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8화
148화. 움직임 (4)
랭커 팰리스의 응접실.
정확히는 플레이어 김시문의 응접실이라고 해야겠지.
그곳에 마련된 고급스러운 테이블에 앉아있는 금발의 여성.
“흐음…….”
올리비아는 날카로운 눈으로 응접실 곳곳을 훑었다.
‘하나같이 비싼 것들이지만…… 철저하게 성능에 비례한 가격이야.’
본디 좋은 물건은 비싸다.
값비싼 재료들과 그에 걸맞은 실력의 장인이 만드니까.
하나 그 정도 물건을 사는 이들이라면, 작게라도 심미적인 부분을 신경 쓰기 마련인데.
‘화려함은 전혀 없어.’
작은 찻잔부터 내부의 인테리어까지.
오로지 좋은 물건에서 나오는 고풍스러운 미만 있을 뿐.
따로 과시나 사치를 위한 요소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리고 이러한 집의 분위기는 대개.
‘역시. 사치에 큰 관심을 두지 않는 성격인가…….’
집주인을 따라가기 마련.
시문이 어떤 유형인지를 몸소 되새기던 그녀의 시선이 문을 향한다.
“오셨군요.”
문밖의 기척.
그것을 읽어 낸 올리비아는 가방에서 쿠션과 립스틱을 꺼내, 간단하게 용모를 정리했다.
다시 가방에 화장품을 집어넣는 순간.
딸깍.
“죄송합니다. 제가 조금 늦었죠?”
응접실의 문이 열리며 뚜렷한 이목구비의 미남이 들어섰다.
그를 본 올리비아는 얼른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닙니다. 이전의 아레나로 쉬셔야 할 텐데. 이렇게 찾아온 제가 죄송하죠.”
너무 깊지도.
그렇다고 짧지도 않게 허리를 숙이는 올리비아.
그 모습에 시문의 눈이 작게 반짝였다.
‘한국식 인사라?’
보통 미국에선.
특히나 이런 비즈니스의 자리에선 악수와 함께 이름이나 인사를 건네는 것이 일반적인 인사법이다.
한데 저렇게 망설임 없이 허리를 숙이다니?
심지어.
“개인 방송으로 봤을 때도 놀랐는데…….”
번역기도 아닌 직접 한국어를 구사하지 않는가?
“이렇게 보니 더 놀랍네요. 실물이 훨씬 잘생기셨네요. 아레나의 기술로도 다 담지 못하나 봅니다.”
그것도 엄청 유창하게.
‘역시 아메리칸드림의 영입 부장답군.’
아직 스스로를 소개하지 않았으나.
시문은 눈앞의 여성이 어떤 인물인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럴 수밖에.
‘저러니 전생에 수많은 랭커를 영입한 거겠지.’
전생의 지구는 미국과 중국, 단 두 나라밖에 남지 않게 되었고.
미국이 중국보다 많은 수의 플레이어를 보유하게 만든 인물이 바로 저 올리비아 덴슨 아니던가?
물론 하이랭커의 유무나 질적인 부분은 중국이 더 높기는 했다.
앙숙이라지만 검성 김시혁과 창왕 종리추가 한 국가 소속이었으니까.
“하하! 덴슨 씨 같은 미인께서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쑥스럽네요.”
시문은 자연스럽게 웃으며, 받은 만큼 되돌려주었고.
“과찬…….”
그에 화답하려던 올리비아의 말이 잠시 끊어졌다.
조금 놀란 것일까.
잠시 눈을 깜빡인 그녀는 시문을 똑바로 바라봤다.
“실례지만, 절 아십니까?”
난 아직 제대로 된 소개도 하지 않았는데?
그러한 의문이 담긴 올리비아의 시선에 시문은 부드러운 미소를 머금었다.
“아메리칸드림의 유명한 영입부 부장에다, 다이아 상위권의 실력자이신데. 어찌 모르겠어요?”
더불어.
“물론 엄청 미인이라는 소문 때문이 더 크지만요.”
한쪽 눈을 찡긋하며 장난스럽게 마무리 지었다.
“아…….”
예상치도 못한 말이었는지.
당황을 숨기지 못하고 시선을 옆으로 피하는 올리비아.
아레나 내에서도 ‘윈터 퀸’이라 불리는 그녀의 별칭을 떠올려보면.
