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1화
91화. 암시장 (1)
갤럭시 아고라.
물건을 사고파는 것부터 사람을 구하는 일 등.
플레이어들에게 없어서는 안 될 성지.
어느 나라에나 존재하는 갤럭시 아고라는 당연히 한국에도 존재했다.
압구정의 한 백화점.
로데오 거리 위쪽에 위치해, 한강 뷰까지 챙긴 무척이나 화려하고 거대한 건물에 말이다.
그리고 그곳의 지하.
“이쪽입니다.”
지하 주차장과는 전혀 다른 루트의 지하를 향하는 일련의 무리가 있었다.
그중 선두에 서 있는 뚜렷한 이목구비의 미남은.
‘되게 오랜만이네.’
어둑한 주변을 둘러보며 묘한 미소를 지었다.
곁에서 길을 안내하던 험상궂은 남자가 걸음을 멈추고 오른쪽으로 손을 내민다.
“시문 님, 이쪽…….”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뚜벅.
걸음을 옮기는 시문.
그에 안내를 하던 남자, 박진욱은 눈을 잠시 끔뻑였다.
이내.
“저, 시문 님. 혹시 암시장을 다녀 본 적이 있으신지요?”
“예? 아.”
박진욱의 물음에 작게 탄식하는 시문.
그는 뒷머리를 슬쩍 긁적이며 답했다.
“뭔가 이쪽일 거 같아서요. 제 눈이 좀 특별하잖아요?”
“아아. 그 눈 말이군요.”
황금색의 기묘한 마법진을 지닌 눈.
그것을 떠올린 박진욱은 납득했다는 듯.
“대단한 눈인지는 알았지만, 설마 암시장의 입장 루트까지 꿰뚫어 보실 줄은 몰랐습니다.”
감탄을 터뜨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보통은 출입증이 없으면 절대 찾을 수 없거든요.”
박진욱의 말대로.
암시장으로 향하는 루트는 출입증이 없다면 찾을 수 없었다.
“시문 님도 아시죠? 암시장의 입구에 관한 이야기.”
“1세대 랭커를 물 먹인 일화 말이죠?”
“역시 알고 계셨군요. 맞습니다.”
과거 1세대 출신인 랭커가 암시장에서 부린 난동으로 출입 금지를 당한 후.
복수하겠다며 수년을 날뛰었던 사건.
결국 입구조차 찾지 못해 웃음거리가 된 것은 암시장의 유명한 일화 중 하나였다.
‘추적 관련 특성을 지닌 랭커라 더욱 난리가 났었지.’
추적 특성의 랭커가 입구도 찾지 못한다니?
비밀 엄수를 중요시하는 암시장의 입장에선, 양지에 제 존재가 알려지는 불편한 사건이었으나.
아이러니하게도 암시장의 위상을 더욱 높인 사건이 되었다.
랭커도 어찌하지 못한다는 암시장의 능력을 증명하는 꼴이 되었으니까.
그 이후로 암시장이 번성한 것은 말할 것도 없었다.
그렇기에.
“시문 님은 정말 매번 사람을 놀라게 하십니다. 어찌 암시장의 길을…….”
시문이 암시장의 길을 본다는 게 충격적인 일인 것이다.
특히나 암살계인 박진욱의 입장에선 더욱 크게 말이다.
시문의 회귀 사실을 모른다면 당연한 일이었다.
시문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사실 저도 완벽하게 보지는 못해요. 대충 저기가 좀 이상하달까? 그런 느낌이 들어서요.”
“형, 그것도 대단한 거야. 난 그런 느낌조차 받지 못했다고.”
뒤에서 청량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동생 김시혁이었다.
“여기서 조금이라도 이상함을 느낀다는 것, 그 자체가 대단한 거라고.”
“맞아요, 오라버니. 저도 출입증 없이 찾아보려고 꽤 시도해 봤는데 아무것도 찾지 못했어요.”
곁에 있던 이유정 역시 말을 보탠다.
이상할 것도 없었다.
‘녀석들, 랭커 되자마자 암시장 찾기를 했구만.’
암시장 찾기.
그것은 1세대 랭커의 암시장 치욕 사건 이후.
랭커에 오르면 다들 한 번씩 시도해 보는 일종의 연례행사 같은 것이었으니까.
물론 성공한 랭커는 단 한 명도 없었지만 말이다.
“여하튼 얼른 가시죠. 시간이 남으면 암시장도 좀 둘러볼까 싶으니.”
앞서가던 시문이 슬쩍 걸음을 늦추며 말하자.
