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6화
166화. 전조 (1)
“그게…… 정말이냐?”
칼날같이 서늘한 목소리.
하나.
“정말…… 그런 실험이 있었다고?”
날카로운 목소리가 어째 희미하게 흔들리는 느낌이었다.
착각은 아니었다.
두 번이나 되묻는 날카로운 인상의 중년인.
협회장 김무열의 손은 답지않게, 희미한 떨림을 간직하고 있었으니까.
“예.”
시문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여 못을 박아주었다.
그에.
“그럴 수가…….”
김무열 곁에 석상같이 있던 최창욱 역시 떨리는 손으로 입가를 가렸다.
“이 미친 늙은이가! 각성자로 그따위 짓을 벌여?!”
김무열의 눈매가 대번에 사나워진다.
“천하의 이순철도 세월을 피해갈 순 없는 모양이군. 이딴 미친 짓을 저지르다니.”
당장 누구 하나라도 물어뜯을 듯.
으르렁거리는 김무열.
시문은 그런 숙부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숙부가 이렇게까지 반응할 줄은 몰랐는데.’
협회장이라는 위치만 놓고 보면 마땅히 분노할 일이긴 했다.
각성자와 관련된 일들은 엄연한 그의 영역.
극비리에 천인공노할 인체 실험을 자행했으니, 협회장으로서 어찌 분노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단순히 인체 실험을 했다는 사실 때문에, 저리 화내는 건 아니겠지.’
김무열을 바라보는 시문의 눈매가 슬쩍 가늘어진다.
‘숙부의 성격으로 보자면…… 그래. 협회장으로서의 권위겠군.’
본디 나라의 각성자가 범죄의 피의자가 되던, 피해자가 되던.
모든 처벌은 협회의 손에서 이루어져야 했다.
‘정당’하다는 이름 아래.
‘정해진 절차와 법규’에 따라 처리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래야 각성자 협회라는 기관이 의미를 지니고.
협회장인 숙부 김무열 역시 제 권위와 존재의의를 지킬 수 있었으니까.
‘참 숙부답네.’
숙부 김무열은 결코 의인이 아니다.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선 무슨 일도 서슴지 않으니, 오히려 악인이라 볼 수 있겠지.
하지만 시문은 그것을 나쁘게 보지 않았다.
도리어 긍정적이었다.
‘나나 시혁이는 다소 물렁한 부분이 있으니까.’
단순히 살인에 대한 거부감이나 특정 도덕성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 것 따위에 매몰될 될 수준이었으면.
이미 전생의 지구에서 그때까지 살아남을 수 없었을 테니까.
다만.
‘숙부는 우리와 결 자체가 달라. 그렇기에 상황을 보는 관점이나 모색 방향도 다르지.’
방식의 차이랄까?
자신이나 시혁이는 적을 처단하되, 그 방식의 한계가 있다.
가령 적을 죽이더라도.
아무런 관련이 없는 가족이나 친인척에게까지 그 죄를 묻지 않지.
하지만 숙부는 다르다.
‘아무런 관계없는 주변 이들까지도 전부 쓸어버리지. 뒤탈이 없도록 아주 철저하게.’
흡사 과거에나 이루어졌던 삼족을 멸하는 수준이나 다름없었다.
가혹한 처사이나 그만큼 뒤끝을 남기지 않는다는 장점도 분명하게 있었다.
‘그러니 아버지의 업적이 무색하게. 저만한 위치와 힘을 쥐고 있는 거겠지.’
한국 최고의 플레이어이자, 전대 협회장이었던 아버지.
그 대단했던 전대의 협회장이 있었음에도.
단 한 번도 지금의 협회장이 전대보다 못하다는 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애당초 거론조차 되지 않았다.
숙부가 언론에도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 이전에.
지나칠 정도로 가혹하고 냉정한 그의 일 처리는 누구보다 각성자 협회라는 단체에 걸맞았으니까.
그리고 그런 인간이기에.
“그럼 숙부. 이번 일에 관여하실 생각입니까?”
시문은 미등록 시설에서 일어난 일들을 친히 숙부에게 알려준 것이다.
김무열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당연한 소릴 하는군. 이는 월권이나 마찬가지다.”
‘월권이라…….’
시문은 속으로 말을 곱씹으며 미소를 지었다.
