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9화
129화. 옵션 추가권 (2)
대한민국 대표 아레나 채널인 국아.
현재 국가대항전 특별전을 중계하는 국아의 분위기는 무척이나 무거웠다.
당연했다.
[아아! 팔레스타인 측의 옵션 추가권이 발동됩니다!]
[활동 범위 제한! 하필이면 종목마저 점령지인데…… 팔레스타인 측에서 제대로 준비해왔군요.]
본선 진출 확정국이라는 타이틀이 무너지고.
마지막 희망인 특별전의 시드권만을 바라보는 것이 국민들의 바람일 터.
하나 현재 스크린에서 벌어지는 상황은 그것과 정반대로 흘러가지 않는가?
[아…… 송해설님. 이러면 너무 치명적이지 않나요?]
[치명적이다 못해 시작부터 쐐기를 박아버린 거죠.]
최강엽의 탄식에 송재경이 어두운 얼굴로 답했다.
[맵과 종목이 정해지자마자 활동 범위 제한을 사용하는 걸 보니, 아마 맵과 종목에 따른 다양한 옵션들을 준비해둔 것 같습니다.]
[확실히 팔레스타인측의 옵션 추가가 빠르긴 합니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 말이죠.]
[그렇죠. 특히나 옵션 추가권은 적용 대상이 많으면 많을수록 효력이 낮아지지 않습니까?]
[반대로 적용 대상의 수가 적을수록 효력이 올라가고요.]
최강엽은 송재경이 하고자 하는 말을 빠르게 캐치했다.
[송해설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려는지 알겠습니다. 그러니까 팔레스타인 측의 전략의 핵심은 김시문 선수의 저격이란 거죠?]
[맞습니다. 안 그래도 이번 우리 대표팀엔 마법계가 하나도 없어서, 팔레스타인측과의 상성이 다소 불리한 상황이지 않습니까? 그런데 인원수까지 이렇게 줄어버렸으니…….]
송재경의 말끝이 흐려진다.
왜 인원수가 줄었는지.
그리고 그 원인이 누구인지는 그도 잘 아는 탓이었다.
하나 그것을 방송에서 대놓고 언급할 수는 없는 노릇.
송재경의 말이 끊어지는 걸 눈치챈 최강엽은 능숙하게 멘트를 이었다.
[유일한 조커이자 마법계인 김시문 선수만 막으면 쉽게 이긴다는 판단을 한 거겠지요.]
[맞습니다.]
[우리 입장에선 야속하지만 이해는 갑니다. 팔레스타인 역시 우리나라처럼 이번 특별전의 시드권이 필수적이니까요.]
어지간해선 긍정적인 중계를 이어가야 함에도.
해설인 송재경은 물론 방송의 베테랑인 최강엽마저도 얼굴이 그리 밝지 못했다.
어쩔 수 없었다.
누가 봐도 한국팀의 패색이 짙은 상황.
긍정적인 중계를 하고 싶어도 할 건덕지가 없으니, 아무리 베테랑 MC라도 표정 관리가 어려운 것이다.
하나.
[점령지로 달려가고 있는 팔레스타인팀과 다르게 시작 지점에 정체된 우리 대표팀. 상황을 보아 작전이라도 짜는…… 어어?]
힘겹게 멘트를 이어가던 최강엽의 눈이 둥그레진다.
어두운 기색이었던 송재경 역시 마찬가지였다.
[김시문 선수. 갑자기 허공에 무언가를 쏘아댑니다! 송해설님?]
[기운을 보아 마기 같은데…… 제가 알기론 김시문 선수는 직접적인 흑마법 사용이 불가능하거든요?]
한때 플래티넘을 뛰었던 플레이어답게 시문이 쏜 것이 마기라는 걸 알아차린 송재경.
그러나 지난 플래티넘 데뷔전에서 알려졌듯이.
마족과 같이 중간의 도움이 없다면 직접적으로 흑마법을 사용하는 건, 시문으로서도 불가능했다.
[아마. 무공 같은 게 아닐까요? 김시문 선수가 마기로 전투계의 기술을 사용한다는 건 익히 아는…… 어? 갑자기 짐승의 울음소리가 들립니다!]
[푸른 모래사막엔 몬스터가 없을 텐데요? 잠깐. 이거 어딘가 익숙한 소리입니다만?]
듣기만 해도 보통 야수가 아님을 알 수 있는 섬뜩한 울음소리.
