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3화
143화. 불패의 사르가스 (2)
잠시간의 정적.
말없이 시문을 바라보던 사르가스는.
“하.”
짧은 헛웃음을 흘렸다.
“내가 어지간히도 얕보였나 보군.”
그는 무척이나 불쾌한 얼굴로 말했다.
“같은 공격을 연이어 펼치면 바보가 아닌 이상 피하기 마련이다. 이 사르가스가 그리 우스워 보이나?”
자존심의 상처를 입은 무인.
딱 그러한 태도에 시문은 코웃음을 쳤다.
“그렇게 안 봤는데. 사르가스. 생각보다 약은 구석이 있네.”
“뭐라?”
“그리고 얕보였다는데. 정작 얕보인 건 내 쪽이지 않나?”
그에 사르가스가 눈매를 꿈틀했으나 그뿐.
“미리 알고 몸을 트는 회피를 연이어 펼치는데. 설마 내가 눈치채지 못할 거라 생각했나?”
“…….”
똑같이 되돌아오는 시문의 말에 아무런 답도 하지 못했다.
이내.
“그래. 나답지 않은 짓거리였군. 인정하겠다.”
찬찬히 고개를 끄덕이는 사르가스.
그는 무언가를 회상하듯.
처음 시문과 격돌했던 오른 주먹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나도 모르게 경계를 했나 보군.”
생긴 대로 직선적인 성격인 것일까?
“아마도…… 네놈을 내 적수로 인정한 모양이야.”
사르가스는 대놓고 인정이라는 말을 내뱉었다.
동시에.
[상황을 주시 중인 다섯 성좌가 다소 놀란 눈으로 사르가스를 바라봅니다.]
[미션의 조건이 변경되었습니다.]
미션이 변경되었다는 메시지가 떠올랐다.
시문은 즉시 변경된 미션 내용을 확인했다.
[미션]
-사르가스는 성좌들 사이에도 오르내리는 용족입니다. 그의 인정에 상위 서열의 다섯 성좌는 생각을 바꾸었습니다.
‘불패의 사르가스’에게 패배를 안겨 주십시오.
보상 : 업적 포인트 10,000
본디 사르가스에게서 살아남으라고만 했던 미션.
이젠 그 내용이.
‘사르가스에게 패배를 안겨 줘라?’
사르가스를 상대로 승리하라고 명시되어 있었다.
또한 그들로선 예상치도 못한 사르가스의 인정 때문일까?
아니면 생존이 아닌 승리라는 조건 때문일까.
‘보상도 2배나 늘었네.’
5,000점이었던 업적 포인트는 10,000점으로 변경되어 있었다.
‘데이나의 퀘스트도 업적 포인트를 만 점이나 주니까. 클리어만 하면 총 2만 점을 얻게 되는군.’
안 그래도 슬슬 세계수의 씨앗을 더 연성해, 성장 버프를 높일까 하던 참이었다.
거기다.
“나도 사르가스, 널 인정하고 전력을 다 쏟으려고 했는데. 마침 잘됐네.”
무력은 둘째치고 미래를 보는 사기적인 능력.
덕분에 시문도 전력을 쏟으려던 참이었다.
한데 이렇게 업적 포인트까지 든든하게 챙겨준다면야.
“시원하게 갈길 수 있겠어.”
따악.
후련한 미소와 함께 손가락을 튕기는 시문.
그의 손 위로.
스아아아.
귀기로 이루어진 반투명한 왕관, 퀴네에가 떠오른다.
따악.
그리고 또 한 번 튕겨지는 손가락에.
쿠르르릉!
지하에선 들릴 수 없어야 할 천둥소리가 운반로를 울렸다.
* * *
검은 제련소의 최상층.
일명 연구동이라 불리는 이곳은 관리 소장인 사르가스의 방을 제외하면.
검은 제련소에서 가장 높이 위치한 건물이었다.
이유는 다름이 아니었다.
“헤헤! 쾅쾅이 엄쩡 크네!”
흡사 성채와 같은 검은 제련소.
그 높이에 걸맞은 거대한 제작물 때문이었다.
그리고 연구동의 2층.
머리로 추정되는 부위가 걸려있는 이곳은 지금.
“으으…….”
“쿨럭!”
진득한 피비린내와 죽음이 섞여드는 신음이 그득했다.
한 가지 이상한 것은.
“있찌있찌! 이건 주 재료가 드라고니움인데. 용력만 있다고 움직이지 않나 바!”
이런 잔혹한 곳에 해맑은 아이의 목소리가 들린다는 것이다.
하나 마냥 이상한 것도 아니었다.
