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6화
146화. 움직임 (2)
달그락.
그그극.
익숙한 작업 소리가 들려온다.
하지만 그런 연구실보다 시문을 먼저 반긴 것은.
[특수 아레나 ‘검은 제련소’를 상상치도 못한 형태로 클리어하셨습니다.]
[활약에 따라 클리어 보상이 증가합니다.]
[귀속된 특성 ‘현자의 돌’이 일정량의 경험치를 분배받습니다.]
[레벨이 12 올랐습니다.]
[현자의 돌 레벨이 8 상승했습니다.]
[클리어 보상으로 ‘영혼핵’을 획득합니다.]
눈이 아플 정도로 나열되는 메시지창이었다.
“12업이라고?!”
경험치 부분을 읽고 깜짝 놀라는 시문.
당연했다.
“아무리 특수 아레나라지만, 난 이제 99레벨인데?”
갤럭시 아레나의 경험치 분배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으나.
보편적으로 레벨이 높아질수록 경험치가 급감하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100레벨 전후.
그리고 플래티넘, 다이아 등의 상위 구간부터는 더욱 보상 경험치가 작아졌다.
정확히는 경험치가 작아졌다기보단.
레벨업의 요구 경험치가 높아져서이지만 말이다.
더군다나.
‘현자의 돌과 경험치를 나눴는데도 이 정도라니…….’
이번 아레나로 8레벨업을 한 현자의 돌.
단순 계산만 따져봐도 총 20레벨업이라는 말이 된다.
“미쳤군.”
99레벨의 플래티넘이 한 번에 12레벨.
총 20레벨업이라는 경험치를 얻었다 하면 어느 누가 믿을까?
흐뭇하게 웃은 시문은.
“그럼 아이템 보상도 확인해 볼까.”
인벤토리를 열어, 아이템 보상도 확인하려 했다.
그때.
[필멸자 중 최초로 검은 제련소를 반파하셨습니다.]
또 다른 메시지가 시문의 앞으로 떠올랐다.
[검은 제련소는 용족의 주요 시설 중 한 곳입니다.]
[이번 아레나의 클리어로 결정된 운명이 크게 뒤틀립니다.]
‘그때와 같은 메시지네.’
드워프 소녀 마르넬을 살렸던 특수 아레나를 끝내고 보았던 메시지.
저것을 봤을 당시엔 뭐가 변한 것인지 잘 몰랐으나.
얼마 가지 않아 몇 가지 변화를 직접 체감한 시문이었다.
대표적으로.
‘좀 더 자란 마르넬을 만나고. 함께 아레나도 치렀었지.’
구해주었던 드워프 마르넬.
어느새 훌쩍 자라 플레이어가 된 그녀와 함께 아레나를 클리어했었다.
또한 그녀의 상대가 매번 용족이었음을 고려해보면.
‘이번 아레나도 용족에게 무조건적인 해가 되겠지.’
사실 운명이 뒤틀리니 마니를 떠나서.
검은 제련소를 반파하고.
관리소장과 부 관리소장을 비롯한 네임드 용족 등, 검은 제련소의 간부를 다수 처리했으니.
이미 상당한 피해를 준 상태였다.
이를 증명하듯.
[당신을 주시하는 다섯 성좌가 검은 제련소의 무력화를 무척이나 반깁니다.]
성좌들이 굉장히 만족해하는 반응을 보내왔다.
문제는.
[다섯 성좌가 진중한 얼굴로 서로 이야기를 나눕니다.]
단순한 반응에서 끝이 아니라는 거였다.
[다섯 성좌가 갤럭시 아레나에 추가적인 보상을 요구합니다.]
[갤럭시 아레나의 의회가 소집됩니다.]
“에?”
예상치도 못한 전개.
아레나의 의회까지 소집되는 상황에 시문은 눈을 끔뻑였다.
이내.
[논의 결과, 추가적인 보상은 불가하다는 판단이 내려졌습니다.]
[성좌 제우스가 ‘불가? 너희는 검은 제련소가 어떤 곳인지 모르나?’ 강력하게 항의합니다.]
[성좌 오딘이 ‘저 플레이어로 다수의 성좌가 이익을 봤어. 너흰 그걸 대신 보상할 책임이 있다고.’ 불만을 토합니다.]
갤럭시 아레나의 판단에 대한 성좌들의 항의가 이어졌고.
[지구는 아직 정식 아레나가 아닐뿐더러, 갤럭시 아레나는 어떤 일이 있어도 절대적인 중립을 중시합니다.]
[성좌 검은 염소가 ‘X랄하네. 그래서 저번에 웬 진화종 용족이 기어들어 왔을 땐, 히든 보스라고 속였냐?’ 비웃음을 흘립니다.]
