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5화
65화. 치료제 (3)
창밖의 풍경이 빠르게 스쳐 지나간다.
제법 속도를 내고 있는 상황임에도.
‘승차감 죽이네.’
비싼 차라서일까?
차 내부엔 어떤 덜컹거림이나 소음도 들려오지 않았다.
시문은 운전 중인 박진욱의 옆, 조수석에 앉아 있는 김시혁을 힐끔했다.
‘녀석, 평소에는 그렇게 죽일 듯 싸워 대더니.’
치료제를 제작해 유정이와 병원을 향하려 하자.
‘가는 김에 나도 같이 가. 최근에 이모님 병문안도 자주 못 들렀거든.’
하며 함께 따라나서던 동생 녀석을 보니, 미소가 절로 흘러나왔다.
‘하긴, 이모님이 우릴 좀 잘 돌봐 주신 게 아니지.’
기이하게도 시문과 시혁 둘 다 어머니를 일찍 여의었다.
그나마 시문에겐 아버지와의 짧은 기억이라도 있었으나, 시혁이 녀석에겐 그마저도 거의 없지.
그런 자신들에게 이모님은 곧 어머니나 마찬가지였다.
그런 분이 회복하는 광경을 놓치고 싶을 리가 없었다.
‘그러고 보니 치료제 만든다고 보상도 정리 못 했네.’
시문은 곧바로 상태창을 열었다.
[상태창]
칭호 : 연금술의 선구자 (외 3)
계통 : 마법계
레벨 : 52
소속 : 대한민국
힘 : 11 (+4)
민첩 : 11 (+4)
체력 : 17 (+4)
연성력 : 64 (+4)
-마기 : 34
-용력 : 34
잔여 스탯 : 10
보유 특성 – 현자의 돌 (D), 성흔, 오딘의 눈
업적 포인트 – 7,000
지난 데뷔전의 우승으로 10레벨을.
그리고 현자의 돌이 7레벨을 업했으니, 총 17레벨업이라는 폭업을 했다.
‘아마 3명이서 나눠야 할 경험치를 혼자 독식해서겠지.’
시문은 별다른 감흥없이 어깨를 으쓱했다.
누가 들으면 미친놈이라고 할 테지만.
이젠 이 정도로 레벨업을 해 주지 않으면 섭섭한 수준이었다.
이전부터 이런 폭발적인 레벨업에 익숙해졌으니까.
‘이젠 폭렙업이 아니면 안 되는 몸이 되어 버린 건가.’
피식 웃은 시문은 잔여 스탯 10을 전부 연성력에 올인했다.
이로써 총 연성력은 74에 귀속 스탯인 마기와 용력은 각각 39가 되었다.
‘스탯은 이대로만 둬도 플래티넘 승급까지 걱정이 없겠는데?’
말 그대로 괴랄한 스탯.
물론 플래티넘으로 승급하는 주력 스탯이 100대라고 가정해 보면 약간 부족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74인 연성력만을 따졌을 때다.
귀속 스탯인 마기와 용력이 각각 39인 걸 따져 보면, 연성력 스탯 하나만으로 내는 효율은 무려 152레벨치.
이를 단순 잔여 스탯으로 치환하면 152레벨이 되어야 달성할 수 있는 스탯이었다.
‘여기다 앞으로 만들 영약까지 더하면…….’
출발하기 전, 유정이에게 받은 다수의 재료들.
치료제에 들어간 것들을 제외하고도 귀한 것들을 꽤나 받았으니.
그걸 전부 영약으로 섭취한다면 힘민체 역시 상당량 상승하리라.
시문은 차 안의 세 사람들을 힐끔했다.
‘이모님께 치료제를 드리고 나면, 슬슬 시혁이랑 유정이 영약도 만들어 줘야겠어.’
이왕이면 박진욱의 것도 챙겨 주는 게 좋겠지.
거금 앞에서도 신뢰를 택한 그는 앞으로도 고생해 줄 귀한 사업 파트너니까.
상태창을 닫은 시문은 곧장 인벤토리를 열었다.
이번 데뷔전의 메인 디시는 레벨업이 아닌, 보상이거든.
스륵.
“어라? 오라버니도 그걸 받으셨네요.”
곧 어머니를 치료할 수 있다는 사실 때문일까.
