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4화
144화. 불패의 사르가스 (3)
휘황찬란한 백금의 빛.
하나 그 찬란한 빛과 달리, 운반로는 무척이나 고요했다.
그도 그럴 것이.
운반로를 뒤흔들었던 난동의 주인공.
“…….”
현신한 사르가스의 움직임이 완전히 멈춘 것이다.
그는 침묵을 머금은 채.
우웅.
맑은 이명을 토하는 백금의 창을 바라봤다.
나름 고룡이라 불릴 나이에 접어든 사르가스.
오래 전 용제들과 성좌들의 전쟁인 용신 전쟁마저 겪었던 용족이다.
그만큼 다양하고 수많은 무구들을 봐왔었지.
그런 사르가스의 눈에도.
‘저건…… 대체 뭐지?’
시문의 앞에 떠오른 저 백금의 창은 낯설었다.
하나 모르는 무구라고 이렇게 얼어붙어 있는 것이 아니었다.
사르가스의 시선이 아래로 향한다.
치이이이.
송두리째 타버린 집처럼.
시커멓게 타버린 주먹이 허연 김을 풀풀 날리고 있었다.
‘고작 스쳤을 뿐이거늘…….’
사르가스는 좀전의 상황을 되짚었다.
폭발적인 기운과 함께 드러나는 기척.
일대를 박살 내던 그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그곳으로 주먹을 내질렀고.
그 짧은 찰나.
미래시의 경고에 곧장 주먹을 틀었다.
해서 정말 살짝.
아주 작은 스파크 하나가 스쳤을 뿐이거늘.
최상급 용족인 드레이크와도 맞먹는 주먹이 걸레짝이 되었다.
사르가스의 미간이 좁혀진다.
‘그러고 보니 스쳤다고 보기에도 뭔가 이상했어.’
틀어진 공격궤도.
분명 스치기도 힘들 정도로 완벽히 꺾었는데.
‘마치 벼락이 날 따라온 듯한 느낌이었다.’
먹이를 노리는 뱀처럼.
근처에 있던 벼락 한줄기가 의지를 가지고 달려든 느낌이었다.
‘고작 벼락 한 줄기에 이 꼴이라니…….’
단 한 줄기의 벼락에 주먹이 걸레짝이 되었다.
거기다.
파직!
현신으로 인해 재생력이 대폭 상승했음에도.
주먹을 태워버린 뇌기는 아직도 번쩍이며, 재생을 악착같이 방해하고 있었다.
‘한 번이라도 스치면 그대로 끝이다.’
고로 저 백금의 창이 어떤 능력을 지니고 있는지 탐색할 여유는 하나도 없었다.
꿀꺽.
거대한 목울대가 절로 꿀렁인다.
‘이렇게 목숨을 위협받았던 적이 얼마만이던가?’
단 한 번의 실수가 죽음으로 이어지는 전투.
그 어마어마한 긴장과 부담 속에서.
‘침착하자. 어차피 내겐 아포피스께서 내려주신 미래시가 있다.’
사르가스의 눈이 차분하게 가라앉는다.
‘보아하니 아스트라페의 변형 같은데…… 아까보다 회피에 더욱 신경 쓰면 그뿐이야.’
제아무리 대단하다는 공격이라도.
결국 닿지 않으면 그뿐.
자신에게 ‘불패’라는 별칭을 알려 준 이 법칙은 단 한 번도 자신을 배신한 적이 없었다.
고로.
“와라. 김시문!”
이번에도 그 법칙은 유효할 것이라고.
사르가스는 생각했다.
“그러지.”
백금의 창에서.
그와 같은 색의 뇌전이 쏘아지기 전까진 말이다.
파츠측!
순식간에 날아드는 백금의 뇌전.
우웅.
그에 맞춰 사르가스의 왼쪽 눈이 짙은 회갈색의 빛을 토했다.
하나.
“이건!”
순식간에 경악으로 물드는 사르가스.
곧장 뒤로 몸을 물렸으나 결국.
“끄아아아아!!!”
육체만큼이나 거대한 비명이 운반로 전체로 메아리쳤다.
무리도 아니었다.
파지직!
쏘아진 백금의 뇌전.
그것에 직격당한 사르가스의 오른팔이 재가 되어 사라진 것이다.
그뿐만 아니었다.
치직!
오른팔을 말 그대로 소멸시켜버렸던 뇌전.
그것이 남긴 뇌기가 어깨를 타고, 오른쪽 상반신으로 퍼져 나가고 있는 것이다.
영혼마저 살라 버리는 고통이었으나.
