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7화
127화. 진압 완료
이상민.
12년간 활동해온 1세대 플레이어로서, 지난 10년간 플래티넘에 머물렀던 소위 말하는 1세대의 망령.
혹은 수문장으로 불리는 플레이어.
하지만 그 역시 한때는 재능을 촉망받던 인재였고.
다이아의 벽 앞에 선 플래티넘 상위 구간의 플레이어였다.
당연히 현재 내로라하는 플레이어들과의 아레나 경험도 다수 있었고.
세계적인 랭커이자 대한민국 각성자 협회의 최고 위치에 오른 남자.
철목왕 김무열과의 아레나 경험 역시 보유하고 있었다.
그랬기에.
‘말도 안 돼…….’
김무열과 몇 번의 아레나를 함께한 이상민으로선, 작금의 현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
냉철하다 못해 칼같이 날카롭던 그 사내가.
-어떤 미친 새끼가 그딴 개소리를 지껄인단 말이냐!!
저토록 흥분하는 모습을 말이다.
사실 처음에 목소리를 듣고도 의심했었다.
‘저게 진짜 김무열이라고?’
철목왕 김무열.
정계, 재계와도 접점이 깊은 그는 한국 재계의 정점이라 불리는 성삼의 이순철 회장과도 친분이 상당했다.
일신의 무력과 능력부터 인맥까지.
무엇 하나 부족한 것이 없는 그가 고작 갓 플래티넘이 된 플레이어와 직접적인 연락을 주고받는 사이라니?
하지만 거기까지 생각할 여유는 없었다.
-답해라! 대체 어떤 머저리가 그딴 개소리를 지껄였냐고 이 내가 묻지 않나!!
단 한 번도 언성을 높인 적이 없던 김무열.
이는 이상민뿐만이 아니라.
김무열을 아는 대한민국 어느 국민에게 물어도 같은 말이 돌아올 것이다.
그 냉철한 협회장이 흥분한 모습은 본 적이 없다고.
아니.
애당초 흥분이라는 감정이 그 사내에게 존재하기는 하냐고 말이다.
한데.
“음. 본인들은 답할 마음이 없나 본데요?”
-감히…… 제까짓 것들이 날 능멸해?!
그 일이 벌어지고 있다.
-고작 플래티넘 따위가 이 김무열의 말을 씹는다는 말이지?
흥분이라는 감정을 배제하고.
폰 너머에서 들려오는 말투만 놓고 보면 이상민이 기억하는 그 김무열이 분명 맞기는 했다.
다이아 랭크 이하는 취급도 하지 않는 그 고고한 김무열이 말이다.
그리고.
-후우…… 김시문.
“예.”
이 믿기지 않는 현상은 단발적으로 한낮의 꿈 따위가 아니었다.
-내가 도착할 때까지. 그곳에서 단 한 놈도 꼼짝 못하게 해라.
끔찍한 악몽의 시작이었다.
“그건 저라도 좀…… 저쪽도 플래티넘이잖아요? 명색의 국대인데 제가 어떻게 막 잡아둡니까.”
콰아앙!
-그럼 사지를 갈가리 찢어서라도 잡아놔!!
협회의 건물이 걱정될 정도의 폭음.
그와 함께 시문의 폰에서 넘어오던 소리가 뚝 끊어진다.
통화가 끊어진 것이리라.
“…….”
“…….”
아까와 다른 의미로 얼어붙어 버린 대기실.
시문은 벙어리가 되어버린 그들의 속마음을 대변해주었다.
“여러분, X됐네요?”
* * *
[속보! 갑작스러운 협회장의 행차?]
[협회 최상층의 폭음과 격노한 철목왕! 비서장 최창욱 ‘사소한 문제일 뿐이다’]
[긴급 입수! 철목왕을 분노시킨 건 플래티넘부? 국대 내부 분열 논란!]
[‘정녕 다 죽고 싶나?’ 협회장의 연락에 국내 유수길드 모두 화들짝!]
[논란의 원인은 정하준과 김시문? 전갈 길드의 김종준. ‘사태 파악 중. 우려할 일은 아니야’]
[플래티넘부의 불화설. 다급한 참가 길드들과 침묵하는 김시문]
숙부인 김무열과의 통화가 끝난 지 고작 3시간.
