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4화
154화. 저승의 강 (1)
[갤럭시 아레나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반가운 안내창.
[이번 아레나의 종목은 ‘운송전’이고, 참가 인원은 100명입니다.]
[인원이 모두 모이면 아레나가 시작됩니다.]
이어 익숙한 메시지들이 뒤를 따랐다.
이미 몇 명은 매칭을 기다리고 있던 것인지.
“어? 저거 김시문 아냐?”
“뭐? 헉! 지, 진짜잖아! 쟤 지금 아레나 해도 되는 거야?”
“범인까지 잡혔는데 못할 건 또 뭐야?”
먼저 대기하고 있던 플레이어들은 시문을 알아보고 저마다 수군거렸다.
하나 시문은 그들에게 시선을 줄 여유가 없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시하!
-형! 어케된 거야? 킹시국에 방송이라니?
-시문님 괜찮아요? 다친 덴 없어요?
-안돼! 형! 미국 가지 마! ㅠㅠ
-그냥 미국 가시는ㅠ 게…… 저 같으면 진짜 이민했습니다.
-ㄹㅇ 붙잡을 면목이 없음.
아레나의 접속과 동시에 방송을 켜자마자.
수많은 시청자가 시문을 반긴 것이다.
그 관심이 어찌나 컸던지.
[2.244.278명 시청 중]
저번 아레나인 검은 제련소에서 달성했던 140만을 훌쩍 넘어.
시청자 수는 어느새 220만을 돌파하고 있었다.
‘대충 시청자가 늘 거라고 생각은 했는데…….’
헛웃음을 흘리는 시문.
국내의 이슈만이 아닌, 이민설까지 겹쳐서인지.
-우리 미국은 언제나 영웅을 환영한다!
-킴! 어서 오기만 하라고!
-같은 동양인끼리 뭉쳐야 하지 않겠나? 대륙성으로 와라!
-우리 유우토 군이 검성의 굉장한 팬입니다. 일본으로 오시면 서로 좋은 관계가 되지 않을지?
-알라는 인재를 아낀다. 우리 중동도 당신의 값어치를 맞춰줄 수 있다.
해외의 시청자들도 상당수 유입되었다.
그렇게.
[3.544.958명 시청 중]
350만 명의 시청자 수를 넘어서고 나서야, 시청자 수의 증가가 멈췄다.
‘200만이나 300만 시청자 수는 업적이 없나 보군.’
그에 아쉬운 듯.
입맛을 다신 시문은 미소를 머금었다.
“다들 어서 오세요. 큰일이 있어서인지, 다들 오랜만에 뵙는 기분이네요.”
단지 한마디 했을 뿐인데.
-흐허헝! 시문 님! 가지 마세용 ㅠㅠ
-뭐래? 그 꼴 당하고 한국에 있으라는 거임?
-큰 사람은 큰물에서 놀아야 하는 법. 소 형제, 대륙으로 오시오!
-저희 일본도 그리 작지는 않답니다? WWWW
-백날 그런 소리 해 봐야, 아메리칸드림과 계약한 현실은 안 변해~ XD!
어마어마한 속도로 주르륵 올라가는 채팅창.
350만 명이 넘었으니 당연한 일이기도 하겠다만.
‘이건 뭐, 이제 각성자가 아니면 읽기가 아예 불가능하겠네.’
채팅이 올라가는 속도는 가히 상상을 초월했다.
‘속도에 제한을 좀 둬야겠어.’
시문은 즉시 아레니아 세팅창을 열어.
채팅창 슬로우 모드를 켰다.
그러자.
-오오! 즉시 편안!
-슬로우 모드 켰나 보네.
-킹시문…… 본인은 다 읽을 수 있을 텐데…….
채팅이 올라가는 속도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시문은 이어 몇 가지를 더 설정했다.
“다들 너무 많은 관심을 주셔서, 잠시 슬로우 모드랑 채팅 쿨타임 좀 걸어뒀습니다.”
이어.
“이렇게 많은 분이 방송에 와주신 건, 역시 이번에 터진 일 때문이겠죠.”
시문은 대놓고 이번 일에 대해 언급하자.
-ㄷㄷ ‘그 사건’ 등장!
-님, 방송 켜도 됨? 이제 다 끝난 거?
-형…… 미국 간다 해도 안 잡을게.
-ㅇㅇ 우린 다 이해함.
