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한 천재 플레이어의 신화급 무기창조-126화 (126/349)

제126화

126화. 플래티넘 국가대표 (4)

플래티넘.

기의 형상화가 가능한 구간으로, 스스로의 실력이든 랭크의 보정이든 간에.

각종 무기에 기운을 담을 수 있는 수준의 랭크.

당연히 화살도 그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았고.

쐐애액!

플래티넘의 궁수들이 쏘아 대는 화살들은 하나같이 희미한 아지랑이를 두르고 있었다.

아마 A급 이하의 방어구는 종잇장처럼 찢어 버리리라.

그 살벌한 공세 속에서도.

“음.”

시문은 태연했다.

아니.

‘새로 얻은 걸 좀 시험해 보려 했더니…… 쯧, 쓸 필요도 없겠네.’

오히려 실망했다.

‘화살과 볼트를 섞어 놓은 것까지는 좋은데.’

일반적인 화살과 그것보다 다소 짧은 석궁의 화살 볼트.

서로 날아드는 속도가 달라 쳐 내거나 방어하기에 다소 까다로운 구성이었지만, 그뿐.

‘조화가 1도 없어.’

그 이상의 전략적인 부분은 조금도 담겨 있지 않았다.

본디 볼트는 사람이 아닌 석궁이 시위를 당겨, 활보다 장력이 강하다.

당연히 투사체가 되는 볼트 역시 일반적인 화살보다 위력이 강력했다.

고로.

‘석궁을 활보다 반 박자 늦게 쏘거나, 아예 먼저 쏴서 화살이 닿을 틈을 만들어 줘야 하는데.’

지금 대표팀 궁수진이 펼치는 사격은 그러한 개념이 조금도 없었다.

그저 일제 사격이라는 전력하에 다발의 화살만 쏘아 댈 뿐.

‘아마 감정적인 상태라서 그런 거……겠지?’

부디 꼭 그래야 할 텐데.

한숨을 푹 쉰 시문은 팔을 늘어뜨린 그대로 손가락을 튕겼다.

따악.

드드득.

빠르게 치솟는 바닥.

경기장이 석재로 이루어진 만큼, 치솟은 바닥은 순식간에 구체 형태의 매끈한 보호벽을 만들었다.

하나 아무리 단단히 연성된 보호벽이라도, 오러가 실린 화살을 막아 낼 수는 없는 노릇.

“저러면 도망도 못 가! 전부 달려!”

상황을 지켜보던 정하준은 눈을 반짝이며 신호했고.

진형을 갖춘 전투계들은 무기를 앞세우며, 보호벽에 둘러싸인 시문에게 달려들었다.

“오러 화살이 놈의 보호벽을 뚫으면 리치가 긴 놈들부터…….”

신이 났던 정하준의 목소리가 뚝 멈춘다.

그럴 수밖에.

오러 실린 궁수진의 화살.

A급 방어구도 찢어발기는 오러 화살이.

티디딩.

너무나도 허무하게 튕겨 나갔으니까.

“어떻게…….”

얼이 빠지는 정하준.

하나 그뿐.

“그, 그냥 조져! 어차피 상대는 하나야!”

정하준은 돌진을 멈추지 않고 소리쳤다,

‘괴물 같은 놈이니 오러 화살쯤이야 막힐 수 있어!’

기의 형상화가 이루어지는 공격 중 가장 약한 것이 오러 화살 아니던가?

손을 떠나는 투사체인 만큼.

검기나 권기와 같은 타 기의 형상화보다 응집력부터 컨트롤, 위력까지 골고루 떨어지긴 했다.

하지만 무기를 쥐고 달려드는 지금은 달랐다.

‘이건 S급 방어구도 직격당하면 치명상을 면치 못하지.’

무기에 직접적으로 씌워진 오러엔 S급 방어구도 뭉텅뭉텅 잘려 나간다.

심지어 무기의 종류까지 다양하지 않던가?

단체전에 걸맞게 창부터 도끼, 그리고 둔기류까지.

거기에다 창 하나만 해도 장창과 랜스 등 여러 종류였고.

이는 도끼와 둔기도 마찬가지였다.

