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1화
111화. 제작 골렘 (5)
늘 분주하게 움직이던 백은의 골렘.
그극.
미스릴 골렘들은 자로 잰 듯, 질서 정연하게 연구실의 한쪽 면에 자리했다.
그리고 미스릴 골렘이 하나씩 자리를 잡을 때마다.
뚝.
시간이 멈춘 것처럼 움직임이 멈춰 버렸다.
이윽고 모든 미스릴 골렘들이 가동을 멈추자.
“후.”
시문은 깊은 숨을 내쉬었다.
“이걸로 연결은 다 끊었네.”
연성 골렘.
비록 미스릴이라는 재료 덕분에.
행동 패턴만 입력해 두면 따로 컨트롤할 필요야 없지만.
가동을 위한 지속적인 연성력의 주입이 필요했다.
그것을 모두 끊어 낸 시문은 빠르게 차오르는 연성력을 확인하곤 몸을 돌렸다.
그곳엔 허공을 둥둥 떠다니는 플라스크.
-오빠, 골렘들은 다 작동 중지했어?
현자의 돌이 한 금속 모형 주변을 맴돌고 있었다.
“어, 곧 연성력도 가득 찰 거야.”
-응. 준비되면 이쪽으로 와. 연성진은 다 그려 뒀으니까.
플라스크 속 현자의 돌은 금속 모형 맞은편에 그려진 연성진을 가리켰다.
시문은 고개를 끄덕이며, 연성진으로 걸어갔다.
‘연성진이라…… 오랜만이네.’
현자의 돌을 만난 후.
연성진은 전혀 사용해 보지 않았던 시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손가락 한번 튕기면 되는 최상의 연성법이 있는데.
뭐 하러 일일이 그려야 하는 연성진을 사용하겠는가?
그러나 오늘만큼은 달랐다.
찰랑.
인벤토리에서 검붉은 액체가 담긴 포션.
드래곤 세럼을 꺼낸 시문은 연성진의 중앙에 그것을 올려놓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준비됐지? 다시 말하지만, 용력을 최대치로 복제한 다음 가동하는 거야.
“그래.”
제작 골렘의 가동에 필요한 용력.
그것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연성하기 위해서였다.
정확히는.
‘복제 연성이라고 해야겠지.’
현자의 돌피셜.
드래곤 세럼의 용력은 무척이나 격과 순도가 높았지만.
그 양이 많지가 않다, 라고 했었다.
당연했다.
회로역행과 같은 아레나 질병의 주 원인이 될 만큼 위험한 용력인데.
그것을 다량으로.
심지어 용제급의 용력으로 영약을 만들면 그건 영약이 아니라 독약이었으니까.
‘새삼 어떻게 정제했는지 진심으로 궁금하단 말이지.’
시문 역시 연구실로 돌아와, 오딘의 눈과 사안으로 드래곤 세럼을 살폈으나.
그 제작법이나 구조는 알아내지 못했다.
어쨌든.
‘DS의 용력을 최대한으로 복사하면 제작 골렘의 가동 에너지로 충분해.’
드래곤 세럼의 용력을 베이스로 복제 연성을 하면.
부족한 가동 용력을 충분히 얻어 낼 수 있었다.
‘뭐, DS없이 부족한 용력을 전부 연성해 버리는 방법도 있긴 하지만…….’
그 비용이 감히 어마어마했다.
아예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것과, 기존에 있던 것을 ‘복제’하는 건 큰 차이가 있으니까.
물론 복제 연성도 만능은 아니었다.
창조보다야 적은 것이지, 결국 업적 포인트가 들고.
기운의 특성상, 담을 그릇이 없으면 소멸로 이어진다는 단점이 있으니까.
하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일반적인 상황일 때의 이야기.
‘복제하는 즉시 사용해 버리면 상관없지.’
지금은 이러한 단점들이 통용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오빠, 다 된 거지? 시작한다?
현자의 돌의 명랑한 목소리가 상념에 빠진 시문을 일깨운다.
시문은 고개를 끄덕이곤 연성진 앞에 자리했다.
이내.
우드득.
시문의 몸이 뒤틀리며 훤칠했던 육체가 한층 더 탄탄해졌고.
맨살이 드러난 곳곳엔 금색의 비늘이 조금씩 모습을 내비쳤다.
용체화(龍體化).
현 인체 연성으로 해낼 수 있는 그 어떠한 종보다 우수한 종의 인자가 활성화된 것이다.
이어.
손을 앞으로 내미는 시문.
[요구치에 맞는 연성을 이루기에는 연성력이 부족합니다.]