-시문 킴, 어서 미국으로 오도록 해.
슬로우 모드가 걸렸음에도.
채팅창이 다시 한번 출렁였다.
시문은 채팅창을 슥 훑었다.
“정황은 다 아실 테니 따로 드릴 말씀은 없고. 결론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여론몰이로 어쩔 수 없이 이민을 택했던 거라…….”
조금 처량한 미소로 말끝을 흐리는 시문.
잠시간의 뜸을 들이곤 말했다.
“아무래도 미국행은 보류할 듯싶어요. 협회장께서 발 벗고 나서주시기도 하시고.”
-ㄹㅇ? ㄹㅇ이야?
-5252! 믿고 있었다고!!
-킹갓제네럴무열…… 믿습니다!
-아냐 형…… 가도 돼…… 그냥 가…….
-너 한국인 아니지?
곧장 파란으로 이어지는 채팅창.
특히나.
-?? 이미 계약하지 않았나?
-미스터 킴이 아직 젊어서, 계약의 중요성을 모르나 본데?
-이렇게 방송에서 이야기할 정도면, 아직 영입 절차가 완전히 끝난 게 아니겠지.
-맞아. 실제로 그는 ‘보류’라고 했잖아.
-하지만 결국 보류잖아?
-그렇지. 그가 미국으로 오지 않겠다고 확정 지어 말한 것도 아니니까.
미국인으로 보이는 시청자들의 채팅이 급속도로 빨라졌고.
그렇게.
[속보! 김시문 미국 이민 안 간다?]
[미국 이민 보류 중? 김시문 실시간 현황!]
또 한 번의 기사들이 대한민국을 달구었다.
* * *
[현 최대 유망주 김시문, 한국에 남는다?]
[김시문, ‘보류 중’ 속단은 일러]
[철목왕 김무열의 활약? 김시문, 협회장 언급!]
[김시문의 이민 보류 선언에 아메리칸드림 측, 묵묵부답]
[전길 길드 부길마 김종준 협회로 수감 완료, 협회 앞에서 농성 중인 국민들!]
모니터를 빼곡하게 채우는 기사들.
그것들을 보던 금발의 미녀.
“하아…….”
늘 착용하고 다니던 각진 안경을 벗고 미간을 꾹꾹 누르던 그녀는.
“빌어먹을.”
나지막한 욕과 함께 깔끔하게 정돈된 머리칼 사이로 고운 손가락이 파고들었다.
아마 그녀를 아는 이들이 지금의 모습을 본다면, 틀림없이 경악하리라.
역시나.
“부장…… 히익! 누, 누나!”
문을 열고 들어온 남성.
올리버는 질겁한 얼굴로 후다닥 여성을 향해 다가갔다.
“왜 그래? 드디어 미쳐 버리기라도 한 거야?”
올리비아 덴슨.
아메리칸드림의 영입부 부장이자.
길드 마스터인 데릭과 함께 아레나를 누볐던 다이아 랭크의 실력자.
특히나 윈터 퀸이라는 그녀의 별명은 단순한 무력만이 아닌.
얼음처럼 변함없는 그녀의 행색 때문에 붙은 별명이기도 하건만.
지금은 어떤가?
“그래요…… 미치겠어요……. 아주 미쳐 버리겠다고!”
헝클어진 머리와 복장.
냉정을 잃어버린 목소리 톤과 눈빛까지.
세간에 알려진 윈터 퀸이라는 인물과 너무나 동떨어져 있지 않은가?
그나마 다행이라면.
“아아, 누나도 봤구나. 김시문 기사 난 거.”
저 얼음 같은 누이가 왜 이리 망가졌는지.
짐작이 가는 바가 있다는 것.
올리버는 이 무시무시한 누이가 폭주하기 전에.
“누나. 그래도 마법 같은 걸 난사하면 안 돼. 여긴 한국이라 언론 막기도 빡세단 말이야. 미국과 달리 그쪽 인맥이 없다고.”
얼른 진화에 나섰다.
다행히도 한 줄기의 이성이 남아 있었는지.
“그 정도는 나도 아니까. 호들갑 떨지 마세요.”
그녀는 떨리는 손으로 마른 세수를 하며, 다시 정면의 모니터를 노려보았다.
어느새 그녀의 곁으로 다가온 올리버는 모니터를 힐끔했다.
“안 그래도 나, 이 뉴스 때문에 온 거야.”
