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5화
135화. 독일전 (3)
[쏟아집니다!! 사방에서 공격이 쏟아지고 있어요!!]
[아아! 톱니부터 전기, 맹독까지! 저건 또 뭔가요? 마치 용암을 발라놓은 것 같은칼날이 독일팀을 낭자합니다! 방어막이 갈려 나가고 있어요!!]
[사방에서 쏟아지는 공세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독일팀!]
얼굴이 한껏 상기된 채널 국아의 두 남자.
최강엽과 송재경은 목에 핏대까지 세워가며 쉴 새 없이 외쳤다.
그도 그럴 것이.
“대체 이건 뭐냐고오오!!”
“김시문은 또 왜 보호 대상인건데! 왜!!”
특별전의 무대인 버려진 철로.
그곳엔 승리가 확정되어 있던 30인의 플레이어들이.
“더, 더는 못 버텨!”
“아악! 보호막이!”
“페리! 제기랄!”
사방에서 쏟아지는 기계들의 무자비한 공격 속에 속절없이 학살당하고 있었으니까.
한 가지 신기한 것은.
[이번에도 칼날이 김시문 선수를 비껴갑니다! 거대한 망치도 피해갔어요!]
[대포알 역시 마찬가집니다! 화살인지 볼트인지 모를 투사체들마저도 귀신같이 김시문 선수만 비껴가고 있어요!]
그렇게 무자비하게 쏟아지는 기계들의 공격이 유독 김시문만은 비껴간다는 것이다.
[방어 시스템의 공격이 시작되기 전, 분명 김시문 선수를 0순위 보호 대상이라고 했었죠? 대체 어떻게 보호 대상이 된 걸까요?]
[저도 그게 궁금하지만, 애당초 버려진 철로에 이런 장치들이 숨겨져 있다는 게 더 의문입니다!]
연신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는 송재경 해설.
그에 최강엽은 이해가 간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송해설님께선 플래티넘으로 은퇴하셨으니, 버려진 철로도 꽤 경험해 보셨겠죠.]
[그렇습니다. 특히나 버려진 철로는 10회나 경험해 봤었죠.]
플래티넘부터 등장하는 종목인 운송전.
한때 플래티넘이었던 송재경은 버려진 철로를 유독 많이 경험해 본 플레이어였다.
한데.
[그런데도 맵 벽면에 저런 장치들이 숨겨져 있었다는 건 난생처음 알았습니다!]
화면에 송출되는 저 무자비한 기계들을 보라.
스스로 방어 시스템이라 칭한 저 기계들은 그런 송재경으로서도 전혀 몰랐던 맵 특성이었다.
당연히 흥분을 감추지 못할 수밖에.
그리고 이에 놀란 것은 송재경만이 아니었다.
-와…… 화력 봐라. 힐러진이 연계한 보호막인데도 그냥 갈아버리네.
-저런 걸 갈겨대는데 어케 버팀 ㅋㅋ 다이아급 힐러진도 어려울 듯.
-Xㅋㅋㅋㅋ 버려진 철로에 저런 게 숨어 있었다고?
-이거 완전 처음 알려진 정보 아님? 저 정도 위력이면 안 알려질 수가 없는데.
-처음 알려진 정보 맞음. 내가 해외 사이트도 ㅈㄴ 눈팅하는데. 거기도 난리임.
국아를 시청 중인 전국의 시청자들.
이들 모두가 갑작스러운 방어 시스템의 등장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가장 의문인 것은.
-근데 왜 김시문은 공격을 안 받는 거임?
-방어 대상이라잖아. 뭐 들었음?
-그니까 왜 김시문만 방어 대상이냐고.
방어 시스템의 공격을 받지 않는 시문이었다.
무자비한 기계들의 공세 속에서도 초연하게 서 있는 시문.
그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었으니까.
-예전에 김시문 방송에서 드워프 관련 특수 아레나 진행한 적이 있는데, 아마 그거 때문인 듯?
-맞다! 드워프 여자애 나왔을 때!
-ㅇㅇ 그때 막 뭐 기계 같은 거 고치지 않았나? 그거 때문인가?
-지들만 아는 거 싸 재끼네. 김시문 방송 보는 게 벼슬인가 ㅋㅋ
-위에 새낀 열등감 백퍼네. 검거했다 X신아.
-인간 시대에 끝이 도래했…… 으윽! 머리가!
쉴 새 없이.
