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한 천재 플레이어의 신화급 무기창조-92화 (92/349)

제92화

92화. 암시장 (2)

“어쩜 화면으로 보는 것보다 실물이 훨씬 나으시네요. 눈이 아주 호강을 하는데요?”

남녀 상관없이 절로 설레는 목소리.

옥구슬처럼 맑고 감미로운 목소리가 시문의 귓가를 간질인다.

그런 목소리가 하는 칭찬에 얼굴이 절로 풀어질 법도 하건만.

시문은 가벼운 미소만을 유지할 뿐이었다.

“후후. 역시 범상치 않은 분이시네요.”

그에 간지러운 웃음을 흘린 흑백 가면의 여성.

암시장의 주인이 자신의 앞자리로 손짓했다.

“이리로 앉으시죠.”

시문이 자리에 앉자, 그녀는 손수 따뜻한 차를 끓여 시문의 앞으로 대령했다.

“초면에 이런 말은 잘 안 하는 편인데, 솔직히 놀랐답니다?”

가면 아래로 드러난 미려한 입꼬리를 슥 끌어 올렸다.

“설마 아레나 치료제의 제작자가 한창 이름을 날리는 슈퍼 루키일 줄이야.”

“그렇게 놀랄 일입니까?”

“그럼요. 방송에서 직접 마법계라고 언급도 하셨으니…… 아마 직업은 연금술사시겠네요.”

작은 정보로 시문의 직업이 연금술사인 것까지 확신해 버리는 그녀.

‘과연 암시장의 주인이야.’

시문은 속으로 감탄을 터뜨렸다.

자신이 연금술사가 아니냐는 추측에 대해서는 이미 채팅창에서도 여러 번 나온 사실이지만.

“통상적으로 연금술사는 경력이 오래되어야…… 하긴, 이미 시문 님은 실력부터 통상적이라는 단어가 통하지 않는 분이시죠.”

이렇게 확신해 버린다는 건 또 다른 영역이었다.

시문이 아무 말 없이 가만히 있자.

“후후. 식기 전에 드세요. 차 맛이 꽤 좋답니다? 아! 독이라면 없으니 걱정 마세요.”

흑백 가면 아래로 보이는 그녀의 입가가 싱긋 올라갔다.

“제가 아무리 추진력이 있다지만, 검성과 성녀를 적으로 돌리는 짓은 쉽게 못 하거든요. 물론 밤사냥꾼도 마찬가지고.”

분명 박진욱을 제외한 모두가 후드를 썼을 텐데.

암시장의 주인은 일행을 모두 알고 있었다.

시문은 말없이 찻잔을 내려다봤다.

그녀가 일행의 정체를 모두 꿰뚫고 있어서가 아니었다.

‘성녀라…….’

성녀.

그 단어가 머릿속에 메아리치는 것이다.

‘그래. 본래 성녀라는 칭호는 유정이의 것이지.’

지금처럼 성녀라고 불렸지만, 결국 악녀라는 별칭으로 생을 마감하게 되는 이유정.

잠시 잊고 있었던 그 사실이 시문의 속을 씁쓸케 만들었다.

하나 그도 잠시.

‘어차피 전생의 일이야.’

시문은 씁쓸함을 가볍게 털어 냈다.

‘이번엔 내가 있으니 그렇게 될 리도 없고.’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막을 테니까.

감정을 정리한 시문은 눈앞의 여성처럼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역시 암시장의 주인답네요. 치료제에 관해선 새어 나간 정보도 없을 텐데.”

“후후. 그리 어려운 추측은 아니랍니다? 그 무서운 밤사냥꾼이 극진히 모실 인물은 몇 안 되거든요.”

김이 모락모락 나는 찻잔을 들어 한 모금 마신 그녀가 말했다.

“그러고 보니 제대로 소개도 못 했네요. 전 린이라고 해요. 부족하게나마 암시장을 운영하고 있죠.”

이름을 들은 시문의 눈이 슬쩍 커졌다.

그도 그럴 것이.