“그렇군요. 모시겠습니다.”
아쉬움에 입맛을 다신 박진욱은 선두에 서서 길을 안내했다.
시문은 그런 박진욱을 보며 씨익 웃었다.
사실은.
‘입구가 저기구나. 길 자체는 되게 단순하네.’
시문은 이미 암시장의 입구까지 찾아낸 상태였다.
오딘의 눈 때문이 아니었다.
애당초 오딘의 눈은 활성화하지도 않은 상태니까.
단지 이건.
~~~~.
작은 속삭임.
분명 뭐라고 속삭여 오지만 제대로 들리지는 않는.
하나 분명하게 속삭여 오는 역설적인 속삭임 때문이었다.
그리고 시문은 이 속삭임의 정체를 알고 있었다.
‘공허라…… 이런 걸로 입구를 만들었으니, 잘난 랭커들도 찾지를 못하지.’
공허.
성좌 검은 염소가 기거하는 차원인 저편의 기운.
또 아이러니한 것은.
공허의 속삭임을 듣고 암시장의 입구를 찾아낸 건, 검은 염소 때문이 아니라는 거다.
[성좌 검은 염소가 당신에게 속삭이는 공허에 눈을 반짝입니다.]
성좌 검은 염소도 이렇게 공허의 속삭임을 듣는 자신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는가?
고로 이건 성좌 검은 염소로 인한 것이 아닌, 다른 요인 때문이었고.
시문은 이 속삭임의 원인에 대해 짐작가는 것이 있었다.
‘아마 칭호 때문이겠지.’
칭호 ‘저편의 시선을 받는 자’.
성좌 검은 염소는 물론, 다른 상위 서열의 성좌들도 놀라게 한 이 칭호로 인해.
공허의 속삭임을 들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설명엔 어떤 기능도 없었는데, 참 효자 같은 칭호란 말이지.’
정말이지 여러모로 다양한 도움을 주는 칭호였다.
어쨌거나.
“시문 님, 다 왔습니다.”
시문은 전생에서도 풀리지 않았던 암시장의 입구가 지닌 비밀을 홀로 풀어 버리고.
“다들 후드 챙겼죠? 가요.”
암시장에 발을 들였다.
* * *
암시장.
돈만 준다면 무엇이든 사고파는 것이 가능한 곳.
초창기엔 빌런들의 범죄로 인신매매까지 가능한 곳이었지만.
어쩐 일인지 인신매매는 빠르게 근절되었다.
물론 시문은 그 이유를 알고 있었다.
‘암시장 주인의 교체 때문이었지.’
전생에서도 극소수의 이들만 알고 있던 사실.
오로지 돈을 목표로 이곳을 만든 최초의 주인과 달리.
교체된 암시장의 주인은 인간의 자유를 억압하는 형태의 판매는 어떤 것도 용납하지 않은 것이다.
‘그래 봐야 불법이 가득한 곳이라는 건 변함없지만.’
시문의 시선은 어둑한 암시장에서 유난히 요란스러운 불빛의 가게들을 향했다.
그곳엔.
“오빠~ 쉬다 가요! 잘해 줄게!”
“거기 이쁜 누님! 들렀다 가십쇼. 제가 푹 재워 드리겠습니다!”
속살이 훤히 비치는 옷을 입고 호객하는 남녀들로 가득했다.
또 반대편으론.
“X발! 이거 뭐 잘못된 거 아냐? 어? 이 패가 말이 되냐고!”
“개수작 부리다 걸리면 손모가지인 거 알지?”
“이것들이 미쳤나. 내가 이 바닥 신용 하나로 먹고 살아온 사람이야! 알아?!”
곳곳에서 간이 도박을 하는 이들과.
“으으…… 더! 더!”
“제발 주게나! 내…… 내 뭐든 지불하겠네! 응?”
“헤, 헤헤!”
약에 취해 길바닥을 뒹구는 이들로 가득했다.
성매매부터 도박, 마약 등.
인간의 원초적인 욕구를 자극하는 모든 것들이 암시장엔 즐비한 것이다.
시문은 헛웃음을 머금었다.
‘이런 건 또 대놓고 허용한단 말이지. 뭐, 자기 말마따나 인간의 자유를 억압하는 건 아니긴 하네.’
사고 팔고 즐기는.
이 모든 행위를 스스로의 의지로 택한다는 점에서.
암시장의 주인이 중요시하는 ‘자유의 억압’은 없었으니까 말이다.
그렇게 퇴폐와 향락으로 가득한 길거리를 지났지만.