“마, 말도 안 된다!”
사르가스를 미치게 하는 것은 정작 다른 부분이었다.
‘분명! 분명 피했거늘!’
진득한 빛을 발하는 미래시.
그 미래시가 처음 보여 준 경로는 분명 자신의 심장이었다.
해서 아예 몸을 물리는 판단을 했는데도.
‘어찌 경로가 변하지 않는 것이냐!’
저 경악스러운 백금의 뇌전은 독이 바짝 오른 사냥개처럼.
득달같이 경로를 틀어서 자신의 심장을 노려왔다.
아마 오른팔을 희생하지 않았더라면.
지금쯤 이렇게 놀라는 사치조차 누리지 못했으리라.
그렇기에.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건 있을 수 없는 일이야!!”
사르가스는 불신을 참을 수 없었다.
“미래를 바꾸다니! 네놈이 무슨 신이라도 된다는 말이냐!”
거세게 터져 나오는 노성.
그에.
“미래를 바꾼 게 아니야.”
백금의 창을 쥔 채.
가만히 사르가스를 바라보던 시문이 답했다.
“처음부터 정해져 있던 거지.”
“……뭐라?”
무슨 개소리냐는 듯.
황당함이 가득한 얼굴로 바라보는 사르가스.
하나 그뿐.
“못 믿겠으면 그 눈으로 다시 한번 봐.”
애당초 깊이 설명해 줄 마음도 없었는지.
시문은 어깨를 으쓱하며, 백금의 창을 겨눌 따름이었다.
그에.
“오냐! 이 오만한 인간이여!!”
제 목숨이 걸린 상황임에도.
사르가스는 눈에 불을 켜며 달려들었다.
“내 다시 봐 주마! 네놈이 정해놓았다는 그 미래가 무엇인지!!”
얼굴의 한쪽이 완전히 가려질 정도로.
위이이잉!!
그의 미래시에서 흘러나온 회갈색 안광이 강렬한 이명을 토한다.
이어.
파지지직!
또다시 쏘아지는 백금의 뇌전.
한계까지 활성화된 미래시는 그런 뇌전이 뻗칠 미래를 알려주었다.
아까와 똑같은 흉부의 왼쪽인 심장.
사르가스는 그에 맞춰 곧장 몸을 틀었고.
‘이럴 수가!’
경악을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정말 미래가 정해져 있단 말인가?’
심장을 향한 잔상.
미래시가 보여 주는 잔상이 변함없는 탓이었다.
‘아니, 그럴 리 없다!’
8미터의 거구라곤 믿을 수 없을 만큼 빠르게 몸을 물리는 사르가스.
하지만.
‘여기도 아니냐? 그럼 여기! 아니, 이곳이라면!’
사방팔방으로 달아나도 그뿐.
여전히 미래시가 보여주는 잔상은 흉부의 왼쪽, 자신의 심장에 꽂혀 있었고.
실제로 미래시가 아닌 일반적인 시야에도.
츠츠측.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자신의 회피에 따라 이리저리 몸을 꺾으며 날아드는 백금의 뇌전이 보였다.
“아니다! 아니야!!”
거센 부정을 토하는 사르가스.
한계를 넘어버린 것일까?
주르륵.
회갈색의 빛을 내뿜는 왼쪽 눈에선 어느새 시뻘건 핏물이 줄줄 흘러내렸으나.
사르가스의 발버둥은 멈추지 않았고.
턱.
“이!”
결국 무너져내린 벽면에 등이 닿았다.
더는 피할 곳도, 피할 힘도 없었다.
사르가스는 여전히 자신의 심장에 박힌 잔상을.
‘이 사르가스가…… 정녕 이렇게 끝이란 말인가?’
그리고 그 잔상과 조금의 오차도 없이 날아드는 백금의 사신을 멍하니 바라볼 뿐이었다.
그런 사르가스의 귓가로.
“내가 말했잖아.”
뚜렷한 미성이 들려온다.
“미래는 이미 정해져 있다고.”
그것을 끝으로.
짜자자작!
사르가스의 불패는 끝이 났다.
* * *
어둑한 운반로를 환하게 비추는 백금의 섬광.
그것이 꺼지자.
[다섯 성좌의 미션을 완수하였습니다.]
[업적 포인트 10,000점을 획득합니다.]
미션이 클리어 되었다는 메시지가 떠올랐다.
그것을 한쪽으로 치운 시문은.
치이이이.
시커멓게 타버리다 못해, 상체가 뻥 뚫려버린 사르가스의 시신을 바라봤다.
거대한 크기 덕분인지.
