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2화
72화. 특수 아레나 자연의 몰락 (3)
-눈나?
-뭐야. 진짜 멈췄다고?
-이건 대체 ㅋㅋㅋㅋㅋ.
-아니, 말로 엘프를 멈추는 사람이 있다?
-이런 마법은 본 적이 없는데…….
이내.
그녀는 맨몸으로 혹한의 추위라도 맞이한 것처럼 쉬지 않고 몸을 떨었다.
정확히는.
파스스.
검녹색의 비늘이 돋은 하이엘프의 반신이 떨리고 있다고 해야겠지.
시문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역시 통하는군.’
일전의 나가, 코카트리스와의 전투로 인해, 대충 사안의 사용법을 감 잡은 상태다.
그리고 그때와 달리 지금은 용력마저 집중시킨 상태이니.
말 한마디로 제압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하나.
“으…… 으으!”
하이엘프를 잠식한 용력이 상당한 수준이라 그런 걸까?
하이엘프는 전신을 부들부들 떨면서도, 서서히 몸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시문은 그녀가 완전히 풀려나기 전.
다시 한번 용력을 사안에 집중시키며 말했다.
“네가 지닌 세계수의 영체를 내놓아라.”
그러자 홀린 듯.
가슴을 활짝 펴고 두 손을 가져다 대는 하이엘프.
동시에 검녹색의 연기에 감긴 무언가가 그녀의 양손 위로 모습을 드러냈다.
‘이게 세계수의 영체? 꼭 분재같이 생겼네.’
작고 오래된 분재.
딱 그 모양을 닮은 검녹색의 영체가 시문의 앞으로 내밀렸다.
그러는 와중에도.
파스스!
“으으!”
비늘이 뒤덮인 그녀의 반신은 희미한 빛까지 뿜어내며 시문의 명령에 저항을 거듭했다.
“빨리 정리해야겠군.”
마기를 응집시킨 시문의 주먹이 영체에 닿는 순간.
[고수준의 용력에 접촉하였습니다.]
[용력을 흡수합니다.]
[고수준의 용력이 완강하게 거부합니다.]
검은 스파크가 튀어오르며 정전기와 같은 따가움을 선사했다.
‘어쭈? 개겨?’
시문은 슬쩍 미간을 찌푸리며, 저항하는 용력을 거칠게 짓눌렀다.
파츠츠측!
점점 거세지는 스파크.
그러나 이 건방진 용력과의 밀당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고수준의 용력이 굴복합니다.]
일련의 메시지를 신호로.
쩌엉!
도자기 깨지듯.
타락한 세계수의 영체가 깨져 버린 것이다.
조각난 검녹색의 용력들은 잠시 허공을 맴돌더니, 곧 시문의 손으로 스며들었고.
[고수준의 용력을 다량 흡수하였습니다.]
[용력이 50 증가합니다.]
[연성력의 귀속 스탯으로 치환되어 연성력이 25 상승합니다.]
“무, 무슨!”
어마어마한 보너스 스탯에 화들짝 놀라는 시문.
그도 그럴 것이.
‘50이라고?’
단순 계산만 따져도 50레벨에 달하는 수치.
비록 연성력의 귀속 스탯으로 절반 값인 25만 상승하긴 했으나.
그 역시도 결코 적은 값이 아니었다.
‘하긴, 세계수를 타락시킨 용력인데 이 정도는 당연한가?’
오히려 이보다 낮았다면 그게 더 이상했으리라.
그렇게 납득한 시문은 축 늘어져 있는 하이엘프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현자의 돌.’
-응!
연성력이 25나 증가해서일까?
[현자의 돌이 부족한 등가교환을 성립시키기 위해, 업적 포인트 10,000점을 요구합니다.]
[받아들이시겠습니까? (예 / 아니오)]
현자의 돌의 밝은 목소리와 함께 익숙한 메시지창이 떠올랐고.
‘만 점이라. 적당하네.’
소모 포인트를 확인한 시문은 망설임 없이 예를 택했다.
우웅.
부족한 등가를 채운 업적 포인트가 손끝으로 모여든다.
그것을 머금은 손가락을 그대로 튕기자.
따악.
톡하고 작은 씨앗 조각이 시문의 손바닥 위로 떨어졌다.
[세계수의 씨앗 조각]
등급 : 신화
세계수의 씨앗.
조각의 형태지만, 그 격은 여전하다.
빛바랬던 입장 아이템인 망가진 세계수의 씨앗 조각과 달리.
맑고 청아한 녹빛의 씨앗 조각.
[성좌 제우스와 검은 염소가 눈을 반짝입니다.]
[성좌 천마가 흥미로운 눈길을 보냅니다.]
그것을 본 성좌들도 일제히 관심을 쏟아 냈다.
특히나.
[성좌 오딘과 아스가르드의 신들이 큰 관심을 보입니다.]
‘저쪽은 왜 저래?’
유독 큰 관심을 보이는 오딘과 아스가르드에 시문은 잠시 의문이 들었지만 그뿐.
“아아…….”
바로 앞에서 들려오는 갈라진 목소리에 시선을 돌렸다.