정말 눈 한번 깜짝하면 휙휙 올라가는 채팅창들.
그리고 그런 국아를 지켜보던 각진 턱의 중년인은.
“이거 정말…… 볼 때마다 예상을 뛰어넘는군.”
턱을 따라 구레나룻까지 멋들어지게 이어진 수염을 슥 쓸었다.
그에 곁에 있던 중년의 흑인, 콜린이 화면에 시선이 고정된 데릭을 연신 힐끔거렸다.
그 눈엔 세계 2강의 길드인 아메리칸드림의 부길마에겐 어울리지 않는 감정.
불안감이 가득했다.
그도 그럴 것이.
“버려진 철로에 저런 히든 피스가 잠들어 있었을 줄이야.”
송출되는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사내.
데릭은 현 아메리칸드림을 이끄는 수장이었으니까.
그의 시선이 화면의 한편, 쉴 새 없이 올라가는 채팅창을 향한다.
일반인이라면 일시 정지의 도움이 없고서야, 쉽게 확인하지도 못할 속도였지만.
“호오. 특수 아레나에서 그런 일이? 과연. 특수 아레나라면 이해가 가지.”
랭커라는 초인적인 육체 능력은 그런 채팅창을 손쉽게 읽어냈다.
“하하! 그렇군! 폐광 맵을 지워버렸던 당사자도 김시문이었어!”
데릭의 말이 이어질수록.
그리고 김시문을 향한 데릭의 흥미가 더해질수록.
“…….”
부길마 콜린은 식은땀이 절로 흘렀다.
어쩔 수 없었다.
‘김시문측에선 아직 어떤 연락도 없는데…….’
지난날 한낱 아시안이라 무시했던 건 차치하더라도.
개인 방송의 후원부터 심드라실 길드에 개인적인 연락까지.
김시문을 향한 러브콜은 지속되었으나, 아직까지 그 어떠한 성과도 없었던 탓이었다.
‘빌어먹을!’
콜린은 두툼한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데릭이 저렇게 많은 관심을 보일 줄은 상상도 못 했는데!’
김시문이 뛰어나다는 것은 콜린도 인정하고 있었다.
앤드류로 인해 뒤늦게 그의 가치를 깨닫고 보고서를 자세히 살펴본 결과.
전 세계를 통틀어서 저만한 퍼포먼스를 보여 주는 유망주는 단 한 명도 없었으니까.
그뿐이던가?
‘유독 저 김시문이란 플레이어에게서 히든 피스가 자주 발견된다.’
히든 피스.
그 이름에 걸맞게 1년에 한두 번 발견될까 말까 할 정도로 희소성이 높은 요소.
김시문은 그것을 반년도 채 되지 않은 시기 동안, 연속해서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당장 이것만 해도 플레이어로서의 능력을 고평가할 수 있는데.
‘거기다 아까 성좌의 힘을 얻은 레오니 볼프를 숙면에 빠지게 한 그 능력을 보면…….’
성좌의 힘을 받았던 레오니 볼프.
그녀의 휘황찬란한 기세는 화면으로만 시청하던 콜린에게도 범상치 않음을 알려주었다.
아마 옆에 있는 데릭을 포함해, 경기를 시청 중이던 모든 플레이어가 느꼈을 테지.
한데 김시문은 그런 레오니 볼프를 손도 대지 않고 재워버렸다.
이것의 의미하는 바가 무엇이겠는가?
‘김시문도 성좌의 후원을 받는 것이 분명해.’
레오니 볼프와 마찬가지로 김시문 역시 어떤 성좌의 후원을 받고 있다는 말이 된다.
그러면 저 괴물 같은 성장세와 무력도 아주 자연스럽게 납득이 간다.
설령.
‘만약 김시문이 성좌의 후원을 받지 않는다면…….’
김시문이 성좌의 후원을 받지 않더라도 달라지는 것은 없다.
아니, 오히려 더 대단해지겠지.
‘만약 성좌의 도움도 없이 레오니 볼프를 저 꼴로 만든 거라면…… 모든 걸 다 걸어서라도 반드시 영입해야 해!’
성좌의 도움 없이.
성좌의 힘을 지닌 플레이어를 스스로의 힘만으로 눌려버렸다는 뜻이니까.
그런 콜린과 같은 생각인 것일까?
“음…… 콜린. 네 눈빛을 보니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거 같은데.”
데릭은 만족스럽게 수염을 쓸며 말했다.
