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한 천재 플레이어의 신화급 무기창조-125화 (125/349)

제125화

125화. 플래티넘 국가대표 (3)

“기, 김시문?!”

“어느 틈에 여길!”

당황이 듬뿍 쏟아지는 시선들.

그 사이에서 유독 날이 선 2개의 시선이 보였다.

그중 하나.

“야, 방금 뭐라고 했냐?”

짧은 스포츠머리의 남성.

정하준이 얼굴을 굳히며 나섰다.

“듣자 듣자 하니 어지러워? 약팀 소릴 들어? 그거 지금 우리한테 한 소리냐?”

“제대로 들었네. 근데 왜 되물어요?”

정말 이해 못 하겠다는 듯.

순진한 눈으로 고개를 갸웃하는 시문.

“이 새끼가!”

그에 정하준의 얼굴은 순식간에 달아올랐다.

“협회빨로 기어들어 와 놓고, 지금 누구한테 개소리야!”

“협회빨?”

또다시 고개를 갸웃하는 시문.

이내.

“아.”

그렇게 된 건가?

작게 탄식한 시문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특별전에 합류하는 거, 선수들과 따로 합의는 되지 않았나 보군.’

국대선발전에 참가하지 않은 시문이다.

그런 시문이 특별전에 참가하려면 예비인원 추가 옵션이 필수적이었고.

당연히 기존의 대표팀은 상대팀이 추가하는 옵션을 고스란히 맞아야 했다.

‘그래서 이기든 지든 자신들이 독박 쓴다고 한 거구나.’

중간부터 훈련장에 도착한 터라 대화 내용을 전부 듣지 못했던 시문.

하지만 방금의 ‘협회빨’이라는 단어에 모든 것이 이해가 되었다.

‘참 숙부다운 일 처리군.’

철목왕 김무열.

유아독존의 성격에 걸맞게 대표팀에겐 일말의 동의도 없이.

김시문이란 플레이어가 예비인원 옵션으로 합류한다는 일반적인 통보만 보낸 것이다.

당연히 선발전을 통해 뽑혀, 몇 달간 합을 맞춘 선수들 입장에선 불만이 생길 수밖에.

“이제 사태 파악이 좀 되냐? 그럼 여기서 꺼져. 괜히 국대로 빨려 보겠다고 민폐 끼치지 말고.”

하나 그것과 별개로.

“뭔가 착각하고 있는 거 같은데.”

바로잡을 건 바로잡아야 했다.

“특별전은 내가 원해서 참가하는 게 아닙니다만?”

“뭐라고?”

얼빠진 목소리.

이번엔 스포츠머리의 남자 정하준이 아닌.

“저기요, 김시문 씨. 그게 무슨 개소리세요?”

위로 죽 째진 눈의 여성이었다.

“원하지도 않는데 특별전에 어떻게 참가해요? 그럼 뭐, 협회에서 제발 참가라도 해 달라고 그쪽한테 대가리라도 박았다는 거예요?”

팔짱을 낀 채, 어이없는 목소리로 물어 오는 여성.

최효연의 말에 시문은 고개를 끄덕였다.

“협회장께서 직접 부탁하신 겁니다. 그래서 이 자리에 온 거고요.”

“……참 나!”

“와! 이거 제대로 미친놈이었네.”

헛웃음을 흘리는 최효연과 정하준.

둘을 따라 이상민을 비웃던 플레이어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봐, 김시문 씨. 아무리 그래도 협회장까지 거론하는 건 좀 심하지 않아?”

협회장이 이제 갓 플래티넘에 올라온 놈에게 특별전 참가를 부탁했다고?

그것도 천하의 그 철목왕이?

하지만 시문은 일말의 흔들림도 없이 답했다.

“제가 이런 걸로 거짓말을 왜 합니까.”

“아아, 됐고.”

정하준은 그건 더 이야기하고 싶지도 않다는 듯.

“그런 구라 안 쳐도 그쪽 잘난 건 우리도 잘 알거든?”

대충 손을 흔들며 시문에게 다가갔다.

“그쪽 플래티넘 데뷔전도 봤어. 그래, 인정한다. 지리더라, 아주 개지렸어. 근데 말이야.”

스으으.

한여름의 습기와 같은 뜨듯한 기류가 시문의 피부를 스친다.

기분 탓이 아니었다.