하지만 어딘가 익숙한 울음소리가 들려오자, 두 사람은 고개를 갸웃했다.
이내.
[아앗! 저, 저건!!]
화면을 보던 최강엽과 송재경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든다.
그도 그럴 것이.
[헤, 헬하운드?!]
[헬하운드뿐만이 아닙니다! 펠 배트부터 다크 그리즐리까지! 플래티넘급 마수들이 쏟아지고 있어요!]
푸른 모래사막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존재.
크르릉.
컹컹!
결코 존재해서는 안 되는 마수들이 흡사 증기 기관차처럼.
시커먼 연기를 전신에서 풀풀 흘리며, 푸른 모래사막을 질주하고 있었으니까.
그런 마수들의 질주를 역주행하는 카메라 화면.
이내.
[아아!!]
그 끝을 본 송재경이 커다란 탄성을 내뱉었다.
[그렇군요! 소환진! 방금 김시문 선수가 쏜 마기는 소환진이었나봅니다!]
푸른 모래사막 위로 검게 일렁이는 3개의 균열.
그곳에선 세 종류의 마수들이 쏟아지고 있었다.
* * *
멋들어진 터번.
하나 그곳에 치장된 보석과 기이한 문양들은 일반적인 터번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었다.
그리고 그 터번의 주인.
“음…….”
구레나루까지 멋들어지게 이어진 수염의 남성은 수염을 매만지며, 겨울처럼 차가운 사막을 내려다봤다.
“꼭 이렇게까지 했어야 했나…….”
나지막이 읊조리는 남성.
그의 뒤로.
“당신도 봤잖아요? 그 김시문이라는 자가 얼마나 강력한 플레이어인지.”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려온다.
고개를 돌리자.
“전 수아드가 그렇게 놀라는 거 처음 봤거든요.”
히잡으로 얼굴만 내민 채, 전신을 베일로 둘러싼 여성이 보였다.
그녀는 목소리만큼이나 부드러운 미소를 머금으며 말했다.
“그래서 따로 찾아봤는데. 정말 놀랍더군요. 마법인지 장비인지 모를 그의 공격력은 가히 충격적이었어요.”
여성의 말에 터번의 남성은 헛웃음을 흘렸다.
“나도 놀랍군. 야스민. 네가 누군가를 그렇게 칭찬한다는 게.”
“어머. 반? 당신도 영상을 봤잖아요. 아무리 저라도 그런 공격은 막아 낼 수 없답니다? 치료도 물론이고 말이죠.”
“차기 신녀라 불리는 여자가 약한 소리를 하는군.”
“진짜예요. 반. 당신의 동생도 뭐라 하지 않던가요? 수아드랑 같이 직접 김시문을 겪었는데.”
야스민이란 여성의 말에, 반이라 불린 터번의 남성은 고개를 저었다.
“나도 칸 녀석에게 듣기야 했지만, 이런 식으로 이기고 싶진 않다.”
“후후. 자존심이 상하시나 봐요?”
“아니라면 거짓말이겠지.”
반은 허리춤에 달린 곡도의 손잡이를 꽉 쥐었다.
“나도 그의 영상을 봤다. 김시문은 분명 강하지. 하나 상대는 고작 8명이지 않나?”
“그런데 굳이 한 명을 저격하고, 7명만 상대하는 게 불편하다?”
“당연하다. 야스민. 난 전사다. 나뿐만 아니라 이곳에 참여한 우리 형제들 모두가 그렇지.”
반은 제법 불쾌감이 어린 눈으로 야스민을 바라봤다.
“놈이 강한 건 인정하겠으나, 이는 우리를 너무 무시하는 처사야. 여긴 일반 아레나도 아니고 특별전 아닌가?”
반의 불만에 야스민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불만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다.
“하긴…… 저도 좀 과한 조치라고 생각은 해요. 효력이 약하더라도 상대팀에게 전체 페널티를 주고 싸우는 게 나았을 텐데. 그편이 보기도 좋고요.”
플래티넘부라고 해도 국가대표로 뽑힌 마당이다.
안 그래도 30인이서 8인을 상대한다는 게 썩 좋은 그림이 아닐진대.
이렇게 대놓고 에이스까지 저격해버리면 세간의 시선이 어떻겠는가?
“30명이 이렇게 얌전히 점령지 안에서 대기하는 꼴이라니.”