‘린은 본명일 텐데, 이렇게 대놓고 밝힌다고?’

본디 암시장의 주인은 그 위치답게 수많은 가명을 지니고 있었다.

리사, 이사벨, 루카, 토오루, 트릭시, 한나 등.

당장 시문이 알고 있는 이름만 해도 십여 가지가 넘었다.

그중 린이라는 이름은 전생에서 마지막으로 알려진 이름으로.

암시장 주인의 본명이기도 했다.

그런 본명을 초면부터 이렇게 오픈했다는 건.

‘이번 거래를 상당히 중요하게 여기고 있나 보군.’

시문은 약간 식어 버린 차를 홀짝였다.

‘하긴, 아레나 질병 치료제가 좀 히트긴 하지.’

더불어.

‘내가 어떤 사람인지 살피려는 의도도 있을 테고.’

어떤 식으로 대답하냐에 따라.

자신에 대한 평가를 내리고 그에 맞는 전략을 펼치려 하겠지.

‘괜히 전생의 시혁이나 말숙이가 대면하기 껄끄러워한 게 아니야.’

전생의 검성과 천마.

하이랭커 중에서도 톱티어였던 두 사람이었지만, 암시장의 주인인 린과 만나는 것은 꺼려 했다.

두 사람 다 이런 타입은 상당히 싫어했었으니까.

‘녀석들, 이렇게 보니 날 참 많이 신경 써 주긴 했네.’

그럼에도.

엘릭서 제조를 위해서 두 사람은 매번 암시장에서 재료를 구해 주었었다.

하나같이 귀한 재료라, 암시장의 주인인 린과 계속 접촉이 생기는데도 말이다.

시문의 미소가 한결 짙어지자 린이 물었다.

“뭔가…… 제 이름에 대해 아시는 눈치네요?”

여전히 감미롭지만 아까와 다르게 묘하게 날이 서 있는 목소리.

당연히 시문은.

“아아, 암시장의 주인이라기엔 좀 이쁜 이름이라서요. 실례지만 좀 놀랐습니다.”

굳이 그녀의 경계를 키우는 방향을 택하지 않았다.

시문이 연기가 통한 것일까?

“이쁜 이름이라…….”

날이 섰던 린의 목소리는 다시 감미로움만을 담았다.

물론.

“그런 말은 처음 듣네요. 그저 더럽다고만 생각했는데…….”

끝은 영문 모를 싸늘함이 가득했지만 말이다.

린은 차를 마시는 시문을 향해 말했다.

“어쨌거나 시문 님이 어떤 분이신지는 대충 알겠어요.”

“그렇습니까? 우리 통했네요. 저도 방금 막 그쪽이 어떤 사람인지 눈치챘는데.”

“후후. 묘하게 설레는 말이네요. 예상대로 쉽지 않은 분이셔.”

린의 입꼬리가 한결 진하게 올라간다.

“둘러말하는 걸 즐기는 타입은 아니시니,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죠.”

가면을 슬쩍 매만진 린은 말을 이었다.

“아레나 질병 치료제, 저희 암시장에서도 유통하실 생각이 없으신지요?”

곧장 본론으로 치고 들어오는 린.

하나 시문은 바로 답해 주지 않았다.

‘내가 아무리 본론을 좋아해도 이런 상황엔 뜸이라는 게 필요하니까.’

막힘없이 시원시원한 걸 좋아하는 이가 망설인다는 것은.

보는 이로 하여금 ‘아, 저 사람 지금 진지하게 고민 중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특히나 린과 같이 사람과의 수 싸움에 능숙한 자들에겐.

“어머. 고민이 많이 되시나 봐요?”

이런 모습 하나하나가 여러 의미로 다가가기 마련이다.

잠시간 침묵을 지키던 시문은 답했다.

“예. 솔직히 좀 고민이 되네요.”

“흐응~ 제 분석이 잘못된 걸까요?”

묘한 콧소리.

어느새 한쪽 손으로 턱을 받친 린은 묘한 미소로 말했다.

