만.

김시혁은 랭커가 되기 전부터도, 김무열과 수도 없이 살수를 나눠왔었다.

그에 비하면 시문의 저 탐색과 절제가 섞인 분노는 참으로 김무열의 그것과 유사했다.

최창욱은 속으로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원수는 서로 닮는다더니. 옛말은 틀린 게 없군.’

거기다.

‘하필이면 또 그 여자를 쏙 빼닮아선…….’

김씨 일가 특유의 선하고 맑은 느낌의 이목구비와 정반대로.

김시문은 뚜렷한 이목구비를 지니고 있지 않은가?

비록 이복동생이긴 해도.

이젠 유명인인 시문이 검성 김시혁과 형제라는 걸 누구도 예측하지 못할 정도로 말이다.

‘그러니 무열 형님도 유독, 김시문에게 민감히 반응하시는 거겠지.’

이젠 사라져버린 철목왕의 약점.

그녀와 똑 닮은 김시문이 저리 정반대로 행동해대니.

천하의 김무열도 유독 김시문 앞에선 감정적일 수밖에 없는 거겠지.

그렇게 최창욱은 외면과 내면.

둘 모두가 극과 극이면서도 묘하게 비슷한 두 남자의 침묵을 씁쓸하게 지켜봤다.

그리고.

“계속 그렇게 입만 닫고 있을 겁니까?”

씁쓸했던 최창욱의 시선이 단박에 긴장으로 변했다.

“숙부도 나이를 피해갈 수는 없나 봅니다? 같은 소릴 몇 번이나 물어야 되고.”

“…….”

“10년 전. 데스페라도 놈들을 국내로 밀입국시킨 이유가 뭐냐고요.”

평소라면 당장이라도 베어버릴 무례이거늘.

김무열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 시문을 노려보기만 했다.

“그렇게 보기만 한다고 뭐 달라집니까? 숙부. 제가 한 번만 더 똑같은 질문을 하게 만들면, 후회하게 되실 거예요.”

싱긋 웃고 있으나.

김무열에 조금도 밀리지 않는 시문의 눈빛.

아니, 오히려 김무열보다 더 살벌했다.

‘자꾸 입을 다물겠다면. 사안을 써서라도 강제로 입을 열게 만드는 수밖에.’

용력을 지닌 것들을 지배할 수 있는 사안.

시문은 그것을 이용해 강제로 실토까지 시킬 생각이었으니까.

“끝까지 입을 다무시겠다?”

걸친 미소와 다르게 시문의 눈매가 사나워진다.

우웅.

그런 왼쪽 눈으로 용력이 모여들려던 찰나.

“의도가 뭐냐.”

침묵을 지키던 김무열의 입이 열렸다.

“숙부. 전 답을 요구했지, 질문하란 적은 없습니다만.”

“건방진 놈.”

코웃음을 치는 김무열.

“내가 10년 전 데스페라도를 밀입국시킨 것까지 알아냈다면, 그 이유도 뻔히 알 텐데. 왜 굳이 묻느냐는 말이다.”

그는 여느 때와 같은 서늘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시문은 피식 웃음을 흘렸다.

“과연. 쉽게 넘어가는 법이 없네요. 숙부.”

김무열의 말대로다.

10년 전 상류층 테러 사건 당시.

김무열은 협회장직에 오른 지 얼마 되지 않은 상태였다.

협회장직에 오르지 못했다면 모를까.

이미 협회장이 되었는데 데스페라도 같은 세계 최대의 빌런 조직을 밀입국시킨다?

‘아무리 생각해도 숙부답지 않은 판단이야.’

김씨 가문의 적자인 김시혁을 증오하는 것까진 이해하겠으나.

성인도 아닌 시혁이 하나 처리하자고, 상류층 테러에 가담한다니.

뭘 어디로 봐도 득보단 실이 훨씬 많은 판단이었다.

그렇기에.

“도무지 이해가 가질 않아서 그래요.”