‘역시 숙부답군.’
각성자 범죄 사건을.
그것도 인체 실험이라는 경악스러운 사건에 ‘월권’이라고 칭하는 김무열.
이순철 회장과 숙부의 관계를 돌이켜보면 뻔했다.
‘이순철 회장이 자신의 영역을 침범했다는 의미이겠지.’
협회장인 숙부는 각성자와 관련된 영역을.
그리고 이순철 회장은 돈이 되는 영역을 지키기 위해 손을 잡았을 터.
결국 각자의 욕망을 채우기 위한 관계인 것인데.
‘이순철 회장이 이런 식으로 숙부의 영역에 발을 들이고 있었으니…….’
어떤 논의도 없이.
나름의 파트너인 숙부에게도 비밀로 하며, 각성자를 상대로 이런 일을 벌였다.
심지어 협회에 등록도 되어있지 않은 시설에서 말이다.
이는 인체 실험이고 뭐고를 떠나서.
‘협회장직에 민감한 숙부라면 절대 참을 수 없겠지.’
숙부 김무열에겐 자신을 무시하다 못해, 엿먹인 처사라고밖에 할 수 없었다.
고로.
“그래서. 그 미등록 시설에서 알아낸 것은 더 없나?”
숙부 김무열과 이순철 회장의 연대는 끊어질 수밖에 없었다.
하물며 욕망으로 이루어진 관계라면야.
말할 것도 없지.
“듣기론 공허로 다 날아가 버린 것치고. 네놈은 얻은 게 좀 있어 보인다던데 말이다.”
시문은 답지 않게 말꼬리를 늘리며, 거듭 재촉하는 숙부를 가만 바라봤다.
‘역시. 걸려들었군.’
이내.
“있죠. 제가 또 한 능력 하잖아요?”
미소가 과해지지 않도록, 최대한 입꼬리를 붙잡으며 답했다.
“알아보니까. 미등록된 시설이 한둘이 아니더라고요.”
“뭐?!”
두 눈을 부릅뜨는 김무열.
곁에 시립해 있던 최창욱 역시 휘둥그레진 눈으로 시문을 바라봤다.
“그게 정말인가? 그런 시설이 더 있다고?”
“저도 놀랐어요. 최 비서님. 저기 지도 좀 주시겠어요?”
휴대폰을 꺼내려던 시문은 협회장실의 한쪽 벽에 걸린 지도를 가리켰다.
최창욱은 얼른 그것을 뜯어, 손님용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어디 보자. 여기랑 여기, 그리고…….”
펜으로 지도의 곳곳을 찍어가는 시문.
경상도, 전라도와 같은 남부지방부터 중부지방까지.
찍힌 곳은 무려 5곳이나 되었다.
“대략적인 위치예요. 정확한 주소까지는 모르지만, 대충 어디쯤인지는 알려드릴 수 있어요. 그건 나중에 메시지로 보내드리죠.”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위치를 잡아내는 시문에.
“…….”
김무열은 잠시 말을 잃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렇게 위치까지 짚어 낼 정도라면.
사실상 미등록 시설에 대한 정보는 거의 다 알아낸 격이었으니까.
그렇기에.
“이 정보, 확실한 거냐?”
김무열은 의심 어린 눈초리로 물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 않은가?
시문이 시설을 탈출하고 난 후, 다시 조사해 본 결과.
철원 지하에 있었던 미등록 시설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었다.
마치 시설에 해당하는 부분만 통째로 도려낸 듯 말이다.
당연히 시설 내부에 있던 정보도 그만큼, 어쩌면 그보다 더 확실하게 처리되었을 텐데.
어떻게 시문이 타 미등록 시설의 위치를 이토록 자세히 알고 있단 말인가?
하지만.
“당연히 확실하죠. 당사자에게 직접 알아낸 정보인데.”
“강다영의 말로는 인간은 최우석이란 박사놈뿐이었다던데. 대체 그 당사자라는 게 누구지?”
“거기까진 말해줄 수 없죠. 어쨌든, 제 말은 다 사실입니다.”
시문은 그저 여유로운 미소로 답할 뿐이었다.
그에.
“……네놈.”
김무열은 날카로운 시선으로 쏘아보았고.