“특별전은 달라. 솔플만 하던 새끼가 멋대로 설칠 수 있는 곳이 아니라고!”

위협적으로 노려보는 정하준.

실제로 그에게선 플래티넘급의 기세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맞아요. 그쪽 잘난 거 인정하지만, 결국 데뷔전이잖아요?”

그런 기세에 최효연의 뾰족한 목소리가 섞여 온다.

“하준 오빠랑 저도 플래티넘 데뷔전 뛰어 봤어요. 물론 그쪽처럼 압도적인 성적은 못 냈지만, 그래도 데뷔전이랑 국대 특별전이 다르다는 것쯤은 잘 알거든요.”

이래 봬도 선배잖아요?

그렇게 말을 보태는 최효연.

그녀는 팔짱을 낀 그대로 정하준의 옆에 다가섰다.

“있죠, 특별전은 데뷔전에서 티밍 맺고 설치는 거랑 질이 달라요. 그래! 민병대랑 군대의 차이랄까요?”

“딱 맞는 말이네.”

비유가 마음에 드는 것인지.

무척이나 만족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는 정하준.

“이제 이해가 좀 가냐? 네가 아무리 잘나 봐야 단체전은 다르단 말이야.”

뿜어내던 그의 기세가 한결 더 짙어진다.

“그러니 꺼져. 아니면 곧장 보이콧을 해버릴 테니까.”

그에 실소를 머금은 시문이 고개를 저었다.

‘이거 참, 어이가 없네.’

단체전으로 펼쳐지는 아레나에 대해서는 시문 역시 잘 알고 있었다.

브실골 때 이뤄 왔던 소규모 진형과 달리.

플래티넘부턴 공성전 등 대규모 전투 종목의 아레나가 등장하니까.

그런 상위권 유저들이 대거 참가하는 것이 국가대항전인 만큼, 경기의 종목도 합을 맞추는 것이 무척이나 중요했다.

그러니 선발전이 끝나자마자 합동 훈련을 들어가는 것 아니던가?

하지만.

‘여간 심각한 게 아니야. 이기는 것보다 자기들 위신이 먼저라니.’

이건 그런 단체전의 차이점을 논하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였다.

“제가 옵션 추가권을 사용하면서까지 참가하는 것에 불만을 가지는 건 이해합니다.”

갑자기 협회의 통보로 내려온 옵션 추가권의 사용 여부.

그것도 선발전조차 치르지 않은 자를 참가시키기 위해서라면 선수 입장에선 불만이 생길 수 있었다.

하지만.

“이러는 이유가 정말 그것 때문입니까?”

“뭐?”

“제가 볼 땐 낙하산을 위해 옵션 추가권을 사용해서라기보단…… 저로 인해 본인들의 무능이 들통날까 봐 우려하는 것으로밖에 안 보이는데요.”

“무, 무슨 개소리야!”

곧장 윽박을 지르는 정하준.

“참 나! 진짜 어이가 없으려니까! 이봐요, 김시문 씨. 말 다 했어요?”

최효연 역시 높아진 언성으로 손부채질을 하며 김시문을 노려봤다.

시문이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렇잖아요? 옵션 추가권이니 뭐니, 안 그래도 힘든 경기를 더 힘들게 만든다고는 하지만, 사실은 그런 상황에서도 이겨 버릴까 봐 무서운 거 아닙니까?”

안 그래도 특별전에선 약체로 평가받는 한국팀이다.

이대로 경기를 져 버린다 한들.

대중의 분노는 ‘원래 못했던 플래티넘 국대’가 아닌, 일명 국밥이라 불리던 본선 진출에 실패한 ‘다이아 국대’를 향할 터.

한데.

“어차피 져도 욕먹지 않을 상황인데. 웬 놈이 온갖 어그로를 다 끌며 합류해서 괜히 특별전의 기대감을 부풀려 버리니까, 겁나는 거잖아요. 심지어 이긴다? 그럼 다년간 참가했던 당신들은 뭐가 될까요?”

“…….”

“…….”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정하준과 최효연.

둘을 옹호하며 적대적인 시선을 보내던 다른 선수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시문은 싱긋 웃으며 말했다.

“책임 회피에 패배주의까지. 초면에 이런 말 하기 죄송하지만, 왜 당신들이 플래를 못 벗어나는지 알겠네요.”

이어.