“언니! 엄쩡 신기하지? 이거 잘라가면 아빠도 좋아할까? 웅? 못 가져가?”
죽었거나 혹은 죽어가고 있거나.
어느 쪽이건 죽음뿐인 이곳에서 저 혼자 대화하는 아이는 퍽이나 기괴했으니까.
“이씨! 시여니가 다 주기고 얻은 건데 왜 안대!”
생떼를 부리는 듯 화를 내는 아이.
“윽…….”
그 곁에 쓰러진 용족.
본래라면 자연이 떠올랐을 녹색 비늘을 피로 한껏 적신 용족은 성을 내는 아이를 노려봤다.
“미…… 친…….”
입가에 고인 핏물 때문인지.
제대로 된 목소리조차 나오지 않는 용족.
당연했다.
주르륵.
양팔과 양다리.
사지 모두가 뜯겨져 나갔는데, 피를 뱉어낼 여력이 어디 있겠는가?
하나 그런 용족의 어눌한 욕지거리를 들은 것일까?
“웅? 짜르띠니야! 일어나써?”
거대한 드라고니움 제작품을 보던 아이는 밝게 웃으며, 폴짝 용족의 곁으로 뛰어내렸다.
“내 이…… 사르…….”
힘겹게 말을 내뱉는 용족.
사르티니는 마지막까지 고고한 용족으로서의 자존심을 챙기려고 했으나.
“웅웅! 짜르띠니! 나랑 또 놀래? 너랑 놀 때가 제일 재미써는데!”
이 괴물을 넘어선 아이는 해맑은 얼굴로 그녀의 자존심을 짓밟았다.
“다른 애들은 툭툭하고 치면 픽픽하고 너머져서 재미 없져! 나랑 또 놀자. 응?”
찰박.
흡사 물장구라도 치듯.
웅덩이가 된 핏물을 찰박거리며 다가오는 아이.
하나 사지는 물론.
전신에 중상을 입은 그녀로선 꼼짝달싹도 할 수 없었다.
“우웅…….”
그 사실을 아이도 깨달은 것인지.
“너무 망가졌네…….”
아이는 짧고 새하얀 엄지를 쪽쪽 빨며 시무룩해졌다.
이내.
“응? 언니. 그게 진짜야?”
또 광증이 돋은 것일까.
고개를 홱 든 아이는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미쎤? 그걸 깨면 아빠가 조아할 거라고?”
대체 저 아빠란 존재가 무엇이길래.
이 괴물이 이토록 집착을 한단 말인가?
‘보나 마나 저것과 같은 괴물…… 이겠지.’
듣도 보도 못한 저런 괴물을 만든 존재라면 분명 그럴 터였다.
그런 그녀의 귓가로.
“에? 영혼? 순환을 막고 이써?”
쉽게 듣고 넘기기 힘든 내용이 들려왔다.
‘설마…… 영혼 발전소를 말하는 건가?!’
만약 저 괴물이 말하는 것이 영혼 발전소라면.
‘안 된다! 우리 모두가 죽더라도 그것만은!’
저 괴물에게 결코 알려져선 안 될 시설이었다.
하나 안타깝게도.
“웅?”
아주 미세하게 떨림임에도.
아이는 사르티니의 움직임을 놓치지 않았다.
“헤에! 짜르띠니야. 너, 뭔가를 아는 고야?”
“모…… 르…….”
사르티니는 서둘러 부정을 내뱉으려 했으나 그뿐.
“거짓말. 너 아는 거구나? 그러치? 대답해.”
어느새 위대하신 그분들과 똑같은 눈이 그녀의 앞으로 들이닥친다.
용제들에 비하면 분명 부족했지만.
“……예, 알고 있…….”
육신이 멀쩡했을 때도.
그리고 만신창이가 된 지금도 감히 저 부족한 눈을 거스를 수 없었다.
대답이 마음에 든 것일까?
“히히! 잘됐다! 역시 짜르띠니야! 마음에 들어!”
웃음꽃이 활짝 피는 아이.
아이는 덩그러니 남은 그녀의 꼬리를 쥐고는.
“가자! 짜르띠니가 안내하기다?”
도축 당한 가축처럼.
기다란 핏길을 남기며 질질 끌고 나갔다.
“아! 귀찮으면 위치만 말해져도 대!”
재잘거리며 돌아보는 아이의 얼굴은.
“그럼 더 안 놀고 편하게 해 줄게.”
잔혹한 미소가 가득했다.
* * *
파지직.
운송로를 비추는 환한 빛.
아니, 한줄기의 벼락이 허공을 가른다.
“어딜.”
