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한 천재 플레이어의 신화급 무기창조-164화 (164/349)

제164화

164화. 철원 (3)

희끗희끗한 머리칼과 수염.

그리고 옷이 헐렁거리는 왼팔과 오른 다리까지.

최우석 박사를 찬찬히 훑던 시문은 생각에 잠겼다.

이유는 다름이 아니었다.

‘최우석 박사? 들어본 적 없는 이름인데.’

전생의 기억을 모두 돌이켜도.

최우석이라는 이름은 전혀 들어본 적이 없었으니까.

심지어 성삼의 시설에서 일했던 박사라면 나름 그쪽에선 저명하기라도 할 텐데 말이다.

‘이럴 경우는 보통 두 가지지.’

하나는 지금처럼 은밀하게 활동하다가, 이름이 알려지기 전에 죽은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이름을 바꿔서 새 삶을 찾는 것.’

둘 다 신빙성이 있는 추측이라 시문은 섣불리 판단을 내리지 않았다.

말 없는 그 모습을 오해한 것인지.

“이런. 자네도 과학의 진보에 회의적인가?”

최우석 박사는 난처한 웃음을 머금었다.

“하긴. 자네들처럼 멀쩡한 이들은 다들 그렇더군. 누군가의 구원이 될 수 있는 진보보단, 의미 없는 윤리나 찾아대지.”

그는 멀쩡한 오른팔을 옆으로 뻗었다.

“한번 보게나.”

그러자.

파앗.

벽면에 있는 작은 홈에서 홀로그램 같은 빛이 흘러나왔다.

환영 아티팩트였다.

환영 아티팩트는 최우석 박사의 옆에 이상한 형태의 무언가를 띄웠다.

최우석 박사는 아름다운 예술품을 보듯.

“이건 파충류의 DNA라네.”

자신이 만들어 낸 파충류의 DNA 환영을 바라봤다.

그러곤.

“자네들은 파충류의 재생 능력에 대해 아는가? 보통 도마뱀의 꼬리 예시를 들면 다들 쉽게 알아듣더군.”

아주 자상한 선생님처럼.

차분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도마뱀은 위기에 몰리면 제 꼬리를 자르고 달아나지. 다시 자라나니까.”

그 말에 강다영이 눈살을 찌푸리며, 연구실 안으로 들어선 실험체 M249를 힐끗했다.

“물론 파충류보다 뛰어난 재생 능력의 생물들도 많다네. 이전엔 그것들도 연구를 많이 했지.”

아련하게 젖어가는 최우석의 박사.

시문은 미간을 슬쩍 찌푸렸다.

그가 뭘 이야기하고 싶은지 눈치챈 것이다.

“그랬던 연구가 파충류로 집중된 것은 갤럭시 아레나가 등장한 이후고요?”

“오오! 역시 최고의 유망주답군. 아주 똑똑해.”

“그러던 와중에 용족을 알게 되었고, 당연히 연구는 다시 용족으로 넘어갔겠네요.”

“……눈치도 상당하군.”

눈매가 슬쩍 굳는 최우석.

그러나 그것은 기분이 나빠서라기보단.

“역시 용족화가 가능한 자라서 그런가? 아주 뛰어나.”

일종의 실험 대상을 유심히 관찰하는 듯한 시선에서 비롯된 것이다.

시문을 유심히 살피던 최우석 박사는.

“자네의 말대로일세. 갤럭시 아레나는 과학적으로 설명이 불가능한 세계. 난 그곳에서 등장하는 수많은 종족 중 용족에게 사로잡혔지.”

또다시 하나 남은 팔을 뻗었다.

“급의 차이가 있기는 하나, 그들은 근본적으로 우월하다네. 조금만 닮을 수 있어도 우린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어.”

그러자 허공에 떠올랐던 DNA의 모형은 더 복잡하고 괴이하게.

그리고 어딘가 익숙한 형태로 재조형되었다.

“선천적인 장애부터 후천적인 장애, 온갖 희귀병까지. 저들의 우월한 몸과 재생력이면 많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네.”

그야말로 인류의 진보.

최우석 박사는 인간이 늘 갈망해오던 것을 늘어놓았지만.

시문은 말없이 얼굴을 굳힐 따름이었다.

