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0화
130화. 옵션 추가권 (3)
푸른 모래사막.
그곳에서 가장 높은 사구에 위치된 점령지로 향하는 7인의 표정은 심상치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쿠구궁.
크아앙!
점령지인 높은 사구의 꼭대기.
그곳에선 강렬한 폭음과 인간, 야수의 비명이 쉬지 않고 흘러나왔으니까.
그 잔혹한 소리가 터져나올 때마다.
점령지로 향하는 플레이어들의 얼굴은 굳어갔다.
그나마.
“거의 다 왔다. 모두 긴장을 놓치지 마라.”
가장 나이가 많아 보이는 남성.
이상민만이 제 안색을 유지했다.
하나 그도 잠시일 뿐.
“미친…….”
높은 사구의 꼭대기.
점령지에 도착한 이상민의 표정은 결국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
“이게 대체…….”
지옥도.
그 말로는 차마 다 표현할 수 없는 참혹한 광경.
“으으…….”
인간 형태의 무언가가 신음한다.
그 미미한 신음 소리가 아니었다면.
피로 얼룩진 저것이 사람이라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는 인간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끼, 끼잉…….
키이…….
평소의 위협적이던 형태를 잃고, 여기저기서 신음하는 마수들.
그마저도 머리를 보전한 놈들만 낼 수 있는 것이지.
대부분의 마수들은 박살난 시체가 되어, 진득한 피 웅덩이를 만들고 있었다.
그리고 그 난장판은 한가운데.
그그극.
모래로 이루어진 형상이 기다란 팔을 들어 올리고 있었다.
그 아래로.
“캬아악!”
화려한 터번이 잔뜩 헝클어진 채, 짐승처럼 발악하며 소리치는 한 남성이 보였다.
피를 한 바가지나 뒤집어쓴 모습이었지만.
검에 서린 서슬 퍼런 검기와.
사사삭!
골렘을 이루는 모래를 멋대로 흐트러뜨리는 능력은 남자의 정체를 쉽게 알려주었다.
“자예드 반……?”
팔레스타인의 국가대표.
플래티넘부의 1위이자, S급 특성 모래 조형의 소유자인 자예드 반이었다.
플래티넘부턴 세계적인 매칭이 이루어지는 만큼, 이상민 역시 자예드 반과 아레나를 치른 경험이 있었다.
‘자예드 반이면 플래티넘 전투계 중에선 나름 상위권의 실력자일 텐데…….’
나름 상위권.
말이야 ‘나름’이지 그 나름의 영역을 지구 전체로 놓고 본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세계 모든 플래티넘 전투계들 중 나름의 상위권이라는 소리니까.
한데 그런 플레이어가.
뻐억.
“쿨럭!”
피를 토하며 저만치 날아간다.
심지어 그를 타격한 것이 모래로 이루어진 골렘임을 고려해보면 말도 되지 않는 상황.
물론.
그그그극.
S급 특성 모래 조형의 소유자를 상대한 만큼.
모래 골렘 역시 반파 당하여 팔 한쪽만 남은 상태였다.
그런 모래 골렘의 시선이 한국 대표팀을 향한다.
움찔.
저도 모르게 움찔하는 대표팀들.
하나 이상민만은 침착을 유지한 채, 반파된 모래 골렘과 시선을 맞췄고.
-뒤는…… 부탁.
모래가 긁히는 듯한 괴상한 소리와 함께.
스스슥.
반파된 모래 골렘은 허물어졌다.
“으아아아!!”
그에 곧장 터져 나오는 함성.
아니, 절규라고 해야 할 그것이 한국 대표팀의 귀를 때린다.
“일어나! 다시 일어나서 붙으란 말이다아악!!”
피를 흠뻑 뒤집어쓴 자예드 반.
그는 상처입은 야수처럼 날뛰며, 무너진 모래 골렘의 잔해를 미친 듯이 난도질했다.
“인정 못한다! 이렇게 끝내는 것은 인정 못 한다고!!”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
자예드 반은 미친놈처럼 모래 더미를 두들길 뿐이었고.
“사, 상민 형…….”