그 어떤 상황이 펼쳐지더라도 능히 대처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 미친 뇌창과 화검만 아니면 된다.’

시문에 대한 정보는 진즉부터 알고 있는 정하준이었다.

그리고 그 대처법까지도.

‘놈이 만약 그것들을 사용하면…….’

달려가던 정하준의 시선이 뒤편을 힐끔한다.

날렵한 단궁의 시위를 당기고 있는 여성.

최효연과 눈을 맞췄다.

궁수답게 그것을 포착한 그녀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다.

“좋아! 전부 밀어 버려!”

한결 마음이 놓인 정하준이 방패를 고쳐 쥐고.

어느새 도착한 시문의 보호벽에 오러를 두른 방패를 들이박으려던 그때.

따악.

맑고 경쾌한 소리가 들려온다.

정하준은 당황하지 않고 외쳤다.

정확히는.

“놈이 뭘 하든 쫄지 말고 집중…….”

외치려고 했다.

콰가가각!

오러를 두른 방패를 넘어 어마어마한 충격이 엄습하기 전까진 말이다.

방패를 두드리는 충격에 몸을 가누기도 전에.

“아아악!”

“끄, 끄륵!”

사방에서 비명이 들려왔다.

두 다리로 석재 바닥에 깊은 고랑을 만들며.

“어서 보호막을 펼쳐!”

“중상자부터 치료해!”

“이것 좀 빼 줘!”

어느 정도 밀려나고 나서야 정하준은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이, 이게 대체…….”

난장판.

전봇대보다도 굵은 돌가시들이 주변의 전투계들을 모조리 꿰뚫은 것이다.

주변만이 아니었다.

“이쪽도 케어 좀 해 줘!”

“안 돼! 거리가 안 닿아!”

시문을 휘감았던 보호벽을 중심으로.

원으로 에워싸고 달려들던 전투계들이 모조리 꿰뚫려 버린 것이다.

정하준처럼 방패를 장착하지 못한 전투계들 대부분이 크고 작은 부상을 입은 상태.

정하준의 두 눈에 의문이 꽉 들어찬다.

‘어떻게 된 거지? 다들 최소 A급, 대부분이 S급의 방어구를 착용하고 있을 텐데…….’

그게 아니더라도.

국대 선발에서 뽑힌 이들인 만큼, 기본적으로 국내 플래티넘 상위권을 구가하는 이들이다.

이런 돌가시 따위는 얼마든지 대처할 수 있어야 할 텐데.

웅.

정하준은 곧장 검기를 씌워 돌가시를 내리쳤다.

깡.

“읏!”

저릿하게 전해져 오는 반발력.

놀랍게도.

‘고작 돌 주제에…… 내 검기를 막아 낸다고?’

검기를 씌웠다는 사실이 무색할 정도로.

돌가시엔 어떤 흠집도 가지 않았다.

도리어.

‘마치 검기로 검기를 내려친 느낌이야…….’

검기도 버텨 내는 어마어마한 강도를 자랑했다.

정하준은 귀신이라도 본 듯.

멍한 얼굴로 고슴도치처럼 뾰족한 가시들이 돋아난 보호벽을 바라봤다.

이내.

후드득.

사방으로 뻗어 나갔던 돌가시를 비롯한 보호벽이 무너진다.

그리고 드러나는 뚜렷한 이목구비의 미남자.

시문의 여유로운 표정에 정하준은 황급히 정신을 차렸다.

“궁수들! 전부 자유 사격으로…….”

하나 정신 차린 그가 다른 오더를 내리기도 전에.

쿠웅.

강렬한 무언가가 정하준의 두 어깨를 짓눌렀다.

정하준뿐만이 아니었다.

“큽!”

“헉!”

힐러진의 케어를 받으며 몸을 일으키던 전투계들이 모조리 땅에 처박힌다.

뒤편에서 지원 중이던 힐러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단 한 걸음에.

20여 명의 플레이어들이 일제히 바닥에 처박힌 것이다.

그런 이들의 머리 위로.

“실망스럽네요.”

뚜렷한 미성이 들려왔다.

모두를 짓누르고 있는 무형의 기운 때문일까.

