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1화
131화. 변수? (1)
“세상에…….”
“저게 말이나 돼?”
커다란 모니터.
그것을 보던 일련의 무리가 경악과 감탄 언저리의 탄성을 내질렀다.
이윽고.
“저자는 내가 처리할 테니, 너희는 점령지로 가라.”
톤파를 낀 중년의 목소리를 끝으로 화면은 꺼졌다.
“하…….”
“몇 번을 봐도 어이가 없네.”
헛웃음을 흘리는 여성의 말대로.
국가대항전 플래티넘 부.
한국 대 팔레스타인의 특별전은 몇 번을 보아도 어이가 없을 뿐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김시문이 흑마법도 쓸 수 있었어? 그것도 소환 마법을?”
“그러게. 소환 마법은 흑마법 중에서 어렵기로 유명하다고 하지 않았나?”
“맞아. 파우스트, 그 사이코가 맨날 외치던 거잖아. 자긴 그 어려운 소환 마법을 실버부터 사용했다고.”
“다들 착각하고 있는데. 소환 마법은 어떤 분야든 어려워. 정령술은 또 다르지만.”
소환 마법.
신성 마법이나 흑마법 등.
다양한 마법계의 분야에서도 특히나 고수준의 마법으로 유명한 영역이었다.
한데.
“그러고 보니 김시문의 소환 방식은 정령술이랑 가장 유사한데?”
“맞아. 기나긴 캐스팅은 일절 없고, 그렇다고 소환진이나 제물을 쓴 것도 아니었잖아.”
김시문은 소환 마법을 사용했다.
그것도 보편적으로 통용되는 기나긴 캐스팅 시간과 소환진 없이 아주 쉽게 말이다.
“왼팔에 처음 보는 아이템이 달려있던데. 거기에 소환 관련 능력이 있는 거 아닐까?”
“음…… 내가 볼 땐 플래티넘 데뷔전에서 얻었던 아이템의 능력 같은데?”
“그 히든 피스로 얻은 거? 일리 있네.”
“나도 그 생각이야. 혼돈계에다 차원 이상 현상에 숨겨져 있었잖아. 그만한 능력쯤은 있을 법하지.”
“하지만 정작 소환은 왼팔의 아이템으로 했잖아. 저건 히든 피스로 얻은 아이템이 아니라고.”
끝없이 오가는 이야기들.
당연했다.
“하아…… 골치 아프네. 저놈만 막으면 쉽게 이길 텐데.”
“그러게. 나머지 8명, 아니지. 7명은 그냥 찍어 누르는 건데.”
플래티넘부 특별전.
한국의 다음 상대가 바로 이들이었으니까.
그때.
“자자. 다들 집중해라.”
한쪽 문이 열리고, 금발의 중년이 훈련장으로 들어섰다.
그는 박수를 치며 선수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옵션 추가권으로 쓸 옵션이 정해졌다.”
“에? 진짜요?”
감독의 말에 고개를 갸웃하는 선수들.
그도 그럴 것이.
“감독님. 우린 아무런 의견도 안 냈는데요?”
“맞아요. 아직 김시문에 대한 분석도 안 끝났다고요.”
한국을 상대할 30인의 선수들.
독일의 플래티넘부 국대들은 아직 한국팀에 대한 분석도 끝내지 못한 상태였다.
한데 벌써 그들을 상대로 쓸 옵션이 정해졌다니?
“그게 말이다…….”
감독은 다소 불편한 얼굴로 입술을 달싹이더니, 한숨을 푹 쉬곤 말을 이었다.
“한국팀을 상대로 예비인원 추가 옵션을 사용하라는 권고가 날아왔다.”
“에엑?”
“누가 그런!”
권고.
국가대항전에 참가하는 국대들에게 권고를 내릴 수 있는 곳은 단 한 곳뿐이었기에.
“설마 협회입니까?”
선수들은 금방 권고의 출처를 알아차렸다.
“그래.”
고개를 끄덕이는 감독.
그에 선수들의 얼굴이 일제히 굳었다.
협회의 권고.
말이 권고지 그것이 곧 명령이라는 걸 모르지 않았으니까.
“하! 협회놈들 진짜!”
“아직 분석도 안 끝난 마당에 무슨 예비인원 추가야? 미쳤어?”
“협회는 경기 안 봤대? 김시문 저격하기도 바쁜데 무슨 예비인원 추가를!”
분통을 터뜨리는 선수들.
그들 중 팔짱을 끼고 묵묵히 듣고만 있던 금발의 여성이 입을 열었다.
“추가되는 인원은 누구인가요?”
