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0화
50화. 불청객 (2)
자욱하게 일어나는 먼지구름.
“꺄아아악!”
“가, 갑자기 무슨 폭발이!”
“누가 119 좀 불러요! 빨리!”
“아주머니! 위험하니까 이리로 와요!”
그리고 이어지는 사람들의 비명과 소란이 일대를 가득 채웠다.
멀지 않은 건물 옥상에서 그 아비규환을 지켜보던 선글라스의 남자가 작게 키득거렸다.
“키핫! 역시 폭발은 늘 즐겁다니까.”
코에 걸쳐진 선글라스 뒤로 보이는 푸른 눈.
바람에 날리는 옅은 갈색 머리칼을 슥 넘긴 그는 좀처럼 가라앉지 않는 난리 통을 바라봤다.
“죽었겠지?”
폭발을 일으킨 주범이 그임을 돌이켜 보면 분명 상대의 죽음을 노렸을 텐데.
이상하게도 백인 남자는 입맛을 다시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쯧. 제법 싹이 있는 실버라던데, 이 정도 폭발에 죽어 버려서야 영 싱겁잖아?”
하긴, 실버가 괜히 실버겠어.
어깨를 으쓱한 남자는 몸을 돌렸다.
“그러게 중국 놈들은 왜 건드리는 거야, 같은 인종이면서. 참 아시아 놈들은 이해를 할 수 없다니까.”
품속에서 담배를 한 대 꺼내 무는 남자.
그가 물고 있는 담배 끝을 바라보자.
퐁.
작은 폭발이 일며 불이 붙었다.
남자의 푸른 눈은 한동안 멍하니, 담배 끝에 일렁이는 불꽃을 바라봤다.
정확히는.
담배에 불을 붙이던 그 작은 폭발이라고 해야겠지.
“아, 안에! 안에 내 강아지가 있다고!”
“119는 대체 언제 오는 거야!”
“신고한 거 맞아요?! 왜 이렇게 안 와!”
후욱.
이 소란스러운 상황 속에서.
“폭발의 영역이 이 일대 전체였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아쉽군.”
저 혼자만의 여운에 젖은 남성이 한 걸음 옮기던 찰나.
“일대 전체라고? 그랬으면 조직에서 영구 제명을 당할 텐데.”
뚜렷하면서도 맑게 들리는 목소리.
그에 백인 남자는 즉시 뒤로 돌아, 소매에서 하얀색의 무언가를 날렸다.
사락.
반듯하게 접힌 종이비행기.
이 갑작스러운 폭발 현장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물체였으나.
“두 번은 안 통해.”
따악.
뚜렷한 이목구비의 미남은 싸늘한 표정으로 손가락을 튕길 따름이었다.
* * *
능히 일어났어야 할 폭발은 온데간데없다.
휘이이.
바람에 휘말린 종이비행기는 그저 힘없이 어딘가로 날아갈 뿐.
선글라스의 백인은 멍한 눈으로 멀어지는 종이비행기를 바라보다.
“너…….”
시문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어떻게 된 거지?”
“뭐가?”
이내.
“어떻게 저 폭발 속에서 살아남았냐고! 아니, 그 전에.”
멍했던 백인 남자의 눈이 날카롭게 벼려졌다.
“방금 손가락을 튕긴 그건 뭐지? 왜 내 특성이 발동하지 않은 거야!”
서양인 특유의 성숙함을 따져 보아도 이제 막 20대나 되었을 젊은 외모이거늘.
그는 유창한 한국어를 구사하며 물어 왔다.
“질문도 많다. 날 폭사시키려던 놈에게, 내가 그걸 말해 줘야 할 이유가 있나?”
시문의 답에 한쪽 눈썹이 샐쭉 올라가는 백인 남자.
“맞는 말이긴 하군.”
이내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을 이었다.
“그럼 다른 걸 묻지. 너, 날 아냐?”
물어 오는 백인 남자의 눈빛은 한결 더 살벌해졌다.
당연했다.
암살 목표인 김시문.
저 아시아계의 남자는 분명.
“방금 넌 내게 영구 제명이라는 말을 했었지.”
“오. 영구 제명이라는 말도 알아? 한국어 잘하네.”
