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9화
99화. 길드 버프 (5)
“네 팔다리를 부러뜨려서라도 막겠어!”
흥분에 가득 찬 리코의 목소리.
촤륵.
그녀는 손에 가득 암기를 그러쥐며,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
그에.
“리코는 진짜 거짓말쟁이구나. 항상 거짓말만 해.”
단정한 남학생.
유우토는 특유의 무표정한 눈으로 리코를 바라봤다.
“리코는 나 못 이기잖아.”
“이 미친 바보가! 내가 그런 뜻으로 말하는 게 아니잖아!!”
어지간히도 열이 오르는 걸까.
리코의 얼굴은 시뻘게지다 못해, 하얀 목에 핏대까지 꽉 잡혔다.
하지만 유우토의 말대로.
‘이 힘만 센 멍청이가!’
같은 일본 최강 길드인 마사무네의 유망주라 해도.
그녀와 유우토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었다.
암살자와 검사의 직업 간 상성 구도를 논하기 이전에.
‘역대급 천재는 뭐가 천재라는 거야! 그냥 싸움에 미친 꼬맹이지!’
갤럭시 아레나의 등장 이후.
유우토는 역대급 재능이라는 타이틀을 지니고 있었으니까.
플래티넘 플레이어마저 쉽게 잡아 내는 유우토는 동수준의 플레이어 중에선 그 적수가 없었다.
당연히 일본 암살계의 샛별로 떠오르는 리코라 해도, 유우토와 견줄 수는 없는 수준이었고.
이는 팀으로 함께 골드 데뷔전을 치러 본 그녀 스스로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렇다 해도.
“유우토! 난 분명 경고했어!”
싸움에 미쳐 제멋대로 가입 티오까지 거는 꼬맹이를 그냥 보낼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내가 이래서 랭커 하나는 끼워 달라고 요청한 건데!’
너 하나만으로 충분하다며 배웅하던 부길마의 얄미운 얼굴이 절로 떠오른다.
“해 보든가. 단, 리코? 각오는 해야 해.”
뚜벅.
무기를 빼어 든 리코의 협박에도 망설임 없이 걸음을 옮기는 유우토.
‘망할 꼬맹이 녀석! 완전 스위치가 들어가 버렸잖아! 어쩌지?’
이걸 진짜 쳐, 말어?
치면? 나 살 수는 있는 거야?
온갖 고민으로 점철되어 입술을 잘근잘근 씹는 리코.
그런 그녀의 앞으로.
스릉.
한 자루의 검이 날아들었다.
“응?”
척 보기에도 심상치 않은 검.
하나 이 검에 대해 아는 것인지.
“이 검은……!”
무표정했던 유우토의 얼굴이 경외라는 감정으로 스르륵 풀렸다.
이어.
-거기까집니다.
검이 진동하며 청량한 목소리를 자아냈다.
-김시문 플레이어는 방금 대련을 끝낸 상황입니다. 이 이상의 대련은 허락하지 않습니다.
“검성님, 전…….”
-닥치십쇼, 유우토.
평소답지 않게 한껏 밝아진 유우토의 목소릴 칼같이 잘라 내는 김시혁.
그의 검이 아래를 향하더니.
스륵.
바닥에 정교한 선을 그었다.
-이 선을 넘으면 마사무네의 유망주고 뭐고.
이어.
-그냥 죽여 버리겠습니다.
청량했던 목소리는 섬뜩한 칼날이 되어, 유우토의 목을 겨눴다.
“…….”
환희의 미소를 담았던 리코의 얼굴이 굳는다.
랭커인 검성의 살기 어린 위협도 있었지만.
‘검성이 이렇게까지 했는데…… 설마 선을 넘는 건 아니겠지?’
우유토의 돌발 행동이 진심으로 신경 쓰였기 때문이었다.
‘저 미친 꼬맹이라면 진짜 넘을지도 몰라.’
함께 유망주팀을 이뤄 아레나를 진행해 본 리코는 안다.
강해져야 한다는 일념과 맞물린다면.
제 죽음은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 저 유우토라는 걸.
다행히도.
“검성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신다면야, 당연히 물러나야죠.”
우상을 거스를 수준은 아니었는지.
유우토는 90도로 정중히 고개를 숙이며 물러났다.
리코는 헛숨을 흘렸다.