“아까 듣자 하니 여기 대다수가 다년간 특별전에 참가했다던데. 무력은 그렇다 치더라도 전략이 너무 허접한데요?”

저벅

“도저히 다년간의 특별전 경험이 있다고는 믿어지지가 않아요.”

그렇게 읊조리는 시문의 목소리와 발걸음이 무척이나 크게 들려왔다.

그 말이 치욕스러운 건지.

아니면 전신을 짓누르는 무형의 힘 때문인지는 몰라도.

바닥에 처박힌 20여 명의 플레이어들은 꼼짝도 못 한 채, 그저 파르르 몸을 떨 뿐이었다.

그중.

“빌어……먹을!”

방패를 지팡이 삼아 짧은 머리의 남성이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그의 전신으론 기의 형상화 특유의 아지랑이가 일렁거렸다.

‘과연 선발전 1위네.’

실망이 가득했던 시문의 눈에 작은 흥미가 어렸다.

플래티넘부 선발전의 1위인 정하준.

그 성적에 걸맞게.

‘전신에 오러를 덮어씌워 저항할 줄이야.’

그는 전신에 기의 형상화를 일으켜, 천마군림보의 억제력에 저항하고 있었다.

‘방어구에 오러를 담는 건 꽤 어려울 텐데…… 방패를 쓰는 플래티넘이라 그런가?’

한 손 검과 방패가 주력인 정하준.

그래서인지.

그는 전신의 방어구에도 자신의 오러를 능숙하게 형상화시켰다.

하지만 그뿐.

‘플래티넘인 이상 저 상태를 오래 유지할 순 없겠지.’

스탯도 스탯이지만 일종의 깨달음 차이랄까?

오러가 넘쳐나는 사람이 아니고서야.

저런 식으로 전신에 오러를 형상화하는 건 무척이나 비효율적이었다.

고로 저렇게 오러를 낭비한다는 건.

‘짧은 시간 안에 모든 걸 다 태우겠다는 뜻이겠지.’

시문의 예상을 증명하듯.

“으아아아!”

발악적인 함성과 함께 달려드는 정하준.

흡사 멧돼지를 방불케 하는 그의 돌진은 플래티넘부 1등답게 상당히 저돌적이었다.

“음.”

작게 고개를 끄덕인 시문이 오른손을 그러쥔다.

그러쥔 주먹으론 시커먼 기운이 빠르게 응집되었다.

정하준 역시 그것을 목격했는지.

우웅!

앞세우고 달려드는 방패의 오러가 한층 두터워졌다.

이윽고.

천마신공(天魔神功).

격(擊) 패황쇄(覇皇碎).

힘차게 올려치는 시문의 주먹.

쩌어어어엉!

강렬한 이명이 귀청을 후려갈긴다.

1초는 되었을까?

물리법칙을 무시한 대치가 짧게 이어졌고.

그 결과는 빠르게 드러났다.

쩌저적.

삽시간에 쩍쩍 금이 가는 정하준의 오러.

이내.

“크헉!”

응집된 오러는 방패와 함께 박살 나며, 제 주인을 허공으로 날려 보냈고.

시문은 곧장 땅을 박차며 떠오르는 정하준을 뒤따랐다.

“돌진은 나름 괜찮았습니다.”

그리 효율적이진 않았지만.

그렇게 짧게 후기를 읊조린 시문이 정하준을 마무리하려던 찰나.

‘음?’

시문의 눈매가 꿈틀했다.

이유는 다름이 아니었다.

전력을 쏟아 낸 공격이 정면으로 맞붙어 박살 났다.

심지어 방패를 착용했던 왼팔은 완전히 넝마가 되었음에도.

‘웃어?’

정하준의 입꼬리가 올라가 있는 것이다.

동시에.

오싹.

오른팔에 솜털과 근육이 싸늘한 경고를 보내온다.

시문은 늘 그렇듯.

본능을 믿고 몸을 움직였다.

쐐애액!

가슴을 스쳐 지나가는 날카로운 파공음.

이어.

‘웬 화살이…… 어?’

시문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화살이 가슴을 스친 후.

스르르.

‘인체 연성이 풀린다고?’

전신에 연성되었던 인체 연성이 풀려 버린 것이다.