그는 어디선가 의자를 끌어와 제 누이의 옆에 털썩 앉았다.
“올리버 팀장? 여기 직장입니다. 전 당신의 부장이고.”
“에이, 지금 그딴 걸 신경 쓸 때야? 김시문이 직접 말도 꺼냈겠다, 누나도 이제 말해봐.”
올리비아의 나지막한 경고에도 코웃음을 친 올리버.
그는 책상에 팔을 올려, 턱을 떡하니 괴곤 제 누이를 바라봤다.
“대체 무슨 제안을 했길래, 이런 말도 안 되는 짓에 맞춰준 거야?”
“…….”
“뭐 성좌들이랑 미팅이라도 잡아 준데? 아니면 다음에 우리 쪽 유망주 만나면 봐주기로 한 거야?”
공과 사를 구별하지 않는 태도 때문일까?
아니면 대놓고 캐묻는 행태 때문일까?
한동안 올리버를 못마땅한 눈으로 바라보던 올리비아는 작게 한숨을 쉬곤.
마우스를 딸깍거렸다.
그곳엔.
-그럼 여러분들. 드릴 말씀은 다 드렸으니, 전 이제 아레나에 집중할게요. 매니저분들 계시니까, 채팅 신경 써 주세요.
천하의 윈터 퀸을 이 꼴로 만든 주인공.
김시문이 애써 웃는 듯한, 다소 처량한 낯으로 방송을 진행하고 있었다.
하나 수많은 인재를 발굴해 온 올리비아의 눈을 속일 순 없는 법.
‘힘든 척을 해? 저 가증스러운……!’
뿌득.
저도 모르게 이를 가는 올리비아.
하나 어쩌겠는가?
“누나. 그러다 이 나간다.”
김시문이 내건 조건을 거절하지 못한 자신의 탓인 것을.
올리비아는 다시 한번 한숨을 푹 내쉬곤 입을 열었다.
“김시문이 내건 조건은 그런 게 아닙니다.”
“그럼 뭔데?”
“성장 버프예요.”
“성장 버프?”
고개를 갸웃하는 올리버.
이내.
“아! 검성 길드의 버프 말하는 거야?”
놀란 눈으로 올리비아를 되물었고.
“맞아요. 김시문이 그러더군요. 조만간 성장 버프의 옵션이 상승할 거고, 그에 따른 버프 대여비가 재조정될 거라고.”
“재조정이면…… 설마 거기서 더 올리겠다는 건 아니겠지?”
“왜 아니겠습니까?”
“와! 이거 완전 쌩양아치잖아? 거기서 더 올리는 건 너무한데!”
“그렇지만도 않습니다. 김시문이 제시한 건, 세 달분의 대여비 면제와 우리 쪽 가입 티오를 하나 더 준다는 것이었으니까요.”
올리비아의 말이 끝났을 땐, 그의 눈은 두 배나 더 커졌다.
“그, 그게 정말이야? 세 달분 면제에 가입 티오를 더 준다고?”
“그게 아니면 제가 길드까지 속여가면서, 이런 미친 짓에 동참했겠습니까?”
어느새 평소의 냉철한 목소리 톤을 되찾은 올리비아.
“하…… 누나가 넘어갈 만도 했네. 아니, 이건 넘어갈 수밖에 없는 조건이네.”
그녀는 옆에서 중얼거리는 동생에게 힐끔하고는.
다시 모니터 속의 시문을 바라봤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건 그게 아닙니다.”
“이게 아니라고? 뭐가 또 있는 거야?”
“올리버 팀장? 늘 말하지만, 제발 머리를 좀 쓰십쇼.”
“머리는 누나가 쓰잖아. 난 아껴야지.”
“야이!”
곧장 치켜드는 올리비아의 손에 얼른 몸을 물리는 올리버.
저 거리를 좁히려면 시문의 방송을 포기하거나 마법밖에 없었기에.
“후…….”
숨을 고른 올리비아는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며 모니터를 바라봤다.
“그 말도 안 되는 성장 버프의 변화를, 검성이 아닌 김시문이 직접 언급했죠. 이게 의미하는 바가 뭐겠습니까?”
“그거야…… 뭐, 뭐야! 설마?!”
경악하는 남동생에겐 시선도 주지 않은 채.
올리비아는 묵묵히 모니터를 응시하며 말했다.
