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5화
95화. 길드 버프 (1)
그도 그럴 것이.
“시, 시문 님? 이게 다 골렘…… 인 거죠?”
10여 기가 넘는 골렘.
그것도 통째 미스릴로 이루어진 골렘들이 곳곳에서 작업을 펼치고 있었으니까.
“예. 골렘 맞습니다.”
대답을 들은 박진욱의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이게 다 얼마야?’
돈이었다.
오리하르콘이나 아다만티움에 비해 희귀성이 낮을 뿐.
미스릴은 아레나 3대 초금속으로 고가를 자랑하는 광물이었으니까.
‘하긴, 시문 님 정도의 재력이면 이상할 것도 없지.’
성삼의 차기 주인 이유정과 협회의 차기 주인인 김시혁이 꼼짝도 못하는 형.
이것만 하더라도 부족함이 없는데.
전 세계에서 유일한 아레나 질병 치료제의 제작자이지 않은가?
품에 안긴 치료제 판매 보고서엔 개인이 번다곤 상상도 할 수 없는 금액이 담겨 있었다.
‘미스릴 골렘쯤이야. 시문 님에게 마땅한 스케일이다.’
그렇게 고개를 끄덕인 박진욱은 가져온 서류를 내밀었다.
“여기 이번 달 치료제 판매 보고섭니다.”
“감사합니다. 근데 번거롭게 직접 찾아오지 않으셔도 됩니다. 편하게 메일로 보내 주셔도 돼요.”
“하하! 그래도 판매 첫 달 보고선데 직접 드려야지요. 그리고 따로 드릴 말씀도 있고요.”
“무슨 일 있습니까?”
시문이 고개를 갸웃하자, 박진욱은 바로 말을 이었다.
“저번에 말씀하신 길드의 가입자들, 모두 한국으로 입국했습니다. 당장 가입 절차를 거쳤으면 하더군요.”
“아. 그거 말이군요.”
길드의 빈 인원.
시문은 길드에 일행들을 가입시킨 후, 따로 박진욱에게 빈자리를 채워 줄 것을 부탁했었다.
‘빈자리를 놀릴 순 없으니까.’
세계수의 버프를 받는 길드의 사용처는 무궁무진했으니까.
물론 기본은 대가를 받고 가입시키는 형식이지만.
“그리고 시문 님?”
다른 목적도 있었다.
“대륙성 쪽도 요청하신 조건에 맞춰서 초대했습니다.”
둘밖에 없는데도.
박진욱은 본능적으로 목소리를 낮추며 속삭였다.
“시문 님의 예상대로 둘 다 왔더군요. 솔직히 좀 놀랐습니다. 사이가 안 좋기로 유명한데 같이 올 줄은…….”
그 말에.
“잘됐네요.”
시문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다들 불러 주세요.”
고개를 끄덕이며 빙긋 웃었다.
* * *
랭커팰리스.
대한민국에서 가장 비싸기로 소문난 건물이었지만.
“흥. 소국 놈들 주제에 돈 꽤나 처발랐군.”
입구로 들어선 뚱뚱한 남자는 어떤 감흥도 없는 시큰둥한 얼굴로 투덜거렸다.
“강 형, 이곳의 주인이 누군지 아시지 않습니까. 그런 발언은 삼가 하심이…….”
듣기 좋은 중저음.
그에 어울리는 키를 가진 남성이 조심스레 말을 건넸으나.
“하! 감히 내게 명령을 하는 것이냐? 네놈이?”
“그런 뜻이 아닙니다.”
“닥쳐라!”
뚱뚱한 남자는 살집에 파묻힌 눈을 희번덕거리며 떴다.
“길마의 후광을 등에 업었다 하여 네놈이 뵈는 게 없나 보구나.”
“강 형, 오해입니다. 전 단지…….”
“끝까지 주저리주저리!”
점점 언성이 높아지는 뚱뚱한 남자.
강화위는 짜증이 가득한 목소리로 자신보다 키가 큰 남성을 노려봤다.
“서위룡, 네놈의 그 건방짐도 조만간임을 알아야 할 거다. 비무 소식은 들었겠지?”
