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7화
107화. 제작 골렘 (1)
[히든 업적 ‘히든 보스 잡기 (5/?)’을 달성하셨습니다.]
[히든 보스 ‘편대사령관 베르파크’를 단신으로 처치하였습니다.]
[보상으로 업적 포인트 3,000점을 획득합니다.]
베르파크의 죽음을 알리는 메시지.
이어.
[네 성좌의 미션을 완수하였습니다.]
[네 명의 성좌들이 당신의 활약을 무척이나 만족스러워합니다.]
[업적 포인트 5,000점을 획득합니다.]
미션 완료로 인한 보상과 추가 보상까지 지급되었다.
‘이러면 업적 포인트만 총 8000점인가? 달다, 달아!’
거의 만 점에 가까운 업적 포인트.
시문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지상으로 내려왔다.
팔락.
시문의 머리와 발목 부근에서 팔락이는 두 날개.
레바테인처럼 기운을 모두 소모하였는지.
페타소스와 탈라리아는 서서히 입자가 되어 흩어진다.
동시에.
[제한 시간이 끝났습니다.]
[플래티넘 승급전이 종료됩니다.]
아레나 종료를 알리는 메시지가 날아들며, 시문의 몸도 희미해졌다.
* * *
-지린다! 개지렸다!
-공중전은 또 왜 이렇게 잘하는데?
-그러게. 나 이 형 하늘 나는 건 첨 보는데 왜케 잘 나냐?
-난 처음 날았을 때 바로 멀미부터 했는데…….
대기실로 돌아오자마자, 우르르 쏟아지는 아레니아의 채팅들.
-한국인들은 온통 거짓말투성이군요. 저게 첫 비행이라니 WWWWW.
-그러게요. 허세가 너무 심해 어이가 없을 따름입니다만…….
-미스터 킴 정도면 아메리칸드림에서 제의가 갈 법도 한데?
-아마 하고 있겠지. 그들은 인재를 늘 반기잖아.
-이미 달러 폭탄을 준비 중일 수도? XD!
-이런 인재를 두고 대륙성은 대체 뭘 하고 있나?
-김시문의 혈통을 거슬러 보면, 우리와 같은 대륙 출신임이 틀림없을 거다.
-동감한다. 후기지수 시절의 창왕을 보는 느낌이군.
외국인 시청자들이 시청자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어서일까?
시문의 채팅창은 평소보다 더 압도적인 채팅양을 자랑했다.
물론 50만이라는 시청자 수가 무색하게, 채팅창은 깔끔히 유지되고 있었다.
이유야 간단했다.
[매니저 ‘검은 염소’가 dlwps 님을 강퇴하였습니다.]
[매니저 ‘오딘’이 rnlcksgdk 님을 강퇴하였습니다.]
[매니저 ‘검은 염소’가…….]
검은 염소와 오딘.
매니저직을 맡은 상위 서열의 성좌들이 열심히 처형 대결을 펼치고 있었으니까.
‘어린애 같기도 하지만…… 또 든든하단 말이지.’
그런 매니저들의 활약에 피식 웃는 시문은 슬슬 방종각을 잡았다.
“다행히 플래티넘 승급을 했네요. 다음 방송은 아마 플래티넘 데뷔전으로…….”
얼른 돌아가 보상을 확인해야지.
그렇게 기대감을 품은 시문이 방종 멘트를 던지려던 찰나.
[아메리칸드림 길드님이 AP 1,000,000을 후원하셨습니다.]
=플래티넘 승급 축하드립니다. 개인적으로 꼭 한번 만나 이야기를 나눠 보고 싶습니다.
한줄기의 후원이 시문의 앞을 가로막았다.
-미친!
-배, 백만? 백만이라고?
순간 경악으로 도배되는 채팅창.
그도 그럴 것이 AP는 달러 환율과 일대일의 비율을 지닌다.
고로 100만 AP는 100만 달러라는 말이 되고.
이는 대충 한화로 두들겨도 대략 11억~12억이 넘는 금액이다.
그만한 돈을 고작 저런 내용으로 후원하다니?
심지어.
-그것보다 길드가…… 나만 놀란 거 아니지?
-나도 놀람. 아메리칸드림이라니!
-아메리칸드림! 역시 너희들이 움직일 거라 믿었다.
-얼른 미스터 킴을 스카우트하자고!
후원을 보낸 길드는 세계 최강이라 불리는 2대 길드 중 하나.
아메리칸드림이 아니던가?
[아메리칸드림 길드님이 AP 10,000,000을 후원하셨습니다.]
=혹여나 스케줄이 맞지 않다면 저희 쪽에서 찾아뵙겠습니다.
