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1화
121화. 얻은 것들 (2)
끼릭.
덜그럭.
일정한 간격으로 끊임없이 들려오는 소음.
첨단화된 공장처럼 빈틈없이 이어지는 작업은 제조부터 이동 과정까지.
연금술의 문외한이 봐도 어디 하나 비효율적인 구간이 없었다.
그리고.
그극.
백은의 금속으로 이루어진 골렘들이 이곳저곳을 쉬지 않고 누볐다.
본래라면 포장과 물자 이동 같은 간단한 업무만을 시행했지만.
“너너! 쩌기 잡고 꿍해! 그거는 빙글빙글해야 해!”
연구실 중앙 단상에 자리한 아이.
시연이 짧은 팔로 펼치는 지휘에 따라, 치료제의 생산 라인까지 손을 대고 있었다.
그렇게 얼마가 지났을까.
“언니!”
할 일이 마무리되었는지.
단상에서 폴짝 뛰어내려 또 다른 생산 라인으로 달려갔다.
“언니! 다 했어!”
-응, 안 그래도 보고 있었어. 잘했다~.
그곳을 관리하던 플라스크 속 눈알이 부드럽게 휜다.
끼긱.
주변에서 작업하던 팔 하나가 휙 돌아, 시연의 머리를 부드럽게 쓸었다.
-아궁! 요 복덩이. 오빠가 왜 나한테 그렇게 복덩이라고 했는지 알겠네. 네 덕에 작업 효율이 두 배로 늘었어.
“정말?”
-그럼.
눈을 반짝이는 시연에 고개를 끄덕이는 현자의 돌.
사실이었다.
태생이 골렘이기 때문일까?
시연은 시문이 미스릴 골렘에 입력해 놓은 행동 패턴을 제외하고도.
따로 독자적인 명령을 내려, 평소보다 더 세심한 행동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덕분에 단순 업무만 맡던 미스릴 골렘들이 본격적으로 치료제 생산 라인에 끼어들게 되었고.
-네 덕에 오빠가 골렘 컨트롤에선 아예 벗어날 수 있게 됐잖아.
주기적인 연성력 주입을 제외하곤.
시문이 아예 미스릴 골렘의 컨트롤을 놓아도 되는 수준까지 왔다.
-오빠는 쉬는 법을 몰라서, 이렇게 강제로라도 뇌의 부하를 덜어 줘야 한다고.
현자의 돌은 그것이 무척이나 만족스러운 듯.
연신 시연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진한 웃음을 흘렸다.
“헤에. 그럼 시여니, 아빠한테 도움이 되는 거야?”
-엄청나게 되지. 저번 아레나도 큰 도움이 됐고.
그렇게 말한 플라스크 속 현자의 돌의 눈이 슬쩍 가늘어진다.
그에.
“히히. 나 언니 말 들으려고 엄청 노력했어!”
시연의 순수했던 눈망울에 한줄기 잔혹함이 어렸다.
-후후, 잘했어. 유우토 군도 참, 거기서 그냥 도망이나 갔으면 좋았을 텐데. 뭐, 마족들한테 엉망으로 죽느니, 너한테 이쁘게 죽는 게 났긴 하네.
시연을 내려다보던 현자의 돌 역시 마찬가지였다.
-시연아? 다음에도 잘생긴 애들은 최대한 온전하게…….
그런 현자의 돌의 말이 끝나기 전에.
퍼어엉!
둔탁한 폭음이 들려왔다.
현자의 돌과 시연의 시선이 자연스레 그곳으로 돌아갔다.
그곳엔 자욱하게 퍼진 반투명한 연기와.
“에고, 또 실패했네.”
뚜렷한 이목구비의 미남자가 머리를 긁적이고 있었다.
그의 왼팔엔 원통.
그리고 주사기의 앞부분처럼 다소 뾰족한 형태의 실린더가 달려 있었다.
플라스크 속 눈알.