최우석 박사에게 감명을 받아서가 아니었다.

‘저건…… 설마 용족의 DNA?’

생물학이나 저쪽 분야에 대한 전문지식은 없었으나.

저 모형을 본 시문은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저것은 용족의 DNA를 형상화한 것이라고.

시문의 관심이 짙어지자.

키잉.

오딘의 눈이 자연스레 연성력을 빨아들이며 그 힘을 강화시켰다.

덕분에 시문은 DNA의 원형이 누구의 것인지 알아차릴 수 있었다.

“드라그?”

“오오오!!”

저도 모르게 읊조리는 시문.

저 혼자 늘어놓던 최우석 박사가 눈을 반짝였다.

“어찌 그걸 아는가? 이건 학회에도 등록되지 않은 표본인데! 그럼 이건 알겠는가? 이것도?”

그는 신난 아이처럼 DNA의 표본을 멋대로 바꿔나갔다.

‘드라칸, 드라코에 드발리, 라미아까지…….’

하지만 매번 등장하는 DNA의 모형을 본 시문의 눈매는 점차 굳어갈 뿐이다.

최우석 박사가 저 DNA를 어떻게 채취했겠는가?

아레나에서 용족들의 DNA를 채취해서 가지고 올 수 있을 리는 없으니.

‘아직 정규 아레나는 시작도 안 했는데. 용족들이 벌써 지구로 진입했다는 건가?’

실제로 용족들이 지구에 있다는 뜻밖에 되지 않았다.

그리고 비각성자로 보이는 최우석 박사가 용족을 잡아, DNA를 채취했을 리 없으니.

‘용족의 DNA를 얻게 해 준 동조자까지 있다는 말인데…….’

배후를 찾아내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이 시설을 극비리에 허가한 이순철 회장.

그리고.

‘종리추. 정확히는 놈과 손을 잡고 있을 용족이겠지.’

시문의 눈매가 조금 가늘어졌다.

‘그럼 전생에도 이맘때쯤 용족들이 지구에 있었다는 말이잖아?’

기본적으로 타 종족은 정규 아레나가 시작되어야, 지구로 입장이 가능한 것을 따져보면.

‘아마 거주지는 종리추가 있는 중국일 가능성이 높겠지.’

물론 이 넓은 지구에서 인적이 드문 곳이야 많으니, 척박한 곳에 자리하고 있을 가능성도 높았다.

용족은 갤럭시 아레나 내에선 최상위에 속하는 종족.

척박한 환경 따위야 아무런 페널티도 되지 못할 테니 말이다.

그런 시문의 속내를 읽었는지.

“과연…… 용족에 대해 아주 잘 알고 있군! 자네는 이 모든 걸 진즉부터 알고 있었어!!”

최우석은 희대의 발명품을 발명한 이처럼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정말 믿을 수가 없군! 이건 나도 몇 달 전에야 받은 자료인데…… 용족화가 가능한 이라서 그런가? 응?”

흥분한 얼굴로 시문을 향해 절뚝절뚝 다가가는 최우석.

분명 의족조차 없을 텐데.

최우석은 무언가에 보조를 받는지 잘만 걸음을 옮겼다.

그는 흥분이 가득한 얼굴로 손을 내밀었다.

“하하! 이거 이야기가 쉬워지겠군. 자네. 내 연구를 도와주지 않겠나?”

“연구?”

잠시 의문을 띠던 시문의 시선이 옆을 향한다.

그곳엔.

“키익.”

처음 보았던 포악성은 일절 보이지 않는, 실험체 M249가 서 있었다.

뻘쭘하지도 않은지.

최우석은 아무렇지도 않게 내민 손을 거두며, 시문과 같은 방향을 바라봤다.

“그래. 바로 저것일세. 자네의 용족화만큼 완벽하진 않지만, 자네가 도와준다면 또 다르지 않겠나?”

“멀쩡한 사람을 저 꼴로 만드는 실험을 제가 도울 것 같나요?”

“거부감이 들겠지. 이해하네. 하지만 윤리적인 부분은 걱정할 것 없네. 어차피 저자는 살아 있을 가치가 없는 인간이었거든.”

최우석은 학구열이 그득한 눈을 반짝였다.

