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9화
109화. 제작 골렘 (3)
따악.
맑고 경쾌한 소리.
그에 치료제를 세심하게 포장하던 백은의 존재.
그그극.
미스릴 골렘이 잠시 소리의 근원을 바라봤다.
그곳엔.
-좋아! 조금만 더!
따악.
-오빠, 여기도 살짝 다듬어야 해.
따악.
-이쪽 규격이 살짝 안 맞네?
둥둥 떠다니는 눈알이 담긴 플라스크와 뚜렷한 이목구비의 미남이 열심히 무언가에 몰두하고 있었다.
이러한 광경이 벌써 며칠이나 지속되고 있었기에.
그극.
미스릴 골렘은 자연스럽게 포장 작업으로 복귀했다.
-됐다! 이게 마지막이야!
신이 한껏 담긴 목소리.
“후우…….”
그와 함께 이마를 슥 닦아 낸 미청년.
시문은 근처의 의자로 털썩 몸을 던졌다.
“완전 죽을 맛이구만.”
며칠간의 강행군.
그 때문에 흐트러진 머리와 셔츠 자락이 시문의 호흡에 맞춰 흔들거린다.
힘이 빠진 목소리에 딱 맞는 모양새였다.
물론.
-그래도 다 끝냈잖아.
“그렇긴 하지.”
시문의 눈빛은 그와 달리 생기로 반짝거렸다.
그럴 수밖에.
-이만한 양의 아다만티움이랑 오리하르콘을 10일 만에 정제해 낼 줄이야. 역시 울 옵이라니까.
자루 하나가 묵직할 정도의 아다만티움과 오리하르콘.
그것을 단 10일 만에 제작 골렘에 맞게 정제해 냈으니, 어찌 기쁘지 않겠는가?
“드라고니움도 있다.”
-아 참! 그랬지.
심지어 드라고니움을 섞어 넣는 작업까지 완벽히 해낸 상태.
이제는 파츠 부착을 비롯한 마지막 작업만 하면 정말로 끝인 상태였다.
시문은 따뜻한 시선으로 허공에 둥둥 떠다니는 플라스크 속 현자의 돌을 바라봤다.
“현자의 돌, 네가 있어서 다행이야. 나 혼자였으면 한 달도 넘게 걸렸을 거다.”
-헤헤! 내가 쫌 대단하징!
연금술의 최고 연성물인 현자의 돌.
그 값에 걸맞게.
녀석은 인간의 눈으로는 판별하기 힘든 오차들을 모조리 잡아내었고.
덕분에 시문은 별다른 제작 장비를 구비하지 않고도.
수월하게 아다만티움과 오리하르콘, 그리고 드라고니움의 합금, 정제 작업을 끝마칠 수 있었다.
-오빠.
정제가 끝난 파츠들을 최종적으로 점검한 현자의 돌이 다가왔다.
-그러고 있지 말고, 이제 가서 좀 쉬어. 한동안 제대로 못 쉬었잖아.
“완성이 코앞인데 끝내고 쉬어야지. 어차피 연성력도 다 회복됐어.”
지난 아레나인 플래티넘 승급전.
비록 승급전이라 그 보상이 크진 않았다 하더라도.
무려 6레벨업을 한 시문이었다.
그렇게 얻은 잔여 스탯을 모두 연성력에 투자해, 130이던 연성력은 136이 된 상황.
여기서 칭호 ‘왕들의 픽’ 효과로 +4를 더해 총 연성력은 140.
거기에다 현자의 돌 역시 68레벨을 달성한 상태다.
당연히 연성력의 회복 속도는 상당했다.
그렇게 일어나려는 시문의 이마로.
-에잇! 이 바보 오빠야!
“읏.”
차갑고 매끌매끌한 것이 닿았다.
어느새 이마까지 다가온 플라스크 속 현자의 돌이었다.
-연성력이야 금방 회복되겠지만, 정신력은 아니잖아!
녀석의 눈이 불만스럽게 휘었다.
-고난도의 작업을 10일이나 제대로 쉬지도 않고 했잖아. 이건 랭커인 도련님이 와도 힘든 강행군이라고!
사실이었다.
본디 아다만티움과 오리하르콘은 재료 중에서도 최상급에 위치한 재료들.
