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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천재 플레이어의 신화급 무기창조-147화 (147/349)

제147화

147화. 움직임 (3)

“그 버러지들이 미치지 않고서야, 감히 이럴 수는 없는 노릇이지.”

이마를 쓸어 올린 김무열은 한결 가라앉은 눈으로 모니터 속 기사를 노려봤다.

“이 일엔 주동자가 있다. 그리고 그건 아마…….”

“안 그래도 얼마 전에, 전갈 길드에서 비밀리에 회동이 있었다는 첩보입니다.”

“그래. 김종준. 그 건달 놈이 아니고서야, 감히 이딴 짓을 벌일 리 없지.”

까득.

이를 가는 김무열.

그를 살피던 최창욱이 조심스레 말을 보탰다.

“아마 전갈 길드의 길마도 손을 보태지 않았을까 싶습니다만.”

“이만한 일을 벌였는데 당연히 그렇겠지.”

어지간히도 성이 나는 것일까.

김무열은 좀처럼 화를 주체하지 못했지만 그것도 잠시일 뿐.

“후우.”

깊게 숨을 내쉰 그는 앞머리를 한 번 쓸어 올리고는.

“하긴, 아레나 등장 이전엔 뒷골목이나 전전하던 깡패 새끼들이었으니. 이상할 것도 없겠군.”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어떻게 할까요?”

최창욱의 물음에 김무열은 코웃음을 쳤다.

“밟아 줘야겠지. 꼴에 언플해 봐야, 무식한 태생으론 한계가 있으니까.”

“하지만 협회장님. 이번 일에 언론만 개입한 것은 아닙니다.”

하나, 예상치도 못한 답이었는지.

“뭐?”

최창욱의 말에 김무열의 미간이 확 좁혀졌다.

“아직 알아내지는 못했습니다만, 뒤에 해당 길드들과 언론사 말고도, 다른 세력이 가담한 것을 확인했습니다.”

“다른 세력? 하!”

이 새끼들이 정말 단체로 미쳐 버렸나?

그렇게 읊조린 김무열은 품속에서 담배를 꺼내 물었다.

칙.

서둘러 불을 붙이는 최창욱.

후욱.

뿌연 연기를 두어 번 뿜어낸 김무열은 잠시 테이블을 톡톡 두드리곤 명령했다.

“반박 기사부터 쏟아부어라. 여론을 잡지는 못해도 밀려선 안 된다. 그리고 어떤 새끼들인지 최대한 빨리 알아내.”

“예. 협회장님.”

절도 있게 고개를 숙이는 최창욱.

그가 어딘가로 연락하며 협회장실을 나서자.

김무열은 다시 한번 아레나산 담배를 깊이 들이켰다.

이내.

“감히 이 나라에서 누구도 나한테 반기를 들 수 없다는…….”

씹어 먹을 듯 내뱉던 김무열의 말이 뚝 멈춘다.

“…….”

한동안 침묵하는 김무열.

그는 몹시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눈초리로, 스멀스멀 올라가는 담배 연기를 노려봤다.

마치 누군가를 연상하듯 말이다.

이내.

“……더는 없다는 걸 확실히 새겨 주마.”

씹어 먹을 듯 내뱉은 김무열은 다 타 버린 담배를 재떨이에 거칠게 쑤셔 박았다.

* * *

경건함과 고풍스러움이 절로 느껴지는 건축 양식의 석조 건축물.

중앙에 원으로 놓인 다섯 개의 왕좌 중 하나.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

검분홍색의 구체가 떠오르며, 앙칼진 목소릴 쏟아냈다.

구체 중앙을 가르는 기다란 선.

파충류의 동공으로도 보이는 그것은 어지간히도 흥분했는지.

“검은 제련소가 반파되다니! 이게 말이나 되는 소리냐고!”

파르르 떨며 수축과 이완을 반복하고 있었다.

그런 검분홍 구체의 맞은편.

또 다른 왕좌에 떠오른 검푸른 구체 역시 흥분을 감추지 않았다.

“닥쳐라. 브리트라. 지금 네년보다 이 몸이 더 화가 난다는 사실을 모르나!”

