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8화
58화. 데뷔전 (2)
[한국의 골드 랭크 데뷔전이 시작되었습니다.]
[참가자 소환 중.]
국내의 온갖 유망주들이 참전하는 골드 데뷔전.
앞으로 갤럭시 아레나를 이끌 인재들이 자신을 선보이는 자리이기도 했다.
덕분에.
-드디어 골드 랭크 데뷔전이 시작되는군요!
-맞습니다! 드디어 이날이 왔어요!
데뷔전은 대한민국에서 최고 시청률을 자랑하는 국가대표 아레나.
통칭 ‘국아’의 메인 코너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이번 데뷔전에도 꽤 많은 유망주들이 있다죠?
-그렇습니다. 저번 골드 랭크 데뷔전보다 많은 플레이어들이 포진되어 있습니다.
-아. 방금 참가 인원수가 들어왔는데요. 우리 송 해설님 말씀대로, 참가 인원은 총 110명. 평균을 넘은 인원수입니다!
한국의 유명 MC이자 국아의 메인 MC로 자리 잡은 최강엽.
과연 그 자리를 독차지할 만큼.
최강엽은 강약을 조절해 가며 매끄러운 어조로 시청자들의 관심을 사로잡았다.
-그럼 이번 데뷔전의 참가자들을 안 살펴볼 수 없는데요, 송 해설님?
-이거 말씀드리기가 조심스럽습니다만…… 다들 4년 전의 골드 데뷔전을 기억하시겠죠?
-기억하다마다요! 대한민국에서 역대 최대의 랭커들을 배출해 낸 데뷔전 아닙니까?
-맞습니다. 참가자만 200명이 넘은, 소위 별의 세대라고 불렸지요.
별의 세대.
평균 100명대를 오가는 대한민국의 골드 랭크 데뷔전에서 무려 200명을 넘긴 세대.
애당초 데뷔전이라는 게 최상위권만 참가할 수 있는 아레나임을 고려해 보면.
가장 뛰어난 플레이어가 많았던 세대임을 알 수 있었다.
-이거 우리 송 해설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고 싶으신지 감이 잡히는데요?
-역시 최MC! 눈치 빠른 분은 못 속이겠군요. 맞습니다. 별의 세대만큼이나, 이번 골드 랭크 데뷔전의 참가자들의 수준이 높다고 감히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허어! 우리 송 해설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실 정도면 다들 아주 핫한 모양이군요.
최강엽이 강한 리액션을 취하자, 송 해설은 곧장 자료 화면을 띄웠다.
화면엔 각 길드의 로고들이 순서에 따라 나누어져 있었다.
-보시면 아시겠지만, 현 골드 데뷔전을 치르는 길드 중 가장 저력이 강력한 곳은 두 곳입니다.
송 해설은 로고들 중 가장 위쪽에 위치한 두 길드를 짚었다.
하나는 전갈의 형태이고, 다른 하나는 방패 뒤로 검 2개가 꽂힌 형태였다.
-바로 전갈 길드와 신화 길드죠.
-오오! 저도 들은 적 있습니다. 전갈 길드에는 마법계의 떠오르는 샛별인 유아연, 유아준 플레이어가. 신화 길드는 최진수를 필두로 장지수, 차현우 플레이어가 있다죠?
-맞습니다. 언급하신 선수들 모두 유망주들 중 최고로 평가받고 있는데요. 다만,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그게 뭐죠? 송 해설님?
미소는 짓고 있지만, 최강엽은 당황스러운 눈빛으로 되물었다.
그 얼굴이 꼭.
‘송재경, 너 뭐 하는 짓이야? 왜 대본에도 없는 소릴 해?’
라는 표정이었다.
-마법계의 떠오르는 샛별로 유아연, 유아준 플레이어를 언급하셨는데…… 사실 떠오르는 샛별은 따로 있거든요.
하나 안타깝게도.
방송 경력이 아닌 플레이어 경력으로 해설이 된 송재경은 말주변은 있을지언정.
눈치는 그리 좋지 않았다.
정확히는 모른다고 봐야겠지.
플레이어 출신인 그로선.
제작이나 출연진 등 방송에 영향력을 끼치는 거대 길드들과의 복잡한 관계를 알 리가 없을 테니까.
-왜 이 선수가 자료 화면에 없는지 다소 의문입니다만, 요즘 마법계 출신의 유망주로 다들 눈여겨보는 선수는 따로 있습니다.