검은 염소의 일격에 잠시 침묵하는 갤럭시 아레나.
하나 나름의 할 말이 있는지.
[그에 대한 보상은 치러졌습니다.]
[성좌 천마가 ‘이미 끝난 일이다? 좋네. 그 일은 그렇다 치더라도. 자네들이 그간 용족에게 지나친 메리트를 주는 것은 사실 아닌가?’ 살기 어린 미소를 짓습니다.]
[성좌 바알이 ‘으음.’ 성좌 천마의 말에 고개를 끄덕입니다.]
[갤럭시 아레나는 절대적인 중립을 중시합니다. 구체적인 증거도 없는 모함은 부디 자제 부탁드립니다.]
갤럭시 아레나는 물러섬 없이 답했고.
[항의를 주신 다섯 성좌는 최근 플레이어 김시문과 잦은 교류가 있었습니다. 고로 정당성 있는 요구라 볼 수 없다는 의회의 입장입니다.]
한 걸음 나아가 다섯 성좌에게 요구 자격이 없음을 논하기까지 했다.
그에.
[성좌 검은 염소가 ‘이것들이 진짜!’ 목소리를 높입니다.]
[성좌 제우스가 ‘감히 우리를 직접 관여까지 하는 네놈들과 동일시하느냐?’ 노성을 내지릅니다.]
다섯 성좌가 성을 토하려던 순간.
[성좌 하데스가 ‘그렇다면 우리가 정식으로 요구하지.’ 난입합니다.]
[성좌 오시리스가 난입합니다.]
[성좌 야마가 난입…….]
[성좌 헬이…….]
죽음의 성좌들이 일제히 난입했다.
[성좌 하데스가 ‘이곳에 모인 죽음의 성좌들을 대표해, 플레이어 김시문의 추가 보상을 정식으로 요구하겠다.’ 가장 선두로 나옵니다.]
[……의회가 다시 소집됩니다.]
그들의 요구에 갤럭시 아레나는 다시 회의에 들어갔고.
[논의 결과, 플레이어 김시문에게 추가적인 보상을 지급하기로 결정되었습니다.]
결국 항복의 메시지가 떠올랐다.
이내.
[죽음의 성좌들이 보상으로 ‘사르가스’를 언급합니다.]
[성좌들의 요구를 받아들입니다.]
[추가 보상으로 ‘미래시’를 획득합니다.]
우웅.
작은 이명과 함께 시문의 앞으로 떨어지는 회갈색의 구슬.
시문이 얼른 그것을 받자.
키이잉.
오딘의 눈이 절로 활성화되었고, 회갈색의 구슬은 그런 왼쪽 눈으로 흡수되었다.
[오딘의 눈에 미래시가 추가됩니다.]
미래시가 추가되는 것으로 이야기가 끝났는지.
더 이상 떠오르지 않는 성좌들과 갤럭시 아레나의 반응.
마치 한차례 태풍이 지나간 기분이었지만.
졸지에 미래시를 얻게 된 시문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시문의 귓가로 명랑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흐응~. 용족놈들. 어지간히도 밉보였나 보네?
현자의 돌이었다.
-죽음의 성좌들은 웬만해선 이런 관여 같은 거 안 하는데.
“그래?”
-당연하지! 따지고 보면 이승의 일이잖아. 영혼 발전기 같은 걸 쓰지만 않았어도, 쟤들이 이렇게까지 나서진 않았을 거야.
“하긴, 그건 죽음에 대해 잘 모르는 내가 봐도 심하긴 했어.”
미간이 절로 찌푸려지는 시문.
‘영혼을 연료 삼아, 에너지를 생산하다니. 상상도 못 했지.’
아레나가 끝나고 현자의 돌에게 들었던 영혼 순환의 원인은 지독하다 못해 끔찍했다.
“시연이가 놀다가 부숴 버려서 참 다행이야,”
-그, 그치! 하필 또 그 에너지로 거대 병기를 만들고 있었잖아! 자업자득인 거지!
왜인지 모르게 급격히 높아지는 현자의 돌의 언성.
그에 고개를 갸웃했으나 그뿐.
“그러게 말이다.”
별생각 없이 고개를 끄덕인 시문은.
“일단 미래시는 나중에 확인하고. 다시 아이템 보상 좀 보자.”
즉시 인벤토리를 열었다.
‘이번 특수 아레나에서 얻은 보상은 총 3개였지?’
다크엘프 데이나가 준 히든 퀘스트와 죽음의 성좌들에게 받은 미션 보상.
그리고 방금 받은 아레나 클리어 보상까지.