신기하게도 시비나 호객 행위에 걸리는 일은 없었다.
이유야 간단했다.
“바, 밤사냥꾼?”
“몸을 회복했다더니, 진짜였군.”
“자네 참 소식이 느리구만. 밤사냥꾼이 복귀한 적이 언젠데?”
“쉿! 일행도 많아 보이는데, 괜히 눈 마주치지 말자고.”
밤사냥꾼 박진욱.
일행 중 유일하게 후드를 쓰지 않은 암살계의 유명 플레이어의 존재 덕분이었다.
그 위상은 암시장에서도 유명한지.
시문과 일행은 어떤 시비도 붙지 않고, 무난히 암시장의 중심부까지 갈 수 있었다.
시문이 웃음기 어린 말을 건넸다.
“진욱 씨는 암시장을 많이 들르나 봐요?”
“하하! 일이 일이다 보니 옛날부터 자주 들렀었죠.”
본인의 말대로.
한때 흥신소를 비롯해 뒤 세계의 여러 업을 해 오던 박진욱이라 이런 뒤 세계는 익숙할 터였다.
“또 왜인지 암시장은 계속 밤만 지속되는 터라, 제 특성에도 딱인 곳이거든요.”
“그렇겠네요.”
시문은 어둑한 암시장의 하늘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공허가 이렇게 사방천지인데, 햇빛 같은 게 들 리가 없지.’
암시장에 들어오고 느꼈다.
암시장의 입구만이 아니라, 암시장 전체가 공허에 영향을 받고 있다는 걸.
당연히 박진욱의 특성인 밤의 가호 역시 풀가동이 가능할 테지.
아마 암시장에서 밤사냥꾼이 유명한 덴 이러한 이유도 있을 터.
그때.
“일은 무슨. 허구한 날 도박이나 하고 다녔으면서.”
대번에 파고드는 청량한 목소리.
김시혁의 기습에 박진욱은 황급히 답했다.
“그, 그건 가끔 취미로 즐긴 거고! 손 씻은 지 오래야!”
“선배. 손을 씻은 게 아니라, 그간 돈이 없어서 못 한 거잖아요. 저 아직도 기억나거든요. 본전 회수하겠다고 다음 날 아레나까지 파투 낸 거.”
“…….”
팩트인 걸까.
“아아~ 무서웠지. 그때 혼자서 선배 끝까지 기다려 주다가, 다른 팀원들한테 얼마나 눈치를 받았던지.”
김시혁의 극딜에 박진욱은 입도 뻥끗하지 못했다.
그저 조심히 시문의 눈치를 볼뿐.
그에 피식 웃은 시문은 못 들은 척, 정면의 건물을 바라봤다.
“여기죠?”
암시장 중앙에 위치한 유독 화려하고 높은 건물.
암시장의 메인인 경매장이었다.
동시에 주인과 관리자들이 거주하는 곳이기도 했고.
시문은 일행을 돌아봤다.
“너희는 가서 물건이라도 구경하고 있어. 여기 오너는 나만 만나면 되니까.”
“그럴 순 없어, 형.”
대번에 반대하는 김시혁.
녀석은 우려 섞인 얼굴로 말했다.
“암살 시도를 두 번이나 당했잖아. 한국에서도 그러는데 암시장은 어떻겠어?”
“맞아요, 오라버니. 아이템 구경은 나중에 해도 되니 함께 가요.”
“나도 동의. 네가 강한 건 알겠는데 너무 조심성이 없다고.”
이유정에 이어 그동안 잠잠하던 고말숙까지.
세 사람은 일제히 고개를 저으며 거부 의사를 표했다.
그에 시문의 입꼬리가 부드럽게 올라간다.
당연했다.
‘이게 뭐라고 기분이 좋냐.’
누군가 자신을 걱정해 주는데 어찌 기분이 나쁠 수 있겠는가?
‘그러고 보니 전생에도 이랬었지.’
늘 자신을 걱정하고 챙겨 주던 동생.
복수를 위해 세상마저 등졌지만, 자신에게는 모든 것을 터놓던 친구.
그리고 묵은 속을 제대로 풀지도 못한 채 떠나보냈던 또 다른 동생까지.
‘그래. 회귀로 전생과 많은 것이 달라졌어도, 너희는 그대로구나.’
문득 뭔가 개안되는 듯한 기분에 시문은 슬쩍 미소를 베어 물었다.
“걱정해 주는 고마운데, 암시장이 어떤 곳인지 너희도 알잖아? 거기에다 여긴 암시장의 메인인 경매장이 있는 곳이야. 악명 높은 빌런들도 여기선 소란을 안 피운다고.”
