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4화
74화. 세계수 심드라실 (1)
시문은 황급히 손을 저었다.
“잠깐만요. 세계수의 동반자는 하이엘프만 가능하다 들었습니다만.”
“반은 맞는 말이에요. 하이엘프와 같은 이라면 누구든 동반자가 될 자격은 있으니까요.”
에르넨의 아름다운 녹안이 시문을 직시한다.
“전 은인의 진심을 보았어요. 그건 종족을 떠나 티끌 없는 청렴함이었죠. 당신은 충분히 세계수의 동반자가 될 자격이 있답니다.”
“…….”
에르넨의 확답에 잠시 침묵하는 시문.
잠시 생각을 고른 시문은 말했다.
“전 세계수를 키우는 방법도, 그럴 장소도 없어요.”
“그건 걱정 마세요. 세계수의 영체만 지니고 계시면, 본체를 포함한 생장은 오롯이 제가 담당할 테니.”
“에? 그게 가능합니까?”
“물론이죠. 대신 저와 어딘가에 살아 있을 동족들에게 세계수 주변에서 살 자리만 허락해 주시면 안……될는지요?”
눈치를 보며 조심스럽게 물어 오는 에르넨.
“그건 당연하죠. 오히려 제 쪽에서 부탁드리고 싶은 부분입니다.”
시문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세계수를 키우고 관리하려면.
전문 관리자들이 당연히 붙어 있어야 하지 않겠나?
애당초 에르넨을 살린 이유도 엘프들의 세를 키우기 위함이었다.
“진심으로 감사드려요, 은인. 이 은혜는 결코 잊지 않겠습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정중히 허리를 숙이는 에르넨.
몸을 일으킨 그녀는 한결 맑아진 목소리로 물었다.
“그럼 은인, 이름을 알려 주시겠어요?”
“김시문입니다.”
“김시문…….”
이름을 몇 번 되새기던 그녀는 세계수의 씨앗 조각 위로 손을 올렸다.
“나 레브드라실의 동반자 에르넨이 김시문의 자격을 보증합니다.”
작게 뭐라 읊조리는 에르넨.
얼마 가지 않아.
샤릉.
맑은 이명이 흘러나오며 옥빛을 발하는 씨앗 조각.
그것은 자연스레 현자의 돌이 위치한 시문의 가슴께로 흘러들었고.
[세계수의 동반자로 선택되었습니다.]
[동반자의 이름을 지어 주세요.]
일련의 메시지창이 떠올랐다.
‘이름이라…….’
잠시 고민하던 시문은 곧 입을 열었다.
“심드라실. 내 동반자의 이름이다.”
그 말을 끝으로.
[동반자 세계수의 이름이 ‘심드라실’로 결정됩니다.]
[현자의 돌의 특성에 세계수가 추가됩니다.]
[칭호 ‘세계수의 동반자’를 획득하였습니다.]
[업적 ‘세계수의 유일한 동반자’를 달성하셨습니다.]
[보상으로 업적 포인트 10,000점을 획득합니다.]
주르륵 올라가는 메시지창과 함께.
자연을 연상시키는 녹음의 빛이 시문의 가슴을 중심으로 흘러나왔다.
‘상쾌하다.’
푸르고 드넓은 대자연.
그것이 전신으로 뻗어 나가며, 숨어 있던 불순물을 모조리 씻어버리는 기분이었다.
허공에 슬쩍 떠오르기까지 한 시문의 시야에 아쉬운 표정의 에르넨이 잡힌다.
시문은 자연스레 그 이유를 깨달았다.
“제가 역소환되고 있군요.”
“예. 이제 헤어질 시간이 되신 거 같네요.”
옥빛으로 환하게 발하고 있으나, 역설적으로 흐릿해지는 시문의 몸.
아레나 역소환이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다음엔 더 나은 모습으로 찾아뵐게요, 은인.”
“저 역시 다음을 기대하겠습니다, 에르넨.”