‘아이템 보상을 한 번에 3개나 얻은 건 이번이 처음이지 않나?’
여태껏 아레나를 진행하며 막대한 양의 보상을 쓸어온 시문이었으나.
지금처럼 한 번에 3개의 아이템 보상을 얻은 적은 없었다.
“어?”
그렇게 기대감으로 인벤토리에 손을 넣던 시문이 멈춘다.
이유는 다름이 아니었다.
“뭐야? 왜 둘뿐이야?”
아공간의 저편.
인벤토리에 새로 들어온 아이템은 2개뿐인 것이다.
혹시 놓친 게 있나 싶어,
쑤욱.
인벤토리 안으로 어깨까지 집어넣는 시문.
하나 그런 노력에도.
인벤토리에 새로 추가된 아이템은 단 2개.
“영혼핵이랑 죽음의 선물 상자뿐이잖아?”
클리어 보상인 영혼핵과 미션 보상인 죽음의 성좌들이 준 선물뿐이었다.
그때.
“헤헤! 쾅쾅이!”
발랄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시문은 자연스레 그곳을 향해 고개를 돌렸고.
‘저건!’
볼 수 있었다.
“반짝반짝해!”
애착 인형이라도 되는 양.
제 머리만 한 검은 수정에 얼굴을 비비는 시연이를.
“시연아.”
시문이 얼른 시연이에게 다가가자.
“아빠!”
검은 수정을 내팽개친 시연이가 얼른 품속으로 안겨 왔다.
시문은 그런 시연이의 머리를 한 번 쓸어주고는 물었다.
“시연아. 저건 어디서 난 거야?”
“웅?”
고개를 갸웃하는 시연.
이내 시문이 가리키는 검은 수정을 보고는 환하게 웃으며 답했다.
“쩌건 쾅쾅이가 준 거야.”
“쾅쾅이?”
“웅!”
힘차게 고개를 끄덕이는 시연은 품에서 빠져나가, 검은 수정을 가져왔다.
“쾅쾅도 같이 집에 오려고 했는데…… 안된다고 해쪄. 그래쩌 쾅쾅이가 시여니 줘써!”
“그랬구나.”
그래도 명색의 부모라는 것일까?
시연이의 말을 찰떡같이 알아들은 시문은 차분히 고개를 끄덕였다.
‘히든 퀘스트의 아이템 보상은 검은 제련소의 부품이었지.’
시연이가 컨트롤했던 거대 골렘은 엄연한 검은 제련소의 것.
그리고 시연이는 자신의 소환수로 분류될 테니.
거대 골렘의 부속품이던 저 검은 수정이 보상으로 결정된 거겠지.
‘시연이가 안된다고 한 건, 아마 시스템의 제약일 테고.’
그 거대한 골렘은 통짜가 드라고니움으로 이루어져 있었으니.
아레나 입장에선 결코 허락할 수 없었을 것이다.
‘좀 아쉽긴 한데. 내가 봐도 거대 골렘을 그대로 가지고 나오는 건 말이 안 되긴 해.’
본래도 정보창이 없는 물건은 아레나 밖으로 가져갈 수 없을뿐더러.
그 정도 양의 드라고니움은 다이아 최상위권의 보상으로 주어지기에도 너무 과했으니까.
‘잠깐. 그럼 저 검은 수정은 정보창이 있다는 거잖아?’
시문은 무릎을 꿇어, 시연이와 눈높이를 맞췄다.
“시연아. 아빠도 잠시 쾅쾅이랑 이야기 좀 해도 될까?”
“웅! 아빠는 시여니 꼬니까!”
“으, 응?”
뭔가 말이 조금 이상했으나.
“그래. 아빠는 시연이 거니까.”
“웅!”
피식 웃은 시문은 시연의 머리를 한 번 더 쓸어주곤 검은 수정을 확인했다.
[드라니온의 핵]
등급 : S
용족의 전투 병기인 드라니온의 핵.
고수준의 용력과 기술력으로 만들어졌으나, 반드시 그에 걸맞은 몸체가 필요하다.
정보창을 확인한 시문의 미간이 찌푸려진다.
‘전투 병기 드라니온이라고?’
그도 그럴 것이.
‘이런 건 전생에도 들어본 적이 없는데.’
드라니온이라는 것은 멸망이 도래했던 전생에도 본 적이 없었으니까.
이를 뒤집어 보면.
‘지구를 삼키는데 드라니온은 사용할 필요도 없었다는 말인데…….’
씁쓸하게 웃는 시문.
차마 부정할 수 없는 것이다.
전생의 지구는 아레나뿐만 아니라, 내적으로도 상당히 혼란스러운 상태였으니까.