조금 들뜬 얼굴로 창밖을 보던 이유정은 쾌활한 목소리로 시문의 손에 들린 작은 상자를 바라봤다.
그녀뿐만 아니었다.
“역시, 이번 보상은 특별 랜덤 박스구나?”
“데뷔전 보상은 거의 저걸로 고정 아니냐? 제길. 나도 너랑 같은 기수였으면, 꼽사리 껴서 랜덤 박스 한번 까 보는 건데!”
“그러게 누가 먼저 데뷔하래요? 설령 같은 기수가 돼도, 누구 마음대로 파티에 들어와요?”
“야. 나 정도면 데뷔전에서 1.5인분은 해, 인마!”
“팩트. 근데도 1등은 못 했다.”
“이 새끼가?”
김시혁과 박진욱 역시 관심을 표하고 있었다.
박진욱의 경우엔 운전 때문에 백미러로 보고 있었다.
물론 그 모습이 불안하지는 않았다.
다이아급 암살계에게 백미러를 보며 운전하는 것쯤은 별문제가 되지 않으니까.
“오라버니, 어서 열어 보세요. 특별 랜덤 박스는 보통 개봉자에게 필요한 아이템을 주거든요.”
“맞아. 난 그때 얻은 검을 아직도 쓰고 있어. 이젠 보조무기로 밀려나긴 했지만.”
“저도예요. 그때 얻은 메이스는 아직도 잘 쓰고 있답니다.”
“너한테 어울리긴 하네. 헐크녀에게 메이스. 찰떡이잖아?”
“……그 재수 없는 얼굴도 찰떡으로 만들어 줄 수 있고 말이지.”
눈 마주친 지 얼마나 됐다고.
순식간에 불이 붙는 두 동생에 고개를 저으며, 시문은 얼른 특별 랜덤 박스를 오픈했다.
그래야 저 사고뭉치들이 일으킬 재난을 막을 수 있을 테니까.
따르르르륵.
이런 효과음은 대체 어디서 가져온 것일까?
도박 머신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소리가 들려오며, 뚜껑이 열린 박스는 잘게 진동했다.
신기한 것은 박스 안에는 오로지 어둠만이 가득하다는 것이다.
그래.
꼭 아레나 대기실이나 인벤토리의 무한 공간을 보듯 말이다.
‘아마 보상이 정해지지 않아서겠지.’
그런 시문의 눈앞으로.
[특별 랜덤 박스를 오픈하셨습니다.]
[지급될 아이템 탐색 중…….]
일련의 메시지창이 떠올랐다.
이미 전생의 경험으로 특별 랜덤 박스를 잘 알고 있는 시문은 눈을 반짝였다.
‘야수왕 최진수는 여기서 대드루이드의 목걸이를 얻었었지?’
S급 아이템 대드루이드의 목걸이.
야수 변신 관련 능력을 확 올려 주는 아이템으로 SS급 특성인 야수화와 무척이나 잘 어울리는 아이템이었다.
특히나 무기의 영향을 받기 힘든 최진수에겐 높은 가치를 지니는 아이템이었고.
하이랭커가 되고서까지 쭉 착용하는 최진수의 최애 아이템이 되었다.
그래서 기대가 되는 것이다.
‘지금의 나에게 맞는 아이템이 뭘까?’
신화급 무구를 연성하는 능력을 지닌 시문이다.
어느 무구든 성좌의 무구에 비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보상에선 무구를 제외한 아이템이 나올 가능성이 높았다.
‘어지간하면 장신구 쪽으로 줬으면 좋겠는데 말이지.’
대드루이드의 목걸이와 같은 장신구류 아이템.
이미 연금술에 영향을 주는 현자의 돌과 칭호 [연금술의 선구자]가 있기는 하나.
오히려 그랬기에 더욱 나와 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시중에 나오는 어중간한 옵션들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으니까 말이다.
이내.
[현재 플레이어 김시문에게 적절한 아이템을 찾을 수 없습니다.]
[탐색 범위를 확대합니다.]
다시 한번 탐색에 들어가는 시스템에 시문은 고개를 갸웃했다.
‘뭐지?’
아이템을 찾을 수 없다니.
이 무슨 개소리란 말인가?
‘나한테 줄 아이템이 없다고?’
