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6화
156화. 저승의 강 (3)
저승의 강.
워낙 다양한 맵들이 등장하는 갤럭시 아레나인지라, 악명 높은 맵들도 많았고.
여러 형태로 등장하는 저승의 강 역시 그러한 범주에 포함되었다.
그리고 저승의 강 맵들이 지니는 공통점이 하나 있었다.
바로.
“너무 들여다보지 마. 그러다 죽는다.”
강물의 효력이었다.
정확히는 위력이라고 해야겠지.
“너 같이 막 플래티넘에 올라온 애는 한 방울만 튀어도 즉사야.”
“오빠, 그건 아까 봐서 나도 알거든?”
강을 들여다보던 여자는 입술을 삐쭉 내밀었다.
“그냥 신기해서 봤을 뿐이야. 현실에서 죽으면 진짜 이런 강을 건너나 싶어서.”
“하긴…….”
오빠라 불린 남성이 이해가 간다는 눈으로 여동생을 바라봤다.
먼 과거.
원시시대부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풀리지 않았던 불가사의.
현대의 과학으로도 설명할 수 없는 것이 ‘사후’ 아니던가?
“이곳에 처음 매칭되면, 너 같은 생각을 한 번쯤 하긴 하지.”
인간이라면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것이 죽음 이후 일이다.
그리고 지구에 홀연히 나타난 이 갤럭시 아레나라는 미지의 것은.
판타지에서나 등장할 법한 것들을 수없이 쏟아내고 구현화시켰고.
사후에 관련해서도 마찬가지였다.
“사기라는 기운이랑 사령술 같은 힘도 있고, 관련 아이템이나 몬스터도 많으니까.”
사령술사.
다른 말로는 네크로맨서.
그를 포함한 언데드나 수많은 죽음 관련 아이템들까지.
갤럭시 아레나는 죽음에 대해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것 그 이상의 것까지 구현화시켰으니까.
이 저승의 강 맵도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동생아. 너무 깊게 생각하지 마라.”
남자는 짧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네 마음은 이해하겠는데. 그런 생각을 너만 해봤겠냐. 사후세계는 1세대 때부터 꾸준히 있었던 의문이야.”
“근데도 아직 풀린 게 없는 거지?”
“당연하지. 뭘 알아내려고 해도 강물에 스치면 즉사잖아. 아레나가 끝나면 바로 역소환되고.”
사실상 갤럭시 아레나 측에서.
‘지정해준 목적 이외의 다른 것은 꿈도 꾸지 말아라.’
라고 선을 그어둔 느낌이랄까?
실제로 1세대부터 지금까지.
저승에 관련된 맵이 매칭되었을 때, 수많은 플레이어가 그에 대해 탐구하려 들었지만.
모두가 시스템의 벽을 넘지 못하고 실패했었다.
그 중엔 죽음에 특화된 이들도 있었다.
“네임드급 네크로맨서들도 사후세계를 알아내려다 죄다 실패했어. 그러니까 쓸데없는 생각 말고, 아레나에만 집중해.”
남자는 설렁설렁 손을 저었다.
그때.
“이제 입구도 지나왔으니, 본격적으로 전투가…….”
“킥! 맞는 말이지.”
경박하다고 해야 할까?
가벼우면서도 높은 톤의 목소리가 남자의 말을 자른다.
남자는 상대를 확인조차 하지 않은 채.
스릉!
허리춤에 메인 검을 뽑으며, 곧장 목소리가 들려온 방향을 베어갔다.
진득한 아지랑이.
남자의 검엔 꽤나 수준 높은 검기가 피어올랐고.
그의 발검이 끝났을 땐.
쐐애액.
깔끔한 반원의 검기가 발출되어 허공을 가르며 날고 있었다.
최소 플래티넘 중위권.
아마 상위권으로 추정되는 전투계의 검기가 날아들고 있건만.
“캬핫!”
짧고 높은 웃음을 터뜨린 이는 가볍게 손을 저을 따름이었다.
“본 쉴드.”
그녀의 말과 함께.
후두둑.
어디서 튀어나왔는지 모를 뼛조각이 그녀의 앞으로 뭉쳐 든다.
뭉쳐 든 뼈들은 퍼즐을 맞추듯.
빠르게 빈틈을 메우며 방패로 조형되었다.
콰가각.
뼈 방패에 들이박히는 검기.
“호오.”
다소 높은 톤의 감탄이 이어진다.
“너. 좀 치는 놈이구나?”
