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8화
158화. 타르타로스 (1)
쿵.
딱딱한 바닥으로 패대기쳐지는 여성.
덕분에 끊어지거나 부러진 팔다리에선 시뻘건 피가 터져 나왔으나.
“죽일…… 거야! 반드시 죽여버리겠어!”
비명은커녕.
독기 어린 눈으로 정면의 뼈와 살점으로 이루어진 의자를 노려보는 여성.
정확히는 그곳에 앉아 있는 남자를 노려보았다.
“그 꼴이 되어도 성격은 여전하네.”
“크하핫! 더러운 뱀의 권속을 부리지 않습니까? 지독한 계집이란 증거지요.”
시문의 중얼거림에 화통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업적 포인트로 불러낸 나글파르의 선원이자, 헬하임의 전사였다.
또 이들의 우두머리 격이기도 한 건지.
말리나를 몸소 잡아 온 그는 다른 헬하임의 전사들보다 덩치가 배는 컸다.
“귀빈. 명령만 내려 주십쇼. 아주 산 채로 토막을 내버리겠으니!”
가슴을 땅땅 치며 답하는 우두머리 격 전사.
그에.
‘토막은 이미 내셨는데요…….’
조금 난감한 웃음을 흘린 시문은 고개를 저었다.
“괜찮습니다. 이미 무력화가 되었는걸요.”
“귀빈. 네크로맨서는 죽여서도 긴장을 놓으면 안 되는 자들이오.”
“그렇죠.”
어디 네크로맨서뿐이던가?
죽음과 관련된 힘을 다루는 이들 중 몇몇은 사후에도 힘을 발휘했다.
소위 말하는 목숨 코인이 2개인 셈.
물론 지독한 페널티를 받는 경우가 대다수지만.
그렇다 해도 죽었던 아레나에서 또 한 번의 기회를 얻는다는 건 굉장한 메리트다.
그리고 시문은 이 메리트를 전혀 사용하지 못하게 할 방법을 잘 알고 있었다.
‘여차하면 불이나 번개로 시체를 태워버리면 되니까.’
언데드 몬스터들에게도 흔히 쓰이는 방법.
성속성을 제외한 가장 치명적인 속성으로 시체 자체를 없애 버리는 것이다.
그럼 수준급 사령술을 지닌 네크로맨서가 아니고서야.
죽은 몸으로 다시 일어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심지어 자신은 불과 번개의 최정점이나 마찬가지인 힘을 다루지 않는가?
물론 나글파르와 그 선원들까지 연성한 시점에서 굳이 힘을 낭비할 필요는 없었다.
“처음부터 스틱스 강으로 던져 버릴 생각이라,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으잉? 크아아하핫!”
시문의 말에 광소를 터뜨리는 전사.
이내.
“그렇지! 이곳은 스틱스였지. 귀빈께서는 죽음의 세계를 아주 잘 아시는구려. 좋소. 뭔가 시킬 것이 있으면 언제든 부르시오.”
저 혼자 고개를 끄덕인 그는 쿵쿵거리며 물러났다.
시문은 작은 미소를 머금었다.
‘원래 저승 관련 맵들은 네크로맨서 한정 천국이긴 하지만, 스틱스 강은 또 다르거든.’
스치기만 해도 즉사인 저승의 강물.
네크로맨서들은 흡사 물의 정령사처럼.
이 죽음의 강물을 다뤄 마음대로 공격할 수도 있고, 그에 대한 내성도 상당했다.
하지만 그뿐.
‘결국 생명체인 이상, 전신이 스틱스 강에 담기면 죽는 건 똑같지.’
정말 특별한 조치나 마법 같은 요소가 있지 않고서야.
아무리 잘난 네크로맨서라도 저승의 강에 빠지면 끝이었다.
그것을 말리나도 잘 알았기에.
“이 개자식아! 그냥 죽여라!”
그녀는 성난 목소리로 외쳤다.
그 속에 담긴 희미한 불안감을 캐치한 시문은.
“말리나. 반응을 보니, 저승의 강에 빠져본 적이 있나 봐?”
“…….”
입술을 꽉 깨무는 말리나.
침묵은 곧 긍정이라고.
