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2화
132화. 변수? (2)
“농담은 아니겠죠?”
가라앉은 시문의 물음에도
“듣고 싶죠? 그럼 앉아요.”
린은 평소의 그 야릇한 미소를 지을 따름이었다.
“…….”
10여 초가 지났을까?
“후우.”
그런 그녀를 가만히 바라보던 시문은 짧은 한숨을 쉬곤 자리에 앉았다.
전생이라면 이 여우 같은 여자의 말은 애당초 믿지도 않았겠지만.
‘현재 나와의 관계를 생각해보면. 린이 굳이 이런 일로 내게 거짓말할 이유는 없어.’
이미 자신에 대해선 속속들이 조사했을 여자다.
10년 전 그 사건이 자신에게 마력불능이라는 끔찍한 재앙을 남겼다는 것은 잘 알고 있을 터.
고로 자신에게 얼마나 민감한 일인지도 잘 알 테니, 괜히 관심을 끌기 위해 이런 이야기는 꺼내지 않을 터였다.
‘그럼 진짜라는 말인데…….’
마력불능.
자신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버린 재앙을 안겨준 사건이기 때문일까.
시문은 오랜만에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꼈다.
그런 시문을 유심히 보던 린의 눈과 입가가 한층 더 깊어진다.
“달뜬 모습이 상당히 보기 좋네요. 이보다 더 흥분에 물든 얼굴도 보고 싶어져요,”
“……그냥 일어날까요?”
“호호! 농담이에요. 농담.”
대번에 정색하는 시문에 눈을 찡긋하는 린.
하나 평소와 다른 상황이기에.
시문은 다시 한번 짧은 한숨을 내뱉을 뿐, 자리에서 일어나지는 않았다.
린은 그런 시문을 좀 더 감상하다가, 그의 인내심이 바닥나기 딱 직전에 말했다.
“아시겠지만, 전 시문 님의 뒷조사를 지속하고 있어요.”
“당당하게 밝힐 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만.”
“뭐 어때요? 우리 사이에.”
“우리 사이가 대체! 후우…… 그래서요.”
눈을 지그시 감으며 참을 인자를 되새기는 시문.
모처럼 제 페이스를 찾아서일까?
린의 유려한 두 눈엔 즐거움이 가시질 않았다.
“그 전에 묻고 싶어요. 시문 님, 당신은 10년 전 그 사건에 대해 얼마나 알고 계신가요?”
그 말에 잠시 턱을 괴는 시문.
이내.
“상류층을 목표로 한 각성자들의 테러 사건이자, 아레나산 독과 아이템 등을 아낌없이 사용해서 데스페라도의 악명을 한층 더 살려준 사건.”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답했고.
“역시 그렇죠? 데스페라도. 그 종잡을 수 없는 또라이들은 조건만 맞춰주면 뭐든지 하니까요. 정말…… 뭐든지.”
마지막에 묘한 어조로 읊조리는 린.
하나 시문은 알 수 있었다.
‘살기?’
그녀의 묘한 어조엔 희미하지만 확실한 증오와 살기가 어려 있다는 걸.
‘데스페라도와 뭔가 마찰이라도 있었나 보군.’
의외였다.
자신이 아는 구미호 린은 제 목적을 위해선 정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존재다.
어찌 보면 숙부 김무열과 비슷한 과라고 볼 수 있지.
고로 데스페라도 같은 빌런 조직과 선을 대었다 해도 이상하지 않을 인물인데.
오히려 그들과 척을 지고 있다니?
제법 궁금했으나, 시문은 굳이 캐묻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니까.’
그녀가 데스페라도와 어떤 악연이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시문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일이었다.
린과의 관계는 어디까지나 비즈니스였으니까.
‘물론 그리 엮이고 싶은 스타일도 아니고.’
그때.
“어머나~. 묘하게 불쾌한 눈이네요?”
비음이 가득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린이 심사가 꼬이거나 목적이 있을수록, 색기를 더욱 드러내는 성격임을 모르지 않았기에.