한데 폭포처럼 쏟아지는 기사량은 그야말로 어마어마했다.
그뿐만 아니었다.
-뭐가 어케 된 거임? 철목왕이 빡쳤다고?
-ㅇㅇ. 내 친구가 협회 직원인데. 협회장 개빡돌았다던데? 그렇게 화난 거 처음 봤데.
-ㄹㅇ? 그 인간이 화라는 게 있는 인간임?
-찔러도 피 말고 쇳물이 나올 인간인데…….
-진짜임. 우리 누나도 협회 직원인데. 협회장이 살기 풀풀 풍기면서 주차장으로 내려갔다더라.
-난 방금 삼촌이랑 통화했는데. 지금 국대훈련장 난리라던데? 자세한 건 언급 못해준데.
아레나 커뮤니티를 비롯해 온갖 사이트가 들끓었다.
그럴 수밖에.
1세대로 활동할 때부터 냉철함의 대명사였던 김무열.
과거 개인 방송으로 보여주었던 그의 냉철함과 잔혹함은 적군은 물론, 아군까지도 몸서리치게 했다.
당연히 협회장이 된 이후론 말할 것도 없었다.
폰 화면을 만지던 시문의 손이 멈춘다.
[나 국대훈련장 현직 관리잔데……. 진짜 장난 아니다.]
-현직 관리자는 씹 ㅋㅋㅋ 난 골렘 최창욱이다. 이 새끼야.
-진짜야…… 여기 지금…… 그냥 피바다라고만 알고 있어라…….
-ㅈㄹ을 하세요 ㅋㅋ. 뭐 협회장이 국대들 패 죽이기라도 한다냐?
-피바다 ㅇㅈㄹ ㅋㅋ.
-아무리 철목왕이라도 국대를 왜 패 ㅋㅋ. 병신이 어그로도 못끔?
현직 관리자라는 제목 때문일까.
유독 조회수와 댓글이 폭발하는 한 커뮤니티의 글.
그것을 본 시문은 피식 웃음을 흘렸다.
“여기 소속 직원들도 커뮤니티를 하긴 하는구나.”
하긴.
어느 정도 익명이 보장되는 곳이라면 못할 것도 없긴 하다.
-구라 ㄴㄴ. 당장 내일 경긴데. 그리고 협회장 성격이면 싹 다 쳐내고 말지. 굳이 손 안 더럽힘.
-22. 근데 어그로는 잘 빤 듯? 댓글수 미쳤네 ㅋㅋ.
-이미 참가 길드들한테 경고 했다 아님? 기사보니까 그런 거 같던데.
-ㅇㅇ 나 그 길드원 중 하난데. 지금 간부 소집되고 난리 났음.
-그럼 끝이지 무슨 훈련장이 피바다야 ㅋㅋㅋ. 오바도 정도껏 싸십쇼. 닝겐.
스크롤을 내릴 때마다 실시간으로 늘어나는 댓글들.
시문은 고개를 절레 저었다.
“글쓴이는 억울하겠네.”
진짠데.
안타까운 어조로 문밖을 힐끔하는 시문.
더 이상의 비명은 들려오지 않았지만.
방금까지만 해도 저 문 너머에서 어떤 비명이 들려왔는지는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옆에 있는 유리벽.
그곳에 비치는 안절부절못하는 협회와 훈련장 직원들의 모습까지.
특히나 협회의 인물들 중 2미터에 달하는 사내.
골렘 최창욱이 당혹스러운 얼굴까지 고려해보면, 익명의 직원이 쓴 피바다는 결코 허황된 글이 아니리라.
‘아마 저 사람들 중 한 명 같은데. 누구이려나?’
점점 잦아지는 바깥의 부산함에 다시 폰으로 시선을 돌리려던 찰나.
벌컥!
응접실의 문이 거칠게 열리며, 다 가시지 않은 외부의 부산함이 내부로 흘러든다.
“최창욱.”
“예, 협회장님.”
단 3시간 만에 대한민국을 들끓게 한 사내.
“저 버러지 새끼들 전부 치워버리고. 국대 명단에서도 치워.”
“예? 하지만…… 알겠습니다.”
깜짝 놀라 반문하는 최창욱.
그러나 자신마저 베어버릴 듯한 무시무시한 주군의 눈빛에 조용히 문을 닫고 나갔다.
