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3화
133화. 독일전 (1)
어둑한 통로.
물론 어떤 기술에 의해서인지는 모를 불빛들이 통로 안을 밝혀주긴 했으나.
전체적으로 어둑하다고 말할 수 있는 통로의 한 곳은 유난히도 밝았다.
한 가지 신기한 것은.
어둑한 통로를 밝히는 것은 환한 빛이 아닌, 시커먼 흑빛이라는 거였다.
그리고 그 흑빛의 중심.
“어둠을 주시옵고…… 당신의 독니로…… 족쇄를…….”
짙은 다크서클을 지닌 금발의 마른 남성은 연신 무언가를 중얼거렸다.
기도도.
그렇다고 주문도 아닌 것을 쉴 새 없이 읊어대는 남성.
그를 따라 스멀거리는 어둠은 어둑한 통로와 어우러져, 무척이나 섬뜩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마기 특유의 느낌 때문인지.
“으으…… 소름 끼쳐!”
“흑마법이 대부분 저런 느낌이긴 하지만, 어째 볼 때마다 기분이 나쁜지 원.”
“너희들은 성력 보유자잖아. 당연히 매번 기분이 나쁘겠지.”
“야, 나는 암살계인데도 보기 불편해.”
주변에 있던 독일의 선수들은 대부분 인상을 찌푸리며 거리를 물렸다.
파우스트 곁에 남은 이들은 서너 명 정도.
그중 가장 선두에 선 갑옷의 여성은 날렵하게 빠진 눈썹 한쪽을 삐쭉 들었다.
“음. 생각보다 쓸 만하군.”
독일 플래티넘부 1위인 레오니 볼프.
그녀는 이채 어린 눈으로 파우스트를 바라봤다.
‘고작 저주 하나를 내리는 데 성좌까지 개입시키다니. 과연 혈통은 혈통이다 이건가?’
파우스트 발텐베르크.
현대까지 그 명망을 이어온 독일의 몇 안 되는 명가인 발텐베르크의 막내아들.
독일 최강 길드인 발텐베르크의 길드 마스터인 제 형처럼.
파우스트 역시도 단순한 저주 하나로도, 발텐베르크라는 이름의 저력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머저리긴 해도 확실히 마법적 능력은 뛰어나. 하긴, 어릴 적부터 이런 방면으론 제법 싹수가 있었지.’
독일에서도 아는 이들은 잘 알겠지만.
레오니는 어릴 적부터 파우스트와의 접점이 있었다,
정확히는 그녀의 가문인 볼프와 발텐베르크가 오랜 우애를 나누던 관계라고 해야겠지.
스아아아.
점점 짙어지는 파우스트의 마기에 그녀의 고운 미간이 슬쩍 찌푸려졌다.
‘뭐라더라? 귀신이 보인다고 했었던가?’
귀신이나 유령, 혹은 그 언저리의 무언가.
파우스트는 어릴 때부터 무언가가 보인다는 헛소리를 자주 지껄였었다.
덕분에 갤럭시 아레나가 등장하기 전까진.
악마의 아이라는 오명으로 온갖 정신병 치료와 민간요법에 치여 살았었지.
‘좀 안타깝긴 해. 그래도 어릴 땐 참 좋은 놈이었는데 말이지.’
어쩌면 그때의 일들이 지금의 저 사이코를 만들었는지도 모르겠다.
파우스트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작게 한숨을 쉰 그녀는.
“후우…….”
깊은숨을 몰아쉬며 몸을 일으키는 파우스트를 바라봤다.
“어때? 파우스트, 성공했나?”
“당연한 걸 묻는군.”
레오니의 물음에 파우스트는 특유의 음침한 미소를 지었다.
“1시간 동안 맵 전체의 마기가 완벽하게 통제된다. 놈은 물론이고 그 잘난 마수들도 전부 역소환되었을 거야.”
플래티넘 데뷔전 때 당했던 것을 떠올리는 것일까.
“그뿐인가? 놈의 무공은 마기가 기반인 마공이지. 마기의 운용 자체가 막혀버렸으니, 놈은 무공도 쓰지 못할 거다.”
그 잘난 근접전도 펼치지 못한다는 말이지!