서로 미소 지은 배웅을 끝으로.
시문의 모습은 완전히 사라졌다.
* * *
다이아 랭크.
그중에서도 최상위에 위치한 이곳 부패의 숲에선.
[크르르!]
“야! 하나 더 간다!”
두 남자가 최상급 용족 드레이크와 전투를 펼치고 있었다.
사실 두 남자라 칭하기엔 좀 무리가 있었다.
왜냐하면.
“그만 좀 죽어라.”
청량한 미남만이 거대한 드레이크의 몸체를 난도질하고 있었으니까.
[크아아악!]
고통에 찬 비명을 내지르는 드레이크.
최상급 용족답게 비명마저도 위협적인 하울링이 가득 담겨 있었으나.
“시끄러워.”
청량한 미남은 무심히 검을 휘두를 따름이었다.
서걱.
분명 상당한 거리에서 휘두른 검격임에도.
손쉽게 절단되는 드레이크의 앞발.
용족 중에서 육체적인 능력과 방어력이 톱급으로 뽑히는 드레이크임을 떠올려 본다면.
아무리 다이아 랭크의 최상위권 플레이어라 해도, 믿을 수 없는 공격력이었다.
[캬아아! 인간!!]
앞발이 절단당했기 때문일까.
드레이크는 그간 보여 오던 역동적인 움직임과 달리.
거대한 아가리를 쩍 벌리며 직선적으로 달려들었다.
하지만.
서걱.
깔끔한 절단음이 일어나고.
쿠웅.
거체답게 묵직한 드레이크의 머리가 바닥에 처박혔다.
다행히 원거리에서 검격을 휘두른지라.
청량한 미남은 자욱한 흙먼지의 세례를 맞이하지 않았다.
그는 작게 한숨을 쉬며 뒤를 돌아봤다.
“선배, 제가 하나씩 풀링해 오라고 했을 텐데요?”
“어쩔 수 없었다. 최상급 용족 아니냐? 감각이 더럽게 뛰어난 걸 내가 어째.”
조폭을 연상시키는 각진 외모의 거구.
밤사냥꾼 박진욱이 건성건성 답했다.
“이러면 클리어가 늦어지잖아요. 빨리 클리어하고 형 방송 봐야 한단 말이에요.”
“망할 후배 놈아, 나도 우리 VVIP님 방송 보고 싶거든? 근데 어쩌겠냐. 하필 시간이 낮이고, 최상급 용족만 우르르 나오는걸.”
박진욱은 얼굴을 잔뜩 찌푸린 채, 하늘을 가리켰다.
그의 말대로.
어둑하고 썩어 버린 주변 숲과 달리, 하늘의 해는 더 없이 쨍쨍했다.
“여기가 밤이었어 봐라. 이 밤사냥꾼 박진욱이가 반쯤 조져서 풀링해 오지 않겠냐? 응?”
“하아. 정말 쓸모없네요.”
“아니, 이 새끼가?”
김시혁이 한숨을 푹 쉬자, 대번에 이마에 힘줄이 솟는 박진욱.
“조건 없이 강한 네가 이상한 거야! 네가 비정상이라고! 막말로 최상급 용족을 이렇게 쉽게 썰어 대는 또라이가 또 어디 있냐?”
“말조심해요. 유정이는 자기 힘세다는 말 들으면 안 참아요.”
“그건 네놈이 그따위로 놀려서……! 후우, 아니다. 말을 말자, 말아.”
그는 깊은 빡침을 참아 내며, 익숙하게 품속을 뒤적거렸다.
이내.
“제길! 여기 아레나였지? 아, 담배 마렵네.”
“흰소리 그만하고 가서 풀링이나 더 해 오세요. 아니다, 그냥 싹 몰아와요. 한 번에 조지게.”
“너 인마, 방송도 하는 놈이 하늘 같은 선배를 이런 식으로 대해서 되겠어? 이미지 훅 간다.”
