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3화
63화. 치료제 (1)
대륙성.
중국 최고의 길드이자, 세계적으로도 손가락에 꼽히는 거대 길드.
그런 대륙성의 거대한 길드 하우스 상층.
항상 몇 자리씩 비어 있던 간부들의 자리가 오늘만큼은 꽉 차 있었다.
“이렇게 모인 이유는 다들 알 거라 생각합니다.”
앞쪽 단상에 자리한 후덕한 중년인이 가볍게 손을 저었다.
파앗.
중년인의 뒤편으로 거대한 스크린이 켜진다.
그곳엔 국기별로 사진과 인적 사항이 적힌 내용이 가득했다.
“오늘 오전부로 전 세계의 골드 랭크 데뷔전이 끝났지요. 혹시 미국을 제외한 타국의 데뷔전을 챙겨 보신 분이 있으실지?”
앞이 보이기는 하는 건지.
살에 파묻힌 실눈으로 좌중을 슥 훑는 중년인.
그러나 앉아 있는 간부들 중 누구도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역시 없군요.”
당연했다.
현 대륙성의 상대는 미국 말고는 없었으니까.
자연스레 대륙성의 관심은 미국을 제외하곤 어디에도 없었다.
라는 것이.
대륙성의 대외적인 입장이었으나.
속사정은 조금 달랐다.
“부길드 마스터께서 이리 말이 긴 걸 보니, 또 그 나라인가 보군요.”
가장 앞줄에 앉아 있던 간부가 건들거리며 말한다.
대륙성의 부길드 마스터가 어떤 위치인지를 안다면 감히 보여선 안 될 행동이었지만.
“과연 랭커라 그런지 소형제께선 눈치가 빠르군요. 하긴, 무력만으론 오를 수 없는 위치니까요.”
자신에 비하면 새파랗게 젊은 이임에도.
부길드 마스터는 후덕한 미소를 지으며 답할 뿐이었다.
“소형제의 말이 맞습니다. 이번 골드 랭크 데뷔전에서 두각을 보인 신인은 총 넷. 그중 우리가 관심을 보여야 할 이는 1명, 한국의 플레이어입니다.”
부길드 마스터의 두툼한 손이 가볍게 흔들린다.
그러자 뒤편의 모니터가 바뀌며 [한국 골드 랭크 데뷔전 우승자]라는 문구 아래로 한 미청년의 사진이 나타났다.
“이름은 김시문. 계통은 마법계에 아레나를 시작한 지는 불과 한 달 차더군요.”
“……뭐라고요?”
부길마의 말에 건들거리던 랭커의 표정이 굳는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허허. 여러분의 마음은 저도 아주 잘 이해합니다. 아레나를 시작한 지 갓 한 달밖에 안 된 이가 데뷔전이라뇨?”
“뭔가 정보가 잘못된 거 아닙니까?”
“최근 정보부의 정보들이 틀린 게 꽤 많았죠.”
이어지는 부길마의 말에 곁에 있는 다른 랭커들부터 간부들까지 일제히 목소리를 내었다.
골드에 입성하는 것 자체는 가능했다.
타고난 스탯이나 특성, 또는 컨트롤이나 전투 센스 역시 남다르다면 어렵지야 않다.
하나 데뷔전은 이야기가 달랐다.
잘나고 잘난 이들 중에서도 최정상들만 참가가 가능한 아레나.
그것도 갤럭시 아레나에서 직접 뽑아내기에, 뇌물이나 인맥조차 통하지 않는 아레나 아닌가?
“그러나 여러분, 반대로 생각해 보시지요. 한 달 만에 골드를 가는 실력이니, 데뷔전에 참가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
부길마의 말에 좌중이 침묵한다.
데뷔전 참가자를 분별하는 갤럭시 아레나의 기준이 MMR임을 이곳의 간부들이 모르지 않았다.
이들 모두 최소 다이아 랭크대의 플레이어고.
한때 데뷔전을 치른 이들이었으니까.
그런 간부들을 후덕한 미소로 보던 부길마는 말을 이었다.