[현자의 돌이 부족한 등가교환을 성립시키기 위해, 업적 포인트 20,000점을 요구합니다.]
[받아들이시겠습니까? (예 / 아니오)]
‘2만 점이라…….’
옵시디언 태블릿이나 천마신공, 세계수의 씨앗 등.
지난 신화급 연성물들도 업적 포인트 2만 점을 넘긴 적이 없었는데.
하나 시문은 아까운 마음이 들지 않았다.
제작 골렘의 가치는 들어간 재료들이 입증해 줄뿐더러.
‘앞으로 업적 포인트 2만 점 이상은 수시로 들 테니까.’
만 점으로 어지간한 신화급 무구를 연성할 수 있는 시기는 지나갔다.
자신의 스펙이 오르는 만큼.
그를 뒷받침해 줄 연성물들의 대가가 커지는 건 당연한 이치였으니까.
시문은 망설임 없이 ‘예’를 선택하고는.
우웅.
2만 점의 업적 포인트가 치환된 연성력을 손끝으로 모았다.
그리고 그것을 튕기는 순간.
따악.
번쩍!
앞에 있던 연성진이 강렬한 빛을 터뜨렸다.
용체화와 사안 때문일까?
아니면 시문이 연성자이기 때문일까?
연구실을 가득 채우는 검붉은 빛은 조금도 눈부시지가 않았다.
사아아아.
이윽고 검붉은 기운.
드래곤 세럼의 용력이 최대치로 복제가 되자.
-오빠! 지금이야!
따악.
시문은 연이어 손가락을 튕겼고.
슈아아아악!!
검붉은 용력은 즉시 시문의 체내로 빨려들었다.
“큽!”
시문의 입술 사이로 작은 신음이 삐져나온다.
치료제의 자동 제작도 멈추면서까지 최대한 풀 컨디션을 유지했거늘.
‘몸이…… 터질 것 같아!’
끝을 모르고 팽창하는 풍선처럼.
빨려든 용력은 시문의 몸속을 끊임없이 채워 댔다.
“크윽!”
용체화로 탄탄해진 육체 위로 울룩불룩 핏줄이 솟고.
금색의 비늘들 역시 은은한 광택을 흘리며 날을 세운다.
시문은 이를 악물곤.
당장이라도 터질 것 같은 팔을 앞으로 내밀었다.
“크아아압!”
따아악.
짜내는 기합과 함께 튕겨지는 손가락.
이어.
시문의 몸에 잠시 머물렀던 용력은 검붉었던 색을 벗어던지고.
콰르르르르!
시문의 비늘과 같은 찬란한 금색의 기류가 되어, 제작 골렘을 향해 쏟아져 나갔다.
“아아…….”
배설의 쾌락이 이런 것일까?
몸이 터질 듯 가득 채웠던 어마어마한 기운이 순식간에 빠져나가고 있음에도.
전신으로 찾아오는 거대한 해방감에 시문은 절로 탄식을 흘렸다.
반대로.
파직! 파지직!
금색의 기류.
시문이 쏟아 낸 용력을 맞이한 제작 골렘은 환호를 내지르듯.
전신에서 스파크를 뿜어냈다.
고수준의 연금술을 펼칠 때 일어나는 연성 스파크였다.
-아아! 저것 좀 봐! 엄청난 양의 용력을 계속 먹어 치우고 있어! 점점 살아나고 있다고!!
상황을 지켜보던 플라스크 속 현자의 돌 역시 몽롱해진 눈으로 제작 골렘의 연성을 바라봤다.
그때.
뭉클.
뒤편에서 표현할 수 없는 말캉한 소리가 들려왔다.
본디 연성은 무척이나 세심하고 정교한 행위인지라.
“음?”
-엥?
신경이 곤두서 있던 시문과 현자의 돌은 자연스레 소리가 난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정확히는.
“어엇!”
-뭐, 뭐야, 저건!
돌리려 했다.
하얀 구슬.
지난 아레나의 보상으로 받았던 [여왕의 알]이 그들의 앞을 스쳐 지나가기 전까진 말이다.
“아, 안 돼!”
설마 여왕의 알이 움직일 거라곤 상상도 못 한 시문과 현자의 돌.
그러나 둘이 어떤 조치도 취하기 전에.
여왕의 알은 용력의 파도에 휩쓸린 제작 골렘에게 파고들었고.
파지지…….
뭉클!
화려했던 연성 스파크를 모조리 집어삼키며, 말캉한 소리를 내었다.
그것을 마지막으로.