이미 과거 1세대 랭커의 치욕이라는 유명한 일화도 있지 않은가?
오히려 현실에서 신분이 불안정한 범죄자일수록.
암시장에서 출입 불가가 되지 않기 위해 몸을 사렸다.
그들도 결국 인간인 이상.
최소한의 생활 요소들은 필요했으니까.
거기에다.
“애당초 너희를 들여보내 주지도 않을 거야.”
암시장의 주인은 쉽게 만날 수 없기로 유명한 인물.
아무리 인지도 높은 랭커라 해도.
목적 없는 만남을 허락할 리가 없을 터였다.
‘사실 내가 다 들여보내라고 하면 못 할 것도 없지만…….’
어차피 이 만남의 목적은 아레나 질병 치료제일 터.
칼자루를 쥔 쪽은 자신이긴 했다.
하나.
‘괜히 초면부터 부스럼을 만들 필요는 없지.’
암시장의 주인과 쓸데없이 마찰을 일으킬 필요는 없었다.
암시장이 워낙 돈에 미쳐 무법적인 부분이 많다곤 해도.
‘여기만큼 재료 구하기 좋은 곳도 없으니까.’
반대로 돈만 있으면 온갖 귀한 재료들을 다 구할 수 있는 곳 아니던가?
골렘 제작까지 앞둔 상황에서 암시장은 필수적이었다.
시문이 확실히 선을 긋자.
“……형이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혹여나 무슨 일이 생기면 바로 연락하세요, 오라버니.”
“조심해라. 일 생기면 크게 하나 터뜨려. 바로 달려갈 테니까.”
세 사람은 내키지 않은 표정으로 물러났다.
시문은 일행들과 헤어진 후, 안내 데스크로 보이는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기다렸다는 듯.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김시문 플레이어님 맞으시죠?”
데스크 너머에서 정장 차림의 어마어마한 떡대가 다가왔다.
선글라스까지 써서 꽤나 위협적인 인상이었지만.
“오너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모시겠습니다.”
박진욱처럼 위협스런 외형과 달리 무척이나 정중했다.
시문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곤 그의 뒤를 따랐다.
떡대의 뒤를 따라 오너가 있는 곳으로 다가갈수록.
~~~~~.
공허의 속삭임이 한결 짙어진다.
여전히 언어의 구조조차 제대로 들리지 않았지만.
속삭임에 일정한 음률이 담겨 있다는 느낌은 들었다.
이내.
‘그렇군.’
그 지속적인 속삭임에 시문은 깨달았다.
‘이건 속삭임이 아니야.’
일정하게 들려오는 공허의 속삭임.
이건 속삭임이 아니라.
‘이곳을 이루는 공허의 패턴인 거야.’
마법으로 따지면 일종의 결계 술식이랄까?
은폐를 위해 일정하게 배치된 공허가 마찰하며 내는 소리였다.
그것을 깨닫는 순간.
[지구 최초로 공허의 속삭임을 해석하였습니다.]
[업적 포인트 2,000점을 획득합니다.]
[여파로 인체 연성의 이해도가 현 수준에서 최고치로 높아집니다.]
[‘옵시디언 태블릿’의 완성도가 5% 증가합니다.]
[연성력이 2 증가합니다.]
눈앞으로 메시지가 주르륵 떠오르며.
‘이건……!’
일련의 지식들이 시문의 머릿속으로 스며들었다.
현 수준에선 거의 끝에 달했던 인체 연성의 이해도와.
완성도 40%인 옵시디언 태블릿이 45%가 되며, 인체 연성의 수준이 한층 더 상승한 것이다.
‘이거 상상도 못 한 이득인데?’
연성력 2 스탯을 추가로 얻어, 순수 연성력이 130이 되고.
졸지에 옵시디언 태블릿의 완성도까지 챙긴 시문은 절로 미소를 지었다.
‘이걸로 6만 점 중 5천 점은 굳은 거네?’
성좌 검은 염소의 퀘스트를 깨기 위해 달성해야 했던 옵시디언 태블릿의 완성도 60%.
이번 성장으로 5%의 완성도를 얻었으니.
거기에 들어가는 업적 포인트 6만 점 중 5천 점을 날로 스킵했다.
미소가 절로 흘러나오는 상황.
그때.
“다 왔습니다.”
어느새 다 온 것일까?
떡대는 칠흑의 공간에 덩그러니 달려 있는 문을 열었고.
“어서 오세요, 시문 님.”
감미로운 목소리가 시문을 반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