“저자는 내가 처리할 테니, 너희는 점령지로 가라.”
이상민은 톤파를 고쳐 쥐고.
시문의 명령을 수행하러 걸음을 옮겼다.
* * *
딸칵.
국가대항전용 아레나 접속기기인 캡슐.
그것의 문이 열리고 뚜렷한 이목구비의 미남이 밖으로 나왔다.
그가 바닥에 발을 딛기 무섭게.
우우웅.
지속적으로 울리는 진동.
시문은 품을 뒤적거려 진동의 원인을 확인했다.
[김시혁 : 형! 경기 개지렸어! 그 소환물들은 대체 뭐야?]
[이유정 : 오라버니! 승리 축하드려요!]
[고말숙 : 양심도 없는 놈. 이젠 마수까지 소환해대냐? 너 대체 정체가 뭐야?]
[박진욱 : 믿고 있었습니다! 충성충성!]
우르르 올라가는 메시지들.
일행들의 메시지였다.
‘다들 경기를 보고 있었나 보네.’
시문의 입가에 작은 미소가 번진다.
당연했다.
‘자기들 아레나 돌리기도 바쁠 텐데.’
고말숙을 제외하곤 하나같이 최상위권의 플레이어들이다.
고말숙 역시 랭크가 낮을 뿐.
해당 랭크대에선 자신만큼이나 이름을 날리고 있다는 사실 또한 잘 알고 있었다.
고로 자기 아레나를 뛰어, 스펙을 1이라도 더 높이기 바쁠 텐데.
굳이 본선도 아닌 플래티넘부의 경기를 챙겨봐 주니 어찌 고맙지 않겠는가?
하나 그런 시문의 미소는 빠르게 사라졌다.
[린 : 승리 축하드려요~. 역시 시문 님이시네요. 덕분에 역배로 두둑하게 챙겼답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인물의 메시지가 날아든 것이다.
‘린? 린이 갑자기 왜?’
암시장의 주인인 구미호 린.
그녀가 왜 자신에게 이런 메시지를 보냈는지 생각하기 이전에.
‘대체 메시지는 어떻게 보낸 거야?’
시문은 재빨리 메시지를 보내온 린의 프로필을 확인했다.
‘뭐야, 자기 번호도 쓰여 있잖아?’
여성들이 흔히 찍는 SNS용 각도로 찍은 사진.
그 아래론 린의 번호가 버젓이 적혀 있었다.
이걸 뒤집어 말하면.
‘메시지 아이디가 아니라, 아예 내 전화번호를 저장했다는 건데…….’
내 번호는 또 어떻게 안 거지?
의문이 들었으나 동시에 납득도 되었다.
‘하긴, 암시장의 주인인데. 전화번호 하나 찾는 게 그리 어렵진 않겠지.’
다른 곳도 아닌, 암시장의 주인 아닌가?
[린 : 후후. 감사로 맛있는 식사 한번 대접할게요~.]
또다시 날아드는 린의 문자에 헛웃음을 흘린 시문은 ‘됐습니다’라는 답장을 보내려다 폰을 집어넣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시문아!!!”
다소 배가 나온 중년인.
플래티넘부의 감독 장윤식을 비롯한 코치진들이 눈물을 글썽이며 달려왔으니까.
“아이고! 시문아, 고맙다! 정말 고마워!!”
“크흡! 덕분에 살았습니다!”
눈물을 글썽이는 아저씨들의 대시는 다소 부담스러웠으나.
‘많이 힘드셨겠지.’
무려 본선 진출의 시드권이 달려 있는 특별전이다.
안 그래도 약팀이니, 옵션 추가권이니 하며 잡음이 많은 상태에다가.
단 하루 만에 8인의 출전이라는 날벼락까지 맞지 않았던가?
만약 여기서 패배라도 하면.
국가 버프를 날려 먹은 대역죄인이 되는 분위기였다.
당연히 만사가 노심초사했을 터.
“네가 아니었다면 우린 정말…….”
“크허헝!”
어지간히도 마음고생이 심했는지.
눈물은 물론 콧물까지 줄줄 흘리는 감독, 코치단.
