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0화
120화. 얻은 것들 (1)
집으로 돌아온 시문.
그런 시문을 맞이해 준 것은.
[플래티넘 랭크 데뷔전에서 1등을 차지하셨습니다.]
[압도적인 성적과 전례 없는 활약에 클리어 보상이 증가합니다.]
[귀속된 특성 ‘현자의 돌’이 일정량의 경험치를 분배받습니다.]
[레벨이 10 올랐습니다.]
[현자의 돌 레벨이 8 상승했습니다.]
[클리어 보상으로 ‘특별 랜덤 박스’를 획득합니다.]
플래티넘 데뷔전의 보상이었다.
시문은 보상을 확인하기 전.
“찝이다!”
어느새 품에서 벗어나 방 안을 뛰어다니는 시연을 바라봤다.
“시연아, 아빠는 마무리할 일이 있으니까 조심해서 놀아.”
“웅! 나 연구실 가서 골렘들이랑 놀꼬야!”
“그래. 거기선 뛰지 말고.”
“웅!”
힘차게 고개를 끄덕이는 시연.
그런 시연이를 내보내고 시문은 다시 주르륵 떠오른 메시지들로 시선을 옮겼다.
‘일단 경험치는 확실하게 퍼 주는군.’
현자의 돌과 나눴다 해도 18레벨업.
랭크와 레벨이 올라갈수록 레벨업의 요구 경험치가 많아진다는 걸 따져 보면.
정말이지 상당한 경험치라 볼 수 있었다.
이어 시문은 인벤토리를 열었다.
“보상으로 뭐가 나오려나.”
시문의 손에 딸려 나오는 익숙한 박스.
저번 골드 랭크 데뷔전의 보상으로도 얻었던 [특별 랜덤 박스]였다.
“어지간하면 내게 필요한 것들로 나오는데 말이지.”
시문은 잠시 생각에 빠졌다.
지금 자신에게 필요한 것.
‘레메게톤의 또 다른 원본, 혹은 업적 포인트 정돈가?’
안타깝게도.
두 가지 다 랜덤 박스에서 등장하기엔 다소 무리가 있었다.
말이 특별 랜덤 박스지.
사실 갤럭시 아레나 측에서 해당 플레이어에게 필요한 것을 판단해 지급해 주는 방식 아니던가?
신화급 무구인 레메게톤의 원본은 데뷔전 보상으론 너무 비쌌고.
반대로 업적 포인트는 특별 랜덤 박스가 지급하기엔 너무 구렸다.
물론 몇만 점씩 때려 박아 준다면 또 모르겠지만, 그럴 리는 없을 터.
‘지금 시점에서 갤럭시 아레나가 내게 필요하다 여기는 부분이 뭘까?’
시문은 다소 기대감이 깃든 눈으로 특별 랜덤 박스를 오픈했다.
[특별 랜덤 박스를 오픈하셨습니다.]
[지급될 아이템 탐색 중…….]
익숙한 시스템창과 함께.
따르르르르륵.
익숙한 효과음이 들려온다.
시문은 아공간처럼 깊이가 보이지 않는 박스의 검은 내부를 응시했다.
‘설마 이번에도 내가 따로 요구해야 하는 건 아니겠지?’
점차 길어지는 침묵에 시문은 본능적으로 불길함을 느꼈고.
[현재 플레이어 김시문에게 적절한 아이템을 찾을 수 없습니다.]
[탐색 범위를 확대합니다.]
어째 불길한 예감은 빗나가는 법이 없었다.
“하…… 또냐?”
헛웃음이 절로 튀어나오는 시문.
그러나 마냥 갤럭시 아레나를 탓할 수도 없었다.
‘내가 생각해도 지금의 나한테 필요한 게 없기는 하니까.’
어디 지금뿐이겠는가?
사실 필요한 거의 대부분의 것들을 연성해 버리고.
더한 것은 업적 포인트를 지불해서까지 만들어 버리는 시문이다.
당연히 갤럭시 아레나 측에선 뭘 어떻게 줘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할 터.
‘그렇다고 레메게톤의 원본을 줄 리는 없고. 이러다가 진짜 업적 포인트를 주는 거 아냐?’
일종의 ‘자, 돈으로 줄 테니까 네가 사고 싶은 거 사.’라는 느낌이랄까?
뭐, 나쁘지는 않다.
랜덤 박스로 주는 것이니 고작 1만, 2만 점에서 그치지는 않을 터.