곧장 터져 나오는 노성.

그 힘이 어찌나 강력했는지.

쿠르르르.

왕좌를 비롯한 건축물 전체가 떨리며, 돌가루 따위가 우수수 떨어져 내렸다.

그때.

“그만.”

차분한 목소리와 함께 진동하던 건축물이 거짓말처럼 멈춘다.

“검은 제련소의 일은 우리 모두의 잘못이다. 브리트라.”

어느새 빈 왕좌의 위로 떠오른 회갈색의 구체.

그의 말에 브리트라의 눈이 사납게 휘었다.

“웃기지 마! 아포피스, 너의 잘못이겠지! 사르가스에 사르티니까지 배치시켜 놓고. 물자마저 너의 권세가 보급했잖아!”

그에 검푸른 구체.

니드호그의 눈동자 역시 아포피스를 향했다.

“저년의 말대로다. 아포피스. 넌 내 권세가 작다는 이유로, 너의 부하들을 상당수 검은 제련소의 간부로 배치시켰지. 그 결과가 이것이냐?”

이전부터 불만이 있던 것일까.

니드호그는 사납던 평소와 달리, 침착하게 따져 물었고.

“인정한다. 너희가 지적한 모든 것은 나의 잘못이다.”

회갈색의 눈.

아포피스는 차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나, 우리 모두의 잘못이라는 것은 틀린 말이 아니다. 브리트라, 검은 제련소를 반파한 범인이 누군지는 알 테지.”

“흥! 물론이지. 안 그래도 그놈 때문에 아레나 의회가 난리도 아니었다고.”

콧방귀를 뀌는 브리트라.

“그래서?”

그녀는 아포피스를 날카롭게 노려봤다.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인데?”

“듣기론 그가 추가 보상까지 얻어 갔다던데?”

“그, 그건!”

검분홍의 눈이 슬쩍 떨린다.

“나도 어쩔 수 없었어. 이번엔 상의원까지 동원해서 막았는데, 하필 죽음의 성좌들이 난입해선!”

“널 책망하는 것이 아니다. 단지 결과만 놓고 봤을 때, 놈은 검은 제련소를 반파하고 추가적인 보상까지 받아 갔다는 것이지.”

하나 그것이 곧 브리트라의 잘못이 된다는 건.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세 용제 모두가 알고 있었다.

“그럼 너희 둘의 문제지. 내가 왜 너희와 묶여야 하는지 모르겠군. 설마 검은 제련소에 병력을 더 배치했어야 했다고 할 셈인가?”

니드호그가 으르렁거리며 묻자.

“굳이 따지자면 그렇겠지만, 사실 이번 일은 너의 잘못이 가장 적다고 볼 수 있다. 니드호그.”

아포피스는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

“너는 우리와 달리, 추종하는 종족도 없으니까.”

“네놈!!”

곧장 노성을 터뜨리는 니드호그.

매번 니드호그와 시비가 붙던 브리트라는 조용히 눈치만을 살필 뿐이었다.

“아포피스! 네가 감히 날 능멸해?!”

끼아아악!

니드호그의 눈 주변으로 절규하는 검푸른 망령들이 끓어오른다.

“진정해라. 니드호그. 난 널 모욕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아포피스는 일말의 동요도 없이 무심히 말을 내뱉을 따름이었다.

그것이 무시가 아닌 진심임을 깨달았기에.

“……내가 납득할 수 있는 변명이어야 할 것이다.”

니드호그는 분노를 삭였고, 그의 주변으로 끓어오르던 망령들 역시 삽시간에 사라졌다.

아포피스는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

“객관적으로 놓고 봤을 때. 너의 세력은 우리 중 가장 약하다. 내가 너의 관할인 검은 제련소에 관여하는 것도 그러한 탓이지.”

“…….”

어떤 답도 하지 않는 니드호그.

하나, 듣기 거북한 것인지.

그의 검푸른 눈동자는 연신 커지고 작아지길 반복했다.

