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1화
51화. 불청객 (3)
“네. 그렇게 결론 내 주시고 언론은…….”
주절주절 들려오는 동생 녀석의 목소리를 뒤로한 채.
‘새끼, 벌긴 많이 버는구나.’
시문은 호화롭기 그지없는 내부를 둘러봤다.
‘안 그래도 강남인데. 펜트하우스라니…….’
강남, 그리고 펜트하우스.
이 두 가지 단어가 주는 이미지 그대로 동생 김시혁의 집은 어마어마했다.
당연했다.
일명 랭커팰리스라 불리는 이곳은 랭커급 플레이어들이나 그에 준하는 이들이 주로 사는 곳.
심지어 동생 녀석은 전 각성자 협회장의 아들이자, 대한민국의 랭커 중 하나 아닌가?
저 둘 중 하나만 있어도 이런 곳에서 사는 게 어렵지 않은데.
요 잘난 동생 녀석은 두 가지를 전부 지니고 있으니, 이 정도 집이 없다는 게 더 이상하리라.
시문은 척 보기에도 비싸 보이는 소파의 팔걸이를 꾹꾹 누르다가.
보안 마법으로 떡칠이 되어 있는 럭셔리한 문을 바라봤다.
‘참. 그러고 보니 유정이도 여기에 살았지?’
이유정.
성삼의 독녀인 그녀 역시 시혁이와 마찬가지로 집안부터 능력까지 다 타고난 아이였다.
“예, 그럼 그렇게 부탁드립니다. 협회 쪽은 제가 알아서 처리하죠.”
연락이 끝난 것일까.
김시혁이 통화를 끊으며 다가왔다.
“형, 정말 병원 안 가 봐도 괜찮겠어?”
걱정스럽게 물어 오는 동생 녀석.
“그만 좀 해라, 요놈아. 무슨 매크로 쓰냐? 너 그 말만 벌써 일곱 번째야.”
그런 녀석의 뒤로 큰 덩치의 사내가 투덜거렸다.
밤사냥꾼 박진욱이었다.
“내가 네 형님이었으면, 네 번째 물을 때 바로 주먹 날렸다.”
“선배.”
박진욱은 낮게 으르렁거리는 시혁이 녀석을 무시하곤.
“자자, 우리 VVIP 고객님. 귀한 거 한잔 드시고 내 집이다~ 생각하고 편안히 계십쇼.”
연두색의 음료가 담긴 잔을 내밀었다.
“감사합니다. 음?”
음료를 확인한 시문의 눈이 조금 커졌다.
“이거 엘븐티네요?”
“하하! 역시 수준급의 연금술사답게 한눈에 알아차리시네요. 맞습니다.”
엘븐티.
플래티넘 상위권부터 등장하는 이종족 엘프들에게서 가끔 구할 수 있는 재료로 만든 차.
지구에 없는 귀한 맛도 맛이지만.
복용 시 능력치를 미세하게 올려 주는 일종의 영약이기도 했다.
당연하게도.
“이런 귀한 걸 주셔도 되는 거예요?”
어지간한 부자들도 쉽게 마실 수 없는 것이었다.
애당초 획득 루트 자체가 부유할 수밖에 없는 고랭크 플레이어들밖에 없으니.
맛과 스탯까지 챙길 수 있는 엘븐티가 시중으로 돌기란 상당히 어려웠으니까.
그런 귀한 차를 내놓고도.
“뭐 어떻습니까?”
박진욱은 아무렇지도 않게 어깨를 으쓱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제 것도 아닌데요, 뭘.”
“선배, 그게 주인 앞에서 할 말이에요?”
“이 새끼 봐라? 그럼 넌 네 형님이 먹는 게 아깝다 이거냐?”
“아니, 그런 말이 아니잖아요!”
좀처럼 언성을 높이지 않는 동생 녀석이 흥분한 것에 시문은 피식 웃음을 흘렸다.
“후. 선배는 나중에 봐요.”
그에 김시혁은 박진욱을 흘낏하고는 시문의 맞은편에 앉았다.
“형. 대체 어떻게 된 거야?”
“뭐가?”
“뭐긴, 당연히 폭발 테러지! 형 연락받았을 때 정말 깜짝 놀랐다고!”
“그건 나도 궁금하긴 하네. 시문 씨, 뭐가 어떻게 된 겁니까?”