굉장히 이질적인 반응이지만, 아름다운 외형 덕분인지 그조차 매력적이었다.
하나 모든 이들에게 똑같이 적용되는 것은 아닌 걸까?
“웁!”
올리비아의 뒤편.
처음부터 선 채로 대기하던 금발의 남성이 괴상한 신음을 흘리며 입을 틀어막았다.
하지만 이미 그의 입에서 나온 소리는 응접실의 모두가 들었고.
홱!
매섭게 뒤편으로 고개를 돌린 올리비아에 남성은 황급히 자세를 바로 했다.
“…….”
“…….”
무겁게 내려앉는 침묵.
그 침묵이 길어질수록.
남성의 얼굴은 새하얗게 질려갔다.
시문과 함께 들어선 이유정은 안 봐도 훤히 보이는 올리비아의 얼굴에 작은 웃음을 머금었고.
“덴슨 씨? 그렇게 서 계시지 말고, 이쪽으로 앉으시죠.”
시문은 얼른 불쌍한 남성을 구조해 주었다.
그에 천천히.
“……죄송합니다. 귀한 분을 이렇게 모셔놓고 무례를 저질렀네요.”
몸을 완전히 돌려, 시문에게 사과를 건네기 전까지.
뒤편의 남성을 노려…….
아니, 바라보던 올리비아는 어느새 지적인 미소로 슬쩍 고개를 숙였고.
시문이 자리에 앉자, 그녀 역시 자리에 앉았다.
“이리저리 말을 돌리는 건 좋아하시지 않을 거 같아서, 본론으로 바로 들어갔으면 합니다만.”
대놓고 본론을 논하는 올리비아에 빙긋 웃는 시문.
“과연 명성다우시네요. 이 정도는 해야 아메리칸드림의 부장이 되나 봅니다?”
“과찬이십니다. 굳이 따지자면 저보단 뛰어난 저희 부원들의 공이죠.”
적당히 자신을 낮추며 부하 직원들을 치켜세워주는 올리비아.
그 이면엔 자신의 속한 조직이 얼마나 뛰어난지를 은연 중으로 알리는 계산도 깔려있겠지만.
시문은 알 수 있었다.
올리비아의 저 발언은 무조건 계산적이지만은 않다는 것을.
‘역시. 겉은 차가워 보여도, 성격은 전생과 변함이 없구나.’
전생에도 그랬었지.
윈터 퀸이라는 별칭과 맞지 않게, 올리비아 덴슨은 사람에 대한 정이 무척이나 많은 여자였다.
조금 특이한 것은.
그 정이라는 것이 마냥 봉사나 구호 활동에만 쓰이지 않고.
눈에 든 인재에 관련해선 어떻게든 영입을 시키려는, 일종의 집착으로 발현되기도 한다는 것이지만.
‘뭐, 그러니 아메리칸드림이라는 거대 길드의 영입부 부장이 된 거겠지.’
고로.
“그럼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도 되겠네요. 제가 이렇게 만남을 요청한 이유는 시문 님께서도 잘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시문은 그녀의 방문 목적도 무척이나 잘 알고 있었다.
시문은 작은 미소를 머금었다.
“제게 길드 영입 제안을 하시려고요?”
“맞습니다.”
스륵.
서류 가방에서 매끄럽게 뽑혀져 나오는 서류.
이것도 신경을 쓴 것인지.
길드 가입서는 전부 한글로 되어 있었다.
그녀는 계약금이란 항목을 짚었다.
신기하게도.
맨 위에 기재된 계약금은 공란, 즉 어떠한 숫자도 기재되어있지 않았다.
하지만 왜 공란이냐고 묻는 건 하수들이나 할 소리.
‘호오.’
공란을 본 시문은 내심 감탄을 흘렸고.
그러한 감정이 얼굴로도 드러난 것인지.
“보시면 아시겠지만, 가입만으로 드리는 계약금은 공란이죠.”
올리비아의 미소는 조금 짙어졌다.
“보통은 협의하에 액수가 기재됩니다만…….”
“제 경우엔 다르다?”
“역시 눈치가 빠르시네요. 맞습니다. 이 공란의 의미는 그 어떤 협의의 요소도 들어가지 않을 겁니다.”
이는 바꿔말해.
“제가 부르는 대로 주시겠다는 거군요.”
“예.”
짧게 고개를 끄덕이는 올리비아.