어찌 됐거나.
“이젠 아니니까.”
현재는 전생과 전혀 다르게 흘러가고 있다.
아레나 치료제의 보급부터 마르넬과 세계수, 하이엘프의 생존 등 많은 것이 변화했고.
실제로 시스템 역시 그것을 알려주지 않는가?
그렇기에 이번 생에서는 저 드라니온와 맞닥뜨릴 가능성이 높았다.
고로.
‘드라니온에 대한 대책은 세우는 게 좋겠지.’
시문은 드라니온의 핵을 시연이에게 돌려주곤, 그 똘망똘망한 눈을 마주했다.
“시연아. 아빠가 가끔 쾅쾅이랑 놀아도 될까?”
“웅!”
“고마워.”
“히히! 쾅쾅아. 쩌기 가자! 시여니 방도 보여 주께!”
드라니온의 핵을 들고 쪼르르 연구실을 나서는 시연.
그 모습에 피식 웃은 시문은.
“그럼 히든퀘 보상은 해결됐고.”
인벤토리에서 2개의 아이템을 꺼냈다.
“얘네들만 확인하면 되겠네.”
시문은 가장 먼저 오른손에 놓은 잿빛의 구슬을 확인했다.
[영혼핵]
등급 : SS
영혼을 담아내는 핵.
오랜 시간 영혼 발전기로 사용되어, 영혼의 흔적이 남아 있다.
“대박이다!”
대번에 튀어나오는 시문의 감탄.
SS급이라는 높은 등급 때문이 아니었다.
정보창을 확인하자마자, 아로새겨진 지식이 반응한 것이다.
“현자의 돌. 이거!”
-응, 오빠 생각이 맞아. 이거 호문쿨루스의 제작에 쓸 수 있어.
호문쿨루스.
지금의 시문으로서도 엄두를 내지 못하는 그것의 제작에 쓰일 수 있다고.
-아마 미미르의 샘물처럼 핵심 재료로 쓰일 수는 있겠지만…… 알지?
“그래. 그렇더라도 당장 호문쿨루스의 제작은 무리라는 거.”
시문은 아쉬운 얼굴로 입맛을 다셨다.
“그래도 핵심 재료니까 더 격 높은 호문쿨루스를 제작할 수 있잖아.”
-그렇긴 하지. 근데 상태가 좀…… 이걸 그대로 쓰다간 문제가 생길 수도 있어.
현자의 돌의 말에 시문은 잿빛의 구슬을 유심히 살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구슬 내부에서 희멀건 무언가가 물결치는 것이 보였다.
시문은 어렵지 않게 그것의 정체를 깨달을 수 있었다.
“영혼의 흔적이군.”
영혼핵의 정보창대로.
수많은 영혼을 원혼이 될 때까지 발전 연료로 쥐어짜 내어진 덕분에.
흐아아아…….
원혼의 절규들이 흔적으로 남아 있는 것이다.
‘이 부분은 확실히 따로 손을 써야겠어.’
인벤토리로 영혼핵을 챙겨 넣은 시문은 뼈와 해골로 장식된 상자로 시선을 옮겼다.
“개인적으로 이게 제일 기대되는데 말이지.”
-나도 그래. 무려 성좌의 선물이잖아?
죽음의 성좌들이 주었던 미션.
검은 제련소의 영혼 해방 수라는 조건을 붙였던 보상이었고.
딸 시연이 덕분에 요구치는 최대로 달성했다.
그런 성좌의 선물이라면 과연 얼마나 대단할까?
“그럼 열어 볼까.”
기대감이 듬뿍 담긴 손길로 상자를 여는 시문.
딸깍.
뼈가 부딪치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스아아아.
사기로 추정되는 음산한 연기가 풀풀 흘러나왔다.
그리고 상자 속 물건을 확인한 시문과 현자의 돌은.
“이, 이건!”
-어머나 세상에!! 이게 모람?!
경악을 금치 못했다.
* * *
대한민국 각성자 협회의 최상층.
쾅.
협회장실에서 묵직한 소리가 터져 나온다.
“어떤 개자식들이 감히!”
거친 노성을 토하는 중년 사내.
“최창욱!”
김무열은 서슬 퍼런 기세로 옆에 서 있는 큰 키의 남자를 노려봤다.
“예, 협회장님.”
“어떻게 됐나?”
“알아본 바로는, 국대에서 퇴출된 선수 소속 길드들의 소행으로 보입니다.”
“이 버러지 같은 것들이…….”
당장이라도 무언가를 베어 버릴 듯.
“감히 내게 반기를 든단 말이지?”
날카로운 김무열의 시선이 모니터로 꽂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