“착각입니다. 그나저나, 10년 전 사건은 왜 꺼내는 겁니까?”
시문은 얼른 화제를 돌렸다.
“흐응~.”
그걸 모를 리가 없는 린이었지만.
그녀는 길게 콧소리를 내며 한쪽 눈썹을 들어 올릴 뿐.
더는 캐묻지 않고 답했다.
“솔직히 말해서 시문 님의 치료제, 어떻게 만들어 냈는지 엄청 궁금했거든요. 저희 쪽에 유통되는 물량만으로도 수익이…… 정말 말도 안 되니까요.”
그녀의 말에 시문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암시장의 주인인 이상, 궁금할 수밖에 없지.’
돈이면 뭐든 다 되는 것이 암시장 아니던가?
그 슬로건답게.
고가임에도 매번 완판되는 아레나 질병 치료제는 욕심이 날만 했다.
당연히 자신과의 거래 외에도, 독자적인 생산 라인을 가지고 싶겠지.
“충분히 이해합니다. 그래서요?”
“그렇게 과거의 행적들을 밟아가다 보니, 10년 전 사건에 도달했죠. 그리고 참 재밌는 걸 알아냈답니다?”
진심으로 재밌는 것인지.
린의 하얀 이까지 드러내며 웃었다.
화보와 같은 그 모습은 미인에 익숙한 시문도 잠시 두근거릴 정도로 아름다웠지만.
“그 사건은…… 정신 나간 빌런들의 단순한 테러가 아니었다는 걸.”
그녀의 입에서 나오는 내용은 그렇지 못했다.
* * *
[송 해설님. 드디어 이날이 왔습니다!]
[그렇습니다. 전 오늘만을 손꼽아 기다리느라, 한숨도 제대로 못 잤어요.]
한국 최대의 아레나 방송 채널인 국아.
그곳은 지금 뜨거운 열기가 가득했다.
당연했다.
[하하!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대한민국의 본선 진출이 달린 마지막 경기 아닙니까?]
예선전 탈락이 거의 확정된 한국.
그런 한국을 구원해 줄 마지막 기회, 플래티넘부 특별전의 마지막 경기가 바로 오늘이지 않은가?
[어디 우리만 그렇겠습니까? 많은 시청자분들 역시 마음을 졸이며, 오늘을 기다리셨을 거라 생각됩니다.]
[맞는 말씀입니다. 당장 시청자 여러분의 반응만 봐도 그렇죠?]
국가대항전.
또는 그에 준하는 아레나 경기들을 중계할 땐 항상 채팅창을 켜놓는 국아였다.
이는 비단 한국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의 아레나 방송국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대부분의 국제적 경기는 선수의 개인 방송을 켤 수 없었으니까.
-ㄹㅇ 나도 한숨도 못 잠.
-김시문 선수…… 덕분에…… 젊은 시절로 딱~ 돌아간. 느낌이었읍니다. 응원합니다!
-우리 팀이 이기길 바라긴 하지만…… 개인적으로 이번 경기는 무리일 거 같아요.
-22 상대가 독일이잖아요,
-경기 당일인데 채팅창 진짜 ㅋㅋ 그럼 팔레스타인전은 이길 줄 아셨나 봐요?
-매국노들 많네.
-그니까. 애당초 8인으로 30인 이길지 누가 알았겠음?
다매체로 시청이 가능하기 때문일까?
현 국아의 채팅창은 눈 깜빡할 틈도 없이 엄청난 양의 채팅이 우르르 쏟아져나왔다.
[와우! 어제보다 채팅창의 반응이 무척 뜨겁군요?]
[어제보다 몇 배는 많아 보이는데요. 아마 어제의 승리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해설 송재경의 말대로.
어제 치렀던 팔레스타인과의 특별전보다 몇 배는 많은 채팅양이었다.
[이해가 갑니다. 설마 팔레스타인전을 이길 거라곤, 저희도 예상 못 하지 않았습니까?]