“에이, 그러다 제가 막 10조? 100조? 이런 식으로 요구하면 어쩌려고 그러세요.”
시문은 반쯤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하나.
아메리칸드림을 너무 얕본 것일까?
“10조라면 한 달 내 계좌로 송금이 가능합니다. 그리고 100조라면…….”
진심으로 고민을 하는 듯.
길고 고운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톡톡 두드리는 올리비아.
그녀는 잠시간의 침묵을 가지더니 입을 열었다.
“최소 세 달, 길면 반년 정도 걸리겠네요. 그 후론 분할부터 일시불까지, 원하시는 형태로 송금이 가능합니다.”
“…….”
100조.
뭘 어떻게 언급해도 일반 감이 잡히지 않는 금액이다.
그것을 일개 개인에게.
그것도 플래티넘 랭크의 플레이어가 내놓으란다고 진짜 내놓으려 하다니?
‘이래서 천조국, 천조국 하는 건가…….’
흔한 인터넷 드립으로나 쓰이던 과거의 별명이 새삼 현실처럼 느껴진다.
“어음…… 방금 건 농담이었는데 말이죠.”
과연 최강국이 지닌 자본의 클라스는 격이 달랐다.
시문이 너털웃음을 흘리자.
“저도 알고는 있습니다만, 그 농담도 시문 님에겐 불가능하지 않다는 걸 말씀드리는 겁니다.”
올리비아는 지난 10년간 단련해 온 미소를 자연스레 머금었다.
“그만큼 저희는 시문 님에 관해선 진심이거든요.”
“덕분에 제대로 확인했습니다.”
고작 플래티넘 플레이어에게 100조란 돈을 스스럼없이 꺼내는 것.
이미 이것만으로도 아메리칸드림이 얼마나 큰 각오로 찾아왔는지 알 수 있었다.
“당연히 저희가 준비한 조건은 이걸로 끝이 아닙니다.”
그녀는 곧바로 가입서를 짚었다.
“계약금은 어느 영입에서나 붙는 가장 기본적인 조건, 시문 님께 고작 계약금 하나로 생색낼 리 없죠.”
무려 100조라는 금액을 논했음에도.
올리비아는 문제될 게 없다는 듯, 손가락을 움직여 가입서의 중간 부분을 짚으며 말했다.
“저희 아메리칸드림에 가입하실시, 길드 지분의 5%를 배정받으실 겁니다.”
“5%요?”
“네. 물론 이건 최소치에 불과합니다.”
그녀의 말대로.
그녀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가입서 중단에는 ‘5%~’라는 내용이 기재되어 있었다.
당연히 그다음 칸 역시 공란이었다.
“15%까지, 원하신다면 제 권한으로 최대 18%까지 배정해드릴 수 있습니다.”
‘미친…….’
시문은 가까스로 튀어나오려는 경악을 참아 냈다.
그도 그럴 것이.
‘18%면 거의 길드 마스터나 마찬가지 아닌가?’
아니나 다를까.
“참고로 현 길드 마스터의 길드 보유 지분은 정확히 21%입니다.”
올리비아는 그런 시문의 생각에 확신이라는 못을 박았다.
“이게 어떤 의미인지는 잘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길드 지분의 15%.
최대 18%까지.
아메리칸 드림은 대륙성과 함께 세계 최강 길드로 불리는 곳.
그런 곳의 지분 5%만 해도 상상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런데 그걸 최대 18%까지 주겠다니?
심지어.
‘저 5%까지는 줘도 문제없을 지분이지만. 그 이상은 누군가에게서 가져올 지분이겠지.’
5%를 넘어가는 지분부터는 누군가가 가지고 있는 지분을 회수해 자신에게 주겠다는 뜻일 터.
‘정말 미친 조건이군. 대대손손은 고사하고 플레이어로서도 최고의 삶을 살 수 있겠어.’
아메리칸드림은 대륙성과 함께 세계 최강의 길드다.
보통 아레나산 부산물과 아이템이 주 이익 수단이 되든 것을 고려해 보면.
온갖 귀한 아이템들부터 SS, 높게는 SSS급까지.
귀속 여부를 제외하곤 정말 다양하고 질 높은 아이템들을 상당량 유통하겠지.
거기서 18%의 지분을 지닌다?
사실상 길드 마스터가 직접적인 제재를 가하지 않는 한.