“그래요. 심드라실 길드의 성장 버프는 ‘검성이 아닌, 김시문으로 인한 거다.’ 그는 그런 정보까지 줘 가면서, 제게 이 연극을 제안한 겁니다.”
검성과 김시문을 특히나 강조하는 올리비아.
심드라실의 길드 마스터가 검성으로 되어있는 현시점에서.
이는 초특급에 해당하는 정보였다.
아무리 고고한 윈터 퀸이라도 받아들이지 않고는 못 배길 정보 말이다.
“그렇구나…… 그래서 누나가…….”
그것을 올리버도 잘 알고 있었기에.
또한.
이로써 김시문의 가치가 또 한 단계.
아니.
측정 불가 수준으로 치솟았기에.
“그럼 누나, 앞으로 우린 어쩌냐? 이거 길드 지분으로 해결될 수준이…… 아닌 거 같은데?”
올리버는 다소 얼이 빠진 목소리로 물었고.
“……나도 모른다. 이 새끼야.”
올리비아 역시 늘 칼 같던 무장을 풀어버린 채.
‘이 인간은 대체, 뭘 어떻게 해야 영입이 가능한 거지?’
손톱을 잘근잘근 깨물며, 화면 속 이 사단의 원인을 바라봤다.
* * *
[참가 인원이 모두 매칭되었습니다.]
100명의 인원이 모두 매칭되고.
[지역은 ‘저승의 강 스틱스’입니다.]
시커먼 하늘.
그 아래로 음산하다 못해, 산자라면 절로 거부감을 느낄 어둑한 강이 펼쳐진다.
말이 강이지 사실상 바다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거대했고.
“으으! 저승의 강이라니!”
“스틱스면 빠지는 순간 엿되는 거잖아?!”
“너 갓 플래 올라왔냐? 어떤 저승의 강이든 빠지면 엿되는 건 똑같거든?”
그것을 본 플레이어들은 대부분이 질색을 하며 저마다 불만을 토했다.
하나 시문은 그들처럼 불만을 토할 여유가 없었다.
[조건 ‘협력’이 추가됩니다.]
[참가자 모두 2인으로 팀이 맺어집니다.]
추가된 협력 조건.
그와 함께 팀을 이룰 플레이어가 시문의 곁으로 소환된 것이다.
“어? 당신은?”
그리고 그는.
“오랜만이군. 김시문.”
시문과 몇 차례, 아레나를 뛰어본 인물이었다.
시문은 근육질의 남자가 내민 손을 맞잡았다.
“오랜만이네요. 최진수 씨.”
미래의 하이랭커.
신화 길드의 유망주이자, SS급 특성 야수화의 소유자인 최진수였다.
“뉴스는 봤다. 몸은 괜찮나?”
“네. 다행히 멀쩡합니다. 뒷일도 잘 마무리되어 가고 있고요.”
“하긴…… 아무리 다이아라도, 너라면 문제없겠지.”
“하하! 그냥 운이 좋았어요.”
“운이 좋았다?”
묘한 어조로 되묻는 최진수.
그런 두 사람의 앞으로.
[아레나가 시작됩니다.]
[운송 대상이 생성됩니다.]
[목표 지점까지 운송 대상을 안전하게 운송하십시오.]
아레나의 시작을 알리는 공지와 함께.
출렁.
주변 강가에 다소 투박하고 낡아 보이는 나룻배가 생성되었다.
두 사람이 타기에 제법 넉넉한 크기의 나룻배.
그 안으론.
데구르르.
운송 대상인 작은 구슬이 놓여 있었다.
‘저건?’
구슬을 본 시문의 눈이 조금 커졌다.
그도 그럴 것이.
‘영혼핵이잖아?’
자신의 인벤토리에 들어 있는 한 아이템과 똑같았으니까.
* * *
한편.
시문의 펜트하우스.
언제나처럼 시문의 방송을 보며,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감돌아야 할 이곳은.
“…….”
“…….”
싸늘하다 못해, 묵직한 분위기가 내려앉아 있었다.
그리고 이 분위기의 원인인 두 랭커는.
“숙부. 그 병신같은 길드들을 처리하느라 바쁘시지 않나요? 뭣 하러 여기까지 행차하셨습니까?”
“건방진 새끼. 이 나라에서 나 김무열이 가지 못하는 곳은 없다.”
냉담한 얼굴로 서로를 노려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