[그렇죠. 아무리 김시문이라도 8인으로 30인은 무리다! 라는 게 당시의 여론이었으니까요.]
8인 대 30인.
국대들이 갑작스럽게 대거 퇴출된 이후, 특별전에 대한 국내의 여론은 무척이나 좋지 않았다.
해설 송재경은 그때를 떠올리기도 싫다는 듯, 몸을 슬쩍 떨었다.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팔레스타인 측이 활동 범위 제한 옵션을 추가했을 때가 말이죠.]
[아아! 그때의 충격은 잊을 수가 없었죠.]
MC인 최강엽 역시 탄식을 지르며 송재경의 말에 열렬히 고개를 끄덕였다.
단순한 방송용 리액션이 아닌, 진짜 리액션인 것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기적은 일어났고. 이번에도 그 기적을 기대해 볼 만하지 않습니까?]
[맞습니다. 아무리 독일이 강팀이라 해도, 어제 보여 준 김시문 선수의 활약을 떠올…… 오오! 양 팀의 감독들이 등장합니다!]
송재경의 멘트가 급격히 변화한다.
송출되는 화면에 두 명의 중년인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그들은 이전 팔레스타인전과 마찬가지로 공간 중앙에 있는 제단을 두고 마주 섰다.
이어.
[국가대항전 특별전의 지역과 종목을 선정합니다.]
홀로그램처럼 제단 위로 떠오르는 시스템창.
몇 초간의 기다림 이후.
[특별전의 지역이 선정되었습니다.]
[지역은 ‘버려진 철로’입니다.]
[종목은 ‘운송전’입니다.]
새로운 시스템창들이 떠올랐다.
“버려진 철로…….”
“운송전?”
두 감독이 지역과 종목을 확인하자마자.
[운송전의 역할을 선정합니다.]
또르륵.
일련의 문구와 함께 특별 랜덤 박스의 효과음과 비슷한 소리가 들려왔다.
이내.
[선정이 완료되었습니다.]
[한국은 수비로 선정되었습니다.]
[독일은 공격으로 선정되었습니다.]
운송전에서의 역할이 완료되었고.
“옵션 추가권을 쓰겠다.”
독일의 감독은 기다렸다는 듯.
품속에서 옵션 추가권을 꺼내, 시스템창이 떠올라 있는 곳으로 던졌다.
스르륵.
눈 녹듯 사라지는 옵션 추가권.
[옵션 추가권을 사용합니다.]
[추가 옵션을 정해주십시오.]
이어.
“예비인원 추가 옵션을 사용하겠다.”
독일의 감독은 태연하게 예비인원 추가 옵션을 사용했고.
[예비인원 추가 옵션을 사용하였습니다.]
[독일팀의 최대 인원수가 증가합니다.]
“예, 예비인원 추가라니!”
장윤석 감독은 입을 쩍 벌렸다.
* * *
[저…… 송 해설님? 제가 잘못 들은 걸까요? 독일 측에서 방금 예비인원 추가를 택한 거 같은데요……?]
[저도 어안이 벙벙합니다만…… 제대로 들으신 게 맞습니다. 시스템창에도 ‘예비인원 추가’라고 명시되어 있으니까요.]
[허허…… 대체 누굴 추가하려고 저런 옵션을 택한 걸까요?]
황당한 기색이 역력한 국아의 두 진행자.
이를 본 시청자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예비인원 추가라고? 제정신임?
-아무리 8인이라지만, 여기는 김시문이 있는데……?
-뭘 그리 놀래. 김시문 발 풀렸으니 우린 감사하다고 절만 하면 되는 건데.
-뭐래, 독일이 어디 하위권 나라냐? 아무 생각도 없이 저런 옵션을 택할 리 없잖아.
-ㅇㅇ 뭔가 뾰족한 수가 있다는 거 아니겠음?