검기로 인해 반쯤 파인 뼈 방패.
그것을 본 회색 머리칼의 여자는 히죽 웃었다.
“아주 좋은 재료가 되겠어.”
그에.
“너, 넌!”
검기를 날렸던 남자가 하얗게 질린다.
이유는 간단했다.
‘경박한 목소리에 잿빛 머리카락, 거기에 흑인이면…….’
그의 기억이 맞는다면.
저 여자는 플래티넘을 넘어,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플레이어였으니까.
물론.
“데스 레이디 말리나?”
“어머. 날 알아?”
굉장히 안 좋은 쪽으로 말이다.
“……널 모르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긴장 때문일까?
남자의 검기가 한층 더 진득해진다.
그때.
피핑.
짧은 파공음이 들려온다.
말리나라 불린 흑인 여성은 히죽 웃는 얼굴 그대로 손가락을 까딱였다.
파파팍.
눈이라도 달린 듯.
그녀의 측면을 막아서는 뼈 방패.
“킥! 제법이네? 듣자 하니 이번에 플래티넘 단 애 같은데…….”
말리나는 뼈 방패에 박힌 화살 두 발을 톡톡 건드렸다.
“요런 깜찍한 기습도 할 줄 알고.”
“깜찍은 개뿔! 다음엔 머리통이 날아갈 줄 알아!”
남자의 여동생은 재차 시위를 메겼으나 그뿐.
“킥! 흥분하긴, 열 좀 식혀~.”
말리나는 조롱을 담아 손을 저었고.
“안 돼!”
그녀의 손끝에 맺힌 마법진을 본 남자는 서둘러 여동생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촤아악.
어느새 치솟은 저승의 강물은 그런 여동생을 그대로 덮쳤고.
그녀는 비명도 남기지 못한 채.
털썩.
잿빛이 되어 나룻배 위로 쓰러졌다.
“이!”
검기로 강물을 막아 낸 남자는 이를 악물었다.
“말리나! 이 망할 범죄자 년이!”
그는 검에 오러를 최대치로 쑤셔 박고는 곧장 말리나를 향해 도약했다.
거기까지 움직이고 나서야.
‘이런!’
남자는 깨달았다.
말리나가 서 있는 곳이 자신과 같은 나룻배가 아닌, 하얀 뼈로 이루어진 무언가라는 걸.
그리고.
덜그럭.
네크로맨서라면 빼놓을 수 없는 존재.
텅 빈 눈구멍에서 안광을 흘리고 있는 스켈레톤이 그 뒤로 쫙 펼쳐져 있다는 것을.
‘망했다!’
검을 내리치는 남자의 얼굴에 낭패가 서린다.
그것을 말리나도 본 것인지.
“참 사이좋은 남매네. 여동생이 죽었다고, 오빠가 이리 흥분을 다 하고?”
히죽 웃은.
그러나 아까와 달리 불편한 기색을 가득 담은 말리나는 고개를 까딱거렸고.
피피핑.
쐐액!
그녀의 뒤에서 날아드는 수십 발의 화살과 창, 도끼 등에.
“커헉!”
검을 내려치던 남자는 전신을 난도 당하며, 말리나의 앞으로 처박혔다.
덜그럭.
어느새 다가온 스켈레톤들이 쓰러진 남자의 사지를 구속한다.
“참…… 우리 오빠 새끼도 이런 걸 배우면 좋을 텐데…….”
말리나는 남자의 앞에 쭈그려 앉아, 그의 머리칼을 쓰다듬었다.
“그 새끼라면. 이렇게 화를 내긴커녕, 날 저 강에 던져버리고 몸소 죽음을 느끼라고 하겠지.”
부드럽던 그녀의 손에 점차 짜증이 어린다.
말리나는 거칠게 머리칼을 쥐어 들고, 죽어가는 남자와 눈을 마주쳤다.
“그러니…… 너라도 가져야겠어. 착한 오빠.”
스아아아.
머리칼을 움켜쥔 그녀의 손에서 섬뜩한 기운이 스멀거린다.
그것이 머릿속으로 주입된 걸까?
“꺼어어어!!”
죽어가던 남자는 눈을 까뒤집고, 전신을 덜덜 떨어대었다.
이윽고.
“애니메이트 데드(Animate Dead).”
인간의 그것과 전혀 다른.
죽은 무언가의 소리가 남자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말리나는 남자의 움직임에 맞춰, 몸을 일으켰다.
