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한 천재 플레이어의 신화급 무기창조-73화 (73/349)

제73화

73화. 특수 아레나 자연의 몰락 (4)

시문은 잿빛 사슬에 속박된 드라니스를 바라봤다.

‘갤럭시 아레나 측에서도 어지간히 골치가 아픈가 보군.’

처음 등장 시 드라니스가 했던 말도 그렇고.

성좌들의 말처럼 정식 루트로 자신의 아레나로 참가한 것은 아닐 터.

거기에다 상위 서열의 성좌가 무려 넷이나 클레임을 걸고 있지 않은가?

갤럭시 아레나의 입장에선 결코 쉽게 넘길 사안이 아닐 테지.

다만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드는 건.

‘그럼 갤럭시 아레나는 왜 드라니스를 히든 보스라고 언급한 거지?’

왜 처음부터 드라니스를 플레이어로 소개하지 않았냐는 거다.

얼마 가지 않아.

‘그렇군.’

시문의 눈빛이 한결 깊어졌다.

‘갤럭시 아레나의 의회 측에 용족의 끄나풀이 있는 거야.’

일전에도 몇 번 메시지로 접했었던 아레나 의회.

그곳에도 용족의 손길이 뻗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결국.

[의회의 논의가 끝났습니다. 성좌들의 뜻에 동의해, 플레이어 장군 드라니스를 해당 아레나에서 추방합니다.]

갤럭시 아레나 측에서 결론이 내려졌다.

아무리 끄나풀이 있어도.

4명의 상위 서열 성좌의 클레임은 무시하기 어려웠던 모양.

[아, 안 돼! 현신을 풀겠다! 전투도 하지 않겠어!]

흐릿해지는 드라니스의 거체.

[단지 저자와 대화만이라도 하게 해 줘! 난 알아야 할 것이 있단 말이다!]

역소환의 기미에 드라니스는 다급히 외쳤고.

‘맞아. 드라니스를 이대로 보내면 안 돼.’

시문 역시 드라니스의 뜻에 동의했다.

지난 골드 랭크 데뷔전에서 만난 나가 공주 아샤즈.

그녀가 한 말이 있지 않은가?

-그대의 사안을 목도한 용족은 단 하나도 살려 두지 말거라.

사안의 정체.

아샤즈는 용족이 사안의 유무를 알지 못하길 바랐다.

더 정확히는 용제들의 귀에 들어가지 않길 바라는 거겠지.

더불어.

‘부정행위는 못 참지.’

자신의 무력 여부를 떠나서.

히든 보스로 소개해, 아레나에서 난입을 허용케 한 짓도 곱게 넘길 생각이 없었다.

그러니.

‘드라니스는 여기서 죽여야 해.’

하지만 어떻게?

사실 드라니스 자체는 진화종 용족치고 그리 강하지 않았다.

마음만 먹으면 처리야 금방이겠지.

하나 자신을 위해 성좌들이 일제히 항의를 하는 현 상황에서.

일신의 무력으로 드라니스를 손쉽게 죽여 버린다면?

‘혹여나 다음에 비슷한 상황이 벌어져도, 갤럭시 아레나 측에서 할 말이 생겨.’

선례란 게 그런 것이다.

특히나 의회에 용족의 끄나풀이 있다면 아마 100% 확률로 그럴 테지.

고로 저들에게 빌미 자체를 주지 않는 방식이어야 한다.

그렇다면.

‘다른 손을 빌려서 처리하면 돼.’

하늘을 힐끔한 시문은.

뚜둑.

활성화해 두었던 용체화를 해제했다.

이어 사안과 인체 연성도 모조리 비활성화했다.

이내.

“윽!”

이마를 짚으며 몸을 휘청이는 시문.

[응? 갑자기 뭐냐?]

그에 구속되어 있던 드라니스는 물론.

[성좌 제우스와 천마가 고개를 갸웃합니다.]

[성좌 검은 염소와 오딘이 의문스러운 눈으로 당신을 바라봅니다.]

항의하던 성좌들이 일제히 의문을 표했다.

그에 아랑곳하지 않은 시문은 다리까지 힘을 풀며 주저앉고.

잠시 제 가슴을 내려다보더니.

“쿨럭!”

피를 한 바가지 쏟아 냈다.

이내 바닥으로 털썩 쓰러진 시문은 힘겹게 읊조렸다.

“여, 염소 님…… 아까 상처가…….”

짧은 침묵.

이어.

[성좌 검은 염소의 ‘야 이 X발 놈들아! 무능한 네놈들 때문에 내 아가가!’ 두 눈이 붉어집니다.]

곧장 반응이 터져 나왔다.

다만 시문도 예상치 못한 것은.