“괜찮아요. 제 방송은 대화 제거 설정을 해 둬서 대화 내용은 안 나가요.”
“치밀한 새끼.”
태연하게 답하는 김시혁에 입을 삐쭉 내미는 박진욱.
그가 몸에 붙은 마른 낙엽들을 툭툭 털고.
“아주 대규모로 몰고 올 테니까. 나중에 죽네 마네 하지 마라.”
다시 은신하여 부패한 숲속으로 움직이려던 찰나.
[특별 요인으로 인해 맵이 변화합니다.]
[‘부패한 숲’이 ‘재생되는 숲’으로 변경됩니다.]
일련의 메시지창이 박진욱의 앞을 막아섰다.
‘맵 변화라고? 이런 것도 있었어?’
난생처음 보는 내용에 눈이 휘둥그레지는 박진욱.
하나 박진욱에게만 전달된 것이 아니었는지.
“선배, 잠시만요.”
휴식을 취하려던 김시혁 역시 허공을 몇 번 터치하더니 반쯤 놀란 눈으로 말했다.
“채팅창을 보니까 골드에서 일어난 특수 아레나 때문에 이렇게 된 거라는데요?”
“요즘 골드들 무섭네. 맵 변화를…… 잠깐. 골드라고?”
다이아 랭크인 두 사람으로서도 처음 겪는 맵 변화.
그리고 골드 플레이어.
이 두 가지 정보에서 자연스레 한 사람이 떠오른 것이다.
“설마!”
* * *
-님들, 메시지 봤음? 맵 변화 뭐임?
-나 방금 아레나 뛰었는데 부패의 숲에서 새싹이 핀 거 봤음.
-ㄹㅇ? 그 더러운 맵에서 새싹이 핀다고? 독버섯을 잘못 본 거 아니고?
-맞는 듯. 나 골든데 부패의 숲 나무에서 나뭇잎 자라더라. 여기 짤 첨부함.
-이거 김시문이라는 사람이 한 거임.
-김시문? 골드 랭크 우승자?
-저번엔 무슨 폐광 맵을 삭제하더만, 골딱이 주제에 왜케 나댐?
-위에 열등감이니? 추하다 ㅋㅋ.
국내 갤럭시 아레나 관련 커뮤니티 사이트는 물론.
-부패의 숲 변화라니?
-소문으론 한국 플레이어라고 한다.
-나도 한국 친구한테 들었다. 그는 골드 랭크라더군.
-골드? 골드가 무슨 수로 맵을 바꿔?
-특수 아레나래. 한국 커뮤니티 영상이 실시간으로 올라와.
-동의해. 코카트리스를 상대하는 영상은 POG 그 자체였어.
-나도 번역기 돌려서 봐야겠어.
세계 2강인 미국을 필두로 유럽, 중동, 아프리카까지.
실시간으로 눈에 띄게 변화하는 맵에 세계의 관심이 급속도로 집중되기 시작했고.
[플레이어가 뽑은 톱 3의 혐오 맵, 부패의 숲의 극적인 변화. 그 원인은 골드?]
[실시간으로 변화하는 맵, 그 주인공은 골드 랭크 데뷔전의 우승자!]
[알고 보니 폐광 맵 삭제와 공범?]
[플레이어 김시문, 그는 누구인가?]
[세계적 관심, K 플레이어 활약에 실시간 해외 반응……]
언론은 지난 특수 아레나의 결과인 폐광 맵의 삭제까지 거론하며 여론에 불을 지폈다.
그리고 이 모든 상황을 지켜본 날카로운 인상의 남자.
쾅.
“제기랄!”
각성자 협회장 김무열은 거칠게 책상을 내리찍었다.
늘 냉정하고 벼려진 칼 같다는 세간의 평과 상반되게.
“하필이면 이런 때에!”
김무열은 좀처럼 분을 삭이지 못했다.
이유야 간단했다.
‘이렇게 관심이 몰려서야 암살은 꿈도 못 꾸는데!’