조용하지만 힘 있는 목소리.
그녀의 말에 소란스럽던 좌중은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커흠! 그게…….”
감독 역시 긴장한 기색으로 헛기침을 하고는 조심스레 말을 이었다.
정확히는 이으려고 했다.
벌컥.
“나다. 레오니.”
다크서클이 짙게 내려앉은 마른 남자가 거칠게 문을 열고 들어서기 전까진 말이다.
마른 남자를 말없이 응시하는 레오니.
이내.
“더 없어요?”
그녀는 애당초 본 적도 없었다는 듯.
감독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에 울컥한 얼굴이 되었으나 그뿐.
짙은 다크서클의 마른 남자는 입술만 달싹였지,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흔들림 없이 꽂히는 레오니의 시선에 감독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말했다.
“일단은 파우스트 하나다.”
무표정했던 레오니의 얼굴이 한결 더 서늘해진다.
“그 말씀은 지금 예비인원 추가 옵션을 써서 합류하는 게.”
그녀는 하얗고 기다란, 그러나 굳은살이 박인 손가락을 들어 파우스트를 가리켰다.
“고작 ‘저거’ 하나라는 건가요?”
무미건조한 목소리에 유독 저거라는 단어가 강하게 들렸다면 착각일까?
아마 아닐 거라고.
이곳에 있는 모든 이들은 확신할 수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감히 이 몸에게 저거라니! 레오니! 너 미쳤어?!”
레오니와 파우스트.
저 둘의 관계는 갤럭시 아레나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독일인이라면 모를 수 없었으니까.
사아아.
얼굴이 잔뜩 일그러진 파우스트의 주변으로 시커먼 기운이 스멀스멀 흘러나온다.
“파, 파우스트!”
“제정신이냐!”
그 속에 저릿한 살기까지 섞여 있음을 눈치챈 감독과 선수들은 화들짝 놀랐지만 그뿐.
따로 나서거나 파우스트를 제지하지는 않았다.
이는 파우스트의 실력과 그가 지닌 배경 때문만이 아니었다.
“참, 정말 변함없는 머저리구나. 넌.”
무미건조한 한숨.
그와 함께 자리에서 일어난 레오니는 팔짱을 낀 채.
뚜벅.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살기를 풀풀 흘리는 파우스트를 향해 걸어갔다.
“이제 갓 플래티넘에 올라온 놈이.”
뚜벅.
“감히 플래티넘 부 1위인 나한테 살기를 뿜어?”
그녀와의 거리가 한 걸음씩 좁혀질 때마다.
파우스트에게서 흘러나오는 기세와 살기가 짙어진다.
하나 그뿐.
살벌한 기세와 정반대로.
“이……!”
파우스트의 얼굴은 점차 일그러져갔다.
이윽고 그녀가 파우스트에게 당도했을 때.
파우스트는 저도 모르게 한 걸음 뒷걸음을 쳤다.
그것을 스스로 자각한 것일까?
“왜! 나, 날 치기라도 하게? 감당할 수 있어?! 어!”
사뭇 두려움이 스친 그의 얼굴과 별개로.
파우스트는 도리어 언성을 높였다.
궁지에 몰린 쥐.
“하! 잘 들어. 파우스트.”
혹은 그 언저리의 무언가를 보는 눈으로 레오니는 말했다.
“먼저 살기를 뿜은 건 너야.”
“그, 그건 네가 나한테 먼저 시비를 걸어서 그런 거잖아!”
“그럼 우리가 하하호호하며 인사를 나눌 사이던가? 작년에 네가 내게 했던 개짓거리를 잊었어?”
“…….”
“그런 걸 전부 집어치우더라도, 이딴 식으로 살기를 내뿜은 건 정당화가 되지 않아. 파우스트.”
파우스트는 입도 뻥긋할 수 없었다.
사실이었으니까.
여기서 끝이 아닌지.
“그리고 말이지.”
레오니의 무감정한 눈이 파우스트의 코앞까지 다가갔다.
“내가 널 친다 해서, 감당 못 할 건 또 뭐지?”
“너!”
“그렇잖아? 네가 발텐베르크의 막내아들인 건 나도 잘 알아. 그래서?”
무감정했던 레오니의 입가가 처음으로 움직였다.
작지만 위로 향하는 입꼬리는 분명 미소를.
“내 오빠도 발텐베르크의 부길마이자 성좌의 관심을 받고 있지. 나 역시도 너보다 1년이나 빠르게 플래티넘에 올랐고. 아아, 그러고 보니 너. 데뷔전의 순위권에도 못 들었다지?”