[갤럭시 아레나 측에서 플레이어를 직접 처단하는 건 규정상 불가…….]

[성좌 검은 염소가 ‘부울가아? 당장 저 개같은 도마뱀 년을 죽여라! 그렇지 않으면 너흰 공허의 대모를 전면으로 맞이하게 될 게다! 알겠느냐?!’ 진노합니다.]

[성좌 검은 염소의 진노가 저편을 뒤흔듭니다.]

[대모의 진노에 공허의 성좌들이 시선을 보냅니다.]

단지 메시지로만 전해질 뿐인데도.

뭔가 일이 어마어마하게 커진 느낌이라는 것이다.

착각은 아니었는지.

[회원님, 저희 갤럭시 아레나는 언제나 공정함을 우선시…….]

늘 기계적인 메시지만 보내던 갤럭시 아레나는 전생과 현생을 통틀어 처음으로 부드러운 어조의 메시지를 보내왔다.

[성좌 검은 염소가 ‘공정? 정규 아레나에서도 상위권인 종족의 플래티넘이 비정규 골드 아레나에 난입했는데, 공정이라고? 지금 누굴 호구로 봐!!’ 옥좌에서 벌떡 일어납니다.]

[대모의 진노에 상황을 주시하던 공허의 성좌들이 모여듭니다.]

[모여든 공허의 성좌들이 살의를 뿜어냅니다.]

하나 분노한 검은 염소 앞에선 어림도 없었는지.

[잠시 논의가 있겠습니다. 부디 넓은 아량으로 잠시만 기다려 주시길.]

결국 고개를 숙이며 논의를 거치는 갤럭시 아레나.

얼마 가지 않아.

[갤럭시 아레나는 회원님의 말씀에 공감하며 깊은 유감을 표합니다. 다만 규정상, 저희가 직접적으로 손을 쓸 수 없음을 부디 헤아려 주시길.]

갤럭시 아레나는 논의의 답을 내놓았고.

시문은 갤럭시 아레나가 ‘직접적으로 손을 쓸 수 없다’는 부분에서.

‘통했군.’

자신의 작전이 먹혀들었음을 직감했다.

그리하여.

[성좌 검은 염소가 ‘너희의 잘못임을 제 입으로 시인했으니, 이번 일에 소모되는 모든 인과는 너희가 감당해!’ 으름장을 놓습니다.]

일갈을 내지른 검은 염소를 마지막으로.

쿠그그그그그.

세상이 검게 물들었다.

* * *

별 한 점 없는 우주.

딱 그러한 칠흑의 공간에서.

[저, 저편……! 갑자기 저편이 왜!]

떨림이 가득한 드라니스의 목소리가 왕왕 울렸다.

오만으로 느껴질 정도로 위풍당당했던 모습은 어디 갔는지.

[이, 이건 규정 위반이다! 갤럭시 아레나! 듣고 있나!]

그녀는 한껏 공포에 질린 모습으로 전신을 덜덜 떨어 댈 뿐이었다.

[더러운 독사 같은 년. 감히 추잡한 부정으로 나의 아가를 건드려?]

영혼마저 살라 버릴 듯한 목소리.

그것이 한치의 앞도 보이지 않는 검은 세상 전체에서 흘러나온다.

어떤 형체조차 보이지 않았지만.

시문은 목소리의 주인이 검은 염소임을 직감했다.

신기한 것은.

‘왜 포근한 느낌이지?’

시문에겐 어머니의 품처럼 포근하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시문에게만 적용되는 것이었는지.

[니드호그 님께서! 용제들께서 가만있지 않을 것이다! 성좌가 플레이어를 이렇게…….]

[아가리 좀 다물어.]

까드득.

검은 차원에 잠식된 드라니스의 사지가 끔찍한 형태로 뒤틀렸다.

놀라운 것은.

피눈물을 흘리며 뒤틀려버린 드라니스에게선.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는 거였다.

[감히 내 앞에서 그 엿같은 도마뱀 새끼들을 논해? 넌 있다가 천천히, 억겁의 세월 동안 저며 주도록 하지. 그리고…….]

냉랭했던 검은 염소의 목소리가 급격히 따스하게 변했다.

[아주 잘했다, 내 아가. 영악한 것조차 날 쏙 빼닮았어.]

물컹.

뭐라 표현하기 힘든 부드럽고 푹신한 감각이 시문의 전신을 감싸 왔다.

자칫 잠들어 버릴 정도로.

하지만 애써 버틴 시문은 물었다.

물을 수밖에 없었다.

검은 염소의 말투는 분명.

“알고 계셨습니까?”

시문이 아픈 척 연기한 것임을 알고 있는 눈치였으니까.