그에 다소 난처한 얼굴로 감코단을 다독이던 시문을 힘 있는 중저음이 구해주었다.
“다들 진정하시죠. 시문 씨가 난처해하지 않습니까.”
“사, 상민아!”
대한민국 플래티넘부 3위인 이상민이었다.
“커흠! 미안하다. 시문아. 이게 워낙 기뻐가지고…….”
“죄,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저도 이겨서 기쁜걸요.”
소매로 축축한 얼굴을 문지르며, 얼른 떨어지는 감코단에게 미소를 지어주는 시문.
그런 시문에게로 7명의 선수들이 다가왔다.
“처음 경기에 들어갔을 땐, 진짜 눈앞이 깜깜했는데 설마 아무것도 안 하고 이길 줄은……. 전부 시문 님 덕입니다!”
“덕분에 편안하게 승리했습니다. 캐리 감사해요!”
“저, 정말 대단했어요! 이런 버스는 일반 아레나에서도 타본 적이 없는데!”
불과 경기 직전까지만 해도.
이상민을 제외하곤 제대로 말도 붙이지 못하던 선수들.
그런 선수들이 전부 함박웃음을 걸친 채, 친근하게 감사 인사를 건네온다.
시문은 잔잔한 미소로 그들의 말에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역시 친해지는 덴 전투가 특효약이라니까.’
사람들은 대부분 힘겨운 전투를 겪으면 친해지기 마련이다.
비록 정규 아레나가 시작된 전생의 생사를 건 전투만큼은 아니었으나.
8인 참가라는 절망적인 환경에서 승리를 거머쥐었으니, 그간의 어려웠던 벽은 충분히 무너질 만했다.
그때.
“이놈들아. 그게 시문 씨 앞에서 할 말이냐?”
아까의 중저음이 귓속을 파고들었다.
“상민 삼촌.”
“아저씨…….”
이상민이었다.
그는 다소 날카로운 눈으로 말했다.
“여기가 개인 아레나도 아니고. 국가대항전의 본선 진출이 달린 특별전이다. 너희도 국가대표란 말이다. 그런데 캐리받은 게 무슨 자랑이라고 그리 당당히 말해?”
“그, 그건…….”
“…….”
대번에 시무룩해지는 선수들.
틀린 말도 아니었기에, 그들은 어떤 반박도 하지 못하고 시문의 눈치를 살폈다.
하나 이상민의 굳은 표정은 좀처럼 풀리지 않았다.
“감사 인사는 당연하지만, 우리도 국가대표다. 그저 업혀 간 것을 그렇게 당당히 말하는 건, 시문 씨에게 실례될 수도 있는 언사야. 막말로 우린 아무것도 못 하지 않았나? 이번 경기에서 없었던 거나 마찬가지였단 말이다.”
“……시문 님.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시문 님. 저희 생각이 짧았어요.”
이상민의 말에 곧장 고개를 숙이는 선수들.
그에 잠시 당황한 시문은 이상민마저 고개를 숙여오자 멋쩍은 미소로 볼을 긁었다.
‘딱히 그렇게까지 깊게 생각하진 않았는데…….’
그냥 다들 감사 인사를 보내길래.
아, 그렇구나 하고 생각하고 있었을 따름이었다.
‘뭐, 저렇게 말하는 것도 이해는 가네.’
이상민의 말대로.
저들 역시 국가대표로 뽑힌 이들이다.
따져보면 시문과 같은 위치의 국가대표 선수란 말이다.
한데 옵션 추가권으로 대놓고 저격당한 시문의 캐리를 받고.
손 하나 까딱하지 않은 채, 승리해버린 상황.
감사 인사 정도야 충분히 전할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반대로 시문과 같은 국가대표라는 입장을 놓고 보면, 본인들이 캐리나 버스를 대놓고 언급하는 것은 그리 보기 좋은 그림은 아니었다.
‘아마 스스로의 자존심도 좀 상하셨겠지.’
이러나저러나 상위권으로 분류되는 플래티넘 랭크의 플레이어다.
심지어 아레나 경력도 많고, 국대로 선발된 30인 중에서 3등이지 않은가?