현자의 돌은 연성력으로 몸을 둥둥 띄워, 미남자를 향해 다가갔다.
-오빠, 괜찮아?
“응.”
시문은 왼팔에 부착된 실린더에서 눈도 떼지 않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쉬어 가면서 해. 어차피 기본적인 사용법은 다 익혔잖아.
“그렇긴 한데, 왠지 될 거 같으면서 안 되니까 자꾸 매달리게 되네.”
시문은 입맛을 다시며 실린더의 이곳저곳을 매만졌다.
시문의 손길이 닿을 때마다.
우웅.
청명한 이명과 함께 복잡한 진이 실린더 주변을 맴돌았다.
연성진이었다.
“여기서 압축.”
중얼거린 시문이 해당 연성진을 엄지와 검지로 집어 꾹 누르자.
핑.
이명이 한결 희미해지며, 한쪽 가슴만 했던 연성진이 주먹만 한 크기로 줄어든다.
“조금 더 압축해서…….”
연성진을 쥔 시문의 손에 더욱 힘이 들어간다.
그러자 이번엔 손톱만 한 크기로 줄어드는 연성진.
하나 이 이상의 압축은 무리인지.
연성진의 크기는 더 이상 줄어들지 않았다.
그에 현자의 돌의 눈동자가 놀라움으로 커졌다.
-어제보다 크기가 두 배로 줄어들었네? 압축된 연성력은 두 배로 늘었고.
“응. 근데 여기까지가 한계야. 더 이상 압축하는 건 불가능하더라고.”
하지만 불만족스러운 것인지.
시문의 얼굴엔 아쉬움이 가득했다.
그에 현자의 돌은 고개를 저었다.
-오빠, 파라켈수스의 실린더를 얻은 지 고작 3일째야. 벌써 연성진 압축을 한계치까지 이룬 것만 해도 대단하다고. 난 여기까지 도달하는 데 한 달은 봤단 말이야.
“그러냐.”
현자의 돌의 달램에도 쉽게 사라지지 않는 시문의 아쉬움.
그에 현자의 돌은 ‘우리 오빠가 얼마나 대단한지’에 대한 강의보다.
-어디서 막히는 거야? 한번 보자.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것을 택했다.
효과가 있었는지.
“봐 봐. 연성진을 저장하는 단계까진 문제가 없거든?”
아쉬움이 가득했던 시문의 얼굴이 대번에 진지해진다.
파라켈수스의 실린더에 연성진을 저장하는 데 몰두하는 것이다.
어느새 조용히 다가온 시연은 턱을 괴고, 초롱초롱한 눈으로 몰두하는 시문을 바라봤다.
-그러네? 저장은 완벽한데.
현자의 돌 역시 그런 시문과 압축된 연성진이 스며드는 실린더를 번갈아 봤다.
“근데 발현이 문제야.”
-발현?
플라스크 속 현자의 돌이 갸웃한다.
그도 그럴 것이.
-발현이 왜 어려워? 연성에 압축, 저장까지 다 해 놨는데. 그냥 발현하기만 하면 되잖아.
파라켈수스의 실린더를 사용하기 위한 작업인 연성진 연성과 압축, 저장까지 깔끔하게 마무리한 시문이다.
총으로 따지면 조립부터 장전까지 모두 끝낸 상황.
그냥 방아쇠만 당기면 된다는 말이다.
한데 왜 발현이 문제란 말인가?
그렇게 갸웃하던 현자의 돌의 의문은 순식간에 고쳤다.
“근데 이렇게 하니까 발현이 어렵더라고.”
시문의 말이 끝나자마자.
지잉.
실린더의 앞부분.
주사기의 그것처럼 뾰족한 부분으로 압축되었던 연성진이 생성된다.
문제는.
지징!
발현되려는 연성진의 뒤로 또 다른 연성진이 떠오른 것이다.
-아니…….
그리고 현자의 돌이 뭐라 말하기도 전에.