[후후, 당연하지 않겠니? 난 바보가 아니거든.]

“다른 성좌들도 눈치챘겠군요.”

[명색이 상위 서열 성좌 아니니? 현자의 돌이 연성해 낸 가짜 피라는 것쯤은 진작에 눈치들 챘지.]

“그럼 갤럭시 아레나는 몰라서 물러난 겁니까?”

[그래. 그쪽은 대다수가 저능한 머저리들이니까.]

상위 서열의 성좌쯤 되어야 눈치챌 수 있는 것인가.

검은 염소의 단언에 시문은 쏟아지는 졸음 속에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음부턴 입 속에 상처라도 좀 내야겠어.’

더 치밀한 다짐을 하면서 말이다.

[아가? 다른 녀석들이 아닌, 날 언급한 건 아주 현명한 처사였단다.]

감미로운 목소리와 함께 부드러운 촉감이 시문의 머리를 쓸었다.

[나와 다르게, 그 녀석들은 눈치 봐야 할 것들이 많거든. 병X들. 옥좌에 앉았으면서 뭘 그리도 어렵게 사는지. 그저 휘두르면 될 텐데 말이야.]

상위 서열의 성좌 3명을 싸잡아 시니컬하게 까 버리는 검은 염소.

그에 시문은 조금 난감한 미소를 지었다.

다른 세 성좌들이 왜 검은 염소처럼 대놓고 나서지 못했는지 이해가 가는 것이다.

‘뭐, 그래서 검은 염소를 언급한 거지만.’

지금까지 봐 온 것만으로도.

검은 염소라는 성좌 자체가 어떤 성격인지 충분히 알 수 있지 않는가?

어떤 면으론 든든하기도 했다.

이토록 강대하고 꺼릴 것 없는 성좌가 자신에게 호감을 표하고 있으니 말이다.

[아가, 세계수를 되살릴 거지?]

“예. 하이엘프도 살려 낼 생각입니다.”

[후후. 하이엘프를 곧바로 처리하지 않은 걸 보고 혹시나 했었지. 넌 모르겠지만, 넌 참 대단한 아이란다.]

슥슥.

계속해서 정체 모를 촉감에 머리가 쓰다듬어지는 시문.

자연스레 시문은 잠을 버티는 아이처럼 고개를 꾸벅거렸다.

[저번 드워프 건도 그렇고, 이대로 가면 검은 제련소에도 큰 타격이 가겠지. 니드호그 새끼, 속 좀 쓰리겠어.]

쏟아지는 잠결 사이로 한껏 들뜬 검은 염소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참 아이러니하지. 우리 중 누구도 놈들에게 이런 타격을 준 이가 없는데, 어찌 인간이…….]

이젠 물속에 잠긴 것처럼 흐릿하게 들려오는 목소리.

[해서, 한 가지 선물을 준비했단다.]

점점 흐려지는 검은 염소의 목소리를 끝으로.

[성좌 검은 염소가 퀘스트를 의뢰합니다.]

퀘스트의 알림과 함께 시문의 의식이 끊어졌다.

* * *

“으음…….”

잘게 떨리는 미간.

작은 신음을 흘리며 눈을 뜬 시문은 볼 수 있었다.

“깨어나셨군요.”

눈부시게 환한 백금발.

그와 어울리는 환한 피부와 자연을 녹여 낸 듯한 녹색의 눈까지.

헉 소리가 절로 나올 정도의 미녀가 자신을 내려다보는 것을 말이다.

“헉!”

그러나 시문이 소스라치게 놀란 것은 미녀의 외모 때문이 아니었다.

머리와 목덜미로 느껴지는 부드러운 감촉.

그것이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여성의 다리라는 걸 눈치챈 것이다.

“이, 이게 대체!”

벌떡 일어난 시문은 당황스러운 얼굴로 주변을 살폈다.

“너무 놀라지 마세요. 쓰러져 계시길래 제가 돌봐 드리고 있었어요.”

따스하게 말을 건네는 여성에 시문은 상황을 빠르게 파악했다.

“하, 하이엘프?”

“맞아요.”

고개를 끄덕인 하이엘프는 시문을 진정시키듯 천천히 말을 이었다.

“제 이름은 에르넨. 세계수 레브드라실의 동반자랍니다.”

반신을 뒤덮었던 검녹색 비늘은 온데간데없다.

생기 넘치는 눈빛과 목소리, 그리고 은은하게 풍겨 오는 꽃내음까지.

변화한 모습은 분명 그녀의 정체가 하이엘프임을 당당히 알리고 있었다.

키잉.

사안을 활성화한 시문은 하이엘프의 상태를 살폈다.