“히야! 구울이라? 역시 재료가 좋으니, 좋은 놈이 나오네.”
어디 한군데가 빠져버린 것처럼.
무표정하게 축 늘어진 남자를 기쁘게 끌어안는 말리나.
이내.
“그럼 착한 오빠? 네 여동생도 데려와야지?”
그녀는 구울이 된 남자에게 명령했고.
그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타악.
잿빛화 된 제 여동생의 시신을 말리나 앞으로 대령했다.
되살아난 여동생은 가지고 있던 살점과 근육을 모조리 떨어내고.
오롯이 뼈로만 일어났다는 것.
“미안해. 착한 오빠, 마음 같아선 여동생도 구울로 일으켜주고 싶은데…….”
말리나는 멍하니 서 있는 구울 남자를 보며,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쟨 너보다 약해서, 자원이 너무 많이 들어가거든. 너도 알지? 네크로맨서에게 자원 관리는 생명인 거.”
킥킥거린 그녀는 구울 남성의 어깨를 툭 쳤다.
“그래도 다른 친구들 잔뜩 만들어줄 테니까. 너무 섭섭해하지 말고 가서 기다려.”
그녀의 말에.
구울 남자는 뼈로 이루어진 배 한 쪽으로 어기적 걸음을 옮겼다.
그곳엔.
“그어어…….”
“으으…….”
구울 남성처럼.
죽기 전의 모습을 간직한 시체들이 열 구 가까이 서성이고 있었다.
“키킥! 맵도 나한테 딱인데 매칭까지 높게 잡히다니. 아! 너~무 좋다!”
그런 언데드들을 보며 상쾌한 듯 소리치는 말리나.
그녀는 반짝이는 눈으로 전신의 사기를 끌어 올렸다.
“전력은 이만하면 된 거 같으니까. 슬슬 자리 잡고 본격적으로…….”
정확히는.
“저, 저게 뭐야……?”
끌어올리려 했다.
초입부의 끝이자, 스틱스 강의 본격적인 시작인 입구에서.
촤아아아!
거대한 크루즈선 한 척이 나타나기 전까진 말이다.
* * *
시문의 채팅창.
정작 방송의 주체인 시문은 확인조차 하지 않건만.
-지, 지린다!
-이게 대체 뭔 배여?
-사령술 아닐까? 네크로맨서들 이런 마법 많이 쓰잖아.
-ㅇㅇ 걔네는 뼈나 살점으로 맨날 뭐 만들잖아.
-이젠 사령술까지 쓴다고?
-그게…… ‘시문’이니까…….
채팅창은 시문이 걸어둔 슬로우 모드가 우습도록.
쉬지 않고 올라가고 있었다.
당연했다.
-개솔 ㄴㄴ 내가 네크로맨선데. 재료 없이 이렇게 거대한 배는 못 만듦.
-22 뭐 이것저것 도움을 받더라도, 플래티넘이 만들 수 있는 수준은 절대 아님.
-ㄹㅇ 다이아도 힘듭니다.
-이 배, 흘러나오는 사기가 일반적인 사기랑 뭔가 좀 다른데?
-이레나 들어가서 직접 보고 싶다…… 핥고 싶다…….
-진심 참관 개마려움. 실물 쥰나 보고 싶네.
시문이 만들어 낸 거대한 배.
사령술에서 으레 쓰이는 재료로 이루어진 이 거대한 죽음의 배.
아니, 죽음의 크루즈선은 현직 네크로맨서들에게도 불가사의였으니까.
그리고.
‘김시문. 너란 놈은 대체…….’
이 모든 것을 실시간 경험 중인 야성적인 사내.
최진수는 좀처럼 펴지지 않는 미간으로.
“고마워요. 잘 마실게요.”
대체 왜 있는지도 모를 주스를 받아마시는 시문을 바라봤다.
스으으.
주스를 건넨 유령이 꾸벅 허리를 숙이며 사라진다.
최진수는 다소 얼이 빠진 얼굴로 시문에게 다가갔다.
“김시문.”
“아! 진수 씨. 이거 마셔볼래요? 특별 주스라는데, 무슨 망고 맛이 나요.”
“아니, 난 망고를 싫어한…… 다가 아니라!”
정말 크루즈 여행이라도 온 듯.
너무나도 태연한 시문의 능청에 저도 모르게 넘어갈 뻔한 최진수.
그는 거칠게 고개를 흔들곤 말했다.
“이대로 가만있을 셈이냐?”
“그러면요?”