-그, 그렇군요. 아마 최근에 등장한 플레이어다 보니 자료가 없는 거 아닐까요?
-아! 그럴 수 있겠네요. 그는 어디에 속하지도 않은 솔랭 전사니까요. 바로 김시문이라는 플레이어입니다.
기어코 이름까지 언급해 버리는 송재경.
속으로 깊은 한숨을 내쉰 최강엽은 프로답게.
-아아! 저도 누군지 압니다. 최근에 심해 방송으로 화제가 된 분이시죠?
-맞습니다. 그가 보여 준 무력은 정말 경이로웠지요.
빠르게 표정을 관리하며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대체 무슨 특성을 지니고 있는지는 몰라도, 손가락을 튕길 때마다 펼쳐지는 이능이 아주 기가 막히거든요. 거기에다 전투는 또 좀 잘합니까?
-동감합니다. 그가 마법계이길 먼저 밝히기 전까진 다들 전투계인 줄 알았다죠?
-맞습니다. 플래티넘인 저 역시도 그가 격투계 쪽인 줄 알았거든요.
그리 신이 나는 걸까.
옆에서 썩어 가는 최강엽의 속도 모르고.
송재경 해설은 눈을 반짝이며 언성을 높였다.
-그런데 마법계라니? 거기에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1등을 놓치지 않았죠. 실제로 저번 승급전을 기점으로 수많은 길드들의 러브콜까지 받았습니다!
-그렇군요. 그럼 이번 관전 포인트에는 언급하신 김시문 플레이어도 들어가겠네요.
-당연합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기대되는 플레이어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간의 행보도 그렇고. 길드도 없으니, 아마 단독으로 참가할 거 같거든요.
-오오! 1인 참가자라? 그 부분은 확실히 기대가 됩니다. 하지만 자료가 준비되지 않은 관계로, 우선 자료가 준비된 길드의 유망주들부터 보시겠…….
자연스럽게 송 해설의 말에 호응하며 주제를 돌려 버리는 최강엽.
그리고 그런 국아를 보던 한 남성은.
“X발, 어이가 없네.”
욕설과 함께 인상을 찌푸렸다.
“넌 왜 벌써부터 짜증이니? 아레나는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그런 남성의 뒤로 다소 높은 톤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성별만 다를 뿐.
남성과 똑 닮은 얼굴의 여성이 시큰둥하게 말을 뱉은 것이다.
“누나, 방금 국아 못 봤어? 우리 말고 마법계에 떠오르는 유망주가 따로 있다잖아!”
“이번 데뷔전 해설은 송재경 아냐? 1세대면서 플래티넘에서 허우적대다 은퇴한 인간 말을 왜 들어?”
“나야 안 듣지! 저걸 보는 멍청한 시청자들이 문제지!”
“아준아~ 아준아. 넌 여론을 그렇게 모르니?”
한숨을 푹 내쉰 여성.
유아연은 동생 유아준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대중은 눈에 보이는 거밖에 몰라. 그게 신경 쓰이면 네가 보여 주면 되는 거고.”
“나도 알거든? 그냥 저런 말에 괜히 길드에서 말이 나올까 봐 하는 소리지.”
“푸훕! 야, 이번에 골드 이하 유망주들 길드에서 대대적으로 싹 치워 버린 거 모르냐? 우리만 유망주로 남겨 둔 이유를 모르겠냐고.”
“알아. 그리고 우리 전갈 길드의 유망주를 싹 갈아 치운 새끼가, 이번에 참가한다는 것도 알지.”
불만스러운 얼굴로 툭 말을 내뱉는 유아준.
그에 유아연의 입꼬리가 비죽 올라갔다.
“아아~ 이제 알겠다. 우리 동생, 쫄았구나?”
“쪼, 쫄긴 누가! 개소리하지 마!”
“어이구, 그러셔?”
평소 같았으면 좀 더 놀려 먹겠지만.
점점 눈꼬리가 사나워지는 남동생에 유아연은 마음을 고쳐먹었다.
‘데뷔전이 코앞인데 괜히 컨디션 조지면 곤란하지.’
그녀 역시 긴장이 안 되는 건 아니었으나, 결국 유망주인 입장이다.
길드 차원에서 가능성을 입증받고 대대적인 지원을 받았으니.
그에 상응하는 결과를 보여 줘야 하는 것이다.