파우스트는 무척이나 통쾌한 얼굴로 답했다.
그에 레오니는 시큰둥하니 답했다.
“흐음. 그 말은 네놈도 마기를 사용하지 못한다는 말로 들리는데?”
“그, 그건!”
허를 찔린 것일까?
파우스트의 얼굴은 순식간에 당혹감으로 물들었다.
“애, 애당초 난 김시문의 능력을 저격하기 위해 합류한 거야!”
“그렇다기엔 김시문에겐 아직 그 뇌창과 화검을 비롯한 마법들이 남아 있잖아?”
“그것도 문제 없다.”
파우스트는 인벤토리에서 잔뜩 말라비틀어진 목재 말뚝을 꺼내 흔들었다.
“놈의 주 스탯이 마기 하나가 아니라는 건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니까.”
“그 아티팩트의 지속시간은?”
“똑같이 1시간이지. 그러니 레오니, 네년은 네가 맡은 소임만 다하면 돼.”
“흥. 건방 떨기는.”
당장이라도 한 대 칠 듯 노려봤으나 그뿐.
파우스트의 답이 마음에 드는지, 레오니는 입꼬리를 슬쩍 올리며 몸을 돌렸다.
마침.
“레오니!”
가죽 갑옷을 입은 암살계가 허공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막스. 어떻게 됐지?”
“파우스트의 말대로야.”
막스라 불린 암살계의 남성은 잠시 숨을 고르곤 파우스트를 힐끔했다.
“한국 쪽에서 광물 수레를 밀고 있긴 한데. 주변에 마수는 1도 보이지 않았어.”
“그래?”
혀로 볼을 쭉 밀며 파우스트를 돌아보는 레오니.
“크핫! 내가 말했잖아! 넌 네 일만 잘하면 된다니까!”
“그런 거 같군. 인정해주마. 파우스트. 오랜만에 쓸모가 있었어.”
“뭐, 뭐야?! 오랜만? 레오니, 너 말 다 했어?!”
그녀의 비웃음에 펄펄 뛰는 파우스트.
그러나 레오니는 그런 파우스트를 무시한 채.
“다들 돌진 대형으로. 놈들을 단박에 쓸어버린다.”
팀의 진형을 정비하곤 걸음을 옮겼다.
“아 참.”
그러다 잠시 멈칫하는 레오니.
“막스?”
“응?”
“너 앞으로 은신을 더 갈고 닦아야겠어.”
“뭐? 갑자기 그게 무슨…….”
막스의 뭐라 말을 끝맺기도 전에.
스릉.
순식간에 발검하는 레오니.
그녀는 양손으로나 휘두를 법한 대검을 한 손으로 휘둘렀다.
“히, 히익!”
갑작스런 레오니의 검격에 화들짝 놀라는 막스.
그러나 그녀의 검격은 막스가 아닌, 그의 뒤를 향해 휘둘러졌고.
콰광.
대검에서 뻗어나간 푸른 검기가 벽에 거칠게 처박혔다.
검기 발출.
다이아를 앞둔 플레이어나 할 수 있다는 그것을 당연한 듯 해내는 레오니.
그러나 그런 그녀의 무력에 놀라는 이들은 없었다.
이미 그녀의 무력을 잘 알고 있어서가 아니었다.
털썩.
반으로 쪼개지는 무언가.
그것이 바닥으로 쓰러지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선수들은 레오니가 베어 낸 존재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
“사, 사람?”
“나 알아! 저 사람, 한국 측 플레이어야.”
“막스처럼 정찰을 온 모양인데……?”
얼빠진 선수들의 시선이 자연스레 막스를 향하다가, 다시 레오니를 향했고.
“왜 날 봐? 같은 암살계에게 미행당한 막스가 무능한 건데.”
레오니는 어깨를 으쓱하며, 막스의 가슴에 대못을 쑤셔 박았다.
* * *
“시문 씨. 정말 괜찮습니까?”
힘 있는 중저음이 걱정을 담아 물어온다.
시문은 여유로운 미소로 답했다.
“예, 전 괜찮으니 신경 쓰지 마세요.”