“그, 그건!”
“네가 머저리긴 해도 머리가 나쁜 놈은 아니지. 그래서 물어볼게. 작년 플래티넘 데뷔전에서의 내 순위는?”
차분하게.
그러나 무자비하게 쏟아지는 레오니의 말에 파우스트는 두 주먹을 꽉 쥐었다.
이내.
“……2등이다.”
쓰디쓴 약을 씹어 내뱉듯.
힘겹게 답했다.
“그래. 그것도 단 4인 참가로 2등이지. 근데 넌 이번에 몇 명이랑 참가했더라?”
“…….”
“왜 말이 없지? 아, 자기 손으로 7명이나 팀킬을 해버려서 제대로 기억도 안 나나? 그럴 수도 있겠네.”
레오니의 차가운 비난에 점차 아래를 향하는 파우스트의 시선.
마기와 함께 흘러나오던 살기는 수그러든 지 오래였다.
이제야 만족스러운 것일까.
잔뜩 풀이 죽은 파우스트를 보며 작게 코웃음을 친 그녀는 감독을 돌아봤다.
“감독님. 설마 아무 생각 없이 이놈을 대표팀에 합류시키는 건 아닐 테죠?”
그랬다간 협회를 불 질러버리겠어요.
차갑게 읊조리는 레오니에 감독은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히 아니지! 무, 물론 협회의 권고이긴 하나, 이는 발텐베르크 길드에서도 동의한 일이다. 심지어 부길마께서 직접.”
“오빠가요?”
이 머저리를 허락했다고?
그런 뉘앙스로 슬쩍 올라가는 레오니의 눈썹.
“거짓말이 아니야. 이봐, 파우스트. 뭐라고 말 좀 해봐!”
레오니의 시선이 퍽이나 부담스러운 걸까?
감독은 서둘러 파우스트를 불렀고.
“……사실이다. 레오니, 난 부길마인 파비안 볼프에게 직접 김시문을 견제할 방법을 인정받고, 협회의 승인으로 합류한 거다.”
“그래?”
은근한 뉘앙스와 달리 레오니의 눈에선 의심의 기색이 존재하지 않았다.
일단 자신의 오빠가 직접 보고 인정했다는 점.
또한 평소에 병신 같긴 해도, 명색의 협회에서 승인했다는 점.
이 두 가지가 파우스트에 대한 인식을 완전히 바꿔버린 것이다.
“좋아, 파우스트.”
엄연히 감독이 존재함에도.
레오니 볼프는 팔짱을 낀 채, 턱짓을 했다.
“어디 한번 읊어봐. 오빠에게 인정받았다던 그 방법을.”
마치 그녀가 대표팀의 지휘관인 것처럼.
* * *
[갓 플래티넘에 입성한 김시문, 사실상 해트트릭?]
[협회장의 조커 카드 제대로 적중! 대중 ‘역시 철목왕이다’]
[세계가 충격?! 모두의 예상을 뒤엎은 승리!]
[이젠 세계권 유망주, 김시문 그는 대체 누구인가?]
[팔레스타인전을 끝낸 김시문, ‘아직 특별전은 끝난 게 아니야’ 끝까지 긴장 놓지 않아]
포털 사이트를 장식하는 뉴스들.
그것을 의미 없는 눈으로 바라보던 시문은.
“어머, 음식이 입맛에 안 맞나 봐요?”
“아뇨. 맛있습니다.”
옥구슬처럼 맑으나, 다소 야릇함이 섞인 목소리에 폰을 내려놨다.
꺼져가는 폰 화면을 힐끔한 맞은 편의 여성은 싱긋 웃었다.
“아아, 자기 기사를 보고 계셨구나? 하긴, 즐겁긴 하죠. 날 찬양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듣는 건.”
“딱히 즐기지는 않습니다.”
대번에 고개를 젓는 시문.
실제로도 이런 기사나 댓글들을 보고 즐기는 성격은 아니었다.
물론 대부분의 인간이 그렇듯.
자신에게 긍정적인 말을 해주는 걸 싫어하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그래요? 이상하네.”
미려하게 입꼬리를 올린 여성이 턱을 괸다.
“음식이 맛없는 것도 아니고, 자기 기사를 즐기는 것도 아닌데…….”
그녀는 진실로 궁금하다는 듯.
잡티 하나 없이 깔끔한 볼을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렸다.
“왜 식사 내내 시선이 폰으로 가 계실까?”
외모만큼이나 매력적인 목소리였지만.
“글쎄요.”
시문은 눈 하나 까딱하지 않고 답했다.