“반. 당신의 심정은 이해하지만, 그래도 전 감독님의 판단이 맞다고 봐요. 우린 시드권을 반드시 확보해야 하는 입장이잖아요.”
하지만 현재 팔레스타인은 본선 진출의 탈락에 직면해있는 상태다.
더운밥 찬밥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자예드 반 역시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에.
“쯧.”
불만스럽게 혀를 한번 찰 뿐.
더는 말을 꺼내지 않았다.
그때.
“음?”
자예드 반의 눈매가 꿈틀한다.
야스민 기척을 역시 느꼈는지.
“이건…… 우리쪽 궁수조 같은데. 움직임이 다급하네요.”
옆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그곳엔 점령지인 높은 사구의 가장자리에서 궁수조가 다급히 달려오고 있었다.
“적습! 적습입니다!”
“적습?”
점령전이니 새삼 적의 습격이 이상할 것도 없었으나.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데?”
팀의 1위인 자예드 반이 아무런 기척을 느끼지 못하는데 적습이라니?
이는 2위인 야스민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때.
반과 야스민의 고개가 반사적으로 허공을 향한다.
“물러나세요.”
경고와 함께 허공으로 손을 내미는 야스민.
웅.
그 하얀 손끝에선 맑은 이명이 흘러나오며, 하얀 보호막이 생성되었고.
투둑.
치이익!
곧바로 걸쭉한 녹색의 액체가 날아와, 하얀 보호막 위로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이어지는 지독한 악취에 고운 미간을 찌푸리는 야스민.
그녀의 시선은 자연스레 습격자를 향했고.
“저건!”
눈이 휘둥그레졌다.
“펠 배트?”
독한 매연을 휘감은 듯.
시커먼 연기를 풀풀 흩날리며, 찢어진 피막을 펄럭이는 박쥐.
사납게 찢어진 눈과 코, 입에서 녹색의 액체를 뚝뚝 흘리는 그것은 분명 플래티넘급 마수인 펠 배트였다.
“펠 배트가 대체 왜 여기에…….”
“저것들만이 아닙니다!”
황당함이 가득한 야스민.
그녀의 보호를 받았던 궁수가 다급히 아래를 가리켰다.
“아래에서도 마수들이 달려오고 있습니다! 종류를 보아 헬하운드랑 다크 그리즐리 같은데…….”
궁수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타탁.
순식간에 사구의 끄트머리로 달려나가는 자예드 반.
하지만 그는 아래 상황을 확인한 겨를도 없이.
스릉.
순식간에 허리춤에서 곡도를 뽑아 베었다.
동시에.
크헝!
비명을 지르며 두 조각으로 치솟는 시커먼 실루엣.
반은 제 옆으로 떨어지는 헬하운드의 시신을 확인하지도 않은 채, 본대가 있는 점령지로 돌아왔다.
“적습이다! 모두 진형을 잡아라!!”
갑작스러운 반의 지시에도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선수들.
모두 국가대표로 뽑혀 합동 훈련을 치른 플래티넘답게.
“놈들은 사방에서 올라온다. 즉시 힐러진을 중심으로 원형 진형을 갖춰!”
빠르게 진형을 갖춘 팔레스타인 선수들은 힐러진을 중심으로 원형을 이루었다.
전투계와 보조계가 탄탄하다는 위명을 증명하듯.
“신이시여. 우리를 축복하소서.”
“그대의 자비가…….”
“사특한 것을 멸할지니!”
원형 진형을 이룬 팔레스타인 대표팀은 야스민을 중심으로 대규모 버프까지 씌워져, 흡사 인간으로 이루어진 철옹성과 같았다.
하나.
크르르.
키하학!
점령지인 높은 사구로 하나둘씩 모습들 드러내는 마수들의 수는 그런 대표팀의 기세를 무색하게 만들었다.
“……많군.”
가장 선두에선 반이 굳은 얼굴로 읊조린다.
그의 말대로였다.
컹컹!
캬아아!
대충 봐도 백에 가까운 마수들.
심지어.
‘묘하게 진형을 갖추는 느낌인데…….’
맷집으로 유명한 다크 그리즐리를 앞세우고.
그 사이사이로 불꽃을 질질 흘리는 헬하운드와 공중을 선회하며 기회를 엿보는 펠 배트까지.
‘설마 아니겠지.’
힐러진만 없을 뿐이지.