“아무래도 김시문에 대한 스카웃 방식을 전면 수정해야겠어.”
“물론이야. 영입부의 부장을 한국으로 보내겠어. 그는 영입에 관련해선 나보다 더 높은 권한을 가지고 있으니까.”
“그것도 좋겠지. 하지만 그걸로는 부족할 거다.”
데릭은 영화 속의 한 장면처럼.
“김시문은 최소 성좌, 혹은 그에 준하는 무언가를 지닌 유망주다. 당연히 차기 랭커는 확정이겠지.”
수많은 포화 속을 한가로이 거니는 시문을 바라봤다.
“아마 우리 말고도 많은 나라가 김시문을 노릴 거다. 한국에 길드 지부를 설치해서 지속적인 영입 작업도 고려해보도록.”
“알았어.”
“그리고 필요하다면…….”
잠시 말을 멈추는 데릭.
[아아! 막스 선수! 은폐의 장막까지 쓰며 최후의 저항을 해 봅니다만, 의미가 없습니다!]
[무슨 적외선 감지라도 있는 걸까요? 은폐의 장막에도 정확히 목표를 노리는 방어 시스템!!]
[그에 반해 김시문 선수. 어디 산책이라도 나온 듯, 유유자적한 모습입니다!]
[아아! 기어코 힐러진이 전멸했습니다! 이러면 더 이상 버틸 수가 없겠는데요!]
그는 탄식에 탄식을 거듭하는 채널 국아를 가만히 바라봤다.
송출된 화면은 힐러진의 전멸로 빠르게 무너지는 독일팀들이 비추고 있었다.
“내가 직접 한국을 갈 생각도 있으니, 영입부 부장에게 언질을 넣어둬.”
“뭐? 네가 직접 간다고?!”
두 눈이 휘둥그레지는 콜린.
그도 그럴 것이.
“저…… 데릭? 그건 너무 유난 아닐까? 넌 한 번도 영입 관련으로 움직인 적이 없잖아. 차라리…….”
쥐도 새도 모르게 제거했으면 제거했지.
가까스로 그 뒷말을 삼키는 콜린.
“차라리?”
그에 데릭이 멋들어진 미소로 되물었고.
“아, 아레나! 그래! 아레나 한 판을 더 뛰겠지 싶어서!”
간신히 말을 이어내는 콜린.
그의 대답이 만족스러운 걸까?
“하긴, 내가 자는 시간 빼곤 전부 아레나에 할애하긴 하지. 덕분에 고생 많은 거 알고 있어. 브로.”
데릭은 한결 짙어진 미소로 콜린의 어깨를 툭 쳤고.
“무, 무슨 소리야! 세계 최고의 길드를 이끄는 사나인데 당연히 성장에 몰두해야지!”
콜린은 서늘했던 가슴을 속으로 쓸어내리며, 힘껏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그에 한 번 더 그의 어깨를 두드려준 데릭의 시선이 화면을 향한다.
“X발! 이게 게임이냐고오오오!!”
마지막 남은 독일팀의 선수.
암살계 플레이어인 막스의 절규를 끝으로.
[이렇게 플래티넘부 특별전이 끝납니다!]
[승자는 우리 대한민국! 이걸로 본선에 진출할 시드권까지 확보합니다!!]
플래티넘부 한국 대 독일전은 막을 내렸다.
* * *
“아닙니다. 지금 최대한 수습을…….”
폰을 귀에 대고 있는 다소 마르고 흔한 인상의 중년인.
“예, 기사는 지금 확인하고 있습니다.”
하나 그 사나운 눈매만큼이나 걸걸한 목소리의 남자는 환한 모니터를 바라봤다.
[시드권 확보! 본선 진출과 국가 버프 모두 잡다?! 특별전의 기적!]
[나라를 구한 8인의 용사들, 그리고 기적의 주역인 김시문!]
[김시문 ‘모두가 함께 이루어 낸 성과’ 겸손]
[충격에 빠진 독일, 플래티넘부 1위인 레오니 볼프 ‘이번 경기는 무효다! 인정할 수 없어’]
[재평가되는 협회장의 안목과 대처! 골렘 최창욱 ‘승리에 필요한 조치였을 뿐’]
[플래티넘부의 약세 원인은 적폐 길드들 때문? 주목되는 전 플래티넘부 국대 자격 박탈 명단.]
뚜렷한 인상의 미청년.