박진욱 역시 호기심을 보이며 시혁이 녀석의 옆자리에 앉았다.
그에 시문은 엘븐티를 한 모금 마시며 목을 축였다.
[영약의 효력으로 민첩이 1 상승합니다.]
앞서 높은 수준의 영약들을 줄지어 복용한 덕분일까.
적지만 올라가는 민첩 스탯에 슬쩍 미소를 지은 시문은 말했다.
“그게…….”
정확히는.
콰앙!
“야! 김시혁! 오라버니는 어디에…… 어?”
말하려고 했다.
럭셔리했던 입구 쪽에서 거친 굉음이 일어나기 전까진 말이다.
* * *
끊어진 테이프처럼.
무참히 뜯겨져 나간 고수준의 보안 마법들.
김시혁은 이마에 솟은 핏대를 꾹꾹 누르며 엉망이 된 문을 닫았다.
덜그럭.
그러나 여는 힘이 너무 강했던 탓일까.
보안 마법 이전에 찌그러진 문은 제대로 닫히지조차 않았고.
“아…… 이유정, 너 진짜!”
김시혁의 얼굴엔 짜증이 가득 서렸다.
“미안하다니까. 그리고 문 좀 좋은 거 써. 살짝 밀었다고 그게 그렇게 망가지니.”
“뭐래! 이거 너희 집 문이랑 똑같은 거거든?”
“그랬었나? 헤헤. 어쨌든 미안.”
“야! 하나도 안 미안해 보이거든!”
얄밉게 헤실거리는 이유정과 드물게 미소 외의 감정을 모두 드러내는 김시혁.
그런 두 동생들 사이를 익숙하게 파고든 시문이 소파를 가리켰다.
“너희는 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이러고 있냐? 그만들 하고 가서 앉아.”
동시에 문 쪽을 향해 손가락을 튕겼다.
따악.
드드득.
시간이 되감기듯, 본래의 형태를 되찾는 문.
시문은 순식간에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간 문을 잘 닫고.
“뭐 해. 안 앉아?”
멍하니 보고 있는 두 동생들에게 턱짓했다.
“어? 아, 응.”
“네. 오라버니.”
얌전히 소파로 가는 두 동생에 시문은 작게 한숨을 쉬며 소파에 털썩 앉았다.
“유정아, 내 걱정 해 준 건 고마운데. 그렇다고 문을 막 부수는 건 잘못된 거야. 알지?”
“……네.”
“망가진 보안 마법들은 유정이 네가 새로 고쳐 놔.”
이런 곳에서 사는 동생 녀석이 보안 마법을 다시 설치할 돈이 없겠냐만은.
“이건 돈 이전의 문제야. 내 말 무슨 뜻인지 알지?”
인간관계의 기본적인 문제였기에.
시문은 이 부분을 분명하게 짚고 정리했다.
“네. 오라버니.”
이유정이 미소를 머금고 고개를 끄덕이자, 시문은 김시혁을 바라봤다.
“시혁이 너도 유정이가 고의로 그런 것도 아니니까, 너무 그러지 마.”
“응, 형. 난 괜찮아. 쟨 원래 저렇게 다 부수고 다녔거든. 지가 오우거야 뭐야.”
“하! 어이가 없어서. 야, 김시혁. 근력 스탯이 높은 거거든!”
“네. 다음 오우거.”
“저게 진짜!”
김시혁의 능청에, 눈에 불이 붙는 이유정.
“쓰읍! 이것들이, 내 말이 우습지?”
그에 시문의 눈매가 날카로워지자.
“크흠! 이유정. 내 계좌 알지? 보내 놔라.”
“……아, 알았어.”
김시혁과 이유정이 슬쩍 시선을 피하며 상황을 종료했다.
그리고 이 모든 모습을 보던 박진욱은.
“허 참, 살다 살다 이런 광경을 다 보게 될 줄이야…….”
믿기 힘든 얼굴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럴 수밖에.
‘저 지X 맞은 두 괴물이 꼼짝 못 하는 모습이라니.’
아마 다이아 랭크 이상의 플레이어들에게 이 일을 말하면.
아레나 질병의 후유증으로 미쳐 버린 거냐고 비웃음이나 사겠지.
애당초.
저 두 괴물이 누군가의 눈치를 저렇게 본다는 것부터가 현실성이 없는 일이었으니까.