퍼어어엉!
익숙한 폭음과 함께 발현되던 2개의 연성진이 폭발했다.
반투명한 기체.
기화된 연성력이 자욱하게 피어오른다.
“콜록! 봤지? 이게 안 돼.”
그 속에서 태연하게 기침을 하며 실린더를 들어 올리는 시문을 보곤.
-……이 미친 오빠야!
현자의 돌은 작업 중인 기계 팔을 시문의 정수리로 내질렀다.
* * *
-내가 정말 못 살아!
황당함이 가득한 목소리.
현자의 돌은 연성력 폭발로 엉망이 된 주변과 기화된 연성력을 치우며 말했다.
-실린더를 얻은 지 고작 3일 됐다고. 무슨 벌써부터 이중 발현이야?
“그치만 느낌이 왔는걸.”
-느낌은 무슨 느낌!
“뭐랄까…… 그냥 이중 연성을 했을 때처럼 아, 이러면 되겠구나! 하는 느낌?”
사실이었다.
실제로 일반 연성이든 신체 연성이든.
느낌이 오는 대로 연성하면 이중 연성은 쉽게 해낸 시문이었다.
해서 파라켈수스의 실린더에 저장해 놓은 연성진 역시 ‘이중으로 가능하겠구나’ 싶어서 시도한 것인데.
“근데 자꾸 실패하니까, 오기가 생기잖아.”
아무런 기미가 없으면 시도도 안 했을 것이다.
분명 느낌상 될 것 같은데.
자꾸 발현 마지막에 뭔가 고장 난 듯.
발현이 멋대로 막혀 폭발해 버리니, 시문으로선 자꾸 시도하게 되는 것이다.
아쉬움에 입을 삐쭉 내미는 시문.
다 큰 남자의 그런 모습이 보편적으로는 보기에 좋지 않았으나.
잘난 외모는 언제나 진리인지 무척이나 매력적이었다.
그 덕일까.
-그럴 수 있지. 오빠 마음은 나도 이해해.
흥분했던 현자의 돌이 눈에 띄게 잔잔해졌다.
-이게 다 오빠가 너무 잘나서 그런 거라고.
“억지로 칭찬 안 해 줘도 된다.”
-아냐. 진심으로 하는 소리야.
현자의 돌은 한숨을 푹 쉬었다.
-오빠도 알겠지만, 파라켈수스의 실린더는 착용자의 레벨을 따라가는 거 알지?
“알지.”
시문은 고개를 끄덕이며 파라켈수스의 실린더의 정보창을 열었다.
[파라켈수스의 실린더]
등급 : (구) 신화
소멸해 버린 연금술의 신 파라켈수스의 창조물.
연성진을 담아 언제든 원할 때 발현할 수 있다.
착용자의 레벨에 따라 옵션이 달라진다.
-연성진 저장 가능 개수 : 3개
현자의 돌의 감정으로 이전과 달라진 정보창.
달라진 정보창엔 ‘착용자의 레벨에 따라 옵션이 달라진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그럼 현재 내 수준으론 연성진의 이중 발현이 불가능하다는 거야?”
문구를 확인한 시문의 얼굴이 한결 더 시무룩해진다.
현자의 돌은 고개를 저었다.
-그렇기는 한데, 이건 좀 다른 방향으로 불가능한 거야.
“다른 방향?”
-응. 오빠도 대충 감을 잡았겠지만, 오빠의 ‘레벨’이 높아질수록 옵션이 달라지잖아?
“그렇지. 아마 내가 레벨이 높아지면 저장 가능 개수뿐만 아니라 다른 옵션도 추가될 것 같은…….”
답하던 시문의 말이 점차 흐려진다.
“잠깐.”
시문은 다소 당황스러운 얼굴로 현자의 돌을 바라봤다.
“설마 이중 발현은 새로 추가되는 옵션인 거야?”