시문의 모르는 척 고개를 갸웃했다.
“뭐라더라. 혼돈계의 차원 이상 현상이었나? 거기랑 비슷하게, 아주 어지럽고 고통스럽게 죽는다고 했었지. 네크로맨서에 한정해서 말이야.”
마치 일반적인 플레이어가 불구덩이에 던져진 종이 한 장이라면.
네크로맨서는 불구덩이에 던져진 얼음덩어리랄까?
죽음에 저항력이 있는 네크로맨서는 강물에 저항을 할 수 있는 만큼 하다가 죽고.
그 과정에서 느껴지는 고통은 당연히 형용하기가 힘들다.
네크로맨서가 가지는 맵의 이점이 독이 되어 돌아오는 것이다.
시문은 은근한 목소리로 물었다.
“말리나. 만약 네가 원하는 대로 죽여 주면. 현실에서 나 안 찾아올 거야?”
“당연히 찾아가야지! 단, 지금과 똑같이 사지만 절단시켜서 죽여주겠어.”
칼같이 거부하는 말리나.
시문은 고개를 끄덕이며, 바닥에 엎어진 말리나의 뒷덜미를 붙잡았다.
망설임 없는 움직임에 말리나는 거세게 버둥거렸다.
“이 새끼가! 너 정말 죽고 싶어 환장했어?! 나 데스페라도야! 데스 로드의 여동생이라고!!”
“알아.”
“그걸 아는 새끼가 지금 이딴 짓을! 너! 이대로 스틱스 강에 던지기만 해봐. 내가 모가담 님까지 불러서 너 작살 내 버릴 거야! 알겠어?!”
“그러면 더 좋고.”
폭탄마 모가담을 언급함에도 일말의 동요조차 없는 시문.
그에 말리나는 잠시 얼이 빠졌다.
“넌 대체 뭐 하는……! 이봐, 괜히 허세 부리는 거라면…….”
“허세가 아냐.”
시문은 얼이 빠진 말리나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네 잘난 오빠인 말리크든, 폭탄마 모가담이든 다 불러. 난 신경 안 쓰니까.”
결코 오만이 아니었다.
말리크나 모가담이 랭커긴 해도 시문으로서는 겁낼 이유가 없었다.
그들과 자신의 무력 차이를 떠나서.
‘내겐 랭커만 무려 3명이나 있으니까.’
자신에겐 든든한 랭커가 셋이나 있지 않은가?
그것도 랭커 중에서도 상위급의 실력으로 말이다.
물론 숙부 김무열은 두 동생과 다르게 확실한 아군은 아니었으나.
‘사안의 유무를 떠나서. 숙부가 데스페라도에 내 암살 의뢰를 했다는 걸 걸리지 않으려면, 내 편으로 나설 수밖에 없지.’
덤으로 데스페라도와의 끈도 있으니.
한국에 놈들이 입국한다면 필연적으로 숙부 김무열이 알 수밖에 없을 터.
‘결국 놈들의 동향도 내게 들어올 수밖에 없고.’
이러나저러나.
‘말리나. 빽은 너만 있는 게 아니란다?’
시문으로선 조금도 꿀릴 것이 없었다.
그런 시문의 당당한 눈빛 때문일까?
아니면 흔들림 없는 시문의 눈에서 진심이 느껴져서일까.
“……너 진짜…… 겁을 상실한 거니……?”
말리나는 얼이 빠진 눈으로 멍하니 시문을 바라볼 뿐이었다.
저벅.
그녀를 대면하고 처음으로 나글파르의 왕좌에서 일어난 시문.
그가 선체 끝에 도달했을 때.
“김시문…… 너 대체 정체가 뭐야?”
말리나의 입이 움직였다.
“잘나가는 유망주라고 네가 뭐라도 된 거 같아? 응? 아니면 뭐 믿는 구석이라도 있는 거냐고!”
뒷덜미를 잡은 손 하나에 대롱대롱 흔들리는 말리나.
어찌 보면 우스꽝스러운 모습인데도.
“우리 오빠나 모가담 님은 나 같은 플래티넘이랑 달라. 너 같은 건 한 손으로 찍어누를 수 있는 랭커라고! 랭커!”