‘협회장이나 성삼의 회장의 눈치도 보지 않는 녀석들인데…….’
새삼 시문이라는 존재에 대해 짙은 호기심과 경외심이 드는 박진욱.
그렇게 펜트하우스 내의 분위기가 안정되자.
“근데 오라버니, 이게 다 어떻게 된 일이에요? 테러라니요?”
이유정은 곧장 시문을 돌아보며 본론을 꺼냈고.
김시혁과 박진욱 역시 가만히 시문만을 바라봤다.
“그게 말이지…….”
시문은 갑작스러운 폭발 테러에 대해 간단히 설명해 주었다.
그리고 잠시 망설이긴 했으나.
“뭐, 뭐라고요?!”
“데스페라도?”
“시문 씨, 그게 정말입니까?”
암살자가 데스페라도 소속 유망주인 것까지 이야기해 주었다.
이는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하나는.
“데스페라도라…… 이거 좀 알아봐야겠군요.”
“다영 언니, 저예요.”
이런 뒤 세계 쪽으로 밝은 밤사냥꾼과 성삼 길드의 정보력을 빌리고 싶은 거였고.
다른 하나는.
“…….”
시문은 입술을 앙다문 채, 가라앉은 눈빛의 김시혁을 바라봤다.
‘녀석, 짐작 가는 게 있나 보네.’
세계 최악의 빌런 조직인 데스페라도.
전원이 다이아 이상 급의 강자로 이루어진 범죄 조직이었으나.
오로지 강함만으로 조직을 유지하기엔 세상이 만만치 않았다.
그리고 전생의 지구를 경험해 본 시문은 알고 있었다.
이런 범죄 집단이 얼마나 대단한 뒷배를 두어야 존속할 수 있는지 말이다.
‘크게는 미국과 중국이 있지.’
그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상상도 못 할 범법 행위들을 더러 데스페라도에 의뢰했었다.
최후의 2강으로 남은 이유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작게는.
‘우리 잘나신 각성자 협회장이 계시지.’
삼촌, 숙부, 혹은 작은 아버지.
첩의 자식인 자신이 그자를 이리 불러도 되는지.
아니, 이리 부르기조차 싫었지만.
족보상 분명 현 각성자 협회장은 자신의 숙부였고, 이는 시혁이도 마찬가지였다.
덤덤하면서도 묘한 시문의 시선.
그에 확신을 얻은 것일까.
“형, 설마……!”
“시혁아, 거기까지. 아직 확정 난 건 아무것도 없다.”
뭐라 말하려는 시혁이를 제지한 시문이 물었다.
“협회 쪽에선 뭐래? 목격자도 많고 단순 폭발 사고가 아니라는 건 이미 조사로 다 나왔을 텐데.”
“안 그래도 말하더라. 형이 협회에 와서 진술은 해야 한다고.”
1세대 플레이어이자 초대 협회장이셨던 아버지.
그리고 그의 뒤를 이어 2대가 된 숙부, 곧 3대가 될 가능성이 유력한 시혁이까지.
사실상 각성자 협회를 주무르는 김씨 가문이기에.
협회 내에서 시혁이의 위치는 상당했다.
그런 동생 녀석의 힘으로도 이번 사고는 덮기가 힘든 것이다.
당연했다.
무려 서울 시내 한복판에서 일어난 폭파 사건이다.
아무리 차기 협회장인 시혁이라 해도 쉬이 덮을 수 있는 일이 아니란 말이다.
물론 그 전에.
‘역시, 숙부는 그냥 넘길 생각이 없나 보네.’
숙부 김무열.
빌어먹을 그 양반이 물고 늘어지고 있는 거겠지.
아까 시혁이 녀석이 통화하면서 그러지 않았던가?
‘협회 쪽은 제가 알아서 처리하죠.’라고.
“형, 굳이 안 가도 돼. 나 이제 랭커잖아. 내가 어떻게든 막아 볼 수 있어.”
시문의 침묵이 길어서일까.
김시혁은 손을 저으며 말했지만.
“아니. 그럴 필요 없어.”
시문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냥 청부업자도 아니고 데스페라도를 보냈는데, 가만히 있을 순 없지.’
어차피 자신을 암살하려던 배후를 알아보려던 참이었고.