“이 상황을 보면 누군가 떠오르지 않습니까?”
그 말에 좌중의 분위기는 더욱 가라앉는다.
대륙성의 역대급 플레이어이자 차기 길드 마스터 후보인 창왕 종리추.
무패의 신화를 이룩한 그에게 유일한 패배를 안겼던 인물을 떠올리면 당연한 반응이었다.
그 분위기를 즐기듯.
부길마는 싱글거리며 입을 열었다.
“다들 같은 생각이군요. 맞습니다. 검성 김시혁. 얼마 전 검성이라는 칭호까지 얻은 그의 행보와 매우 비슷하지요.”
“거 말씀엔 동의가 힘듭니다, 부길마님.”
그에 아까 건들거리던 젊은 랭커가 불만스럽게 답했다.
“검성이 대단하다는 건 인정합니다. 그 작은 나라에서 어찌 그만한 인물이 튀어나왔을지 모를 정도죠. 하지만 그자는 골드 데뷔전 당시 2인 파티로 참가했었습니다.”
젊은 랭커의 말에 곁에 있던 랭커들과 간부들 역시 일제히 고개를 끄덕였다.
전 세계 데뷔전의 암묵적인 규칙인 3인 풀 파티.
김시혁은 그런 전 세계적인 규칙을 깨고, 2인 듀오 파티로 우승을 거머쥔 나름 역사적인 인물이었다.
“한데 듣도 보도 못한 놈이 아레나를 시작한 지 한 달 만에 데뷔전에 참가하게 되었다 하여 김시혁과 비교하시는 건…….”
“아아. 그 부분은 여기에 나와 있습니다.”
젊은 랭커의 말을 자른 부길마는 자연스럽게 뒤의 거대한 모니터를 가리켰다.
그곳엔 [팀원]이라는 문구가 공란으로 등재되어 있었다.
“……저기가 왜 비어 있는 거죠?”
“보시는 그대로입니다, 소형제. 김시문 플레이어는 파티를 이루지 않고 ‘홀로 참여’해 데뷔전을 우승했습니다.”
유난히 홀로 참가를 강조하는 부길마.
그에 젊은 랭커의 입이 떡 벌어진다.
주변의 간부들 역시 마찬가지다.
그도 그럴 것이.
“마, 말도 안 됩니다!”
“아무리 부길마님이셔도 농이 지나치십니다!”
최고의 플레이어들이 겨루는 데뷔전을 솔로로 이긴다는 것부터가 어불성설이었으니까.
개인 간의 격차야 어느 정도 있을 수 있겠지만.
결국 참가자 전원이 해당 기수에서 내로라하는 플레이어들 아닌가?
오히려 직업 간의 조합으로 약팀이 강팀이 될 수도, 강팀이 약팀이 될 수도 있는 것이 데뷔전이었다.
또한 여기 있는 대다수가 한때.
데뷔전을 치른 유망주들이라, 그걸 누구보다 잘 알았다.
그러나 부길마는 그저 후덕한 미소를 유지한 채, 침묵할 뿐이었고.
그것이 긍정의 반응이라는 사실을 모르지 않는 간부들은 그제야 심각한 표정이 되었다.
가장 앞자리에 앉은 젊은 랭커는 아까와 달리 진지한 얼굴로 물었다.
“부길마님. 그렇다면 이대로 두고 봐선 안 되지 않습니까? 길마께선 아무 말씀이 없으셨는지요?”
“길드 마스터님과는 이미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일단 두고 보시자더군요. 더 크면 회유하자는 쪽으로.”
“한데 왜 굳이…….”
길드 마스터와 이미 끝난 이야기를 간부 회의에서 또 늘어놓는단 말인가?
모두가 의문을 품었지만 찰나일 뿐.
“참 이해가 안 가지 않습니까? 이미 실버 때 회유는 불발로 끝났거늘. 미국의 거대 길드들도 움직인다는 마당에, 또 회유라니요?”
이어지는 부길마의 말에 젊은 랭커의 눈이 부릅떠졌다.