-그래. 아직 잠겨 있는 옵션이지. 100레벨 되면 열리는 두 번째 옵션이 바로 이중 발현이거든.
고로 조금만 더 성장하면 이중 발현 옵션은 알아서 열린다는 거야.
라고 덧붙이는 현자의 돌에, 시문은 멍하니 눈을 끔뻑였다.
“그럼 나 지금까지 뻘짓 한 거냐?”
-그런 셈이지? 사실 이걸 만들 때, 꼴랑 100레벨도 되지 않은 연금술사가 이중 발현이 가능할 거라곤 상상도 못 했거든.
“그렇구나.”
즉, 레벨에 비해 자신의 연금술 수준이 너무 높아.
파라켈수스의 실린더가 따라오지 못한다는 말이라는 것이다.
창조자 파라켈수스가 예상한 이중 발현이 가능한 최소 레벨은 100레벨부터였으니까.
“하…….”
헛웃음이 절로 나온다.
그러니 분명 될 것 같은데도 매번 마지막에서 억지로 안 되는 거였다.
시문은 어이없는 눈으로 현자의 돌을 바라봤다.
“진작 말해 주지 그랬냐.”
-내가 하고 싶은 말이다, 이 괴물 오빠야.
그에 현자의 돌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미 이중 연성을 할 줄 아는데, 설마 아이템으로까지 시도할 줄 누가 알았겠어?
“…….”
시문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스스로 생각해도 어이가 없긴 했으니까.
‘그래. 이게 다 내 욕심에서 비롯된 일이지.’
시연이의 도움으로 치료제 제작에선 거의 손을 떼게 된 시문.
그 여유를 실린더의 사용법 숙지에 쏟았던 것인데.
결국 과도한 욕심이 아이템의 성능을 앞질러 버린 것이다.
하지만 시문은 크게 아쉽지 않은 듯.
“뭐, 마냥 손해는 아니니까.”
가볍게 어깨를 으쓱할 따름이었다.
실린더의 이중 발현은 해내지 못했지만.
그 덕에 3일 만에 연성진 압축은 최대치까지 끌어내지 않았는가?
압축할수록 저장되는 연성진의 위력이 강해지는 만큼.
실린더가 발현하는 위력은 최대치로 숙달시켰다고 볼 수 있었다.
“거기에다…….”
시문이 연구실 한쪽 구석을 향한다.
그곳엔.
사아아아아.
스멀스멀 흘러나오는 시커먼 기운과 함께.
크르릉.
심상치 않은 짐승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다른 시도는 확실히 성공시켰으니까.”
만족스럽게 올라가는 시문의 입가.
-하긴, 난 오빠가 실린더를 저런 식으로 쓸지는 상상도 못 했잖아.
그곳을 본 플라스크 속 현자의 돌 역시 웃는 눈이 되었고.
“헤헤! 시여니도! 놀라써!”
곁에 잠자코 있던 시연이 역시 아빠와 언니를 따라 눈과 입가를 올렸다.
시문은 그런 시연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그럼 할 일은 대충 끝냈겠다, 시혁이 녀석의 방송이나 좀 볼까?”
-도련님의 방송?
“응, 슬슬 국가대항전 예선전 시즌이거든.”
싱긋 웃은 시문이 폰을 꺼내던 그때.
똑똑.
“오라버니?”
노크 소리와 함께 청아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시문은 손을 저어 연구실 구석에 펼쳐진 시커먼 기운을 지워 버리곤.
“어, 유정아. 들어와.”
입구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청아하다는 단어가 무척이나 잘 어울리는 미녀.
이유정이 연구실로 들어섰다.
그녀에게선 좀처럼 보기 힘든 어두운 표정.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그에 시문은 고개를 갸웃했고.
“손님이 찾아오셨어요.”
“손님?”
이유정은 고개를 끄덕이며 다소 불편한 얼굴로 답했다.
“네. 협회장님의 비서장께서 찾아오셨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