시문은 대번에 이유를 깨달았다.

‘그렇군. 무효화 화살인가.’

무효화 화살.

특정 마법이나 기운을 아예 무효화해 버리는 아이템.

그 성능에 비례하는 희귀성 때문에 쉽사리 구하지 못하는 아이템인데.

그걸 여기서 볼 줄이야.

하지만.

‘인체 연성이야 또 하면 그뿐이지.’

따악.

손가락을 튕겨 금세 인체 연성을 복구한 시문.

그가 다시 자세를 잡으려던 찰나.

오싹.

“또?”

또다시 경고해 오는 감각에 시문은 놀라면서도 얼른 머리를 숙였다.

쐐애액.

정수리를 스치고 아래로 내리꽂히는 화살.

갑자기 머리 위에서 쏘아지는 화살이라니?

그 의문은 금방 풀렸다.

마침 아래로 고개를 숙인 덕에 보인 것이다.

‘저건…….’

쩌억.

화살을 집어삼키는 작은 공간을 말이다.

‘S급 특성 공간 통로로군.’

S급 특성 공간 통로.

출입구가 되는 양방향의 공간을 잇는 능력.

전투계라면 원거리 공격을.

마법계라면 더 다양한 궤도를 선사하는 공간 통로는 마법계만큼이나 희귀한 차원 계열 특성이었다.

그리고 날아든 것이 무효화 화살임을 고려해 보면.

범인을 찾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고개를 숙여 피한 터라, 마침 아래 경기장의 상황이 훤히 보였으니까.

‘2등 최효연이군.’

경기장 전체를 짓누르는 천마군림보의 억제력 속에서.

어느새 몸을 일으켜 단궁을 쥔 채, 이곳을 노려보는 최효연.

차원 계열 특성답게 컨트롤이 난해한 것인지.

“이익!”

그녀는 이를 악물고 검지와 중지를 힘차게 옆으로 그었다.

그 행동을 본 시문은 본능이 경고하기도 전에.

스륵.

회전력에 몸을 실어 한 번 더 몸을 회전했다.

쐐애액.

이번에도 어깨를 스쳐 간신히 지나가는 무력화 화살.

따악.

다시 손가락을 튕긴 시문은 즉시 허공을 박차며, 떨어져 내리고 있는 정하준을 향했다.

그런 시문을 따라.

쐐애액!

쐐액!

마치 좁은 공간에서 날뛰는 탱탱볼처럼.

무력화 화살이 시문의 주변 공간을 넘나들며 사방팔방에서 날아들었다.

하나.

스스슥.

이미 최효연의 손짓을 눈에 담은 시문은 무슨 영화 속 주인공처럼.

보란 듯이 공간을 넘나드는 화살을 피해 내며 허공을 주파했다.

‘레메게톤의 영향 때문인지. 마기를 최대치로 운용하면 위력 조절이 좀 어렵지만…….’

떨어지는 정하준에게 도달한 시문의 몸이 빙글 회전한다.

내려찍기를 준비하듯.

그의 다리 역시 몸을 따라 반달을 그린다.

시커먼 기운이 아른거리는 발끝은 명필처럼 검고 깔끔한 궤적을 그렸고.

“어차피 아레나 안이니까, 실제로 죽는 건 아니잖아?”

빙긋 웃는 미소와 어울리지 않게.

시문의 왼쪽 눈에서도 끈적한 순흑의 기운이 흘러나왔다.

그것을 신호로.

천마신공(天魔神功).

천마군림보(天魔君臨步) 억제(抑制).

반달을 그리던 시문의 다리가 정하준에게 떨어진다.

내려찍는다기보다는.

걸음을 걷듯 부드럽게 밟는다는 것이 더 올바른 표현이겠지.

하지만.

쿠우우우우웅!!

그로 인해 펼쳐진 결과는 달랐다.

* * *

“…….”

“…….”

훈련 대기실에 무거운 정적이 내려앉는다.

그럴 수밖에.

그들이 보고 있던 모니터 안은.

쿠우우우우웅!!

더 무거운 것이 내려앉았으니까.

관전자 시점마저도 빈틈없이 가려 버리는 자욱한 흙먼지.