검은 염소의 퀘스트와 천마신공 4성, 또는 세계수의 씨앗 조각으로 성장 버프 상승 등등.
충분히 요긴하게 쓸 수 있으니까 말이다.
단지.
“아쉽단 말이지.”
특별 랜덤 박스는 평범하겐 얻을 수 없는 아이템들을 주로 준다.
물론 신화급 무구를 연성하는 시문에게 아쉬울 아이템이 어디 있겠냐만은.
전생의 기억까지 지닌 시문이라고 모든 아이템을 알고 있지는 않다.
당장 크로노스의 모래시계나 파라켈수스의 플라스크가 그 예시 아니던가?
그때.
-흐아아암! 잘 잤다.
반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현자의 돌!”
현자의 돌이었다.
반가운 기색이 역력한 시문에 현자의 돌 역시 기쁜지.
-오뽜아아앙! 나 왔엉!
한껏 고조된 콧소리로 답해 오는 현자의 돌.
평소 같다면 가볍게 무시했을 반응이지만.
“그래, 마침 잘 일어났어. 어때? 컨디션은 괜찮아?”
시문은 달갑게 그것을 받아 주었다.
-물론이지!
시문이 왜 평소답지 않게 받아 주는지 훤히 알고 있을 텐데도.
-나 이번에 C등급으로 성장했잖아. 이제 업적 포인트 리턴율도 상승했고, 추가 옵션도 붙었어.
녀석은 모른 척 제게 일어난 일을 쭉쭉 나열했다.
기계적으로 건성건성 그것을 들어 주려던 시문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당연했다.
“뭐? 업적 포인트 리턴율이 올라? 추가 옵션?”
현자의 돌이 말한 내용은 시문으로선 결코 쉽게 넘길 수 있는 내용이 아니었으니까.
-당연하지. 기억 안 나? 내가 예전에 그랬잖아, 리바운드에 관여하려면 최소 C급이 되어야 한다고.
“그러고 보니…….”
시문의 말끝이 흐려진다.
과거 아스트라페를 사용하고 소멸되었을 때.
현자의 돌은 리바운드를 최소화하고, 그 10%에 해당하는 50점을 돌려주었었다.
-기억나나 보네. 맞아. 원래 10%였는데 이젠 20%야. 그니까 아스트라페 기준으로 500점을 쓰면, 50점이 아닌 100점을 돌려주는 거지.
“대박이잖아!”
절로 탄성이 튀어나오는 시문.
당연했다.
점점 랭크가 오르며 신화급 무구를 자주 연성하게 되는 상황이다.
한데 50점에서 100점으로.
페이백이 두 배로 늘어나니 기쁠 수밖에,
“얼른 옵션도 확인해 봐야겠어.”
시문은 즉시 현자의 돌의 상태창을 열었다.
[현자의 돌]
귀속 여부 : 김시문
레벨 : 76
등급 : C
보유 특성 : 옵시디언 태블릿, 용체화, 세계수
연금술의 신화적인 산물.
등가교환만 성립하면 무엇이든 연성이 가능하다.
-연금술과 관련된 모든 부분에서 절대적인 보정을 받는다.
-등가교환에 따라 스스로 재생한다.
-연성물의 지속 시간이 증가한다.
초기와 달리 무척이나 달라진 현자의 돌의 상태창.
시문의 시선은 그중 가장 마지막 줄.
‘연성물의 지속 시간이 증가한다.’를 향했다.
그러곤 물었다.
“현자의 돌, 지속 시간이 늘어난다는 건 곧 아스트라페나 레바테인의 지속력도 늘어난다는 거야?”
-응, 맞아.
현자의 돌은 명랑한 목소리로 답했다.
-알다시피 1회용 신화급 무구는 따로 사용하지 않아도 실시간으로 내구성이 소모되잖아.
“그렇지.”
대표적으로 아스트라페와 레바테인.
둘은 따로 힘을 소모하지 않아도.
일정 시간이 지나면 알아서 리바운드로 소멸해 버렸다.
-그걸 보정해서 좀 더 오래가게 만드는 거야. 그리고 이건 다른 연성물에도 적용이 돼.
“이를테면 골렘 같은?”
-맞아. 심지어 일반적인 연성물은 더 적은 연성력으로 더 오래가게 되는 거지.
즉, 일반적인 연성물들의 지속성이 증대한다는 뜻.