서슬 퍼런 독기를 내보이는 말리나.
그러나.
“알아.”
시문은 짤막한 답으로 손을 놓을 뿐이었고.
말리나는 성의 없는 답만 받은 채.
“그걸 아는 놈이…… 꺄아아아악!!”
첨벙.
죽음의 강으로 추락했다.
* * *
후우웅.
굵직한 파공음이 허공을 가르면.
“끄아악!”
강렬한 비명이 터져나온다.
그것이 반복되기 벌써 수십 번.
“크하핫! 또 명중이다!”
“창도 아닌 도끼로 던지는데. 이리도 쉽게 맞아주다니.”
“으흐흐! 얼마 만에 산 자를 죽여보는 건지!”
“쯧. 이젠 남은 놈도 없구만.”
걸걸하고 거친 함성과 웃음소리가 점차 사그라든다.
최진수는 허망한 얼굴로 스틱스 강 위에 둥둥 떠다니는 나룻배 파편들을 바라봤다.
“여기가 플래티넘이라니…….”
그것도 스틱스 강의 초입을 넘어온 진짜 플래티넘들.
말리나만 보아도 상위 매칭이 분명할 터인데.
갑작스레 등장한 이 생태계 파괴자들에게 모두 죽어 나간 것이다.
우웅.
맑게 울리는 이명.
뛰어난 보조계라도 있는 것인지.
마지막 남은 나룻배가 성력 특유의 환한 빛으로 둘러싸고 급히 나아간다.
하나 이 잿빛의 괴물들의 장난을 막기란 한계가 있었는지.
쿠웅.
“맞았다! 또 맞았어!”
날아드는 투척물에 보호막을 이루는 성력이 불안정하게 흔들렸다.
안타깝게도.
“저게 마지막 같은데?”
“크핫! 그래서 그런가? 아주 잘 버티는군.”
“약골인 네놈들이 던져서 그렇겠지. 저 보호막을 한방에 박살 내고 내 힘을 증명해 보이마!”
“개소리! 저건 내 거다! 난 한 놈도 못 죽여봤다고!”
플래티넘 플레이어들을 몰살시킨 이 잿빛의 괴물들에겐 어떤 측은지심도 들지 않는지.
“네놈이 무능해서 못 죽인 걸 어쩌라는 거냐!”
“뭐? 이 개자식이! 그 망할 머리통을 쪼개야 그딴 소리를 못 뱉지!”
“오냐! 덤벼라 이 자식아!”
“으하핫! 싸워라. 머저리들아!”
잿빛의 괴물들은 서로 거친 언성에 싸움까지 일으키며, 저 불쌍한 양을 죽이려 애썼다.
그때.
“이 멍청한 놈들이.”
노쇠한 목소리가 흥분한 잿빛의 괴물들을 가라앉혔다.
놀랍게도.
“귀빈께서 보고 계시거늘. 이 무슨 추태냐!”
노인의 호통에 잿빛의 괴물들은 일제히 합죽이 되었다.
“에잉. 쯧!”
그들을 못마땅한 눈으로 흘기던 노인이 지팡이를 톡 내려찍는다.
그러자.
촤아아악.
물이 치솟는 소리와 함께.
“으아아아악!”
“X발! 이게 게임이냐고 진짜!”
성력으로 보호막을 유지하던 마지막 나룻배가 저승의 강물에 파묻혔다.
얼마 가지 않아.
“귀빈. 목적지에 도착하였소이다.”
노인은 뼈와 살점으로 이루어진 왕좌를 향해 고개를 조아렸고.
“그렇군요. 다들 수고했어요.”
왕좌에 느긋하게 앉아 있던 미남자.
시문은 환한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는 내내 허망이 가득했던 최진수가 퍼뜩 정신을 차리고 시문의 뒤를 따른다.
점령지처럼 윤곽선이 표시된 지형.
이번 아레나의 목적지에 내린 최진수는 힘없이 중얼거렸다.
“이렇게 편하게 올 줄이야…….”
빈말이 아니다.
정말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았는데.
저 무시무시한 배와 선원들은 데스페라도의 조직원 말리나를 시작으로.