“머리를 좀 타고나서.”
“에이, 양심이 있어야지. 타고난 머리가 아니라, 네 동료의 특성 덕분이잖아?”
“…….”
아무 답도 못 하는 백인 남자를 보며 시문은 확신했다.
‘종이 인형들을 보고 설마 했는데…….’
무척이나 정교하게 접혀 있던 종이 인형들.
그리고 그곳에서 들려오던 초침 소리와 폭발까지.
전생의 경험에 비추어 보아, 이 모든 것들과 연관이 있는 사람은 딱 1명뿐이었다.
시문은 희미한 미소를 머금으며 눈앞의 백인을 바라봤다.
“왜 갑자기 말이 없어? 내가 정곡을 찔렀나? 제이스 클라크.”
“너…….”
이름까지 말해 버리는 시문에 한층 더 가라앉는 백인 남성의 얼굴.
당장 해가 중천에 뜬 대낮임에도.
그의 얼굴 위로 시커먼 그림자가 드리운 착각마저 들 정도로 어두웠다.
“어떻게 내 이름을 아는 거지? 아니지, 질문이 잘못되었네.”
제이스는 얼굴만큼이나 차가워진 목소리로 물었다.
“우리에 대해 어디까지 아는 거지?”
“글쎄. 목표 이외에 다른 일을 벌이면, 큰 처벌을 내리는 조직이라는 건 알고 있지.”
“그래? 말해 줄 의사가 전혀 없다 이거로군.”
시문의 너스레에 비릿하게 웃은 제이스는 양팔을 활짝 펼쳤다.
어느새 그의 양손과 기다란 코트 사이로 수십 개의 종이 새들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뭐, 상관없지. 죽여 버리면 그뿐이니까.”
“패기는 좋네. 근데 괜찮겠어? 그거 다 터뜨리면 정말 영구 제명……이 될 텐데?”
영구 제명이라는 말을 묘하게 흐리는 시문.
그도 그럴 것이 저 조직에서의 ‘영구 제명’은 그저 말로만 제명당하는 것이 아니었으니까.
시문이 뭘 말하는지 눈치챈 것일까.
제이스의 입꼬리가 비죽 올라갔다.
“걱정 마라. 조직의 정체를 아는 놈을 처리했다고 하면, 오히려 상이 내려올 테니까.”
“상? 아아. 네가 그토록 존경하는 폭탄마 모가담 빈 압둘라가 주는 상인가?”
아랍권 남자의 이름.
그것이 약점이라도 되는 것일까.
“너 이 자식! 잘도 그분의 이름을!”
비웃음이 가득하던 제이스의 얼굴이 악귀같이 일그러졌고.
파라라락.
수십 장의 종이 새들이 시문을 향해 날아들었다.
시문은 즉시 오딘의 눈을 발동시켰다.
키잉.
옅은 황금색 마법진이 왼쪽 눈 위로 떠오른다.
그러자 날아드는 종이 새들의 움직임이 느려 보이는 것은 물론.
‘역시, 아까처럼 기폭제는 전부 중심부에 그려져 있군.’
정확히는 종이를 잘 접어서 숨겼다고 해야겠지.
반듯하게 접힌 종이 새 내부에서 독특한 문양을 확인한 시문은 손을 내밀었다.
따악.
그러곤 튕겨지는 손가락.
겉보기에는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으나, 오딘의 눈엔 분명하게 보였다.
치직.
기폭제로 보이던 문양이 새겨진 부분이 전부 백지로 변하는 것을 말이다.
결국 수십 장의 종이 새들은 아까의 종이비행기처럼.
사라락.
당연하게 시문의 곁을 스쳐 사방으로 흩날렸다.
그에.
“이, 이게 무슨!”
제이스의 눈이 부릅떠졌다.
“노란 원숭이 주제에! 대체 무슨 개수작을 부린 거냐!”
그럴 수밖에.
제이스 클라크의 A급 특성.
종이 폭발은 여태껏 단 한 번의 불발도 일어나지 않은 특성이었다.
단적인 예로.
물 관련 특성을 지닌 암살 목표가 종이를 모두 물로 적셔 버리는 잔재주를 부렸음에도.