길드에서 나오는 재료나 아이템을 마음껏 쓸 수 있다는 말이 된다.
실제로도 현 길마인 데릭이 지닌 가장 낮은 등급의 아이템이 S급이지 않은가?
‘그리고 그 아이템을 바탕으로 아레나를 준수한 성적으로 클리어하겠지.’
그럼 자연스레 얻는 보상은 좋아질 것이고.
힘든 아레나였다면 더더욱 보상이 커지겠지.
자연스레 강해질 수밖에 없는.
‘돈이 돈을 부르는 것과 같은 이치지.’
선순환의 구조로 빠져들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올리비아는 그런 자리를 조건으로 내민 것이고 말이다.
시문은 절로 실소를 흘렸다.
“이건 참…… 생각도 못 했는데요.”
진심이었다.
평범한 인간으로서도, 플레이어로서도.
어느 쪽이든 단박에 최정상의 위치에 설 수 있는 자리.
심지어.
“전 이제 플래티넘인데. 아무리 그간 제 성적이 좋았다 해도, 너무 과한 조건 아닙니까?”
자신이 플래티넘임을 고려하면 정말 눈으로 보는데도 믿기 힘든 조건이었다.
시문의 의심 아닌 의심에.
“시문님의 마음은 백번 이해합니다. 사실 이런 조건을 준비하면서도, 제 스스로에게 몇 번이고 되물었거든요.”
올리비아 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을 표했다.
그러나 그뿐.
“하지만 시문 님의 자료와 방송을 되새겨보니, 과하지 않다는 판단을 내렸습니다.”
올리비아는 단호하게 답했다.
“어째서죠? 막말로 이런 조건은 성좌와 연이 있는 플레이어에게도 너무 과분한데요.”
“맞는 말씀이십니다.”
각진 안경을 슬쩍 치켜올리는 올리비아.
“일반적으로 배후성을 둔 플레이어라면 분명 과한 처사죠. 하지만 일반적이지 않다면요? 예컨대…….”
일순 날카로워지는 눈매.
“여러 성좌와 연이 있거나, 그에 걸맞은 강력한 성좌와의 연이 있다면 이야기는 달라지죠.”
그녀는 대면 이후 처음으로.
“그리고 전, 시문 님께서 두 케이스 중 하나일 거라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냉철하고 분석적인 눈으로 시문을 바라봤고.
“과연 대단하시네요.”
짧은 감탄.
그러나 진심이 물씬 풍기는 시문의 대답에선 어떠한 부정도 담겨있지 않았다.
실제로 시문은 부정할 생각도 없었다.
‘올리비아 정도 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해 볼 법한 생각이니까.’
마법계임에도 마법계가 지니는 어떠한 단점도 보이지 않고.
오로지 그 장점만으로 아레나를 휩쓴다.
거기다 플레이어로서 데뷔한 지는 이제 반년.
플레이 시간만 따져도 레벨이 높을 수가 없고.
당연히 힘민체와 같은 스탯은 부실할 수밖에 없을 텐데.
근접전마저 동 랭크대의 전투계들과 밀리지 않는다.
이 모든 걸 따져보면.
‘성좌 같은 요소가 아니면 설명이 안 되긴 하지.’
올리비아의 추측은 지극히 이성적이었고.
실제로 틀린 추측도 아니었다.
‘현재 내게 관심을 보이는 상위 서열 성좌만 무려 다섯이니까.’
특성 성흔 덕분에 배후성을 둘 수 없다지만.
사실 말만 그렇다 뿐이지.
그간 다섯 성좌가 보여준 행보는 배후성의 그것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었으니까.
시문은 덤덤한 미소로 입을 열었다.
“정확히 어떻다고 짚어드리진 않겠으나, 부정하지는 않을게요.”
그런 시문의 대답이 마음에 든 것일까.
“다소 무례할 수도 있는 질문이었는데. 이렇게 답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올리비아는 깊이 고개를 숙였고.
“별말씀을. 어차피 숨길 것도 아닌걸요.”
시문은 가볍게 손사래를 쳤다.
‘아마 린을 비롯해서 시혁이나 유정이, 진욱 씨와 숙부 같은 이들도 어렴풋이 눈치를 챘겠지.’
어느 정도 세력이나 위치가 있는 이라면 다들 눈치채고 있을 것이다.
자신이 성좌와 관련이 있는 플레이어라는 것을 말이다.