“아준아, 그 김시문인가 뭔가 하는 놈의 대처법은 길드에서 이미 다 준비해 줬잖아. 기억 안 나?”
찬찬히 달래는 어조로 말하는 유아연.
그녀는 여유롭게 손목의 팔찌를 흔들었고.
“……그렇기는 하지.”
유아준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의 손목을 내려다봤다.
그의 손목엔 누이와 똑같은 모양의 팔찌가 착용되어 있었다.
“거기에다 걔 솔로큐로 참여할 거라며? 우린 듬직한 고기방패까지 있는 풀 파틴데 뭐가 문제야?”
곁에서 말없이 서 있는 판금의 덩치를 퉁퉁 두드리는 유아연.
그에 일그러졌던 유아준의 입가가 부드럽게 풀렸다.
“하긴. 제까짓 게 아무리 잘났어도, 우리의 연계 마법을 어찌할 순 없겠지.”
“그래. 그러니까 그런 애는 신경 쓰지 말고, 신화 길드 쪽이나 신경 써.”
“거긴 그 최진순가 뭔가 하는 무식한 짐승만 조심하면 되잖아.”
“다른 둘은 노답인 줄 아니? 궁수에다가 힐러잖아. 우리도 이제 골드야. 직업 조합도 신경 써야 한다고.”
“알았어. 잔소리는.”
티격태격 말을 나누는 남매의 머리 위로.
[참가자가 모두 소환되었습니다.]
[골드 랭크 데뷔전을 시작합니다.]
일련의 메시지창이 떠올랐고.
솨아아아아.
밀려드는 물소리와 함께 주변이 일변했다.
* * *
들려오는 소리만큼이나 시원한 바람.
그 속에 섞인 청량함과 짭짤함이 지속적으로 코를 간질인다.
어딜 보아도 푸르고 드넓은 바다가 가득한.
마치 휴양지를 연상시키는 절경에 감탄이라도 해야 했건만.
“바다 맵이라…….”
시문의 얼굴은 시큰둥하기만 했다.
-ㅋㅋㅋㅋㅋㅋ 맵 보소.
-와, 데뷔전에 바다라니. 이거 처음 있는 일 아님?
-ㄴㄴ. 미국은 몇 년 전에 바다 맵으로 데뷔전 치른 적 있음. 물론 그 뒤론 없지만.
-더 충격인 건, 이분 솔로큐로 참여했다는 거임.
-그럼 소속 길드도 없는데 당연한 거 아님?
-뭐래. 이 사람 정도면 대길드들도 용병으로 쓰려고 기를 쓸 텐데. 너 플레이어 아니지?
-ㄹㅇ ㅋㅋㅋ. 저번에 길드들 후원 열차가 그냥 영입 목적만 있는 줄 아나.
-일반인 검거 완료!
채팅창의 반응도 시문과 비슷했다.
당연했다.
바다는 플레이어들이 가장 꺼리는 맵 중 하나였으니까.
‘그나마 다행이라면 육지가 꽤 많다는 건데.’
바다 맵치고 꽤 즐비한 섬들이 그나마 안정을 준다고나 할까?
물론 그렇다고 기뻐하는 플레이어들은 없을 것이다.
‘섬들 사이 간격이 좀 멀어.’
섬들 사이의 거리는 단순 수영으로는 시간이 좀 걸릴 수 있을 만한 수준이니.
특별한 수영 능력이 없다면, 결국 바다 맵에서 갖는 페널티는 여전했다.
그때.
-그래도 오빠한테 맵은 별 의미가 없잖아?
가슴 정중앙에서 뚜렷한 이명이 들려왔다.
데뷔전 직전, 잠에서 깨어난 현자의 돌이었다.
-수중 장비들을 연성해도 되고, 아님 인체 연성을 해도 되잖아.
‘그렇긴 하지.’
현자의 돌의 말대로.
연금술부터 인체 연성까지.
어지간히 기이한 맵이 아니고서야, 맵으로 받는 페널티는 사실상 없는 시문이었다.
-근데 오빠, 데뷔전이면 보상이 꽤 좋지 않아? 다른 차원의 아레나들은 그렇던데.
‘그렇지. 꽤가 아니라 상당히 좋아.’
오직 해당 구간의 최상위권 플레이어들만 단발로 참여할 수 있는 데뷔전.