내리치는 벼락의 대상인 거구의 용족은 간결한 움직임으로 피해 냈다.
이어.
짜자작!
재차 이어지는 벼락 줄기들.
벼락인 만큼 생명체가 함부로 반응하기 힘든 속도였으나.
거구의 용족은 애당초 벼락이 날아들 곳을 아는 듯.
스륵.
간결한 움직임으로 쏟아지는 벼락을 모조리 피해 냈다.
파가가각!
피해 낸 벼락들이 운송로 곳곳을 찢어발긴다.
“음…….”
거구의 용족.
사르가스는 그런 벼락의 잔재를 무심하게 힐끔거렸다.
‘과연. 아스트라페답군. 드라고니움으로 이루어진 벽면도 쉽게 부숴버리다니.’
아스트라페.
과거 성좌들과의 전쟁에서 이름을 떨쳤던 신화적인 무기 중 하나.
해서 의문이 들었다.
‘대체 어찌 인간이 제우스의 무구를 다루는 거지?’
뿐만 아니라.
아무것도 없는 공간.
스아아아.
그곳을 가르며.
아니.
처음부터 그곳에 존재했다는 듯, 아스트라페를 내지르는 시문.
사르가스의 기억이 틀리지 않았다면.
‘저것은 분명 하데스의 무구일 텐데.’
시문의 머리 위에 있는 잿빛의 반투명한 왕관.
얼핏 보면 반쯤 투구처럼 생긴 그것은 분명 제우스와 같은 상위 서열의 성좌, 하데스의 퀴네에였다.
‘하나만 다루어도 믿기지가 않는데…… 저런 걸 둘이나 다루다니.’
짜작!
귓가로 강렬한 뇌전이 스쳐 지나간다.
그것을 피해낸 사르가스는 안대가 덮인 왼쪽 눈.
웅.
미래시(未來視)가 또다시 알려오는 잔상에 잇달아 몸을 물렸다.
파직!
미래시가 보여 주었던 잔상대로 벼락이 내리꽂힌다.
그것을 본 사르가스는 미간을 좁히며.
‘이대로는 끝이 없겠어.’
벼락이 날아들었다곤 상상도 하지 못할 만큼 고요한 일대를 훑었다.
‘인간인 이상. 조금만 시간을 끌면 금방 지칠 거라 생각했거늘.’
어림도 없는 생각이었다.
이 불가사의한 인간은 30분이 넘는 시간 동안 이 구도를 유지하면서도.
조금도 지친 모습을 보여 주지 않고 있었으니까.
마치.
‘신화급 무구 사용에 아무런 제약도 없어 보이는군.’
하나 곧바로 고개를 젓는 사르가스.
당연했다.
‘주인인 성좌들도 멋대로 무구의 사용을 허락할 수 없을 텐데. 제약이 없을 리가 없어.’
하나.
‘그렇다고 이대로 소모전만 이어가기엔…… 내 쪽이 불리하다.’
인정하고 싶지 않았으나.
만일 이런 싸움이 길어진다면 불리한 것은 결국 자신이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짜자작.
“큭!”
어깨를 스치는 벼락.
미래시 덕에 직격은 확실히 피했지만, 과연 아스트라페의 위명답게.
치이이.
고작 스치는 것만으로도, 드라고닉의 비늘이 검게 타버리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부상은 벌써 4개째였다.
거뭇하게 탄 어깨 비늘을 힐끔하는 사르가스.
‘결국 내 쪽에서 먼저 승부수를 던지는 수밖에 없겠군.’
마음을 정한 그가 전신으로 용력을 끌어올리는 순간.
뚝.
두 주먹을 꽉 쥐던 그의 움직임이 멈춘다.
“이건! 사르티니의……?”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는 사르가스.
이는 시문 역시 마찬가지였다.
[히든 업적 ‘히든 보스 잡기 (6/?)’을 달성하셨습니다.]
[히든 보스 ‘부 관리 소장 사르티니’를 처치하였습니다.]
[보상으로 업적 포인트를 총 3,000점을 획득합니다.]
‘이게 뭐야?’
퀴네에로 몸을 숨기고 있던 시문.
그의 눈앞으로 메시지창이 떠오른 것이다.
‘히든 보스를 죽였다고? 내가?’
당장 사르가스를 상대하고 있는 마당에 언제 히든 보스를 처리했단 말인가?
‘설마 데이나가 처리한 건가?’
하지만 그렇다기엔.
‘골렘들에게선 어떤 반응도 오지 않는데?’
잠시 눈을 감는 시문.
아무리 집중을 해 보아도.
호위로 붙여둔 골렘들은 여전히 걷는 것 말고는 어떤 행동도 취하지 않고 있었다.