“거기다 브리트라의 말대로. 검은 제련소을 담당하는 주요 간부는 태반이 나의 권속들이다. 고로 이번 일은 나의 책임이 가장 크지.”

“가장 큰 게 아니라, 사실상 이번 일의 책임은 모두 너에게 있지 않나?”

“아니. 그렇게 말할 수는 없다. 이 모든 책임을 지기엔 나 역시 피해가 너무 크거든.”

“하! 피해가 커? 아포피스, 네가 정녕 날 기만…….”

“사르가스가 죽었다.”

“……뭐?”

아포피스의 말에 니드호그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그게 무슨 소리야? 사르가스가 죽었다니?”

브리트라 역시 깜짝 놀라 되물었다.

아포피스는 브리트라를 바라봤다.

“브리트라. 넌 상의원까지 동원했다면서, 정작 추가 보상에 대한 내막은 잘 모르나 보군.”

고개를 슬쩍 젓는 아포피스.

“그놈에게 사르가스가 죽었다. 사르티니 역시 마찬가지지. 거기다 미래시까지 잃었어.”

“미친! 그게 정말인가?!”

무덤덤한 아포피스의 말에 경악을 하는 니드호그.

또한 무언가 짐작 가는 바가 있는 것인지.

“그랬구나! 난 또 뭔가 했더니, 그래서 죽음의 성좌들이 사르가스를 언급한 거였어!”

브리트라는 니드호그보다 높은 목소리로 소리쳤다.

“난 내 심복을 잃고, 미래시라는 권능까지 잃었지. 이번 일에서 나의 잘못이 가장 크긴 해도, 이번 일의 모든 것을 책임지기엔 솔직히 버겁다.”

진중하게 속내를 비치는 아포피스.

그에 브리트라와 니드호그는 미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말대로.

“사르가스가 죽다니…….”

“거기다 미래시면 용신전쟁 때 성좌를 죽이고 얻은 권능 아냐?”

“그렇다.”

3용제의 심복과 과거의 전쟁으로 얻었던 성좌의 권능.

그 두 가지를 모두 잃었으니, 책임을 전부 떠안기에는 분명 무리가 있었다.

그때.

“소란스럽구나.”

아포피스의 옆.

또 다른 빈 왕좌에서 녹회색의 구체가 떠올랐다.

“대모님을 뵙습니다.”

“엄마.”

“오셨습니까. 어머니.”

곧장 예를 취하는 세 용제들.

그들을 슥 훑은 녹회색의 구체, 제2용제 에키드나는 아포피스를 바라봤다.

“이야기는 들었다. 한낱 인간에게 검은 제련소가 반파되었다지?”

“예. 대모님. 면목이 없습니다.”

“그래야지. 이 일로 얼마나 많은 성좌들이 우리를 비웃을지. 아주 치가 다 떨리는구나.”

그녀의 말에 용제들의 시선이 더더욱 내려간다.

“하나, 이미 벌어진 일. 되돌릴 순 없으니 최대한 수습해야겠지.”

그녀의 시선은 니드호그를 향했다.

“니드호그.”

“예, 어머니.”

“검은 제련소의 수복은 가능하겠느냐?”

“불가합니다. 그간 드워프들이 없어도 설비는 가동이 가능했으나…… 새로 건축하려면 드워프들의 기술이 필수적입니다.”

“으음. 역시 그런가.”

잠시 눈을 감는 에키드나.

이내 다시 눈을 뜬 그녀는 브리트라를 바라봤다.

“딸아. 의회를 움직여서 우리 쪽의 플레이어 자격을 넓혀라. 진화종이 아닌, 드라고닉도 아레나에 참가할 수 있도록.”

“엄마. 지금 우리의 평판으로 그걸 통과시키려면, 최고 의원이 안건을 내고 전 의원이 동의해야……!”

“그렇게 만들면 되지 않느냐? 네 무능을 애써 표현하지 말거라.”

“어, 엄마!”

브리트라의 애원에 답도 하지 않는 에키드나.

“다들 잘 들어라.”

그녀는 세 용제를 둘러보며 말을 이었다.