보상으로 그렇게 기상천외한 아이템들을 뿌리는 것이 갤럭시 아레나이거늘.
고작 골드 랭크의 연금술사에게 줄 아이템이 없단 말인가?
‘하긴, 당연한가? 특별 랜덤 박스는 현 개봉자에게 필요한 걸 주는 방식이니까.’
일종의 알고리즘이랄까.
현 개봉자에게 알맞은 걸 알아서 찾아 줘야 하는데.
지금의 시문은 본인 스스로가 생각해도 어떤 아이템이 필요한지 크게 감이 잡히지 않는 상태다.
이는 뒤집어 말해.
당장 본인에게 필요한 아이템이 없다는 말이 되기도 하지.
‘으으, 이러다가 괜히 이상한 걸 던져 주면 곤란한데.’
찾다 찾다 안 되면 아무거나 옛다! 하고 대충 던져 줄 가능성도 없지는 않았다.
당장 자신의 상태는 ‘크게 필요한 장비는 없음’이니까.
그때.
-오빠, 저번처럼 요구를 해 봐.
‘요구?’
현자의 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응. 특수 아레나 처음 했을 때도 저것들이 보상을 하도 헤매니까 오빠가 요구했었잖아.
‘아.’
시문은 작게 탄식했다.
첫 특수 아레나였던 열띤 광산의 악몽.
그때 드워프 소녀 마르넬을 살려 냄으로써, 기존에 없던 클리어를 해 버렸었지.
덕분에 갤럭시 아레나는 크게 당황해, 지급할 보상의 갈피를 잡지 못했었다.
‘그땐 미스릴 바를 요구했었지.’
미스릴은 지금 이 차를 타고 있는 국내 최상위 플레이어들도 쉽게 얻기 힘든 아이템이었다.
S라는 등급에 비해, 드롭률이 지독하게 낮은 것이다.
시문은 가슴의 현자의 돌을 슬쩍 내려다봤다.
‘나쁘진 않은 생각이긴 한데, 굳이 요구할 만한 게 없는데.’
그렇다고 SSS급과 같은 초고등급의 아이템을 요구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골드 데뷔전이 그만한 수준의 아레나는 아니니까.
띠라서 적당한 등급이 되면서도 좋은 아이템을 요구해야 하는데.
역대 골드 데뷔전의 보상들을 살펴보면, A급부터 간혹 SS급까지 등급이 무척이나 다양했다.
따라서 ‘적당한 등급’이라는 게 어떤 수준인지 쉬이 감을 잡을 수 없는 것이다.
더군다나.
‘괜히 잘못 요구해서 원래 받을 아이템보다 낮은 걸 받으면 어쩌냐.’
그만큼 배가 아픈 상황도 없을 터.
하나.
-그건 걱정 마. 내가 생각해 둔 게 있거든.
현자의 돌은 자신 있는 목소리로 답했다.
‘생각해 둔 거?’
-응. 이건 내가 이런 꼴이 되기…… 저어언! 예! 전! 부터 알고 있던 물건이 있었거든!
급격히 말이 꺾이는 현자의 돌.
하나 요 녀석의 기상천외한 면은 하루 이틀이 아니었기에.
‘그게 뭔데?’
시문은 대수롭지 않게 넘기며 물었다.
-그건 말이지…….
현자의 돌의 말을 유심히 듣던 시문은.
“그게 정말이야?!”
깜짝 놀라 저도 모르게 육성으로 말을 내뱉었다.
“오, 오라버니?”
“형?”
그에 주변에서 의문을 보내왔으나, 시문의 신경은 그들에게까지 닿지 못했다.
-그렇다니까! 일단 나 믿고 요구부터 해봐.
‘알았어.’
현자의 돌의 말에 곧장 허공의 시스템창을 바라보는 시문.
“갤럭시 아레나. 그쪽 상황이 대충 보이는데, 그냥 이쪽에서 요구하겠습니다.”
시문은 당당히 요구했고.
[확장 탐색을 잠시 멈춥니다.]
시스템은 곧장 화답했다.
반면.
‘저게 무슨 소리야?’
‘뭐, 뭘 요구해?’
주변 이들의 황당한 시선이 시문을 향한다.
“전 보상으로 사라진 옛 성좌, 파라켈수스의 물건을 요구합니다.”