정상적인 폭발로 그의 육체를 흔적도 없이 터뜨려 버렸거늘!
“설명해 줄 의무는 없고. 그냥 상성 차이라고만 해 두지.”
“개소리 마라! 내게 상성을 논할 수 있는 분은 이 세상에 오로지 한 분뿐이다!”
성난 고함과 함께 다시 한번 코트 자락을 펄럭이는 제이스.
아티팩트라도 사용한 것인지.
제이스의 몸은 허공으로 둥실 떠오른 상태였다.
덕분에.
사라라라!
제이스의 품에서 다양한 형태의 종이 인형들이.
재깍재깍.
빗소리와 같은 초침 소리를 동반하며 흡사 억수처럼 쏟아져 내렸다.
‘가진 물량을 다 쏟아붓는 모양이네.’
하나하나가 수류탄 이상의 위력을 자랑하는 종이 인형.
그게 무려 백 단위로 쏟아지고 있었으나, 시문은 그저 차분한 눈으로 응시할 뿐이었다.
당연했다.
제아무리 유명한 각성 범죄자 조직.
일명 빌런 조직인 데스페라도(Desperado)의 유망주가 펼치는 전력 공세라 해도.
따악.
시문 정도의 연금술사 앞에선 그저 종이 인형에 불과했으니까.
“이럴 수가…….”
일전의 공격들처럼 허무하게 시문의 곁으로 흩어지는 종이 인형들.
제이스는 망연자실한 얼굴로 그것을 내려다봤다.
시문은 황금색이 섞인 눈으로 그런 제이스를 보며 싱긋 웃었다.
“쉽네.”
진심이었다.
데스페라도의 유망주인 제이스 클라크는 결코 인정하지 못하겠지만.
기본적으로 물질을 원하는 형태로 변환하는 것은 기초 연금술의 종류 중 하나.
등가교환만 만족한다면 어느 연금술사든 해낼 수 있는 일이었다.
결국.
“웃기지 마! 웃기지 말란 말이다!”
사락, 사라락.
종이라는 물질에 기폭제를 새겨 폭발시키는 종이 폭탄의 특성상.
‘기폭제가 새겨진 부분’을 다시 ‘백지로 연성’해 버리는 시문은 그야말로 최악의 상성이었다.
심지어.
“거참, 소용없다니까.”
따악.
연성진을 비롯해 어떤 사전 준비도 없이.
그저 손가락을 튕기는 것만으로 모든 연성을 끝내 버린다면 더더욱 말이다.
“이익!”
지니고 있던 종이 인형을 모두 사용한 것일까.
“이젠 알겠지? 넌 나한테 안 된다는 거.”
“……그래, 인정하겠다. 무슨 수작인지는 모르겠지만, 너에겐 내 특성이 아무 쓸모도 없군.”
제이스는 더 이상 종이 인형을 뿌리지 못하고, 분에 찬 얼굴로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그의 멘토인 유명 빌런 폭탄마 모가담 빈 압둘라마저.
이런 식으로 그의 폭발을 무마시킨 적은 없었는데.
‘고작 아시아 놈 따위에게 이토록 무기력하게……!’
으득.
분에 찬 깨물림 탓일까.
아릿한 통증과 비릿한 피 맛이 제이스의 입 속으로 파고들었다.
“하…… 적어도 다이아급은 만나야 사용할 거라 생각했는데.”
허탈하게 웃은 제이스는 코트를 벗어 던졌다.
정확히는.
펄럭.
코트가 종이접기처럼 접히고 있다고 봐야겠지.
특별한 인챈트라도 된 것인지.
코트는 순식간에 종이비행기의 형태로 접혔고.
“데스페라도는 결코 임무를 실패하지 않는다!”
코트 위에 올라탄 제이스는 곧장 시문을 향해 날아들었다.
그에 시문은 또다시 앞으로 손을 들었다.
하나.
‘저건…….’
제이스의 셔츠.
왼쪽 가슴 부분에 새겨진 룬을 본 시문의 왼쪽 눈이 꿈틀했다.
‘마법 이뮨?’
이뮨(immune).
일종의 완전 면역으로 특정 공격이나 상태이상을 완전히 무시해 버리는 힘.