“앞으로의 노선을 바꿀 것이다. 우리 쪽 플레이어를 늘리고, 갤럭시 아레나의 자체적인 영향력을 넓히는 쪽으로.”

“하지만 대모님. 검은 제련소를 반파한 인간은 확실한 처단이 필요합니다. 제 권속들이 놈의 손에…….”

“그 복수 또한 갤럭시 아레나에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어차피 그 지구라는 곳도 얼마가지 않아, 정규 아레나로 편입될 테니까.”

아포피스의 말을 단호하게 잘라내는 에키드나.

“그전까지는 너희 모두 피해를 수복하는 데만 전념하거라. 이는 1용제의 지시이기도 하니.”

“크, 크루아흐가?”

설마 1용제의 지시임은 예상하지 못했는지.

아포피스는 흔들리는 눈으로 유일하게 빈 왕좌를 바라봤다.

“더불어 니드호그? 데피나는 앞으로 널 섬길 수 없을 테니, 새로운 전령을 뽑거라.”

“예? 어머니, 갑자기 그게 무슨…….”

“이번 일로 지구에 간섭하는 와중, 1용제의 눈에 든 모양이다. 하긴, 본래부터 뛰어난 드래곤이니 이상할 것도 없지.”

“…….”

순식간에 전령을 잃어버린 니드호그.

그러나 감히 2용제인 어머니에게, 그리고 1용제의 결정에 토를 달 순 없었기에.

“……알겠습니다.”

애써 불편한 기색을 감춘 니드호그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 * *

6월.

여름과 함께 국가대항전의 본선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것이 이 시기인데.

[국가대항전, 그 막을 내리다!]

국가대항전의 끝을 알리는 기사들이 올라왔다.

이유는 간단했다.

[한국 아쉽게도 16강에서 탈락!]

[검성의 고군분투, 하지만 일본의 벽은 높았다!]

[졌잘싸? 위로연을 여는 국대들과 보이지도 않는 검성]

[또다시 국대를 떠나는 랭커, 내년 국가대항전엔 어떤 랭커가?]

플래티넘부의 활약으로 본선 진출 시드권을 얻었으나 그뿐.

결국 본선인 16강에서 떨어져 버린 것이다.

하나, 시문의 시선을 끄는 것은 다른 기사들이었다.

[국가대항전 본선 진출의 영웅! 사실은 부정 비리의 정점?]

[플래티넘부 김시문, 협회와 유착 관계일 수도?!]

[국대 퇴출, 협회장 김무열의 권력 남용! 한두 번이 아니다?]

[협회장 김무열의 직권 후 유독 논란!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날까?’]

바로 시문과 숙부 김무열에 관련된 기사들이었다.

이 화력이 어찌나 강력했는지.

“16강 탈락이 묻힐 수준이네.”

본선에 진출하자마자 탈락한 기사가 역으로 묻힐 정도였다.

그런 시문의 귓가로.

“뭐가 묻힌다고?”

힘 있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야, 너 아침부터 그러고 있지 않았냐? 뭔, 아직도 폰을 들여다보고 있어. 점심 안 먹을 거야?”

고말숙이었다.

막 씻고 나온 건지.

수건을 목에 걸친 그녀에게선 달달한 냄새가 풍겼다.

“뭐 그리 보는데? 아~ 이거? 너도 신경은 쓰이나 봐?”

어느새 시문의 옆에 털썩 앉은 그녀는 시문의 폰을 들여다보곤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지 욕하는데 신경 안 쓰일 수 없지. 새끼, 너도 사람이긴 하네.”

“말숙아. 난 이런 식으로 욕하는 걸 딱히 신경 쓰지는 않아.”

“그래? 야이, 괴물 새끼야! 너 존X 재수없어. 알아?! 무슨 갓 플래티넘이 된 새끼가 벌써부터 깨달음을 얻…….”

따악.

“아악!!”

이마를 부여잡고 뒤로 넘어가는 고말숙.

그녀는 홱 일어나 소리쳤다.

“딱히 신경 쓰지 않는다며!”

“말했잖아. ‘이런 식’으로 욕하는 건 신경 쓰지 않는다고.”

