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2화
152화. 여론이란 (4)
“…….”
적막이 감도는 대련장.
무리도 아니리라.
“내…… 밤의 그물이……!”
밤의 그물.
SS특성 밤의 가호로 이루어져, 가닥가닥이 어지간한 검기와 맞먹는 위력의 기술.
그런 기술을 단 주먹 한 방으로 찢어 버리다니?
잠시 허망한 눈으로 스러지는 밤의 그물을 보던 박진욱은.
“후.”
짧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슬쩍 저었다.
“그동안 회피만 하셔서 제가 잠시 착각했습니다.”
일종의 착각이라면 착각일까?
“이건 엄연한 대련이고, 시문 님이 맞서 공격을 펼치는 건 아주 당연한 건데 말이죠.”
앞선 두 번의 공격 모두 시문이 피하기만 하였기에.
저도 모르게 자신은 공격만 하고, 시문은 피하기만 하는 입장이라고 착각하고 있었다.
이는 아마.
‘내 기습을 너무 쉽게 피해 내셔서. 나답지 않게 감정에 지배당했나 보군.’
시문이 다이아급 암살계인 자신의 기습을 너무 쉽게 피해 낸 충격도 있으리라.
흔히 감정지배라고들 하지 않는가?
실제로도 자존심에 아주 제대로 금이 갔으니까.
‘아무리 그래도 대련인 걸 착각할 정도로 흥분하다니…….’
암살자로서 실격이군.
그렇게 중얼거린 박진욱이 고개를 푹 숙이자.
“진욱 씨. 그…… 어차피 대련이니까. 한 번만 더 할까요?”
시문은 난감한 미소로 다가갔고.
“아닙니다.”
박진욱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이미 한 번 더 해 주시지 않았습니까? 바쁘신 분을 계속 잡아둘 수는 없지요.”
아마 아레나 질병 치료제와 관련해 한 소리겠지만.
‘나 이제 그렇게 안 바쁜데…….’
현자의 돌과 시연이에게 모두 넘겨 버린 지 오래라.
새로운 치료제의 생산 라인을 만들 때가 아니면 신경 쓸 일이 없었다.
미스릴 골렘의 컨트롤마저 시연이가 모두 다루고 있는 마당이니까.
그래도 시문은 괜한 위로는 건네지 않았다.
‘애당초 진욱 씨도 진심으로 대련한 건 아니니까.’
다이아 최상위권의 플레이어.
그들이 어떤 힘을 가지고 있는지는 이미 전생부터 잘 알고 있는 시문이었다.
특히나 동생 시혁이의 최측근이던 밤사냥꾼의 실력이야.
모를 수가 없었다.
‘당장 오러만 사용해도 내가 힘들어지겠지.’
거기다 암살계는 상대방을 죽이려 들 때, 가장 큰 힘을 발휘하는 계통.
박진욱이 진심으로 자신을 죽이고자 한다면.
아무리 시문이라도 이토록 쉽게 이길 수는 없으리라.
그때.
-저기. 오빠? 대련 다 끝났어?
가슴 정중앙에서 명랑한 목소리가 울렸다.
현자의 돌이었다.
‘어. 방금 끝났어. 왜?’
-그…… 다른 게 아니고. 펜트하우스에 침입자들이 있어서.
“침입자라고?!”
깜짝 놀라는 시문.
그도 그럴 것이 이곳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비싼 건물.
동시에 가장 핫한 랭커인 김시혁과 이유정이 거주하는 가장 안전한 건물일 텐데.
침입자라니?
“시문 님, 방금 침입자라고 하셨습니까?”
“야,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야?”
박진욱과 고말숙 역시 시문과 같은 생각인지.
휘둥그레진 두 눈으로 한걸음에 다가왔다.
-응. 오빠 방해하고 싶지 않아서, 내 선에 끝내려고 했는데…… 한 명을 놓쳤어.
“놓쳐? 지금 어디 있는데?”
-엘리베이터는 안 타고 계단으로 갔으니까. 여기 구조상 아마.
현자의 돌의 말이 뚝 끊어진다.
정확히는 들리지 않았다고 해야겠지.
키잉.
왼쪽 눈의 날카로운 이명.
그와 함께.
사사삭.