-그게 김시문 발 풀어줄 정도로 대단함? 꼴랑 플래 하나 더 추가하는 건데?
-내 말이ㅋㅋㅋ 팔레스타인 30인도 혼자 쓸어버린 마당에, 다이아도 아니고 플래를 왜 넣냐고 ㅋㅋ
혼란의 도가니가 된 채팅창.
시청자가 많은 만큼 저마다의 생각도 달랐지만.
일맥상통하는 부분은 있었다.
바로 김시문을 저격을 해도 모자랄 판에, 대체 왜 참가 인원을 늘렸는가 대한 의문이었다.
하나.
[국가대항전 특별전을 시작합니다.]
[지역은 ‘버려진 철로’이고, 종목은 ‘운송전’입니다.]
여타의 옵션 저격 없이 무난하게 특별전이 시작되었음에도.
“…….”
시문의 굳은 얼굴은 좀처럼 풀리질 않았다.
그래서일까?
“저…… 시문 씨, 괜찮으십니까?”
“혹시 추가된 인원 때문이라면 걱정 마십쇼. 누가 추가되었는지 정도는 알아낼 수 있습니다.”
“맞아요. 제가 A급 은신 특성을 가지고 있거든요. 마침 맵도 땅속이니 충분히 알아낼 수 있어요!”
이상민을 비롯한 한국의 선수들이 자신감 있게 말을 건네왔다.
비단 시문의 어두운 얼굴을 풀어주기 위해서만은 아니었다.
“저번 경기의 승리 때문인지, 다들 길드에서 S급 장비를 풀로 대여받았습니다.”
“거기다 급조긴 해도, 7인 맞춤 진영까지 훈련을 끝내뒀어요. 최소한의 밥값은 할 겁니다!”
지난 팔레스타인과의 승리 덕에 각자의 길드에서 많은 지원을 받은 선수들.
더불어 하루지만, 소수 인원에 맞는 진영까지 훈련해둔 상황이다.
물론 강팀과의 실력 차와 30인이라는 인원수 차이는 쉽게 줄여지지 않겠으나.
한 번의 승리를 맛본 대표팀의 사기는 이전 팔레스타인전 때보다 훨씬 고양되어 있었다.
시문은 그런 대표팀에 작은 미소를 머금으며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든든하네요. 이번 경기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하나 시문의 속은 여전히 무거웠다.
예비인원 추가를 선택한 독일팀의 갑작스런 전략 때문이 아니었다.
예비인원 추가에 대해선 바로 어제.
불쑥 찾아와 저녁 식사를 대접했던 린이 모두 알려주었으니까.
심지어 누가 참여하는지까지도 말이다.
문제는.
‘대륙성이라…….’
그녀가 알아낸 10년 전 사건의 진상이었다.
‘그래. 대륙성이 연루되었다는 것까진 납득이 가. 원래 그런 놈들이라는 건 차치하더라도, 놈들은 이 시기부터 데스페라도를 후원하고 있었으니까.’
세계 최대 빌런 조직인 데스페라도.
그런 그들이 멋대로 날뛸 수 있도록, 뒤를 봐주는 세력 중 하나가 대륙성이지 않나?
고로 처음 린의 입에서 대륙성이 10년 전 사건과 연관되었다는 말이 나왔을 때.
시문은 그리 놀라지 않았다.
하나 다음으로 이어지는 인물은 그렇지 않았다.
‘이순철 회장이라니…….’
이순철.
성삼 그룹의 회장이자, 대한민국 재계를 아우르는 인물.
10년 전 테러 사건이 한국의 상류층을 겨냥했던 만큼, 그 역시 당시 테러의 피해자였다.
한데 그가 그때의 사건과 연루되어 있다니?
심지어.
‘당장 이영희 이모님만 해도, 그 테러의 후유증으로 쓰러지신 거나 마찬가진데…….’
갤럭시 아레나가 등장하고도 성삼이 한국의 최고로 군림할 수 있었던 이유.