“그래도 플래티넘이라고 각은 보이는지, 저한테 덤비지는 않고 보이콧이라는 방향을 선택한 건 나름 괜찮았습니다.”

추가타까지 제대로 욱여넣는 시문.

그 말이 끝나자마자.

“이 새끼가 진짜!”

“당신 정말 미쳤어?!”

화아아악!

뜨듯했던 기세가 뜨겁게 달아오른다.

정하준만이 아니다.

최효연을 비롯한 20여 명의 플래티넘 플레이어들이 일제히 뿜어내는 기세였다.

하나 시문은 그것을 산들바람처럼 태연하게 받아들였고.

그 모습에 더 불이 붙은 듯.

“저게 보자 보자 하니까! 우리가 너한테 쫄아서 보이콧을 하는 줄 알아?!”

“사방에서 떠받들어 주니까 뭐라도 된 거 같습니까!”

“오냐. 붙자, 이 자식아!”

대표팀의 성난 아우성이 이어졌다.

* * *

텅 빈 콜로세움이라고 해야 할까?

석재로 이루어진 원형 경기장은 수백 명이 날뛰어도 여유로울 만큼 컸다.

그리고 그 중심.

“왜 그렇게들 서 있어요. 특별전은 단체전이잖아요.”

뚜렷한 이목구비의 미남.

“제가 뭐 하러 이런 맵을 정했는데, 얼른 진형 안 잡습니까?”

시문이 여유롭게 물었고.

20여 명의 무리의 선두에 있던 스포츠머리의 남성.

정하준은 아무런 답도 하지 않고 한 남자에게 턱짓을 했다.

“지호야, 대충 간만 보고 와라.”

“예, 형.”

그에 가벼운 경갑 차림의 남성이 앞으로 나선다.

시문의 시선이 남성의 허리춤에 있는 검을 향했다.

‘레이피어라?’

레이피어.

대충 검신만 봐도 100cm는 되어 보이는 가늘고 기다란 검.

주로 유럽의 전투계들이 선호하는 레이피어는 한국에서 그리 자주 쓰이는 검이 아니었다.

때문에 시문은 상대의 정체를 쉽게 알아차렸다.

‘플래티넘부 6위인 장지호인가.’

민첩 위주의 전투계.

사실 브실골 라인에서 저런 세검류의 전투계는 그리 위협적이지 않았다.

그리 빠르지도 않고, 그렇다고 우월한 파괴력이 있는 것도 아닌 데다.

세검류의 특성상 정밀한 기교와 센스가 필요한데, 그것을 지닌 이들이 브실골에 있을 리가 없었으니까.

하지만.

“바로 가겠습니다.”

플래티넘급으로 넘어오면 이야기가 달라졌다.

타앗.

땅을 박차며 돌진해 오는 장지호.

그와 동시에 매끄럽게 이어지는 발검은 나름 묘리가 담겨 있었고.

웅.

가느다란 검신을 휘감는 아지랑이.

검기는 세검류가 가지는 단점을 모조리 상쇄했다.

시문의 시선이 검에 집중되는 것을 확인한 장지호의 입가가 깊어졌다.

‘베기일까, 찌르기일까? 고민되겠지.’

일반적인 검이라면 대다수가 발검 타이밍에 발도를 이어 간다.

그게 효율적이었으니까.

하지만 세검은 다르다.

낭창낭창한 세검의 특성상 찌르기와 베기, 그 어느 쪽이든 치명적인 위력을 발휘했다.

특히나 일대일 구도에선 특유의 이지선다의 심리전을 완벽히 구사할 수 있었고.

상대가 어떤 자세를 잡느냐에 따라, 원하는 공격로를 택할 수 있었다.

‘우선 베기로 이어간 다음…….’

흡사 발도처럼.

발검을 그대로 이어 가는 장지호.

스윽.

그에 맞춰 시문의 몸이 왼쪽으로 슬쩍 기운다.

동시에 눈을 반짝이는 장지호.

‘걸렸다!’

검을 쥔 장지호의 팔꿈치가 갑자기 확 당겨진다.

동시에 곡선을 그리며 허공을 베어 가던 세검이 꼿꼿이 검신을 세웠고.

“죽어라!”

날카롭게 솟은 세검이 곧장 앞으로 쏘아졌다.

1초는 되었을까?