“잠식하던 용력이 말끔히 사라졌군요.”

“후후, 모두 은인의 덕분이랍니다. 은인께서 타락의 원인을 제거…… 쿨럭!”

조곤조곤 이야기하던 에르넨이 갑자기 피를 토한다.

“이런!”

그에 시문은 얼른 다가가 아스클레피오스의 지팡이를 연성하려 했다.

하나.

연성하려던 시문의 손이 내려간다.

‘부상 때문이 아니야.’

애당초 타락한 에르넨과 전투를 치를 때도, 부상을 입힐 만한 공격은 최대한 자제했었다.

고로 지금 하이엘프가 피를 토하는 원인은.

“세계수 영체의 부재 때문이군요.”

“그, 그렇답니다. 5용제가 뿌린 타락으로…… 쿨럭! 제 육체가 쇠약해진 것도 있지만요.”

힘겹게 답하는 에르넨.

그에 시문은 옆으로 손가락을 튕겼다.

드드드.

퍼석한 바닥이 연성되며, 바닥에 떨어져 있던 무언가를 가져온다.

검은 염소의 영역으로 소환되며 손에서 놓쳤던 녹음의 조각.

세계수의 씨앗 조각이었다.

“비록 조각이라도 도움이 될 텐데, 왜 진작 사용하지 않은 겁니까?”

잠시 멈칫하는 에르넨.

시문의 손에 들린 씨앗 조각을 잠시 보던 그녀는 너털대며 웃음을 흘렸다.

“은인의 것이잖아요. 제가 어찌 함부로 쓸까요.”

“…….”

잠시 침묵하는 시문.

그도 그럴 것이 예상도 못 한 답이었다.

‘엘프가 원래 이렇게 염치가 있는 종족이었나?’

종족 특성인지는 몰라도.

영혼이 더럽혀진다며 결코 거짓말을 하지 않는 엘프들이었지만.

청렴함과 염치는 별개의 영역인 건지.

전생에 겪어 본 엘프들은 하나같이 얼굴에 단단한 철판을 몇 장씩 깔고 있었다.

한데 이것이 제 것이 아니라고 가만두었다?

‘다른 것도 아니고 세계수의 씨앗 조각인데?’

심지어 제 목숨과 직결된 상황 아니던가.

‘하이엘프만 다른 건가? 아니면 전생의 엘프들이 특정 이유로 그렇게 변한 걸까?’

뭐, 어느 쪽이건.

‘마음에 드네.’

시문은 처음 보는 염치 있는 엘프의 모습에 피식 웃으며, 세계수의 씨앗 조각을 내밀었다.

“쓰십쇼.”

“……진심이신가요?”

“물론이죠. 그러라고 연성한 겁니다.”

시문은 망설이는 에르넨의 손에 억지로 세계수의 씨앗 조각을 쥐여 주었다.

“꼭 살아남으세요. 살아서 세계수도 다시 키워 주시고, 세력도 만드시면 좋겠네요.”

그래야 특수 아레나도 클리어하고.

용족들에게도 피해가 갈 테니까.

“…….”

조심스레 세계수의 씨앗을 쥔 채.

시문을 물끄러미 보는 하이엘프.

이미 엘프를 만난 적이 있는 시문은 저것이 거짓을 분별하는 행동이라는 걸 알고 있기에.

가만히 그녀의 눈을 마주 보아 주었다.

잠시 후.

“진심이시군요.”

그녀는 놀람 반, 미소 반이 섞인 얼굴로 다시 세계수의 씨앗을 내밀었다.

“은혜에 진심으로 감사를 올리지만, 이건 제가 쓸 수는 없답니다.”

에르넨의 답에 시문의 얼굴이 어두워진다.

“어째서죠? 조각인 게 문제라면 앞으로도 꾸준히 연성을…….”

“아니요, 은인. 그런 게 아니에요.”

에르넨은 부드럽게 고개를 저으며 시문의 손을 감싸 쥐었다.

“세계수의 동반자는 오직 1명뿐이랍니다. 이미 소멸해 버렸다 한들, 전 이미 한번 세계수의 동반자였던 몸. 또 다른 세계수를 받아들일 순 없어요.”

“그런!”

현자의 돌도 여기까지는 몰랐던 걸까.

시문이 연신 아쉬운 탄식을 토하자.

“하지만.”

에르넨은 씨앗을 쥔 시문의 손을 조심히 밀었다.

목표는 시문의 가슴 정중앙.

“중계자의 역할은 가능해요.”

“중계자……? 잠깐. 그 말은 설마!”

싱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하이엘프.

“맞아요. 은인께서 세계수의 동반자가 되시면 모든 게 해결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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