“시문 님께선 분명 빙빙 돌리는 걸 싫어하시는 타입 같았는데 말이죠.”

이것 봐라?

한쪽 눈썹이 슬쩍 올라가는 시문.

이내.

“이거, 암시장의 주인 앞에선 뭘 숨길 수가 없군요.”

시문은 피식 웃으며 졌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그러나 이마저도 모두 계산된 행동이었다.

‘상대가 나보다 심리전이 뛰어난 이라면, 이렇게 대놓고 맞춰 주는 게 좋지.’

그럼 저런 부류들은 대개 ‘아! 내가 이겼구나.’라고 생각하지 않고.

‘이 녀석, 대체 무슨 꿍꿍이지?’ 하며 더욱 의심하기 마련이니까.

전생에서 1레벨로 살아남았던 처세술이라면 처세술이었다.

시문의 예상대로.

“흐응…… 어째서인지, 시문 님의 칭찬이 달콤하지만은 않네요.”

의심을 그대로 드러내는 린.

그런 그녀를 보며.

“사실 암시장에 치료제를 유통하는 것 자체는 저도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시문은 차분히 입을 열었다.

“정말인가요?”

“물론입니다. 비록 치료제를 돈 받고 판매하는 입장이긴 하지만, 전 많은 아레나 질병 환자들이 회복되길 바라거든요.”

이건 진심이었다.

병자의 마음은 같은 병자가 가장 잘 이해하는 법.

마력불능을 앓은 시문은 아레나 질병 환자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이해할 수 있었다.

더불어.

‘정상적인 플레이어들이 많아야 다가올 정규 아레나에서도 피해가 덜 하니까.’

정규 아레나의 대표적인 단점이 바로 아웃브레이크.

당연히 멀쩡한 플레이어가 많을수록, 지구가 받을 피해가 적어졌다.

“이해가 가긴 하네요. 얼마 전까지만 해도 마력불능으로 아레나 참가도 하지 못하셨으니.”

“뒷조사했다는 걸 이렇게 대놓고 표현하는 분은 처음입니다?”

“후후, 죄송해요. 오랜만에 쉽지 않은 분을 만나서 심술이 났나 봐요.”

특유의 미소를 유지하며, 손가락으로 리듬감 있게 제 볼을 두드리는 린.

이내.

“마력불능을 앓으셨으니 거짓일 리는 없고. 정말이지 오랜만에…… 어려운 분을 만났네요.”

린은 괴었던 턱을 풀고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그녀는 온도가 좀 내려간 차를 홀짝이고는 고개를 들었다.

가면을 쓰고 있었지만.

시문은 그녀의 눈빛이 한결 부드러워졌다는 걸 느꼈다.

“좋아요. 시문 님, 이런 무의미한 탐색전은 그만두죠.”

시문이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라는 걸 인정한 것이다.

빈말이 아니라는 듯.

달칵.

‘음?’

그녀는 얼굴의 반절을 가리고 있던 흑백의 가면을 보란 듯이 벗었다.

비단처럼 흘러내리는 흑발.

동양인 하면 떠오르는 길게 올라간 눈매와 아래에 있는 점까지.

여태껏 가면 아래로 보인 하관만으로도 그녀가 미인임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는데.

“이만하면 지금까지의 무례에 대한 사과로 충분하겠죠?”

야시시한 눈웃음까지 더해지자, 흡사 구미호를 떠올리게 했다.

하지만 그뿐.

“사과가 좀 과하시군요.”

이미 남녀를 막론하고 경악할 만한 미인들을 많이 만나 본 시문은 별다른 감흥이 없었다.

그에.

“어라? 그렇게 말씀하시니 왠지 속이 좀 쓰리네요?”

자존심이라도 상한 것일까?

늘 미소가 유지되던 린의 입가가 조금이지만 샐쭉 올라갔다.

“제 딴엔 꽤 큰 출혈을 낸 건데 말이죠.”

사실이긴 했다.