“……예.”
비무라는 단어에 대번에 어두워지는 큰 키의 남자, 서위룡.
그도 그럴 것이.
“창왕께서 승리하셨다는 소문도 들었을 테고?”
“예.”
대륙성의 길드 마스터라는 거대한 옥좌.
그곳에 생긴 변화는 나름 위치가 있는 길드원이라면 모를 수가 없었으니까.
대륙성의 유망주인 강화위와 서위룡 역시 마찬가지였다.
“조만간 창왕께서 길드 마스터의 자리에 오르실 거다. 그럼 지금의 길마가 밀어 주던 네놈도…….”
위협적인 강화위의 말이 끝나기 전에.
“헤에. 뭔가 재밌는 이야기가 들리네?”
얇고 유들유들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목소리의 주인을 아는 것일까?
“이 목소린!”
강화위의 얼굴이 한층 더 일그러진다.
그는 고개를 휙 돌려, 목소리의 주인을 노려봤다.
“어머~ 싫다, 정말. 강돼지 씨, 그런 흉측한 얼굴로 이쪽을 안 봐 주면 안 되려나~?”
“닥쳐라! 리코, 네년이 여긴 왜 온 거지?”
“호호. 멍청한 건 여전하네.”
얇은 눈매의 여성.
리코라 불린 여성은 목소리만큼이나 유들유들한 미소로 답했다.
“일본 골드 데뷔전의 우승자인 내가, 여기 온 이유는 뻔하지 않겠니?”
“흥! 네깟 년이 우승자라니. 그 비열한 열도의 미래가 절로 그려지는구나.”
“어머나~ 기분 나쁘게 같은 생각을 했네? 나 역시 역겨운 대륙의 미래가 절로 그려지는데 말이지.”
지지 않고 비웃음을 한껏 걸치는 리코.
강화위를 내려다보던 그녀의 얇은 눈매가 그 옆에 있는 훤칠한 서위룡을 힐끔했다.
“참…… 창왕도 사람 보는 눈이 없단 말이지. 저런 멀쩡한 사내를 두고.”
그 말이 뭘 의미하는지 깨달은 것일까.
“저년이!”
살집에 파묻힌 강화위의 눈에 대번에 불똥이 튀어 오른다.
동시에.
웅.
강화위의 두툼한 주먹 위로 옅은 푸른 기운이 둘러졌다.
상위 플레이어임을 나타내는 기의 형상화.
권기였다.
“그 망할 주둥이를 박살 내 주마!”
타앗.
곧장 바닥을 박차고 날아드는 강화위.
육중한 체구와 다르게 그의 몸은 무척이나 손쉽게 허공으로 튀어 올랐다.
분명 위협적인 돌진이건만.
“하! 돼지 주제에 누구더러 못났다는 거야.”
코웃음을 치는 리코의 손엔 어느새 서슬 퍼런 암기.
수리검이 해바라기 꽃잎처럼 그녀의 손가락 사이사이에 가득 자리했고.
“뚱뚱한 면상을 아주 벌집으로 만들어 줄게~.”
그대로 강화위를 향해 팔을 휘두르는 리코.
정확히는 휘두르려고 했다.
철컥.
“거기까지다, 리코.”
기다란 검집이 그녀의 손을 막기 전까진 말이다.
상대편 역시.
“참으셔야 합니다, 강 형.”
“빌어먹을! 서위룡! 네놈이 감히 나의 행사를 막아?!”
어느새 강화위를 따라잡은 서위룡이 그를 제지하고 있었다.
고래고래 소리치는 강화위를 힐끔한 리코는 한숨을 쉬며.
“싫은데~, 이렇게 흥을 떨구는 건.”
가볍게 손을 털어 가득 쥐고 있던 수리검을 갈무리했다.
그녀는 몸을 돌려.
“왜 막은 거야? 유우토.”
자신을 막은 검집의 주인인 교복 차림의 단정한 남학생을 흘겼다.
제 키의 반이 넘어가는 기다란 검.
그것을 거둔 유우토는 무표정하게 답했다.
“막아야 했으니까.”