마수들의 조합이나 포지셔닝은 합을 맞춘 플레이어들의 진형과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그리고 늘 그렇듯.
나쁜 예감은 빗나가질 않았다.
꾸어어엉!
시뻘건 안광으로 크게 포효하는 다크 그리즐리.
그것을 신호로.
화르륵.
곳곳에 위치한 헬하운드 수십 마리가 이글거리는 불덩이를 내뱉고.
츄르륵!
허공을 선회하던 펠 배트들이 일제히 녹색의 산성 침을 내뱉는다.
다크 그리즐리의 수를 제외하면 대충 80여 마리.
고로 80여 개의 투사체들이 다발적으로 점령지를 향해 쏟아졌다.
“야스민!”
곡도에 검기를 두른 반이 목청을 높인다.
이어.
“우릴 보호하소서!”
야스민과 보조계들의 시동어가 터져 나오며, 하얀 반구가 팔레스타인 진형을 덮었다.
점령지 전체를 덮어버리는 하얀 방어막.
그위론.
두두두둥!
콩이라도 볶듯.
붉은색과 녹색의 투사체들이 쉴 새 없이 방어막을 두들겼다.
“읏!”
“야스민 님!”
5초는 되었을까?
힐러진 중심에서 양팔을 펼치고 있는 야스민이 비틀거린다.
무리도 아니었다.
화르르르!
치이익.
불과 산성.
심지어 플래티넘급 마수 80여 마리가 일제히 쏟아내는 투사체다.
중동의 차기 신녀로 언급되는 야스민이니 이 정도라도 버티는 것이지.
일반적인 플래티넘 보조계였다면 진즉에 피를 토하고 쓰러졌을 터.
그렇게 다시 5초나 흘렀을까?
“으윽!”
“크흡!”
이번엔 야스민의 주변에서 연계를 이루던 힐러진들이 일제히 비틀거렸다.
그것을 본 반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이대로 가면 끝장이다.’
본디 보호막이란 관련 특성이 없는 이상, 코스트 낭비가 무척이나 심한 기술이다.
보조계가 탄탄하기로 유명한 팔레스타인의 힐러진이라 대규모 보호막을 이만큼이나마 유지하는 것.
하나 이대로는 위험했다.
‘야스민과 힐러진의 성력이 전부 고갈되면. 우리 전투계만으로 전투를 치러야 해.’
아무리 힐러진 만큼이나 탄탄하다는 팔레스타인의 전투계라도.
100여 마리에 가까운 마수들을 상대로 보조계의 지원 없이 싸워내는 건 무리였다.
같은 생각을 한 것일까?
“반 님! 이대로는!”
곁에 있던 검사가 불안한 눈으로 외친다.
따로 목소리를 내지 않았으나, 진형을 이루고 있던 다른 전투계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빌어먹을!”
짧게 욕지거리를 내뱉는 반.
이내 그는 한 걸음 나아가며 외쳤다.
“보호막을 거두고 백병전으로 들어간다! 탄력적으로 진형을 유지하며, 궁수진은 펠 배트부터 노려라!”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스르르.
팔레스타인 팀을 감싸던 대규모 보호막이 사라진다.
정확히는 축소되었다고 해야겠지.
“다들 도트힐 위주로 최대한 기운을 관리하고, 서로를 1순위로 보호하세요. 우리가 무너지면 전사들도 끝입니다!”
야스민의 외침과 함께 10명의 힐러진에게로 축소되는 보호막.
덕분에 여유가 생겼는지.
힐러들은 야스민의 지시대로 백병전에 들어간 전투계들을 보조했다.
“흐압!”
“파워 슬래시!”
크르릉!
100마리에 달하는 마수와 30인의 인간이 맞붙는다.
당연이 점령지인 높은 사구는 순식간에 난장판이 되었다.
“죽어랏!”
슈아악.
그중에서 가장 돋보이는 것은 멋들어진 터번의 남성인 자예드 반.
“모래칼날!”
그는 S급 특성인 모래 조형으로 여러 개의 검을 만들어, 일격에 다수의 마수를 베어냈다.
푸른 모래의 특징 때문일까?
쩌적.
끼이잉…….
냉기를 머금은 반의 모래칼날은 유독 헬하운드에게 강한 면모를 보였다.
“다크 그리즐리는 상위 7위권 이상의 전사들이 최대한 담당하라!”