“후…….”
잘 벼려진 칼날처럼.
늘 차분하고 날카롭던 목소리가 불안정하게 흔들린다.
깊은 한숨을 쉰 사내.
김무열은 터덜터덜 걸음을 옮기며, 행커치프로 두 손을 거칠게 닦았다.
하나.
“빌어먹을!”
묻은 액체가 많은 것일까?
아니면 시간이 조금 지난 터라 말라붙은 것일까.
제대로 닦이지 않는 피에 김무열은 신경질을 가득 담아, 행커치프를 집어던졌다.
빡.
천과 벽이 만났다곤 믿기 힘든 소리가 들려온다.
“하찮은 버러지 새끼들이! 뭐? 보이콧?!”
쾅!
거칠게 숨을 몰아쉰 김무열은 옆에 책장 하나를 가볍게 엎어버리곤, 시문을 향해 다가갔다.
흡사 분노로 가득한 야수를 떠올리는 행차.
어지간한 사내들도 절로 긴장할 만큼 무시무시한 기세임에도.
호록.
탄산을 홀짝인 시문은 태연하게 맞은편에 풀썩 앉는 숙부를 바라봤다.
이내.
“숙부가 이렇게 인기 많으신 줄은 몰랐어요. 당장 아이돌로 데뷔해도 대박나겠는데요?”
이 험악한 분위기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여유로운 목소리로 말하는 시문.
“……갑자기 무슨 개소리냐.”
그에 김무열이 으르렁거렸으나 그뿐.
폰을 살랑살랑 흔드는 모습에 곧바로 혀를 찼다.
“쯧. 쓰레기들이 벌써 입을 터나 보군.”
“이 난리를 쳤는데 안 떠드는 게 이상하죠.”
시문은 음료를 내려놓고 말했다.
“그러게 적당히 하시지 그러셨어요?”
“죽은 놈은 없다. 이만하면 된 것 아닌가.”
여기서 내게 더 얼마나 적당히 하라는 거지?
그러한 김무열의 살벌한 시선에 시문은 어깨를 으쓱했다.
“하긴, 숙부치곤 꽤 양호하게 끝나긴 했죠.”
철목왕 김무열.
필요하다면 살인도 불사하는 이 남자는 실제로 앙숙이라곤 하나.
조카인 자신마저 암살하려던 경력이 있는 남자였다.
그런 이가 사상자 하나 없이 일을 끝냈다는 건.
정말이지 많은 자비가 들어갔음을 의미했다.
하물며 그것이.
“감히 플래티넘 주제에 내 뜻을 거역한 놈들이다. 숨이 붙어있는 것만으로도 매우 양호한 처사야.”
천하의 철목왕의 뜻을 거스른 이라면 말할 것도 없었다.
“그래도 나름, 뒷배가 있는 사람들이잖아요.”
만년 플래티넘이라곤 하나.
뒤집어 말하면 플래티넘 상위권에서 자리하고 있는 나름대로 실력 있는 플레이어들이다.
당연히 그들의 뒤에는 국내 유수 길드 다수가 버티고 있었다.
하지만.
“하! 그깟 1세대의 망령들이 뭘 어쩌겠다는 거지?”
천하의 철목왕.
대한민국의 협회장이신 김무열에게는 아무 의미도 없는 것일까?
“당장 저 버러지들의 숨통을 끊어도, 그깟 놈들은 감히 내게 입도 뻥끗하지 못한다.”
그는 조금의 망설임 없이 답했다.
아니.
“애당초 같은 버러지이니 저딴 것들을 길드원으로 받은 거겠지. 난 버러지들은 신경 쓰지 않는다. 개기면 죽여버릴 뿐.”
신랄하게 까 내리다 못해, 믹서기로 산채로 갈아버렸다.
그런 숙부에 혀를 내두른 시문은 너털하게 웃었다.
“이런 분이 제 숙부라니. 참 든든하네요.”
“개소리 말아라.”
그러자 대번에 눈에 불을 켜며 노려보는 김무열.
“내가 이곳에 온 것은 네놈의 뒤를 봐주기 위해서가 아니야.”
그는 달려들기 직전의 야수처럼 낮게 으르렁거렸다.
마치 시문에게 경고라도 보내듯이 말이다.