당장 암시장의 주인의 본명을 아는 사람만 해도 극소수일 텐데.

그녀의 얼굴까지 아는 이들이 얼마나 되겠는가?

그 사실을 잘 아는 시문은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그렇긴 하겠군요.”

“그게 끝? 더 하고 싶은 말 없어요?”

“음…… 그래서 더 부담되는군요. 얼굴까지 알고 싶지는 않았는데.”

“하. 정말이지.”

뭔가를 기대했던 것일까?

시문의 싱거운 대답에 린은 헛웃음을 흘렸다.

“아아. 모처럼 자괴감이 드네요.”

그제야 눈치를 챈 시문은 진압에 나섰다.

“어…… 이쁘시긴 합니다?”

“그건 저도 알거든요? 위로는 됐어요. 더 비참해지니까.”

다른 누구도 아닌 암시장의 주인이 친히 신상을 밝혔는데.

저런 싱거운 반응이라니.

거기에다.

‘이쁘긴 합니다 라고? 참나! 생각해 보니 저 말이 더 열받네.’

그럼 외모를 제외한 다른 부분은 뭐 어떻다는 말인가?

상대는 별생각 없이 말하는 거 같은데 거기에 묘하게 휘둘리는 느낌이다.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린은 식어 버린 차를 단숨에 들이켜곤 말했다.

“그래서 어떤 조건을 드리면 저희 쪽으로도 치료제가 유통될까요?”

또다시 본론으로 치고 들어오는 린.

이제는 시문도 제대로 답을 해 주었다.

“아시다시피 전 성삼과 치료제 판매 계약을 맺었습니다.”

“알아요. 그 폐쇄적인 성삼 바이오가 처음으로 외부의 상품을 유통하고 있으니까.”

린은 어디서 꺼냈는지 모를 종이를 내밀었다.

“그래서 저희가 이렇게 은밀히 만난 거잖아요?”

“은밀히요? 제 일행 중 누가 있는지는 잘 아실 텐데.”

“어머. 성녀라면 이 거래를 신경도 쓰지 않을걸요?”

“어떻게 그리 확신합니까? 성녀는 성삼의 유일한 후계자인데.”

“글쎄요. 여자의 감이랄까요?”

눈을 찡긋하며 말하는 린.

사실 그리 어려운 추측도 아니었다.

‘지금까지 성녀와 가까웠던 남자는 검성과 밤사냥꾼밖에 없었으니까.’

그런 성녀가 뜬금없이 정체를 숨기고, 웬 남자의 호위로 붙는다?

심지어 그 대상이 이런 먹음직스러운 미남이다?

‘이걸 보고도 모르는 게 멍청한 거지.’

이게 뭘 의미하는지는 같은 여성이라면 모를 수 없었다.

미묘한 린의 미소.

하나 그 의중까진 읽을 수 없었던 시문은 의문을 접고.

“어찌 알았는지는 모르지만, 그쪽 생각이 맞습니다. 이 일이 성삼 바이오에 알려질 일은 없을 거예요.”

“후후. 그렇게 인정해 주시니 궁금하긴 하네요. 철벽의 성녀와는 어떤 관계이실까요? 혹시 숨겨 둔 애인?”

“그럴 리가요.”

피식 웃는 시문.

그 미소는 분명한 거부와 약간의 어이없음을 담고 있었고.

‘뭐야. 정말 사귀는 사이가 아니라고? 그럼 성녀는 대체 왜…….’

그것이 진심임을 확인한 린의 눈동자는 잠시 혼란스러워졌다.

하나 그뿐.

“그럼 이야기가 쉽겠네요.”

익숙하게 감정을 갈무리한 린은 시문의 앞으로 종이를 내밀었다.

그걸 본 시문의 눈이 슬쩍 커졌다.

“아레나 계약서?”

“알아보시네요. 맞아요.”

아레나 계약서.

업적 상점에서 살 수 있는 계약서로 오로지 플레이어끼리만 계약이 가능한 계약서.

계약 불이행 시 상태창에 즉각적인 페널티가 추가되며.