“저런 멧돼지는 교육이 필요한 법이라고.”
“그게 나한테 피해가 온다면 이야기는 달라지지.”
“어째서 너한테 피해가 간다는 건데?”
“몰라서 물어?”
유우토의 무표정한 눈동자가 리코를 바라본다.
“우리가 여기 온 이유는 길드 버프를 받기 위해서야.”
“그 정돈 나도 알거든?”
“그럼 이 건물의 주인이 어떤 사람인지도 알겠네.”
랭커팰리스.
이 거대한 건물의 주인은 이미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한국의 랭커.
당연히 일본의 유망주인 리코 역시 이 건물의 주인을 잘 알고 있었다.
유우토는 무표정하게 말을 이었다.
“검성님은 불필요한 소란을 싫어해. 하물며 자기 길드에 가입하러 온 자가 소란을 일으키면…….”
“그만그만. 어차피 정당한 대가를 주고 가입하는 거고, 넌 다른 이유가 있어서잖아? 이 검성 빠돌이야.”
“리코.”
“누나라고 꼬박꼬박 붙이랬지?”
“연장자다워야 대우를 해 주지. 겉만 늙어서는.”
무표정하게 코웃음을 치는 유우토.
“이 망할 꼬맹이가.”
그에 리코의 관자놀이에 핏줄이 잡혔으나 그뿐.
“서위료오옹! 네놈이 정녕!!”
“뭐, 그래도 대충 계획은 성공한 거 같으니 이쯤해 둘까? 네 말대로…….”
반대편에서 들려오는 노성에 씨익 웃은 그녀는.
“고귀하신 너의 검성님께선 소란을 싫어하시니까. 그렇지?”
유우토를 보며 찡긋했다.
“…….”
유우토의 무표정에 슬쩍 금이 간다.
그는 약간의 경멸이 담긴 눈으로 리코를 응시했다.
“더러워, 리코. 그것도 엄청.”
“이게 다 어른의 사정이라는 거란다? 검성이 분노해서 저것들을 쳐 내면, 그 자리가 우리 일본에게 올 수도 있지 않겠니?”
“검성님의 감정을 이용한다는 작전부터가 기분 나빠. 더러워.”
“칭찬으로 들을게, 빠돌아~.”
손을 살랑살랑 흔들며 걸어가는 리코.
그에 고개를 슬쩍 저은 유우토는 여전히 고래고래 소리치는 강화위를 힐끔하곤.
“바보 돼지.”
고개를 저으며 리코를 뒤따랐다.
* * *
“그럼 다녀올 테니 조심히 작업들 하고 있어.”
그극.
현자의 돌의 영향을 받아서일까?
광택이 줄줄 흐르는 백은의 골렘들이 일제히 경례를 표한다.
“녀석들.”
어딘지 귀여운 그 모습에 시문은 피식 웃음을 흘리곤 연구실을 나섰다.
언제 온 것일까?
문 앞에는 청아한 미녀.
“오라버니.”
“유정아.”
이유정이 서 있었다.
시문의 얼굴을 본 그녀의 입꼬리가 부드럽게 올라갔다.
“좋은 일이 있으신가 봐요?”
“응? 아! 골렘들 때문에. 근데 언제 와 있었어? 많이 기다린 거야?”
“아니에요. 저 방금 온걸요.”
“그래?”
고개를 끄덕인 시문은 걸음을 옮겼다.
이유정 역시 시문을 따라 발을 맞췄다.
“요즘은 골렘을 연구하시는 거예요? 아까 진욱 선배가 미스릴 골렘을 봤다고 깜짝 놀라던데.”
“맞아. 하지만 걔네들은 1회용이고, 따로 제작 골렘을 준비 중이야.”
“제작 골렘이요?”
시문의 말에 눈이 동그래지는 이유정.
그도 그럴 것이.
“그거 다이아급 연금술사들이나 만드는 거 아니었나요?”
랭커로 아레나 최상위권에서 노는 그녀는 알고 있었다.
제작 골렘이 얼마나 많은 돈과 재료를 잡아먹는지.