시문은 미소를 잃지 않고 똑바로 숙부의 눈을 응시했다.
‘굳이 사안으로 실험체의 머릿속을 뒤졌다는 건, 말해 줄 필요가 없지.’
실험체 M249를 시작으로 다른 십여 명의 실험체들까지.
시문은 사안으로 그들을 통제했을 뿐만 아니라, 검은 제련소 때처럼 직접 그들의 심층까지 접근했었다.
‘실험의 여파 때문인지 몰라도. 실험체들은 정신 방벽이 허물어져 있었지.’
덕분에 그들의 속으로 침입하자마자, 노도와 같은 정신의 파편에 휩쓸렸으나.
‘귀속 스탯도 101스탯의 성장 효과를 받을 줄은 꿈에도 몰랐어.’
총 연성력 202의 달성.
그 절반의 영향을 받는 마기와 용력, 사기 등의 귀속 스탯은 101이 되었고.
덕분에 가장 큰 성장 체감을 준다는 100스탯 구간의 영향을 제대로 받았다.
‘체감이 엄청났었지.’
태풍에 밀려오는 파도같이 밀려들던 정신 파편.
그러나 두 다리가 방파제로 변한 것처럼.
시문은 무너진 실험체들의 정신 속을 거닐며, 그들의 기억 조각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래서 인체 실험이 자행된 미등록 시설들을 찾는 것도 그리 어렵지 않았다.
‘가장 두려웠던 기억인지 몰라도, 유난히 크고 모난 형태였으니까.’
딱 봐도 범상치 않은 형태의 파편.
그것들은 죄다 실험체들이 인체 실험을 당했을 때의 파편이었다.
비록 정신이 무너진 터라, 완벽한 정보를 얻을 수는 없었으나.
다행히도 실험을 당했던 위치는 온전히 기억하고 있었다.
‘좀 신기하긴 했어. 다른 시설에서 실험한 실험체가 모두 철원의 시설에 있다니.’
아마도 뭔가 용족화 실험의 마지막 부분이 철원의 시설에서 이루어졌던 게 아닐까?
하고 예상할 따름이었다.
그런 흔들림 없는 시문의 눈빛 때문일까.
“네놈도 알겠지만, 이건 대충 처리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작게 한숨을 내쉰 김무열은 진중한 목소리로 말했다.
“성삼이 국내에서 어떤 위치인지는 말할 필요는 없겠지.”
“물론이죠.”
갤럭시 아레나가 등장하기 전부터 최고의 자리에 군림했던 기업.
도후 이영희 덕에 갤럭시 아레나란 변화에도 여전히 최고라는 자리를 유지하고 있었다.
당연히.
“아무리 나라도 성삼을 건드는 건, 많은 리스크가 있다. 애당초 흔든다고 흔들릴 체급도 아니지.”
천하의 협회장 김무열이라 해도.
성삼은 쉬이 건들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만약 네놈이 알아낸 정보가 틀렸다면, 단순히 허탕 치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하물며.
“성삼의 그 노괴는 결코 당하고만 있는 성격이 아니야.”
성삼에서도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회장과 연루된 사건 아니던가?
이순철 회장이 어떤 인물인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김무열의 입장에선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하는 상황.
하지만.
“숙부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는 압니다만.”
정보에 확신이 있는 것인지.
아니면 젊은 혈기에 겁을 상실한 것인지.
“걱정하지 마세요. 제 정보는 틀릴 리가 없으니까요. 숙부는 그저 어떻게 이용할지만 생각하시면 돼요.”
시문은 지나칠 정도로 차분하게 답할 뿐이었다.
“…….”
김무열은 시문의 눈을 가만히 응시했다.
한 치의 흔들림도 없는 눈빛.
어째서일까?
언젠가.
자신의 인생을 송두리째 흔들었던 이가 떠오른다.
빠득.
이가 강하게 맞물린다.
김무열은 점점 또렷해지는 그 형상을 짓뭉개듯.
얼른 두 눈을 감았다.
그렇게 얼마가 지났을까.
“……좋다. 네놈의 정보를 믿도록 하지.”
다시 눈을 뜨였을 땐.
평소와 같은 예기 어린 눈빛이 여실했다.
“단, 만에 하나라도 정보가 잘못되었다면, 나 혼자만 짊어지지 않겠다. 무슨 말인지 잘 알 테지.”
