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0화
110화. 제작 골렘 (4)
어찌 보면 불길하다 할 수 있는 검붉은 색감의 액체.
그러나 유리병 속에 있음에도.
검붉은 액체가 뿜어내는 기운은 심상치 않았다.
“역시 알고 계시는군요. 맞습니다.”
그런 시문의 눈을 다른 의미로 해석한 것일까?
“DS. 정확한 명칭은 드래곤 세럼이라 불리는 영약입니다.”
서위룡은 저 혼자 고개를 끄덕이며 그것을 내밀었다.
“드래곤 세럼이요?”
“예. 언제부터인가 창왕 종리추 측에서만 제공되던 대륙성 최고의 영약이지요.”
대륙성 최고의 영약.
그 말에 시문의 눈이 가라앉았다.
왜냐하면.
‘전생에도 대륙성에 DS란 영약은 없었는데…….’
전생에 대륙성과 잦은 거래를 텄던 시문이다.
당연히 대륙성의 독자적인 영약들은 훤히 꿰고 있었다.
한데 저 드래곤 세럼이라는 영약은 들어 본 적이 없는 것이다.
심지어.
‘대륙성은 자신들이 만든 아레나 물품엔 어지간해선 한자어를 쓰지.’
언어에 대한 특유의 자존심 때문인지는 몰라도.
대륙성은 자신들이 제작하는 아이템엔 대부분 한자어를 사용했었다.
유망주를 후기지수라고 부리는 것만 봐도 느낌이 오지 않는가?
한데 드래곤 세럼이라니?
물론 이상할 건 없었다.
“그러니까 이게 창왕 종리추 측에서만 생산되는 영약이라는 거죠?”
“예.”
종리추 측에서만 생산되는 영약.
이것만 해도 어떤 내용인지 훤히 보였으니까.
“이것 말고도 용혈단 등 길드에서도 모르는 레시피의 영약들이 있습니다만…….”
그렇게 말하는 서위룡의 시선이 슬쩍 내려간다.
당연했다.
대륙성이 어디 중소 길드도 아니고.
미국의 아메리칸드림과 함께 세계 2강으로 불리는 길드인데.
길드 영약과 같은 중요한 정보가 제대로 공유조차 되지 않고 있다니?
‘부끄럽겠지.’
거대 길드라면 나름 자부심이 있을 터인데.
길드의 치부를 외부인에게 보란 듯이 내보이니 치욕스러운 것이리라.
시문은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은 채.
“다음에 기회가 생기면 다른 영약들도 부탁드리죠.”
서위룡이 건넨 DS를 받았다.
그 배려를 눈치챈 것일까.
“……예. 감사합니다, 시문 님.”
서위룡은 고개를 숙이며 감사를 표했다.
시문은 미소로 답해 주곤.
찰랑.
검붉은 액체가 찰랑거리는 유리병을 바라봤다.
‘드래곤 세럼이라…….’
따로 오딘의 눈에 있는 사안을 활성화할 필요도 없다.
드래곤 세럼이라 불린 이 영약은 이렇게 보기만 해도.
사아아아.
‘이름값 하네.’
고순도의 용력을 흘리고 있었으니 말이다.
물론 사안과 용력을 지닌 시문이었기에 알아차릴 수 있는 것이지.
일반적인 이들은 조금도 느끼지 못하리라.
시문은 드래곤 세럼의 정보창을 확인했다.
그러곤.
“에?”
“시문 님?”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왜 그러십니까. 혹시 뭔가 문제라도 있는지요?”
“서위룡 씨, 혹시 이거 저만 안 보이나요?”
“예?”
시문은 고개를 갸웃하는 서위룡에게 드래곤 세럼을 내밀었다.
서위룡은 의문에 찬 시선으로 드래곤 세럼을 바라봤고.
“어!”
그 역시 놀란 눈이 되었다.
이유는 다름 아니었다.
“저, 정보창이 안 보입니다!”
“그렇죠?”
드래곤 세럼의 정보창.
그것이 미감정의 형태로도 뜨지 않는 거였다.
본디 갤럭시 아레나의 부산물로 만들어지는 제작품은 모두 정보창을 지니기 마련.
그 정도는 생산계가 아니라도 누구나 알고 있는 상식이었고.
서위룡 역시 그것을 모르지 않았는데.
“아니, 대체 무엇으로 만들었기에 정보창이…….”
정보창이 뜨지 않으니 몹시도 당황스러운 것이다.
시문은 차분한 얼굴로 물었다.
“이거, 어디서 구하신 겁니까?”
“이곳으로 출발하기 전, 부길마께서 선물로 드리라고 주신 겁니다. 특성 향상에 도움을 준다더군요.”
“특성 향상이요?”
“예. 아무래도 4,300억이나 되는 대여비다 보니, 계약 기간 협상에 조금이라도 잘 보이시고자…….”
차마 ‘뇌물’이라는 말을 입에 담지 못한 서위룡.
그는 말끝을 흐리더니, 고개를 푹 숙이곤 포권을 했다.
“죄송합니다, 시문 님. 이 서위룡, 오늘 떳떳하지 못한 모습을 많이 보이는군요.”