4줄기의 잔상이 얼굴로 날아들었으니까.
툭.
“억!”
옆의 고말숙을 걷어찬 시문이 곧장 허리를 뒤로 접는다.
이어.
슈아악!
미래시가 보여줬던 잔상 그대로.
4개의 푸른 선이 허공을 베어나갔다.
동시에.
“어떤 새끼가 감히!”
험악한 노성이 터지며, 시커먼 기운이 시문을 스쳐 날아간다.
까가각!
거친 마찰음이 터져 나오고.
시문은 박진욱이 벌어준 틈을 타, 백 텀블링으로 거리를 물렀다.
그러곤.
“당신은…….”
눈에 들어온 기습자의 정체에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럴 수밖에.
기습자는 전갈 길드의 부 길드 마스터이자.
“김종준?”
1세대로 다이아 상위권을 누비는 현역 플레이어, 김종준이었으니까.
“김종준! 너 미쳤어?! 이게 무슨 짓이야!”
시문을 호위하듯.
밤의 기운으로 주변을 에워싼 박진욱이 외쳤으나 그뿐.
“김시문…… 이 어린 놈의 새끼가 감히 날 물 먹여!”
반쯤 돌아버리기라도 했는지.
피투성이에 핏발까지 선 눈으로 시문만을 노려보는 김종준.
“어떻게 우리 작전을 눈치챘는지는 몰라도, 넌 오늘 죽는다.”
“하! 정말로 미쳤나 보군.”
그에 시문의 곁에 있던 박진욱이 헛웃음을 흘리며 한 걸음 나선다.
“김종준. 내 앞에서 지금 누굴 죽인다는 거냐?”
그의 주변으론 독이 바짝 오른 뱀처럼.
스으으.
시커먼 밤의 기운들이 날카롭게 고개를 치켜들었다.
“그래…… 박진욱. 네놈도 있었지.”
실성한 사람처럼.
저 혼자 웃어대는 김종준.
“길드에서 쫓겨난 X새끼 주제에. 그새 또 새 주인을 찾았나? 하긴, X새끼 근성이 어디 가겠나?”
“그 꼴로 어설프게 긁어봐야 안 통하고, 뭐 좀 물어보자. 넌 다이아까지 단 인간이, 대체 누구한테 그렇게 처맞고 온 거냐?”
그 말이 발작 버튼이라도 되는지.
“그거야!!”
웃음을 흘리다 대번에 목에 핏대를 세우는 김종준.
하나 무엇 때문인지.
빠득.
이를 간 그는 차마 뭐라 말도 꺼내지 못한 채, 시문만을 죽일 듯 노려볼 따름이었다.
그에.
“아아, 그렇군.”
박진욱은 감을 잡았다는 듯.
짧게 탄성을 흘렸다.
“시문 님의 펜트하우스에 몰래 잠입했나 보군. 꼴을 보니 설치된 함정에 제대로 털렸고.”
정작 함정을 설치한 쪽은 이쪽이라고.
무어라 말이라도 할 법하건만.
“…….”
김종준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멍청한 새끼. 암살계가 함정에 당했으면 쪽팔린 줄 알아야지. 어디서 목에 핏대를 세워?”
박진욱이 이죽거리자.
“닥쳐라! 조직에서 쫓겨난 X신이 지금 누구에게!”
눈을 뒤집은 김종준이 쇄도한다.
그것을 시작으로.
콰가가강!
두 다이아급 암살계의 전투로 쉴 새 없는 폭음이 이어졌다.
그리고.
‘함정이라고?’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던 시문은 고개를 갸웃했다.
‘난 함정을 설치한 기억이 없는데?’
전생이라면 모를까.
이렇게 평화로운 시대에서 무려 랭커팰리스에 사는데, 뭣 하러 함정을 설치한단 말인가?
이내.
“아.”
저도 모르게 작은 탄식을 내뱉는 시문.
김종준이 왜 저런 몰골로 자신을 노려보는지 감이 잡힌 것이다.
‘현자의 돌. 네가 말한 침입자가 혹시 김종준이야?’
-응, 저 인간 말고 19명 정도 더 왔었어.
역시.
하며 고개를 주억거리던 시문이 움찔한다.
‘19명이라고? 그럼 김종준까지 20명이잖아?’