시신은 발굴 중인 고대 유골처럼 보였고.
그의 넋이라도 달래듯.
파직.
백금의 뇌기가 반딧불처럼 이리저리 춤을 추어댔다.
이어.
스륵.
손의 무게가 점차 가벼워진다.
시선을 돌리자.
신화급 무구의 융합으로 탄생한 무기.
약속된 필중의 뇌격창이 리바운드로 인해 백금의 입자로 흩어지고 있었다.
시문은 제 가슴을 힐끔하며 물었다.
“현자의 돌. 혹시 이건 페이백 같은 거 없어?”
-……오빠. 이렇게 감격스러운 상황에 꼭 그런 말을 해야겠어?
어지간히도 어이가 없는지.
녀석의 목소리는 완전히 힘이 빠져있었다.
그에 시문은 슬쩍 볼을 긁었다.
“아니, 난 그냥…… 혹시 이것도 가능한가 해서 물어봤지. 대가가 적은 것도 아니었잖아.”
무려 업적 포인트 5,000점이다.
본래대로 20%를 돌려받으면 1,000점.
아니면 예전처럼 10%만 돌려받아도 500점이지 않는가?
-그렇기는 한데…… 오빠. 우리 조금은 속세의 마음을 내려놓고. 오빠가 이룬 이 위대한 업적을 기리면 안 될까?
“어…… 이게 위대한 업적까지 되는 거야?”
-당연하지!!
빼액 소리치는 현자의 돌.
-오빠는 방금 해낸 그게 뭐였는지는 알고 그런 소리를 하는 거야?
녀석은 어이가 없다 못해 충격적인지.
-아르스 마그나라고! 무려 아르스 마그나!
연신 흥분한 목소리로 외쳤다.
-어떻게 보면 연금술로 이룰 수 있는 극의를 넘본 거란 말이야!
현자의 돌의 말에 시문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대단한 힘이긴 했지.’
형용할 수 없는 무언가.
그것이 뇌리를 스치고, 영혼에 아로새겨지는 그 기분은 타고난 태생에서 벗어나.
아예 새로운 존재로 탄생해나가는 기분이었다.
실제로.
[자신만의 아르스 마그나(Ars Magna)를 깨달았습니다.]
[칭호 ‘연금술의 선구자’의 옵션이 성장합니다.]
[연성력이 20 증가합니다.]
[현자의 돌의 등급이 상승합니다.]
시문의 시야 한편에는 아르스 마그나로 인한 연금술의 능력들이 전반적으로 성장한 상태였다.
‘칭호는 그렇다 치지만, 연성력을 무려 20이나 올려줬지.’
주 스탯 20.
단순하게 레벨로만 환산해도 무려 20레벨에 달하는 수치.
과거 타락한 세계수에서 용제의 용력을 대거 얻었을 때와 비슷했다.
더군다나.
‘현자의 돌도 등급이 상승되었어.’
시문이 지닌 연금술 관련 능력 중 가장 성장이 더디었던 현자의 돌의 등급.
그것이 아르스 마그나의 깨달음 한 번으로 성장하지 않았는가?
“그래서 말인데…….”
거기까지 확인한 시문은 은근한 미소를 베어 물고 물었다.
“너 이번에 등급까지 올랐잖아. 진짜 페이백 안되는 거야?”
-…….
잠시의 정적.
이내.
-오빠아아악!!
곧바로 터져 나오는 녀석의 울분에 시문은 쾌활하게 웃었다.
“하하! 농담이야.”
-제발 그런 농담은 하지 말아줘…… 나 현기증 난단 말이야…….
“알았어.”
현자의 돌을 한번 시원하게 놀려먹은 시문은 얼른 녀석을 달래주었다.
시문은 입가의 미소가 가시지 않은 얼굴 그대로.
희미하게 떨리는 오른손을 내려다봤다.
약속된 필중의 뇌격창.
그 강대한 힘을 쥐었던 여파가 아직도 가시지 않고 있었다.
‘등가교환이 꽤 비싸긴 해도, 충분히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힘이었어.’
업적 포인트 5,000점.
단발성으로 쓰기엔 분명 상당한 대가였지만.
아스트라페와 궁니르를 융합한 만큼, 어마어마한 위력을 지니고 있었다.
‘단순히 서로의 장점만 가진 게 아니라, 전체적인 성능도 더 오른 느낌이었지.’
물론 진짜 신화급 무구에 비교하면 부족한 부분이 많을 테지만.
시문은 조금의 아쉬움도 느껴지지 않았다.
왜냐하면.