“알겠습니다. 조금 있으면 정찰 나간 녀석도 돌아올 겁니다. 그때 다시 이야기하죠.”
“그래요.”
이상민이 물러가자, 시문은 자신의 가슴을 내려다봤다.
‘기분이 썩 좋지는 않네.’
맛이 간 라디오처럼.
혹은 사슬에 꽁꽁 묶여버린 느낌.
시문은 이러한 느낌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다.
‘마기 봉인이라니, 설마 이런 수를 써 올지는 몰랐어.’
마수들을 소환한 직후.
시문은 각혈과 함께 마기의 움직임이 완전히 동결되는 것을 느꼈다.
거기다.
‘파라켈수스의 실린더로 불러낸 마수까지 역소환한다라…….’
자신이 마수를 소환하는 방식은 레메게톤의 지식으로 얻은 마수 소환진을 만드는 연성진을 구성하고.
그것을 파라켈수스의 실린더에 저장, 발현하는 방식이다.
해서 마법사들의 메모라이즈처럼.
사전에 미리 실린더에 저장해두어야 한다는 단점이 있으나.
반대로 실린더에 의한 독자적인 소환인 만큼, 소환사와 소환물 사이의 단점은 지니지 않는다.
한데 그런 마수들이 모조리 역소환 당했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하나.
‘나만을 노린 단일 형태의 저주가 아니라, 광범위의 저주라는 거겠지.’
시문은 주먹을 쥐었다 폈다.
단순한 동작이었지만, 천마신공의 구결을 운용한 상태였고.
역시나 마기는 조금도 움직이질 않았다.
시작 지점부터 여기까지는 꽤나 이동한 상태니까.
‘유효 범위는 최소 맵의 절반, 최대론 맵 전체라고 봐야겠어.’
당장은 맵 전체로 보는 것이 타당한 판단일 터다.
‘뭐, 그렇다고 딱히 신경 쓸 만한 페널티는 아니지만.’
아쉽긴 하나 딱 거기까지.
어차피 다른 힘도 많았기에, 시문은 별다른 생각 없이 걸음을 옮겼다.
그때.
[성좌 바알이 ‘으음…….’ 불편한 기색으로 미간을 찌푸립니다.]
성좌 바알의 반응이 눈앞으로 떠올랐다.
이어.
[성좌 바알이 ‘으음…….’ 서열 17위 보티스를 보며 눈을 흘깁니다.]
[성좌 검은 염소가 ‘그렇게 흘겨서야 되겠어? 대갈통을 아주 깨 놔야지.’ 이죽거립니다.]
[성좌 천마가 ‘허허, 그거 아주 마음에 드는구려. 어떻소. 바알공? 힘들다면 본좌가 손을 빌려줄 수도 있다오.’ 잔혹하게 웃습니다.]
줄줄이 올라오는 성좌들의 반응.
그에.
‘그렇군. 이 마기 봉인은 마계의 성좌 보티스가 관여한 건가.’
시문은 대충 돌아가는 상황을 눈치챌 수 있었다.
‘어쩐지, 모조품도 아니고. 진짜 레메게톤을 지닌 내가 왜 마기 봉인에 걸리나 했지.’
상급 마족조차 태초의 마기를 운운하며 자신에게 미련 없이 무릎을 꿇는다.
당연했다.
마계의 서열 1위인 바알의 영향을 받고 있지 않은가?
덕분에 마기를 기반으로 한 천마신공의 위력도 상당히 올라간 상태였다.
이전처럼 세심하게 컨트롤하기 벅찰 정도로 말이다.
그런 자신의 마기를 봉인하려면, 최소 성좌급 권능이 관여해야 이치가 맞았다.
[성좌 바알이 ‘으음.’ 계약은 계약이라는 듯 고개를 젓습니다.]
[성좌 검은 염소가 ‘그놈의 계약은 지X! 그러니까 망할 도마뱀들에게 놀아나지.’ 냉소적인 웃음을 흘립니다.]
[성좌 바알이 ‘으음…….’ 검은 염소를 지그시 노려봅니다.]
[성좌 검은 염소가 ‘어쭈? 야려? 그래. 너희 마족새끼들은 빼는 법이 없지. 십만 년 만에 한 판 해봐?’ 살기를 흘립니다.]