당연히 수준급의 전문 기술과 경력을 지닌 생산계가 붙어야 정제가 가능한데.
거기에 현자의 돌도 모르는 금속인 드라고니움까지.
덕분에 온갖 정제 방식을 오차를 겪으며 작업하지 않았던가?
아무리 뛰어난 플레이어라도 심적으로 지치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오빠 마음도 이해는 해.
플라스크 속 현자의 돌은 완성된 파츠들을 힐끔했다.
이미 해당 랭크의 평균대를 한참 넘어 버린 시문.
그 우월한 스펙을 지니고도 제작 골렘에 10일을 꼬박 투자했던 이유는 다름 아니었다.
-얼른 완성해서 실전 투입을 준비하고 싶겠지. 곧 플래티넘 데뷔전도 있으니까.
현자의 돌의 말대로였다.
승급이 끝나고 곧장 해당 랭크대로 투입되는 일반적인 플레이어들과 달리.
시문은 해당 승급자들 중 최상위만 참가할 수 있다는 데뷔전이 예약되어 있었다.
심지어 플래티넘부턴 국내 매칭이 아닌, 전 세계 매칭 아닌가?
세계의 유망주들을 한자리에서 만나는 것이다.
거기에다.
-검은 제련소도 가야 하고.
“맞아.”
다크엘프 데이나에게 받은 히든 퀘스트 [검은 제련소를 향하여].
그 난도도 난도지만.
“솔직히 데뷔전보단 검은 제련소가 신경이 꽤 많이 쓰여. 앞선 아레나들에서의 언급도 심상치 않았으니까.”
-하긴. 드워프나 다크엘프들을 잡아갔다는 것도 그렇고, 보통이 아닐 거 같긴 해.
왠지 검은 제련소는 뭔가 쉽지 않을 거란 직감이 드는 시문이었다.
방심하다 처음으로 아레나 실패를 경험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말이다.
‘물론 아직 정규 아레나는 아니라서, 사망 페널티야 없겠지만은.’
그렇다고 평소처럼 임할 수도 없는 노릇.
시문으로서도 최대한 전력을 끌어올리고 싶은 것이다.
그리고 이런 시문의 마음은 사실 누구보다 현자의 돌이 잘 알고 있었기에.
-우우! 어쩔 수 없네. 그래도 딱 완성만 하는 거다? 그 이상은 내일부터 작업하는 거야.
“알았어.”
-정말이지? 나랑 약속해.
드드득.
옆 테이블에서 손을 연성해 슥 내미는 현자의 돌.
앙증맞게 내민 녀석의 새끼손가락에 피식 웃은 시문은.
“녀석. 알았어, 약속할게.”
피식 웃으며 새끼손가락을 마주 걸어 주었다.
-히! 그럼 바로 세팅할게.
약속이 마음이 든 것일까?
현자의 돌은 신나게 제작 골렘이 있는 곳으로 날아갔다.
-어디 보자. 이건 팔이고, 이건 다리…….
철컥.
연성된 팔들을 이용해, 이리저리 파츠들을 조립하는 현자의 돌.
시문이 몸을 일으켜 다가갔을 땐.
초호화 합금으로 이루어진 파츠들이 미스릴 뼈대와 알맞게 합체되어 있었다.
-오빠, 이제 머리만 부착하면 돼.
“그래.”
녀석의 말에 시문은 뼈대 옆에 있는 다소 둥근 모형.
머리에 해당하는 파츠로 다가갔다.
그러곤 인벤토리에서 푸른빛이 찰랑이는 유리병을 꺼냈다.
[미미르의 샘물]
등급 : SSS
아스가르드의 귀한 성수.
사용법에 따라 무생명체에게도 사고와 지능을 부여할 수 있다.
미미르의 샘물.
지난 특수 아레나 ‘자연의 몰락’을 클리어하고 얻었던 무려 SSS급 재료 아이템.
미미르의 샘물로 골렘에 지성을 부여할 수 있다던 현자의 돌의 말대로.
정보창은 사고와 지능의 부여라는 문구가 명시되어 있었다.
‘이것만 넣으면 머리 부분도 끝이네.’
안 그래도 일반적인 골렘보다 지적 능력이 뛰어난 것이 제작 골렘이다.