정작 물은 것은 최진수이건만.
시문의 반문에 최진수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이유야 간단했다.
“아까 입구에서 직접 겪었잖아요. 어지간한 공격에도 끄떡없는 거.”
“그, 그거야 그렇지만…….”
스틱스 강의 초입부.
입구로 추정되는 거대한 동굴로 들어서기까지.
시문과 최진욱은 거의 집중포화라 해도 믿을 공세를 받았다.
당연했다.
아무리 스틱스 강이 바다가 연상될 만큼 크다지만.
웬 거대한 죽음의 배가 지나가는데 어찌 어그로가 끌리지 않겠는가?
‘검기나 마법, 심지어 성력에도 멀쩡했지.’
특히나 성력을 기반으로 한 신성 마법은 언데드와 마족 등에 관련해선 강력한 공격력을 지닌다.
당연히 이 거대한 배 역시 죽음의 부산물로 이루어진 이상.
신성 마법에 직격당하면 부서져야 정상이었는데.
‘그냥 눈 녹듯 사라져버렸어.’
신성 마법을 무효화시키는 사령술이라니?
최진수로서는 난생처음 보는 광경이었고.
당연히 그 경험을 몸소 겪은 보조계들의 얼굴은 아직도 잊히질 않았다.
그리고 이 모든 사단의 원인인 시문은 태연하게 유령이 건네준 주스를 마시며.
“괜한 거에 신경 쓰지 말고 여기 앉으세요. 의자가 보기보다 되게 편해요.”
뼈와 살점으로 이루어진 옆의 의자를 가리켰다.
“하…… 어째 너와 엮이면 난 이렇게…….”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최진수는 터덜터덜 시문의 옆자리로 걸음을 옮겼다.
푹신.
“음?”
살점이 섞여 있어서일까?
시문의 말대로 보기보다 정말 편한 의자에 눈이 동그래지는 것도 잠시.
“근데 이렇게 여유를 부려도 정말 괜찮겠나?”
그는 곧 진중한 얼굴로 물었고.
“네가 말한 스틱스 강의 변덕은 문제가 없겠지만, 이 배가 마냥 무적으로 보이진 않는데.”
“그렇겠죠. 여기서부턴 나름 실력 있는 사람들만 있을 테니.”
시문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아까 알아본 바로 이 배에 위협이 되는 플레이어는 두세 명 정도였죠. 그리고…….”
말끝을 흐리는 시문.
그의 시선은 곧 정면, 배의 선두를 향했고.
콰가가각!
무언가가 갈리는 소리와 함께.
강한 진동이 선체를 흔들었다.
진동이 제법 묵직한 것으로 보아, 꽤 큰 무언가와 충돌한 모양.
이어.
“마침 그중 한 명이 왔네요.”
시문의 말을 신호로 선체 위에 무언가가 다량으로 후두둑 떨어졌다.
허연 백골에 불길한 안광.
그를 본 시문의 입꼬리가 슬쩍 올라간다.
“하필 제일 위험한 플레이어가 왔나 본데요?”
전사부터 궁수, 그리고 마법사까지.
선체로 올라오는 스켈레톤들의 수가 점차 많아진다.
“그어어…….”
스켈레톤들과 달리.
죽기 전의 모습을 온전히 유지한 구울들까지 선체로 올라서고 나서야.
“어머나~ 좋은 배네?”
이 갑작스러운 침입자들의 주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사기부터 재료까지…… 가까이서 보니 더 대단해! 이런 건 우리 오빠도 못 만들 텐데!”
“크릉!”
어느새 자리에서 일어난 최진수가 곰과 늑대를 섞은 듯한 야수로 변신한다.
이내.
“잠깐…… 저자는?!”
거칠 것이 없어 보이던 최진수가 갑자기 움찔한다.
“회색 머리에 사령술, 흑인 여성…… 설마 데스 레이디?!”
“킥! 어딜 가나 날 알아보네? 이놈의 인기란~.”
데스 레이디 말리나.
플래티넘 최상위권으로 분류되는 마법계 플레이어.
하나 거의 모든 플레이어는 말리나에 대해 적대적이었다.
그녀가 죽음을 다루는 네크로맨서라서가 아니었다.
“알아볼 수밖에. 넌 말리크의 여동생이니까.”
“하긴, 우리 오빠가 좀 유명하긴 하지.”
데스 로드 말리크.
세계 최강의 빌런 집단인 데스페라도의 멤버 중 하나가 그녀의 오빠였고.