중국의 거대 길드 대륙성에서 제시해 온 은밀한 제안.
시문의 암살에 손을 쓰기가 어려워진 것이다.
“최창욱, 계획을 수정해야겠다. 대륙성의 상황은?”
그가 얼마나 화난 상태인지 아는 각진 외모의 중년, 최창욱은 조심히 고개 숙여 보고했다.
“지금 막 인천에 도착했다고 합니다.”
“하아. 되는 게 없군.”
깊게 울리는 한숨.
이마를 거칠게 쓴 김무열은 신경질적인 눈으로 조카의 이야기가 도배된 모니터를 바라봤다.
“빌어먹을 놈들. 뭐 하나만 요구해도 더럽게 빈둥거리더니, 이럴 땐 또 빨라.”
“물릴까요? 이제 막 도착한 터라 지금이라면 전달이 가능합니다.”
“됐다. 가란다고 들을 새끼들도 아니야. 자네도 잘 알지 않나?”
“그건 그렇지요.”
이미 대륙성과 몇 번의 선을 대어 본 상황.
그들의 성향이나 방식에 대해선 진저리나도록 경험한 상태였다.
톡톡.
김무열이 검지가 책상을 두드린다.
그는 한동안 계속 업로드되는 모니터 속, 조카의 이야기를 보며 입을 열었다.
“이번 일에서 아예 손을 뗀다.”
“예?”
화들짝 놀라는 최창욱.
그도 그럴 것이.
“이미 참가할 인원을 모두 모집해 뒀습니다. 현재 출격 대기 중인데…….”
“캔슬해. 느낌이 좋지 않아.”
그저 느낌일 뿐이지만.
혹여 일이 틀어져, 그 영악한 조카 놈에게 꼬리라도 잡힌다면.
그땐 정말 돌이킬 수 없어질 터였다.
“하지만 이미 대륙성 쪽과도 입을 다 맞춘 상황 아닙니까? 그들의 성향상 보복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최창욱은 다급한 목소리로 답했다.
이미 이쪽에서도 인원을 준비해, 대륙성과 입까지 맞춰 둔 상황.
여기서 갑자기 발을 빼면 대륙성 쪽에서 어떤 보복을 가해 올지 몰랐다.
“흥. 어차피 그놈들도 계획을 제대로 지킨 적이 없지 않나? 애당초 입국만 시켜 달라고 부탁한 건 그쪽이다.”
김무열의 입꼬리가 시니컬하게 올라갔다.
“우리가 한번 튕긴다고 해서 뭐라 할 순 없을 거다.”
“하지만 협회장님. 혹여나 놈들이 이번 밀입국에 대해 언급이라도 해 버린다면…….”
“걱정 말아라. 현 대륙성의 길드 마스터면 몰라도, 종리추는 그 정도로 어리석은 자가 아니야.”
그게 아니라면 내가 대륙 놈들과 손잡는 일 따윈 없었겠지.
그렇게 읊조린 김무열은 담배를 한 대 빼물었다.
“거기다 성삼의 늙은이까지 가담한 상황이다. 놈들이 먼저 입을 여는 짓은 하지 않을 거다.”
“하긴. 대륙성이 이순철 회장의 눈치를 과하게 보는 경향이 있기는 합니다.”
한국 최고의 기업인 성삼의 회장.
무시할 수 없는 입지의 인물이긴 하나.
세계 2대 길드로 군림하는 대륙성이 그리 눈치 볼 인물은 아닐 텐데.
유난히도 대륙성은 성삼과의 관계에 민감했었다.
“그럼 이 회장님께도 연락을 넣을까요?”
“그러도록. 대충 계획이 틀어졌다 하면 알아들을 거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후욱.
담배 연기를 뿜은 김무열은 눈썹을 슬쩍 까닥였다.
“말이 나와서 말인데, 왜 대륙성이 이순철 회장의 눈치를 보는지 알아냈나?”
“송구스럽게도 아직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워낙 뒤처리가 깔끔한지라…… 죄송합니다.”