“괜찮아요.”
시문은 가볍게 손을 저으며, 드래곤 세럼을 바라봤다.
‘현 부길마는 종완지. 종리추의 삼촌이란 말이지.’
전생에도 그랬지만.
종완지는 종리추의 사람이다.
따라서 그가 보낸 드래곤 세럼이 가짜일 리는 없을 터.
시문은 입술마저 깨물고 있는 서위룡에게 물었다.
“서위룡 씨. 혹시 이 드래곤 세럼이라는 영약, 전에도 본 적이 있나요?”
“전이라면…… 아!”
시문이 뭘 물으려는지 안 것일까.
서위룡은 작게 탄식하며 고개를 저었다.
“용혈단이라면 모를까, DS는 한 번도 실제로 본 적이 없는 영약입니다.”
“그 말은 무척 희귀한 영약이라는 말로 들리는데요.”
“맞습니다. 창왕의 측근들에게만 주어지는 영약이거든요.”
“흐음…….”
시문은 잠시 턱을 괴었다.
특성을 향상시키는 영약이라면 제 측근들에게만 줄 법했다.
반대로.
신뢰할 수 없는 자에겐 결코 줄 수 없는 영약이라는 말이 된다.
‘그렇다는 건, 이 드래곤 세럼은 원래 정보창이 없는 아이템이라는 건데…….’
정보창이 없는 아이템.
다르게 말해 갤럭시 아레나의 허가를 받지 못한 아이템이라는 말이 된다.
‘일종의 불법 아이템이란 말이지.’
실제로 떳떳한 아이템이라면 진즉에 세력 확장으로 쓰였을 것이다.
무려 특성을 향상시키는 효과를 지니지 않았나?
초고가의 판매부터.
유명 랭커들을 회유하기 위한 미끼 등등 다양하게 말이다.
한데도 종리추는 드래곤 세럼을 제 측근들에게만 국한시켰다.
이는 곧.
‘갤럭시 아레나에서 허가되지 않는 재료로 만든 아이템이라는 말이 되지.’
무척이나 신빙성이 높은 추측이었다.
이미 지난 아레나들로.
용족이 은연중에 갤럭시 아레나의 규정을 어기는 것을 봐 오지 않았던가?
‘그러고 보니 세계수를 타락시켰던 용력은 용제 니드호그의 것이었지.’
이 드래곤 세럼의 용력은 앞서 세계수를 타락시켰던 용력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그 말인즉슨.
‘드래곤 세럼에 담긴 용력이 용제의 것과 다름없다는 거네.’
그렇다는 건 종리추가 단순한 용족이 아닌.
용제와 선을 대고 있다는 소린데.
‘이거, 생각보다 정보를 많이 얻었네.’
서위룡을 비롯한 온건파를 아직 제대로 밀어 주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이만한 정보를 물고 올 줄이야.
물론 서위룡의 입장에선 그저 계약 협상을 위한 뇌물을 가져온 것에 지나지 않았지만 말이다.
시문은 숨죽이며 눈치를 살피는 서위룡을 바라봤다.
“마음에 드는 선물이네요. 부길마껜 그렇게 전해 주세요.”
“에? 아! 예, 꼭 전하겠습니다.”
“그럼 선물을 받았으니, 답례를 해 드려야겠죠?”
“답…… 례요?”
이건 대여비를 줄여 달라고 준 뇌물이거늘.
무슨 답례란 말인가?
하나 서위룡의 의문에도.
‘온건파의 세력 확장으로 바쁠 텐데도 이런 식으로 수작을 부린단 말이지.’
시문의 속은 꽤 차가웠다.
‘내가 일반적인 플레이어라면 DS를 좋다고 마셔 댔겠지.’
정보창이 뜨지 않는다는 부분에서 한 번쯤 의심해 볼 법하지만.
영약의 출처가 세계 2강 길드의 부길마이고.
무려 특성을 향상시켜 준다는 효능은 그런 의심을 충분히 짓밟을 만했다.
하지만 용제급의 용력이 영약의 베이스라는 걸 아는 시점에서.
‘이건 어떻게든 탈이 날 영약이야.’
일반적인 플레이어들에겐 어떤 형식으로든 독이 될 것이 뻔히 보였다.
사실 시문의 입장에선 이대로 마셔도 상관은 없었다.
‘내겐 용신의 피가 있으니까.’
용신 티아메트의 피.
이미 세계수를 타락시켰던 니드호그의 용력도 시문에게 굴복하고 흡수된 상황이다.
그런 시문에게 이 드래곤 세럼은 능력의 향상을 넘어.
세계수 때처럼 용력이나 관련 능력들까지 향상시켜 줄지도 몰랐다.
하지만.
‘마침 딱 쓸 데가 있지.’
지금 시문에겐 이런 고순도의 용력이 쓰일 곳이 있지 않은가?
‘어때? 다 끝났어?’
시문이 제 가슴께를 흘낏하자.
-응응! 파악 끝났어.
드래곤 세럼의 파악을 끝낸 현자의 돌이 명랑한 목소리로 답했다.