말리나 역시도 데스페라도의 구성원 중 하나로 빌런으로 지정된 플레이어였으니까.
“근데 그 데스 레이디라는 호칭은 좀 안 써 주면 안 될까? 나 들을 때마다 소름이 돋거든.”
“그건 저희가 아니라, 본인의 오빠한테 말해야죠.”
뚜렷한 미성이 최진수 대신 답한다.
“자칭 데스 로드라고 말하고 다니는 건 당신의 오빠, 말리크잖아요.”
“으으! 망할 오빠 놈 때문에 내가 진짜!”
팔의 소름을 슥슥 쓸어내리던 말리나.
이내 그녀는 눈을 반짝이며 시문을 바라봤다.
“너지? 이 배의 주인.”
“맞아요.”
시문의 긍정에 말리나는 킥 웃었다.
“방금 네가 한 말은 오빠한테 전하지 않을 테니까. 이 배 나한테 넘길래?”
“미안한데 그건 안 되겠네요. 제작물이 아니라서 교환이 불가능하거든요.”
“그럼 더더욱 넘겨야겠는걸? 마법이나 아티팩트라는 거잖아.”
싱긋 웃는 말리나.
물론 그런 미소와 달리, 그녀의 눈에는 살기가 넘실거렸다.
“너. 내가 누군지 알지?”
“당연하죠. 방금 이야기했잖아요.”
“알면 넘겨. 그럼 아레나 끝나고 찾아가서 죽이고 털어가는 수고는 하지 않을 테니까.”
아주 자연스레 현실의 살인강도를 논하는 말리나.
그에 시문은 피식 웃음을 흘렸고.
“웃어? 너 지금 나 비웃은 거니?”
미소가 걸쳐졌던 말리나의 얼굴은 순식간에 싸늘해졌다.
“나, 너 알아. 요즘 잘나가는 유망주 김시문 맞지? 한국에 살고.”
상대가 데스페라도의 소속 빌런임을 고려해보면, 무척이나 살벌한 발언이었으나.
“제가 유명한가 봐요? 데스페라도에서도 절 다 알고.”
시문은 여전히 의자에서 일어나지도 않은 채.
유들유들하게 웃을 따름이었다.
그 모습이 심히 거슬렸는지.
“유명하지. 모가담 님이 널 폭사시켜버리겠다고 아주 펄펄 뛰셨는데.”
또 다른 데스페라도의 멤버.
폭탄마 모가담을 언급하는 말리나.
하나.
“아아, 언제 시간 나면 한번 찾아오라 그래요. 나도 그쪽에 볼일이 좀 있어서.”
시문은 겁먹긴커녕.
설렁설렁 손을 흔들며 답할 뿐이었다.
“……너 정말 미쳤구나?”
시문의 여유로운 태도에 말리나의 얼굴에 표정이 완전히 사라진다.
“이젠 빌어도 늦었어. 여기서도, 현실에서도. 곱게 죽을 생각은 하지 마.”
그녀는 뚫어버릴 기세로 시문을 노려보며, 악의 섞인 말을 무덤덤하게 내뱉었다.
이내.
“가라. 사지만 잘라서 내 앞으로 가져와.”
그녀가 명령하자.
덜그럭.
“그어어어!”
선체에 오른 백 단위의 언데드들이 일제히 달려들었고.
“흐림(Hrymr).”
시문은 손을 슬쩍 들며 뒤편을 힐끔했다.
그러자.
“끌끌. 부르셨나. 귀빈.”
낡은 로브의 노인 하나가 지팡이를 짚으며 절뚝절뚝 걸어 나왔다.
“여기 불청객이 있네요.”
시문은 달려드는 언데드들을 태연하게 가리켰고.
“그렇구먼. 상급 놈들도 감히 발을 못 들이는 곳에, 하급의 버러지들이 잔뜩 승선했어.”
흐림이라 불린 노인은 무척이나 노쇠해 보이는 외형과 다르게.
“그분께서 아시면 내게 아주 경을 치시겠구먼.”
범상치 않은 안광을 뿜었고.
“에잉! 빌어먹을 버러지들. 당장 꺼져라!”
노성을 터뜨리며 지팡이로 바닥을 툭 찍었다.
흔한 노인의 성내기에 불과할 터인데.
퍼석.
달려들던 백 단위의 언데드들이 힘없이 부서져 내렸고.
“이, 이럴 수가!!”
살기가 그득하던 말리나의 두 눈은 찢어질 듯 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