시문은 이마를 부여잡은 고말숙의 앞으로 폰을 흔들었고.

“이씨!”

할 말이 없어진 고말숙은 희미하게 눈물까지 글썽이며 이마를 문질렀다.

정말 이마가 찡할 정도로 아팠지만.

‘팔이 움직이는 걸 알아차리지도 못하다니!’

시문의 딱밤을 눈치채지도 못했다는 사실이 더욱 분한 고말숙이었다.

그런 고말숙의 모습에 작게 한숨을 쉰 시문은 다시 폰을 들여다봤다.

“플래티넘부의 일은 3일 전이고. 16강 탈락은 오늘 아침인데 왜 갑자기 논란이 되는 걸까.”

그것도 딱 숙부와 자신, 둘만을 노려서 말이다.

“보나 마나 기레기들이 쓸 거 없으니까 어그로 끄는 거겠지.”

고말숙은 어느 정도 진정이 된 이마를 수건으로 두드리며 샐쭉거렸다.

“이게? 16강에 진출하자마자 탈락한 거보다 어그로가 커?”

“당연하지! 다이아 국대는 애당초 예선전 탈락에서 단물 다 빠졌잖아. 거기다 니 동생 인기가 좀 있냐? 괜히 건드렸다가 역풍만 처맞지.”

폰을 들여다보며 코웃음을 치는 고말숙.

“하이고! 이것 봐. 유착 관계니 뭐니, 아주 X랄이 났네. 너 제대로 물렸나 보다.”

시문은 차분히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고의성이 다분하네.”

“다분한 게 아니라 100퍼야. 네가 검성 형이라고 알리면 모를까, 지금 시점에선 뭐 백도 없잖냐? 당연히 논란시키기 딱 좋은 먹이지.”

“먹이라? 그래. 그렇군. 그래서 숙부도 같이…… 아니, 애당초 숙부를…….”

고말숙의 말에 잠시 턱을 괴는 시문.

이내.

“말숙아. 고맙다.”

그는 미소를 머금으며 고말숙을 바라봤고.

“뭐, 뭐야. 갑자기?”

고말숙은 당황스러운 얼굴로 슬쩍 시선을 돌렸다.

“네 덕분에 완전히 감을 잡았어.”

“엉?”

갑작스런 시문의 감사에 잠시 눈을 끔뻑이는 고말숙.

뭐가 뭔지는 잘 모르겠으나.

“그, 그렇지! 넌 맨날 아레나랑 연구실에만 박혀 있잖아. 각박한 세상살이는 또 이 누나가 신경 써 줘야지!”

시문의 머리 위로 오를 수 있는 기회를 고말숙은 결코 놓치지 않았다.

“앞으로도 고민 있으면 후딱 찾아와서 읊어라. 이 누나가 깔끔하게 정리해 줄 테니까.”

물론.

“그래야겠네. 우리 말숙이가 이제 생각이라는 것도 할 줄 알게 되었으니, 아주 든든해.”

시문은 가볍게 머리를 흔들어, 그런 고말숙을 떨궈 버렸지만 말이다.

“당연하지! 내가 머리까지 쓰면…… 응?”

씨익 웃는 시문의 모습에 턱을 치켜들던 고말숙이 뚝 멈춘다.

그녀는 잘빠진 눈을 두어 번 깜빡거리고는.

“이 새끼가!! 그럼 지금까지 난 생각도 없이 살았단 말이냐?!”

곧바로 격노 모드에 들어갔다.

하나, 안타깝게도.

그녀에게 분노를 토할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다.

“오라버니. 손님이 찾아오셨어요.”

어느새 나타난 이유정이 손님의 방문 소식을 알려 온 것이다.

“손님이라고?”

“손님은 무슨! 넌 오늘 뒤질 줄 알아!!”

고말숙의 이마를 한 손으로 턱 잡은 채.

슈슈슉.

쏟아지는 그녀의 권각을 피해내는 시문.

“어디서 왔는데?”

태연하게 묻는 시문에게 이유정은 피식 웃으며 답했다.

“아메리칸드림의 영입부라고 하시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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