“이해?”

시문은 김무열의 대답을 납득할 수 없었다.

“그렇잖아요? 데스페라도가 어떤 놈들인지 잘 아시는 분이, 협회장 임기 초반에 그런 짓을 벌인다는 게.”

시문의 답이 의표를 찌른 것일까.

김무열은 잠시 입술을 달싹이더니 입을 다물었다.

이내.

“반대로 생각해 본 적은 없나? 내가 네놈들을 그토록 죽이고 싶어 한다고.”

그는 모처럼 감정이 실린 목소리로 답했으나 그뿐.

“숙부. 제가 바보로 보이세요?”

시문은 어림도 없다는 듯, 헛웃음을 흘렸다.

“숙부가 저흴 미워한다는 건 잘 압니다. 그 이유도 납득이 가고요. 그럼 유정이랑 영희 이모는요?”

“…….”

“뭐 좋아요. 유정이랑 영희 이모까지 미워한다고 해두죠.”

시문은 침묵하는 김무열에 고개를 설렁설렁 끄덕였다.

이미 이순철 회장이 10년 전 사건에 가담했다는 걸, 암시장의 주인인 린에게 들은 상태였다.

아마 이순철 회장과 연계된 부분이 있는 거겠지.

하지만.

“또 다른 상류층 인사들은? 그들까지 적으로 돌릴 이유가 된다고 생각하세요?”

당시 김무열은 협회장직에 앉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상황.

당연히 타 정계나 재계의 인물들과의 관계도 그리 깊지 않은 상황일 텐데.

그들을 적으로 돌리는 짓을 벌인다고?

닫혀있던 김무열이 입이 열렸다.

“그땐 나도 젊었다.”

“……지금 뭐라고 하셨어요?”

전혀 상상치도 못한 답에 멈칫하는 시문.

하나.

“같은 소릴 여러 번 해야 알아듣는 건, 네놈도 마찬가지인 모양이지?”

김무열은 대답 대신, 독기어린 비소를 지을 따름이었다.

“난 네가 싫다. 김시문, 네가 그리 아끼는 동생놈은 더욱 싫지. 10년 전에 난 그 감정을 참아내지 못했다.”

“하! 천하의 철목왕이 감정 따위에 휘둘렸다고요?”

그 말이 무언가를 건드린 것일까?

꿈틀.

김무열은 눈매를 크게 꿈틀거렸다.

어디 눈매뿐이던가?

“그래. 그따위 것에 휘둘렸었지. 내 인생 최대의 오점이었어.”

그는 시문으로서는 난생 처음 보는 얼굴로.

“그 망할 놈의 가문도, 김시혁도, 네놈도. 그리고 네 어미도! 전부 찢어버리고 싶었다! 다 죽여 버리고 싶었어!”

자리까지 박차며 격한 노성을 내질렀다.

진득한 살기까지 묻어나는 김무열의 서슬에.

‘뭐, 뭐야?’

시문은 당황스럽게 눈을 끔뻑였다.

하나 그도 잠시.

“지금 뭐라고 하셨습니까? 제 어머니요?”

시문은 침착하게 결코 흘려들을 수 없는 그의 말을 되짚었고.

한번 터져버린 감정 때문인지.

김무열은 차오르는 당황을 숨기지 못하고 눈동자를 굴렸다.

그리곤.

“숙부, 제 어머니를 아세요?”

입술을 꽉 깨물었다.

“……모를 수 없지. 잘난 형님의 유일한 오점이니까.”

“그래요……?”

말끝을 흐리는 시문.

그도 그럴 것이.

‘숙부가 어머니와 잘 아는 사이였나?’

자신을 출산한 직후 돌아가신 어머니.

덕분에 어머니에 대한 기억은 없었으나.

아버지에게 들어 어떤 분인지 정도는 알고 있었다.

‘어머니는 아버지와 만나기 이전까지. 외진 시골에서만 사셨다고 했는데?’