‘설마. 아까부터 난사한 아스트라페에 당한 건가?’
이마저도 믿기는 힘들었지만.
현재로선 그나마 예상해 볼 법한 시나리오였다.
‘뭐가 어찌 된 건지는 모르겠다만, 나야 좋지.’
공짜로 히든 보스 보상을 얻었으니 말이다.
“하!”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던 사르가스가 졸지에 헛웃음을 터뜨린다.
“그래. 그렇지. 감히 이곳에 단둘이서 발을 들일 리가 없거늘. 나의 실책이다.”
이어.
“인간, 이름이 뭐지?”
자조적인 미소를 지은 사르가스는 물었고.
“김시문.”
“김시문, 김시문이라…….”
시문의 이름을 곱씹은 그는 안대에 덮인 눈으로 솥뚜껑만 한 손을 올렸다.
이내.
우드득.
시문이 용체화를 할 때와 같은 소리가 들려온다.
그리고 그 찰나에.
쿠그그그.
거센 진동을 일으키며 부푸는 사르가스.
5미터에 달하던 그의 체구는 근 8미터.
높디높은 운반로의 천장에 닿기 직전까지 크고 나서야 그 성장을 멈췄다.
시문은 단박에 사르가스의 변화를 눈치챘다.
“현신인가…….”
현신.
상위 용족들에게만 허락된 힘.
사실 힘이랄 것도 없었다.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거니까.’
무분별한 전력 소비를 줄이기 위해, 딱히 쓰지 않는 곳의 불은 꺼두는 것처럼.
상위 용족들 역시 평소엔 그 강대한 힘을 숨겨두는 것이다.
“그래. 김시문. 기억해 두마.”
거석을 통짜로 갈아내듯.
전보다 더 굵고 강직해진 목소리가 들려온다.
“이 몸의 전력을 이끌어 낸 유일한 인간으로 말이다!”
부아아앙!
비행기에서나 날 법한 강렬한 파공음.
거대해진 사르가스의 주먹은 그에 걸맞은 위력까지 지니고 있었다.
콰아아아앙!
고막을 뒤흔드는 거대한 굉음이 터져 나온다.
그는 퀴네에를 이용한 기습을 완전히 틀어막으려는 것인지.
콰앙! 콰과쾅!
쉬지 않고 운반로 내리찍었다.
그에.
“미친.”
깔끔한 감탄사를 표한 시문은 쉴 새 없이 몸을 날렸다.
‘정말 인정사정없이 내려치네. 이러다 운반로 전체가 무너지면 어쩌려고?’
하나 그런 마음과 달리.
시문의 시선은 난장을 피우는 사르가스에게서 떠나지 않았다.
‘그나저나. 미래를 볼 수 있다면서, 정작 내 위치는 모르나 보군.’
현신 전의 전투에서도 그러했다.
번개인 아스트라페의 공격을 모조리 피해냈으나 그뿐.
은신한 자신의 위치나 움직임은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
즉.
‘자신이 공격받을 때만 미래가 보이나 본데?’
물론 그래도 까다로운 능력임은 분명했다.
저 막대한 파괴력의 공격을 쏟아부으면서.
정작 본인은 공격받는 미래를 보고 전부 피해버리니까.
어쨌거나.
‘이러나저러나. 이대로 가면 내 쪽이 불리해져.’
아까는 업적 포인트를 쏟아 넣더라도.
조금씩 갉아먹자는 전략이었지만, 저렇게 사방을 박살 내 버리면 이야기는 달라졌다.
콰가강!
“언제까지 쥐새끼처럼 숨어만 있을 셈이냐?!”
운반로를 실시간으로 파괴하고 있는 사르가스.
상황이 이대로 흘러가다간 운송로 전체가 박살 나, 디딜 곳이 없어질 테고.
결국 퀴네에의 은신도 무의미하게 될 터였다.
고로.
‘운반로가 박살나기 전에, 놈이 알아도 피할 수 없는 공격을 해야 돼.’
하지만 어떻게?
아스트라페의 벼락도 보란 듯이 피해버리는 놈이다.
더군다나 현신이 단순히 덩치만 키우는 능력이 아니라는 듯.
콰과강! 쾅!
현신 전보다 훨씬 더 빨라진 속도로 사방을 난타하고 있지 않은가?
아마 미래를 보는 능력 또한 대폭 상승되었을 터였다.
실제로.
“나와라 김시문! 날 실망시키지 마라!”
안대가 벗겨진 그의 왼쪽 눈은 회갈색의 안광을 발하며, 강렬한 용력을 내뿜고 있지 않은가?