“하…….”
짧은 탄식이 흘러나온다.
잠시 제 이마를 짚던 시문은.
“요 효자 녀석! 정말 너밖에 없다! 네가 최고야!”
현자의 돌을 꼭 끌어안으며 녀석을 마구 쓸어 주었다.
물론 겉으로 보기엔 제 가슴을 끌어안고.
그 사이의 골을 문지르는 모습으로 보였지만…….
-헤으으응! 일어나자마자 존잘의 품으로 가 버렷!
현자의 돌이 행복사하는 소리가 실시간으로 들리는 시문에겐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못했다.
그렇게 한동안 현자의 돌을 이뻐해 주던 시문은.
“참! 이럴 때가 아니지.”
아까의 상황을 떠올리곤 얼른 자세를 바로 했다.
“현자의 돌, 네가 자고 있을 때 플래티넘 데뷔전을 치렀거든.”
-알아. 나 다 봤어.
“에? 다 봤다고?”
-응. 난 오빠한테 귀속된 몸이잖아. 비록 가수면 상태였지만 오빠가 뭘 하는지는 다 알 수 있지.
“그렇구나.”
현자의 돌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시문.
시문이 다시 뭐라 말하기도 전에.
-그래서 오빠가 뭘 물으려는지도 알아. 특별 랜덤 박스 때문이지?
“맞아.”
현자의 돌은 시문이 물으려는 것을 정확히 집어냈다.
-으음…… 잠깐만.
생각할 것이 있는지.
잠시 침묵에 빠지는 현자의 돌.
그에 따르르 하며 특별 랜덤 박스의 룰렛 소리만이 방 안을 채웠다.
이내.
-오빠, 당장 필요한 건 없는 거지?
현자의 돌이 침묵에서 깨어났다.
“필요한 거?”
-응. 오빠는 회귀자니까 꼭 신화급 무구가 아니더라도 좋은 아이템들을 많이 알고 있잖아.
“그렇긴 하지.”
최후의 2개국이 남을 때까지 살아 있던 시문.
당연히 연구실에 박혀 온갖 방송들 보며 작업했던 시문이기에.
좋은 아이템들은 많이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딱히 필요한 게 없어.”
-히힛! 나도 예의상 물어봤어. 그럼 이번에도 이걸로 달라고 하자.
“이거?”
-응. 왜 그…….
현자의 돌은 시문에게 뭐라 뭐라 속삭였고.
“호오. 그게 또 있었어?”
시문의 눈이 반짝였다.
-일종의 시리즈라고 생각해. 이건 등급도 애매해서, 특별 랜덤 박스로 받기 딱 좋아. 지들은 못 쓰니까 애물단지이기도 하고.
“그렇구나. 알았어.”
이미 한 번 받았던 전적도 있겠다.
시문은 망설임 없이 고개를 들고 말했다.
“갤럭시 아레나, 어렵게 가지 말죠. 그냥 이쪽에서 특별 랜덤 박스의 보상을 요구하겠습니다.”
그 말에.
[확장 탐색을 잠시 멈춥니다.]
기다렸다는 듯 탐색을 멈추는 시스템.
그에 시문은 미소를 머금으며.
“이젠 사라진 옛 성좌, 파라켈수스의 물건을 요구합니다.”
이전 골드 랭크 랜덤 상자 때의 요구를 그대로 꺼냈다.
그리고 그때처럼.
[논의 중…….]
갤럭시 아레나는 즉시 논의에 들어갔다.
이미 한 번의 전적이 있었기 때문일까?
[논의가 끝났습니다.]
[플레이어 김시문의 요구를 받아들입니다.]
갤럭시 아레나의 논의는 그때처럼 오래 걸리지 않았다.
“전 파라켈수스의 물건 중 실린더를 원합니다.”
시문은 즉시 요구 보상을 말했고.
[요구대로 특별 랜덤 박스의 보상은 파라켈수스의 실린더로 지급합니다.]
달가운 얼굴로 갤럭시 아레나의 메시지를 확인했다.
드르르륵.
진동하던 상자가 약간 묵직해진다.
상자 속을 확인하니, 어느새 끝없는 무한 공간과 같던 어둠은 사라지고.
팔뚝만 한 원통.
어찌 보면 주사기로도 보이는 물건이 자리하고 있었다.
“이거구나.”
시문은 그것의 정보창을 확인했다.