실이 끊어진 인형처럼.
축 늘어져 있던 하이엘프가 깨어난 것이다.
초점 없이 멍했던 눈동자는 어느새 활력을 띠며.
“아아!”
반쪽밖에 움직이지 않는 몸으로 힘겹게 다가왔다.
“이런. 무리하게 움직이지 말고 거기에…….”
시문이 그런 그녀에게 다가가려던 찰나.
오싹.
용체화된 육체가 서늘한 한기로 경고를 해 왔다.
시문은 즉시 몸을 비틀며 손가락을 튕겼다.
따악.
순식간에 연성되어 나가는 흙가시들.
한 번에 25나 상승한 연성력.
그리고 일전에 성장한 칭호 ‘연금술의 선구자’의 새 옵션, 연성의 위력이 5%로 인해.
드드드득!
거의 파도에 가까운 흙가시 무더기가 기습자를 덮어 버렸다.
하나 시문의 미간은 펴지지 않았다.
그럴 수밖에.
“니드호그 님의 용력이 왜 갑자기 사라졌나 했더니…….”
자욱한 흙먼지.
그걸 가르고 나타난 흑발의 여성은 작은 생채기 하나 없이 멀쩡했으니까.
그녀는 시문을 보곤 짙은 미소를 지었다.
“이거, 재밌는 일이 벌어지고 있었군.”
* * *
[특별 상황으로 방송으로 나가는 모든 대화는 음소거됩니다.]
갑작스럽게 방송 화면으로 떠오르는 메시지.
그로 인해 흑발의 여성이 말이 들리지 않자.
-뭐야. 또 뭔데!
-나만 말이 안 들림?
-ㄴㄴ. 나도 안 들림.
-이 방. 정전 자주 일어나네 ㅋㅋㅋ.
-으아아!! 새 누님의 등장인데 왜 목소리가 안 들리는 거냐고!
시문의 채팅창은 순식간에 불타올랐다.
하나.
-저번에도 있었던 일이랍니다, 유입분들.
-자자. 효과음은 전부 들리니까 집중해 주세요.
-효과음이래 ㅋㅋㅋ. 맞긴 해.
-이렇게 골라서 검열하는 거 보면, 진짜 어떤 기술을 가지고 있는지 궁금하다니까.
이전 방송에서.
이러한 사태를 한번 경험해 본 시청자들이 불이 난 채팅을 진압했다.
물론 채팅창의 이러한 사정을 모르는 시문은.
‘참, 난 곱게 넘어가는 경우가 없다니까.’
헛웃음을 지으며 앞에 있는 흑발의 여성을 바라볼 뿐이었다.
“어찌 인간이 이곳에 있는 거지? 그 전에, 어떻게 그 미천한 몸으로 여기까지 도달한 것이냐.”
오만함.
용족 특유의 그것을 한가득 담은 여성이 한껏 턱을 치켜들며 묻는다.
이내.
“잠깐. 너, 그 눈은!”
파충류 특유의 기다란 동공이 더 샐쭉해지는 여성.
그녀는 당황스러운 얼굴로 시문을 바라봤다.
정확히는.
“어, 어떻게 인간이 왕의 눈을!”
사안이 활성화된 시문의 왼쪽 눈이었다.
그리고 시문은.
천마신공(天魔神功).
격(擊) 패황쇄(覇皇碎).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콰가가각!
여성의 쥐고 있던 거대한 창과 패황쇄를 실은 시문의 다리가 마찰한다.
일종의 힘겨루기가 이루어졌지만 잠시일 뿐.
“큭!”
차마 패황쇄를 다 받아 낼 수 없었는지.
여성은 두 발로 긴 고랑을 남기며 뒤로 쭉 밀려났다.
“너! 보통 놈이 아니구나!”
“너야말로 제법인데?”
서로가 서로에게 놀라는 두 사람.
당연했다.
‘내 패황쇄를 저렇게 멀쩡히 막아 낸다고?’
성좌의 무공인 천마신공의 초식을 별다른 피해 없이 받아 낼 수 있는 이는 많지 않았다.
특히나 골드의 스펙을 한참 상회하는 시문의 패황쇄는 골드의 공격력을 아득히 넘는 수준.
한데 눈앞의 여성은 그런 초식을 창 하나로 막아 냈다.
물론 꽤 멀리 밀려나긴 했으나.
생채기 하나 없는 시점에서 이미 이견이 없는 상황.
밀려난 여성은 살기를 담은 눈으로 시문을 쏘아보았다.
“인간. 감히 내 물음에 대답하지 않겠다는 거냐?”
“굳이 해 줄 이유는 없잖아.”
“하! 하등한 종족 주제에 기가 차는군.”
코웃음을 치는 여성.
이내.
“인간 따위의 대답을 기다렸던…….”
우드득.
그녀의 몸이 뒤틀렸다.
몸만이 아니다.
[내가 어리석었다!]
인간의 그것과는 한참 거리가 먼 목소리.
동시에.
우득, 까드득.
2m에 가까웠던 그녀의 몸은 어느새 4m, 5m를 넘어 계속해서 커져 가고 있었다.