애당초 아버지와 숙부는 적자와 사생아 관계로 마찰이 잦았다.

숨겨둔 애인에 대해 시시콜콜 이야기를 나눌 사이가 아니란 말이다.

거기다.

‘무열이 녀석과는 이제 돌이킬 수 없겠구나…….’

어릴 적.

아버지께서 술김에 유일한 형제와 가까워질 수 없다는 걸 한탄하셨던 기억이 있었다.

한데 숙부가 어머니를 저런 식으로 언급할 정도라니?

‘아무리 제 형님이 밉다 해도. 그 애인까지 저렇게 증오하지는 않잖아.’

시문의 미간이 좁혀진다.

‘내가 모르는 뭔가가 있나 본데…….’

이내.

생각을 정리하듯.

지그시 눈을 감는 시문.

‘그래봐야 결국 내가 태어나기도 전의 일. 지금에 와서 무슨 의미가 있겠냐.’

현재로서 확실히 할 것은 하나다.

‘숙부는 10년 전 그 사건으로 나와 시혁이를 죽이려 했다.’

부수적으로, 순간 살의를 내뿜을 정도로 어머니를 증오했고.

그 복수심으로 데스페라도까지 밀입국시켰다.

그래.

이게 요점이다.

‘그렇다면,’

키이잉.

다시 눈을 뜨는 시문.

어느새 활성화된 오딘의 눈이 정확히 김무열을 노려보았고.

따악.

튕겨진 손가락 끝에선 뜨거운 열기를 품은 검이 조형된다.

‘여기서 숙부와의 인연을 끝내는 수밖에.’

검자루를 쥔 시문의 살기가 김무열만큼이나 진득해지는 순간.

“잠깐!”

2미터의 거구가 시문을 앞을 가로막는다.

골렘 최창욱이었다.

“시문 님. 잠시 진정하시고 제 이야기 좀 들어 보십시오.”

“이야기?”

고개를 갸웃하는 시문.

그러나 무방비하게 양팔을 벌린 최창욱은 자신을 공격하려는 것이 아닌, 명백한 중재의 형태였기에.

“좋아요. 어디 들어나 보죠.”

시문은 레바테인을 거두며 답했다.

최창욱은 얼른 말을 이었다.

“그날. 무열 형님께선 시문 님을 노리지 않으셨습니다.”

“최창욱!”

뒤편에서 날이 선 목소리가 날아든다.

평소라면 당장 그곳을 향해 머리를 숙였을 텐데도.

“오히려 시문 님의 안전은 보장받으려 하셨죠.”

최창욱은 꿋꿋하게 말을 이었다.

그에.

“최창욱!!”

꾸드득.

김무열의 노성과 함께 협회장실 곳곳에 마련된 분재의 가지들이 날카롭게 쏘아진다.

하나.

“그만.”

짧게 울리는 미성.

시문의 목소리에 찢어발길 듯 날아들던 가지들은 뚝 움직임을 멈췄고.

“숙부. 진정하세요. 지금 이야기 중이잖아요.”

시문은 부드럽게 미소로 김무열을 다독였다.

놀라운 것은.

시문의 말에 진심으로 진정이 된 것인지.

스륵.

정말로 제자리에 털썩 주저앉는 김무열.

하나 마음까지 통용되는 말은 아니었는지.

“이……!”

김무열은 경악을 넘어, 얼이 빠진 눈으로 스스로를 내려다보았고.

시문은 그런 숙부에게서 눈을 떼.

“그래서요?”

김무열과 같이 얼이 빠진 최창욱을 바라봤다.

“예? 아! 예!”

시문의 시선에 최창욱은 얼른 정신을 차리고 말을 이었다.

“협회장님께선 시문 님의 안전을 조건으로 데스페라도의 밀입국을 허용하셨습니다.”

“제 안전을 조건으로요?”

한쪽 눈썹이 올라가는 시문.

“숙부. 저 말 진짭니까?”