“자네. 5년 전 인천에서 일어난 연쇄살인 사건을 기억하나?”

시문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디 시문뿐이던가?

당시를 살았던 한국인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각성자 범죄로 당시 제법 떠들썩했던 사건이었으니까.’

각성자 범죄.

말 그대로 각성한 이가 벌이는 범죄로 당연히 대부분의 희생자는 비각성자들이었다.

범죄자가 아무리 저열한 각성을 이루었더라도.

어지간해선 일반인은 대항이 불가능했으니까.

결정적으로 살인 사건 검거율이 97%가 넘는 한국에서, 아직도 범인이 잡히지 않은 사건이라 유명할 수밖에 없었다.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

“잠깐. 설마?!”

시문의 눈은 순식간에 커졌고.

“자네 생각이 맞는다네. 실험체 M249. 저자가 당시 연쇄살인을 저질렀던 빌런이지.”

최우석 박사는 무척이나 기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다만.

“어디 저놈뿐이던가?”

그것은 악랄한 범인을 잡아내어, 처벌한 것에 대한 기쁨이 아니었다.

“이곳으로 오며 여러 실험체를 만났을 테지. 죄의 경중만 다를 뿐, 그들 모두 저놈과 같은 범죄자라네.”

그의 실험을 가로막는 장벽.

인권이나 생명 윤리 따위를 짓뭉개줄 정당성에 대한 기쁨이었다.

마치.

“어차피 사형 아니면 평생 세금이나 축내다 갈 놈들. 이렇게 인류의 진보에 이바지할 수 있다면 저들에게도 좋은 것 아니겠나?”

자신은 정당함을 과시하는 것처럼.

그리고.

“자네와 같이 뛰어난 젊은이라면 내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할 수 있겠지.”

너 역시 그렇게 생각하지 않냐며.

“눈치 볼 필요는 없네. 여긴 우리밖에 없고, EMP 덕분에 어떤 기기도 작동할 수 없으니 말일세.”

익명성을 방패 삼아, 동류를 찾으려는 것처럼 말이다.

물론 이런 이유들보다는.

“여기가 성삼의 시설임은 알고 왔을 터. 어떤가? 돈도 얼마든지 줄 수 있으니, 이만하면 아주 좋은 조건 아닌가?”

어떻게든 시문을 자신의 연구에 참가시키려는 마음이 커서겠지만.

시문 역시 그런 박우석의 속내를 꿰뚫어 봤기에.

“글쎄요.”

묘한 미소로 답할 뿐이었다.

그에 최우석의 미간이 꿈틀거렸다.

“부끄러움이 많은 친구로군. 이곳의 이야기가 새어 나갈 일은 없다는 데도.”

“그런 게 아니라, 진심으로 조건이 별로라서 하는 말이죠.”

“뭐?”

이젠 사람 좋게 웃던 미소까지 사라진다.

시문은 그런 최우석의 변화를 즐기듯.

“그쪽 마인드도 마인드지만. 그 돈이라는 것도 저한텐 의미 없을 게 뻔해서요.”

얄미운 미소를 머금었다.

“자신의 양심은 돈으로 살 수 없다는 건가? 너무 고전적인 레퍼토리로군.”

“그런 게 아니라, 말 그대로 의미가 없다는 겁니다. 그쪽이 얼마를 부르던 절 만족시킬 금액은 안 나올 테니까.”

“오만하군. 자네, 혹시 해외에서 살다 왔나? 성삼이 어떤 그룹인지 모르냐는 말일세.”

최우석이 철없는 아이를 보는 눈으로 시문을 바라본다.

그런 최우석의 귓가로.

“진짜일걸요?”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금껏 가만히 듣고만 있던 강다영이었다.

그녀는 한쪽 입꼬리를 슥 끌어올렸다.

“성삼에서 얼마를 지불한다고 하든 간에, 돈만으론 저 사람을 회유할 순 없을 거예요.”

“강 비서. 자네라면 성삼의 저력에 대해 잘 알 텐데?”

“잘 아니까 하는 소립니다.”

심드라실 길드의 성장 버프.

그 주인이 시문이라는 걸 알고 있는 강다영이다.

“장담하죠. 회장님께서 직접 나서셔도, 시문 씨가 혹할 만한 금액은 맞추지 못할 겁니다.”