해당 계약서에 담긴 기운으로 물리적인 타격까지 입히는, 확실하면서도 위험한 계약서였다.

“초면에 이런 말은 좀 그렇지만, 전 사람은 잘 믿지 않아서요. 플레이어라면 더더욱 말이죠.”

“이해합니다.”

계약이라는 건 결국 법적인 규제가 가미되어야 효력이 있는 법.

그러나 플레이어는 각오만 하면 법적인 규제쯤은 쉽게 벗어던질 수 있는 자들이다.

고로 플레이어들에겐 종이와 법으로 이루어진 계약서보단, 이런 아레나 계약서가 확실한 효력을 발휘했다.

“저도 이편이 확실해서 좋군요.”

“후후. 시문 님과는 비슷한 점이 꽤 있네요. 참고로 이 계약서에 담긴 기운은 공허랍니다.”

“공허요?”

눈이 동그래지는 시문.

그에 린은 여우 같은 눈웃음을 지었다.

“보아하니 공허 계약서에 대해 아시나 보군요.”

“모를 수 없죠. 아레나 계약서 중 가장 지독한 계약서니까.”

“후후. 맞아요.”

다른 기운들이라고 위험하지 않은 건 아니었으나, 공허가 담긴 계약서는 유독 페널티가 심했다.

페널티는 간단했다.

계약을 어길 시, 죽을 때까지 육체와 정신이 끊임없이 뒤틀려 버린다.

그럼 상태창은 고사하고.

인간의 형체조차 유지할 수 없게 되어버리지.

여러모로 끔찍한 페널티의 계약서였다.

“아시다시피 공허 관련 특성자도 거의 없는 편이라 계약 페널티를 줄이기도 어렵죠.”

아무 말 없는 시문.

그 모습을, 겁을 먹었다고 생각한 것일까?

“걱정 마세요. 어차피 계약만 지키면 문제될 건 없잖아요?”

그녀는 정체 모를 글자로 가득한 종이의 공란에 손을 올렸다.

그걸 본 시문이 말했다.

“계약 내용은 듣지도 않고 손부터 올리는군요.”

“왜 그런지는 아시잖아요?”

“제가 뭘 요구하든, 만족시킬 자신이 있다?”

“그럼요. 정말…….”

계약서에 손을 올린 린이 조금 다가온다.

그녀는 보기만 해도 사르륵 녹아 버릴 듯한 미소를 지으며 속삭였다.

“뭐든 간에…… 말이죠.”

색스러운 속삭임.

성적인 감정까지 간지럽히는 속삭임은 비단 린의 외모 때문이 아니었다.

‘과연. 구미호라 불릴 만하군.’

구미호 린.

SSS급 특성인 여우 구슬을 지닌 그녀는 실제로 전생에서.

랭커도 다수 홀릴 정도로 강력한 매혹 능력의 소유자였으니까.

그런 린의 고혹적인 태도에도.

“좋습니다. 어차피 제가 내걸 조건은 하나밖에 없으니까요.”

“하나? 예상보다 적네요. 아쉬워라.”

꿈쩍하지 않는 시문의 모습에 린은 슬쩍 입맛을 다셨다.

‘당장 김시문에게 매혹을 걸려면 못 할 것도 없는데…….’

우웅.

왜인지 그녀의 가슴 속에 자리한 여우 구슬이 경고를 보내오고 있었다.

이자는 피해야 한다고.

그 진창에서부터 지금의 자신을 있게 해 준 여우 구슬이기에.

“후후. 조건이 한 가지뿐이라면 더욱 신경 써 드려야겠네요.”

린은 매혹을 깔끔하게 포기한 채 말했다.

“무엇이든 말씀해 보세요, 시문 님. 최대한 맞춰 드릴 테니.”

그 말에.

“오리하르콘과 아다만티움을 구해 주셨으면 합니다.”

시문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조건을 내뱉었고.

움찔.

자신만만하게 계약서를 놀리던 린의 손은 뚝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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