마침 그 후보 중 하나가 친히 자신을 불러 주는데 내뺄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협회에 연락해. 지금 가겠다고.”
* * *
각성자 협회.
2015년 갤럭시 아레나와 각성자들의 등장 이후.
세계 각성자 협회를 중심으로 일종의 지점처럼 각 나라마다 존재하는 기관이다.
한국의 경우엔 강남에 위치해 있어, 랭커팰리스에서도 그리 멀지 않았다.
“어서 오십시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직원의 안내를 받아 지하 주차장에서 내린 시문은 주변을 살폈다.
‘기자들은 없네.’
무려 현 대한민국에서 가장 핫인 플레이어 중 하나인 김시혁의 행차인데도.
모기떼처럼 따라다니던 기자들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그만큼 지금의 행차가 비밀리에 이루어지고 있다는 거겠지.
이유야 간단했다.
“시혁아, 고맙다.”
“어?”
“네 덕에 신림 테러 사건 주인공의 얼굴이 안 알려졌잖냐.”
“그건 당연한 거야, 형. 그런 일로 얼굴 알려져 봐야 좋을 거 하나도 없다고.”
초대 협회장의 아들이자 현 협회장의 조카, 그리고 랭커인 우리 동생님이 힘을 거하게 써 주신 것이다.
언론과 대중의 관심이 어떤 것인지 늘 체험하고 있기 때문일까?
굳이 부탁하지 않았는데도.
요 잘난 동생 녀석이 알아서 배려를 해 준 거였다.
“이쪽 엘리베…….”
“됐습니다. 여기서부턴 저희가 알아서 가죠.”
“알겠습니다, 시혁 님. 그럼 이만 실례하겠습니다.”
안내 직원을 떼어 내는 김시혁.
그렇게 엘리베이터 내로 둘만 타게 되자 녀석이 입을 열었다.
“근데 형, 정말 괜찮겠어?”
“뭐가.”
시문이 무심하게 답하자, 김시혁은 잠시 우물쭈물하더니 답했다.
“그…… 형은 숙부를 껄끄러워했잖아.”
“새끼, 좀 컸다고 언어 순화도 할 줄 아네. 그냥 속 시원하게 박아. 너 그 인간 무서워했잖아! 하고.”
“혀, 형!”
화들짝 놀라는 김시혁.
그런 동생의 반응을 본 시문은 희미하게 웃었다.
‘확실히, 이맘때 난 숙부를 두려워했었지.’
그 날카로운 인상도 인상이지만.
어린 시절 자신에게 유독 지독하게 굴었던 이가 숙부였으니까.
‘그때는 몰랐지.’
오히려 자신을 보듬으면 보듬어 줬어야 할 숙부가 왜 그리도 모질게 굴었는지 말이다.
‘하지만 이젠 아냐.’
무려 인생 2회 차다.
그간의 세월과 경험으로 어릴 때 보던 시선과는 많이 달라졌고, 당연히 숙부의 속내도 훤히 보였다.
그리고 원인을 알게 된 두려움은 더 이상 두려움이 되지 못했다.
띵.
“도련님, 오셨습니까.”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자.
범상치 않은 기세의 남성이 시혁이를 향해 고개를 푹 숙였다.
그에 시문은 피식 웃음을 흘렸다.
‘여전하네.’
분명 옆에 있는 자신을 보았음에도 오로지 시혁이에게만 예를 차리는 모습.
당연했다.
저 숙부의 최측근은 어린 시절부터 자신을 없는 듯 대해 왔으니까.
하나 그런 행위에 주눅만 들던 김시문은 이제 없었으니.
“우리 최창욱 비서장님은 여전히 깍듯하시네요. 협회장님은 안에 계십니까?”
시문은 조금의 위축도 없이 되레 여유로운 미소로 말을 걸었고.
“……예. 기다리고 계십니다.”
골렘 같은 눈매를 움찔한 최창욱은 의문스러운 눈초리로 시문을 힐끗하곤 문을 열었다.
‘음?’
짙은 나무 향이 코 속을 훅 찔러 왔다.
숙부의 특성을 생각해 보면 당연했다.
단지 신기한 것은.
‘방향제라도 쓰나? 묘하게 비린데?’
나무 향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비린내가 섞여 있다는 것이다.
그런 시문의 귓속으로.
“왔군.”
중저음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파고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