초입을 통과한 모든 플레이어를 장난감처럼 가지고 놀았다.
최진수는 배가 정박한 뒤편의 강물을 힐끔했다.
‘아마 김시문과 팀이 되지 않았다면 나도…….’
저 아래로 침몰해서 탈락했겠지.
아니면 저 잿빛의 괴물들의 무구에 머리통이 박살 나거나.
‘이래서 고창진 길마가 늘 팀 운마저 이기는 실력을 갖춰야 한다고 한 것이로군.’
사실 최진수 스스로는 팀 운도 극복할 만한 나름의 실력을 겸비했다고 생각했건만.
이건 뭐, 그딴 소리를 논할 수도 없는 수준이었다.
‘팀 운마저 극복하는 실력자는 적어도 이 구간에선, 한 사람뿐이겠어.’
그 한 사람을 말없이 바라보는 최진수.
그에.
“진수 씨. 안 오세요?”
그 한 사람이 순진무구한 얼굴로 그를 불렀다.
“가, 가고 있다.”
최진수는 얼른 시문의 곁으로 따라붙었다.
졸졸졸.
분수라고 해야 할까?
시문의 앞에는 작은 물줄기들이 흘러내리는 해골 모양의 작은 석상이 자리하고 있었다.
“운송품을 저 석상의 입에 넣는 건가 봐요.”
시문은 이번 아레나의 운송품인 작은 구슬을 꺼내, 물이 흘러내리는 석상의 입에 가져다 댔다.
그도 잠시.
“아참. 깜빡할 뻔했네.”
시문은 얼른 운송품을 물렸고.
“음? 왜 그러지?”
최진수는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잠시만요. 확인해 볼 게 있어서.”
인벤토리를 열어 손을 집어넣는 시문.
놀랍게도.
“그건 운송품 아닌가?”
운송품과 똑같은 모양의 구슬이 잡혀 나온다.
시문은 고개를 끄덕였다.
“비슷하긴 한데. 상태가 좀 달라요.”
“상태?”
고개를 갸웃하는 최진수.
그러나 별다른 답을 하지 않은 시문은 인벤토리에서 꺼낸 영혼핵을 먼저 석상의 입에 넣었다.
그러자.
끼아아아아.
영혼 특유의 비명이 희미한 김처럼 새어나온다.
이어 구슬 표면으로 맴돌던 묘한 기류가 말끔히 사라졌고.
시문은 곧바로 정보창을 확인했다.
[영혼핵]
등급 : SSS
영혼을 담아내는 핵.
그리곤 절로 반짝이는 두 눈.
‘됐다!’
기존 SS였던 등급은 SSS로.
아래 붙어 있던 영혼의 흔적에 관한 설명은 깔끔하게 사라진 영혼핵.
‘운송품이랑 같은 물건이라 혹시나 해서 넣어봤는데. 이렇게 깔끔하게 정화시켜 주다니?’
거기다 등급 업까지!
공짜로 영혼핵을 정화한 시문은 흐뭇하게 웃으며.
“그럼 이제 운송품을 넣을게요.”
운송품으로 지급된 영혼핵을 석상에 넣었다.
그러자.
[최후의 한 팀만이 목적지에 도달하셨습니다.]
[아레나를 종료합니다.]
아레나의 종료를 알리는 메시지가 떠올랐고.
“김시문. 고맙다.”
최진수가 인사와 함께 손을 내밀었다.
“덕분에 버스 잘 타고 간다.”
“별말씀을요.”
“다음엔 내가…… 아니, 언젠가 내가 버스를 태워주도록 하지.”
“하하! 기대할게요.”
서로 미소를 머금은 인사를 끝으로.
최진수의 몸이 흐릿해진다.
시문 역시 역소환을 기다리던 그때.
우웅.
“음?”
인벤토리에서 전해지는 작은 울림과 함께.
[특별 조건이 만족되었습니다.]
한 줄기의 갑작스러운 메시지가 시문의 앞을 가로막았고.
[플레이어 김시문에 한해서, 차원 ‘타르타로스’로 입장이 가능해집니다.]
[입장하시겠습니까?]
이어지는 메시지에.
“……뭐?”
시문의 입이 떡 벌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