“당연하죠. 원하신다면 아레나 계약서도 써드리겠습니다.”
아레나 계약서까지 들먹이는 시문.
그에 김무열은 품속의 담배를 꺼냈다.
“그깟 계약서 따윈 필요 없다. 만약 네가 날 속인 거라면, 내 모든 것을 걸어서 널 죽여 버리면 되니까.”
“오늘따라 유난히 예민하시네요. 너무 걱정하지 마시라니까요?”
서슬 퍼런 협박에도 피식 웃음만을 흘리는 시문.
“숙부라면 모를까. 제가 먼저 숙부를 버리는 일은 없습니다.”
그 말에.
“…….”
무섭도록 어두워지는 김무열.
그러나.
“그러니 숙부나 실수하지 마세요. 이런 기회는 자주 있는 게 아니니까.”
말을 끝낸 시문은 미련도 없다는 듯.
“그럼 알아서 처리하시리라 믿고,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최 박사를 찾게 되면 그때 연락 주세요.”
곧바로 일어나 협회장실을 나섰다.
시문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지는 그 순간까지.
김무열은 시문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이윽고 문이 닫히자.
“…….”
김무열의 시야엔 겨우 잊었던.
아니.
결코 잊을 수가 없어, 간신히 가라앉혀 두기만 했던 형상이 떠올랐다.
‘무열. 제가 먼저 당신을 버리는 일은 없어요.’
결코 잊을 수 없는 목소리와 함께.
* * *
“……다른 건 더 없고요?”
“그래.”
고개를 주억이는 포니테일의 여성.
강다영은 깊은 한숨을 푹 쉬며 말했다.
“미안해. 빈손으로 돌아와서.”
“아니에요. 멀쩡히 돌아온 것만 해도 다행이죠.”
따스하게 미소 짓는 청아한 미녀.
그에.
“유정아…….”
강다영의 눈가는 촉촉이 젖어 들었다.
“지난 몇 개월 동안 제대로 보고한 것도 없는데…… 이번 일도 이따위로 망쳤는데도 넌…….”
이유정은 눈물을 글썽이는 강다영의 손을 부드럽게 쥐었다.
“그렇게 말하지 마요. 언니 잘못이 아니잖아요.”
“유정아…….”
“그리고 오라버니가 정보를 알려 주셨잖아요. 아무런 소득이 없는 건 아니에요.”
“씨이…… 그래서 더 자존심 상해! 시문 씨가 잘난 건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플래잖아! 난 다이아고!”
기어코 주르륵 눈물을 흘리는 강다영.
애당초 평소의 강직하고 사무적인 모습과 달리.
“끅! 아무리 잘났다고 해도, 난 다이아 암살곈데! 이런 쪽으론 내가 더 뛰어나야 하는데!”
강다영은 눈물이 무척이나 많은 편이었다.
그리고.
‘다영 언니…… 정보를 얻지 못한 것보다, 오라버니보다 못했다는 사실이 더 억울한 거구나.’
자존심도 상당한 편이었다.
당연했다.
현실에서도, 갤럭시 아레나에서도.
강다영은 줄곧 엘리트 코스를 밟고 자라, 다방면으로 뛰어난 인물이었으니까.
“상대가 한발 빨랐던 것도 그렇고. 공허까지 이용했으니 어쩔 수 없었잖아요. 저라도 똑같았을 거예요.”
피식 웃은 이유정은 위로와 함께 손수건을 건네주었다.
그리곤.
“언니. 말이 나와서 묻는 건데. 오라버니한테 뭘 조사하는지는 말하지 않았죠?”
자연스레 화제를 돌렸다.
“끅! 당연하지!”
강다영은 코까지 킁! 풀고는 퉁퉁 부은 눈으로 답했고.
“아무리 내가 플래보다 못했다지만, 그 정도 정신은 있었어. 애당초 왜 그 시설에 있었는지 자세히 묻지도 않더라.”
이유정은 고개를 슬쩍 저었다.
“오라버니답네요.”
성삼의 미등록 시설.
심지어 자신이 시문에게 알려준 시설이다.
한데 그곳에서 그녀의 개인비서와 만났음에도, 별다른 질문을 하지 않다니?
이유정의 눈이 한결 더 부드러워졌다.