김시문의 사진들을 담은 기사들이 모니터 안을 빼곡하게 채우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면목 없습니다.”
귓가에 폰을 대고 있는 중년인의 얼굴이 절로 구겨진다.
그의 얼굴은 분노와 당혹, 그리고 약간의 공포로 점철되어있었다.
이내.
“예, 물론입니다. 반드시 수습하겠습니다. 믿어 주십쇼. 형님.”
그는 몇 번이나 저 자세를 취하고 나서야 연락을 끊을 수 있었고.
“망할!”
연락이 끊어지자마자, 곧장 모니터로 폰을 집어던졌다.
쾅!
모니터 화면을 뻥 뚫다 못해, 뒤편의 벽까지 파고드는 폰.
그 충격에 테이블에 놓여 있던 명패 [전갈 길드 부 길드 마스터 김종준]이라는 명패가 위태롭게 흔들거렸다.
“후우…….”
분노를 가라앉히려는 듯.
몇 번이나 주먹을 쥐었다가 편 김종준은 품속에서 담배 한 대를 꺼냈고.
칙.
멀찍이서 눈치를 보던 덩치 하나가 얼른 다가와 불을 붙여주었다.
그것을 두어 번, 깊게 들이마시다 내쉰 김종준은 허연 연기를 뿜어내며 말했다.
“두식아.”
“예, 형님.”
“언론은?”
방금 쏟아지던 인터넷 기사들을 보았음에도.
김종준은 구태여 김두식에게 되물었다.
그 이유를 모르지 않았기에.
“그…… 시드권을 따내서인지, 당장은 김시문과 플래티넘부의 활약에 대해서 떠들고 있습니다만은…….”
김두식은 덩치에 맞지 않게 무척이나 조심스럽게 답했다.
“조금씩 경기 전에 자격을 박탈당한 선수들에 대해서도 거론하고 있습니다.”
그리곤 곧장 우람한 덩치를 움츠리는 김두식.
굉장히 우스꽝스러운 모습이었지만.
그의 대처는 현명했다.
“X발!!”
거친 욕설과 함께 터져 나오는 기파.
분노한 랭커의 기세답게.
쨍그랑!
유리병과 같은 각종 소품이 거친 바람을 맞은 것처럼 바닥을 굴렀다.
“김무열 이 개자식이! 뒤통수를 치는 것도 모자라서, 상황을 이 지경으로 만들어?!”
랭커급 살기에 소름이 오소소 돋는 김두식.
그는 덜덜 떨리는 몸을 애써 가라앉히며 조심히 입을 열었다.
“조, 조사를 해 보니, 국대 자격이 박탈된 선수를 언급하는 언론은 전부 협회장측의 언론이었습니다.”
“당연히 그렇겠지! 그 이기적이고 철저한 놈은 제 이익을 위해선 제 가족에게도 칼을 들이대는 놈이니까!”
어느새 다 타버린 담배를 재떨이에 처박는 김종준.
“아마 제멋대로 23인의 국대를 쳐낸 일을 덮으려, 이쪽으로 관심을 트는 거겠지. 우리에게 감히 대가리 치켜들지 말라고 경고도 날릴 겸 말이야.”
아주 지독할 정도로 영악한 새끼야.
그렇게 읊조린 김종준은 손가락으로 재떨이를 툭툭 두드렸다.
“김두식.”
“예.”
“김무열이가 쳐낸 길드가 총 몇이지?”
“모두 11곳입니다.”
“11곳이라…… 전부 1세대의 노인네들이 있는 길드겠지?”
“예.”
김종준의 입꼬리가 씩 올라간다.
“전부 전화 돌려.”
“전부…… 말입니까?”
“그래. 어차피 이대로 있다간 김무열한테 맞기만 할 상황 아닌가?”
김종준의 시선이 박살 난 유리창 밖을 향한다.
그곳엔.
“협회장을 달고부터 날뛰어도 너무 날뛰어. 한 번쯤 같은 세대로서 밟아줄 필요도 있겠지.”
대한민국 각성자 협회의 건물이 우뚝 솟아있었다.
“거기다 김시문. 그 망할 놈에게 그간 당한 것들이 너무 많아.”
그 말에 김두식의 두꺼운 목이 까딱인다.
“하긴, 놈에게 저희 쪽 유망주들이 많이 당했죠.”
“이번 기회에 둘 다 처리한다. 길드들 연락 다 돌리면 우리 쪽 언론들 다 집합시켜.”
“예. 형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