시문은 의문이 가득한 눈으로 김무열을 바라봤고.

“…….”

김무열은 당연하게도 아무런 답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대답은 필요 없었다.

키잉.

‘사실이로군.’

왼쪽 눈으로 활성화된 사안.

그것이 김무열의 침묵을 꿰뚫고, 최창욱의 말이 사실임을 알려주었으니까.

시문은 다시 최창욱을 바라봤다.

“결국 숙부가 데스페라도를 밀입국시키긴 했네요?”

왜 자신의 안전을 요구했는지에 대해선 따로 묻지 않았다.

최창욱도 그 부분이 의외였는지.

“그…… 어쩔 수 없었습니다.”

잠시 시문의 눈치를 살피고는 말을 이었다.

“협회장님께서 놈들을 밀입국시키지 않아도, 누군가는 그들을 밀입국시켰을 테니까요.”

“아.”

시문은 작은 탄식을 흘렸다.

“어차피 누군가로 인해 밀입국은 하게 될 테니. 차라리 내 시야 안에 두겠다?”

“역시 바로 간파하시는군요. 맞습니다. 그놈들은 보통 미친 것이 아니니, 시야 안에 두는 게 안전하다고 판단하셨습니다.”

최창욱의 긍정에 시문은 잠시 턱을 괴곤 답했다.

“그 누군가는 당연히 이순철 회장일 테고요.”

“그, 그걸 어떻게!”

깜짝 놀라는 최창욱.

“네놈. 그걸 어찌…….”

김무열 역시 놀란 눈으로 시문을 바라봤다.

이내.

“그렇군. 최우석이 모두 털어놓은 건가?”

“예.”

그전에 암시장의 주인이 따로 알려주기도 했지만요.

뒷말을 삼킨 시문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곤, 품속을 뒤적거려 휴대폰을 꺼냈다.

이어.

-정말일세! 그 연구실도 이순철 회장이 직접 지시한 일이네!

익숙한 목소리와 함께.

-어디 그뿐이던가? 국내의 빌런들을 빼돌린 것부터…….

휴대폰 화면 속에선 어둑한 배경에 열변을 토하는 중년인이 보였다.

김무열은 저도 모르게 읊조렸다.

“죄다 불었군…….”

“맞아요. 이 정도면 이순철 회장을 끌어내리기도 어렵지 않겠죠?”

시문의 물음에 김무열은 얼굴을 굳혔다.

“설마. 나더러 그 늙은이의 목을 치라는 말이냐?”

“비슷합니다. 당장은 저 자리에서 끌어내려야겠죠. 부가적인 처벌은 그 후고요.”

싱긋 웃는 시문.

그에.

“네놈이 직접 해도 되지 않느냐?”

“에이~ 보잘것없는 서민인 제가 어떻게 그럽니까.”

“하!”

기가 차는 것일까.

코웃음을 친 김무열은 싱글거리는 시문을 노려봤다.

“그저 네놈의 손을 더럽히기 싫은 거겠지. 또 아무리 이런 증거가 있다 한들, 그 노괴를 끌어내리는 건 쉬운 일이 아닐 테니까.”

“이유를 더 보태자면, 정계랑 재계에 있는 숙부의 인맥 때문이기도 해요.”

시문은 식어버린 차를 한 모금 들이켰다.

“지난 수십 년간 상류층 중에서도 상류층로 군림하고 있던 사람입니다. 감히 넘보지도 못했던 사람의 약점이라니? 얼마나 군침이 돌겠어요?”

김무열은 별다른 대답 없이 가만히 시문을 노려봤다.

이내.

식어버린 차를 단번에 비워낸 그는 탁! 소리 나게 찻잔을 놓고 말했다.

“일단 네놈의 계산 중 하나는 알겠다. 이순철 회장에 대한 복수와 별개로, 나와 그 늙은이의 관계를 끊어놓으려는 걸 테지.”

과거 대륙성.

정확히는 종리추와의 관계를 끊어놓듯 말이다.