부아아앙.
사르가스의 주먹을 피해 허공으로 떠오른 시문.
그는 리바운드가 되어 사라져가는 아스트라페를 내려다봤다.
‘사안으로 틈을 만들어 아스트라페를 적중시키면?’
결정적인 순간에 대비해 이미 사안의 명령은 아껴둔 상황이지 않나?
하나.
‘아니, 사안만으로는 부족해.’
고개를 젓는 시문.
강력한 용족일수록 사안에 대한 저항력이 극도로 높아진다.
저렇게 현신까지 한 상태라면 사안의 명령으론 1초도 간당간당할 터.
‘더 확실한 능력이 필요해. 이를 테면…… 그래! 오딘의 궁니르와 같은!’
궁니르.
전생의 하이랭커였던 쌍창의 파비안이 즐겨 쓰던 무구.
성좌 오딘의 무구로 절대 빗나가지 않는다는 능력을 지닌 창이었다.
그거라면 아무리 미래를 보더라도 피할 수 없겠지.
무려 신화급 무구이니까.
단지 한 가지 문제점이 있었다.
‘궁니르는 아스트라페처럼 공격력이 뛰어나지 않아.’
바로 공격력.
자신이 주로 연상하는 아스트라페와 레바테인은 신화급 무구 중에서도 최상의 공격력을 자랑한다.
궁니르 역시 신화급 무기답게 공격력이 상당했지만.
아스트라페나 레바테인에 견줄 수준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아스트라페급의 궁니르의 능력을 지닌 무기면 딱인데 말이지.’
스스로 생각하고도 헛웃음이 절로 나온다.
신화급 무구를 하나만 소유해도 랭커의 자리를 쉽게 넘보게 되는데.
신화급 무구의 장점만을 지닌 무구가 대체 어디 있겠나?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
‘잠깐.’
한 가지 가능성이 시문의 머릿속을 스쳤다.
‘안 될 건 또 뭐지?’
이미 한 명의 플레이어당 하나의 배후성이라는 법칙에서 벗어나.
다섯이나 되는 성좌들과 연을 맺은 자신이다.
그것뿐이던가?
‘난 이미 필요할 때마다 여러 신화급 무구를 사용하고 있잖아?’
전생의 하이랭커들도 자신의 배후성이 지닌 무구만을 사용할 수 있었다.
하지만 자신은 서로 다른 성좌들의 무구를 이미 수차례나 사용하고 있지 않은가?
그리고 그 기적이 가능했던 근간은 다름 아닌 연금술.
‘진품의 능력을 그대로 베낀 모조품도 만드는데. 필요한 능력만 담아서 못 만들 건 또 뭐야?’
그 이치를 깨닫는 순간.
웅.
시문의 가슴 정중앙.
현자의 돌이 미세한 이명을 흘린다.
이는 현자의 돌이 말을 걸어왔다기보단.
‘아…….’
연금술사로서의 깨달음.
혹은 어떤 진리를 깨우침으로 흘러나오는 일종의 공명음이었다.
호문쿨루스의 제작법을 얻었을 때처럼.
우우웅.
불규칙한 이명과 함께 정체 모를 무언가가 뇌, 혹은 영혼에 아로새겨진다.
이 형용할 수 없는 흐름에 몸을 맡긴 시문은.
따악.
저도 모르게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쿠르릉.
오른손으로 벼락이 내리치고.
스릉.
왼손에선 황금의 창이 솟아올랐다.
그리고 위대한 흐름이 이끄는 대로.
두 개의 창을 한데 모음으로서.
[요구치에 맞는 연성을 이루기에는 연성력이 부족합니다.]
[현자의 돌이 부족한 등가교환을 성립시키기 위해, 업적 포인트 5,000점을 요구합니다.]
[받아들이시겠습니까? (예 / 아니오)]
익숙한 메시지창이 눈앞으로 떠오른다.
당연하게 ‘예’를 선택하는 시문.
그리하여.
파츠츠츠측!!
두 신화급 무구가 거센 연성 스파크를 튀기며 한데 모여 융합되기 시작했다.
그 여파 때문일까?
어느새 벗겨진 퀴네에의 은신에.
“거기냐!!”
사르가스가 곧장 집채만 한 주먹을 휘둘러온다.
하나 시문은 평온한 얼굴로 파괴적인 주먹을 바라볼 뿐이었고.
“아르스 마그나…….”
전신을 휩쓰는 이 위대한 진리를 읊음으로써.
아르스 마그나(Ars Magna) 융합(融合).
약속된 필중의 뇌격창.
새로운 신화를 실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