실제로 다이아 구간부턴 성좌와 연관이 있는 플레이어들도 꽤 보게 되니까.
그런 시문을 가만 보던 올리비아는 가입서를 제 쪽으로 끌어당겼다.
“괜찮으시다면, 오늘 만남은 이쯤 할까 합니다만.”
“에?”
갑작스러운 물러남에 눈을 깜빡이는 시문.
올리비아는 그런 시문을 향해, 전생을 통틀어서도 처음 보는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는.
“시문 님께서 단번에 승낙하실 거란 생각은 하지 않았습니다.”
평소에 보이던 특유의 비즈니스적 미소와 다른.
“그리고 고작 한 번의 제안으로 거절당하고 싶지도 않고 말이죠.”
무척이나 맑고 투명한 미소였다.
윈터 퀸이라는 별칭답지 않게 진심을 내비치는 올리비아.
그것이 성좌에 대해 답해준 값이라는 걸 눈치챈 시문은 피식 웃음을 흘렸다.
“그렇군요. 그럼 다음에도 또 찾아오시겠다는 말이겠네요.”
“물론입니다. 아직 보여드리지 않은 조건이 더 있으니까요. 아! 혹여나 마음이 있으시다면…….”
품속을 뒤적거리는 올리비아.
그녀는 아레나산으로 보이는 작은 용지를 하나 내밀었다.
회귀를 하고 얼마 되지 않았던 당시.
후연룡이라는 중년인에게서 받았던 것과 비슷한 형태였다.
그때와 한 가지 다른 것이 있다면.
“이쪽으로 방문해주셔도 됩니다.”
이번엔 주소까지 기재되어있다는 것.
그것도.
“여긴 강남구잖아요?”
이곳과 가까운 곳으로.
“예, 얼마 전에 지부를 설립했거든요.”
그렇게 마무리한 올리비아가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녀의 명함을 잠시 보던 시문은 다소 허탈한 웃음을 흘리고는 명함을 챙겨 넣었다.
그에 올리비아의 사무적인 눈매가 살짝 곡선을 그렸다.
“마침 이곳과도 그리 먼 거리는 아니니, 편하게 방문해주세요.”
“그래야겠네요. 그런데 꼭…… 영입 관련해서 만인가요?”
“물론 아니죠. 제가 볼 땐 다이아까진 무조건 올라오실 분이시니, 플레이어로서도 나눌 이야기가 있다면 언제든지 찾아주세요.”
자연스레 손을 내미는 올리비아.
“꼭 그럴게요.”
시문은 그런 그녀의 손을 마주 잡았다.
* * *
“오라버니. 정말 아메리칸드림에 가입하실 건가요?”
청아한 목소리.
어느새 다가온 이유정에 시문은 묘한 미소를 머금었다.
“글쎄. 유정이 네가 어떨 거 같아?”
“솔직히 조건만 놓고 보면…… 저도 받지 못할 조건이라, 무조건 가셔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유정의 말대로.
현재 그녀는 한국에서 가장 잘나가는 랭커 중 하나지만 그뿐.
저만한 조건을 받은 적은 없었다.
“저도 아메리칸드림에서 영입 제의를 받은 적은 많지만, 이런 조건은 처음이거든요. 정말 좋은 기회라고 생각해요.”
“그렇지. 플레이어든 일반인이든 정말 엄청난 조건이긴 하지.”
고개를 끄덕이는 시문.
그에 이유정은 시문을 따라 웃었다.
“근데 어쩐지…… 오라버니께선 그러시지 않을 것 같네요.”
“역시 우리 유정이는 못 속이겠네.”
시문은 올리비아가 건넨 명함을 바라봤다.
“사실 갈 마음은 없어. 전에 시혁이한테도 말했지만, 소속은 함부로 바꾸면 안 되거든.”
“소속에 대해 뭔가 알아내신 게 있나 보군요. 그런데 명함은 왜 받으신 거예요?”
대게 스카우터의 명함을 받지 않는 것은.
가입 거절이라는 암묵적인 의미가 있지 않던가?
그러나 시문은 묘한 미소를 짓기만 할 뿐.
“마침 좋은 생각이 떠올랐거든.”
“좋은 생각이요?”
제대로 된 답을 해주지 않고.
“그래. 아주 좋은 생각이.”
폰 화면에 빼곡한 뉴스를 바라볼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