“아마 언질도 없이 불쑥 찾아와, 용건은 꺼내지도 않고 자꾸 빙빙 돌리는 누구 때문이 아닐까요?”
“어머나! 세상에 그런 무례한 사람이 있나요?”
“그러게요. 있더군요.”
이렇게 제 눈앞에 말이죠.
그 뒷말을 삼킨 시문은 말없이 고기 한 점을 입에 넣었다.
한식 특유의 양념이 조화롭게 입 속을 거닌다.
하나 시문은 그 즐거움을 누릴 수 없었다.
그가 아닌 어느 누구라도 마찬가지리라.
“장난은 이쯤 하죠. 린, 벌써 한 시간이나 지났습니다.”
암시장의 주인.
미래엔 하이랭커들조차 경계하는 구미호 린과의 갑작스러운 식사 자리라면 말이다.
시문의 단호한 태도에도.
“후후, 정말이지. 남자들은 본론을 좋아한다니까.”
린은 주눅 들지 않고.
오히려 테이블 위로 양팔을 모아, 은근히 흉부를 과시하며 웃었다.
심지어 봄의 끝자락, 여름의 시작이라서일까?
그녀는 가슴이 꽤나 파인 원피스를 입고 있어, 무척이나 외설스러웠다.
일반적인 남자들이라면 시선도 제대로 떼지 못할 모습.
하나.
“한 시간 가까이 본인 근황만을 말하는데, 어떤 남자가 본론을 찾지 않겠습니까?”
시문은 다분히 사무적인 태도를 취할 뿐이었다.
그에 린의 눈썹이 유려하게 휘었다.
“어머. 저도 본론을 싫어하는 건 아니랍니다? 이렇게 비싼 식사도 했는데. 어때요? 제 방에서 제대로 된 본론으로 들어가 보시는 건.”
“린!”
흔들림 없던 시문의 음성이 그의 눈매와 함께 한 톤 올라간다.
“정말이지. 쉽지 않네요. 이러니 더 궁금해지잖아요.”
욕망에 젖은 당신은 어떤 맛일지.
그렇게 읊조리는 린을 흰 눈으로 보는 시문.
‘또 무슨 수작을 부리려고…….’
그녀를 몰랐다면 모를까.
구미호 린이 어떤 여자인지 누구보다 잘 아는 시문으로선, 그녀의 어떤 말도에도 쉽게 반응해주지 않았다.
그에 린은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그거 알아요? 반쯤 재미긴 해도, 이렇게 꿈쩍도 하지 않으면 자존심이 꽤 상한단 말이죠. 당신만 만나면 꼭 내가 부족해진 것처럼 느껴지거든요.”
그리곤 입구 쪽으로 슥 돌아가는 린의 시선.
그녀와 눈을 마주친 웨이터가 황급히 다가온다.
5성급 호텔인 만큼, 상당한 교육을 받았을 웨이터임에도.
“아…… 피, 필요하신 거라도…….”
웨이터는 얼굴을 붉힌 채, 연신 말을 더듬었다.
그에 배부른 야수처럼 만족스럽게 웃는 린.
“그냥. 귀여워서 한 번 봤어요.”
“네? 아…… 가, 감사합니다!”
순식간에 3배로 붉어지는 웨이터.
황급히 몸을 돌려 제자리로 돌아가는 웨이터의 뒷모습을 보곤.
“후후. 이런 걸 보면 전혀 아닌데 말이죠.”
린은 의미심장한 미소로 시문을 흘낏했다.
한숨을 쉰 시문은 답했다.
“저분은 일반인입니다. 그리고 일반인에게 함부로 능력을 사용하는 건 불법이고요.”
“어머나, 전 각성자에게도 잘 먹히거든요? 그리고 딱히 능력을 사용한 건 아니랍니다? 그냥 조금…… 홀렸을 뿐.”
빙긋 웃는 린에 시문은 답도 하지 않았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 린은 두 손을 들었다.
“좋아요. 제가 항복할게요. 모처럼의 데이트를 즐기고 싶었지만, 이쯤 하죠.”
“누구 마음대로 데이트입니까.”
“후후. 까칠하시긴. 어쨌거나, 제가 이렇게 찾아온 이유는 하나에요. 감사를 표하기 위해서죠.”
시문의 눈썹이 샐쭉 올라간다.
특별전의 경기 직후, 린에게서 받았던 문자가 떠오른 것이다.
동시에.
“설마 진짜 배당 좀 먹었다고 감사를 표하러 온 겁니까?”