-맞아. 좀 잘생긴 오빠야들로 데려왔으면 즐기기라도 할 텐데. 하나같이 존못 덩치들이라, 짜증만 더럽게 났어!
‘그게 지금! 후. 됐고, 어떻게 처리한 거야?’
-어음, 그건…… 내, 내가 좀 잘났어? 미스릴 골렘도 있고, 시연이도 있으니까 잘 처리했지!
따져보면 상당히 어폐가 있는 대답이었다.
김종준만 해도 1세대 출신의 다이아 암살계 아니던가?
당연히 같이 온 이들의 수준도 상당할 테지만.
안타깝게도 시문은 그것들에 대해 의심할 여유가 없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시연이는? 시연이는 괜찮아?’
자신을 아빠라 부르는 아이.
그 작고 여린 아이에 대한 걱정이 머릿속에 가득했으니까.
다행히도.
-당연히 괜찮지. 애당초 시연이가 싹 쓸어버렸는데.
‘뭐?’
-에? 아! 그, 그러니까! 오빠가 미스릴 골렘 통제권을 다 시연이한테 넘겼잖아. 내가 적당히 보조해 주니까. 혼자서 쓸어버리더라고.
뭔가 횡설수설하는 느낌이 없지 않아 있었지만.
‘그래? 다행이네.’
시연이는 안전하다는 말에 시문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긴 해도, 애가 많이 울적한 상태야.
‘왜? 어디 다치기라도 했어?’
-다쳤다면 다쳤지. 마음이. 쯧, 그러게 놀지 말고 제대로 하라니까.
영문 모를 소리를 중얼거리는 현자의 돌.
이내.
-어쨌거나 시연이는 멀쩡하니까. 오빠는 오빠 걱정만 해.
‘나야 뭐…… 조심할 거리도 없지.’
현자의 돌의 말에 시문은 어깨를 으쓱했다.
콰가강!
정면에서 터져 나오는 섬광과 폭음.
저 살인적인 전투는 자신이 아닌, 김종준과 박진욱이 펼치고 있으니까.
“야. 너 괜찮냐?”
어느새 다가온 고말숙.
다소 어두운 그녀의 얼굴에, 시문은 아까 걷어찬 것이 떠올랐다.
“말숙아. 아까는 미안. 워낙 급해서 나도 모르게 널 차버렸어.”
“아니. 네가 안 찼으면 그대로 대가리가 네 동강 났다는 것쯤은 알고 있어. 난 그저…….”
하나 그녀의 얼굴이 어두운 것은 다른 이유인지.
“……X발! 난 또 이렇게!”
김종준과 박진욱의 전투를 지켜보던 고말숙은 주먹을 말아쥔 채.
입술을 질끈 깨물 따름이었다.
“말숙아. 너 왜 그…….”
그에 시문이 뭐라 말을 건네려던 순간.
키잉.
한 줄기의 잔상이 자신과 고말숙의 목을 꿰뚫는다.
왜인지에 대해 고민은 할 필요도 없었다.
우웅.
오른손에 패황쇄를 두른 시문은 곧장 잔상을 향해 주먹을 내질렀고.
쩌엉!
강렬한 이명과 함께 머리카락이 흩날릴 정도의 파장이 터져 나왔다.
박진욱과 전투 중이던 김종준이 기습적으로 암기를 던진 것이다.
“김종준 이 X새끼가!”
그 모습을 본 박진욱이 눈에 불을 켜며 욕설을 내뱉었고.
그만큼 밤의 기운과 단검의 공세도 더욱 거칠어졌다.
시문은 급히 고말숙을 살폈다.
“말숙아. 괜찮아?”
“……그래.”
전혀 괜찮아 보이지 않는 얼굴.
고말숙이 더욱 어두워진 얼굴로 고개를 숙이자.
시문의 눈이 서늘하게 가라앉았다.
‘진욱 씨의 체면을 생각해서, 어지간하면 나서지 않으려고 했는데.’
밤사냥꾼 박진욱.
다이아 최상위권의 암살계인 그는 상위권인 김종준보다 윗줄의 플레이어다.
심지어 김종준은 부상까지 얻은 상태 아닌가?