‘그래, 존경하는 검성님의 말씀은 제 부모보다 잘 듣는 꼬맹이였지.’
검성 빠돌이.
괜히 그녀를 비롯한 마사무네 전체가 유우토를 그리 부르는 것이 아니었다.
“한데.”
고개를 든 유우토가 고개를 갸웃한다.
“고작 골드들의 결투를 검성께서 이렇게 직접 막아서실 줄은 몰랐습니다.”
그런 유우토의 눈과 입가에 작은 웃음기가 어려 있었다.
“설마…… 김시문 플레이어가 제게 질 거라 생각하시는 걸까요?”
명백한 도발.
‘저 멍청이가!’
그에 안심했던 리코의 두 눈에 다시 불똥이 튀었으나 그뿐.
‘어휴! 정말 애는 애라니까. 그딴 도발이 저 검성에게 먹힐 거라 생각한 거야?’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하나.
-상당히 건방지군요, 유우토. 당신 따위가 감히 누굴 이긴다는 겁니까?
그녀의 예상은 완벽히 빗나갔다.
“그 말씀은 검성님께선 제가 김시문 플레이어에게 진다고 보시는 걸까요?”
-당연합니다. 강화위 플레이어보다 오래 버틸지 몰라도 그뿐, 결국 무참히 패배할 겁니다.
그 말이 무언가를 자극한 것일까.
유우토의 평평했던 미간이 일그러졌다.
“어째서 보지도 않고 그렇게 확신하시는 거죠? 검성님은 절 잘 아시지 않습니까? 우린 그때 검사로서 진솔한 대화를…….”
-그렇기 때문에 하는 소리입니다, 유우토.
단호한 검성 김시혁의 음성.
-당신과 검을 맞대 본 제가 누구보다 잘 압니다. 당신은 김시문 플레이어의 발끝이나 겨우 쫓을 수준이라는 걸.
스륵.
그 말을 남긴 검이 저 멀리 주인을 향해 사라진다.
“…….”
유우토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날아가는 검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이내.
“……검성님의 뜻은 잘 알겠습니다. 하지만.”
유우토는 손등에 핏줄이 솟을 정도로 검자루를 꽉 쥐고는.
“전 이번만큼은 검성님께서 틀렸다고 생각합니다. 추후에 그걸 증명해 보이죠.”
저 멀리서 서위룡과 이야기를 나누는 김시문을 노려봤다.
* * *
“Unbelievable…….”
아레나 번역기를 사용하고 있음이 분명할진대.
번역기를 뚫고 나오는 유창한 영어엔 감탄이 가득했다.
감탄사를 내뱉은 금발의 미남자.
앤드류 번스는 놀라움이 가득한 눈으로 김시문을 바라봤다.
‘저 단단한 강화위를 한 방에 박살 내 버리다니…… 저건 나도 할 수 없는 건데.’
미국 최고의 길드이자 대륙성과 함께 세계 2강으로 불리는 아메리칸드림.
그곳의 최대 유망주인 앤드류조차 육갑을 지닌 강화위를 한 방에 무너뜨리긴 어려웠다.
‘거기에다 방송에서 보았던 그 뇌창이나 화염검은 쓰지도 않았어.’
이곳이 갤럭시 아레나가 아닌 현실임을 고려해 본다면 기본적인 능력치는 다소 하향된 상태.
심지어 김시문은 전투계가 아닌 마법계 아니던가?
그럼에도 최고 기술을 쓰지 않고, 방어 특성을 지닌 유망주를 주먹 한 방에 보내 버리다니?
‘저자, 반드시 우리 아메리칸드림에서 영입해야 한다.’
이미 전 세계 거대 길드들이 다 그렇듯.
이미 아메리칸드림의 스카우터들의 영입 리스트에 김시문이 존재할 터.
하지만 이렇게 두 눈으로 보니 알겠다.
김시문은 그저 영입 리스트에 오르는 수준이 아니라.
‘무조건 0순위로 영입해야 하는 플레이어야.’
계통마저 그 귀한 마법계 아니던가?
앞으로의 김시문의 가치는 그야말로 무궁무진할 터였다.
‘돌아가면 즉시 영입부에 보고해야겠어. 그 전에…….’
그렇게 다짐한 앤드류의 눈이 옅은 푸른색으로 변했다.