콰아아아아아앙!!
어마어마한 폭발이 연구실을 덮쳤다.
* * *
후덥지근한 열기와 정체 모를 벌레가 가득한 정글.
그 우거진 수풀 사이로.
“죽어라!”
가죽 갑옷의 여성이 단검을 내지르며 튀어나왔다.
제법 숙련된 플레이어라도 반응하기 힘든 속도의 기습.
하나.
“너나 죽어.”
기습의 목표는 시니컬한 답과 함께 주먹을 내질렀다.
빠각!
단검을 쥔 여성의 얼굴에 정확히 틀어박히는 주먹.
얼핏 보기엔 빠른 속도 때문에 단검의 여성이 스스로 주먹에 얼굴을 가져다 댄 모양새였지만.
상황을 조금이라도.
아니, 조금이라도 실력이 있는 플레이어라면 모를 수 없었다.
저 주먹에 담긴 무리가 그만큼 고강하다는 것을 말이다.
“하, 하은아!!”
“저 괴물이!”
여성의 동료로 보이는 두 남녀가 다급히 소리를 지른다.
하나.
“소리만 치지 말고 좀 덤벼라.”
입꼬리를 비죽 올리며 주먹을 터는 여성.
고말숙은 시체가 된 하은이란 여성을 옆으로 차 버리곤.
“어차피 너희가 마지막이잖아?”
여유로운 시선으로 두 남녀를 흘겼다.
이내.
“아니다. 또 도망갈 텐데, 덤비라고 말하는 내가 미친년이지.”
머리를 벅벅 긁은 고말숙이 걸음을 내디뎠다.
“걍 내가 그쪽으로 갈란다.”
“이런! 조심해! 또 그 기술이…….”
그에 방패를 든 남성이 황급히 방패를 들어 올렸지만.
쿠웅.
“컥!”
“윽!”
마치 무거운 무언가에 짓눌린 것처럼.
방패를 든 남성은 물론.
그 뒤에 있던 로브의 여성까지 몸을 휘청이며 주저앉았다.
“진작 뒤졌어야 할 것들이 도망만 오지게 다녀서는. 뭐, 나쁜 전략은 아니었어. 덕분에 이렇게 마지막까지 살아남았잖아?”
꼼짝도 못 하는 두 사람을 향해 느긋하게 걸음을 옮기는 고말숙.
“이……!”
전투계라서일까?
아니면 3인 중 레벨이 가장 높아서일까?
남성은 방패를 지팡이 삼아.
전신을 내리누르는 압력에 저항하며 간신히 몸을 일으켰다.
“이딴 사기 능력이……!”
“사기? 넌 이게 사기로 보이냐?”
“그럼 전투…… 계가 구속 마…… 법을 사용하는데! 아니란 말이냐!”
말하는 것도 힘겨운지.
남자는 목과 얼굴에 핏대를 세워 가며 간신히 말했다.
“사기 같은 소리하고 자빠졌네.”
어느새 남자의 앞까지 당도한 고말숙.
그녀는 시니컬하게 남자의 얼굴로 손바닥을 내밀었다.
그곳엔.
우웅.
시커먼 기운이 급속도로 응축되고 있었다.
“너 진짜 사기꾼을 아직 못 만나 봤구나?”
그 말을 끝으로.
천마신공(天魔神功).
파(波) 섬멸포(殲滅砲).
남자의 시야는 암전되었다.
* * *
대한민국 최고의 시청률을 자랑하는 아레나 전용 채널 국가대표 아레나.
-아아! 마지막 생존자인 치타 길드가 쓰러집니다!
통창 ‘국아’의 메인 MC인 최강엽은 탄식을 내질렀다.
반대로.
-아! 정말 대단합니다!
곁에 있던 해설 송재경은 탄성을 내질렀다.
-방금의 기술도 고각으로 이용해, 뒤에 있던 이은지 플레이어까지 같이 처리했습니다! 정말 효율적인 공격이에요.
-맞습니다. 이로써 생존자는 고말숙 단 한 명! 이번 골드 랭크 데뷔전의 우승자가 결정지어집니다!
[골드 랭크 데뷔전의 우승자가 결정되었습니다.]
최강엽의 말이 끝나자마자 떠오르는 시스템.
-저번 기수의 우승자였던 김시문과 같이 솔로 참가 우승자입니다!
-정말 대단합니다! 저번 기수보다 유망주들의 기량이 떨어진다고 해도, 1인 우승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거든요!
-맞습니다! 이로써 우리 대한민국의 또 다른 신성이 등장…….