“저 버러지들이 감히 나의 뜻에 반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내 권위에 도전한 것이야!”
어지간한 다이아 플레이어들도 바짝 긴장할 만큼 위협적인 경고였으나.
“하긴, 숙부에게 반기를 들고 살아남은 사람은 몇 없죠.”
시문은 그저 묘한 말투로 어깨를 으쓱할 따름이었다.
그게 거슬린 것일까.
김무열의 눈매가 잠시 꿈틀했지만 그뿐.
“후…… 어쨌거나. 앞으로 네놈의 참여에 제동을 걸 놈은 없을 것이다.”
시문의 페이스에 말려들지 않겠다는 듯.
김무열은 거칠게 앞머리를 쓸어올리며 이야기를 끝맺었다.
시문은 ‘만약 그래도 있으면요?’ 같은 질문은 하지 않았다.
‘만약 여기서 나에 대해 불만을 제기하는 사람이 더 나온다면…… 그땐 정말로 다 죽어 나가겠지.’
지금처럼 선수들 좀 만져주는 선에서 끝나지 않을 것이다.
아마 소속한 길드를 통째로 뿌리 뽑고.
그 우두머리나 간부급들은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져버리겠지.
아마 전갈 길드의 부길마인 김종준급이나 되어야 목숨 정도는 부지할 터.
그만한 전력은 있는 자였다.
저 김무열이라는 사내는 말이다.
“그나저나, 이제 어째요?”
“뭘 말이냐.”
시문은 피를 칠갑한 국대들을 호송하느라 부산스러운 바깥을 턱짓했다.
“보아하니 진짜 숨만 붙여둔 거지. 부상이 심해 보이는데. 내일 경기에 참여할 수 있을까요?”
“방금 듣지 않았나? 저놈들은 국대 명단에서 모두 지워버릴 것이다.”
“으음.”
그에 시문이 작게 탄식한다.
‘어디보자. 이상민을 제외한 대여섯을 빼곤 싹 쓸어버렸으니…….’
본디 30명이 정원인 국가대항전 특별전.
거기서 이상민과 그를 옹호하던 6인을 제외하곤 전부 실려 나가는 판국이다.
그럼 자신까지 포함해 총 8인으로 내일 특별전을 치러야 한다는 것인데.
살짝 모여드는 시문의 미간이 만족스러운 것일까?
“왜, 자신이 없나?”
지금까지 성이 가득했던 김무열의 입가가 처음으로 삐뚜름하니 올라갔다.
“하긴, 아무리 겁대가리를 상실한 네놈이라도. 고작 8명이서 훈련된 30인을 이기기란 쉬운 일이 아니겠지.”
심지어 국대로 선발될 정도면 나름 플래티넘 중상위권을 구가하는 이들이다.
물론 다이아를 목표로 하는 진짜 실력자들은 국대선발전에 참여하지 않는 경우도 많았지만.
그렇다고 참가하는 이들의 실력이 낮아지는 것은 아니었다.
하물며 그런 이들이 몇 달간 단체전을 위해 합동 훈련까지 했다면야.
“하나 거래 조건을 바꿀 생각은 없다. 이렇게 친히 네놈의 뒤까지 봐줬으니까. 이번 특별전을 패배하면 각오하도록.”
평소의 칼날 같은 모습.
더불어 비소 한 스푼이 얹어진 김무열에 시문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뭣하러 몸소 행차하셨나 했더니. 저런 계산도 깔려있었나 보군.’
애당초 자신에게 대표팀 합류를 권한 시점부터 지진 않을 거라는 확신이 있었겠지만.
사람 일은 언제나 만일이라는 게 있지 않은가?
혹여나 경기가 지게 될 수도 있었고.
그렇게 되면 자신에게 모든 책임을 묻겠다는 만에 하나의 계산까지 깔려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계산을 좀 더 확실히 하기 위해, 오늘 대표팀의 반수 이상을 쳐낸 거겠지.
물론 숙부답게 제 오만한 위신과 성질을 풀기 위해서가 1순위겠지만.
“정말이지. 철저하시네요. 숙부, 존경스러울 정도예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시문.
진심이었다.
전생의 경험으로 나름 심계도 자신 있는 시문이었으나, 숙부 김무열은 사소한 디테일까지도 놓치지 않았다.