‘분석부터 해야겠지.’
사아.
얇은 수분 막처럼.
그의 녹안 위로 옅은 푸른색이 일렁거렸다.
앤드류의 SS급 특성인 분석이었다.
이내 옅은 푸른 막이 사라지고.
[현재의 능력으론 분석할 수 없는 대상입니다.]
“음?”
시스템 메시지 한 줄이 앤드류의 앞으로 떠올랐다.
그것을 읽은 앤드류의 미간이 슬쩍 찌푸려졌다.
메시지의 내용을 이해할 수 없어서가 아니었다.
‘내 분석은 어지간한 플래티넘 상위권들에게도 잘만 통하는데?’
그 사람의 특성이나 계통, 그리고 습관까지.
동급이거나, 자신보다 약할수록 세밀하게 상대를 뜯어볼 수 있는 특성 분석.
SS급답게 자신보다 강한 이에게도 어느 정도의 효과를 발휘하는 특성이었건만.
‘왜 통하지 않는 거지? 설마 김시문 플레이어가 다이아라도 된다는 건가?’
이내 자연스럽게 고개를 젓는 앤드류.
그도 그럴 것이 김시문이 골드라는 건, 그의 개인방송을 통해서도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렇다면.
‘내 능력이 통하지 않는 뭔가가 있다는 건데…….’
진지해진 얼굴로 턱을 괴는 앤드류.
‘어쩌지?’
그의 시선은 서위룡과 한창 대화 중인 김시문과 그것을 멀리서 지켜보는 검성 김시혁을 오갔다.
이내.
‘원래는 성장 버프에 대한 정보를 알아보려 했지만…… 어쩔 수 없군.’
짧게 혀를 찬 앤드류는 인벤토리를 열었다.
이어 금색 방패에 뱀 형상이 머리카락처럼 박힌 모형을 꺼냈다.
‘성장 버프에 대한 정보도 중요하지만, 어차피 랭커인 검성에게 통할 거란 보장은 없어.’
그런 도박수를 펼칠 바엔.
‘차라리 확실히 알아낼 수 있는 정보를 취하는 게 이득이야.’
그렇게 판단을 내린 앤드류는 방패 모형에 마력을 불어넣었다.
[‘아테나의 성물(모조품)’이 사용자의 마력에 반응합니다.]
일련의 메시지와 함께 은은하게 빛나는 방패 모형.
이내 방패 모형은 재가 되어 흩어졌고.
[성좌 아테나가 당신의 정성에 응답합니다.]
[성좌 아테나의 권능이 당신에게 깃듭니다.]
[SS급 특성 분석의 등급이 SSS급으로 일시적 변경됩니다.]
[특성 분석의 능력이 크게 향상됩니다.]
앤드류의 눈앞으로 주르륵 떠오르는 메시지들.
동시에.
우웅.
앤드류의 눈을 감싸던 옅은 푸른 막은 아예 청명한 푸른 눈동자로 자리 잡았다.
‘감사합니다, 아테나 님.’
하늘을 향해 슬쩍 고개를 까딱인 앤드류는 곧장.
‘모조품이라도 성물은 지출이 무척이나 크지만…… 저자는 그럴 가치가 있지.’
멀리서 서위룡과 이야기를 나누는 시문을 바라봤다.
‘김시문, 부디 이만한 투자를 한 가치가 있길 빈다.’
스으으.
앤드류의 시야가 점차 푸르게 물든다.
성좌 아테나의 도움으로 극대화된 SSS급 특성 분석이 김시문을 분석하려던 순간.
[분석할 수 없는 대상입니다.]
또다시 부정적인 메시지창이 앤드류의 앞을 가렸다.
“이래도 안 된다고?!”
절로 육성이 튀어나오는 앤드류.
그도 그럴 것이.
‘거짓말이지? 이 상태에선 다이아도 분석했는데!’
아테나에게 성물까지 바치고 능력을 강화한 지금의 상태는 다이아마저 분석했던 수준이다.
한데 김시문은 분석할 수가 없다니?
그러나 앤드류의 경악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SSS급 특성 분석이 XXXX의 눈길을 끕니다.]
[XXXX가 ‘뭐야? 이 새끼는?’ 미간을 찌푸리며 당신을 바라봅니다.]
정체 모를 반응이 날아든 것이다.