[파라켈수스의 실린더]
등급 : (구) 신화
소멸해 버린 연금술의 신 파라켈수스의 창조물.
사용할 수는 있지만, 창조자가 사라져 사용법은 알 수 없다.
예전에 받았던 [파라켈수스의 플라스크]와 똑같은 정보창.
정보창을 읽은 시문의 입가에 작은 미소가 걸렸다.
‘사용법을 알 수 없다고 쓰여 있어도 내겐 의미가 없지.’
(구) 신화라는 등급부터 사용법도 알 수 없는 아이템.
저건 단순 미감정이 아닌.
정말로 갤럭시 아레나조차 사용법을 알지 못한다는 뜻이었다.
그러니 특별 랜덤 박스 상자의 보상으로 지급이 가능한 거겠지.
하지만.
“현자의 돌, 이거 사용법 알지?”
-물론이쥐~.
저번 플라스크 때도 그랬지만.
현자의 돌은 파라켈수스의 창조물에 대한 사용법을 알고 있었다.
“그럼 이건 연구실에 가서 차차 보는 걸로 하자.”
-그게 좋아. 그거 생각보다 사용법이 복잡해서 내가 따로 감정 작업을 해야 하거든.
현자의 돌의 호응에 고개를 끄덕인 시문은 인벤토리에서 또 하나의 아이템을 꺼냈다.
사아아.
마족조차 경외할 정도로 순수한 마기.
그것으로 집약된, 책과 열쇠의 형태로 달리 보이는 물건.
-후후, 이렇게 보니 또 새롭네. 바알 녀석, 설마 레메게톤을 다시 풀어 줄 줄이야.
현자의 돌은 그것을 보며 중얼거렸다.
뭔가 사연이 있는 듯한 말투에 나름 호기심이 생겼으나, 시문은 그에 대해 따로 묻지 않았다.
‘보나 마나 인과니 뭐니 하며 또 말을 못 해 줄 테니까.’
앞서 몇 번 경험해 본 터라 딱 직감이 온 것이다.
이건 인과로 인해 못 해 줄 이야기라는 걸 말이다.
그러니.
“어디 보자. 이걸 이렇게 하면…….”
어서 레메게톤의 귀중한 윈본이나 사용해야겠지.
시문이 [아르스 게티아]를 왼쪽 눈으로 가져다 대고, 오딘의 눈을 활성화했다.
키이이잉!
“읏.”
오딘의 눈 특유의 강렬한 이명이 한층 강해진다.
왼쪽 눈 가까이 가져다 댄 아르스 게티아는 환풍기에 빨려드는 연기처럼.
시문의 눈 속으로 빨려들었다.
[아르스 게티아가 마안이 된 레메게톤과 반응, 융합됩니다.]
[레메게톤의 모조품(40%) 등급이 신화급으로 변경됩니다.]
[레메게톤의 옵션이 변화합니다.]
시문은 즉시 레메게톤의 정보창을 열었다.
[레메게톤]
등급 – 신화급
현재 보유 개수 (1/5)
-아르스 게티아
소멸해 버린 성좌 솔로몬의 창조물.
악마학에 대한 지식과 권능이 담겨 있다.
다섯으로 나뉘어 있으며, 완성도에 따라 능력이 증가한다.
시문의 시선이 곧장 윗부분을 향한다.
“신화급…….”
신화급.
지금껏 연성해 온 모조품이 아닌 진짜 신화급 등급.
물론 성좌 헤르메스가 일회성으로 그의 모자인 페타소스를 허락하긴 했지만 그뿐.
실제로 완제품이라 부를 수 있는 신화급 무구는 얻어 본 적이 없는 시문이었다.
시문의 시선은 아랫부분을 향했다.
“역시 다섯 가지를 다 모아야 하네.”
‘1/5’이라는 숫자와 완성도에 따라 능력이 증가한다는 문구까지.
더불어 어떤 능력을 지녔는지 제대로 명시되어 있지도 않았지만.
시문의 입가에선 미소가 사라지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레메게톤의 성장으로 마안이 성장합니다.]
눈앞에 떠오르는 기분 좋은 메시지와 함께.
사아아아아.
일종의 특성처럼.
시커멓게 변질된 왼쪽 눈에서 격렬한 태초의 마기가 소용돌이쳤고.
“아아……!”
정보창에 명시되어 있지 않은 레메게톤의 능력이 시문의 뇌리에 아로새겨졌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