-양은 적어도 용력의 격이 상당해. 이걸 복제 연성으로 늘리면 제작 골렘은 충분히 가동할 수 있어!
제작 골렘.
베이스로 들어간 드라고니움 때문에 용력 부족으로 가동이 불가했는데.
‘참 고맙단 말이지. 마침 필요한 걸 가져다 바치고 말이야.’
때마침 자신을 엿 먹이려던 종리추 측의 수작이 오히려 이득이 될 줄이야.
그러니 배로 돌려줘야 하지 않겠는가?
“저…… 시문 님? 답례라는 게 무슨 뜻입니까?”
“아아, 말 그대로예요. 이런 귀한 걸 받았는데, 성격상 그냥 있을 수가 없어서요.”
싱긋 웃은 시문은 뒤쪽을 바라봤다.
그러자 어느새 들어와 대기 중이던 밤사냥꾼 박진욱이 다가왔다.
“진욱 씨, 준비됐나요?”
“예. 사실 준비랄 것도 없습니다. 가기 전에 얼마든지 이용해 달라고 말했거든요.”
박진욱은 작게 헛웃음을 흘리며, 인벤토리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이, 이건!”
그것을 본 서위룡의 두 눈이 부릅떠진다.
그럴 수밖에.
사락.
동양풍의 종이에 여우가 그려진 전표.
이는 다름 아닌.
“암시장의 전표 아닙니까?!”
달러만큼이나.
어쩌면 달러 이상의 가치를 지닌 화폐, 암시장의 전표였으니까.
심지어.
“잠깐! L이라면…… 암시장 오너의 직속 전표?!”
전표 상단에 요요하게 새겨진 L이라는 이니셜.
이것이 암시장의 주인이 직접 발행한 전표임을 서위룡은 모르지 않았다.
“맞습니다. 암시장 오너가 보증하는 전표죠.”
“세상에…….”
시문의 확신에 서위룡은 입을 떡 벌렸다.
‘이건 길드 마스터께서도 몇 장 없는 것인데…….’
세계 2강인 대륙성.
그곳의 주인인 현 길드 마스터조차 몇 장 지니지 못하는 암시장 오너의 전표.
당연했다.
암시장 오너의 전표는 단순 돈이나 권력, 힘이 있다고 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으니까.
암시장 오너만이 매기는 어떤 가치에 의해 주어지는 것.
심지어.
‘방금 밤사냥꾼께서 얼마든지 이용해 달라고 하셨지?’
밤사냥꾼 박진욱이 얼마든지 이용해 달라는 말을 하지 않았나?
상황으로 보건대.
저건 분명 암시장의 주인이 직접 한 말일 터.
하나.
“답례입니다. 가져가세요.”
“예?”
눈앞의 미청년은 그런 귀한 전표를 무슨 어린애 용돈이라도 주듯.
“제 답례이니 가져가시라고요. 물론 부길마가 아닌 서위룡 씨에게 드리는 겁니다.”
사락.
일말의 미련도 없이 앞으로 슥 내민다.
그에 서위룡은 대경실색을 했다.
“이 귀한 것을 어찌!”
“아까 말씀드렸잖아요. 제가 받고만 사는 성격이 못 되거든요.”
암시장의 전표.
그것도 오너의 전표라면 숫자로 감히 매길 수 없는 가치를 지닌다.
어떤 물건이든 경매나 기타 과정을 거치지 않고.
암시장에서 0순위로 직접 매수할 수 있으니까.
그런 전표를 준다는 건.
“일종의 자금 지원…… 이군요.”
대륙성의 온건파에게 자금을 대 준다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역시 똑똑하시네요. 맞아요.”
시문은 가벼운 미소로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세탁을 거친 위안화도 따로 지원이 들어갈 겁니다. 실력자에게 맡겨서 종리추도 추적은 불가능할 테니, 안심하고 사용하세요.”
“위안화까지! 시문 님, 이건 많아도 너무…….”
“우린 거래를 했잖아요. 서위룡 씨가 종리추를 견제하는 대신, 제가 당신을 밀어 주겠다고요.”
“…….”
깔끔하게 정리해 버리는 시문에 서위룡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또 가져오신 드래곤 세럼이 제게 꽤 큰 도움이 될 거거든요. 그러니 부담 갖지 말고 받으세요.”
부담을 갖지 말라니?
이런 어마어마한 지원을 이토록 쉽게 내밀면서 부담을 갖지 말라니?
“시문 님, 드래곤 세럼은 부길마께서 주신 거지 않습니까? 전 당신께 아무것도…….”
서위룡이 급히 입을 열었으나.
“그만. 당신의 존재 자체만으로 제겐 도움이 됩니다. 그러니.”
시문은 그의 말을 쉽게 잘라 냈다.
그러곤.
“두 번 말하게 하지 말고 가져가세요.”
강압과 패기.
그 사이의 태도로 암시장의 전표를 서위룡의 앞까지 밀어 버리는 시문.
그에.
“……감사합니다. 이 서위룡, 이 은혜는 결코 잊지 않겠습니다!”
서위룡은 그저 감사를 표하는 것 말곤 방법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