그중 마법을 중점으로 둔 이뮨이 제이스의 셔츠 왼쪽에 새겨져 있는 것이다.
‘저 정도 마력이면 최소 B급 이상인데…… 쯧, 더럽게 비싼 걸 입고 다니는군.’
시문의 시선은 자연스레 제이스의 셔츠 오른쪽을 향했다.
그곳엔 앞서 종이 인형들에 새겨져 있던 A급 특성 종이 폭발의 기폭제가 새겨져 있었다.
‘그렇군. 자폭하려는 건가?’
세계 최고의 빌런 조직인 데스페라도.
과연 그 악명 높은 곳의 유망주답게, 장비뿐만 아니라 정신 무장마저도 남달랐다.
시문의 눈매가 슬쩍 굳는 걸 확인한 것일까.
“크하핫! 눈치챘나? 하지만 늦었어!”
제이스는 광소를 터뜨리며 속도를 높였다.
치이익!
오른쪽 셔츠의 기폭제 문양이 금세라도 터질 듯 벌겋게 달아오른다.
“키힛! 함께 지옥으로 가자고! 망할 원숭아!”
코트를 탄 그가 시문의 눈앞까지 날아든 순간.
“미안하지만, 혼자 가라.”
따악.
시문의 손가락이 튕겨지며, 그의 양팔과 다리의 근육이 눈에 띄게 도드라졌다.
이어.
천마신공(天魔神功).
격(擊) 패황쇄(覇皇碎).
힘껏 뻗은 시문의 주먹에서 시커먼 기운이 폭사했고.
콰아아아앙!
날아들던 제이스를 휘감곤 거대한 폭음으로 산화했다.
* * *
쿠르르르르!
일전의 갑작스러운 폭발처럼.
“뭐, 뭐야?! 또 폭발이 일어난 거야?”
“테러 아냐? 경찰은 대체 뭐 하는 거야!”
“경찰로 되겠어? 딱 봐도 각성 범죄 같은데 각성 전담 부대가 와야지!”
또다시 일어나는 폭발에 신림 일대가 혼란에 빠졌다.
“후우…….”
두 번째 폭발의 장본인.
시문은 숨을 고르며 어깨를 이리저리 풀었다.
“자칫 일 날 뻔했네.”
멀지 않은 곳에 툭 떨어지는 제이스의 다리 한 짝.
시문은 그것을 보곤 작게 고개를 저었다.
“설마 자폭까지 시도할 줄이야.”
천마신공의 초식인 패황쇄.
[오우거의 신체조직]까지 더해 펼친 절세의 무공이 아니었다면 자신 역시 저런 꼴이 되었겠지.
“정말 미친놈들이라니까.”
-내 말이! 그나저나 오빠는 괜찮은 거지?
“어. 연성력을 다 써 버린 거 말곤 별거 없어.”
시문이 패황쇄를 펼친 어깨를 두드리자, 현자의 돌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아까 자폭은 그냥 피하지 그랬어. 그러면 이런 고생 안 해도 되잖아.
“그렇긴 한데…….”
말끝을 흐리는 시문.
그의 시선은 아래쪽을 향했고.
그곳에서 들려오는 사람들의 소리에, 현자의 돌은 다소 힘이 빠진 목소리로 답했다.
-하긴, 이게 우리 오빠지. 미안, 방금 한 말은 잊어 줘.
“네가 미안할 게 뭐가 있어. 틀린 말도 아니었는데.”
격한 전투를 치렀음에도.
현자의 돌의 걱정에 절로 미소가 흘러나왔다.
-그나저나 오빠, 이제 어쩔 거야? 듣자 하니 주변에서 신고를 했나 본데?
“아아. 나도 들었어.”
안 그래도 멀지 않은 곳에서 사이렌 소리들이 울려오는 참이다.
‘경찰차에 소방차, 그리고 각성 전담 부대인가.’
사이렌 차량들을 확인한 시문은 후드를 깊게 쓴 채, [블랙팬서의 신체조직]을 연성했다.
이어 옥상을 박차며 폰을 귀에 가져다 대었다.
“어 시혁아, 난데, 너 지금 바쁘냐?”