“그래도 걱정 마세요.”
고개를 젓던 시문의 입가에 미소가 걸린다.
“설령 저 혼자 나가게 되더라도, 특별전의 승리는 문제없으니까.”
그 미소는 숙부 김무열의 비소와는 정반대의 해맑은 미소였다.
그게 불편한 것일까.
“하!”
김무열은 코웃음을 쳤다.
“오만이 하늘을 찌르는구나.”
“그런가요? 뭐, 숙부도 그러시니까. 아마 집안 내력인가 보죠.”
지지 않고 응수하는 시문.
차마 반박하지 못하고 입을 앙다무는 숙부에게 물었다.
“숙부, 우리 사이의 감정 같은 거 다 접어두고, 객관적으로 말씀해보세요. 제 말이 틀린 거 같습니까?”
“…….”
말없이 시문을 바라보는 김무열.
당장이라도 날카로운 독설로 저 오만한 조카놈을 난도질하고 싶었지만, 김무열은 차마 입이 열리지 않았다.
당연했다.
시문과의 감정은 감정이고.
랭커 철목왕의 안목은 분명, 이 망할 조카놈이 혼자서도 능히 특별전을 쓸어버릴 것이라 말하고 있었으니까.
김무열의 침묵에서 답을 얻었다는 듯.
“거봐요. 그러니 특별전은 걱정 마시고. 나중에 제가 맡길 일이나 잘 처리해주세요.”
시문의 미소가 한결 더 짙어졌다.
그에 김무열의 입가에 서렸던 비소는 씻은 듯 사라졌다.
“……부디 네놈이 꼭 패배하길 바라겠다.”
“숙부, 그러다 또 녹취록 따입니다?”
“흥! 그전에 네놈의 목이 따이겠지.”
“하핫!”
곧장 응수하는 숙부에 빵하고 웃음을 터뜨리는 시문은 턱을 괴곤 물었다.
“과연 그럴까요? 숙부는 제가 무슨 말을 하든, 들어주실 수밖에 없는데.”
“놈! 특성 하나 막혔다 하여, 내가 네놈 하나를…….”
“정 믿기 힘드시면 지금 시험해보셔도 됩니다.”
묘한 뉘앙스로 눈썹을 까딱이는 시문.
그에 속이 끓어올랐으나 그뿐.
“……패배하면 각오나 하도록.”
김무열은 왠지 모를 불안감에 벌떡 일어나 자리를 떴다.
* * *
다음 날.
[드디어 이날이 왔습니다!]
[전국민이 애타는 마음으로 시청하실 거라 생각되는데요!]
대한민국 대표 아레나 방송.
국아의 MC 최강엽과 해설 송재경은 무척이나 흥분해있었다.
당연했다.
[이번에 플래티넘부에 합류한 선수를 떠올리면 애가 안 탈 수 없죠!]
[하하! 맞는 말씀입니다. 제가 뻔한 소리를 했네요.]
옵션 추가권으로 합류한 한 명의 선수.
각종 기록들을 갈아치우며 최근엔 플래티넘 데뷔전으로 세계적인 인기를 누리는 유망주가 참가하지 않았는가?
물론.
[잠시의 불미스러운 일이 있긴 했지만, 협회측에서 잘 해결되었다고 하니까요.]
[그렇습니다! 저희는 그저 응원하고, 또 응원만 하면 되는 거죠!]
약간의 잡음이 있긴 했지만.
그조차 협회장이 나서 직접 마무리했으니 앞으로는 승리만을 바라보며 된다.
라고.
최강엽과 송재경은 물론, 국아를 보고 있는 시청자들도 생각했다.
[오오! 애국가가 들려오는 걸 보니, 플래티넘부 선수들이 입장하는…… 어?]
특별전을 치를 선수들이 입장하기 전까진 말이다.
[저기…… 송해설님? 제 눈이 이상한 걸까요?]
[제, 제가 묻고 싶은 말입니다만.]
당황이 가득 묻어나 말을 더듬는 두 사람.
당연했다.
[선수들이 8명밖에 안 보이는데요? 설마 이번 참가 인원은 저 8명이 전부는 아니겠지요?]
애국가와 함께 입장한 한국의 국대들.
그들의 인원수는 시문이 추가된 31명이 아닌, 단 8명이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