‘뭔가…… 나만의 무구를 연성한 것 같았어.’
타 성좌의 것이 아닌.
김시문이라는 존재만의 무구를 탄생시킨 느낌이었으니까.
그런 시문의 마음을 읽은 것일까.
-오빠 생각이 맞아.
현자의 돌이 긍정을 보내왔다.
-아르스 마그나는 이뤄 낸 연금술사마다 근본이 다 다르거든.
“그래?”
-응. 생각해 봐. 같은 랭커라도 우리 도련님이랑 종리추 그 개새끼랑 얻은 깨달음이 같겠어?
그 말에 시문은 피식 웃음을 흘렸다.
“그렇게 말하니까 확 와닿네.”
-그치? 물론 좀 더 깊게 파고들면, 그런 분야의 깨달음과 다르긴 한데……. 대충 맥락은 비슷하다고 보면 돼.
고로.
-그니까 아르스 마그나로 연성한 그 무구는 순전히 오빠 것이 맞아. 아마 성좌들도 그렇게 생각할걸?
나만의 무구였다는 시문의 생각은 틀리지 않았다.
아니나 다를까.
[성좌 검은 염소와 천마, 바알이 고개를 끄덕입니다.]
[성좌 제우스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습니다.]
[성좌 오딘이 한결 반짝이는 눈으로 당신을 바라봅니다.]
긍정을 표하는 성좌들의 반응이 일제히 떠올랐다.
그것을 확인한 시문은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이네.”
-뭐야. 그 밋밋한 반응은? 좀 더 놀라 봐! 연금술사로서 정말 엄청난 걸 해낸 거라고!
“이미 충분히 놀라고 있어.”
그만한 힘을 몸소 다뤘을뿐더러.
깨달음을 얻은 스스로가 누구보다 잘 느끼고 있었다.
이내.
“아참.”
작게 탄식한 시문은 얼른 몸을 돌렸다.
이유는 다름이 아니었다.
‘아르스 마그나를 깨달은 여파인지. 골렘들과의 링크가 모두 끊어졌어.’
아마 연성한 몸체도 전부 허물어졌을 테지.
고로 지금 탈출한 다크엘프들을 지키고 있는 건 데이나 혼자일 터.
‘얼른 영혼의 순환을 막는 원인을 처리하고 가봐야겠어.’
사르가스를 처리했다곤 하나.
이번 특수 아레나의 목표는 어디까지나 ‘다크엘프들의 구출’이니까 말이다.
따악.
전신에 인체 연성을 하고, 땅을 박차려던 순간.
쿠르르르.
강한 진동이 울렸다.
동시에.
슈아아아아!!
어마어마한 잿빛의 격류가 바닥을 뚫고 하늘로 치솟았다.
그것을 본 시문의 눈이 커진다.
‘이건…… 영혼들이잖아?’
퀴네에를 착용했을 때 보았던 영혼의 격류.
지금은 퀴네에를 착용하지 않고 있음에도, 이렇게 육안으로 식별이 가능했다.
‘이게 왜 갑자기 보이는 거지?’
시문은 의문이 찬 눈으로 치솟는 영혼들을 바라봤다.
그리곤.
‘잠깐. 그러고 보니…….’
이전에 보았던 것과 다른 부분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것은.
-아아…… 드디어!
-자유다! 해방이야!!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
더 이상 절규와 비명을 지르지 않고.
모두 감사와 환희를 내지르고 있다는 것.
이어.
[죽음의 성좌들의 미션을 완수하였습니다.]
미션 클리어를 알리는 메시지가 떠올랐다.
[보상으로 사기 스탯을 획득합니다.]
[현자의 돌의 영향으로 사기 스탯이 연성력에 귀속됩니다.]
[검은 제련소에 갇힌 영혼을 전부 해방시키셨습니다.]
[보상으로 죽음의 선물을 획득합니다.]
뒤따라 주르륵 올라오는 보상들까지.
하나 시문은 보상에 집중을 할 수 없었다.
이유는 다름 아니었다.
쿠그그그그그그!!
운반로가.
아니, 검은 제련소 전체가 무너진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거대한 지진이 일어났고.
그와 함께.
쿠우웅!
사르가스보다 거대한 손이 시문의 앞으로 내리꽂힌 것이다.
그리고 그 거대한 손의 주인.
골렘으로 추정되는 거대한 조각상의 머리 위엔.
“어? 아빠다!”
“시, 시연아?!”
이곳에 있어선 안 될 아이가 해맑은 미소로.
“헤헤! 아빠!!”
반갑게 손을 흔들고 있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