왜 길드 마스터와 끝낸 일을 이 자리에서 언급했는지 눈치챈 것이다.
“부길마께선 간부 투표를 원하시는 겁니까?”
부길마는 대답 대신 후덕한 미소로 고개를 끄덕였다.
본디 대륙성은 길드 마스터의 권한이 무척이나 강력했다.
강자존의 법칙으로 중화의 인민이라면 누구나 도전할 수 있는 자리이니만큼.
그만한 권력과 발언권이 주어지는 것이다.
하나 그런 권력엔 안전장치가 필요한 법.
길드 마스터의 무분별적인 독주를 막는 여러 장치가 마련되어 있었고.
간부 투표는 그중 하나였다.
“커흠! 아무리 그래도 갑자기 간부 투표라니요?”
“길드 마스터께서 그리 정하셨다면 다 뜻이 있을 터인데…….”
간부들 중 몇몇이 불편함을 토로한다.
어느 집단이나 보수적인 이들이 있었고, 저들 역시 그런 부류였다.
강자존이라는 대륙성의 기조가 무색하게.
변화와 도전에서 물러나 있는 머저리들.
부길마는 후덕하지만 날카로운 눈빛으로 그런 머저리들을 바라봤다.
“그럼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지요. 여러분께선 제2의 검성이 탄생하길 바라십니까?”
“그, 그건!”
“…….”
당황으로 물드는 보수파들.
특히나 이번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검성 김시혁이 압도적인 퍼포먼스로 1등에 오른 상황 아니던가?
그런 김시혁보다 대단한 활약을 보이는 김시문의 미래는 제대로 그려지지도 않았다.
“어찌 여러분의 반응이 꼭, 우리 대륙성이 그 작은 나라에 고개 숙이게 되길 바라시는 눈치라 말이지요.”
“어허! 부길마, 말씀이 지나치시오!”
“어찌 그런 말씀을!”
“창왕께서 건재하신데 소국이 뭘 어쩌겠습니까? 저희는 부길마의 지나친 우려를 짚는 겁니다.”
일종의 자동 반사처럼.
일제히 터져 나오는 반발.
그러나 부길마는 기다렸다는 듯.
“말씀하신 대로 창왕께선 이미 검성 김시혁과 쌍벽을 이루시는 중이지요. 하나 그다음은요?”
어느새 차가워진 얼굴로 말을 이었다.
“김시혁과 같은 이가 하나 더 탄생한다면? 어쩌면 그보다 더 강한 이가 된다면? 그때의 일을 고려하는 것이 자네들은 지나친 우려라 표하는 겐가!”
자연스레 흘러나오는 랭커급 기도와 반말.
하나 저것이 부길마의 본 모습임을 잘 아는 간부들은 그저 침묵할 뿐이었다.
부길마가 진심을 내비쳤다는 것 이전에.
검성 김시혁보다 강한 플레이어의 탄생이라는 부분이 모두의 폐부를 찌른 것이다.
그 숨 막히는 적막 속에서.
“……그럼 부길마께서 그리시는 그림은 어떤 겁니까?”
젊은 랭커가 운을 뗐다.
“우리 뛰어난 소형제라면 이미 다 눈치채셨으리라 생각하오만.”
추후를 더 두고 보자, 또는 회유하자.
그런 길드 마스터의 뜻에 정면으로 반대하고 간부 투표를 열었다.
이가 가리키는 답은 하나.
“암살하자는 겁니까?”
“역시 뛰어나오, 소형제.”
“하지만 부길마님, 암살은 위험성이 클뿐더러 한국은 최근에 일어난 각성자 테러로 경계 수준이 상당…….”
젊은 랭커의 말끝이 흐려진다.
내내 흔들리지 않았던 그의 눈동자가 처음으로 흔들렸고.
이는 다른 간부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제야 깨달은 것이다.
‘설마 한국에서 벌어졌던 테러가?!’
‘하지만 저번 간부 회의에서 아무 언급도 없으셨는데…….’
‘그럼 부길마의 독단이란 말인가?’
‘그럴 리가. 이는 창왕의 뜻일 겁니다.’