짧은 시간에 베기에서 찌르기로 변화한 장지호의 검격이 순식간에 시문의 가슴으로 파고들었다.

이어.

따악.

맑게 들려오는 소리.

그게 무슨 소리인지는 잘 알고 있었으나, 장지호의 미소는 사라지지 않았다.

‘이미 늦었어!’

시문이 손가락을 튕길 때마다 불가사의한 일이 벌어진다는 건 이미 알고 있다.

아마 특성과 관련된 것일 테지.

하지만 지난 4년간 플래티넘에서 전전한 그의 찌르기는 이제 와서 어찌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라고.

장지호는 생각했다.

스륵.

시문의 몸이 물리의 법칙을 거슬러, 오른쪽으로 비틀리기 전까진.

“무슨!”

장지호의 눈이 부릅떠진다.

‘사람 몸이 어떻게!’

무슨 연체동물도 아니고.

인간이 가지는 신체적인 구조와는 전혀 관계가 없다는 듯.

어깨를 비롯한 코어 전체가 정반대로 돌아가 버리는 시문.

동시에.

“잘 가요.”

회피에서 시작된 회전력을 그대로 담은 시문의 주먹이 장지호의 턱을 갈겼다.

빠각.

비명 따위는 허락되지도 않는다.

우드득.

180도로 돌아 버린 장지호의 얼굴은 경악이.

그리고 목과 함께 뒤틀려 버린 하관으로 얼룩졌다.

‘이건 말도 안…….’

고통은 느껴지지도 않는다.

죽음을 알리는 장지호의 희미한 시야.

그곳에 비친 동료들의 경악을 마지막으로.

털썩.

허공을 날았던 장지호는 경기장 밖으로 처박혔다.

“…….”

“…….”

이어지는 침묵.

정신을 차린 몇몇이 간신히 입을 열었지만.

“세, 세상에…….”

“지호가 한 방에……?”

대부분의 대표팀은 경악 어린 얼굴로 경기장 밖으로 처박힌 장지호를 바라볼 따름이었다.

그런 대표팀의 귓가로 뚜렷한 미성이 파고들었다.

“이래도 일대일로 할 거예요?”

얼어 버렸던 대표팀의 사고가 대번에 돌아온다.

“이, 이!”

뭐라 말도 제대로 내뱉지 못하는 정하준.

최효연 역시 손톱을 잘근잘근 깨물었다.

이내.

“하, 하준 오빠, 이거 일대일은 절대 안 돼…….”

그녀는 다소 떨리는 목소리로 정하준에게 속삭였다.

정하준 역시 그녀의 의견에 동의하는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곤 김시문을 노려봤다.

그러곤 무척이나 인정하기 싫은 얼굴로.

“……네놈 말대로 특별전은 단체전이니, 진형을 잡고 상대하겠다.”

힘겹게 말을 내뱉었다.

시문은 빙긋 웃으며 답했다.

“진작 그랬으면 좋잖아요. 시간도 아끼고.”

“…….”

정하준의 얼굴이 확 붉어진다.

시문의 말대로.

시작 전부터 단체로 진형을 잡고 덤벼들었으면 이런 일도 없었을 텐데.

하나 자존심을 접고 힘들게 단체전으로 바꾼 건 다름이 아니었다.

“효연아, 우리…… 이길 수는 있겠지……?”

차라리 자신이 저랭크였다면 모를까.

방금의 일격이 어떤 수준인지 알아차린 정하준은 다소 긴장한 목소리로 속삭였고.

“그럼 X발! 오빠, 여기까지 와서 뺄 거야? 이미 발 빼기엔 늦었다고!”

같은 목소리의 욕설 섞인 답장이 돌아왔다.

정하준은 지그시 눈을 감았다.

그래.

최효연의 말대로다.

이미 여기까지 온 마당에, 발을 빼기는 늦었다.

그러니.

“전부 진형 잡아.”

죽을 각오로 싸우는 수밖에.

처척!

순식간에 시문을 에워싸는 플레이어들.

다들 정하준과 같이 절실한 마음이지.

시문을 노려보는 눈빛엔 독기와 살기가 가득했다.

“음.”

산책이라도 온 사람처럼.

에워싼 플레이어들을 슥 보는 시문.

그것을 신호로.

“쏴라!”

피핑!

정하준의 외침과 함께 아지랑이를 휘감은 화살이 쏟아졌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