하나 저 흙먼지 속 결과가 어떤지 모르는 이는 아무도 없으리라.

잠시 후.

“미, 미친!”

“이건 말도 안 돼……. 말이 안 되는 거잖아!”

욕설과 경악, 그리고 경외로 점철된 말들이 쏟아졌다.

운석이 된 정하준으로 인해 아웃당한 플래티넘부 선수들이었다.

아레나 접속기기를 집어 던지거나 차 버리는 등.

거칠게 성을 표출하던 그들의 시선이 대기실을 향한다.

“너희지? 너희가 무슨 옵션 조정이라도 한 거지?!”

“마, 맞아! 조정이 없고서야! 이건 말도 안 되잖아!”

“X발! 저게 갓 데뷔전 치른 플래라고? 심지어 방금 건 방송에서도 못 봤던 기술이라고!”

씩씩거리며 이상민을 비롯한 소수의 플레이어들을 노려보는 선수들.

하지만 그도 잠시일 뿐.

그들은 더 이상 성을 내지 못했다.

이곳이 국가대항전 전용 훈련장임을 따져 보면 수치 조정은 말도 안 되는 소리일뿐더러.

“…….”

어두운 얼굴로 고개를 숙이고 있는 남성.

가장 먼저 시문에게 아웃당한 장지호가 침묵을 지키고 있지 않은가?

애당초 수치 조정 같은 게 가능할 리 없었지만.

설령 그런 게 가능하다 해도 장지호가 가만두고 볼 리 없었다.

한데 그런 장지호가 죽은 듯 침묵을 지킨다.

이게 뭘 의미하겠는가?

“하…….”

“X!”

결국 믿지 못할 현실을 맞이한 선수들은 시문이 나올 때까지.

그저 이를 악물고 몸을 떠는 수밖에 없었다.

이내.

“이제 됐죠?”

아레나를 종료한 시문이 대기실로 들어섰다.

“…….”

“…….”

아무런 답도 돌아오지 않자.

시문은 선수들 중 가장 선두에서 조용히 고개를 숙이고 있는 정하준을 향했다.

정하준을 잠시 내려다보던 시문은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이 정도면 제 합류에 대한 불만은 다들 없어진 것으로 알겠습니다.”

“…….”

어떠한 답도 없는 대표팀들.

어쩔 수 없었다.

무언가를 따지기엔 자신들조차 믿지 못할 결과를 경험하지 않았는가?

그때.

“……아니, 인정 못 한다.”

침묵을 뚫고 다소 쉬어 버린 목소리가 날아들었다.

시문의 시선은 자연스레 쉬어 버린 목소리의 주인, 고개 숙인 정하준을 향했다.

“그럼 지금 여기서 다시 해 보겠습니까? 참고로 여기서 붙으면 부상은 책임 못 집니다.”

요즘 힘 조절이 좀 빡세서.

그렇게 어깨를 으쓱하는 시문에게 휙 고개를 드는 정하준.

“그딴 거 필요 없이 인정 못 한다고, 새꺄!!”

그는 눈에 핏발까지 세우며 소리쳤다.

“애당초 이기든 지든 내건 조건도 없잖아? 네 새끼가 강한 건 알겠는데, 그렇다고 네가 저지른 부당함이 없어지는 것도 아니고!”

사람이 미치면 이럴까?

정하준은 실성한 사람처럼 침을 튀겨 가며 언성을 높였다.

“네가 강하든 말든 난 모르겠고, 이 부당한 합류에 보이콧 하겠어!”

“하준 오빠, 그래도 이건…….”

“넌 닥쳐!”

만류하려던 최효연에게 빽 소리치는 정하준.

진심으로 광기가 느껴지는 그 모습에 최효연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정하준은 다시 고개를 홱 돌려 시문을 노려봤다.

“다시 말하지만 난 인정 못 해. 보이콧 할 거니까 그리 알아!”

“아…… 이거 뇌절인데.”

그에 시문은 한숨을 푹 쉬고는 고개를 삐뚜름하게 꺾었다.

“저기요, 애도 아니고 이게 지금 떼쓸 일입니까? 이런다고 뭐가 달라져요?”

“달라지지!”