성삼의 주인인 이순철.

그가 가용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동원해도, 시문을 돈으로 회유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성장 버프 대여만 해도, 벌어들이는 돈이 얼만데.’

각국의 거대 길드들이 지불하는 막대한 금액은 아무리 이순철 회장이라도 지불이 불가능하니까.

그뿐이던가?

‘성삼 바이오가 유통하는 아레나 질병 치료제도 전부 시문 씨가 제작하지.’

이유정의 업무 대리도 도맡고 있는 강다영이다.

당연히 이유정이 성삼 바이오로 납품하는 아레나 질병 치료제의 출처가 시문인 것도 알고 있었다.

고로.

‘이 세상에서 돈으로 김시문을 어찌할 수 있는 자는 없어.’

라는 것이 강다영이 내린 결론이었고.

그런 강다영의 태도에 진심임을 느꼈는지.

“이거 참…… 포기할 수 없는 표본이거늘.”

최우석은 깊은 한숨을 내쉬며 이마를 짚었다.

이내.

“자네. 정말 나와 함께 일할 생각이 없나?”

그는 짙은 아쉬움을 담은 목소리로 물었다.

“그쪽을 잡아도 모자랄 판에, 같이 일을 하겠습니까?”

“그럼 내 연구에 동참하겠다고 속여서, 만날 생각이라도 해보지 그러나.”

“뒤처리까지 이렇게 깔끔하게 하는 분인데. 어련히도 통하겠네요.”

“허허허! 그렇군. 보면 볼수록 아깝단 말이지. 자네 같은 이와 함께 연구한다면 인류는 장족의 발전을 이룰 터인데…….”

최우석의 눈에 짙은 아쉬움이 서린다.

하나 잠시일 뿐.

“어쩔 수 없군.”

그는 눈을 감았다 뗌으로써 미련과 아쉬움을 털어버리고.

“이곳과 함께 폐기할 수밖에.”

마치 무언가를 누르듯.

힘없이 외팔을 앞으로 내밀었다.

그러자.

스아아.

흡사 간헐천처럼.

시커먼 기운이 바닥에서 새어 나온다.

“이, 이건!!”

그것을 본 강다영이 경악을 내질렀다.

무리도 아니었다.

아레나에서도 저승의 강물만큼이나 기피되는 기운이었으니까.

“다, 달아……!”

그리고 그녀가 말을 끝맺기도 전에.

어느새 정체 모를 원을 이룬 시커먼 기운은 모든 것을 집어삼켰다.

* * *

빛 한점 없는 우주.

그것만큼 이곳을 잘 표현한 말이 또 있을까?

온통 검은색뿐인.

아니.

시야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도 모를 이 검은 세상은 어떤 소리나 냄새조차 나지 않았다.

그야말로 완벽한 무.

문제는 거기서 끝이 아닌지.

“…….”

한 여성이 눈을 까뒤집으며 전신을 바들바들 떨었다.

이 무의 공간은 사람의 정신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걸까?

부르르.

여성은 영상 매체에서 보는 귀신이라도 들린 듯 경련을 멈추지 않았다.

다행히도.

퍽.

그녀의 경련은 뒷목에서 들려오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멎었다.

이유는 다름이 아니었다.

“일 날 뻔했군.”

아무것도 없어야 할 공간임이 무색하게.

“그나마 서로 가까이 떨어진 걸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뚜렷한 이목구비의 미남자는 육체는 물론.

목소리까지 뚜렷하게 내며, 기절시킨 여성을 안았다.

그리곤 어머니의 양수 속을 유영하듯.

편안히 앞으로 나아갔다.

‘저편으로 날려버리다니…… 상상도 못 했네.’

저편.

멀쩡한 것들을 괴이하게 비틀어지는 곳.

가장 기본적인 섭리나 개념조차 제멋대로 비틀어진 곳이었으나.

‘뭐, 나한테는 다행이라고 해야겠지만.’

한 사람만은 예외였다.

“저쪽인가.”

분명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야 할 텐데.

저 멀리 보이는 빛줄기를 향해 망설임 없이 나아가는 시문.

그런 그의 귓가로 앙칼진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떻게 저편으로 날려버리는 마법진을 설치한 거지? 이런 건 정규 아레나에서도 구하기 힘든 지식인데.