특히나.
‘다리가 4개야?’
늘씬했던 두 다리는 어느새 반씩 갈라지더니 앞과 뒤로 나뉘었다.
이내.
[사지를 토막 내주마!]
흡사 켄타우로스처럼.
4개의 다리를 지닌 하반신과 2개의 팔을 지닌 상반신의 거구가 된 여성.
그녀의 말랑했던 피부 위론 어느새 시커먼 비늘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히든 보스 ‘장군 드라니스’가 등장합니다.]
갑작스러운 히든 보스의 알림.
그러나 시문은 당황하지 않고, 거대해진 용족을 바라봤다.
“진화종 용족이었군.”
[호오. 인간이 진화종을 알고 있나?]
날 때부터의 등급으로 계급이 정해지는 용족.
그 철저한 위계질서 속에서도 당연히 예외가 있었고.
그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진화종이었다.
태생의 계급이 무엇이든 간에.
진화종은 제 능력만으로 계급을 뛰어넘을 수 있었고.
당연히 대다수의 진화종이 최소 상급 용족 이상의 힘을 발휘했다.
“모습을 보아하니 드발리의 진화종이겠군.”
드발리.
뛰어난 육체와 기동성을 지닌 사족 보행의 중급 용족.
단번에 자신의 정체를 알아차리는 말에, 날카롭게 째진 장군 드라니스의 눈이 번들거렸다.
[이거 점점 더 그 조막만 한 머릿속이 궁금해지는구나. 더더욱…….]
그리고 번들거리는 눈빛은 살기로 돌변했다.
[네놈을 해체해봐야겠어!!]
거대한 체구랑 맞지 않게.
엄청난 속도로 돌진해 오는 드라니스.
과연 용족의 기마병이라 불리는 드발리의 진화종다운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 저돌적인 돌진 앞에서도.
‘진화종일 줄은 생각도 못 했지만…….’
시문은 태연했다.
이미 최상급 용족 나가도 잡아 본 상태 아니던가?
하물며 그때보다 더 강해진 지금에서야.
‘딱히 어려울 것도 없지.’
키이잉.
시문은 사안에 용력을 부여하며, 곧장 아스트라페를 연성했다.
아니, 연성하려고 했다.
츠츠츠측!
[끼아아악!]
잿빛의 강렬한 스파크가 드라니스를 구속하기 전까진 말이다.
원인의 파악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성좌 오딘이 ‘지금 장난해? 어?’ 불만을 표합니다.]
[성좌 검은 염소가 ‘개X끼들아! 이대로 진행만 해 봐라. 진짜 엿되는 게 뭔지 제대로 보여 줄 테니까!’ 성을 토합니다.]
[성좌 제우스와 천마가 몹시도 불쾌한 얼굴로 동의합니다.]
시문을 주시 중인 4명의 상위 서열 성좌들.
그들 모두가 짙은 불쾌감을 표하고 있는 것이다.
이를 증명하듯.
치칙!
[이, 이게 무슨 짓이냐! 어째서 아레나가 플레이어를 제재하는 거야!]
잿빛의 스파크에 구속된 드라니스 역시 거칠게 소리쳤다.
이에 시문의 눈이 조금 커졌다.
‘플레이어? 방금 플레이어라고 한 거야??’
그녀가 진화종 용족이라는 것보다 더 충격적인 사실.
그러나 놀람이 오래가지는 않았다.
‘하긴, 마르넬도 플레이어니까.’
자신이 구해 줬던 드워프 소녀 마르넬.
그녀 역시 갤럭시 아레나의 참가자가 아니던가?
애당초 전생의 지구도 그랬었다.
정식 아레나가 시작되고 이종족이 등장하기 전까진.
오로지 지구의 인류만이 갤럭시 아레나에 참가할 수 있다고 생각했었으니까.
그러나 정규 아레나를 시작으로 여러 이종족들이 등장하고.
인류는 이제야 걸음마를 뗀 상태라는 걸 알았을 때, 그 충격은 엄청났었다.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
‘성좌들의 불만이 뭔지 대충 감이 잡히는군.’
시문은 현 사태를 빠르게 파악했다.
‘이미 정규 아레나에 들어선 종족, 그것도 상위의 종족이 난입했으니 항의하는 거야.’
거기에다 드라니스의 랭크 등급도 골드는 아니겠지.
아니나 다를까.
[성좌 제우스가 ‘플래티넘의 플레이어가 이리 직접 간섭하는 건 용납할 수 없다.’ 낮게 으르렁거립니다.]
[성좌 천마가 ‘더불어 저 용족은 정식적인 루트로 참가한 것도 아니지 않은가? 부디 현명한 대처를 바라겠네.’ 살기 어린 미소를 짓습니다.]
성좌들이 드라니스가 플래티넘임을 짚으며, 본격적으로 따지기 시작했다.
사실 성좌들이 나서지 않아도 드라니스는 충분히 처리할 수 있었지만.
‘이거 일이 재밌게 돌아가는데?’
입꼬리를 슬쩍 끌어 올린 시문은 조용히 한 걸음 물러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