시문의 대꾸를 기다렸다는 듯 물어 버리는 정하준.

“너 내 뒤에 누가 있는지 아냐? 김종준 님이야. 국대 선발전에 그 검성을 상대로 1라운드 따내신 분이라고!”

“김종준? 아.”

고개를 갸웃하다 작게 탄식하는 시문.

그는 헛웃음을 흘렸다.

“전갈 길드의 부길마님? 당신, 전갈 길드였어요?”

“왜, 전갈이라 꼽냐? 그래서 어쩔 건데? 너도 알지? 우리 부길마님 1세대 현역에 랭커야. 이런 불의쯤 쉽게 조질 수 있는 분이라고!”

정하준의 말대로.

전갈 길드의 부길마임을 따지기 이전에.

김종준은 상당히 영향력 있는 플레이어였다.

그뿐만 아니었다.

애당초 1세대 현역에 랭커로 군림하는 플레이어들은 하나같이 큰 힘을 발휘했다.

무력만을 논하는 게 아니다.

갤럭시 아레나가 등장한 초창기부터 지금까지.

그들이 이룩하고 선점한 것들은 단순히 무력만으로 따질 수 있는 범주가 아니었으니까.

“보이콧 끝나면 바로 당장 니 새끼부터 묻어 버릴 거야. 너 아직 상위권 잘 모르지? 이 바닥이 네 생각보다 훨씬 좁거든? 앞으로 아레나 편하게 할 생각은 버리는 게 좋을 거다!”

눈을 까뒤집는 수준으로 부릅뜨는 정하준.

입가에 거품만 묻혀 준다면 정말 미친놈이라고 봐도 무방한 모습이었다.

하나 그의 말은 확실히 효력이 있는지.

말리려던 최효연을 비롯해, 이곳에 있는 대표팀 모두가 다소 불안한 눈으로 정하준을 힐끔거렸다.

그 모습에 시문은 헛웃음을 흘렸다.

‘과연, 힘만으로 리더 자리를 얻은 게 아니구나.’

어느 나라든 상위권은 사람이 적기 마련.

당연히 정하준에 맞먹는 뒷배가 없으면, 어지간해선 마찰을 일으키지 않는 편이 좋았다.

그래.

‘뒷배’가 없으면 말이다.

“하, 진짜. 나 이런 거 되게 안 좋아하는데…….”

머리를 벅벅 긁은 시문은 품을 뒤적거렸다.

‘그래도 이런 쪽은 똑같이 대응해 주는 게 워낙 특효약이라, 어쩔 수가 없네.’

어쩔 수 없다는 듯.

피식 웃은 시문이 폰 화면을 두드린다.

그러곤 들으라는 듯 스피커폰 모드를 켜는 시문.

그런 폰에서.

-……뭐냐.

차갑고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시답지 않은 일이라면 각오해라.

“제가 시답지 않은 일로 협회장님께 전화하겠습니까.”

시문의 태도가 뭔가 이상하다는 걸 눈치챈 것일까?

-너, 무슨 일이지?

폰 너머의 목소리는 한결 더 차가워졌다.

“다른 건 아니고, 저 내일 특별전 참여 못 할 거 같아서요.”

-네놈이 정녕!! 그 이야기는 이미 다 끝났…….

“아아, 단순한 제 변심이 아니에요. 지금 플래티넘부 국대분들이랑 만났는데요, 이분들이 저랑 못 하겠다고 하셔서요.”

-뭐라?

상상치도 못한 답이었는지.

다소 얼이 빠진 듯한 목소리.

“당장 내일이 경기인데 보이콧도 들어갈 거고, 뒷배니 뭐니 하면서 앞으로 아레나 생활 힘들 거라고 협박까지 하는데. 제가 뭐 어쩌겠어요?”

-…….

“참고로 전 할 만큼 했습니다. 대련으로 증명까지 했어요.”

물론 깔끔하게 이겨서요.

그렇게 중얼거리는 시문에, 폰 너머에서 짧은 침묵이 넘어온다.

이내.

시문은 폰을 최대한 멀리 떨어뜨리며 한쪽 귀를 막았고.

-대체 어떤 개자식이야악!!!!

귀하디귀한 철목왕의 노성이 터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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