들어간 재료들만 해도 어마어마한 수준인데.
미미르의 샘물까지 넣는다면 얼마나 뛰어난 골렘으로 탄생할까?
“이거 기대되네.”
쪼르륵.
미미르의 샘물을 모두 동그란 머리 파츠에 부은 시문
겉을 타고 흘러내릴 거란 상식과 달리.
스륵.
미미르의 샘물은 증발이라도 한 듯.
한 방울도 남김없이 흡수되었다.
그것을 든 시문은 완성된 몸체로 다가갔다.
찰칵.
한 몸이었던 것처럼 깔끔하게 부착되는 머리.
10일을 꼬박 고생한 보람을 절로 느낀 시문은 흐뭇한 얼굴로 두 걸음 정도 물러섰다.
-오빠?
“그래. 이제 연성만 하면 되겠네.”
고개를 끄덕인 시문은 제작 골렘을 향해 손을 들었다.
“현자의 돌, 알지? 여차하면 업적 포인트를 털어도 돼.”
-응! 알았어!
지난 아레나까지 합쳐 현 업적 포인트는 총 49,500점.
대략 만 점만 더 벌어도 검은 염소의 퀘스트 보상인 호문쿨루스 제작법을 얻을 수 있었고.
아니면 천마신공의 3성을 연성하는 방법도 있었지만.
‘일단은 제작 골렘의 완성이 우선이니까.’
값비싸고 귀한 재료들을 쏟아부은 만큼.
시문은 제작 골렘에 아낌없이 투자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럼 시작한다.”
우웅.
가슴 정중앙에 위치한 현자의 돌.
그곳에서 익숙한 기운인 연성력이 흘러나오며, 시문의 손끝으로 몰려들었고.
따악.
그것을 튕기는 순간.
파측!
일련의 스파크가 일어나며 제작 골렘이 하얀 빛무리에 휘감기기 시작했다.
“와…….”
-오오오!
이를 지켜보던 시문과 플라스크 속 현자의 돌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이내.
쩡!
무언가 금이 가는 소리와 함께.
“크윽!”
시문은 가슴을 부여잡으며 비틀거렸다.
그런 시문의 앞으로.
[드라고니움을 활성화할 용력이 부족합니다.]
어처구니없는 문구가 떠올랐다.
-오빠! 괜찮아?
“어. 잠시 기운이 빠졌을 뿐이야.”
기운이 모조로 소모된 것처럼.
한순간에 몸이 텅 비어 버리는 기분.
앞선 시스템창도 그렇고.
시문은 이 탈진감의 원인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용력이 부족하다라…….’
골렘 연성에 연성력도 아니고 용력이 부족하다니?
퍽이나 웃긴 상황이긴 했으나, 이해 못 할 것도 없었다.
-오빠, 아무래도 이거 드라고니움 때문인 거 같은데?
“그래. 시스템도 그렇게 말하고 있다.”
키이잉.
탈진감이 가시자.
시문은 곧장 오딘의 눈을 활성화했다.
만들 때는 몰랐었지만.
이렇게 연성을 한번 시도하고 나니 알겠다.
“드라고니움, 이거 용력이 주입되어야 제대로 활성화되는 금속이구나.”
달리말하자면 가동이라고 할까?
일정량 이상의 에너지가 들어와야 제대로 작동하는 것이다.
시문은 방금 자신의 용력을 집어삼키고도.
여전히 부족하다고 아우성치는 파츠들을 바라봤다.
-힝! 그렇구나. 나도 이런 금속은 처음이라 몰랐어…….
“괜찮아. 모르는 게 당연한 거니까.”
몸체가 날아가 버린 것도 아니고.
연성이야 다시 시도하면 된다.
문제는.
“근데 대충 봐도 용력의 요구치가 어마어마한데?”
-그러게.
드라고니움을 활성화하기 위한 용력이었다.
총 140인 연성력.
귀속 스탯으로 그의 절반인 70에 해당하는 용력이것만.
‘그걸 다 쏟아도 잠시 활성화되는 걸로 끝이라니.’
100%를 기준으로 본다면 한 20% 정도 채웠나?
심지어 그 20%마저도 무서울 정도로 빠르게 흩어지고 있었다.
고로.