당연히 그 보상은 일반적으로 얻기 힘든 것으로 구성되어 있었고.
특히나 이번 데뷔전의 1등 보상은 시문으로서도 그냥 넘길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러니.
[이번 데뷔전의 종목은 서바이벌이고, 참가 인원은 110명입니다.]
[지역은 ‘떠오른 군도’입니다.]
[다른 플레이어를 모두 처치하거나, 제한 시간까지 살아남으세요.]
‘전력을 다해야겠지.’
따악.
알림창이 사라질 틈도 없이 곧바로 튕겨지는 손가락.
-오오! 이 형 움직인다!
-뿌뿌~ 살인전차 나가요!
-병X아, 전차가 아니라 잠수함이겠지~.
-위에 둘, 개쌉노잼.
-22. 검은 염소 누님! 노잼 드립들 채금 좀 부탁드려요!
그와 함께 시문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풍덩!
바닷속으로 몸을 던졌다.
* * *
“빌어먹을! 하필이면 바다 맵이 처걸려선!”
거친 어조로 짜증을 내뱉는 갑옷의 남성.
물속이라서 그런 걸까?
남성의 목소리는 이질적으로 왕왕 울렸다.
그에 곁에 활을 메고 있던 여성이 입을 열었다.
“야, 우리는 그래도 사정이 나은 편이야. 마법사가 있잖아.”
“그, 그렇기는 하지만…….”
여성의 말에 대번에 수긍하는 남성.
이어 팀의 가장 선두에 있던 로브의 여성이 말했다.
“답답하겠지만 조금만 참아. 지금 위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잘 알잖아?”
그녀의 말대로.
지금 수영이나 잠수와 관련된 능력이 없는 이들은, 육지인 섬을 차지하려고 혈투를 벌이고 있었다.
“서바이벌의 기본적인 전략도 없이 그저 소모전만 치르고 있지. 이대로 존버했다가, 전투가 끝나가는 쪽부터 치는 게 맞아.”
“나도 언니 말에 동의해. 어차피 유망주들끼리 매칭된 거잖아? 무조건 컨디션 차이로 승패가 갈릴 거야.”
고개를 끄덕인 로브의 여성은 물 위로 가장 가까운 섬을 바라봤다.
물속임에도.
쿠그그.
섬에선 폭음과 진동이 끊이질 않았다.
“보아하니 싸움이 길어질 거 같은데. 조금만 더 기다리자. 어차피 내 특성은 물 관련이라, 방울 마법을 유지하는 데 마력도 안 들어.”
그럼 이쪽은 풀 컨디션을 유지한 상태로.
이제 막 싸움이 끝나 지칠 때로 지쳐 있는 팀을 별다른 피해 없이 쓸어버릴 수 있으리라.
“알았어, 누나. 그럼 도핑은 미리 해 둘까?”
“그게 좋겠네. 물약도 미리 마셔두자. 어차피 이 방울 안은 물 위랑 다름없…….”
그렇게 3명의 남녀가 물약을 꺼내 마시려던 그때.
꾸르르르.
물살을 가르며 거품이 이는 소리가 들려왔고.
“언니! 뒤!”
궁수라 감각이 예민한 것일까?
어느새 활을 빼어 든 여성이 시위를 당기며, 로브의 여성에게 소리쳤다.
하나.
빠각.
수중임에도 묵직하게 들려오는 타격음.
그와 함께 로브의 여성이 죽은 생선처럼 배를 뒤집으며 물 위로 떠올랐다.
즉사한 것이다.
당연히 로브의 여성이 유지하던 마법은 사라졌고.
“커, 커헉!”
“으읍!”
두 남녀는 갑작스레 들이닥치는 물에 코와 목을 쥐었다.
그러나.
부그르르르!
이곳은 각 길드의 유망주들이 한데 모인 데뷔전.
두 남녀는 허연 거품을 줄줄 내뿜으면서도.
악에 받친 눈으로 의문의 기습자를 파악했다.
회색 후드티를 눌러쓴 남성이었다.
‘미친! 장비도 없이 혼자서 덤빈 거야? 잠깐.’
‘건방진! 죽여 버리겠…… 어라? 저, 저 사람 설마!’
그리고 의문의 기습자가 누군지 알아차린 순간.
따악.
물속임에도 손가락이 튕기는 소리가 선명히 들려왔고.
그것이.
빠각!
그들의 마지막 기억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