그런 입장에서 한 사람에게 캐리를 받았다는 사실이 꽤 부끄럽고, 자존심이 상하는 모양이었다.
‘저런 마인드니까 결국 다이아 랭크로 승급하는 거겠지.’
작게 미소를 머금은 시문은 아직도 숙인 고개를 들지 않는 이상민의 어깨를 조심히 짚었다.
“이러지 마세요. 전 그렇게 생각한 적 없습니다.”
그리곤 이상민을 천천히 일으키는 시문.
“제가 캐리했다는 말은 수정하지 않을게요. 하지만 여러분이 아무것도 못 했다는 말씀은 동의하지 못하겠네요.”
그는 부드럽게 웃으며, 잔뜩 굳은 이상민을 마주 봤다.
“저 혼자였으면 이기지 못했을 경기입니다. 소환수들로 쓸어버린 것 맞지만, 결국 상대팀 1위인 자예드 반은 쓰러뜨리지 못했잖아요.”
“아니요. 시문 씨께선 저희가 없었어도 전부 쓰러뜨리셨을 겁니다. 굳이 그렇게 말씀해주시지 않아도 괜…….”
“아뇨, 전 사실만을 말하는 겁니다.”
반문하려는 이상민의 말을 바로 끊는 시문.
실제로도 틀린 말이 아니었다.
100마리의 마수와 거대 모래 골렘으로 팔레스타인팀을 거의 전멸시켜버렸으나 그뿐.
결국 ‘거의 전멸’인 거지 ‘완전한 전멸’은 아니지 않나?
“마지막 팔레스타인측의 점령 포인트는 90%를 넘겼었죠. 만약 이상민 선수께서 자예드 반을 처리해주시지 않았다면, 방금 경기는 이쪽의 패배로 끝났을 겁니다.”
“전, 다 된 밥에 숟가락만 얹은 것뿐입니다. 자예드 반은 시문 씨로 인해 제 컨디션이 아니었습니다.”
“결국 쓰러뜨리지는 못했잖아요. 설령 제가 자예드 반까지 쓰러뜨렸다 해도, 활동 범위 제한으로 점령지에 들어가진 못해요. 그럼 경기는 패배했겠죠.”
팔레스타인과의 아레나 종목은 ‘점령전’이다.
시문이 저들을 다 죽여버렸다 한들.
직접 점령지에 발을 들이지 못하는 이상, 이쪽의 패배로 끝나게 되는 것이다.
“애당초 국가대항전에서 온전한 1인 캐리는 불가능하잖아요. 가능했다면 우리가 이 고생을 할 필요도 없겠죠. 예선전에서 검성이 전부 쓸어버렸을 테니까.”
국가대항전이란 그런 것이다.
그 잘난 랭커인 동생 놈도.
그리고 이전에 국가대항전을 빛냈던 수많은 플레이어들도.
그 누구도 국가대항전에서 1인 캐리라는 업적을 남기지 못했다.
아무리 날고 기는 플레이어라도, 비슷한 랭크대의 수십이 체계적으로 행하는 전략을 홀로 상대할 수는 없었으니까.
물론 이 또한 인간사인 이상 예외는 있었다.
딱 2명.
갤럭시 아레나가 열린 이후 딱 2명의 플레이어가 국가대항전에서 솔로 캐리라는 업적을 남기긴 했었다.
하나는 미국의 최강 길드.
아메리칸드림의 창시자였고.
다른 한 명은.
‘아버지…….’
대한민국 전대 각성자 협회장이자, 현 협회장인 숙부 김무열의 형님.
동시에 자신의 아버지이기도 한 김무진.
대한민국이란 작은 나라에서 최강이라던 아메리칸드림의 당대 길드 마스터와 자웅을 겨루던 사내.
아버지 김무진을 떠올리자, 씁쓸함이 입가를 맴돌았다.
그것을 떨쳐내려는 듯.
시문은 가볍게 고개를 저었고.
“시문 씨…….”
그 모습을 다르게 받아들인 것인지.
“……반드시. 다음 경기엔 반드시 도움이 되어 보이겠습니다.”