전투가 시작된 순간부터 이미 박진욱에게 밀리는 양상이었다.
고로 시간만 지난다면 김종준의 패배는 확정인 상황.
그렇기에 따로 나서지 않은 것인데.
‘난 몰라도, 말숙이를 노린 건 못 참아.’
놈의 암기가 노린 첫 대상은 분명 자신이었으나.
저만한 수준의 플레이어가 관통되는 것을 계산하지 못할 리 없었다.
실제로 미래시의 잔상 역시 말숙이의 목이 꿰뚫린다는 것을 보여주지 않았나?
김종준은 아무런 관련도 없는 고말숙까지 함께 처리해 버릴 심산으로 암기를 던진 것이다.
그러나 시문이 화가 나는 것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두 번은…… 안 돼.’
전생.
자신의 발치로 굴러왔던 말숙이의 머리.
그럼에도 호쾌하게 웃고 있었던 그녀의 얼굴이 오버랩되자.
“김종준……!”
순식간에 감정이 들끓었고.
시문은 그것을 참지 않았다.
타앗.
땅을 박차는 시문.
우드득.
어느새 용체화까지 이루어진 그의 두 주먹엔 묵색의 기운이 넘실거렸다.
그것을 기다렸다는 듯.
박진욱을 상대하던 김종준의 눈에서 검붉은 기운이 급격히 피어올랐고.
“걸렸구나!”
슈아아아!
같은 색의 강기가 믿기 힘든 크기로 휘둘러진다.
“이 새끼! 갑자기 무슨 힘이!”
카가각.
갑작스런 힘에 밀려나는 박진욱.
김종준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김시문!”
눈에 불을 켜며 시문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리고.
‘저건?’
놈의 클로에 실린 검붉은 기운에 시문의 눈이 커졌다.
이내.
“하…… 여기도 관련되어 있었나?”
실소를 흘리던 시문은, 다이아 상위권의 암살계답게 벌써 코앞까지 날아든 김종준과 눈을 맞추었고.
“죽어라!!”
그의 클로가 시문의 목젖을 향해 날아드는 순간.
“꿇어.”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 * *
“우웁! 웁!”
꽉 막힌 소리.
입에 재갈이 물린 다소 마른 중년인은 거칠게 몸을 비틀었으나 그뿐.
“가만있어. 새꺄!”
스으으.
전신을 꽁꽁 묶은 시커먼 기운이 꿈틀거리자.
“우웁!”
중년인은 고통스러운 듯, 얼굴을 붉히며 부르르 몸을 떨었다.
그런 중년인을 못마땅하게 보던 박진욱은 반대편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시문 님. 어차피 CCTV에 영상이 다 남을 텐데. 그냥 죽여 버리시지 그러셨습니까?”
그곳엔 시문과 고말숙이 방송용 카메라를 설치하고 있었다.
시문은 카메라의 렌즈 방향을 구속당한 김종준에게 맞추며 웃었다.
“죽이는 것보다 더 좋은 방법이 있잖아요.”
“더 좋은 방법? 설마! 자백이라도 받으시려는 겁니까?”
“맞아요.”
고개를 끄덕이는 시문.
그에 박진욱의 입이 떡 벌어졌다.
“시문 님. 제가 나름 오랜 세월 김종준을 알아봐서 말씀드리지만, 이 인간은 절대 입을 열 인간이 아닙니다.”
“알아요. 설령 고문을 해도 쉽게 입을 열지 않겠죠. 거기다 고문을 해서 자백을 받으면, 그것대로 또 문제가 될 테고.”
지금이 중세시대도 아니고.
21세기에, 그것도 한국에서 고문을 한다?
심지어 그걸 이렇게 녹화해서 매스컴에 푼다?
‘바로 오우 쉣이지.’
아무리 김종준이 자신을 암살하려 했다 한들, 결코 용서받을 수 없는 일이었다.
아마 시문의 편이던 여론 역시 순식간에 돌아서겠지.
박진욱 역시 그 사실을 잘 알았기에.
“그럼 어떻게 자백을 받아내시려는 겁니까?”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로 물었고.
“맞아. 어차피 CCTV 있잖아. 네 집에 잠입한 것도 다 찍혔을 텐데. 걍 저 인간 죽이고 그거 풀면 안 되냐?”