충격적인 것은.
[XXXX가 ‘어라? 아테나, 네년이 여기에 왜 있냐?’ 눈을 동그랗게 뜹니다.]
[성좌 아테나가 XXXX를 보며 안색이 창백해집니다.]
자신의 배후성인 성좌 아테나의 반응이었다.
[XXXX가 ‘이년이 제우스가 오냐오냐해 주니까 드디어 미쳐 버렸나. 감히 내 앞에서 권능을 뿌려?’ 인상을 찌푸립니다.]
[성좌 아테나가 결단코 그런 의도가 아니라며, 오해라고 세차게 고개를 젓습니다.]
[XXXX가 ‘그래? 하긴, 너도 네 아비처럼 사리 분별 하나는 잘하지. 흐음, 뭐 좋아.’ 고개를 끄덕입니다.]
[XXXX가 ‘네 아비와 네 귀염둥이의 잘난 얼굴을 봐서 이번 한 번은 봐준다.’ 인심 쓰듯 말합니다.]
성좌 아테나.
무력이 필요할 땐 무력을, 지혜가 필요할 땐 지혜를 주는 여신.
그로 인해 현재 나타난 성좌들 중에서도 상위로 손꼽히는 만능의 여신이.
[성좌 아테나가 감사하다며 연신 머리를 조아립니다.]
[XXXX가 ‘그래그래. 내 옆에 다른 녀석들도 보이지? 앞으로 잘하자.’ 만족스럽게 웃습니다.]
누군가에게 저렇게 머리를 조아리다니?
심지어 상대의 이름은 표기조차 안 되고 있질 않나.
‘이게 대체…….’
상상도 못 한 상황에 앤드류는 그저 입을 떡 벌릴 따름이었다.
[성좌 아테나가 권능을 회수합니다.]
스으으.
컬러 렌즈를 벗은 듯.
청명했던 푸른 눈동자가 본래의 녹색으로 돌아온다.
모조품이라 해도 성좌의 성물을 허무하게 날렸건만.
허무함은 전혀 느껴지지 않는 앤드류였다.
‘김시문 플레이어. 알려진 것 이상으로 뭔가 더 숨겨진 자다.’
성물을 사용하고도 아무 정보도 얻지 못했으나.
역설적이게도 그만한 가치의 정보는 얻었으니까
앤드류는 하늘을 힐끔했다.
“아테나 님, 방금 그 존재는 누구였는지요?”
[성좌 아테나가 언급할 수 없다며 고개를 젓습니다.]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아쉽지만 곧장 수긍해 버리는 앤드류.
그도 그럴 것이.
‘언급이 가능했다면 애당초 시스템이 저렇게 이름을 검열하진 않았겠지.’
시스템창에서도 이미 자체 검열이 되고 있는 존재 아니던가.
혹시나 싶어 물어봤을 뿐.
큰 기대는 하지 않은 앤드류였다.
‘한 가지 확실한 건, 저만한 플레이어면 플래티넘에 오르는 건 일도 아니라는 거야.’
저 정체 모를 존재는 그렇다 쳐도.
당장 강화위와의 대련에서 보여 준 실력만으로도 충분히 플래티넘은 뚫어 버릴 김시문이다.
‘그럼 플래티넘 데뷔전에서 무조건 맞닥뜨리겠지.’
당연히 아메리칸드림의 최고 유망주인 자신도 패배를 어느 정도 각오해야 할 터.
‘딱히 싸움을 피하는 건 아니지만…….’
품에서 폰을 꺼내는 앤드류.
‘굳이 위험군과 맞붙어야 할 이유는 없잖아?’
그는 곧장 익숙한 번호로 연락을 걸었다.
-무슨 일이냐, 앤드류? 벌써 귀국한 건가?
폰 너머로 익숙한 중저음이 들려온다.
“그게 아닙니다, 길마. 따로 할 말이 있어서요.”
-길드 관련 일이라면 콜린에게 말하지 그래? 괜히 부길마 자리에 오른 인물이 아닌데.
“그…… 콜린보다는 길마님에게 직접 말하는 게 좋아 보여서요.”
차마 부길마 콜린의 단점을 입에 담을 수 없었던 앤드류는 숨을 고르곤 말했다.
“우리 쪽에서 반드시 영입해야 할 사람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