그리고 아무나 만들지 못하는 영역이라는 것도 말이다.
시문은 별거 아니라는 투로 답했다.
“통상적으로 그렇기는 한데, 사실 대략적인 구상이나 원리만 이해하고 있으면 그리 어렵지 않아.”
-삑!! 또 그러지 또! 그거 아무나 못 하는 거라고, 이 괴물 오빠야!
대번에 튀어나오는 현자의 돌.
그러나 녀석의 말을 들을 수 없는 이유정은.
“그렇군요. 마법사들은 술식을 알아도 경지가 부족하면 마법을 못 쓴다던데, 연금술은 또 다른가 보네요.”
시문의 답에 그저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그렇게 복도를 걷던 시문의 걸음이 잠시 멈췄다.
이유는 다름 아니었다.
“참. 유정아, 그러고 보니 말숙이는 요즘 통 안 보이네?”
고말숙.
집을 구하기 전까지.
당분간 랭커팰리스에서 생활하기로 한 그녀는 암시장에서 귀환한 이후.
좀처럼 얼굴을 보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어…… 오라버니랑 똑같죠. 트레이닝이랑 아레나만 엄청 하더라고요.”
어딘가 미묘한 얼굴로 답하는 이유정.
하나.
“그래? 하긴.”
시문은 별다른 반응 없이 고개를 끄덕일 따름이었다.
“나도 너무 연구실에만 박혀 있긴 했지. 그럼 이번 미팅에 말숙이는 안 오겠네?”
그에 왠지 모를 안도감이 든 이유정은 가슴을 쓸어내리며 답했다.
“아뇨, 미팅은 참석할 거래요. 각국의 유망주들 좀 알아 두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정말 그렇게 말했어?”
“……사실은 잘난 면상들 좀 기억해두고 싶다고 했어요.”
“하하! 역시 말숙이답네.”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던 두 사람은 어느새 랭커팰리스의 응접실에 도착했다.
“왔어?”
“오셨습니까?”
“왔냐.”
먼저 도착해 있던 김시혁과 박진욱, 고말숙이 반겨 온다.
그런 그들의 뒤로.
“저 여자는 철벽의 성녀잖아?”
“성삼 길드의 마스터직을 내려놓고 이 길드에 들어왔다더니 정말인가 봐.”
“저 정도 성장 버프면 눈이 돌만 하지. 근데 다른 랭커들은 없는 건가?”
“검성이 차단했겠지. 우리도 랭커는 안 받는다고 해서 대신 온 거잖아.”
“일단 성장 버프의 효과는 확실하겠군.”
길드의 성장 버프를 받기 위해 온 유망주들이 가득했다.
하나같이 범상치 않은 기운을 지닌 유망주들.
랭커인 이유정의 곁에 있어서일까?
유망주들의 시선이 자연스레 시문을 향해 쏠렸다.
“근데 성녀 옆에 저놈은 뭐야?”
“검성이나 밤사냥꾼의 지인이겠지.”
“나 저 사람 알아. 한국 골드 데뷔전의 우승자잖아?”
“뭐? 저자가?”
“흐응~ 잘생겼네. 내 취향인데?”
시문을 알아본 몇몇 덕분에 유망주들 사이에서 금세 수군거림이 퍼져 나간다.
골드 데뷔전 우승자.
이곳에 모인 이들 대부분이 데뷔전의 우승 경력이 있으니 당연한 현상이었다.
김시혁은 점차 소란스러워지는 유망주들을 향해 말했다.
“정숙해 주세요.”
순식간에 정적이 내려앉은 응접실.
잠시 조용해진 유망주들을 슥 훑은 김시혁이 말했다.
“지금부터 길드 가입을 시작하겠습니다. 호명하는 분부터…….”
“잠깐. 이의가 있소.”
침묵을 깨고.
김시혁의 말을 잘라 내는 목소리.
그 주인공은 다소 작고 뚱뚱한 체구의 한 남성이었다.
박진욱이 건넨 서류를 힐끔한 김시혁은 이의를 제기한 남성에게 물었다.
“대륙성의 강화위 플레이어군요. 무슨 이의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