최강엽과 송재경의 열기 띤 멘트들이 이어지는 가운데.
국아를 시청하고 있던 청순한 여성.
삑.
이유정은 미련 없이 TV를 껐다.
갑작스레 TV가 꺼졌음에도.
함께 보고 있던 김시혁과 박진욱은 아무런 불만도 표하지 않았다.
대신.
그들의 시선은 거실의 한쪽 문을 향했다.
쾅!
“후, X발.”
거친 욕설과 함께 들어선 여성.
날렵한 눈매의 고말숙은 짜증 실린 움직임으로 머리를 벅벅 긁었다.
“말숙아, 1등 축하해.”
“축하한다.”
“말숙 씨, 경기 잘 봤습니다.”
축하의 말을 보내는 세 사람.
그러나 뭐가 그리 불만족스러운지.
“……다들 고맙다.”
그녀는 삐진 아이처럼 뾰로통한 얼굴로 이유정의 옆에 털썩 앉았다.
그에 이유정은 부드럽게 웃으며 물었다.
“우승까지 해 놓고 왜 그렇게 뿔이 나 있어. 치타 길드가 끝까지 도망 다녀서 그런 거야?”
“걔넨 신경도 안 쓰여. 허접들한테 딱 어울리는 짓이잖아.”
그렇게 답한 고말숙은 이유정이 내민 차를 벌컥벌컥 마셨다.
값비싼 엘븐티라서일까?
다소 누그러진 고말숙은 소매로 입가를 슥 닦으며 말했다.
“그냥 약한 게 짜증 나서 그래.”
“약해? 아.”
고개를 갸웃하다 작게 탄식을 내뱉는 이유정.
“아, 참가자들 말하는 거구나.”
그녀는 짜증의 원인을 정확하게 짚어 냈고.
김시혁은 이유정의 말에 힘을 보탰다.
“형이 참가했을 때보다 유망주들의 실력이 낮아서 그래?”
“당연하지!”
제대로 찌른 것일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는 고말숙.
“국내 유수 길드들의 유망주들이라며! 실버에서 아주 날고 기던 애들이라며!”
근데 왜 그 자식이 만난 애들보다 약한 거냐고!
그렇게 격노하는 고말숙에 세 사람은 작게 웃음을 흘렸다.
“말숙아, 마음은 이해하지만 다른 참가자들이 들으면 충격이 크겠다?”
“어쩔 수 없지. 형이 참가했던 데뷔전 기수들이 유별나게 강하긴 했으니까.”
최진수를 필두로 한 신화 길드.
마법계의 샛별이라 불리는 유씨 남매의 전갈 길드.
그리고 기타 유수 길드들까지.
전체적으로 수준이 높은 플레이어들이었을뿐더러.
골드 데뷔전치고 마법계의 비중도 높아, 아직까지도 조회 수가 쭉쭉 올라가는 데뷔전이었다.
“제길! 변태 영감을 조금만 더 일찍 만났어도! 나도 그 녀석이랑 같이 데뷔전을…….”
그에 주먹을 불끈 쥔 고말숙이 성을 토하려던 찰나.
콰아아아아아앙!!
랭커팰리스에선 결코 일어날 수 없어야 할 폭발이 이어졌다.
“뭐, 뭐야!”
갑작스러운 폭발에 깜짝 놀라는 고말숙.
하나 그녀를 제외한 세 사람.
“이 폭발은!”
“시문 님의 연구실 방향이야!”
“오라버니!”
김시혁과 박진욱, 그리고 이유정은 순식간에 문을 박차고 나갔다.
“자, 잠깐! 나도 같이 가!”
정신을 차린 고말숙 역시 허겁지겁 시문의 펜트하우스를 향했다.
하지만 골드 데뷔전의 우승자라 해도 결국 골드.
두 랭커와 다이아 플레이어의 속도를 따라잡기란 불가능했고.
꽤 달리고 나서야 시문의 펜트하우스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러곤.
“엥?”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마어마한 폭발.
흡사 랭커팰리스가 무너지는 것 아닌가 싶었던 강렬한 폭발과 달리.
“뭐야. X나 멀쩡하잖아?”
문 입구조차 멀쩡한 것이다.
그녀는 열려 있는 펜트하우스의 입구를 지나.
시문의 연구실에 도달했고.
“야! 김시문! 이게 대체 무슨…….”
볼 수 있었다.
“…….”
“…….”
먼저 도착해 얼이 빠진 3인방과.
이 폭발의 원인으로 추정되는.
“아빠?”
정체 모를 한 아이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