자연스럽게 0이 하나 더 붙어 날아오는 후원.
-뭐지? 뒤에 뭐가 하나 더 붙었는데?
-처, 천만…….
-엌ㅋㅋㅋ X발 저게 다 얼마냐!
-대충 봐도 100억이 넘음 ㅋㅋㅋㅋ.
그에 채팅창은 또 한 번 경악에 물들었다.
첫 후원의 10배에 달하는 금액인 100억대의 후원이었으니 당연했다.
-억대에서 0 하나 더 붙이는 걸 저리 쉽게…….
-사스가 천조국인가…….
-후원만 저 정도면 정식 계약은 얼마라는 거임?
-X발! 누구는 저 길드에 들어 갈라고 온갖 짓을 다 하는데! 이 아시안은 돈을 받고 들어가?
-잘한다! 얼른 그를 미국으로 데려오라고!
거금의 후원에 채팅창은 대번에 흥분으로 달아올랐지만.
‘아메리칸드림이라…….’
정작 당사자인 시문은 그다지 흥분한 기색이 아니었다.
오히려 명경지수처럼 차분하다고 봐야겠지.
당연했다.
아레나 질병 치료제.
이것만으로도 이미 떼돈을 벌고 있을뿐더러.
이번 심드라실의 길드 버프 대여로 거금을 벌어들이고 있지 않은가?
심지어 이 두 자금줄 모두 매달마다 들어오는 지속적인 수입이다.
저명한 자산 관리인들까지 대거 고용한 시점에서.
100억대는 그다지 큰 감흥이 일지 않는 시문이었다.
‘어차피 전생처럼 지구가 망하면 휴지 조각이 되는 게 돈이기도 하고.’
고로 금액보단.
‘그나저나 아메리칸드림이 벌써 나설 줄은 몰랐네.’
시문은 거금의 후원자인 아메리칸드림에 포커스를 맞췄다.
정확히는 맞추려고 했다.
[마사무네 길드님이 AP 10,000,000을 후원하셨습니다.]
=플래티넘 승급 축하드립니다. 저희 역시 시문 상과 꼭 이야기를 나눠 보고 싶습니다만.
또 다른 후원이 이어지기 전까진 말이다.
[대륙성 길드님이 AP 10,000,000을 후원하셨습니다.]
=플래티넘 승급 축하드리며, 우리 대륙성도 전도유망한 후기지수와 만남을 가지고 싶소.
[알페아 길드님이…….]
일본의 마사무네와 중국의 대륙성 역시 천만 AP를 후원하며 러브콜을 보내왔고.
그 뒤로 각국의 거대 길드들의 후원 행렬이 줄줄이 이어졌다.
-캬! 이 형 클라스 뒤진다!
-이제 플래티넘이잖아. 명색의 상위 플레이언데 이 정도 제의는 올 만하지.
-위에 미친놈임? 어느 플래가 거대 길드만 골라서 제의를 받음?
-ㄹㅇ ㅋㅋㅋ 말 X나 쉽게 하네. 다이아도 쉽지 않은 일인데 ㅋㅋ.
-이러다 시문 님 진짜 다른 나라 가면 어쩌죠?
-그러게. 저 정도면 국적 페널티 받고 갈 만한데…….
채팅창이 터져 나가는 것은 당연한 결과였으나.
시문은 아까와 마찬가지로 차분하게 후원 메시지를 읽을 따름이었다.
특히나 시문의 시선은 후원을 보내온 길드 중 탑에 드는 세 길드.
‘이미 강화위와의 대결로 내가 길드에 가입되어 있다는 걸 알 텐데, 이런 제의를 보내?’
아메리칸드림과 마사무네, 그리고 대륙성을 향했다.
강화위와의 대련을 참관한 길드들 아닌가?
이미 자신은 길드가 있다는 걸 알 텐데, 왜 굳이 이렇게 접촉을 하려는 것일까?
이내 시문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 나도 성장 버프 때문에 가입해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무리도 아니었다.
대외적으로 심드라실의 길드 마스터는 자신이 아닌 동생 김시혁이었으니까.
‘좀 미안해지네. 저렇게 AP를 퍼줘도 넘어갈 마음은 없는데.’
회귀 초기.
대륙성의 스카우터인 후연룡의 스카우트를 거부했던 이유가 무엇이던가?
‘각성 전이면 모를까, 각성 후에 국가를 버리는 건 미친 짓이니까.’
그러나 시문은 바로 거절 의사를 표하지 않았다.
간보기 위함이 아니었다.