지금의 성삼을 만든 도후 이영희 역시 10년 전 그때의 테러로 인해 본격적인 회로역행을 앓게 되지 않았는가?
그녀뿐만이 아니었다.
‘시혁이와 유정이도 내가 아니었다면 그때…….’
도후의 딸이자, 이순철 회장 본인의 유일한 손녀인 이유정.
그리고 자신의 동생인 김시혁까지.
당시 자신이 아니었더라면, 두 동생 역시 그 테러에서 무사하지 못했을 것이다.
최소한 아레나 질병이나 그에 준하는 장애를 앓았겠지.
그때 놈들이 터뜨린 아레나산 아티팩트와 독들은 생화학 무기나 다름없었으니까.
‘잠깐. 그러고 보니…… 당시 사건으로 아레나 질병에 걸린 건 나와 이모님, 둘뿐이잖아?’
각성이라는 기회가 서민, 부자를 가리진 않았으나.
당시 테러를 맞았던 상류층 중 각성자는 꽤 있었다.
한데 그들 중에서 이모님과 자신, 딱 둘만이 아레나 질병을 앓았다.
그것도 마력불능과 회로역행과 같이 지독한 수준의 병들로만 말이다.
당시엔 그저 운이 나빴다라고만 생각했지만.
‘뭔가 있어.’
이렇게 연루된 이들을 알고 나니 생각이 달라졌다.
그렇게 깊어진 시문의 상념을.
[운송 대상이 생성됩니다.]
[목표 지점까지 운송 대상을 안전하게 운송하거나, 다른 플레이어를 모두 처치하십시오.]
시스템창이 일깨운다.
시문은 가볍게 숨을 고르곤 목을 이리저리 꺾었다.
‘당장은 특별전부터 신경 쓰자.’
어차피 연루된 자들을 알아냈다 한들.
저들이 정확히 어떤 식으로 연루되었는지도 모르는 상태니까.
철컥.
시문은 왼팔에 장착된 파라켈수스의 실린더를 매만졌다.
이어.
지지징.
낡은 철로 위로 생성된 광물 수레의 주변으로 녹아드는 세 개의 검은 연성진.
얼마 가지 않아 허공이 유리처럼 깨지며.
크르르르.
꾸어엉!
헬 하운드와 다크 그리즐리만으로 구성된 마수들이 우르르 쏟아져나왔다.
“오오!”
“나왔다!”
하나같이 살벌한 외형들임에도.
대표팀의 얼굴은 무척이나 밝아졌다.
이 살벌한 마수들이 얼마나 든든한 아군이 되는지 이미 겪어 본 탓이었다.
컹.
시문은 허리에 얼굴을 비벼대는 헬하운드에 씩 웃으며 머리를 쓸어주었다.
마치 최고급 벨벳처럼.
새까맣고 부드러운 털이 손을 간질였다.
‘펠 배트까지 있으면 좋겠지만, 이런 땅속에서 비행형 마수는 별로니까.’
끼잉…….
아쉬움에 입맛을 다신 시문이 헬하운드의 머리를 한 번 더 비벼주고 걸음을 옮기려던 그때.
[성좌 바알의 ‘으음…….’ 불쾌한 신음을 흘립니다.]
갑작스런 바알의 반응이 날아들었고.
쿠우우웅.
어마어마한 중압감이 시문의 전신을 내리눌렀다.
이 현상을 겪은 것은 시문만이 아닌지.
끼, 끼이잉!
꾸어어!
소환되었던 마수들이 일시에 비명을 내질렀다.
이어.
투뚝.
“쿨럭!”
무언가가 끊어지는 이명이 들림과 동시에, 시문의 입에서 핏물이 한 사발 터져 나온다.
하나 시문은 갑작스런 각혈에 놀라지 않았다.
정확히는 못 했다고 해야겠지.
왜냐하면.
“시문 씨!”
“마, 마수들이……!”
방금 막 소환되었던 마수들이 실시간으로 재가 되어 사라지고 있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