성좌들의 메시지를 보던 시문이 고개를 살짝 갸웃했다.
‘어째 분위기가 싸한데?’
고작 텍스트지만.
시문은 그 속에 묻어나는 살벌함을 빠르게 캐치했다.
‘이거 잘하면 싸움 각이다.’
성좌들의 싸움.
그것도 상위 서열 성좌들의 싸움이라니?
가슴이 웅장해지기 이전에.
‘자칫하다간 내 왕들의 픽 스탯이 날아갈 수도 있어.’
상위 서열 성좌들의 관심이 날아갈 수도 있는 상황.
“바알님. 너무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마기가 없어도 충분히 할 만해요.”
시문은 허공을 보며 작게 읊조렸고.
그걸 다른 의미로 받아들였는지.
[성좌 바알이 ‘으음!’ 당신의 패기를 무척이나 마음에 들어합니다.]
[성좌 바알이 미션을 겁니다.]
성좌 바알이 갑작스레 미션을 걸어왔다.
시문은 즉시 미션을 확인했다.
[미션]
-성좌 바알은 패기 있는 당신을 무척이나 달가워합니다.
이번 특별전에서 ‘마기의 사용 없이’ 우승하십시오.
보상 : 업적 포인트 5,000
‘이게 웬 꿀이냐?’
갑작스러운 미션으로 업적 포인트를 5,000이나 주다니?
‘안 그래도 업적 포인트를 조금만 더 모으면 5만 점인데!’
현재 업적 포인트는 총 49,500점.
저번 특별전도 그랬지만, 곧 5만 점이 눈앞이라 최대한 신화급 무구 연성은 자제하고 있는 시문이었다.
일전의 깨달음으로 옵시디언 타블렛의 완성도가 45%가 된 상태.
따라서 5만 점만 있으면 검은 염소의 퀘스트를 클리어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어차피 마기 없어도 이기는 경긴데. 이거 여차하면 신화급 무구를 사용해도 되겠어.’
졸지에 이득을 본 시문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그때.
“음?”
미세하지만 서늘한 기운이 시문의 감각을 건드린다.
시문은 지체 없이 손가락을 튕겼다.
따악.
드드드득.
맑고 경쾌한 소리와 함께 치솟는 땅.
그것은 순식간에 반구의 형태로 연성되어, 운송 목표인 광물 수레를 포함한 한국팀 선수들을 휘감았고.
콰가가가각!!
곧장 거친 마찰음이 찾아와, 반구의 흙벽을 사방에서 갉아대었다.
마찰음이 사라지자.
후드득.
부드럽게 무너져내리는 흙벽.
그리고 그 너머로.
“흐음. 확실히 대단하긴 대단하군.”
제법 먼 거리에서 대검을 어깨에 척 걸친 갑옷의 여성과 사방을 포위한 이들이 보였다.
누군지는 물을 필요도 없었다.
“레, 레오니 볼프.”
“어느 틈에!”
독일 플래티넘부의 1위인 레오니 볼프.
그녀는 경악하는 한국팀 선수들을 무시하고. 오로지 한 남자만을 바라봤다.
“마기를 봉인했는데도, 은폐의 장막을 두른 기습을 이렇게 쉽게 알아차리다니. 과연 보통이 아니야.”
‘은폐의 장막? 그래서 포위할 때까지 몰랐구나.’
그녀의 말에 시문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S급 특성인 은폐의 장막.
일정 범위 내의 모든 대상을 은신시킬 수 있는 특성으로 이런 단체전에서 큰 힘을 발휘하는 특성이었다.
거기다 용의주도하게 멀리서 포위망 정도만 펼쳤으니, 오딘의 눈을 활성화하지 않는 이상 눈치채긴 어려웠다.
“마음 같아선 너와 1대1로 진하게 즐겨보고 싶지만…… 그건 멍청한 선택이겠지.”
살기를 담은 그윽한 눈으로 시문을 바라보는 레오니.
이어.
“그런 생각을 하는 것부터가 멍청한 거다. 레오니.”