후원한 길드들은 하나같이 잘나가는 거대 길드들.
50만이 넘는 다국적 시청자들 앞에서 대놓고 거절의사를 표하는 건 그다지 좋은 행동이 아니었다.
거대 길드의 명예는 물론이고.
거금을 받고 오만 떠는 놈으로밖에 보이지 않을 테니까.
일종의 사회생활인 것이다.
“좋은 제안들 감사드립니다. 이 부분은 제가 따로 연락드리죠.”
시문은 능숙하게 멘트를 이으며 후원 행렬을 다독였다.
그때.
[백호 길드님이 AP 1,000,000을 후원하셨습니다.]
=김시문 플레이어님, 저희 길드원이 일으킨 불미스러운 일에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또 다른 길드 하나가 식어 버린 후원창을 달궜다.
백호 길드.
승급전 시작 당시.
선동으로 시문에게 화살을 돌렸던 창민이라는 플레이어의 길드였다.
[백호 길드님이 AP 1,000,000을 후원하셨습니다.]
=해당 길드원은 즉각적으로 퇴출하였고, 곧 공식적인 사과를 남기겠습니다. 거듭 사죄의 말씀 드립니다.
또 한 번 이어지는 백호 길드의 메시지.
그에 시문의 눈이 슬쩍 커졌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후원으로 사과하기도 쉽지 않은데…….’
본디 집단이란 크면 클수록 체면치례를 중시하기 마련.
백호 길드는 성삼이나 신화 길드까진 아니더라도.
나름 대길드로 분류되는 유수 길드 중 하나다.
그런 백호 길드가 이렇게 방송이 끝나자마자 사과를 남기고.
따로 사과문까지 공표하겠다는 건, 꽤나 많은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그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괜찮습니다. 승급전도 잘 마무리되었으니까요.”
시문은 백호 길드가 내민 손을 잡아 주었다.
그러자.
[백호 길드님이 AP 1,000,000을 후원하셨습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시간이 되신다면 꼭! 직접 찾아뵙고 사과를 드리고 싶습니다!
곧장 이어지는 백호 길드의 답.
그에 시문은 속으로 슬쩍 웃었다.
‘어떻게든 접선해 보려는 작업까지. 대길드는 대길드네.’
시문은 그런 백호 길드의 후원까지 정리하고는.
“그럼 여러분들, 전 이만 들어가 보겠습니다. 다음 방송에서 만나요.”
-시바~.
-시바~ 오늘 알찼음!
-대체 왜 미스터 킴에게 욕을 하는 거지?
-한국은 후기지수에게 욕으로 작별하는가? 우리 대륙은 인재를 이렇게 대접하지 않는다.
-뭐래. 그냥 인산데 ㅋㅋㅋ.
-엌ㅋㅋ 외국인들 어리둥절행 ㅋㅋㅋㅋ.
-욕이 아니라 시문 바이의 줄임말이에요!
-난 노리고 쓴 건데?
[매니저 ‘검은 염소’가 노린애 님을 강퇴하였습니다.]
방송을 종료했다.
* * *
파앗.
작은 빛과 함께 연구실로 돌아온 시문.
그그극.
그에 한창 작업 중인 미스릴 골렘들이 일제히 경례를 해 온다.
“그래, 다들 고생이 많다.”
비록 직접 입력시킨 행동이긴 했어도.
시문은 자연스럽게 골렘들의 인사를 받아 주었다.
전생에 혼자 작업하던 고독을 달래 보고자 했던 일종의 습관이었다.
“그럼 보상을 좀 볼까.”
손을 마주 비빈 시문은 자리에 앉지도 않고 보상을 확인했다.
[플래티넘 승급전을 성공적으로 클리어하셨습니다.]
[귀속된 특성 ‘현자의 돌’이 일정량의 경험치를 분배받습니다.]
[레벨이 6 올랐습니다.]
[현자의 돌 레벨이 4 상승했습니다.]
“역시 짜네.”
타 차원까지 다녀왔음에도 단출한 보상.
시문은 조금의 아쉬움도 느끼지 않았다.
본디 승급전은 보상이 크지 않았으니까.
[플레이어 김시문의 랭크가 플래티넘으로 배정됩니다.]
[업적 ‘플래티넘 랭크 플레이어’를 달성하셨습니다.]
[보상으로 업적 포인트 3,000점을 획득합니다.]
“요건 좋고.”
업적 포인트 3,000점.
시문에게 늘 급한 것은 업적 포인트였기에.
시문은 낮은 승급전 보상에도 즐겁게 웃을 수 있었다.
무엇보다.
‘진짜 보상은 따로 있으니까.’