곁에서 세팅을 돕던 고말숙 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보탰다.
“혹시 살인죄 때문이라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되지 않습니까? 김종준이 살해 목적으로 능력을 사용한 시점부터, 시문 님은 어떤 대응이든 정당방위입니다.”
각성자는 일반인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강력하다.
고로 그에 대한 법도 따로 마련이 되어 있었고.
이는 각성자 연맹에서 세계적으로 발의된 법으로 어느 나라건 똑같이 적용되었다.
고로 이대로 김종준을 죽여도 아무런 문제도 없었고.
“정 손쓰는 게 꺼림직하시면 제가 죽이겠습니다.”
박진욱이 몸소 대신 처리하겠다는 의사까지 표현하였으나.
“아뇨. 그러면 결국 꼬리만 잘릴 뿐이잖아요.”
시문은 빙긋 웃으며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전 아예 뿌리를 뽑고 싶거든요.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그렇군요. 나무가 아니라 숲을 보시는 겁니까?”
“뭐, 따지자면 그렇죠. 자백만 받아내면, 전갈 길드 측도 김종준을 쉽게 끊어낼 수 없을 테니까요.”
부길마라는 김종준의 위치는 분명 전갈 길드를 난처하게 하겠으나 그뿐.
길드의 주인인 길드 마스터는 아니지 않는가?
김종준이 독자적으로 행한 일이라며.
전갈 길드에서 억울하다는 입장을 표방하면, 길드 자체는 존속이 될 가능성이 높았다.
그리고 그것은 결코 시문이 원하는 결말이 아니었다.
‘김종준이 용력을 지닌 시점에서, 지금보다 좋은 기회는 없어.’
부길마인 김종준에게 사안이 통하는 이상.
지금처럼 명분과 실리를 다 챙길 수 있는 기회는 드물었다.
‘이참에 전갈 길드는 아예 없애 버려야지.’
놈들이 벌였던 트롤 행위들을 떠나서.
본격적으로 목숨을 거는 정규 아레나가 시작되기 전에, 전갈 길드를 치워버려야 했다.
그래야 정규 아레나에서 벌어지는 인명 피해가 줄어들 테니까.
거기다.
‘이번 일과 연관된 다른 길드들도 한꺼번에 처리가 가능할 테고.’
암살까지 시도한 김종준이 직접 입을 연다면.
자신을 상대로 언플을 벌여온 타 길드들 역시 쓸어버릴 수 있을 터.
김종준에게 다가간 시문이 입에 물린 재갈을 푼다.
그러자.
“미친놈! 내가 네놈이 원하는 대로, 아가리를 털어줄 것 같나?”
구속당한 처지라는 게 우스울 정도로.
거친 욕설과 함께 독기 섞인 김종준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도리어.
“자백 같은 개소리는 집어치우고 내 질문에나 답해!”
역으로 큰소리까지 땅땅 치는 그는 과연 박진욱의 걱정대로.
“대체 어떻게 내 움직임을 제한한 거냐? 무슨 개수작을 부린 거야!”
고문을 가한다 한들.
꿈쩍도 하지 않을 모습이었다.
“이 새끼가 진짜! 다 끝난 마당에 끝까지!”
그에 박진욱이 구속 중인 밤의 그물을 확 조여버리려던 찰나.
“윽!”
김종준의 고개가 뒤로 확 꺾인다.
이유는 다름이 아니었다.
“김종준 씨, 보채지 마세요.”
어느새 다가온 시문이 김종준의 머리칼을 움켜쥐고 거칠게 꺾은 것이다.
이어.
“내가 어떻게 그쪽을 제압한 건진, 알기 싫어도 곧 알게 될 테니까.”
따악.
한결 더 짙어진 미소로 손가락을 튕겼다.
우웅.
정체 모를 기운이 시문의 손에서 일렁인다.
그리고 흡사 마약을 하듯.
“스으읍.”
그것을 들이킨 시문.
이내 시문의 눈이 뜨였을 땐.
키이잉.
“자, 김종준? 어디 짖어 봐.”
날카로운 이명과 함께.
“누가 어디까지 연관되어 있는지. 전부 다.”
거부할 수 없는 명령이 김종준의 두 눈으로 파고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