‘하긴. 부길마께선 창왕의 지지자시지.’
한국에서 일어난 각성자 테러 사건의 전말을 말이다.
부길마는 술렁거리는 간부들을 보며, 본래의 후덕한 미소를 되찾으며.
망설이는 이들에게 쐐기를 박았다.
“얼마 전, 비밀리에 이루어진 비무에서 창왕께서 승리하셨지요.”
창왕 종리추가 누구와 비무하였는지는 말하지 않았으나.
그 상대가 누군지.
앞으로 대륙성의 판도가 어떻게 바뀔지, 이 자리에 앉아 있는 이들이라면 모를 수 없었다.
‘드디어 길드 마스터가 바뀌는가?’
‘1세대 플레이어들은 이제 끝이로군.’
‘허어! 어찌 이런 일이…….’
간부들의 얼굴이 삽시간 달라져 간다.
대륙성의 주인이 바뀐다.
그 변화에 어떻게 발을 맞춰야 할지 저마다 머리를 굴리는 것이다.
‘고민이 많겠지. 제왕의 자리엔 감히 도전도 못 하는 버러지들이니.’
강하긴 하나 결국 만인지상의 자리에 도전하지 못하는 도태된 강자들.
현 대륙성의 간부엔 그런 이들도 꽤 많았다.
실제로 심각한 얼굴은 모두가 비랭커들이지 않은가?
그런 간부들을 흐뭇하게 바라보던 부길마는.
“모쪼록 대륙성을 위해 현명한 선택을 바랍니다.”
주변을 정리하며 투표 신호를 보냈다.
결과는 당연히.
“과연 대륙성의 미래는 밝군요! 길드를 향한 여러분의 충심은 내 창왕께 잘 말씀드리겠습니다.”
만장일치였다.
* * *
[아레나 ‘골드 랭크 데뷔전’을 역대급 결과로 클리어하셨습니다.]
[활약에 따라 클리어 보상이 증가합니다.]
[귀속된 특성 ‘현자의 돌’이 일정량의 경험치를 분배받습니다.]
[레벨이 10 올랐습니다.]
[현자의 돌 레벨이 7 상승했습니다.]
[클리어 보상으로 ‘특별 랜덤 박스’를 획득합니다.]
주르륵 시문의 눈앞으로 올라오는 메시지창.
이어.
[떠오른 군도의 히든 피스를 찾아내셨습니다.]
[보상으로 업적 포인트 1,000점을 획득합니다.]
[히든 업적 ‘가라앉은 인어의 섬’을 달성하셨습니다.]
[업적 포인트 1,000점을 획득합니다.]
마지막 섬과 관련된 보상까지 받고 나서야, 메시지창은 범람을 멈췄다.
“후. 많이도 얻었네.”
데뷔전이 끝나고 우수수 쏟아지던 후원들.
데뷔전답게 고랭크 플레이어들이 많이 와서인지, 후원금의 액수가 이전과 수준이 달랐고.
저번부터 러브콜을 보냈던 길드들의 스카우트도 더욱 대담해졌다.
덕분에 이번 데뷔전 방송만으로 벌어들인 AP만 현금으로 억대를 가볍게 넘겼다.
‘물론 제일 중요한 건 보상이지만.’
데뷔전 1등에 주어지는 보상.
전생에는 야수왕 최진수가 얻었던 보상으로, 그가 하이랭커가 되어서도 쭉 쓰인 효자 중의 효자 보상이었다.
당연했다.
“무려 특별 랜덤 박스니까!”
시문은 메시지들을 정리하며, 즐거운 마음으로 지급된 특별 랜덤 박스를 확인하려 했다.
그때.
딩~.
인터폰이 울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시문은 입맛을 다시며 인벤토리를 닫고 인터폰으로 향했다.
인터폰 화면 속엔.
[시문 님, 저 왔습니다.]
[형! 나도 왔어! 데뷔전 미쳤던데?]
[오라버니, 1등 축하드려요!]
밤사냥꾼 박진욱을 포함해 두 동생이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