‘원래부터 그런 분이셨지. 오라버니는…….’
상황상 물어볼 만한 것들도.
당사자가 먼저 이야기하기 전까진 결코 먼저 묻는 일이 없는 시문이었다.
10년 전 그날도 그랬다.
‘대체 왜 경호원도 없이 너희들끼리 외진 곳을 돌아다녔냐고. 그렇게 화를 내셨어야 했는데…….’
소중한 오라버니의 인생이 완전히 망가졌던 그 날.
시문은 마력 불능을 확정받고도, 어떤 질책이나 탓도 하지 않았다.
그저 묵묵히 울먹이던 자신들의 머리를 쓸어주었을 뿐.
물론 자신의 인생을 망가뜨린 동생들이 계속 보기는 힘들었는지.
며칠 후 아예 모습을 감춰버렸지만 말이다.
뚜둑.
움켜쥔 주먹에서 저도 모르게 소리가 나온다.
그때만 생각하면 아직도 머리가 뜨겁게 끓어올랐다.
“유정아?”
그런 그녀를 의아하게 바라보는 시선에.
‘이럴 때가 아니지.’
이유정은 퍼뜩 정신을 차리며, 감정을 가라앉혔다.
뜨거웠던 열기가 가시자, 정신이 더욱 명료해졌다.
당연히.
“그리고 언니? 아예 아무것도 건지지 못한 건 아니에요.”
작금에 대한 상황도 빠르게 파악이 되었다.
그것도.
“예전에 갤럭시 아고라에서 오라버니와 만났던 날, 기억해요?”
시리도록 차가운 현실이 말이다.
“당연하지. 네가 그렇게 이야기하던 김시문이란 사람을 처음 만난 날이니까.”
“그럼 그날 언니가 제게 했던 보고도 기억이 나요?”
“보고?”
고개를 갸웃하는 강다영.
이내.
“네. 누군가 의도적으로 10년 전 사건을 은폐했다고 보고한 거.”
“아! 기억나지. 그리고 그 누군가는 한국에서 꽤나 힘이 있는 사람이라는…… 것도.”
강다영의 말과 표정이 점차 흐려진다.
10년 전 상류층 테러 사건을 은폐할 만큼의 힘이 있는 사람.
동시에 그 뒷조사를 하다가, 성삼의 미등록 시설까지 찾게 되었지.
“유정아.”
강다영은 바보가 아니다.
그간의 조사로 알게 된 것들이 누구를 가리키는지 모르지는 않았다.
단지.
“있잖아. 그래도 가족인데, 너무 섣부른 판단은 하지 않는 게…… 좋지 않을까?”
심증에 가까운 정보 몇 가지로 그 사람을 용의자로 단정을 짓기엔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정확히는 확신이 필요했다.
객관적으로도.
그리고 주관적으로도.
이유정은 힘없이 웃었다.
“언니가 별다른 보고 없이 철원의 시설까지 들어간 이유도 그 때문이겠죠. 상대가 상대이니, 확실한 증거를 확보하려고요. 하지만 이제 됐어요.”
“유정아.”
강다영이 다급히 이유정을 붙잡으려 했으나.
이유정은 부드럽게.
“언니. 오라버니께서 할아버지에 대해 따로 언급하신 게 있나요?”
그러나 단호하게 말꼬리를 돌렸다.
그것이 무슨 뜻인지 잘 아는 강다영은 작게 한숨을 쉬며 답했다.
“……아니. 전혀 없었어.”
“오라버니답네요.”
씁쓸한 미소를 머금는 이유정.
무려 인체 실험이 일어난 시설이다.
그럼에도 강다영에게.
정확히는 이유정 자신에게 어떤 언급도 하지 않다니.
‘아마 내가 모르게 처리하려고 하시는 걸 테지.’
자신이나 시혁이가 힘든 꼴은 보지 못하는 사람이니까.
이유정의 얼굴이 점차 가라앉는다.
“다영 언니.”
분노일까?
아니면 절망일까.
어느 쪽인지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았지만.
“그간 알아낸 것들. 전부 진욱 선배에게도 알려 주세요.”
강다영은 한 가지 확신할 수 있었다.
“시혁이에겐 제가 말할게요.”
결코 좋은 전조는 아니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