그는 헬하운드들을 지속적으로 처리하고 오더를 내리며, 가장 체급이 높은 다크 그리즐리까지 3마리나 상대해나갔다.
가히 팔레스타인 플래티넘부의 1위에 걸맞은 무력.
하지만 그의 표정은 그리 밝지 못했다.
‘이놈들. 마수답지 않게 무척이나 체계적이다.’
속된 말로 ‘지X 맞다’라고 표현할 수 있을 정도로.
호전적인 마수답지 않게, 눈앞의 마수들은 과할 정도로 체계적인 움직임을 보였다.
‘펠 배트야 그렇다 치지만. 헬하운드가 원거리 공격만 감행하다니. 이게 말이나 되는 일인가!’
헬하운드.
달리 지옥견이라 불리는 저 마수는 지금 세 종류의 마수 중 가장 호전성이 높은 녀석들이었다.
저렇게 원거리 공격도 가능했지만, 불길이 줄줄 흐르는 이빨과 발톱이 훨씬 강력했고.
실제로 개의 외형답게 원거리보단 근거리로 물어뜯는 것을 즐겼다.
그것이 보편적인 지식이었고, 지난 아레나들에서 자예드 반이 몸소 겪은 정보였는데.
컹컹!
화르륵.
지금 마주하는 헬하운드는 정반대였다.
이유야 뻔했다.
‘김시문! 그놈의 짓이 분명하다!’
이미 세계를 놀라게 했던 플래티넘 데뷔전에서 보여주지 않았는가?
그가 마족을 멋대로 컨트롤하는 것을 말이다.
하물며 그 아래 단계인 마수쯤이야, 일도 아니겠지.
반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망할! 계속 이런 구도면 야스민이 있어도 버티지 못할 텐데!’
결국 그의 우려대로.
“끄아악!”
“요셉!”
사상자가 하나둘씩 생겨나기 시작했다.
세계적으로도 인정받는 팔레스타인의 백병전이었지만.
본능을 억제한 플래티넘급 마수들의 연계는 쉬이 받아낼 수 있는 게 아닌 것이다.
‘어쩔 수 없다. 모두가 살 수는 없는 노릇.’
이를 악문 반의 시선이 허공을 힐끔한다.
‘어떻게든 점령 포인트만 채우면 된다. 어차피 김시문은 여기에 오지 못하니까.’
현재 점령 포인트는 총 68%.
조금만 버티면 32% 정도는 채울 수 있으리라.
그렇게 생각하는 반의 머리 위로.
스으으.
짙은 그림자가 드리운다.
생각을 필요도 없다.
반은 즉시 몸을 옆으로 던졌고.
쿠우우웅.
묵직한 진동과 폭음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재빨리 몸을 일으키는 반.
이내 그의 몸은 얼어붙은 듯 고정되었다.
후두둑.
방금 자신이 서 있었던 자리.
그곳에서 거대한 모래 더미가 허공으로 떠오르고 있었으니까.
그것이 모래로 이루어진 주먹임을 파악한 반은 저도 입을 슬쩍 벌렸다.
“이건 또 무슨……!”
모래 골렘.
상반신만 이루어진 모래 골렘이 어느새 두 팔을 번쩍 들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누구의 작품인지 대번에 연성되자.
“이건 해도해도 너무하잖아…….”
100마리에 달하는 마수.
그리고 골렘까지.
정작 그토록 경계했던 김시문의 뇌창이나 화검, 검은 광선 따위는 보이지도 않는데.
어찌 상황이 이렇게 되었단 말인가?
‘감독의 판단이 옳았다.’
체면이고 뭐고 대놓고 김시문을 저격했던 팔레스타인의 감독.
그가 얼마나 옳은 판단을 내렸고, 자신이 얼마나 오만했음을 깨닫는 자예드 반.
심지어 그 올바른 판단조차 김시문을 온전히 막지 못하고 있다.
“알라시여…….”
멍한 반의 입이 저도 모르게 신을 찾는다.
그 소리를 들었는지.
깍지를 낀 채, 반을 내려보던 모래 골렘이 잠시 움직임을 멈췄다.
이내.
-안…… 타깝지만.
입으로 추정되는 부분이 나타나며, 모래가 마찰하는 괴상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당신의…… 신은 여기…… 없어요.
그것을 끝으로.
쿠우우우우웅!!
거대한 모래 골렘의 폭력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