“지금까지 손을 잡았던 노괴의 등을 내가 먼저 찌르게 해서 말이야.”

이번엔 시문이 별다른 대답을 하지 않는다.

단.

얄미울 만치 싱글거리는 미소가 답을 대신할 뿐.

김무열은 뿌득 이를 갈았다.

“꼭 네놈을 향한 나의 충성심이라도 확인하는 꼴이군. 김시문, 내가 너의 종으로 보이더냐?”

“뭘 그렇게까지 말합니까. 숙부.”

“닥쳐라!”

쾅.

이젠 테이블을 강하게 내리치는 김무열.

박살난 찻잔의 파편 덕에 그의 주먹에선 피가 흘렀지만.

“답해라. 이번 일을 굳이 내게 맡기는 진짜 이유가 무엇이냐?”

김무열은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시문을 노려봤다.

“애당초 김시혁이나 이유정, 이영희도 충분히 이런 일 처리가 가능할 텐데?”

김무열의 말대로.

이순철 회장을 끌어내리는 일은 굳이 김무열이 아니더라도 가능했다.

“특히나 이 씨의 두 모녀에게 맡기면 처리가 더 매끄럽겠지. 제 핏줄이라고 이런 짓을 옹호할 자들이 아니까.”

같은 가족이자 같은 그룹.

동시에 상류층치고 사명감도 뛰어난 이들이니.

아무리 제 혈연이라 해도 결코 이순철을 용서치 않으리라.

“그건…… 저도 알아요.”

쓰린 기억밖에 없던 전생.

당시 충격 보도로 보았던 유정이의 마지막 모습이 떠올랐다.

‘그때 어떻게든 유정이를 찾으려 애썼지만, 다시는 만날 수 없었지.’

시문의 미소가 묘하게 가라앉는다.

시문은 다시 식어버린 차를 한 모금 마시곤, 성이 난 제 숙부를 응시했다.

“그 세 사람에겐…… 이런 일을 시키고 싶지 않아서요.”

“뭐?”

예상치 못한 대답이었을까?

독이 올랐던 김무열의 눈매가 해괴하게 풀렸다.

“말 그대롭니다. 특히 유정이와 이모님에겐 패륜이 될 수 있잖아요. 그런 걸 저지르게 하고 싶지 않아요.”

“너.”

“그러니 숙부. 이번 일은 우리 선에서 끝냅시다. 어차피 숙부나 저나, 이런 일로 잃을 것도 없잖아요?”

물질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그렇게 씁쓸한 미소로 읊조리는 시문에.

“…….”

잠시 침묵하는 김무열.

하나 고요한 침묵과 달리,

‘우리 선에서 끝내요. 무열. 어차피 당신이나 저나, 잃을 것도 없잖아요?’

데자뷔처럼.

언젠가 들어 본 적이 있던 말에 그의 눈동자는 무척이나 혼란스럽게 흔들렸다.

그리고.

‘누가 그년의 핏줄 아니랄까 봐! 끝까지 선한 척은!’

분노로 치환되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속에서 목구멍까지 대번에 뜨끈한 무언가가 치밀어 오른다.

김무열은 눈을 지그시 감으며, 안간힘을 써 끓어오르는 감정을 다잡았다.

당장 이 감정을 실현만 하면.

저 빌어먹을 조카놈의 목숨을 끊어내는 것도 충분히 가능할 테지만.

‘너는 죽어서도 날……!’

이글거리는 김무열의 눈동자에 뚜렷한 이목구비의 미남자가 담긴다.

결코 잊을 수 없는 잔상이 미남자의 얼굴 위로 겹쳐 올랐다.

그러자.

“……알겠다.”

용암처럼 들끓던 감정을 삽시간 식혀버린다.

누가 그러던가?

과거는 되풀이된다고.

김무열은 그렇게.

“이 일은 내 선에서 끝내지.”

똑같은 죽음을 두 번 맞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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