그녀의 뒤에서 비아냥거리는 목소리와 함께 짙은 다크서클의 마른 남성이 나타났다.
“저건…….”
“파, 파우스트?!”
“이번에 합류한 멤버가 쟤야?”
파우스트의 정체를 확인한 한국팀이 소스라치게 놀란다.
하나 이미 린에게 그의 합류를 들은 시문은 덤덤하게 앞으로 손을 내밀었다.
‘마기가 없긴 해도, 연금술과 골렘이면 이 정도는…….’
그리고 손가락을 튕기려던 순간.
“나 스스로를 바치노라!”
어느 연극의 비정한 주인공처럼.
콰직!
하늘을 향해 애처롭게 외친 파우스트는 어느새 꺼내든 삐쩍 마른 목재 말뚝을 제 가슴에 박았다.
동시에.
“어?”
휘청.
손가락을 튕기려던 시문의 몸이 흔들린다.
이유는 다름이 아니었다.
‘여, 연성력이 안 움직여?’
지난 골드 데뷔전.
유아연, 유아준 남매의 아티팩트에 당했을 때처럼, 연성력이 멈춰버린 것이다.
그 반증으로.
-아니……! 또…… 이 X발……!
현자의 돌의 목소리가 뚝뚝 끊어졌다.
시문은 순식간에 상황을 파악했다.
‘자기 목숨을 대가로 내 주 스탯을 봉인한 거군.’
아마 가슴에 박은 저 말뚝은 최소 SS급의 아티팩트겠지.
그리고.
“쏴라!!”
독일팀의 1위는 레오니 볼프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피피핑.
화르륵.
사방에서 독일팀의 화살과 마법들이 날아든다.
“마, 막아라!”
“몸을 던져서라도 시문 씨와 수레를 지켜!”
목이 터져라 외치는 이상민의 오더에 따라, 분주하게 방어를 펼치는 한국팀.
한국팀 3위라는 실력은 어디 가질 않는 것일까?
부우우웅.
이상민은 양손에 쥔 톤파를 프로펠러처럼 돌리며 원거리 공격들을 막아 냈다.
하지만 안 그래도 수적 열세인데, 원거리 공격을 모두 쳐내기란 무리.
“아악!”
“승규야! 제길!”
결국 한국팀의 방어는 점차 틈이 벌어지기 시작했고.
타앗.
어느새 그 빈틈을 파고든 레오니는 단숨에 시문을 향해 도약해왔다.
“다음엔 개인 아레나에서 제대로 겨뤄보자고.”
일도양단을 노리듯.
제 키만 한 대검을 양손으로 쥐고 머리 위로 쭉 들어 올린 레오니.
이윽고 그녀의 대검이 아래로 내려 찍히는 순간.
우드득.
대검이 닿지도 않았는데, 뼈가 뒤틀리는 소리가 들린다.
‘갑자기 무슨…….’
하나 레오니는 이게 무슨 소리인지 알아차릴 수 없었다.
정확히는 알아차릴 틈도 없다고 해야겠지.
오싹.
흉부를 스치는 섬뜩한 감각.
그에 본능적으로 몸을 꺾기 바빴으니까.
그녀의 대처는 훌륭했다.
콰득!
섬뜩한 파육음.
동시에 왼쪽 어깨에서 악랄한 통증이 파고들었으니까.
“아아악!”
비명을 내지르는 레오니.
바닥을 쓸며 미끄러지던 그녀는.
푸우욱.
온전한 오른손으로 대검을 바닥에 꽂고는 겨우 중심을 잡았다.
“허억! 허억!”
왼쪽 어깨부터 상체로 어마어마한 통증이 스며든다.
심호흡으로 그 통증을 달랜 레오니는 겨우 고개를 들 수 있었고, 볼 수 있었다.
10센치는 더 커진 듯한 키.
늘씬하던 체구에서 한결 더 탄탄하고 날렵해진 남자, 시문을 말이다.
“아쉽네.”
얼굴 외곽 쪽으로 드문드문 자리한 금색 비늘.
“심장을 노린 건데.”
그 안쪽으로 아쉬움을 물씬 풍긴 남자는 그녀의 것이었던 팔을 툭 던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