눈가가 촉촉해진 이상민은 주먹을 꽉 쥐고 말했다.
* * *
잠실 갤럭시 아레나 전용 경기장.
총 8인이라는 전대미문의 인원수로 우중충하게 가라앉았던 이곳은 지금 뜨겁게 달아올라 있었다.
단지 관중이 있는 일반적인 경기장들과 차이점이 있다면.
“승리 축하드립니다! 이번 팔레스타인과의 특별전, 승리를 진즉부터 예상하셨나요?”
“팔레스타인은 그냥 이긴다는 발언이 있으셨다는데. 사실입니까?”
“정확한 직업이 어떻게 되십니까? 많은 분들이 궁금해합니다!”
“플래티넘 데뷔전에서 스스로 마족 소환은 불가능하다고 말씀하셨는데요. 이번 대규모 마수들은 어떻게 된 건가요?!”
“김시문 선수! 이번 경기에서 보여준 소환물들에 대해…….”
경기장을 채우는 열기의 주체는 관중이 아닌.
“이전 국대들과의 불화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협회측 인맥으로 국대로 참가하고, 선발 국대들을 쳐냈다는데. 맞습니까?”
“협회장과는 어떤 관계입니까? 어떻게 23인이나 되는 국가대표들을 한 번에 잘라 낸 거죠? 뒤에 또 누가 있는 건가요?!”
“한 마디만 해주십쇼!!”
수많은 카메라 렌즈와 불빛, 그리고 기자들이었다.
‘하아. 어지럽네.’
한숨이 절로 나온다.
그럴 수밖에.
쏟아지는 카메라 불빛들은 그렇다 치더라도.
‘아니 내가 언제 저런 말들을 했다는 거야?’
시문 자신도 모르는 발언들이 어디서 자꾸 튀어나온단 말인가?
“모두 물러나십시오! 여긴 관계자 이외 출입 금지 구역입니다!”
“이 이상 다가오면 직접적인 조치를 취하겠습니다.”
“어이! 거기 넘지 말라고!”
감코진과 대표팀 선수들까지.
모두 한 마음이 되어 시문의 주변으로 벽을 쳤으나 그뿐.
“김시문 플레이어! 한 마디만 해주십쇼!”
“이거 놔! 우린 국민의 알 권리를 짊어지고 있다고!!”
“시청자분들 보이세요? 각성자가 비각성자 치고 있어요. 이건 과잉진압이라고요!”
지상, 공중파부터 개인 방송까지.
몰려드는 인파는 그들로서도 쉽사리 손을 쓸 수 없었다.
저들은 대다수가 일반인이고, 이쪽은 대다수가 각성자들.
자칫 잘못하다간, 인명 피해가 일어날 수도 있었으니까.
그때.
우웅.
품속에 작은 진동을 느낀 시문이 폰을 꺼내 확인한다.
이어.
따악.
맑고 경쾌한 소리가 소란하던 경기장의 분위기를 가라앉혔다.
손을 들어 손가락을 튕긴 시문.
평소와 다르게 그 어떤 목적도 담겨있지 않은 행위였으나, 경기장에 있던 모든 이들의 이목은 제대로 끌었다.
“아직 특별전은 한 경기가 더 남아있어, 따로 인터뷰는 하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시문은 쥐고 있던 폰을 슬쩍 흔들어 보였다.
“협회장님의 호출로 전 곧장 협회로 가야 하는 터라, 인터뷰 불응에 불만이 있으신 분은 철목왕 김무열 협회장님께 직접 이의를 제기해주십시오.”
“…….”
“…….”
엄중하게 짓누르는 침묵.
철목왕.
그리고 협회장 김무열.
그 이름이 주는 효과는 시문의 예상 이상이었다.
“처, 철목왕!”
“크흠! 협회장께서 부르신다면 어쩔 수 없지…….”
성경 속에 나오는 모세의 기분이 이러할까?
‘이거 뭐, 거의 치트키 수준인데?’
시문은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고.
한국의 가장 지독한 바다를 갈라 버리곤 그사이를 유유히 건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