“역시, 돈을 갈퀴로 쓸어 담는 분 다우시네요. 배당 좀 이라니요. 제가 이번에 얼마나 크게 먹었는데.”
“말을 바꾸죠. 그렇게 크게 드신 분이 고작 식사 한 끼로 때우려고 하시는군요.”
“후후. 평소 같으면 냉큼 그러겠지만…… 우리 VVIP고객님께는 또 다르죠?”
야릿하게 웃은 린은 말을 이었다.
“본래라면 제가 성의를 꾹꾹 담아, 몸소 대접해드리려 했는데. 이리 거부하시니 다른 걸 드리는 수밖에요.”
이제야 진짜 본론이 나오는 것을 눈치챈 시문은 린을 마주 봤다.
“어머, 드디어 절 봐주시네요? 즐거워라.”
“시답지 않은 소리는 됐고. 주겠다는 게 뭡니까.”
“매몰차기는. 다음 특별전의 상대 팀이 어딘지 아시죠?”
시문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독일이죠. 대대적으로 강팀이라 불리는.”
독일.
미국과 중국이라는 두 강대국을 제외하면 전반적으로 플레이어 수준이 높은 나라.
전생에서도.
그리고 지금도 EU의 주축이 되는 세 나라 중 하나였다.
“제 정보망에 따르면, 독일이 한국팀을 상대로 사용할 옵션을 이미 선정했다고 해요.”
“옵션을요?”
“네. 한국과 같이 예비인원 추가라던데요.”
“그게 정말입니까?”
시문의 눈이 조금 커진다.
당연히 팔레스타인팀처럼 자신을 저격할 옵션을 고를 줄 알았는데.
설마 가장 효력이 없는 옵션인 예비인원 추가를 택할 줄이야.
드디어 도드라지는 시문의 반응에 린은 한결 흐뭇해졌다.
“저도 깜짝 놀랐답니다. 그리고 추가되는 멤버는 파우스트라고 하더군요.”
“파우스트?”
“후후. 더 놀랍죠? 그가 뛰어난 흑마법사이긴 해도, 당신을 상대론 아무런 힘도 못 쓴다는 걸 이미 데뷔전에서 똑똑히 보여줬는데.”
린은 시문의 반응을 즐기듯.
그의 얼굴에서 조금도 눈을 떼지 않았다.
“당신을 상대할 비장의 무기를 준비했다나 봐요. 개인적으로 무척 관심이 가는 소식이었죠.”
“으음…….”
“이 건은 발텐베르크의 부길마가 직접 밀어줬다고 하니, 효과는 확실하지 않나 싶어요. 물론…… 당신에겐 큰 의미가 없을 것 같지만.”
말을 끝내곤 어깨를 으쓱하는 린.
잠시 턱을 괴던 시문은 그녀에게 살짝 고개를 숙였다.
“알려줘서 고마워요. 린.”
진심이었다.
국내의 언론이든, 해외의 언론이든.
당장 내일이 독일전인데 그 어디에서도 파우스트의 합류에 대해서 떠들지 않고 있다.
이는 독일측에서 파우스트의 합류를 비밀리에 진행하고 있다는 것.
더군다나 독일 최강 길드인 발텐베르크 길드의 부길마 아니던가?
‘아마 이때쯤 발텐베르크의 부길마가 파비앙 볼프였지?’
전생에는 성좌 오딘을 배후성으로 둔 하이랭커이자.
쌍창의 파비안이라 불리며, 창왕 종리추와 나름의 자웅을 겨뤘던 인물.
‘그런 자가 직접 밀어줄 정도면, 그 비장의 무기의 효력은 확실하겠지.’
뭐, 애당초 방심할 마음도 없었지만.
이렇게 세세하게 알려주니, 도움이 되는 건 사실이었다.
시문은 다시 한번 인사를 하곤.
“감사 인사는 잘 받았습니다. 그럼.”
드르륵.
의자를 끌며 일어났다.
그에 눈이 동그래진 것도 잠시.
“정말 매몰차다니까. 내가 어쩌나 이렇게 됐나 몰라.”
그렇게 읊조린 린은 피식 웃으며 시문을 바라봤다.
“이대로 가셔도 괜찮겠어요? 선물은 하나 더 있는데.”
“앞선 정보로 충분합니다. 애당초 본인이 건 배당인데 이만한 감사 인사부터가…….”
“10년 전, 한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테러 사건에 관한 이야기라 해도요?”
일어나던 시문의 움직임이 뚝 멈춘다.
“후후. 어때요? 이래도 됐다고 하실 건가요?”
린의 야릇한 미소는 평소보다 더 깊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