“흥, 됐다. 그 능구렁이가 꼬리를 쉽게 남길 리 없지.”
기대도 하지 않았다는 듯.
코웃음을 흘리며 모니터로 시선을 돌리는 김무열.
이미 몇 년 동안이나 제자리걸음인 뒷조사 아니던가.
“하지만 아예 진전이 없던 것은 아닙니다.”
최창욱은 그런 협회장의 움직임을 잡아챘다.
“호오, 그래?”
“최근 저희 말고도 다른 이들이 이순철 회장을 캐고 있더군요.”
“이들? 하나가 아니란 말이냐?”
“예. 총 두 세력으로 파악했습니다만, 아직 정체는 알아내지 못했습니다. 성삼 쪽과 끈이 있는지, 두 쪽 다 꽤 깊게 파고들더군요.”
“잘하면 손대지 않고 코를 풀겠군. 계속 주시하도록.”
“예, 협회장님.”
고개 숙인 최창욱이 방을 나선다.
침묵이 감도는 협회장실의 천장으로 허연 연기가 뿜어진다.
김무열은 지속적으로 업로드되고 있는 조카의 기사들을 바라봤다.
“짜증이 나는군.”
끈적한 액체 한 방울이 피부 어딘가에 묻은 것처럼.
진득하면서도 불쾌한 기분이 자꾸 신경을 건드린다.
오랜 경험상.
김무열은 이런 느낌이 들 때가 어떤 때인지 잘 알고 있었다.
‘분명히 뭔가 내가 놓치고 있는 게 있어. 그게 뭐지?’
잘난 형님이 일언반구도 없이 협회장의 자리에 올랐을 때가 그러했고.
잘난 조카 놈이 실버 랭크까지 힘을 숨기다, 단번에 랭커의 자리까지 꿰찼을 때가 그랬다.
두 케이스 모두 자신의 시야 밖에서 갑작스럽게 일어나, 견제의 기회를 완전히 놓쳐 버렸었지.
그리고 지금.
‘김시문, 대체 뭘 숨기고 있는 것이냐?’
잘난 형님이 남긴 또 다른 자식이자.
이 반쪽짜리인 조카에게서 또 이런 느낌이 느껴진다.
특히나.
‘넌 나를 잘 알지.’
같은 사생아여서일까?
조카 김시문은 김씨 집안의 사내들 중 누구보다도 까다로웠다.
그럴 수밖에.
자신의 과거를 연상시키는 처지와 재능.
그리고 자신을 훤히 꿰뚫어 보는 듯한 눈빛까지.
사생아 주제에.
놈은 늘 동류인 듯 자신의 속내를 꿰뚫고.
일찍이 대응해 제 동생 놈을 보호했었다.
그 영악함마저도.
‘나와 닮았지.’
그래.
그래서 저 반쪽짜리 조카가 더욱 거슬렸다.
‘멍청한 새끼. 동생이라 해 봐야 결국 적통. 제 놈에겐 아무런 득도 안 될 놈이거늘.’
출신이 뭐 그리 중하다고.
적통의 그림자에 비참히 가려져야 했던 자신과 같은 처지이면서.
‘당장 목을 쳐 내도 모자란데.’
병X같이 혈육이라는 명목으로.
도리어 제 동생을 싸고도는 모습에 더욱 화가 났다.
그 사실을 인지하자.
‘역시, 그때 무리를 하더라도 아예 처리해 버렸어야 했어.’
이런 기분을 느끼게 한 분노와 함께 과거의 한 사건이 떠올랐다.
하나 이미 지나가 버린 일.
과거에 연연해 봐야 돌아오는 건 후회뿐이라는 걸 모르지 않았다.
후욱.
마지막인 담배 연기를 뿜은 김무열은 어느새 꽁초가 되어 버린 담배를 재떨이에 짓이겼다.
“뭐가 되었든 난 쉽게 당해주지 않을 것이다, 영악한 조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