메인 디시는 따로 있지 않은가?
[히든 보스 ‘편대사령관 베르파크’를 단신으로 처치하였습니다.]
[보상으로 ‘여왕의 알’을 획득합니다.]
“역시 이걸로 주는군.”
시문은 망설임 없이 인벤토리를 열었다.
이유야 간단했다.
‘여왕의 알. 이게 왜 아레나가 종료되어도 사라지지 않나 했는데.’
왕자 엔츠가 건넸던 하얀 구슬.
본디 정보창이 뜨지 않으면 아레나 밖으로 가져올 수 없어야 했는데.
건네받았던 여왕의 알은 여전히 시문의 인벤토리에 존재했던 것이다.
“이젠 정보창이 뜨겠지.”
인벤토리에서 여왕의 알을 꺼낸 시문은 정보창을 확인했다.
[여왕의 알]
등급 : X
차원 인섹티아의 여왕이 담긴 알.
단출한 내용.
“뭐야. 이게 끝…… 이야?”
그에 시문은 헛웃음을 흘렸다.
‘X등급이긴 해도 결국 여왕을 탄생시키는 알에 불과하잖아.’
본디 인섹티아의 여왕을 탄생시키기 위해선 인섹터의 각인 작업이 필수적이었다.
어떤 종의 인섹터의 각인이냐에 따라 어느 종의 여왕인지가 정해지는 것이다.
고로.
“꽝인가…….”
이 여왕의 알은 X등급이 무색하게, 어떤 쓸모도 없었다.
“하. 김빠지네. 그래도 아예 못 쓸 건 아니지.”
현시점에선 분명 어떤 쓸모도 없겠지만.
정식 아레나가 시작되고 이종족들과의 접촉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지면.
차원 인섹티아에 한해서 쓸모가 있을지도 모르리라.
따악.
손가락을 튕겨 둥근 받침대를 연성한 시문은 그곳에 여왕의 알을 올려놓았다.
“작업이나 하자.”
그리고 작업대로 몸을 돌리던 그때.
똑, 똑.
“시문 님.”
연구실 문에서 노크와 함께 익숙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들어오세요.”
시문이 허락하자.
“시문 님! 방송 잘 봤습니다! 역시 시문 님이라는 감탄밖에 안 나오더군요.”
문이 열리며 험상궂은 인상의 남성이 들어왔다.
밤사냥꾼 박진욱이었다.
“플래티넘을 이렇게 빨리 가시다니. 이거, 다이아 랭크도 조만간이시겠는데요?”
“과찬이십니다.”
“과찬이라니요? 제가 볼 때 시문 님은 당장 다이아 랭크로 오셔도 충분해 보입니다.”
능청맞게.
그러나 진심 어린 목소리로 축하를 건넨 박진욱은 몇 가지 서류를 시문의 앞으로 내려놓았다.
“여기 길드 버프 대여 영수증입니다. 데이터로도 남겨 뒀으니, 나중에 확인해 보시면 됩니다.”
“벌써 결제가 오갔나 보군요.”
“버프의 수준이 괴랄하니까요. 다들 돈을 못 줘서 어찌나 안달을 내던지. 크핫!”
호탕하게 웃는 박진욱.
이내.
“아. 그리고 말입니다…….”
그가 뒷머리를 슬쩍 긁적이며 말했다.
“방금 승급전을 끝내셨는데, 죄송하지만 잠시 만나 보셔야 할 사람이 있습니다.”
“만나야 할 사람이요?”
“예. 방금 암시장에서 물건이 도착했거든요.”
그 말에 시문의 얼굴이 살짝 밝아졌다.
암시장에서 온 물건은 하나.
아니, 둘뿐이었으니까.
“아다만티움과 오리하르콘을 벌써 구했단 말입니까? 과연 암시장이네요.”
아다만티움과 오리하르콘.
제작 골렘을 위해 의뢰했던 초금속 두 가지가 도착한 것일 터.
동시에 환했던 시문이 얼굴을 갸웃했다.
“근데 물건을 받는데 제가 만나야 할 사람이 있나요?”
확인 사인 같은 거라도 해야 하는 건가?
그렇게 읊조리는 시문의 의문은 금방 해소되었다.
“어머나~ 섭섭해라.”
남녀 분간 없이 절로 설레는 목소리.
이곳에 있어선 안 될 그 목소리가 열린 문 쪽에서 들려온 것이다.
그에.
“귀한 물건을 제가 직접 가져왔는데, 인사도 없이 그냥 보내시게요?”
“당신은…….”
입구로 시선을 돌린 시문은 대번에 얼굴을 굳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