현자의 돌이었다.

시문은 제 가슴을 슬쩍 내려보며 말했다.

“아마 종리추 쪽에서 알려줬겠지. 원출처는 용족일 가능성이 높고.”

-하긴. 아레나에 퍼진 공허 관련 마법은 대다수가 저편을 오가는 형식의 마법들이니까.

그렇게 현자의 돌과 얼마간 이야기를 나눴을까?

[감히…….]

공간을 통째로 울리는 거대한 목소리와 함께.

[허락도 없이 내 영역에 기어들어 오다니. 단단히 미쳤구나.]

시문이 다가가던 빛줄기가 급속도로 분열하기 시작했다.

정확히는 분열이 아니라.

‘거미줄?’

무척이나 정교한 거미줄처럼 짜여지며 끝없이 확장되고 있었다.

그런 거미줄 위로.

[필멸자? 하! 필멸자가 나의 공간에 어떻게 들어온 거지?]

불길하다 못해, 섬뜩한 붉은 빛이 떠오른다.

이내 그것은 각각 8개씩, 16개로 분열하여 양쪽으로 나누어졌고.

시문이 그것이 목소리의 눈이라는 것을 판단할 틈도 없이.

[쯧. 알아보기도 귀찮군. 그냥 죽어라.]

16개의 붉은 빛이 눈이 멀어버릴 정도로 강렬한 빛을 토했다.

하나.

[이, 이건!]

시간이 멈춰버린 것처럼.

다가오던 붉은빛이 뚝 멈춘다.

[이 흔적은…… 그, 그분의?!]

무엇이 그리 놀라운지.

희미한 두려움까지 내비치며 격렬하게 떨리는 붉은빛.

이내 그것은 점차 멀어졌고.

[말해라. 인간이여.]

쿵. 쿵.

세상이 무너지는듯한 거대한 굉음이 순차적으로 들려왔다.

시문은 뒤편에 펼쳐진 광활한 거미줄을 덕분에.

굉음의 원인이 저 붉은 눈의 다리라는 것을 눈치챘다.

그리고.

[그대는 누구인가?]

아까까지 느껴졌던 강렬했던 분노나 적대감은 씻은 듯이 사라진다.

일종의 존중을 내비치듯.

여러 행성을 이어 붙인 듯한 시커먼 몸통을 낮추며.

[어찌하여 잠들어 있는 그분의 흔적을 지니고 거지? 왜 나를 찾아온 것이냐.]

시문과 눈높이를 맞추었다.

‘세상에…….’

그 압도적인 광경에 입이 절로 떡 벌어진다.

거대하다는 말로 표현이나 가능할까?

가히 광활하다고 표현할 수 있는 거대한 거미.

심지어 어지간한 소행성 크기의 붉은 눈 무려 16개나 박혀있음에도.

저 거대 행성만 한 몸집 덕에 과하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들이 일제히 시문을 향해 꽂혀 든다.

단순히 시선을 맞추는 것뿐인데도.

[과연. 인간의 몸으로 나의 시선에도 멀쩡하다니. 그대는 그분의 사도라도 되는 것인가?]

감탄을 토하는 은하급 스케일의 거미.

‘저게 뭔 소리야? 그럼 눈만 마주친다고 죽어야 하나?’

문득 그런 의문이 들었으나.

시문은 애써 의문을 삼키며 답했다.

“그분보다는 다른 쪽이랑 더 친하다고 볼 수 있죠.”

[다른 쪽? 누구 말인가?]

거대한 거미는 행성만 한 머리를 갸웃했고.

[누구긴 누구야? 당연히 나지!]

현자의 돌과는 비교가 불가한 앙칼진 목소리가 공간에 울려 퍼졌다.

그에.

[이, 이 목소린!]

은하급 스케일의 거미가 불안정하게 떨린다.

[혹시 내 아가의 털끝이라도 건드렸다면, 그 지저분한 다리를 죄다 토막 내 줄 것이다. 나태한 거미야.]

꾸드득. 까득!

공간 한쪽을 갈가리 찢으며 나타나는 거대 촉수 무리에.

[대, 대모님을 뵙습니다!]

거미는 빠르게 행성만 한 머리를 처박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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