그 말에 조용히 상황을 황당을 담았던 3인의 눈이 찢어질 듯 커진다.
이유는 다름 아니었다.
‘서, 성좌?’
‘성좌라고?’
‘사라진 성좌를 형이 어떻게 아는 거지?’
성좌.
그 단어가 주는 파급력 때문이었다.
“전 파라켈수스의 물건 중 ……을 원합니다.”
심지어 시문이 요구하는 도중 입 주변이 하얗게 물들며 잘려 나가는 말.
다이아와 랭커의 위치에 오른 3인은 이 현상을 무척이나 잘 알고 있었다.
‘검열까지 당했잖아?’
‘그럼 오라버니께서 정말로 갤럭시 아레나에게 요구를 하고 계신 거야?’
‘우리 VVIP께서 대단한 건 알았지만…….’
3인은 목울대를 꿀렁거리며 시문에게 집중했고.
[논의 중…….]
[논의가 끝났습니다.]
[플레이어 김시문의 요구를 받아들입니다.]
시문은 달가운 얼굴로 갤럭시 아레나의 메시지를 확인했다.
이어.
[요구대로 특별 랜덤 박스의 보상은 ‘파라켈수스의 플라스크’로 지급합니다.]
드르르륵.
떠오르는 메시지창과 함께 작게 진동하는 상자.
진동하던 상자가 약간 묵직해진다.
시선을 내리니, 어느새 무한 공간과 같던 어둠은 사라지고.
입구가 없는 동그란 플라스크가 자리하고 있었다.
“됐다!”
-줬구나? 역시 이 새끼들이 그럴 줄 알았지! 어차피 저건 지들이 못 쓰는 애물단지거덩!
그걸 본 시문과 현자의 돌은 기쁨에 환호를 했고.
‘갤럭시 아레나에게 보상을 요구한다!’
라는.
“…….”
“…….”
믿지 못할 광경을 본 다이아급 암살계와 2명의 랭커는 그저 입을 멍하니 벌렸다.
* * *
삑.
건조한 기계음이 들려온다.
심박수 측정기의 메마른 소리에 실린 병원 특유의 소독 향을 맡으며.
삑.
시문과 일행은 병실 안으로 들어섰다.
1세대 랭커이자 성삼의 회장 이순철의 딸이었던 이영희.
그 대단한 배경답게 병실은 상당히 호화스러웠다.
특히나.
‘마력 안정기에 치유 드론? 이게 이때도 있었어?’
앞으로 몇 년은 지나야 나타날 의료기기들.
갤럭시 아레나의 부산물로 제작된 미래의 의료기들을 본 시문의 눈은 휘둥그레졌다.
“엄마, 나 왔어.”
선두에 있던 이유정은 병실의 중앙.
온갖 의료기기들에 둘러싸인 채, 일정한 심박수음을 내는 병상으로 향했다.
“오늘은 시혁이랑 진욱 선배도 왔어. 그리고…… 시문 오라버니도.”
이유정은 밝게 웃으며, 죽은 듯 누워 있는 중년의 여성에게 말을 걸었다.
시문은 조용히 병상으로 다가갔다.
움푹 파인 볼에 깡마른 몸.
7년을 병자로 누워 지냈으니 당연한 모습일지라도.
과거 온화한 미소로 어린 자신을 챙겨 주던 모습과는 너무나 달랐다.
‘이모님…….’
보기만 해도 절로 가슴이 아려 온다.
비단 병약해진 모습만이 아니었다.
‘얼마나 힘드실까.’
의식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마력불능으로 고생했던 전생의 자신과 겹쳐, 더욱이나 마음이 아팠다.
“오라버니, 뭔가 문제라도 있나요?”
표정이 어두워서일까.
곁에 있던 이유정이 조심스레 물어 온다.
그에 시문은 가볍게 웃어 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
“아니야. 이제 치료제를…….”
저으려고 했다.
‘음?’
묘한 이끌림이 느껴지기 전까지 말이다.
시문은 홀린 듯.
키이잉.
자연스럽게 오딘의 눈을 활성화했고.
“이, 이건?!”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럴 수밖에.
오딘의 눈에 비친 이모님의 몸에선.
‘요, 용력이 왜 여기에!’
있어선 안 될 것이 보였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