‘한 방에 다량의 용력을 쏟아야 한다는 건데…….’
70의 용력으로 20%.
단순 계산만 따져도 350에 해당하는 용력이 필요하다는 건데.
플라스크 속 현자의 돌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오빠, 아무래도 업적 포인트를 털어야겠는데?
“그래야겠다. 근데 이 정도 용력이면 업적 포인트가 상당히 많이 들지 않아?”
-그렇지. 애당초 기운 연성은 엄청 비효율적이니까. 아마 지금 가진 포인트로도 부족할걸?
업적 포인트를 아낌없이 투자하려곤 했지만.
비효율적인 투자라면 이야기가 또 달라진다.
그때.
똑똑.
“시문 님.”
연구실 문에서 노크 소리가 들렸다.
“들어오세요.”
시문의 허락과 함께 방 안으로 들어서는 익숙한 남자.
밤사냥꾼 박진욱은 진중한 얼굴로 말했다.
“시문 님, 대륙성 측에서 사람이 도착했습니다.”
* * *
훤칠한 키와 그에 걸맞은 외모의 남성.
서위룡은 다소 불안한 표정으로 김이 모락모락 나는 찻잔을 톡톡 두드렸다.
덜컥.
고급스러운 문이 열리고, 뚜렷한 이목구비의 미청년이 들어선다.
그에 서위룡은 얼른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랜만입니다! 시문 님.”
절도 있는 포권으로 인사하는 서위룡.
그에.
“어…… 반갑습니다, 서위룡 씨.”
조금 어설프게 포권을 하는 시문.
그 모습을 본 서위룡은 싱긋 웃으며 손사래를 쳤다.
“굳이 포권까지 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시문 님께선 대륙성의 길드원이 아니시잖습니까.”
“하하, 그런가요.”
시문은 머리를 긁적이며 자리에 앉았다.
서위룡의 미소는 한결 짙어졌다.
‘저번에도 느꼈지만, 참으로 격식 있는 분이시다.’
몇몇 거대 길드들이 그렇듯.
대륙성 역시 포권이나 체계 등 특유의 문화가 있었다.
한데 대륙성의 소속도 아니고.
타국인인 시문이 조금이라도 예를 차려 주니 어찌 기쁘지 않을까?
‘저만한 힘을 지녔으면 오만할 법도 한데…… 과연 검성의 형님다워.’
서위룡의 눈에 담긴 호감이 더욱 커진다.
그것을 모르는 시문은 태연히 물었다.
“이렇게 오신 걸 보니, 예상대로 일이 잘 풀렸나 보군요.”
“예. 덕분에 길드 마스터께서 한숨 돌리셨습니다. 저희 역시 마찬가지고요.”
“다행이네요.”
시문의 입가에 절로 미소가 어린다.
당연했다.
‘이러면 종리추가 이 좀 갈리겠어.’
본래라면 길드 마스터 승계.
즉, 권력의 승계가 깔끔하게 이루어지고.
전대 길드 마스터의 흔적과 파벌을 칼같이 지워 나가야 했는데.
‘서위룡이 이렇게 말할 정도면, 대륙성 내에서 온건파가 제대로 자리를 잡았겠지.’
그 파벌이 건재했으니, 종리추의 입장에선 속이 타들어갈 터.
맞은편에 앉아 있던 서위룡은 차를 한 모금 마시곤 씁쓸한 미소로 말했다.
“이 은혜를 어찌 갚아야 할지……. 마음 같아선 몇 배로 돌려드리고 싶지만, 부끄럽게도 아직 저희 쪽 상황이 여의치 않군요.”
조금이지만 축 처지는 서위룡의 어깨.
그에 시문은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
“마음만으로 충분합니다. 정 신경 쓰이시면 나중에 상황이 안정되고, 주셔도 되고요.”
저 선물은 거부 안 하거든요.
그렇게 답하는 시문에.
“시문 님…….”
눈가가 촉촉해지는 서위룡.
이내.
“아 참! 아예 드릴 게 없는 것은 아닙니다.”
무언가 생각이 났는지.
서위룡은 급히 인벤토리를 열어 손을 집어넣었다.
그리고 딸려 나온 검붉은 액체의 유리병에.
“그건……!”
시문의 눈이 부릅떠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